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질의 차이를 실감 할수 있었다 

 삼양 POLAR 500mm 반사렌즈는 너무 구리다 

그런 렌즈로 어떻게 사진을 찍어? 다뤄 본 렌즈 중에는 최악이다

도와 주세요, 도와 줄게요

세상 좀 살아 보니
사람 사는 곳마다 양념 같은 사람들이 있다.
앞에 나서서 생색내지 않으면서도
꼭 필요한 일을 묵묵히 맡아 하는 사람들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자리를 지키고,
남들이 한발 물러설 때 한 발 앞으로 나서는 사람들이다.

내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는
동기회장을 무려 세 번이나 떠밀려 맡은 친구가 있다.
한 번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이번만 하고 그만해야지" 하면서도 결국 또 맡는다.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도 그런 친구가 있다.
전체 동기회장까지 지냈는데,
예순 중반이 된 지금은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기계과 동기회장을 자청해서 맡고 있다.
차기 회장을 할 사람이 나올 때까지
자신이 맡겠다며, 몇 년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생각해 보면 회장이나 총무 자리가 무슨 벼슬도 아니다.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예전처럼 대단한 명예가 따르는 자리도 아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맡아야 모임이 굴러간다.
모두가 손사래를 치면
그 모임은 조용히 사라질 수밖에 없다.

지난봄 고등학교 기계과 소모임에서
회장인 그 친구가 건배사를 했다.

"도와주세요!"
그러자 회원들이 따라 외쳤다.
"도와줄게요!"
한 번 더.
"도와주세요!"
"도와줄게요!"

술잔을 들고 따라 하면서도 모두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짧은 구호가 마음에 오래 남았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도움받기를 부끄러워하고,
도움 주기는 귀찮아한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서로 돕고 도움받으며 이어져 온 시간이다.
부모에게 도움받아 자랐고,
친구에게 도움받아 버텼고,
가족의 도움으로 오늘까지 왔다.

세상은 능력 있는 사람보다
손 내밀 줄 아는 사람과
그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있을 때 더 따뜻해진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건배사가 생각난다.
어쩌면 좋은 세상은
거창한 구호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와주세요"라는 말에
망설임 없이 "도와줄게요"라고
답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첨부된 사진은 제천 의림지 입니다



150세 시대가 오면

며칠 전 친구들과 술 한잔하는 자리였다.
술이 몇 순배 돌자 한 친구가 말했다.

"친구야, 네가 페이스북에 쓴 불로장생 이야기 읽어봤다.
그런데 인간 수명이 150살이 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순간 말문이 막혔다.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봤어도
정말 150살까지 사는 세상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다음 날 새벽에 일하면서 생각해 보니
처음에는 술자리 농담처럼 들렸지만
꼭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의학과 생명공학의 발전 속도를 보면
머지않아 그런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이 150세까지 산다면
우선 은퇴라는 말부터 사라질 것이다.
여든 살은 한창 일할 나이이고
아흔 살에 이력서를 쓰고
백 살에 재취업 면접을 보는 일도
자연스러워질지 모른다.
지금의 정년퇴직은
인생 중간에 주어지는 휴가쯤 될 것이다.

결혼도 늦어질 것 같다.
지금은 마흔만 넘어도 걱정하지만
그때는 예순 살 총각에게도
"아직 젊은데 뭘 그리 서두르나" 할지 모른다.
백 살 부모가 예순 살 자식의 혼사를 걱정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상속 문제는 더 재미있다.
할아버지 130세, 아버지 100세, 아들 70세가 함께 사는데
재산은 여전히 할아버지 명의다.
환갑을 넘긴 손자가 용돈을 받아 쓰며
눈치를 보는 세상도 올 수 있다.

하지만
수명이 늘어난다고 걱정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식 걱정, 건강 걱정, 돈 걱정을
지금보다 훨씬 오래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나쁜 일만은 아니다.
환갑이 청춘이 되고 팔십이 중년이 된다면
우리 같은 세대에게도 꽤 반가운 소식이다.

한참 상상에 빠져 있다가 문득 현실로 돌아왔다.
150세 시대가 오면
세상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은퇴도, 결혼도, 상속도 그 외 모든 세상구조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반드시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매일 기계 소리 속에서 지내다 보니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150세 시대의 은퇴와 상속 문제까지 걱정하고 있으니,
정작 오늘 출고할 물건부터 챙겨야 하는
내 처지가 우습다.

