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길상(如意吉祥)

 

항상 길(吉) 하고 상서(祥瑞)로운 좋은 일들은 자기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질 수 있다고 믿으시면 반드시 갖게 됩니다.

믿음은 산을 움직이게 하고 자신에게 무한한 힘을 공급하여 소망하는 걸 실현시켜 줍니다.

믿음과 신념이 쌓이게 되면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법칙처럼 됩니다.

 

"자기암시(自己暗示)"

즉,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기도, 소망을 간절히 기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믿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데일 카네기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의 일입니다.

지금까지 배운 최대의 교훈을 묻는 방송 진행자의 말에 카네기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면 어떤 인물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당신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생각을 바꿈으로써 인생을 바꿀 수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행복을 생각하면 행복해지고, 비참한 생각을 하면 비참해지고,

병적인 것을 생각을 하면 정말 아프고, 실패를 생각하면 정말 실패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보기 나름입니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말하는 생각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것은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 나름입니다.

어느 날이든 오늘이 가장 아름답고 가슴 벅찬 날이 되기를...

- 좋은 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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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청래의 개소리》
☆"대통령은 대법원이 뽑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

오늘 대법원이 찢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거의 만장일치로 죄인 낙인을 찍어 파기환송하는 걸 보면, 찢재명과 그 패거리들의 오만방자한 꼬라지를 대법관들도 도저히 못 봐주겠든 모양이다.

그런데 오늘, 찢재명의 개 정청래라는 놈이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 "대통령은 대법원이 뽑지 않는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라고 짖었다.
멍청한 개청래야 대법원이 대통령을 뽑는 것이 아니라 대법원이 국민에게 찢재명은 안 된다고 한 것 아니겠냐?

대법원에서조차 명확히 죄가 있다고 하는 찢재명 따위의 다중 범죄자를 국민이 이제 대통령으로 뽑겠나?
대통령으로 뽑힌들 불소추 다툼과 재판받느라 대통령 노릇 제대로 할 것이며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있을까?
굳이 이런 복잡하고 골치 아픈 놈을 대통령 만들 필요가 있겠냐? 지금에라도 선수교체 하거라
찢재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문부호다.

개청래 따위가 짖는 것을 들을 것도 없지만, 그 짖는 소리가 겁먹은 똥개가 왈왈 짖는 소리로 들려 차라리 애처롭다.
이 녀석, 엊그제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듯이 "대한민국 자랑스런 대통령"이라고 지껄이더니 이제는 또 국민 어쩌고 지껄이니 멍청래 이 녀석의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 찢재명, 멍청래 안 보고 사는 세상은 언제나 오려나?

대법원이 이번 판결의 생중계를 허용 한 그것은 소상한 법리적 설명을 통해, 선동에 내둘리고 있는 무지한 국민을 깨우치도록 국민 계몽을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찢재명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될 자격이 없다는 것을 告하고 국민을 일깨우는 판결이었다.

이번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이 우리 국민들이 깨몽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이재명은 안된다.
(2025. 5. 1 박종판)



(꿈나무를 심는 마음으로)

지난 두 달 동안 시골 땅을 누비며
수백 그루의 나무를 또 심었다.

해마다 심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일부는 죽고
또다시 나무를 심었다.

손에 흙이 밴 채로 하루를 보내면서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단순히 나무를 심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무언가 더 큰 것을 심고 있는 걸까?

나무를 심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리 대단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
구덩이를 파고
묘목을 넣고
흙을 덮으면 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뿌리가 닿을 땅을 골라내고
바람의 방향을 헤아리고
물이 고이지 않을 곳을 찾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게다가
땡볕과 비바람
벌레와 돌 틈 속에서 자라는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그 무게는 단순한 삽질 그 이상이다.
그리고
틈틈이 나무에 물 주고
관리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주말에 나를 도와준다고
친구들이 시골로 같이 내려왔다.

함께 흙을 파고
묘목을 심으며 친구가 내게 물었다.
"이 나이에 무슨 개고생을 하느냐?“

그 말에 나는 말 없이 하늘을 가리켰다.
지금은 작고 여린 나무지만,
이 땅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언젠가 저 하늘을 향해 가지를 길게 뻗어
누군가에게
그늘을 내어주는 큰 나무가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사실은
이 나무들은 단지 풍경을 위한 것도
수익을 위한 것도 아니다.
나는 이 나무들 안에 나의 꿈을 담았다.

