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자동선(제15화)

 
 

두 사내와 한 여자는 송도 유람에 나섰고 사가정의 제의로 성사되었으며 자동선은 술과 안주를 챙겨서 나귀에 올랐다.

사가정은 영천군에게 나귀를 탈 것을 권하고 싶었으나 자동선에게 아직 효령대군의 자제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건장한 사내에게 나귀를 타라고 여자인 자동선에게 양보를 권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송도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송악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고 자동선이 길라잡이며 나귀 위의 자동선은 더 예쁘다.

사가정이 고삐를 잡고 영천군이 뒤따랐으며 제일청도 자동선이 불러서 함께 동행을 하였다.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하며 여름이지만 오전에는 송도의 날씨가 시원하고 사가정은 콧노래가 절로 나왔으며 제일청이 따라와서다.

제일청은 비록 이젠 노기(老妓)로 옥골선풍 헌헌장부의 발길은 뚝 끊겨 청교방거리 뒤켠에서조차 밀려났다.

그러나 인간미가 넘쳐 옛정을 못잊어 심심치 않게 사내들이 드나들었고 사가정도 그 중의 한 사내며 세월의 무게가 실린 아름다움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어찌 보면 한창 때는 자동선을 뛰어넘는 미색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세월에 밀려 자동선 손님의 뒷바라지에 나섰다.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돌릴 수가 없다고 하더니 빈말이 아니었다.

청교방 거리에서 제일청하면 오가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저기 저 집이요!” 라고 했는데 지금은 철지난 꽃으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가정에겐 제일청이 철 맞아 한창 피어난 꽃처럼 보였으며 영천군은 나귀에 탄 자동선의 동태만 살피고 사가정은 제일청의 속삭임에 정신이 없다.

송악산으로 가는 길엔 왕윤사(王輪寺)가 있으며 울창한 삼림에 둘러싸인 왕윤사는 한 때 수백명의 스님들이 거주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대웅전과 초라한 건물 몇 채만이 옛 영화를 대변해 주고 있으며 대웅전에 닿자 자동선이 나귀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대뜸

전각은 황량하고 중은 보이지 않네/ 황금 부처님만이 뉘연히 앉아 있네/

선탑에 쌓인 먼지를 바람이 쓸어가고/ 어두운 창가에 달이 등불처럼 비친다.

용재 성현(慵齋 成俔)의 시다.

사가정이 깜짝 놀라 “네가 어떻게 내 친구 성현의 시를 알고 있었느냐?”라며 자동선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한양 나으리는 풍류엔 뛰어난데 기녀들을 너무 낮게 보시는 경향이 있으시네요? 앞으론 그렇게 보지 마세요.

그렇게 했다간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사옵고 기녀들을 길가에 핀 한 떨기 꽃으로 보시고 꺾었다 버리면 그만이란 생각은 이젠 버리셔야 하옵니다.”

자동선의 단호한 말투에 천하의 풍류객 사가정도 움찔하였고 어설피 행동했다간 영천군 앞에서 망신을 당할 것 같아 언행에 신중을 속으로 다짐하였다.

자동선은 단순히 미색으로만 보았는데 높은 인격과 풍부한 학식을 갖추어 웬만한 사대부는 우습게 볼 학기(學妓:학식이 높은 기생)가 아니었던가?

영천군도 성현의 시를 읊는 자동선을 보고는 침착해 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사내들은 충동적이고 본능이다.

농경사회에서 사냥을 해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태적 본능이 시대가 바뀌어도 본능은 바뀌지 않으며 시대와 환경에 발전, 진화하여 언행도 바뀔 뿐이다.

두 사내와 두 여자는 짝을 이뤄 어느새 귀산사(龜山寺)에 이르렀고 왕윤사에 공민왕이 자주 들린 것과 같이 귀산사에 충렬왕이 들려 국태민안의 기도를 올렸다.

산이 깊어 갈수록 송악산 절경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울창한 나무 위에선 꾀꼬리들이 쌍쌍을 이루어 노래 부르며 사랑을 나누고 있다.

벌써 영천군은 피곤해 보이는 기색이고 사가정은 어떻게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했으며 마침 널따란 바위가 나타났다.

“제일청아! 우리는 봉우리로 올라가 정상을 보자꾸나! 두 분은 여기서 잠시 쉬었다 올라오시게 하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사가정은 제일청의 손을 잡고 달리듯 정상을 향해서 발길을 재촉했으며 영천군도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에 나섰다.

“자동선아, 사가정의 말대로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자! 내 어젯밤에 한숨도 못자 피곤해서 더는 못가겠다.”

영천군은 바위에 털썩 주저앉았고 그는 바위에 주저앉아 이인로(李仁老)의 '산거'라는 시를 읊었다.

