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범죄당사자와 증인들을 전부 제외하면서까지 강행중인 국정조사가 화제다
명백한 증거와 법리에 따라 3심에서 결정난 판결임에도, 불법 자금의 흐름을 추적한 검사의 이름과 얼굴만 광장에 내걸린다. 뱃지 단 권력자들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판결"이라며 사법부를 향해 몽둥이를 흔들어 대고, 맹목적인 지지자들은 우르르 몰려가 댓글로 인민재판을 벌인다.
그들은 재판을 멈추고 판결을 뒤집기 위해 다수의 힘으로 법을 짓밟으면서, 그것을 당당하게 '민주주의'라 부른다. 다수가 원하면 그것이 곧 법이고 진리라는 이 얄팍하고 폭력적인 맹신.
머릿수와 선동만으로 상식을 찢어 죽이려 드는 이 역겨운 촌극은 인류 역사에서도 여러차례 반복됐다. 2,500년 전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의 한복판에서 벌어졌던, 가장 멍청하고도 소름 돋는 '합법적 암살극' 한 편을 틀어줄 테니까.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는 '도편추방제(Ostracism)'라는 제도가 있었다. 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는 정치인을 막기 위해, 시민 6천 명이 도자기 파편에 이름을 적어 내면 그 사람을 10년간 아테네에서 쫓아내는 제도였다. 초기엔 훌륭한 민주적 안전장치였지만, 이 제도는 곧 권력욕에 미친 선동가들이 대중과 팬덤을 조종해 눈엣가시 같은 정적을 합법적으로 숙청하는 '다수결 사냥터'로 타락했다.
당시 아테네에는 아리스티데스(Aristides)라는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이었고, 뇌물을 거부하며 오직 헌법과 원칙대로만 재판과 행정을 처리해 시민들로부터 '정의로운 자(The Just)'라는 칭호를 받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원칙주의자는 포퓰리스트들에게 가장 껄끄러운 존재다. 대중에게 달콤한 거짓말을 팔며 인기를 끌던 테미스토클레스는, 사사건건 원칙을 들이미는 아리스티데스를 쫓아내기 위해 지지자들을 선동해 도편추방 투표를 열었다.
가짜 뉴스와 선동에 세뇌된 군중들은 광장에 모여 아리스티데스의 이름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대기 시작했다.
이때, 인류 민주주의 역사가 기록된 이후 가장 씁쓸한 장면 중 하나가 연출된다.
글을 쓸 줄 모르던 웬 시골 농부 하나가 도자기 파편을 들고 쭈뼛거리며 다가와, 마침 옆에 서 있던 한 남자에게 부탁했다. "여보시오, 내가 글을 몰라서 그러는데 여기에 '아리스티데스' 이름 좀 적어 주시오." 공교롭게도 부탁을 받은 그 남자는 아리스티데스 본인이었다.
아리스티데스는 자신의 이름을 쫓아내려는 농부에게 조용히 물었다.
"그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해를 끼쳤소? 왜 그를 추방하려 하십니까?"
농부의 대답은 2,500년의 시간을 관통해 오늘날 맹목적 팬덤의 뇌 구조를 완벽하게 해부해 낸다.
"아니요, 난 그 사람 얼굴도 본 적 없소. 근데 사방에서 맨날 저놈을 '정의로운 자'라고 부르는 게 너무 꼴 보기 싫고 짜증 나서요."
아리스티데스는 아무 말 없이 도자기 파편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농부에게 건네주었고, 결국 아테네에서 쫓겨났다.
증거나 팩트, 법리는 1그램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대중의 비위를 거슬렀다는 감정, 그리고 선동가들이 심어준 맹목적인 적대감만이 작용했다. 이것이 바로 "다수가 원하면 그것이 곧 정의"라고 맹신하는 대중 민주주의가 중우 정치(Mobocracy)로 흑화할 때 벌어지는 참담한 결말이다.
자신들의 범죄를 수사하는 자들을 '적폐'로 규정하고, 법전 대신 '국민의 눈높이'라는 정체불명의 잣대를 들이밀며 검사의 목에 탄핵의 칼을 들이대는 자들. 그리고 그 권력자들의 헛기침 한 번에 우르르 몰려다니며 도자기 파편(댓글과 시위)에 검사의 이름을 적어대는 맹목적인 군중들.
"저 수사관이 죄를 입증했는가?"라는 팩트 체크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우리 대통령님을 괴롭히는 저놈이 정의로운 척 폼 잡는 게 꼴 보기 싫다"는 그 천박한 감정만이 여의도와 서초동을 지배하고 있다.
똑똑히 기억해라. 법과 원칙을 찢어버리고 군중의 함성으로 재판을 대신하는 국가는, 반드시 그 다수결의 몽둥이에 의해 스스로 자멸하게 되어 있다. 아리스티데스를 쫓아낸 아테네가 결국 선동가들의 선심성 정책에 휘둘리다 스파르타에 무릎을 꿇고 멸망한 것처럼 말이다.
2,500년 전 그 멍청한 농부의 환생들이 활보하는 이 봄날의 풍경이 유난히도 서늘하고 역겹다.
[기록]
I do not know him," the man replied, "but I am tired of hearing him everywhere called 'The Just'.
[해석]
농부는 대답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릅니다. 하지만 어디를 가나 그를 '정의로운 자'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에 넌더리가 났소."
-플루타르코스(Plutarch), 『영웅전(Parallel Lives)』 <아리스티데스 편> 발췌<박주현님의 페북에서 퍼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