지금은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싹이 트고 줄기가 자라고
해가 갈수록 무성해지는 그 과정을 지켜보는 건
마치 내 삶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다.

나무를 심는다는 건
기다림의 다른 이름이다.
묵묵히
조급하지 않게
하지만 끝내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 마음으로
땀 흘려 심은 나무들이 다 자라날 때쯤이면
나 또한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나무를 심는다.
그건 나의 꿈을 심는 일이고,
내일을 살아갈 용기를
뿌리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언가 이룬것 같지도 않고
뒤를 돌아보면 허무하고 앞을 보면
막막하다고 느낄때 그 질문은 조용히 마음을 파고든다

하지만 그 어떤 삶도 헛되지 않다^^

눈부신 성취가 없더라도 조용히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그 인생은 이미 의미를 품고 있다

어떤이는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어떤이는 조용히 누군가의 아침을 지켜준다

어떤이는 수없이
넘어지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살아가고
어떤이는 고요한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이 모든 삶의 조각들이 모여
우리는 '인간' 이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해간다

삶의 가치는
눈에 보이는 성과나 남의 인정을 통해서만 측정되지 않는다

혼자 견뎌온 밤
말없이 건넨 따뜻한 눈빛..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내딛은 한걸음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이라는 존재의 깊이를 더한다

그러나 기억하자^^

지금 숨을 쉬고있는 이 순간도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쓰는 그 마음도..

다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바로 그 이유만으로도
당신의 인생은 충분히 소중하다

5월의 첫 불금일^^

서로의 마음을
녹여주는 행복한 날 되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평균 올리기



가끔 인생에서 숨이 막힐 듯한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어느새 잘못된 일처럼 여겨지고,
있는 그대로의 내가 왠지 매우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특히 결혼을 준비할 때면
외모, 나이, 재산, 학력, 직업, 연봉뿐만 아니라
부모님 노후 준비까지 따지는 것이 기준처럼
여겨지는 게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소박한 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꾸만
평균을 위로 끌어올리고자 합니다.
마치 그것이 모두의 기준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보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가
가장 중요한 현실이 되고,
자신을 바라보는 눈높이도 점점 더
높아만 지게 됩니다.





평균은 절대적인 숫자나 기준이 아닙니다.
억지로 기준을 높이려 애쓰지 마세요.
지금의 나, 지금 나의 일상도 충분히 의미 있는
평균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평범한 하루가 바로,
세상을 이루는 가장 소중한 평균임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다른 사람들의 비현실적 기준에
당신 자신을 끼워서 맞출 수도 있겠지만,
이를 무시하고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집중할 수도 있다.
– 제프 자크 –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다