봄은 가고 꽃은 아직 남아 있는데/ 하늘은 맑고 골짜기는 그윽하다./

두견새 소리가 한낮에 들려오니/ 여기가 살기 좋은 곳임을 알았노라.

사랑을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는 듯 자동선 앞에서의 영천군도 도연명이 오얏마을에서 심정인 듯하다.

사가정은 산봉우리에서 영천군을 기다리다 못해서 술병을 들고 다시 바위로 내려왔다.

“두분께선 서로 보기만 하고 뭘 하고 계십니까?” 젊은이들이 만났으면 한바탕 불꽃을 튕겨야 하지 않나요?“

자동선은 사가정의 말에 즉각 반응을 보였다. ”그게 무슨 해괴한 말씀이세요? 이 대명천지에...“

그러나 사가정이 누구인가! 한 치도 물러설 리 없다. ”허허 하늘이 맺어준 배필 같으오.“

사가정은 말과 동시에 술잔을 영천군에게 건넸으며 연천군은 마침 목이 탈 때다.

“허허 자동선이 눈치도 빠르고 웃어른을 모실 줄 아는 현숙한 여인인 줄 알았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보네.

이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 아느냐? 세종임금의 손자이시고 효령대군의 자제분이시다. 정성껏 잘 모셔야 하느니라!”

세종임금의 손자라는 사가정의 말에 깜짝놀란 듯 자동선이 발딱 일어나서 큰절을 올린다.

“소녀 어르신을 몰라 뵈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용서해주시옵소서.”

“아니니라. 내가 밝히지 않은 죄가 더 크니라!” 옆에 있는 사가정의 표정이 밝아졌고 영천군이 그 어느때 보다도 표정이 밝아서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피로한 표정이 역력했는데 그런 기미가 온데간데없어졌다.

영천군은 자동선이 따라준 술잔을 받아 마시고 그녀의 손을 덥썩 잡아서 산봉우리를 향해 뛰듯 걸었고 산봉우리에 올라가선 무슨 일을 결심한 눈치다.

- 16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자동선(제14화)

 
 

객사로 돌아온 두 사내는 새벽녘이 되어도 잠을 못 이루고 영천군이 더 심하며 사가정은 먼 산사에서 새벽종이 울리자 코를 골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영천군은 아직도 뜬눈이였고 자동선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선 팔을 뻗어서 와락 껴안아 내 여자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으나 사내 체면 때문에 참고 또 참았던 것이며 그것이 아쉬웠다.

참기는 왜 참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밤을 꼬박 새면서 후회할 것을 하는 생각에 이제는 눈이 뻑뻑하고 자신이 미워졌다.

천하의 영천군이 송도에 와서 한양에서 부리던 기개가 다 어디에 가고 일개 계집 앞에서 주눅이 들어 언행(言行)을 삼갔던 왕손이 아닌가?

낮에 일어났던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던 것을 되돌아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고 꿈에 자동선이 나타났다.

그녀는 이승에 살고 있는 선녀같고 지금껏 조선 팔도를 유람하면서 예쁘다는 여인을 다 품어봤으나 자동선 만한 미색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슬이 은하수를 씻어 달빛이 둥그니/ 금잔에 가득한 술이 오히려 차갑도다./

자하동 한가락에 사람은 옥같이 밝고/ 촛불 아래 즐거운 밤은 끝이 없어라.

고려의 시인인 권부(權溥)의 '자하동' 시를 읊는 것이고 너무나 생생한 모습이다.

자하동은 미모도 지금껏 보아왔던 그 어떤 여인보다 월등히 뛰어난 미색을 지녔을 뿐만이 아니라

해박한 시문(詩文)에 대한 지식은 사가정과 견주어도 조금도 뒤지지 않을 듯 보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영천군은 밤이 너무 길었고 선녀같은 자동선을 품었던들 여름밤은 마른하늘의 번개처럼 일향(촌음)인 듯 지나갔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밤이 너무 길며 사가정은 더운지 물건이 보일락말락 바지를 내리고 두 다리를 있는 대로 벌리고 깊은 잠에 빠졌다.

천하가 제 세상이고 그가 가는 곳에는 늘 술과 계집이 기다리고 있다.

풍부한 해학과 옥골선풍 헌헌장부의 용모에 계집들은 그가 나타나면 자지러지며 오금을 못 펴고 영천군은 은근히 사가정이 부럽고 질투가 났다.

그리고 그가 이웃에 살고 있어 보고 싶고 아쉬울 때 부르면 언제나 만날 수 있다는 데에 고마운 마음이 발동하였다.

“자식 잘 생기고 풍류까지 즐기니 계집들이 사족을 못써...”