아마 인간 수명이 150세가 되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내일 걱정을 하며 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도 납기일에 쫓기며
또 다른 미래를 상상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은퇴한 내 친구들은 어떻게 되나?

첨부된 이미지는 이 춘기 동문의 사진을 빌려 올립니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남긴 수많은 명언 중에서
한 편의 글을 올려드립니다.

제목 : 나이가 들수록 하지 말아야 할 8가지

►첫 번째,
인생이 힘들다고 말하지 마라.
고단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저 묵묵히 견디며 극복해 갈뿐이다
인생이 아무리 고달파도 내 18년 유배생활만 하랴.

►두 번째,
공부가 힘들다고 말하지 마라.
한 생애 500권의 책을 읽기도 어려운데
나는 500권의 책을 썼다 그것은 내가 늘 공부하기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사람을 사귈 때 나이를 묻지 마라.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면 될 뿐나이나 특히 지위(地位)는 중요하지 않다.

►네 번째,
성공에 집착하지 마라.
나는 벼슬길에 있던 때보다
유배지에 있을 때 더 큰 이룸이 있었다
인생에서의 깨달음은 성공했을 때 보다는
실패했을 때 더 크게 배울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사람을 의심(疑心)도 너무 믿지도 마라.
난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자라서는 국사를 함께 논의하던
사람들에 의해 유배되었다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마라.

►여섯 번째,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고 한탄하지 마라.
나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어도
스스로 배워서 수원화성을 지었다
아무리 나이 들어도 노력만하면
스스로 배워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일곱 번째,
인생에 여유가 없다고 걱정하지 마라.
나는 유배지에서도 차도(茶道)를 즐겼다.
내 마음에 사심이 없다면
하늘에서 복(福)이 내린다.

►여덟 번째,
누군가를 위해 주었다고 생색내지 마라.
인간관계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면
진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내가 애써 누군가가 잘 되었어도
생색(生色)내지 않는 것이다.
ㅡㅡ
오늘도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삼양옵틱스 POLAR MC MIRROR 500mm F8 반사 렌즈를 사용해 보았다 

화질이 구리다 뿌였게 나온다 좀더 깨끗한 사진으로 둔갑 시키기 위해 부분대비를 좀 더 올리고 많은 부분을 손대어 

뿌옇고 흐린 부분을 걷어 내어야 만 아래와 같은 사진을 얻을수 있다

정말 개 구리다 어떻게 해야 선명한 사진을 얻을수가 있지 어둡고 흐려도 너무 흐리다

이 렌즈를 구입할때는 반사렌즈라 작고 간편해도 500mm 망원의 효과가있다고 믿었는데 수동이라 조그만 흔들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쳐 촛점이 또렷한 사진을 얻기위해서는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도 해 보고

안개가 낀듯 흐린 사진을 어떻게 하면 조금더 밝고 선명한 사진을 얻을수 있을지 많은 탐구와 노력이 필요할것 같다

그러려니

어느 주말이었다.
친구가 공장에 놀러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했다.
"이 사장은 좋겠다.
글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살아서."

무슨 뜻인가 싶어 물었더니,
내가 쓰는 글을 읽다 보면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은 다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산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지 못한 말이 더 많았다.
어떤 말은 삼켰고, 어떤 말은 참았다.
반대로 꼭 참았어야 할 말은 홧김에 내뱉기도 했다.
형제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쏟아낸 말들이 쌓여
어느덧 십 년 넘게 서먹한 관계가 되어 버렸다.

몇 년 전에는 고등학교 동문 밴드에서
격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모두가 자기 말이 옳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때였다.

그때 한 선배가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세상 살면서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러려니 하고 봐야제."

그때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하고,
옳고 그름은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려니'는 체념이 아니었다.
상대를 이해할 수 없더라도 인정하는 여유였고,
굳이 이길 필요 없는 싸움을 내려놓는 지혜였다.
세상을 내 기준에
애써 맞추려 하지 않는 마음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일 것이다.
내 행동에 사정이 있듯
남의 행동에도 이유가 있을 테니까.

요즘은 예전보다
"왜 저럴까?" 대신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을 더 자주 하게 된다.

물론 아직도 쉽지는 않다.
속이 상할 때도 있고
한마디 따지고 싶은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막걸리잔을 들고 웃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러려니 하고 봐야제."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나씩 줄여 가며 사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람을 잃지 않는 법을
배워 가는 것이라는 걸.



