풍류야화 자동선(제17화)

 
 

거문고 선율에 맞추어 자동선의 춤은 선녀같고 두 사내는 술잔을 든채 입을 딱 벌리고 자동선의 춤사위에 넋을 잃었다.

제일청의 거문고 솜씨도 뛰어났고 지금은 제일청이 퇴기로 청교방 거리 뒷전에 물러나 있으나 10년여 전만 해도 송도 한량들이 줄을 섰다.

미색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거문고면 거문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다 잠자리와 인심까지 박절하지 않아서 한량들이 부나비처럼 모였다.

하지만 세월의 무게에는 그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지금은 자동선의 심부름과 손님들 길라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더욱이 사가정 같이 가뭄에 콩나듯 예전의 고객이 찾아오면 알뜰히 모았던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 아낌없이 내주었고 정이 그리운 것이다.

제일청은 특히 사가정에게 애틋한 정을 느끼고 있으며 제일청이 송도유수 진명원(陳明元)에게 수청을 든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사가정을 맞았다.

그녀는 몸과 마음까지 열어 사내를 맞이한 것은 사가정이 처음이었고 지금도 헌헌장부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빠져드는 호남이지만

10여년 전 모습에선 광채까지 빛나는 옥골선풍이었고 그 모습에 제일청은 영혼까지 뺐겼으며 춤과 노래가 곁들인 술판의 여름밤은 짧기만 하다.

“이제 돌아가셔서 쉬시지요! 내일 송악산 깊은 곳을 유람하시려면 넉넉한 취침을 하셔야 해요.”

자동선은 영천군과 사가정을 닭쫓듯 내몰았고 지난밤도 낮에 찰나적으로 춤사위로 본 자동선의 앙증맞은 엉덩이와

신비하기까지 해 보이는 음문의 꿈만 꾸다 밤을 샜는데 오늘도 닭 쫓던 개 모양 객사로 내어 몰리자 영천군은 부아가 퉁퉁 부어올랐다.

“사가정, 우리 꼴이 이게 뭔가? 아무래도 한양으로 돌아가야 할 듯하네.”

“영천군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자동선 하나를 못품고 한양으로 되돌아가자고요? 그것은 아니 됩니다.”

사가정의 말에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섞인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풍류객의 넉넉함의 모습이다.

송도의 왕기는 이미 사라져 버려서/ 무심한 구름과 잡초만 무성하고/

성은 있어도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니/ 산천은 같아도 사람은 나그네 뿐이네.

사가정의 죽마고우 이승소(李承召)의 시다.

영천군은 천하미색 자동선을 오늘밤은 품으려나 하고 기대가 컸으나 헛물만 켠 자신이 너무나 미웠던 것이다.

무심한 달은 휘영청 밝고 깊은 산속에선 부엉이까지 울어댔으며 여름이지만 새벽공기는 제법 차갑다.

얼큰하게 취한 몸에는 한기까지 들며 재채기에 소름까지 돋았고 이처럼 으스스 할 때는 따뜻한 계집이 더욱 그리우며 두 사내 심정이 지금 딱 그러하다.

“영천군 나으리, 내일은 꼭 자동선의 마음을 잡으셔야 됩니다.”

“어떻게 그 아이의 마음을 잡는다는 거요? 나는 자동선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는 난감한 표정이다.

“장래를 책임지겠다는 징표를 주셔야지요? 천하미색 자동선이 몸을 내어줄 때 청교방의 기생이나 한양의 장악원 아이들을 생각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영천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에 검은 구름이 흘러갔고 두 사내의 갈피없는 대화는 어느새 새벽을 맞았다.

어젯밤에 마신 술로 속도 쓰리고 잠까지 설쳐 몸이 천근만근이고 영천군이 더 지쳤다.

“나 잠시 눈을 붙여야겠네.” 영천군이 어찌된 영문인지 금방 코를 골았으며 곧이어 잠꼬대를 하였다.

“야 이년아! 내가 누군데 네 년의 콧대가 얼마나 가나 보자!”

자동선에게 하는 소리 같다. 사가정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여자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는 영천군이 한심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사가정은 밖으로 나왔으며 객사 뒤로 개천이 흐르고 개천에는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옥수같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다.

부엉이 울음소리에 두견새 소리까지 요란하고 한양 북촌과는 판이한 환경이며 바로 그때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고 제일청이다.

“나으리, 소첩이 술국을 끓여 놨습니다. 영천군 나으리와 함께 오셔서 드시고 자동선에 가서 송악산 나들이를 떠나시죠!” 알뜰한 배려다.

“고마우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내 너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데...”

“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첩이 좋아서 하는 것인데 나으리는 개념치마소서.” 제일청의 갑자기 울음 섞인 목소리다.

“왜 무슨 일이 있느냐?” 사가정이 제일청을 품었고 제일청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으며 사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영천군이 자동선을 설득하여 한양으로 데려가면 사가정도 따라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몰라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 되어서다.

사가정은 제일청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내 영천군을 모시고 다니는 친구인지라 올라갔다 곧 다시 내려올 것이니라.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사가정이 제일청의 등을 두드려 겨우 진정시켰다.

“주제도 모르고 주책없이 날뛰어 소첩이 밉지요?”

“아니니라. 나는 네가 귀엽고 예쁘기만 하니라.”

제일청은 예쁘고 귀엽다는 말에 마음이 진정되는지 울음을 그쳤으나 속으로 우는지 어깨가 들썩이다 한참 후에 멈추었다.

퇴기에게 귀엽다는 얘기는 결코 칭찬이 될 수 없지만 똑같은 말이라도 누구한테 듣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은 사가정에게 듣는 예쁘고 귀엽다는 말은 제일청에겐 진정으로 하는 말로 들려서다.

날은 암담하고 시간은 더디간다./

좋은 시절 돌아왔으나 옆은 싸늘하다./

향로 연기는 내마음 수심같이 끊길 줄 모른다.

술 한 잔 들고 국화를 바라보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여윈 모습이/

문득 내가 아닌가!/

임은 그리움을 부르고 외로움은 임을 부른다.

이청저의 '안개 엷고 구름 짙은 시름 가득한 긴 오후에'이고 지금 제일청의 마음이 이청조와 닮은 꼴일 것이며 사내들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제일청이다.

품고 욕정을 채울땐 그들은 입속의 혀라도 빼줄 듯이 말하다가도 떠나면 남이 되는 것이 기방을 찾는 사내들의 속성이다.

