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25화) - 수목원 온실에서

풍류야화 황진이(제25화)

 

 

초하루에 시작했던 고려미인의 화장은 보름이 되는 날에 절정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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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계수와 헤어진 이후에 송도팔경을 유람하고 진이는 고려미인 화장에 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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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소세양, 이사종, 이생 등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몸이 다양하게 속물화 된 것을 정화하려는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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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의 몸은 돈이 되는 사내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음이나 진이는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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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청루가 즐비한 청교방 거리에 있으나 영혼은 선계(仙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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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기생이 된 것은 사내들의 성화에 못이겨 신분이 바뀌면서 출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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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어느 날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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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래 서녀였으니 사대부집 며느리는 당치않은 일이라며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못이겨 포기하고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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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기생이 된 사연은 또 있는데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상여가 집 앞에 와 멎어 옴짝달싹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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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 속곳으로 상여를 덮어주어 상여를 떠나보냈고 영혼이지만 처녀가 총각의 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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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그후 더럽혀진 몸으로 기생이 되어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삶으로 갔으며 기구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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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려여인으로 곱게 몸단장과 화장을 하는 것은 천마산 지족암서 30년 벽면 수행을 하는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품으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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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그랗고 아담한 얼굴, 자그마한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긴 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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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 없이 가는 눈에 정적인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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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이가 그렇게 화장을 하여 30년 벽면 수행하는 지족선사를 보통의 세상으로 데려오려는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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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진한 화장으로 하루하루를 세상 남자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으나 지족선사는 사람 자체가 다르며청정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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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청정 인간이 원할 여인이 되려고 벌써 열흘째 몸을 꾸미고 승무(僧舞)까지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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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의 승무는 환상적이며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갑, 흰 고깔, 붉은 가사, 양손엔 부채를 들어 마치 선녀의 학춤 같은 춤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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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엔 여전히 고려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고 도성에서부터 고을고을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언행이 아직까지 억불승유 정책이 착근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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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지금 고려여인이 되어 승무를 추면서 지족선사를 뜨겁고 화려하게 품으려 하며 쉽지 않은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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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아름다운 여인의 승무가 무기며 이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청상과부로 변장하여 유혹하려한다. 두 계획이 모두 불교와 연이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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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의 봄은 아름답고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엔 못 미치나 천마산도 계절마다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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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천마산 지족암으로 향하였고 지족선사를 뜨겁고 아름답게 품으려는 속내며 진이 옆엔 옥섬이모가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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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걷자! 이 늙은이는 숨이 차서 못 걷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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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멀어요. 자칫 가기도 전에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해요?” 진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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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선사는 오후 늦게는 매일 지족암 연못가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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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산책하는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려는 생각이며 지금까지 진이가 손을 내밀어 거부한 사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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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족선사도 그러하리라 믿고 지금 걸음을 재촉하고 있으며 산사의 오후는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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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일행이 지족암에 도착했을 때는 지족선사가 산책을 마치고 선방(禪房)으로 들어가려는 찰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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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넙죽 큰절을 하고 제자로 삼아달라고 애원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준비한대로 옥섬이모의 거문고에 맞춰 승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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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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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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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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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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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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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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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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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냥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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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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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린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승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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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진이가 지족선사 앞에서 추었을 '승무'는 더 고혹적 춤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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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장사 없다 하듯이 미녀를 막무가내로 손사례를 칠 사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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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천하일색 진이의 고혹적 유혹을 30년 벽면수행의 지족선사인들 마지막까지 석남(石男)인 냥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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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당나라 헌종 때 위와 같은 역사가 있으며 대 문장가 한유가 불교를 배척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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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潮洲)의 영산 축융봉에 태전선사가 있는데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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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는 대학자답지 않게 울화가 치밀어 명기(名妓)로 이름난 홍련(紅蓮)에게 10일 내에 태전선사를 파계 시키면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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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말하는 미인계(美人計)지만 미인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고 홍련의 치마폭에 태전선사가 써 보낸 시는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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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色)을 관(觀)하고 공(空)을 관리하니, 색이 공일 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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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뜨리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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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본 한유는 감탄하여 태전선사에게 불법(佛法)의 요지를 되려 배웠다는 아이러니 한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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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진이는 위의 역사를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이며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가지고 주인행세 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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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저주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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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이는 사내가 자신의 불두덩 위에서 씩씩대며 황홀경에 빠져 있어도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 정도의 재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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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해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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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에서 계속 -

[출처] 풍류야화 황진이(제25화)|작성자 청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