영천군은 입속말을 하면서 주모가 갖다 놓은 자리끼를 단숨에 들이켰고 동창(東窓)으로 여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영천군은 사가정이 깰 것을 기다리다 못해 발길로 등을 툭 쳤으며 마침 등을 보이며 돌아누웠다.

“이 사람아,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게.” 하지만 사가정은 들은 척도 않고 코를 더 세게 골며 헛소리까지 하였다.

“자동선아, 너는 이 어른을 잘 모셔야 하느니라. 이 어른이 어떤 어른인지 네가 알기나 하느냐?

한양에 부잣집 아드님이 아니고 효령대군의 다섯째 아드님이신 영천군이셔. 네가 잘 모시면 당장 한양으로 올라갈 행운녀가 되는 거야.”

영천군은 생각지도 않았던 사가정의 잠꼬대에 흥이 솟았고 사가정은 잠을 자면서도 나를 생각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고맙기가 그지없었다.

하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고 “사가정! 이제 잠은 그만 자고 일어나게!” 하면서 이번엔 엉덩이를 차는 게 아니라 코를 잡아끌었고 몸이 단 음성이다.

사실 사가정은 잠은 벌써 깨어있었고 자동선에 몸이 달아오른 영천군이 어떻게 하나 보기 위해서 자는 척 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내는 집 뒤의 실개천으로 가서 세수를 하고 자동선 집으로 향했으며 술국을 끓여 달라는 배짱이고 사가정이 늘 앞장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동선이 사립문 앞에서 서성대며 두 사내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영천군 나으리 소인이 뭐라 했습니까? 자동선이 틀림없이 술국을 끓여 놓고 나으리를 기다릴 것이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가정이 기세등등하여 마치 제집 들어가듯 내실로 들어갔고 외출했다 자기 집으로 들어가는 기세이며 역시 천하 풍류객 사가정답다.

영천군은 갑자기 사가정이 부러웠고 사내로 태어나 저토록 당당히 천하를 주름잡고 다니는 사가정이 갑자기 미워지기도 하였고 사내의 경쟁 심리다.

왕손의 후예라 언제 어디서고 왕실의 체면을 구겨선 안 되고 시정잡배와 어울려 품위를 잃어서도 안 되었다.

지금도 그는 왕손이 아닌 한양의 부잣집 아들이 되어있고 사가정이 꾸민 연극이다.

방안에 들어서자 정갈하게 끓여진 술국 두 그릇이 준비되었고 그 옆엔 엊저녁에 마신 자동선주도 한 병 놓였으며 해장술이다.

“역시 자동선이다!”

두 사내 입속말이 동시에 터져 나왔고 그들은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술국과 자동선주를 비웠다.

술국을 먹고 자동선주 한 병을 다 비운 그들은 엊저녁에 마신 술이 다 깨기도 전에 다시 취했다.

두 사내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다시 널브러졌고 사가정은 객사에서 보다 더 크게 코를 골았다.

영천군은 오뉴월 소나기처럼 잠이 쏟아졌으나 입술을 깨물며 참았으며 그때다.

“한양 나으리 어르신들! 술국을 다 드셨나요?” 자동선이 술국 상을 가지러 들어왔다.

“어머머! 이 어르신들 봐. 여기가 객사인 줄 아시나 봐!” 자동선이 사가정 얼굴에 냉수를 뿌려 일으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자동선이 술국상 앞에서 거문고를 켜면서 이곡(李穀)의 '자하동' 시를 읊었다.

사가정이 눈을 뜨자 자동선은 켜던 거문고를 놓고 너울너울 춤까지 추기 시작했고 영천군은 자동선의 춤에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춤을 바라볼 뿐이다.

초당에 잠을 깨니 낙화가 한가하다/ 발을 걷고 보니 여기 저기 청산이라/

청산은 나를 웃네 나들이도 아니하고/ 언제든지 책속에만 파묻혀 있다고...

자동선의 다리가 번쩍 들릴 때 오얏꽃 보다도 더 흰 엉덩이가 희끗희끗 드러났고 팬티가 없는 속곳 바람이다.

여름이라 그러하려니 생각했으나 자동선의 치밀한 상술로 보였고 신이 나서 노루모양 껑충 뛰었을 때는 검은 거웃과 음문까지 살짝 얼굴을 드러냈다.

예쁘고 신비해 보이기까지 한 음문이고 수많은 사내들의 욕정을 채워주었을 음문은 사내 손길 한번 안 닿은 듯이 깨끗해 보였다.

두 사내는 동시에 꼴깍 마른침을 삼켰고 자동선은 지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직업본색을 풍기고 있다.

아무튼 두 사내는 빙의에 걸린 듯 박수를 치면서 자동선이 풍기는 매력에 빠져들었다.