제일청은 사가정도 그들 중의 한 사내일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 18화에서 계속 -

 

이곡동 배실공원에서 
새로 시작하는 연인이 들려보면 좋은 장소
제일 마지막 사진은 쌍간목을 알리는 팻말이고
팻말뒤로 쌍간목 다섯그루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쌍간목이란 나무가 한줄기로 자라나다가
가지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나무를 말하는데 
힘든 세상을 살아가며 서로 의지하고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 또는 부부를 상징하는 나무라고 합니다

풍류야화 자동선(제16화)

 
 
송악산은 아름답고 웅장하기까지 하며 개성을 내려다봄은 장관이고 쌍쌍이 앉았다.

몇 백년 됨직한 소나무 밑에 두 사내 두 여인이 술잔을 나누고 있으며 신선이 따로 없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이따금씩 쪽빛 하늘에서 뱃놀이를 하듯 오락가락하며 지루한 여름 한낮을 더욱 여유롭게 만들고 있다.

“영천군 나리, 저렇게 아름다운 개성을 한 폭의 그림으로 그리면 어떠하신지요?”

술잔이 두어 순배 돌자 사가정이 영천군을 바라보며 정적을 깼고 소나무 그늘에서 술잔을 기우리며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남자는 남자대로 신나고 가슴이 뻐근한 생각을 했을 것이며 여자는 여자 취향에 맞는 가슴이 뻥 뚫리는 아름다운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각들은 말하지 않았고 개성을 내려다보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에 사가정이 정적을 깼으며 영천군은 말없이 지필묵을 꺼냈다.

“자동선아! 영천군께서 그림을 그리시니까 너는 거문고 선율에 맞추어 춤을 추거라.”

“거문고가 어디 있나이까?”

“거문고는 내 입안에 있느니라. 어서 거문고 걱정은 말고 춤이나 추거라.”

그런데 문제가 생겼고 속곳 바람의 자동선이 갑자기 불어온 돌개바람에 엉덩이와 계곡의 음문까지 보이고 말았다.

“어머나 이를 어쩌나!”

자동선은 기겁을 하고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고 두 사내는 신나고 즐겁다는 듯이 박장대소를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잠자리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진짜 보고 싶고 갖고 놀고 싶은 것을 돌개바람이 알아서 해주었으니 얼마나 기분 좋고 신나는 장면이었을까?

자동선의 엉덩이와 계곡의 음문은 미색(美色)과 재기(才氣) 못지않게 예쁘고 앙증맞았으며 영천군은 벌써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자동선은 오늘따라 팬티를 입지 않았으며 늦더위가 기승을 부려 속곳과 치마만 입고 왔다.

그런데 심술궂은 돌개바람이 장난을 치는 소동에 본의 아니게 잠자리에서나 보일 수 있는 비밀스런 곳을 드러냈다.

그런데 두 사내는 비밀스런 두 곳만 본 것이 아니며 다리를 번쩍 드는 찰나에 사타구니 등에 불긋불긋하게 돋아나 있는 땀띠도 보았던 것이다.

사실 자동선도 엊저녁은 꼬박 뜬눈으로 밤을 새워 아침도 설치고 얼떨결에 팬티를 못입고 왔던 것이다.

“어머니(제일청 지칭), 나 이제 어떡해요. 창피해서 그대로 못 있겠어요!”

자동선이 헝클어진 치마의 매무새를 다잡으며 석류알처럼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영천군과 사가정을 쳐다보았다.

송악산 신령한 사당을 찾아보려고/ 꼭대기에 오르니 전망이 놀랍구나./

성안의 집들은 벌떼처럼 촘촘하고/ 오가는 사람들은 개미같이 부산하다.

사가정의 읊음이 끝나자 “그 시가 사가정의 시요?”라고 영천군이 물었다.

“당연하지요. 제 시올시다.”

“아니에요. 사가정 풍류객이 읊은 시는 고려시인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의 시 이옵니다.”

자동선이 방금 전까지 돌개바람의 심술궂은 장난에 엉덩이와 음문까지 드러내 침울해 있다가 시 얘기가 나오자 발랄함을 되찾았다.

“역시 자동선은 미색 못지않게 재기와 시문에도 탁월하구나!” 영천군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동선 칭찬에 열을 올렸다.

자동선의 일거수일투족에 정신이 혼미해진 영천군은 애써 마음의 중심을 찾아 허리에 차고 있던 필낭(筆囊)과 묵두(墨斗)를 꺼내 바위에 놓았다.

이때 영천군은 갑자기 생각난 듯 “화선지가 없지 않느냐?”라며 낭패한 표정을 지었고 자동선이 비단치마 한쪽을 부드득 찢어 바위에 펼쳐 놓았다.

“영천군 나으리, 소녀 치마에다 그림을 그리시죠.”라고 생긋 웃음까지 보이며 말하였다.

두 사내는 다시 한 번 놀란으며 거침없는 자동선의 행동에 경의까지 표시하는 눈치다.

“너는 그렇게 치미를 찢으면 속곳 바람이 아니냐?” 제일청이 되레 백지장 얼굴이 되었다.

“괜찮아요. 어머니! 어차피 엉덩이와 계곡의 음문까지 보였는데 더 숨길게 뭐 있어요?”

자동선은 돌개바람에 엉덩이와 음문이 드러났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대담하기까지 하다.

한 떨기 송악산이 하늘 높이 솟았는데/ 노을 진 옛 성터에 잔 연기가 서린다./

애달프게 옛일은 물어 무삼하리오/ 영화롭던 때와는 경치조차 다른 것을...

사가정의 일기가성(一氣呵成)으로 휘갈겨 쓴 영천군의 그림 찬시(贊詩)다.

자동선의 독촉으로 사가정이 흥에 겨워 단숨에 쓴 절창(絶唱)이며 영천군보다 자동선이 더 좋아한다.

“사가정 풍류선비님! 오늘 저녁과 엊저녁 술값은 아니 받을 것이옵니다.”

“허허 그럼 자동선 너는 이 사가정에게서 술값을 받으려 했었느냐?”

“아니 그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신지요? 기생집에 와서 술을 마셨으면 당연히 술값을 내셔야지요! 외상술을 드시려 하셨는지요?”

“그것이 아니고 이 사가정은 술값을 내고 기생집에서 술을 마신 적이 없어 그런다.”

이때 옆에 있던 제일청이 자동선에게 눈짓을 하였고 술값 얘기는 하지 말라는 신호다.

제일청은 사가정의 사내답고 풍부한 해학의 매력에 빠져 맛있는 술과 알뜰히 지킨 몸도 주고 노잣돈까지 두둑이 준 사실을 떠올리는 눈치다.

