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자동선(제17화)- 봄까치꽃(큰개불알꽃)

풍류야화 자동선(제17화)

 

 

거문고 선율에 맞추어 자동선의 춤은 선녀같고 두 사내는 술잔을 든채 입을 딱 벌리고 자동선의 춤사위에 넋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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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청의 거문고 솜씨도 뛰어났고 지금은 제일청이 퇴기로 청교방 거리 뒷전에 물러나 있으나 10년여 전만 해도 송도 한량들이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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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색에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거문고면 거문고 못하는 것이 없는데다 잠자리와 인심까지 박절하지 않아서 한량들이 부나비처럼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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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의 무게에는 그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으며 지금은 자동선의 심부름과 손님들 길라잡이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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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사가정 같이 가뭄에 콩나듯 예전의 고객이 찾아오면 알뜰히 모았던 주머니 돈까지 탈탈 털어 아낌없이 내주었고 정이 그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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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청은 특히 사가정에게 애틋한 정을 느끼고 있으며 제일청이 송도유수 진명원(陳明元)에게 수청을 든 지 한 달이 채 안되었을 때 사가정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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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몸과 마음까지 열어 사내를 맞이한 것은 사가정이 처음이었고 지금도 헌헌장부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빠져드는 호남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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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모습에선 광채까지 빛나는 옥골선풍이었고 그 모습에 제일청은 영혼까지 뺐겼으며 춤과 노래가 곁들인 술판의 여름밤은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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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돌아가셔서 쉬시지요! 내일 송악산 깊은 곳을 유람하시려면 넉넉한 취침을 하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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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선은 영천군과 사가정을 닭쫓듯 내몰았고 지난밤도 낮에 찰나적으로 춤사위로 본 자동선의 앙증맞은 엉덩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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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하기까지 해 보이는 음문의 꿈만 꾸다 밤을 샜는데 오늘도 닭 쫓던 개 모양 객사로 내어 몰리자 영천군은 부아가 퉁퉁 부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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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 우리 꼴이 이게 뭔가? 아무래도 한양으로 돌아가야 할 듯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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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 나으리!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자동선 하나를 못품고 한양으로 되돌아가자고요? 그것은 아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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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의 말에는 자신감과 자존감이 섞인 단호한 의지가 담겨 있었고 풍류객의 넉넉함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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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의 왕기는 이미 사라져 버려서/ 무심한 구름과 잡초만 무성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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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 있어도 사람은 옛사람이 아니니/ 산천은 같아도 사람은 나그네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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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의 죽마고우 이승소(李承召)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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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은 천하미색 자동선을 오늘밤은 품으려나 하고 기대가 컸으나 헛물만 켠 자신이 너무나 미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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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한 달은 휘영청 밝고 깊은 산속에선 부엉이까지 울어댔으며 여름이지만 새벽공기는 제법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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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큰하게 취한 몸에는 한기까지 들며 재채기에 소름까지 돋았고 이처럼 으스스 할 때는 따뜻한 계집이 더욱 그리우며 두 사내 심정이 지금 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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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 나으리, 내일은 꼭 자동선의 마음을 잡으셔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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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아이의 마음을 잡는다는 거요? 나는 자동선의 속내를 알 수가 없어!” 가슴이 답답하다는 난감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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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를 책임지겠다는 징표를 주셔야지요? 천하미색 자동선이 몸을 내어줄 때 청교방의 기생이나 한양의 장악원 아이들을 생각하시면 아니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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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에 검은 구름이 흘러갔고 두 사내의 갈피없는 대화는 어느새 새벽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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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마신 술로 속도 쓰리고 잠까지 설쳐 몸이 천근만근이고 영천군이 더 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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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잠시 눈을 붙여야겠네.” 영천군이 어찌된 영문인지 금방 코를 골았으며 곧이어 잠꼬대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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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년아! 내가 누군데 네 년의 콧대가 얼마나 가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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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선에게 하는 소리 같다. 사가정은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여자의 마음을 너무나 모르는 영천군이 한심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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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은 밖으로 나왔으며 객사 뒤로 개천이 흐르고 개천에는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옥수같은 물이 철철 넘쳐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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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엉이 울음소리에 두견새 소리까지 요란하고 한양 북촌과는 판이한 환경이며 바로 그때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고 제일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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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으리, 소첩이 술국을 끓여 놨습니다. 영천군 나으리와 함께 오셔서 드시고 자동선에 가서 송악산 나들이를 떠나시죠!” 알뜰한 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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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우이. 이렇게 하지 않아도 내 너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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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슨 말씀이십니까? 소첩이 좋아서 하는 것인데 나으리는 개념치마소서.” 제일청의 갑자기 울음 섞인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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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무슨 일이 있느냐?” 사가정이 제일청을 품었고 제일청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으며 사가정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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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이 자동선을 설득하여 한양으로 데려가면 사가정도 따라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몰라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 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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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은 제일청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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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천군을 모시고 다니는 친구인지라 올라갔다 곧 다시 내려올 것이니라. 너무 아쉬워하지 말거라.” 사가정이 제일청의 등을 두드려 겨우 진정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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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도 모르고 주책없이 날뛰어 소첩이 밉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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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니라. 나는 네가 귀엽고 예쁘기만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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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청은 예쁘고 귀엽다는 말에 마음이 진정되는지 울음을 그쳤으나 속으로 우는지 어깨가 들썩이다 한참 후에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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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기에게 귀엽다는 얘기는 결코 칭찬이 될 수 없지만 똑같은 말이라도 누구한테 듣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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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가정에게 듣는 예쁘고 귀엽다는 말은 제일청에겐 진정으로 하는 말로 들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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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은 암담하고 시간은 더디간다./

좋은 시절 돌아왔으나 옆은 싸늘하다./

향로 연기는 내마음 수심같이 끊길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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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한 잔 들고 국화를 바라보는데

바람에 흔들리는 여윈 모습이/

문득 내가 아닌가!/

임은 그리움을 부르고 외로움은 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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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저의 '안개 엷고 구름 짙은 시름 가득한 긴 오후에'이고 지금 제일청의 마음이 이청조와 닮은 꼴일 것이며 사내들은 같을 것이라 생각하는 제일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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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고 욕정을 채울땐 그들은 입속의 혀라도 빼줄 듯이 말하다가도 떠나면 남이 되는 것이 기방을 찾는 사내들의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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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청은 사가정도 그들 중의 한 사내일 것으로 생각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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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화에서 계속 -

[출처] 풍류야화 자동선(제17화)|작성자 청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