- 15화에서 계속 -

아내 (예하 이채현)와 함께 광양 매화원을 가보려고 마음을 먹었다. 

대구에서 출발 하는 상품중 어떤게 좋을까 살펴 보았다.

대구를 출발하여 당일치기 광양 매화원으로 가는 상품들은 여러개가 판매 되고 있지만 

삼성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광양매화원과 구례 산수유 마을 가는 상품이 있었고 

또 다른 상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중에 눈에 띄는 상품이

진짜재미있는 여행에서 광양매화원으로 가는 상품이 있어 가격을 비교하여 보니 

다른 여행사에서는 43,000원~45,000원 많게는 5만원도 더 넘게 받는데

진짜재미있는여행사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4만원도 안된다.

또 여행 코스가 광양 매화원 뿐만 아니라 하동 악양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그리고 구례 화엄사 까지

코스가 정말 좋다 최참판댁도 이미 가본곳이고 화엄사도 2~3년전 갔었던 곳인데 

화엄사의 흑매화가 정말 볼만하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이곳으로 가면 정말 좋겠다 하고 

아내에게 예약을 하라고 했다.

아내의 이름으로 이미 몇차례 재미있는여행을 통하여 여행을 갔다 온지라 

이왕이면 이름과 전화 번호가 등록되어 있는 아내의 이름으로 예약을 하라고 일렀는데

예약후 여행비를 납입 하라해서 입금을 하였는데 어라 아내와 나 2인이 가는데 9만원이라고 하네

뭔가 잘못 됨을 알고 다시 전화 하였더니 이미 만석이라 다른 여행 코스로

광양 매화원과 구례 산수유를 보러가는 코스로 안내를 하였던가 보다

전화를 받은 여행사 직원분이 광양 매화원 뿐만 아니라 하동 악양 최참판댁과 화개장터 그리고 구례 화엄사로 가는 

버스편을 증차하여 1대 더 배차를 하기로 하였으니 이미 낸 여행 상품비의 차액은 돌려 드리겠다고 하여 

이곳을 가게 되었다

이른 아침 빨리 떠나는 여행 스케쥴에 다소 의아하게 생각은 하였으나

광양 매화축제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여행사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정보와 관광객의 편의를 생각하는지를 

단박에 알수 있었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진입하는 평상시의 도로가 아니라 조금 우회하여 매화 축제장으로 들어서니 

길게 늘어선 차량의 행렬을 보고 감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주차장에 하차하니 다른 차량들이 들어서기전 하차를 하고 조금은 한산한 상태에서 매화 축제장으로 들어 갈수 있었는데

예전 쌍계사에 벚꽃 놀이를 갔다가 길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고 어쩔수 없이 되돌아 왔던 기억 들이 절로 떠 오른다.

조금 빨리오고 또 밀리지 않은길로 우회하여 진입하였으니 정말 편하고 쉽게 도착할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터라 많은 꽃들을 보고 사진도 찍고 하였지만 광양 매화원이 처음인데 

다른 사진가들의 이야기로는 광양 매화축제가 3월17일이 마지막이고 매화꽃이 끝물이라 모두 지고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아직 매화가 한창이다.

매화꽃을 보기위해 언덕길을 오르니 섬진강 줄기와 매화축제장의 전경과 더 넓은 매실밭에 핀 매화꽃이 장관이다

매화축제장을 입장하기 위해 입장권을 5,000원에 구매 하였는데 입장권에는 지역 상품권이 붙어 있어 

축제장에서 5,000원권을 대신하여 상품을 구매 할 수 있어 입장객은 공짜나 다름 없지만 지역 상권은 이 상품권으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으니 지자체에서 지방 경제를 위하여 고심한 흔적도 보이는듯 했다.

광양 매화축제장을 벗어나 하동 악양 최참판댁을 향할 때도 놀라운 일은 우리가 이곳에 도착 할때쯤 텅빈 주차장 이였음에도 

많은 버스가 대기하고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을 보자니 또다시 뿌듯함과 여행사 임직원의 노고가 같이 여행간 일행들의 편의를 

얼마나 생각하고 노력하는 지를 알 수 있어 정말 좋았다

최참판댁은 십여년전에 한번 가본 곳인데 도착하니 입구에 늘어선 가게들과 예전과 다르게 바뀐 환경에 

하긴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하고 되뇌이곤 했다.
 

 

 

최참판댁을 구경하고 화계장터로 갈때쯤이다 

가이드님이 운전기사님과 나누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 화개장터로 진입하면 주차 할 곳이 있는데 그곳이 복잡하면 

면사무소로 차를 주차 하시는게 좋겠다 하시는 이야기 였다.