하지만 자동선이 사가정과 제일청의 하늘과 땅만 아는 비밀스런 과거를 알리 만무하다.

그래도 제일청이 자동선에게 지금처럼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언행을 제지시키기는 처음이라 얼른 말길을 돌려야 했다.

지금까지 제일청의 말을 들어서 일을 그르친 적이 없어서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어 가네요. 집으로 가서 그림 턱을 내겠사오니 어서 하산하시지요.”

자동선은 제일청이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대비했던 치마를 입고 자하동 집으로 영천군과 사가정을 안내하였다.

“어머니 고마워요!”

자동선은 제일청의 어느 경우에도 철저한 대비로 위기를 지혜롭게 잘 넘기는 기지에 다시한번 놀란다.

한편 두 사내는 오늘 저녁이야 말로 주지육림의 황홀한 밤을 즐길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발걸음이 가볍다.

- 17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자동선(제15화)

 
 

두 사내와 한 여자는 송도 유람에 나섰고 사가정의 제의로 성사되었으며 자동선은 술과 안주를 챙겨서 나귀에 올랐다.

사가정은 영천군에게 나귀를 탈 것을 권하고 싶었으나 자동선에게 아직 효령대군의 자제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건장한 사내에게 나귀를 타라고 여자인 자동선에게 양보를 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송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송악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고 자동선이 길라잡이며 나귀 위의 자동선은 더 예쁘다.

사가정이 고삐를 잡고 영천군이 뒤따랐으며 제일청도 자동선이 불러서 함께 동행을 하였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하며 여름이지만 오전에는 송도의 날씨가 시원하고 사가정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으며 제일청이 따라와서다.

제일청은 비록 이젠 노기(老妓)로 옥골선풍 헌헌장부의 발길은 뚝 끊겨 청교방거리 뒤켠에서조차 밀려났다.

그러나 인간미가 넘쳐 옛정을 못잊어 심심치 않게 사내들이 드나들었고 사가정도 그 중의 한 사내며 세월의 무게가 실린 아름다움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어찌 보면 한창 때는 자동선을 뛰어넘는 미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에 밀려 자동선 손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청교방 거리에서 제일청하면 오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저기 저 집이요!” 라고 했는데 지금은 철지난 꽃으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가정에겐 제일청이 철 맞아 한창 피어난 꽃처럼 보였으며 영천군은 나귀에 탄 자동선의 동태만 살피고 사가정은 제일청의 속삭임에 정신이 없다.

송악산으로 가는 길엔 왕윤사(王輪寺)가 있으며 울창한 삼림에 둘러싸인 왕윤사는 한 때 수백명의 스님들이 거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웅전과 초라한 건물 몇 채만이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으며 대웅전에 닿자 자동선이 나귀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대뜸

전각은 황량하고 중은 보이지 않네/ 황금 부처님만이 뉘연히 앉아 있네/

선탑에 쌓인 먼지를 바람이 쓸어가고/ 어두운 창가에 달이 등불처럼 비친다.

용재 성현(慵齋 成俔)의 시다.

사가정이 깜짝 놀라 “네가 어떻게 내 친구 성현의 시를 알고 있었느냐?”라며 자동선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양 나으리는 풍류엔 뛰어난데 기녀들을 너무 낮게 보시는 경향이 있으시네요? 앞으론 그렇게 보지 마세요.

그렇게 했다간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사옵고 기녀들을 길가에 핀 한 떨기 꽃으로 보시고 꺾었다 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은 이젠 버리셔야 하옵니다.”

자동선의 단호한 말투에 천하의 풍류객 사가정도 움찔하였고 어설피 행동했다간 영천군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 같아 언행에 신중을 속으로 다짐하였다.

자동선은 단순히 미색으로만 보았는데 높은 인격과 풍부한 학식을 갖추어 웬만한 사대부는 우습게 볼 학기(學妓:학식이 높은 기생)가 아니었던가?

영천군도 성현의 시를 읊는 자동선을 보고는 침착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사내들은 충동적이고 본능이다.

농경사회에서 사냥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태적 본능이 시대가 바뀌어도 본능은 바뀌지 않으며 시대와 환경에 발전, 진화하여 언행도 바뀔 뿐이다.

두 사내와 두 여자는 짝을 이뤄 어느새 귀산사(龜山寺)에 이르렀고 왕윤사에 공민왕이 자주 들린 것과 같이 귀산사에 충렬왕이 들려 국태민안의 기도를 올렸다.

산이 깊어 갈수록 송악산 절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울창한 나무 위에선 꾀꼬리들이 쌍쌍을 이루어 노래 부르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벌써 영천군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고 사가정은 어떻게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했으며 마침 널따란 바위가 나타났다.

“제일청아! 우리는 봉우리로 올라가 정상을 보자꾸나! 두 분은 여기서 잠시 쉬었다 올라오시게 하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가정은 제일청의 손을 잡고 달리듯 정상을 향해서 발길을 재촉했으며 영천군도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에 나섰다.

“자동선아, 사가정의 말대로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자! 내 어젯밤에 한숨도 못자 피곤해서 더는 못가겠다.”

영천군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는 바위에 주저앉아 이인로(李仁老)의 '산거'라는 시를 읊었다.

봄은 가고 꽃은 아직 남아 있는데/ 하늘은 맑고 골짜기는 그윽하다./

두견새 소리가 한낮에 들려오니/ 여기가 살기 좋은 곳임을 알았노라.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듯 자동선 앞에서의 영천군도 도연명이 오얏마을에서 심정인 듯하다.

사가정은 산봉우리에서 영천군을 기다리다 못해서 술병을 들고 다시 바위로 내려왔다.

“두분께선 서로 보기만 하고 뭘 하고 계십니까?” 젊은이들이 만났으면 한바탕 불꽃을 튕겨야 하지 않나요?“

자동선은 사가정의 말에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세요? 이 대명천지에...“

그러나 사가정이 누구인가! 한 치도 물러설 리 없다. ”허허 하늘이 맺어준 배필 같으오.“

사가정은 말과 동시에 술잔을 영천군에게 건넸으며 연천군은 마침 목이 탈 때다.

“허허 자동선이 눈치도 빠르고 웃어른을 모실 줄 아는 현숙한 여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이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 아느냐? 세종임금의 손자이시고 효령대군의 자제분이시다. 정성껏 잘 모셔야 하느니라!”

세종임금의 손자라는 사가정의 말에 깜짝놀란 듯 자동선이 발딱 일어나서 큰절을 올린다.

