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과 별 하나



10년 전 어린 딸아이를 데리고 단둘이서
시골에 있는 부모님 댁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땅거미가 지면서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동안 창가에 풍경을 보던 딸아이는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물었습니다.

"아빠, 낮은 환하니까
해님이 혼자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달님은 캄캄한 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 것 같으니까 반짝반짝 별님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먹물이 번진 듯이 캄캄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어린 딸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창밖을 바라보니
밤하늘에는 쪽배를 닮은 초승달이 걸려있고,
그 옆에 환한 별이 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래, 그런가 보네.
달이랑 별이 무섭고, 외로우니까
같이 있는 건가 봐."

그리곤 이내 나의 어깨에 기대 잠들어 버린
귀여운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리도 마찬가지겠다.
서로 외롭지 말라고,
함께 있는 건가 보다!'





인생의 어두운 순간에도
밝은 희망을 그릴 수 있는 건
당신이라는 별이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달과 별이 된다면,
어떠한 순간에도 우리는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그림자를 두려워 말라.
그림자란 빛이 어딘가 가까운 곳에서
비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 루스 E.렌컬 –

뿔과 뿌리는 원래 하나다



우리말에서 '뿔'과 '뿌리'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두 단어는 비슷한 글자와 발음을 가졌지만,
전혀 다른 방향성을 지닙니다.

뿔은 위쪽을 지향하며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뿌리는 아래쪽을 향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탱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두 단어의 관계는
우리 삶과 믿음을 돌아보게 합니다.
현대 사회는 뿔처럼 위로만 뻗으려는 태도를 지향합니다.
누가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은 성취를 이뤘는지가
가치 있는 사람의 기준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뿔과 뿌리가 같은 어원에서 왔다는 사실은
이 둘이 분리된 것이 아니라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뿔이 아무리 화려하고 높다 해도
뿌리가 말라버린다면 결국 모든 것은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뿔과 뿌리가 균형을 이루는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이며, 흔들리지 않는
삶일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
쉬지 않고 미세하게 균형을 맞춰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들에 얼마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 일레인 스캐리 –

 

커피의 심장



요즘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카페 메뉴를 보면 정말 다양한 커피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양이 적고, 진하며, 쓴맛이 강해
쉽게 손이 가지 않는 커피가 있습니다.

바로 에스프레소입니다.
에스프레소는 그 자체로는 선뜻 마시기
어려울 수 있지만, 모든 커피의
기본이 되는 존재입니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넣으면 아메리카노가 되고,
따뜻한 우유를 부으면 카페라테가 됩니다.
우유 거품을 더하고 계핏가루나 초콜릿 가루를 얹으면 카푸치노가,
캐러멜시럽을 넣으면 캐러멜마키아토가 탄생합니다.
심지어 초콜릿 시럽을 넣으면 카페모카도 됩니다.

이렇게 다양한 커피 메뉴의 출발점이
바로 에스프레소입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는 '커피의 심장'이라
불립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기본이 되는 것들이 있는데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고, 단조롭고,
심지어는 너무 힘들어서 꺼려지는 것들이지만,
그 기본이 없이는 그 어떤 성과도
낼 수 없습니다.

기본을 충실히 하면 그 위에
무엇이든 쌓아 올릴 수 있습니다.
에스프레소가 다양한 커피의 시작점이 되듯,
우리의 기본 또한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작지만 진한, 기본의 힘을 믿어보세요.
그 안에 달콤하고 창의적인, 놀라운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본립도생(本立道生)
기본이 바로 서면, 나아갈 길이 보인다.
– 논어 학이 편 –

작은 것에 감사해야 한다



19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인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는
노르망디의 작은 마을 그레빌의 농가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했던 가정 형편으로 겨울에는 땔감도 없이
생활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바르비종이라는 농촌 마을에 살면서
농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씨 뿌리는 사람', '이삭 줍는 여인들',
'만종' 등 여러 작품을 그렸습니다.

그중에서도 '만종'은 그의 대표작이면서
세계적인 명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을 보면 노을 진 들판에 밭 갈퀴와 손수레,
수확한 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한 부부가
멀리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부부는 해가 질 때까지 밭을 갈아서
몇 알의 감자만을 얻은 것을 유추할 수 있는데,
비록 가난하고 힘겨운 삶 속에서도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겸손한 농부의
자세가 담겨있습니다.





살면서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표현한다면
혹시 힘들어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위로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요.

내가 따뜻하면 내 주변에도
따뜻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곳
바로 내가 사는 대한민국을 따뜻하게 만들어가는 건
바로 우리입니다.


# 오늘의 명언
감사하는 법을 배울 때
우리는 인생에서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다.
– 에이미 밴더빌트 –

할아버지의 파스



어느 날 밤 허리가 너무 아파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할아버지가
아내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여보, 약통에서 파스 좀 꺼내
여기에 붙여줘요."