사실 오늘같은 휴일날은 관광객이 몰려 주차가 힘든 상황 미리 면사무소 직원에게 전화 하여 주차할 장소를 파악하고 

주차장이 밀릴때 어떻게 할것인지 하는 시나리오를 가이드님이 이미 알고 있은듯 하다 

화개 장터에서 점심을 먹는데 화개장터가 얼마나 붐비는지 인산 인해를 이룬다

그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사용한 금액의 영수증을 가이드님에게 주었으면 한다 

그건 왜인고 하면 오늘 여행 상품이 저가로 다른곳보다 많이 싸다 하였는데 그 이유가 지자체에서 행사를 지원하는 상품으로 

방문객의 숫자와 구매한 영수증이 상당금액을 도달하여야 지자체에서 지원금이 지급 되는 까닭이다.

어차피 점심 한그릇 사 먹는거 먹고 영수증 받아 주는건데 무슨 큰 금액도 아니고 얼마든지 줄 수 있는 일이다.

화개 장터서 이것 저것 사먹고 쇼핑도 하고 장삿군의 흥정도 구경하며 지정된시간에 지정 장소로 갔더니

다시 탑승하여 화엄사로 향했다.

화엄사에는 지금쯤 흑매화가 활짝 피어나 정말 멋지겠다 싶었다 

 

 

이 사진은 21년도 이 맘때쯤 동이트기전 찍은 사진 인데 흑매화를 찍기 위해 사진가들이 일출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이랬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쯤 얼마 흑매화가 곱게 피었을까? 사뭇 궁금해지기도 한다.

 

흑매화가 정말 예쁘다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화엄사 곳곳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다시 대형 주차장으로

4시가 되자 같이같던 일행들이 모두 모였다

대구로 출발했다 오늘 제법 많이 걸었다 2만보도 넘게 걸어 다녔는데 신발이 편치 않아 발이 조금 아프다 

신발을 벗을까 했는데 그때 가이드님이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 한다 오늘 정말 많이 걸었지요

많이 걷고하여 발이 아프고 오랫동안 신발을 신고 있어 잠시 벗으면 좋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발 구린내로 

불편할수도 있으니 신발을 벗지 않았으면 한다는 주의 이야기다 어찌 신발을 벗었으면 하던 생각을 알아 챈건지..ㅎㅎㅎ

돌아오는 길에 늘 하는 행사가 있단다 가이드님과의 가위 바위 보 게임인데 최종 승자 한분에게는 

진짜재미있는여행에서 주는 선물이 있단다 그래서 게임을 하였지만 최종 4인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하지만 참 즐겁고 재미난 여행 이였다 .

특히 다른 여행사의 상품과 비교하여  싼가격에 여행을 다녀 올수 있었고 임직원의 새심한 배려로 

막히는 길을 막히는 불편없이 수월하게 구경 했고 같이 간 일행들은 제시간에 맞춰 일정에 차질이 없었고

정말 재미난 여행 이였다.

 

 

 

 

가이드님이 후기를 한번 쓰보는것도 좋다하여 후기를 쓰는건데 사진올리는 기능이 썩 좋질 못하네요

멋진 사진들이 몇개 있는데 조금 크게 올려 드리고 싶은데 후기 사진올리는 기능이 원활하지 못해 

조그만 사진 몇장만 올려 둡니다. 여행사에서 이런 불편함은 조금 개선 해야 겠어요

그렇다고 사진을 크게 올리면 용량을 많이 잡아 먹겠지만 어느 정도는 올릴수가 있어야 자랑질을 할건데...

풍류야화 자동선(제13화)

 
 

영천군과 사가정의 걸음이 빨라졌고 사가정이 앞장을 섰으며 조선팔도를 제집 정원처럼 드나들었던 사가정의 발길에 영천군은 벅차다.

“이 사람아, 좀 천천히 가시게나! 내가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네.”

“자동선을 한시라도 빨리 보시려면 더 빨리 걸어가셔야 하지요.”

“아 참! 우리가 타고 왔던 말은 어찌하였소?”

“네 나으리, 목단춘에게 맡기어 며칠 잘 먹이라 했나이다.”

“그거 참 잘했소이다. 그런데 제일청한테 안내하라 했으면 좋을 뻔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사내 둘이 가서 아무렴 조선제일의 미녀라 해도 설득을 못하겠는지요?”

두 사내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오는 사이에 어느새 멀리서나마 자동선의 집이 보였다.

영천군은 자동선의 집만 보아도 자동선을 본 듯 가슴이 뛰었고 이젠 영천군이 앞에 서서 뛰다시피 한다.

숨이 차서 천천히 가자던 영천군이 자동선의 집을 보니 힘이 저절로 솟는지 사가정(四佳亭·서거정)을 제치고 앞에서 총총 걸음으로 달린다.

"천천히 가시죠. 영천군 나으리...”