“소녀 어르신을 몰라 뵈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아니니라. 내가 밝히지 않은 죄가 더 크니라!” 옆에 있는 사가정의 표정이 밝아졌고 영천군이 그 어느때 보다도 표정이 밝아서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피로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런 기미가 온데간데없어졌다.

영천군은 자동선이 따라준 술잔을 받아 마시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아서 산봉우리를 향해 뛰듯 걸었고 산봉우리에 올라가선 무슨 일을 결심한 눈치다.

- 16화에서 계속 -

아내 (예하 이채현)와 함께 광양 매화원을 가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대구에서 출발 하는 상품중 어떤게 좋을까 살펴 보았다.

대구를 출발하여 당일치기 광양 매화원으로 가는 상품들은 여러개가 판매 되고 있지만 

삼성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광양매화원과 구례 산수유 마을 가는 상품이 있었고 

또 다른 상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 눈에 띄는 상품이

진짜재미있는 여행에서 광양매화원으로 가는 상품이 있어 가격을 비교하여 보니 

다른 여행사에서는 43,000원~45,000원 많게는 5만원도 더 넘게 받는데

진짜재미있는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4만원도 안된다.

또 여행 코스가 광양 매화원 뿐만 아니라 하동 악양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그리고 구례 화엄사 까지

코스가 정말 좋다 최참판댁도 이미 가본곳이고 화엄사도 2~3년전 갔었던 곳인데 

화엄사의 흑매화가 정말 볼만하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이곳으로 가면 정말 좋겠다 하고 

아내에게 예약을 하라고 했다.

아내의 이름으로 이미 몇차례 재미있는여행을 통하여 여행을 갔다 온지라 

이왕이면 이름과 전화 번호가 등록되어 있는 아내의 이름으로 예약을 하라고 일렀는데

예약후 여행비를 납입 하라해서 입금을 하였는데 어라 아내와 나 2인이 가는데 9만원이라고 하네

뭔가 잘못 됨을 알고 다시 전화 하였더니 이미 만석이라 다른 여행 코스로

광양 매화원과 구례 산수유를 보러가는 코스로 안내를 하였던가 보다

전화를 받은 여행사 직원분이 광양 매화원 뿐만 아니라 하동 악양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그리고 구례 화엄사로 가는 

버스편을 증차하여 1대 더 배차를 하기로 하였으니 이미 낸 여행 상품비의 차액은 돌려 드리겠다고 하여 

이곳을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 빨리 떠나는 여행 스케쥴에 다소 의아하게 생각은 하였으나

광양 매화축제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행사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정보와 관광객의 편의를 생각하는지를 

단박에 알수 있었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진입하는 평상시의 도로가 아니라 조금 우회하여 매화 축제장으로 들어서니 

길게 늘어선 차량의 행렬을 보고 감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주차장에 하차하니 다른 차량들이 들어서기전 하차를 하고 조금은 한산한 상태에서 매화 축제장으로 들어 갈수 있었는데

예전 쌍계사에 벚꽃 놀이를 갔다가 길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어쩔수 없이 되돌아 왔던 기억 들이 절로 떠 오른다.

조금 빨리오고 또 밀리지 않은길로 우회하여 진입하였으니 정말 편하고 쉽게 도착할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터라 많은 꽃들을 보고 사진도 찍고 하였지만 광양 매화원이 처음인데 

다른 사진가들의 이야기로는 광양 매화축제가 3월17일이 마지막이고 매화꽃이 끝물이라 모두 지고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아직 매화가 한창이다.

매화꽃을 보기위해 언덕길을 오르니 섬진강 줄기와 매화축제장의 전경과 더 넓은 매실밭에 핀 매화꽃이 장관이다

매화축제장을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5,000원에 구매 하였는데 입장권에는 지역 상품권이 붙어 있어 

축제장에서 5,000원권을 대신하여 상품을 구매 할 수 있어 입장객은 공짜나 다름 없지만 지역 상권은 이 상품권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으니 지자체에서 지방 경제를 위하여 고심한 흔적도 보이는듯 했다.

광양 매화축제장을 벗어나 하동 악양 최참판댁을 향할 때도 놀라운 일은 우리가 이곳에 도착 할때쯤 텅빈 주차장 이였음에도 

많은 버스가 대기하고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보자니 또다시 뿌듯함과 여행사 임직원의 노고가 같이 여행간 일행들의 편의를 

얼마나 생각하고 노력하는 지를 알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최참판댁은 십여년전에 한번 가본 곳인데 도착하니 입구에 늘어선 가게들과 예전과 다르게 바뀐 환경에 

하긴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고 되뇌이곤 했다.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화계장터로 갈때쯤이다 

가이드님이 운전기사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화개장터로 진입하면 주차 할 곳이 있는데 그곳이 복잡하면 

면사무소로 차를 주차 하시는게 좋겠다 하시는 이야기 였다.

사실 오늘같은 휴일날은 관광객이 몰려 주차가 힘든 상황 미리 면사무소 직원에게 전화 하여 주차할 장소를 파악하고 

주차장이 밀릴때 어떻게 할것인지 하는 시나리오를 가이드님이 이미 알고 있은듯 하다 

화개 장터에서 점심을 먹는데 화개장터가 얼마나 붐비는지 인산 인해를 이룬다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사용한 금액의 영수증을 가이드님에게 주었으면 한다 

그건 왜인고 하면 오늘 여행 상품이 저가로 다른곳보다 많이 싸다 하였는데 그 이유가 지자체에서 행사를 지원하는 상품으로 

방문객의 숫자와 구매한 영수증이 상당금액을 도달하여야 지자체에서 지원금이 지급 되는 까닭이다.

어차피 점심 한그릇 사 먹는거 먹고 영수증 받아 주는건데 무슨 큰 금액도 아니고 얼마든지 줄 수 있는 일이다.

화개 장터서 이것 저것 사먹고 쇼핑도 하고 장삿군의 흥정도 구경하며 지정된시간에 지정 장소로 갔더니

다시 탑승하여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에는 지금쯤 흑매화가 활짝 피어나 정말 멋지겠다 싶었다 

 

 

이 사진은 21년도 이 맘때쯤 동이트기전 찍은 사진 인데 흑매화를 찍기 위해 사진가들이 일출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이랬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쯤 얼마 흑매화가 곱게 피었을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흑매화가 정말 예쁘다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화엄사 곳곳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다시 대형 주차장으로

4시가 되자 같이같던 일행들이 모두 모였다

대구로 출발했다 오늘 제법 많이 걸었다 2만보도 넘게 걸어 다녔는데 신발이 편치 않아 발이 조금 아프다 

신발을 벗을까 했는데 그때 가이드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한다 오늘 정말 많이 걸었지요

많이 걷고하여 발이 아프고 오랫동안 신발을 신고 있어 잠시 벗으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발 구린내로 

불편할수도 있으니 신발을 벗지 않았으면 한다는 주의 이야기다 어찌 신발을 벗었으면 하던 생각을 알아 챈건지..ㅎㅎㅎ

돌아오는 길에 늘 하는 행사가 있단다 가이드님과의 가위 바위 보 게임인데 최종 승자 한분에게는 

진짜재미있는여행에서 주는 선물이 있단다 그래서 게임을 하였지만 최종 4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참 즐겁고 재미난 여행 이였다 .