할머니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손에 닿는 대로 파스를 꺼내
평소 하던 대로 남편의 허리에
정성스럽게 붙여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따뜻한 아내의 손길에 위로받으며
"당신이 붙여주는 파스가 최고지!"라고 말하며
다시 잠에 들었습니다.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날은 김장하는 날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김장을 마치고 나니 허리가 아파져 와서
지난밤 남편에게 붙여줬던 파스가 생각났습니다.
약통을 뒤졌지만, 어찌 된 일인지
파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신속배달 중화요리, ○○반점'이라고 적힌
중국집 홍보 스티커만 보였습니다.
그제야 할머니는 지난밤 붙여준 것이
파스가 아닌 중국요릿집 스티커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할머니는 이 사실을 할아버지에게 말했고,
두 분은 한참 동안 스티커를 보며
웃음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물질적 치료보다도
사랑과 관심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밤, 우리를 위로하는 것은
종종 바로 이런 사랑의 힘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사랑은 우리가 서로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가장 강력한 힘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줍니다.


# 오늘의 명언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엔
다른 사랑의 치료 약은 없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

1.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하지마라. 뒷말은 가장 나쁘다.
2.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 진다.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들을 수록 내편이 많아진다.
3. 목소리의 "톤"이 높아질 수록 "뜻"은 왜곡된다. 흥분하지마라. 낮은 목소리가 힘이 있다.
4. "귀"를 훔치지말고 "가슴"을 흔드는 말을 해라. 듣기좋은 소리보다 마음에 남는 말을 해라.
5. 내가 "하고"싶어 하는 말 보다, 상대방이 "듣고"싶은 말 을 해라. 하기 쉬운 말 보다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 해라.
6. 칭찬에 "발"이 달렸다면, 험담에는 "날개"가 달려있다. 나의 말은 반드시 전달된다. 허물은 덮어주고 칭찬은 자주해라.
7. "뻔"한 이야기보단 "펀(fun)"한 이야기를 해라. 디즈니만큼 재미나게 해라.
8. "혀"로만 하지말고 " 눈"과"표정"으로 말해라. 비 언어적 요소가 언어적 요소보다 더 힘있다.
9. 입술의 "30초"가 마음의 "30년"이 된다.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10. "혀"를 다스리는 건 나이지만, 내 뱉어진 "말"은 나를 다스린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한번 말한것은 책임져라.
(출처ㅡ www.StoryPlus.org)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법
부부나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나는 다 안다'라고 생각하니
갈등이 생깁니다.
상대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바라봐 줘야 합니다.
상대가 얘기할 때는
'아, 저랬구나', '아, 저런 마음이었구나"
그냥 그대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행복연습
법륜스님 행복학교
 
 
 
 

· 
<행복한 고구마 / 목성균님>


내가 강릉 영림서 진부 관리소 말단 직원일 때 월급이 칠천몇 백 원이었다. 그 돈으로 어린애 둘과 아내와 내가 한 달을 빠듯하게 살았다. 어떤 때는 아내가 담배를 외상으로 사다 줄 정도였다. 새댁이 담뱃갑을 건네주면서 조심스럽게 신랑한테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담배는 외상 주는 게 아니래, 자기 담배 못 끊지?”

늘 퇴근이 늦었다. 잔무가 있어서 늦을 때도 있었지만 잔무가 없어서 늦는 때도 많았다. 잔무가 없으면 미뤄두었던 고스톱 화투를 쳐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 간에 숙직실에서 화투를 치는 것은 동료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지 절대로 노름은 아니다.
특히 산읍이 눈 속에 깊이 묻히는 겨울에 그랬다. 어두워져서 전등에 스위치를 넣으면 늙은 소장님은 큰 곰처럼 어정어정 소장실을 나갔다. 보나 마나 면장님 사택이거나 지서장님의 하숙집으로 마작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사무실 뒤 숙직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 사환은 알아서 관리소 앞에 있는 ‘삼척 집’에 직원들이 숙직실에서 고스톱 화투를 친다고 이르고 퇴근을 했다.

밤이 이슥해서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고 오는 소리가 숙직실 앞에 와서 멎으면 문이 벌컥 열렸다. ‘삼척 집’ 늙은 아주머니였다. 머리에 이고 온 도토리묵과 찌개와 막걸리 주전자가 담긴 함지박을 숙직실 안에 들여놓으며 볼멘소리를 질렀다.
“색시들 기다려, 먹고 그만 집에 가-.”
마치 자기가 직원들의 장모님이라도 되는 양 성미를 부렸다. 그러면 고스톱 판은 끝났다. 직원들은 밤참과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만족해서 “크-윽-.” 트림을 하면서 숙직실을 나섰다. 지금도 가끔 행복한 포만감을 느낄 때면 그때처럼 생리적인 소리를 일부러 내본다. 그러면 한결 행복하다.