하지만 영천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동선의 집을 향해 젖먹이가 어미를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가듯 줄달음을 쳤다.

사실 영천군은 사가정보다 힘이 좋고 허우대도 좋을 뿐만이 아니라 왕손의 후예답게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사가정도 어디에 나가도 빠지지 않으며 풍부한 학식에 넘치는 해학과 풍류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 안달하는 호남아다.

지금 그들이 자동선을 보려고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뛰듯 걷는다.

“게 누구 없느냐?”

영천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주인을 찾았고 몇 번을 소리 높여 주인을 찾았으나 안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번에는 사가정이 대나무로 촘촘히 만든 대문을 발길로 차면서 외쳤다.

그때서야 “게 누구기에 남의 집 대문을 발길로 차며 법석을 떠시오?”라며 열 서넛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여기가 자동선의 집이더냐?” 영천군이 숨이 가쁘게 물었다.

“그렇소만 댁은 누구신지요?” 소녀가 당돌하게 대꾸를 하였다.

“우리는 한양에서 온 영천군과 사가정인데 자동선을 보러 왔느니라.”

“아-예, 그런데 자동선 아씨께선 지금 집에 안계십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셨다 다시 오셔야합니다.

우리 아씨께선 예약을 하지 않으시면 만나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지금 아씨께선 산책중이십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기다리면 아니 되겠느냐?”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아씨가 안 계실 땐 절대로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게 하십니다.

어서 돌아가셔서 내일 오시면 소녀가 아씨한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사내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별수 없이 다시 제일청 집으로 갔으며 다시 술판이 대낮부터 벌어졌고 대취했던 두 사내는 새벽녘에 깨어났다.

그들은 집 뒤 실개천으로 가 세수를 하고 목이 타서 실컷 물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떠날 채비를 하였으며 그때다.

“벌써 떠나시려고요? 그렇게는 아니 되옵니다. 이 제일청에 와서 술국을 안 드시고 가시는 손님은 없습니다.

소첩이 일찌감치 술국을 끓여 놨으니 시원하게 드시고 가세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국과 기장이 섞인 밥도 함께 차려졌다.

여섯 골이 망망한 채 산과 바다가 가려/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들었더니/

이제사 와 보니 뜬소문은 잘못이라/ 티끌세상과 몇 걸음 사이 밖에 아니네

고려시인 최집균(崔執均)의 무제(無題)다.

두 사내는 다시 자동선 집에 닿았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내가 동시에 ‘게 누구 없느냐?“라고 집주인을 찾았다.

두 사내가 네댓 번을 부르자 선녀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고 바로 자동선이다.

”어서 들어오시죠. 어제 오셨던 한양에서 오신 손님이 아니신지요?

어제는 소첩이 뒷산으로 산보를 하면서 시(詩) 공부하느라 결례를 했사오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똑 떨어지는 말투였으며 자동선은 두 사내를 아랫목에 앉히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소녀 자동선이라 하옵니다. 먼 한양에서 미천한 소녀를 보러 이곳까지 오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그래. 네가 진정 자동선이냐? 이 분은 효령대군 다섯 번째 아드님인 영천군이시고 나는 사가정이라 하느니라.”

“어머 소첩이 평소 존경했던 두 분을 제 집에서 뵙다니 꿈만 같사옵니다. 앵두(동기 가명)야! 술상을 어서 봐 오너라!”

앵두는 준비했던 술상을 자동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고 들어왔다.

“이 술은 소첩이 담은 자동선주(紫洞仙酒)이며 담근 지 3년차로 독하오니 천천히 조금씩 드세요!”

두 사내를 술상 맞은편에 앉히고 자동선은 술을 연거푸 따랐고 사가정은 술에 취하고 영천군은 자동선의 아름다움에 포로가 되었다.

“자동선아, 이 자하동에 숨은 얘기가 있을 듯한데 네 이름도 거기에 연유가 있는 것이 아니더냐?”

“역시 풍류객 사가정 어른이셔? 그러하옵니다. 고려 때 대학자 채홍철(蔡洪哲) 어른께서 자하동에 정자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국가 원로들을 모셔 기영회(耆英會)를 열었는데 어느 날 자하선인이 나타나 원로들에게 헌수 술잔을 올리며 '자하동곡'을 부르셨다 하옵니다.”

“그래? 자동선 너는 역사에도 높은 지식을 갖고 있구나! 그 선인이 불렀다는 '자하동곡'을 불러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하옵니다.'자하동곡'은 현재 악부(樂府)에 가사가 전해오는 것을 소녀가 잘은 못 부르나 불러 보겠나이다.”

자동선의 낭랑한 목소리에 영천군은 아랫도리가 팽창되는 것을 느꼈다.