특히 다른 여행사의 상품과 비교하여  싼가격에 여행을 다녀 올수 있었고 임직원의 새심한 배려로 

막히는 길을 막히는 불편없이 수월하게 구경 했고 같이 간 일행들은 제시간에 맞춰 일정에 차질이 없었고

정말 재미난 여행 이였다.

 

 

 

 

가이드님이 후기를 한번 쓰보는것도 좋다하여 후기를 쓰는건데 사진올리는 기능이 썩 좋질 못하네요

멋진 사진들이 몇개 있는데 조금 크게 올려 드리고 싶은데 후기 사진올리는 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조그만 사진 몇장만 올려 둡니다. 여행사에서 이런 불편함은 조금 개선 해야 겠어요

그렇다고 사진을 크게 올리면 용량을 많이 잡아 먹겠지만 어느 정도는 올릴수가 있어야 자랑질을 할건데...

풍류야화 자동선(제13화)

 
 

영천군과 사가정의 걸음이 빨라졌고 사가정이 앞장을 섰으며 조선팔도를 제집 정원처럼 드나들었던 사가정의 발길에 영천군은 벅차다.

“이 사람아, 좀 천천히 가시게나! 내가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네.”

“자동선을 한시라도 빨리 보시려면 더 빨리 걸어가셔야 하지요.”

“아 참! 우리가 타고 왔던 말은 어찌하였소?”

“네 나으리, 목단춘에게 맡기어 며칠 잘 먹이라 했나이다.”

“그거 참 잘했소이다. 그런데 제일청한테 안내하라 했으면 좋을 뻔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사내 둘이 가서 아무렴 조선제일의 미녀라 해도 설득을 못하겠는지요?”

두 사내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오는 사이에 어느새 멀리서나마 자동선의 집이 보였다.

영천군은 자동선의 집만 보아도 자동선을 본 듯 가슴이 뛰었고 이젠 영천군이 앞에 서서 뛰다시피 한다.

숨이 차서 천천히 가자던 영천군이 자동선의 집을 보니 힘이 저절로 솟는지 사가정(四佳亭·서거정)을 제치고 앞에서 총총 걸음으로 달린다.

"천천히 가시죠. 영천군 나으리...”

하지만 영천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동선의 집을 향해 젖먹이가 어미를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가듯 줄달음을 쳤다.

사실 영천군은 사가정보다 힘이 좋고 허우대도 좋을 뿐만이 아니라 왕손의 후예답게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사가정도 어디에 나가도 빠지지 않으며 풍부한 학식에 넘치는 해학과 풍류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 안달하는 호남아다.

지금 그들이 자동선을 보려고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뛰듯 걷는다.

“게 누구 없느냐?”

영천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주인을 찾았고 몇 번을 소리 높여 주인을 찾았으나 안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번에는 사가정이 대나무로 촘촘히 만든 대문을 발길로 차면서 외쳤다.

그때서야 “게 누구기에 남의 집 대문을 발길로 차며 법석을 떠시오?”라며 열 서넛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여기가 자동선의 집이더냐?” 영천군이 숨이 가쁘게 물었다.

“그렇소만 댁은 누구신지요?” 소녀가 당돌하게 대꾸를 하였다.

“우리는 한양에서 온 영천군과 사가정인데 자동선을 보러 왔느니라.”

“아-예, 그런데 자동선 아씨께선 지금 집에 안계십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셨다 다시 오셔야합니다.

우리 아씨께선 예약을 하지 않으시면 만나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지금 아씨께선 산책중이십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기다리면 아니 되겠느냐?”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아씨가 안 계실 땐 절대로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게 하십니다.

어서 돌아가셔서 내일 오시면 소녀가 아씨한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사내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별수 없이 다시 제일청 집으로 갔으며 다시 술판이 대낮부터 벌어졌고 대취했던 두 사내는 새벽녘에 깨어났다.

그들은 집 뒤 실개천으로 가 세수를 하고 목이 타서 실컷 물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떠날 채비를 하였으며 그때다.

“벌써 떠나시려고요? 그렇게는 아니 되옵니다. 이 제일청에 와서 술국을 안 드시고 가시는 손님은 없습니다.

소첩이 일찌감치 술국을 끓여 놨으니 시원하게 드시고 가세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국과 기장이 섞인 밥도 함께 차려졌다.

여섯 골이 망망한 채 산과 바다가 가려/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들었더니/

이제사 와 보니 뜬소문은 잘못이라/ 티끌세상과 몇 걸음 사이 밖에 아니네

고려시인 최집균(崔執均)의 무제(無題)다.

두 사내는 다시 자동선 집에 닿았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내가 동시에 ‘게 누구 없느냐?“라고 집주인을 찾았다.

두 사내가 네댓 번을 부르자 선녀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고 바로 자동선이다.

”어서 들어오시죠. 어제 오셨던 한양에서 오신 손님이 아니신지요?

어제는 소첩이 뒷산으로 산보를 하면서 시(詩) 공부하느라 결례를 했사오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똑 떨어지는 말투였으며 자동선은 두 사내를 아랫목에 앉히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소녀 자동선이라 하옵니다. 먼 한양에서 미천한 소녀를 보러 이곳까지 오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그래. 네가 진정 자동선이냐? 이 분은 효령대군 다섯 번째 아드님인 영천군이시고 나는 사가정이라 하느니라.”

“어머 소첩이 평소 존경했던 두 분을 제 집에서 뵙다니 꿈만 같사옵니다. 앵두(동기 가명)야! 술상을 어서 봐 오너라!”

앵두는 준비했던 술상을 자동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고 들어왔다.

“이 술은 소첩이 담은 자동선주(紫洞仙酒)이며 담근 지 3년차로 독하오니 천천히 조금씩 드세요!”

두 사내를 술상 맞은편에 앉히고 자동선은 술을 연거푸 따랐고 사가정은 술에 취하고 영천군은 자동선의 아름다움에 포로가 되었다.

