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자동선(제15화) - 배실공원에 핀 매화

풍류야화 자동선(제15화)

 

 

두 사내와 한 여자는 송도 유람에 나섰고 사가정의 제의로 성사되었으며 자동선은 술과 안주를 챙겨서 나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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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은 영천군에게 나귀를 탈 것을 권하고 싶었으나 자동선에게 아직 효령대군의 자제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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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장한 사내에게 나귀를 타라고 여자인 자동선에게 양보를 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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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송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송악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고 자동선이 길라잡이며 나귀 위의 자동선은 더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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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이 고삐를 잡고 영천군이 뒤따랐으며 제일청도 자동선이 불러서 함께 동행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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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하며 여름이지만 오전에는 송도의 날씨가 시원하고 사가정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으며 제일청이 따라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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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청은 비록 이젠 노기(老妓)로 옥골선풍 헌헌장부의 발길은 뚝 끊겨 청교방거리 뒤켠에서조차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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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인간미가 넘쳐 옛정을 못잊어 심심치 않게 사내들이 드나들었고 사가정도 그 중의 한 사내며 세월의 무게가 실린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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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도 준치라고 어찌 보면 한창 때는 자동선을 뛰어넘는 미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에 밀려 자동선 손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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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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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방 거리에서 제일청하면 오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저기 저 집이요!” 라고 했는데 지금은 철지난 꽃으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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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가정에겐 제일청이 철 맞아 한창 피어난 꽃처럼 보였으며 영천군은 나귀에 탄 자동선의 동태만 살피고 사가정은 제일청의 속삭임에 정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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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으로 가는 길엔 왕윤사(王輪寺)가 있으며 울창한 삼림에 둘러싸인 왕윤사는 한 때 수백명의 스님들이 거주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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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은 대웅전과 초라한 건물 몇 채만이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으며 대웅전에 닿자 자동선이 나귀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대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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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은 황량하고 중은 보이지 않네/ 황금 부처님만이 뉘연히 앉아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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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탑에 쌓인 먼지를 바람이 쓸어가고/ 어두운 창가에 달이 등불처럼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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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재 성현(慵齋 成俔)의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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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이 깜짝 놀라 “네가 어떻게 내 친구 성현의 시를 알고 있었느냐?”라며 자동선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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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나으리는 풍류엔 뛰어난데 기녀들을 너무 낮게 보시는 경향이 있으시네요? 앞으론 그렇게 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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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했다간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사옵고 기녀들을 길가에 핀 한 떨기 꽃으로 보시고 꺾었다 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은 이젠 버리셔야 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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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선의 단호한 말투에 천하의 풍류객 사가정도 움찔하였고 어설피 행동했다간 영천군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 같아 언행에 신중을 속으로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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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선은 단순히 미색으로만 보았는데 높은 인격과 풍부한 학식을 갖추어 웬만한 사대부는 우습게 볼 학기(學妓:학식이 높은 기생)가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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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도 성현의 시를 읊는 자동선을 보고는 침착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사내들은 충동적이고 본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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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사회에서 사냥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태적 본능이 시대가 바뀌어도 본능은 바뀌지 않으며 시대와 환경에 발전, 진화하여 언행도 바뀔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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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내와 두 여자는 짝을 이뤄 어느새 귀산사(龜山寺)에 이르렀고 왕윤사에 공민왕이 자주 들린 것과 같이 귀산사에 충렬왕이 들려 국태민안의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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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깊어 갈수록 송악산 절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울창한 나무 위에선 꾀꼬리들이 쌍쌍을 이루어 노래 부르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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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영천군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고 사가정은 어떻게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했으며 마침 널따란 바위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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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청아! 우리는 봉우리로 올라가 정상을 보자꾸나! 두 분은 여기서 잠시 쉬었다 올라오시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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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가정은 제일청의 손을 잡고 달리듯 정상을 향해서 발길을 재촉했으며 영천군도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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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선아, 사가정의 말대로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자! 내 어젯밤에 한숨도 못자 피곤해서 더는 못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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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는 바위에 주저앉아 이인로(李仁老)의 '산거'라는 시를 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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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가고 꽃은 아직 남아 있는데/ 하늘은 맑고 골짜기는 그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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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견새 소리가 한낮에 들려오니/ 여기가 살기 좋은 곳임을 알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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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듯 자동선 앞에서의 영천군도 도연명이 오얏마을에서 심정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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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은 산봉우리에서 영천군을 기다리다 못해서 술병을 들고 다시 바위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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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분께선 서로 보기만 하고 뭘 하고 계십니까?” 젊은이들이 만났으면 한바탕 불꽃을 튕겨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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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선은 사가정의 말에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세요? 이 대명천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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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가정이 누구인가! 한 치도 물러설 리 없다. ”허허 하늘이 맺어준 배필 같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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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정은 말과 동시에 술잔을 영천군에게 건넸으며 연천군은 마침 목이 탈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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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자동선이 눈치도 빠르고 웃어른을 모실 줄 아는 현숙한 여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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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 아느냐? 세종임금의 손자이시고 효령대군의 자제분이시다. 정성껏 잘 모셔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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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임금의 손자라는 사가정의 말에 깜짝놀란 듯 자동선이 발딱 일어나서 큰절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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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어르신을 몰라 뵈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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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니라. 내가 밝히지 않은 죄가 더 크니라!” 옆에 있는 사가정의 표정이 밝아졌고 영천군이 그 어느때 보다도 표정이 밝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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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까지만 해도 피로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런 기미가 온데간데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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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군은 자동선이 따라준 술잔을 받아 마시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아서 산봉우리를 향해 뛰듯 걸었고 산봉우리에 올라가선 무슨 일을 결심한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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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화에서 계속 -

[출처] 풍류야화 자동선(제15화)|작성자 청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