집은 송악산 자하동에 있어서/ 안개구름이 중화당에 잇달았네!/

오늘 기영회 기쁜 모임 있다기에/ 몸소 찾아와 연수배를 올리노라

노래보다 술에 더 마음을 두는 사가정도 자동선의 노래에 가슴이 흔들렸고 두 사내는 동시에 탄복했으며 그러하면서도 서로 다른 여인을 떠올렸다.

연천군은 '자하동곡'을 부른 자동선과 열락의 장면을 생각했으며 사가정은 제일청과 주지육림의 꿈같은 과거를 회상했고 어느새 밤이 깊었다.

“두 나으리께선 밤이 깊었는데 술만 드시면 어떡하죠? 객사로 가실 채비를 하셔야지요!”

영천군은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객사로 가라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내는 자동선의 집에서 나와 객사로 발길을 옮겼으며 통음한 술이 번쩍 깼다.

- 14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9화)

 
 

마음이 답답하거나 세상의 갈피가 보이지 않을 때면 진이는 박연폭포를 찾았다.

폭포수 앞에서 노래가 아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가슴이 조금은 열려지기 때문이다.

한양 살이 3년 동안 생기가 넘치는 세상을 보고 송도에 들어서자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유몽인(柳夢寅)은 '어우야담'(於于野談)에서 진이는 여자들 중에서 뜻이 높고 협기가 있는 자로 평했으며

허균(許筠)은 '성옹지소록'(惺翁識小錄)에서 성품이 활달하여 남자와 같으며 거문고를 잘 타고 노래를 잘 불렀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진이는 예쁜 여자로 태어났으나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한혈마를 타고 만주벌판을 질풍노도처럼 달리고 싶어하는 광개토대왕이나 장수왕의 기개를 닮은 여장부다.

그런데 그녀는 고려의 수도가 아닌 조선시대의 송도에서 서녀(庶女)로 태어났으나

사대부집 딸로 출생한 것으로 15년 동안 금지옥엽 호의호식하며 성장하여 신동소리를 들었으나

어느 날 갑자기 서녀 신분으로 바뀌어 기생(妓生)의 길로 들어섰다.

숱한 사내들의 품을 통하여 세상살이를 살펴봤으나 진이는 성에 차지 않았다.

사내들은 진이를 정복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녀는 그들을 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남자 특유의 정복 심리이고 사내는 여자에게 들어오면 죽으며 정복이 아닌 포로가 되는 신세다.

진이는 숱한 사내들을 품어 봤으나 마음에 들고 존경할 만한 상대를 찾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다.

진이는 문득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을 번개처럼 떠올렸고 화담이라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존경의 대상이 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진이는 어느 때 보다도 곱고 단아하게 차려입었고 하늘에서 하강한 선녀(仙女)의 모습이다.

어깨엔 자신의 키 만한 거문고가 메어져있고 손에는 송도 명주인 태상주와 간단한 안주가 들려졌다.

화담을 공략하러 가는 길이고 때마침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으며 진이는 비를 맞으면서도 '대학'(大學)은 젖지 않도록 가슴에 품었다.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호소하러 가는 길이며 술과 거문고는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려는 속내다.

지체 높은 사대부집에서 천하의 소리꾼과 바람둥이들에게서 세상살이를 체득한 당돌한 계집이다.

진이의 명성은 송도를 넘어 한양은 물론이고 중국의 사신들은 조선에 오면 그녀를 찾아 자고 가는 것을 최고의 예우를 받는 것으로 생각하기까지 하였다.

중국의 사신뿐만이 아니며 그들을 보내고 영접하는 조선의 관리들도 명월관에 들려 진이를 탐하였다.

화담도 제자들의 얘기를 통하여 진이의 신상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진이가 화담을 뵈러 가겠다고 연통을 넣고 갔으나 집에 있지 않았으며 진이가 화담의 제자가 된다면 홍일점(紅一點)이 되는 것이다.

화담의 문하엔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많으며 행촌 민순, 사암 박순, 초당 허엽, 술한 박민헌,

토정 이지함, 지채 홍인우, 수암 박지화, 연방 이구, 동강 남언경, 죽계 마희경, 이재 차식,

남봉 정지연, 이소재 이중호, 척암 김근공, 사재 장가순 등 그밖에도 많은 인물들이 있다.

이 같은 문하에 진이가 군침을 흘렸고 그녀가 존경하며 사랑하고 싶어질 사내가 행여 생길까 기대를 하는 속내다.

하지만 화담의 문하생이 되는 길이 그렇게 쉽게 열리지 않았고 당나귀 등에 화담이 즐긴다는 음식과 태상주를 싣고 화담에 도착했을 때는 집안이 텅 비었다.