“자동선아, 이 자하동에 숨은 얘기가 있을 듯한데 네 이름도 거기에 연유가 있는 것이 아니더냐?”

“역시 풍류객 사가정 어른이셔? 그러하옵니다. 고려 때 대학자 채홍철(蔡洪哲) 어른께서 자하동에 정자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국가 원로들을 모셔 기영회(耆英會)를 열었는데 어느 날 자하선인이 나타나 원로들에게 헌수 술잔을 올리며 '자하동곡'을 부르셨다 하옵니다.”

“그래? 자동선 너는 역사에도 높은 지식을 갖고 있구나! 그 선인이 불렀다는 '자하동곡'을 불러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하옵니다.'자하동곡'은 현재 악부(樂府)에 가사가 전해오는 것을 소녀가 잘은 못 부르나 불러 보겠나이다.”

자동선의 낭랑한 목소리에 영천군은 아랫도리가 팽창되는 것을 느꼈다.

집은 송악산 자하동에 있어서/ 안개구름이 중화당에 잇달았네!/

오늘 기영회 기쁜 모임 있다기에/ 몸소 찾아와 연수배를 올리노라

노래보다 술에 더 마음을 두는 사가정도 자동선의 노래에 가슴이 흔들렸고 두 사내는 동시에 탄복했으며 그러하면서도 서로 다른 여인을 떠올렸다.

연천군은 '자하동곡'을 부른 자동선과 열락의 장면을 생각했으며 사가정은 제일청과 주지육림의 꿈같은 과거를 회상했고 어느새 밤이 깊었다.

“두 나으리께선 밤이 깊었는데 술만 드시면 어떡하죠? 객사로 가실 채비를 하셔야지요!”

영천군은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객사로 가라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내는 자동선의 집에서 나와 객사로 발길을 옮겼으며 통음한 술이 번쩍 깼다.

- 14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9화)

 
 

마음이 답답하거나 세상의 갈피가 보이지 않을 때면 진이는 박연폭포를 찾았다.

폭포수 앞에서 노래가 아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가슴이 조금은 열려지기 때문이다.

한양 살이 3년 동안 생기가 넘치는 세상을 보고 송도에 들어서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유몽인(柳夢寅)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진이는 여자들 중에서 뜻이 높고 협기가 있는 자로 평했으며

허균(許筠)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서 성품이 활달하여 남자와 같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진이는 예쁜 여자로 태어났으나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한혈마를 타고 만주벌판을 질풍노도처럼 달리고 싶어하는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기개를 닮은 여장부다.

그런데 그녀는 고려의 수도가 아닌 조선시대의 송도에서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대부집 딸로 출생한 것으로 15년 동안 금지옥엽 호의호식하며 성장하여 신동소리를 들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서녀 신분으로 바뀌어 기생(妓生)의 길로 들어섰다.

숱한 사내들의 품을 통하여 세상살이를 살펴봤으나 진이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사내들은 진이를 정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들을 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자 특유의 정복 심리이고 사내는 여자에게 들어오면 죽으며 정복이 아닌 포로가 되는 신세다.

진이는 숱한 사내들을 품어 봤으나 마음에 들고 존경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다.

진이는 문득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번개처럼 떠올렸고 화담이라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존경의 대상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진이는 어느 때 보다도 곱고 단아하게 차려입었고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仙女)의 모습이다.

어깨엔 자신의 키 만한 거문고가 메어져있고 손에는 송도 명주인 태상주와 간단한 안주가 들려졌다.

화담을 공략하러 가는 길이고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으며 진이는 비를 맞으면서도 '대학'(大學)은 젖지 않도록 가슴에 품었다.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러 가는 길이며 술과 거문고는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려는 속내다.

지체 높은 사대부집에서 천하의 소리꾼과 바람둥이들에게서 세상살이를 체득한 당돌한 계집이다.

진이의 명성은 송도를 넘어 한양은 물론이고 중국의 사신들은 조선에 오면 그녀를 찾아 자고 가는 것을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중국의 사신뿐만이 아니며 그들을 보내고 영접하는 조선의 관리들도 명월관에 들려 진이를 탐하였다.

화담도 제자들의 얘기를 통하여 진이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진이가 화담을 뵈러 가겠다고 연통을 넣고 갔으나 집에 있지 않았으며 진이가 화담의 제자가 된다면 홍일점(紅一點)이 되는 것이다.

화담의 문하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많으며 행촌 민순, 사암 박순, 초당 허엽, 술한 박민헌,

토정 이지함, 지채 홍인우, 수암 박지화, 연방 이구, 동강 남언경, 죽계 마희경, 이재 차식,

남봉 정지연, 이소재 이중호, 척암 김근공, 사재 장가순 등 그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있다.

이 같은 문하에 진이가 군침을 흘렸고 그녀가 존경하며 사랑하고 싶어질 사내가 행여 생길까 기대를 하는 속내다.

하지만 화담의 문하생이 되는 길이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고 당나귀 등에 화담이 즐긴다는 음식과 태상주를 싣고 화담에 도착했을 때는 집안이 텅 비었다.

아름다운 집이었고 진이는 마음속으로 화담선생의 거처가 선인(仙人)들이 산다는 동리(東籬)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악산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관산 화곡이 그곳이고 오관산은 산봉우리가 다섯 개 나란히 서 있어 멀리서 보면 왕관처럼 보인다.

기암괴석이 둘러선 화곡에는 봄엔 진달래와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기슭을 불꽃처럼 물들이고 가을엔 붉은 단풍이 타올라 절경이다.

화곡을 한참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움푹 패어 이루어진 연못 화담(花潭)이 있다.

서경덕은 화담 곁에 초당을 짓고 세속과는 거리를 둔 채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곳에 진이가 오늘 나타났다.

붉은 나무 병풍처럼 둘러친 산에 어른거리고/ 푸른 시냇물 거울 같은 웅덩이로 쏟아지네./

신선세계 가운데 거닐며 시 읊으니/ 갑자기 마음이 맑고 깨끗해짐 느끼네.

서경덕의 '대흥동'을 떠올렸을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말끔히 개고 반짝 해까지 났다으며 비온 뒤의 날로 청자 빛의 상쾌한 분위기다.

초당 주위엔 여름 꽃들이 만발하였고 비까지 내려줘 활짝 핀 꽃들이 생기발랄함으로써 화담은 더욱 아름다운 신선들이 산다는 동리로 보였다.

진이는 피곤함도 잊은 채 화담 주위와 초당 곁을 살폈고 연못엔 이름 모를 고기들이 춤을 추며 노래라도 하는 듯이 즐거워 보였다.