속담에 ‘걷는 사람은 나귀 탄 사람이 부럽고, 나귀 탄 사람은 말 탄 사람이 부럽고, 말 탄 사람은 견마 잡힌 사람이 부럽다고 했다. 
요즘 말로 걸어 다니는 사람은 자전거 탄 사람이 부럽고, 자전거 탄 사람은 오토바이 탄 사람이 부럽고, 
오토바이 탄 사람은 자가용 탄 사람이 부럽고, 자가용 탄 사람은 기사 둔 사람이 부럽다는 말이다. 
​사람은 병이 들어 보아야 비로소 인생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무엇에 감사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이르기를 “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나니 병고로서 양약을 삼으라는 말도 그런 맥락이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의 가족들은 일반 병실로 가도 좋다는 의사의 지시가 떨어지길 학수고대하며 피를 말리는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그러다가 일반 병실로 옮기게 되면 마치 완쾌라도 된 듯이 기뻐하다가 
그것도 잠시, 일반 병실에 옮기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 중환자실을 벗어난 기쁨은 사라지고,
또다시 퇴원해도 좋다는 의사의 말을 기약 없이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견뎌야 한다. 
환자들의 회복 속도는 저마다 다르다.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옮겨온 환자인데 어느새 자기 손으로 식사를 하는가 하면, 
몇 달째 있는 환자인데도 아직도 코 줄로 미음을 넣어주고 있다. 
코 줄로 미음을 주입받는 환자의 가족은 미음을 숟갈로 떠받아먹는 환자를 보며 “얼마나 좋겠느냐?"라며 부러워하는지. 
그런가 하면 미음을 수저로 떠 넣어주는 환자의 가족은 자기 손으로 밥을 먹고 있는 환자를 보면서
“우리는 언제 저렇게 자기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며 부러워한다. 
저마다 상태가 다른 환자를 간병하고 있는 가족들은 환자가 식사를 하는 것, 
대소변을 보는 것, 그런 일상적인 동작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한다. 
지금 그들에게 지금은 누가 아파트 몇 평에 살고 있는지, 배기량 얼마 짜리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지는 관심에도 없다. 
​늘 그런 비교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우리였는데...
음성 꽃동네 입구에는 커다란 비석이 서 있고 거기에 이런 글이 새겨져 있다.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꽃동네의 창설자이신 오웅진 신부의 묵상 글이라고 한다. 
중국에는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다”라는 말이 있다. 
뇌경색으로 쓰러졌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어려운 재활치료 끝에 다시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말의 의미를 절감하리라. 
이웃 블로그에서 가슴에 와닿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생각되거든/ 한겨울 새벽 시장에 나가 보세요./ 
손발 얼리며 열심히 사는 그들을 보면/ 당신이 힘든 것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면/ 병원에 가서 중환자 가족을 만나봐요./
환자를 위한 그들의 애타는 염원을 들어보면/ 당신이 지금 살아있음에 감사할 것입니다.//
새벽 시장에 가보지 않아도, 중환자실에 가보지 않아도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신의 은총입니다.”라는 
이 말 한마디만 조용히 묵상해 보아도 지금까지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며 살아왔다는 것을 반성하게 됩니다. 
오늘 내가 어제와 같음에 그리고 온 가족이 무탈함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된다. 
“제 손으로 밥 떠먹고, 제 발로 걸어 다니고, 스스로 대소변 볼 수 있다면 더는 바라지 말아요." 


- 좋은 글 중에서 -

연분(緣分)과 인연(因緣)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전’(玉丹春傳)에 한 마을에 김진희와 이혈룡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을 하였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 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에 평안 감사가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가 만나 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에서 평안 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그를 물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였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혈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해 혈룡을 구하여 그녀의 집으로 데려가 가연(佳緣)을 맺는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함께 보살펴 준다. 
그후 이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서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서 걸인 행색으로 평양에 간다. 
연광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던 김진희가 이혈룡이 다시 찾아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두를 하여 김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렸고 그뒤 이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하고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혈룡과의 친구 간 우애를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말로가 매우 비참해졌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 게 아니고 푸는 것입니다. 
일단 끊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며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습니다. 
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연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자의 몰상식한 소치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고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맙니다. 
공자는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라고 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뜨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같은 경우에 맞닥뜨리게 돼 끝내는 허망에 빠져들고 맙니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하나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숱한 인연과 연분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잠시의 소홀로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쪽 상대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폐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과 인연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不學無識)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연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하면서 풀어 나가는 지혜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오늘도 건강관리 잘 하시고 행복한 날들 기쁨 듬뿍  은총 충만하세요. 사랑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틈을 만들어 주자



고대 페르시아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고급 양탄자입니다.

페르시아의 장인들은 양탄자를 만들 때
한 올 한 올 손으로 만들어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정교한 문양과 복잡한 기하학적 디자인,
자연을 모티브로 한 패턴이 특징이며,
중세 시대부터 왕실과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예술과 문화의 결정체에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흠이 있기 마련입니다.

흥미롭게도 페르시아 양탄자에서 발견되는 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양탄자를 제작하던 장인이
일부러 남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그들의 장인 정신과 철학이 담긴
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페르시아의 흠(Persian Flaw)'이라고
부릅니다.





틈이 있어야
햇살도 스며들 수 있듯이
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고,
이미 들어온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결국 틈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창구와 같습니다.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도 마세요.

그 빈틈 사이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내 삶을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 생텍쥐페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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