손이 부족한 날

조립 일을 하다 보면
사람 욕심이 끝이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특히 일이 몰리는 날이면 더 그렇다.
조립해야 할 부품은 산처럼 쌓였는데
손은 달랑 두 개뿐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손이 네 개만 있었어도 내일은 조금 여유로울 텐데…”

한 손으로 볼트를 잡고,
다른 손으로 전동드라이버를 돌리다가 보면,
꼭 그 순간 필요한 공구는 저 멀리 있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진화론을 의심하게 된다.
인간은 왜 문어처럼 진화하지 않았을까.

그날도 정신없이 조립하던 중이었다.
공장에서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고양이 한 마리가
슬금슬금 나타났다.
녀석은 꼭 감독관처럼 주변을 어슬렁거리더니,
내 작업대 위 둥근 부품 하나를 앞발로 툭 건드렸다.

“야! 안 돼!”
말릴 틈도 없었다.
부품은 “때구루루~”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하필 부품 보관대 밑으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꼭 목표 지점이 있는 것처럼.

긴 자를 넣어 끌어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결국 바닥에 드러누워 양팔을 최대한 뻗었다.

그 자세가 마치 겨울잠 자다 나온 곰 같았다.
손끝이 간신히 닿을 듯 말 듯한 순간,
나는 또 생각했다.
“아, 이럴 땐 손이 세 개였으면…”

그런데 곧 이상한 상상이 이어졌다.
만약 손이 세 개라면?
하나는 부품 잡고, 하나는 드라이버 돌리고,
남은 하나는 뭘 할까.
아마 괜히 끼어들어 방해만 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세 손이 서로 먼저 하겠다고 엉키면
지금보다 더 복잡할 수도 있다.

생각은 머리 쪽으로 번졌다.
머리가 두 개라면 어떨까.
한쪽은 “빨리 조립하자!” 하는데
다른 쪽은 “커피부터 마시자!” 하며 싸울 것이다.
성격까지 다르면 더 심각하다.
한 머리가 삐쳐서 파업이라도 선언하면
출근길부터 난리다.

다리도 세 개면 문제다.
걷는 폼이 영 어색할 것 같다.
술 취한 오징어처럼 비틀거리다
결국 신발값만 두 배로 나갈지도 모른다.

그제야 웃음이 났다.
인간 몸이라는 게 참 절묘하다.
손 두 개, 발 두 개, 머리 하나.
평소에는 부족해 보여도
결국은 가장 알맞게 배치된 셈이다.
욕심은 늘 “하나만 더!”를 외치지만,
조물주는 이미 계산을 끝내 놓은 모양이다.

그날 겨우 꺼낸 부품을 닦으며
나는 고양이를 한 번 노려봤다.
녀석은 태평하게 하품만 했다.

아마 이놈의 고양이도 속으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인간은 혼자서도 참 바쁜 동물이구나.”



착시(錯視)

이맘때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 된다.

거래처가 많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도 발주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공장은 쉬는 날이 없고,
새벽과 밤의 경계는 점점 흐려진다.

부품 하나하나의 우선순위를 머릿속에 자동으로 배열하며
나는 마치 전쟁 지휘관처럼 일정을 밀어붙인다.
콤프레샤 소리와 전화벨이 뒤섞이면
세상 전체가 잠시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착각마저 든다.

그 모습을 본 지인들은 말한다.
“형님은 돈 많이 버시겠어요.”

그럴듯한 말이다.
나도 잠시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착시는 오래가지 않는다.

몇 달만 지나면 공장은 다시 조용해지고,
기계는 입을 다문 듯 멈춰 선다.
그때 마이너스 통장을 열어보면
숫자는 언제나 익숙하게 제자리로 돌아가 있다.

아니,
어쩌면 더 정확히는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나다.

통장에 잠깐 숨이 붙으면
나는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으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처리한다.
땅을 파고, 오르기 전에 소재를 사고, 금형을 손본다.
말하자면 ‘미래의 나’에게 외상 청구서를 한 장씩 떠넘기는 셈이다.

결국 돈의 문제가 아니라 착시의 문제다.

번다고 느끼는 순간 이미 쓰고 있고,
여유롭다고 믿는 순간 통장은 조용히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이제는 안다.

내 공장은 늘 바쁜 곳이 아니라
바쁨과 한가함이 번갈아 찾아오는 계절을 가진 곳이라는 것을.