연못 주위엔 나팔꽃과 해란초, 그리고 금낭화와 패랭이꽃까지 다투어 피어 또 다른 꽃의 세상을 만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꽃 그림자들이 화담을 감쌀 때 두런두런 인기척이 났으며 화담 일행이 연못 앞으로 드러났다.

진이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고 허엽이 다가와 당나귀에 실린 짐을 받아 광에 들여놓고 진이를 화담에게 소개해 주었다.

진이의 얼굴이 활짝 핀 나팔꽃 빛깔로 변하였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어요./

이 산중에 계시긴 하지만/ 구름이 자욱하여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다'를 회상한 듯하다.

하지만 진이는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으며 진이는 화담을 만난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숱한 남자와 뜨거운 살을 섞으며 사랑을 찾아 봤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진이 그녀가 찾아 헤매는 사랑하는 사내는 22살이나 위인 화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어렵사리 황홀한 기분으로 꿈속에서도 마음대로 못 뵈었던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다.

- 30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8화)

 
 

몇 년 만에 극적인 해우로 정염을 불태운 진이와 이생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제 정신을 찾았다.

동창으로 새벽달이 들어와서 알몸뚱이 남녀를 감싸고 있으며 접동새 울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밤새 풀무질 하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생의 손이 진이의 사타구니로 뱀처럼 기어온다.

진이도 싫지 않았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사내의 살 내음을 맡은지 얼마만인가?

한양에서도 송도에서도 진이가 마음만 먹으면 사내는 굴비를 꿰듯 꿸 수가 있으나 그녀는 화담 서경덕 같은 사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제2 화담(서경덕 호)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계속 찾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순간 진이의 삶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녀가 존재하는 한 제2의 화담 찾기는 지속될 것이다.

이럴 때면 진이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떠올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진이의 집념은 서릿발 같고 숱한 사내들을 품에 안았으나 화담으로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30년 면벽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겁게 품었으나 그녀의 펄펄 끓는 가슴을 식힐 남심(男心)은 아직 찾지 못하고 오늘도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진이는 전국을 바람처럼 거침없이 마음 가는대로 나도는 남사당을 찾았고 진이의 기질과 딱 맞는 느낌을 받았다.

구경꾼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단원의 한사람으로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생이 나타났다.

하룻밤 정도는 미륵(彌勒)같은 존재일지는 모르나 진이의 마음을 채워줄 영혼의 사내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새벽 운우지락을 한바탕 즐기고 낮 동안은 밤새 뜨거운 살을 섞으며

육체의 허기를 채울 때와는 다르게 뜨악한 분위기로 있다 날이 저물자 다정한 부부모양 남사당패 놀이마당을 찾았다.

낮에는 논·밭으로 나가 일하고 해가 서산으로 고개를 숙이자 농부들은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몇 백 년은 됐을 소나무 밑에 차려진 남사당놀이는 어둠이 깔리자 횃불로 사위를 밝히고 판이 벌어졌다.

진이는 어름사니 재주에 마음이 쏠렸고 기생이 되기 전에 남사당을 알았다면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언듯언듯 횃불에 비치는 얼굴이 당차 보였고 자신보다는 어려보이지만 줄 위에서 날렵하게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리는 개성 있는 연기에 매료되었다.

진이는 어름사니가 부러웠고 몇 년 전에만 이 같은 남사당놀이를 알았다면 기꺼이 입단하여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앞섰다.

“뭘 그렇게 골돌이 생각하고 보시오? 가서 국밥으로 저녁이나 먹읍시다.”

이생이 잡아끄는 대로 국밥집에 가서 이화주(梨花酒)에 국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주막으로 온 이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오뉴월 들소모양 진이에게 달려들었고 한바탕 제멋대로 육체의 허기를 채운 후

“나하고 아주 삽시다. 지난번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에 갔더니 나는 할 일이 없었소이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는데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 않고 유산을 남기셨더라고.

그 유산이 만만치 않아 우리 둘이 넉넉히 여생을 즐길 정도야! 그동안 나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지 않소?”

의기양양한 이생의 말투였고 진이의 귀에는 이생의 말이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광평의 쇠처럼 굳은 심지 일찍 알았으니/ 내 본래 잠자리 같이 할 마음 없었네./

다만 하룻밤 시 짓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풍월을 읊으며 꽃다운 인연을 맺고 싶을 뿐...

고려시대 기생 우돌(于咄)의 '국섬에게'이다.

진이가 이생이 자기와 평생을 같이 살자는 제의에 갑자기 우돌의 시가 떠올라 사내 손을 버러지인 냥 소스라쳐 떨쳐버렸다.

진이에게 남자는 화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몽주가 단심가로 고려 충신으로 영원히 남았듯이

진이가 번개처럼 포은(정몽주)의 단심가를 떠올린 것은 이승에선 화담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는 것이다.

포은은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로 회유했으나 끝까지 버티다 선죽교에서 포살되었다.

목숨을 건 고려 충신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리하여 포은은 역사에 영원히 역사로 살고 있으며 진이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다.

“왜 대답이 없소? 아버지에게 성(姓)은 받지 않았으나 유산을 받아 어차피 불효자로 찍혔으니 진이의 남자로 여생을 살고 싶소!”

“이생 서방님은 아직도 이 진이의 마음을 모르고 계십니까?

삼남을 비롯하여 금강산·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저의 온갖 것을 다 보고서도 더 보고 싶은 것이 남았습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 진이는 어는 한 남자의 여자로 애초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진이는 이생에게 말을 퍼붓고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이 총총하고 몸에선 이생의 정액이 비릿하게 풍겼다.

유람할 때 수없이 느꼈던 익숙한 향기 같은 냄새이고 몇 년 전의 일이 어젯밤 정사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갈피를 못잡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이 진이가 부리나케 남사당놀이 마당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구경꾼들의 요란한 함성과 박수에 신명나는 예쁜 어름사니는 줄 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렸다.

저벅저벅 이생도 진이 뒤를 따랐고 남사당놀이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보름달은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자 하늘의 자리를 내어주며 서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넓디넓은 하늘의 자리에서 떠나기가 서러운지 붉은 태양이 아침 하늘에 불쑥 솟구치고서야 겨우 자리를 비켜주었다.

태양은 천상 사내여서인지 보름달이어도 여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하늘자리를 계속 버티지 않았다.

진이는 말로는 이생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나 마음 한 구석엔 따뜻한 양지를 만들었다.