숙직실을 나서면 흰 눈이 소복한 부피를 지으며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나의 집은 읍내 밖 진부 농고 뒤에 있는 농가의 바깥채였다. 버스정거장 앞을 지나서 논둑길을 건너가야 했다. 아내가 어두워지면 윗방에 있는 전등을 내다가 추녀 밑에 걸어 놓고 불을 밝혀놓았다. 나는 그 전등 불빛을 등댓불처럼 의지하고 어두운 논배미를 건너서 집에 가곤 했다. 그러나 그 전등은 따뜻하게 내 삶을 고무해 주는 정도지 삶의 길잡이 역할까지는 못했다. 적설에 묻힌 논배미에는 도대체 어디가 논바닥인지, 논둑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그 불빛은 논배미의 적설 상태까지 밝혀 주진 못했다. 다만 ‘빨리 오세요.’ 하는 아내의 눈짓에 불과했다. 논둑을 더듬어 가다가 실족하면 논둑 아래 적설 속에 빠지고 말았다.

버스정거장 모퉁이에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수족을 잘 못 쓰는 아주머니가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눈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작은 산읍 모퉁이, 내가 집에 돌아오는 그 늦은 시간에는 군고구마가 팔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아주머니는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늘 몇 알의 고구마를 샀다. 그해 겨울 나의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그 아주머니에게 군고구마 몇 알을 사는 일로 끝나는 셈이었다. 늦은 밤 그 군고구마를 가지고 가서 깜박깜박 졸면서 신랑을 기다리던 새댁에게 불쑥 내밀면 참 좋아했다. 그 재미에 몇 알의 군고구마를 사들고 갔다.

군고구마를 사서 잠바 앞섶에 넣으면 온몸이 따뜻했다. 논둑에서 떨어져 눈 속에 빠져도 춥지 않았다. 따뜻한 고구마를 품어서 그런지 눈 속이 아늑했다. 넘어진 자리에서 쉬어간다는 말처럼 나는 눈 속에 빠져서 잠시 동안 그대로 있었다. 고구마의 온기도 따뜻하고, 논배미 건너 내 셋집 추녀 밑에 걸린 분홍색 백열등 불빛도 따뜻하고, 내 마음도 따뜻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밤이 늦었다. 차라리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은 푹한데 눈이 오고 난 뒤 갠 날 밤은 숨을 못 쉴 지경으로 냉기가 혹독했다. 산맥들도 칼날처럼 등성이를 세우고, 별들도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날은 고스톱 화투를 해서 돈도 좀 땄다. 숙직실을 나서자 볼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잠바 속에다 자라목처럼 얼굴을 묻고 종종걸음을 쳤다. 고구마도 몇 알 더 사고 아주머니에게 개평을 몇 푼 줄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정거장 모퉁이까지 왔다. 그런데 아주머니 대신 웬 어린 소년이 서 있는 것이었다.

“너 누구냐?”
“영림서 아저씨이에요?”
“그래-.”
“일찍 좀 다니세요.”
처음 보는 녀석이 볼이 부어 가지고 감정적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임마. 내가 일찍 다니든 늦게 다니든 네가 무슨 참견이야-.”
“아저씨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감기 걸렸으니까 그렇죠.”
그 녀석이 군고구마 장수 아주머니 아들인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늘 그래요. 영림서 아저씨 퇴근이 늦어서 늦었다고요.”

그때 내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내가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에게 고구마 몇 알을 사는 것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지 그 아주머니 장사시켜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품고 발간 전등 불빛을 지향해서 눈 쌓인 논배미를 건너가면서 나는 늘 행복했다. 먼바다에 나갔다가 포구의 등댓불을 지향하고 돌아오는 작은 만선 어부의 마음이 그럴까. 그 행복감은 따뜻한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안음으로써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었다.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소년은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늘 사 가지고 가는 그 몇 알의 고구마를 가슴에 안겨주고, 군고구마 화로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휭하니 거리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군 고구마값 받는 것도 잊어버리고 갔다.
그 소년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내가 사 가지고 갈 그 몇 알의 고구마 온기를 혹한 속에 몇 시간 동안 떨고 서서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저의 어머니의 친절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가를 발견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다행히 그 아주머니는 바로 감기를 털고 고구마 장사를 했다. 나는 고스톱 화투를 치면서 아주머니를 거리 모퉁이에 세워 놓지는 않았다. 일찍 그 아주머니 앞을 지나갔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이 늦은 밤에 군고구마를 안고 들어가서 조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것만치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머니가 고생할 생각을 하면 도리가 없었다.
장중한 태백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산읍의 겨울밤, 칠천몇백 원짜리 말단 공무원을 행복하게 해준 아주머니의 행복한 고구마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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