그리고 통장은 재산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라,
희망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나를 시험하는 거울이라는 것을.

그래서 오늘도 밀려드는 주문서에 들뜨지 않으려 한다.
착시는 눈을 속이지만,
세월은 결국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까치밥

반세기 넘게 세상을 살아보니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리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섰으니
기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한 가지는 조금 아쉽다.
살림은 넉넉해졌는데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더 바빠지고,
인심은 예전만 못한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초겨울이면 감나무 끝에 홍시 몇 알이 남아 있는 모습을 본다.
사람들은 그것을 '까치밥'이라 부른다.
모두 따 가지 않고 새들이 먹을 몫을 남겨 두던 옛사람들의 배려다.
감 몇 알만 남아 있어도 겨울 풍경은 한결 따뜻해 보인다.

누군가를 위해 조금 남겨 두는 마음은
사람만의 미덕이 아닌지도 모른다.

퇴근길이면 나도 공장 밖 길고양이들을 위해
사료를 수북이 담아 놓는다.
그렇게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넘었다.

새벽에 출근해 보면 사료통에는 늘 한 줌쯤 사료가 남아 있다.
처음에는 '요즘 고양이들도 다이어트를 하나?' 싶었다.

하지만 오래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다.
먼저 온 녀석이 혼자 다 먹지 않고,
뒤늦게 올 녀석 몫을 남겨 두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어머니가 떠올랐다.
늦게 들어올 가족을 위해 밥 한 그릇을 덮어 두시던 모습.
말 한마디 없었지만
그 밥 한 그릇에는 기다림과 사랑이 담겨 있었다.

길고양이를 돌본 지 10년.
한낱 미물이라 여겼던 녀석들에게서
오히려 사람 사는 도리를 배우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만난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계산은 사람이 더 잘하는 것 같다.
내 몫은 끝까지 챙기지만,
남의 몫을 남겨 두는 일에는 서툴다.

감나무 끝에 남겨 둔 까치밥도,
사료통에 남겨진 한 줌의 사료도
결국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많이 가지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조금 남겨 둘 줄 아는 마음에 있다는 것을.

까치밥을 남긴 것은 감이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를 위해 조금 남겨 둘 줄 아는 마음.
그 넉넉한 마음만은 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첨부된 이미지는 이 춘기 동문의 사진을 빌려 올립니다



그게 참 안되네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좀 엇갈렸다.

글은 그럭저럭 쓰는데, 말은 영 시원찮다.
경상도에서 태어나 사투리를 평생 달고 살았으니 억양도 투박하다.
친구들과 술 한잔하며 떠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게 여러 사람 앞에만 서면 혀가 먼저 긴장한다.

25년 전이었다.
구미의 한 공과대학에서 산업체 초빙 강사로 강의를 부탁받았다.
며칠을 공들여 원고를 준비했다.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토씨 하나까지 적어 갔는데,
막상 강단에 서니 원고를 읽는 내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학생들보다 내가 더 졸릴 지경이었다.

쉬는 시간에
주최 측 교직원이 머뭇거리며 다가오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내가 강의를 얼마나 못 했는지
"이사님, 원고는 그만 읽으시고 평소 말씀하시듯 편하게 해 주세요.
공장 이야기가 더 재미있습니다."

순간 얼굴이 화끈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잘됐다!' 싶었다.
원고를 읽는 나도 답답했는데, 학생들은 오죽했을까.

'잘됐다. 내가 무슨 교수라고.'

그다음 시간부터는 원고를 접었다.
학생들이 묻는 말에 답하고,
공장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실패담을 이야기했다.
사투리는 여전했지만,
학생들도 대부분 경상도 사람이었다.
잘 알아들은 척을 해 주니 용기가 났다.

신기하게도 강의는 무사히 끝났다.

몇 달 뒤 학교에서 또 연락이 왔다.
이번에도 강의를 부탁한다는 것이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결국 또 한 번 강단에 섰다.
돌이켜 보면 참 신기하다.

한때는 영업도 했다.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기계도 팔고, 사람도 만났다.
그런데도 말솜씨는 끝내 늘지 않았다.

지금도 친구들이 놀린다.
"야, 너는 글은 그렇게 잘 쓰면서 말은 왜 그러냐?"

맞는 말이다.
글은 몇 번이고 고칠 수 있지만
말은 그럴 수 없어서 그런지,
나는 아직도 글이 더 편하다.

한때는 전국을 돌며 영업도 했는데.
그게 참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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