이생 정도면 마음을 터놓고 투정을 부리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세양과 이사종은 넘치고 처졌으며 어쩌면 이생이 자기에게 딱 맞는 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화담이 홀연히 나타나 학춤을 추며 힐긋힐긋 진이를 훔쳐보았다.

- 29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7화)

 
 

한양 손님을 통해 진이는 남사당(男寺党)에 대해 오래전부터 정보를 모아왔다.

남색사회(男色社會)에 대한 관심이 발동하였고 진이가 이제 조선사회에서 더 이하 신분은 없는 남사당에 뛰어들 태세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리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들 가네.

민요로까지 나돌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고 바우덕이(金巖德:1848~1870)를 지칭한다.

그런데 340년 전에 진이가 남사당에 매료되어 수년 동안을 그들과 지냈고 위의 노래는 최근의 것이며 조용했던 마을이 오랜만에 떠들썩하다.

뙤약볕 아래 논밭 일로 허리 한 번 제대로 못피던 농사꾼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마을 처녀들은 멀리 숨어서 가슴을 조이며 놀이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대낮 같이 환하게 흔들리는 횃불아래 춤추는 그림자들, 그 위로 어지럽게 퍼지는 흥겨운 풍물놀이...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남사당패들의 신나는 놀이가 한창이고 풍물놀이에 이어 버나(대접)돌리는 묘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살판(땅재주)이 이어졌다.

그런데 구경꾼 속에서 남사당놀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진이가 눈에 띄었고, 송도에선 보기 어려운 남사당놀이를 보기 위해 한양까지 내려왔다.

조선의 상층부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보고 몸으로 체험하여 봤으니 이제는 최하층민인 천민의 세계도 보려함이다.

고려를 연성(軟性) 국가로 조선은 경성(硬性) 국가로 진이는 보고 있는 것이다.

지족선사와의 뜨거웠던 하룻밤도 외롭고 쓸쓸하고 사내 살 냄새가 아쉬울 때는 새록새록 그리워졌다.

사내들은 진이를 뜨악해 하며 돈을 주고 육체적 기쁨을 맛보려는 족속은 많은 화대가 부담이 되어 쉽게 품을 수 없으며

돈은 많으나 신분이 너무 낮으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아 진이는 이래저래 기명(妓名·명월明月)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존재다.

지금 남사당패의 흥겨운 놀이판의 구경꾼들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엔 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남사당패 놀이는 점점 열기가 더해 가고 매호씨(어릿광대)와 살판쇠(땅재주꾼)가 나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입을 쩍하고 맞추어 “안암팍이 분명하니 앞곤두부터 넘어가는데 휙휙”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손을 짚더니 한 바퀴 공중회전을 하였다.

어둠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구경꾼들이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살판쇠는 다시 뒷걸음질을 치는가 싶더니 다시 손을 짚고 뒤로 한 바퀴 사뿐히 돌았다가

입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두 손으로 거꾸로 서서 걷다가 금세 한손으로 거꾸로 걷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살판쇠는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렷다.”라 하고

신명나게 껑충껑충 위로 뛰어 몸을 틀고는 공중회전을 하려는 듯 몸을 솟구쳤고 그 밑에서 벌겋게 불을 담은 놋화로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살판이 끝나자 보기 드문 미녀 어름사니(줄타기 재주부리는 광대)가 나와 매호씨와 줄고사를 올렸고 꽹과리, 징, 장구소리에 날라리까지 합세하였다.

줄고사가 끝나자 장삼에 고깔 쓰고 중 모양을 한 여자 어름사니는 키를 훌쩍 넘게 매단 줄 위로 오르면서 재담 한마디를 했다.

“중 하나 내려온다. 중 하나 내려온다. 저 중 거동 보소. 억단(얽었담)말도 빈말이요.”라고 맑은 목청으로 중 타령을 뽑았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기예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와 횃불 조명으로 음영이 짙은 미모에 구경꾼들은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구경꾼 속의 진이는 고독이 휘오리가 점점 더 세어져갔다.

내가 임을 그리며 울고 지내니/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하구나./

나에 대한 말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 지는 달 새벽 별만이 아실 것이리/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아아!/ 내 죄 있다 우기던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나는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나에 대한 뭇사람들의 거짓말이여/

슬픈 일이로다. 아아!/ 임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아아, 님이여! 내 말씀 다시 들으시고 사랑해 주소서...

'정과정'에 나오는 고려가요다.

그렇게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진이(明月)는 몸서리 쳐지도록 외로운 것이다.

소세양·이사종·벽계수·이생, 그리고 화대를 주고 육체의 허기를 채우고 벌·나비가 꿀만 빨아먹고 훨훨 날아가듯 사내들은 모두 제 둥지로 가버렸다.

정작 진이의 뻥 뚫린 가슴을 메우려 할 때는 사내들은 옆에 있지 않았고 지금이 바로 그럴때다.

진이는 품에서 태상주를 꺼내 병 채로 마셨고 바로 이때 누군가 술병을 가로챘다.

“안주도 없이 독주를 마시면 안 되오! 저리 가서 국밥과 함께 드시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헐레벌떡 진이 곁을 떠났다가 여자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진이가 한양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하던 때다.

화대도 없이 어떻게 육체의 허기를 채울 수 없을까 궁리를 하며 서성대고 있을 때 극적으로 진이와 해후하였고 사내 좋고 여자도 싫지 않을 상황적 분위기다.

남사당 놀이판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고 높이 있는 미녀를 더 자세히 보려고 일어선 구경꾼들을 앉히는 소리에 놀이판이 잠시 소란해졌다.

그 사이 어름사니는 장삼을 벗어던지고 전복(戰服)차림이 되어 갖은 걸음으로 재주를 부렸다.

앞으로 뒤로 걷다가 줄을 타고 앉아 화장을 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앞으로 가다가 뒤로 두 발로 뛰어 돌아앉기도 하였다.

어름사니가 움직일 때마다 멍석 깔린 마당에 그림자가 출렁이었다.

“여기에 이러고 있을 것이오? 밤도 깊었소이다. 어서 주막으로 갑시다!

안성엔 삼남(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오. 국밥이 아주 맛이 좋소!”

이생은 진이의 등에 손을 얹고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 듯 주막으로 몰고 갔다.

진이는 진이대로 이생은 또한 이생대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를 마신 후 운우지락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익숙한 부부모양 말이 필요 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고 오랜만에 해우 한 연인 같이 거칠 것이 없다.

이생이 들어가면 진이가 깊이깊이 받아 물레방아 돌 듯 척척 맞아 돌아갔고 뒷산의 소쩍새도 그들의 운우지락을 응원하듯 목청껏 노래불렀다.

- 28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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