아름다운 집이었고 진이는 마음속으로 화담선생의 거처가 선인(仙人)들이 산다는 동리(東籬)인가 싶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송악산 동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오관산 화곡이 그곳이고 오관산은 산봉우리가 다섯 개 나란히 서 있어 멀리서 보면 왕관처럼 보인다.

기암괴석이 둘러선 화곡에는 봄엔 진달래와 산철쭉이 흐드러지게 피어 산기슭을 불꽃처럼 물들이고 가을엔 붉은 단풍이 타올라 절경이다.

화곡을 한참 오르면 거대한 바위가 움푹 패어 이루어진 연못 화담(花潭)이 있다.

서경덕은 화담 곁에 초당을 짓고 세속과는 거리를 둔 채 ‘주기론’(主氣論)을 주창하며 그를 따르는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곳에 진이가 오늘 나타났다.

붉은 나무 병풍처럼 둘러친 산에 어른거리고/ 푸른 시냇물 거울 같은 웅덩이로 쏟아지네./

신선세계 가운데 거닐며 시 읊으니/ 갑자기 마음이 맑고 깨끗해짐 느끼네.

서경덕의 '대흥동'을 떠올렸을 것이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말끔히 개고 반짝 해까지 났다으며 비온 뒤의 날로 청자 빛의 상쾌한 분위기다.

초당 주위엔 여름 꽃들이 만발하였고 비까지 내려줘 활짝 핀 꽃들이 생기발랄함으로써 화담은 더욱 아름다운 신선들이 산다는 동리로 보였다.

진이는 피곤함도 잊은 채 화담 주위와 초당 곁을 살폈고 연못엔 이름 모를 고기들이 춤을 추며 노래라도 하는 듯이 즐거워 보였다.

연못 주위엔 나팔꽃과 해란초, 그리고 금낭화와 패랭이꽃까지 다투어 피어 또 다른 꽃의 세상을 만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꽃 그림자들이 화담을 감쌀 때 두런두런 인기척이 났으며 화담 일행이 연못 앞으로 드러났다.

진이는 가슴이 뛰기 시작하였고 허엽이 다가와 당나귀에 실린 짐을 받아 광에 들여놓고 진이를 화담에게 소개해 주었다.

진이의 얼굴이 활짝 핀 나팔꽃 빛깔로 변하였다.

소나무 아래서 동자에게 물었더니/ 스승님은 약초 캐러 가셨어요./

이 산중에 계시긴 하지만/ 구름이 자욱하여 계신 곳을 모르겠습니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은자를 찾아 갔으나 만나지 못하다'를 회상한 듯하다.

하지만 진이는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으며 진이는 화담을 만난 것만으로도 황홀하다.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니며 숱한 남자와 뜨거운 살을 섞으며 사랑을 찾아 봤으나 아직까지 찾지 못하였다.

진이 그녀가 찾아 헤매는 사랑하는 사내는 22살이나 위인 화담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어렵사리 황홀한 기분으로 꿈속에서도 마음대로 못 뵈었던 화담을 극적으로 만났다.

- 30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8화)

 
 

몇 년 만에 극적인 해우로 정염을 불태운 진이와 이생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제 정신을 찾았다.

동창으로 새벽달이 들어와서 알몸뚱이 남녀를 감싸고 있으며 접동새 울음이 멀리서 들려온다.

밤새 풀무질 하고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이생의 손이 진이의 사타구니로 뱀처럼 기어온다.

진이도 싫지 않았으며 자기 마음에 드는 사내의 살 내음을 맡은지 얼마만인가?

한양에서도 송도에서도 진이가 마음만 먹으면 사내는 굴비를 꿰듯 꿸 수가 있으나 그녀는 화담 서경덕 같은 사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제2 화담(서경덕 호)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그녀는 계속 찾는 걸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하는 순간 진이의 삶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에 그녀가 존재하는 한 제2의 화담 찾기는 지속될 것이다.

이럴 때면 진이는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를 떠올렸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이시랴!

진이의 집념은 서릿발 같고 숱한 사내들을 품에 안았으나 화담으로 향한 마음은 변치 않았다.

30년 면벽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겁게 품었으나 그녀의 펄펄 끓는 가슴을 식힐 남심(男心)은 아직 찾지 못하고 오늘도 방황하고 있다.

그래서 진이는 전국을 바람처럼 거침없이 마음 가는대로 나도는 남사당을 찾았고 진이의 기질과 딱 맞는 느낌을 받았다.

구경꾼으로 계속 남아 있을 것인지 아니면 단원의 한사람으로 참여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을 때 이생이 나타났다.

하룻밤 정도는 미륵(彌勒)같은 존재일지는 모르나 진이의 마음을 채워줄 영혼의 사내는 결코 아니다.

그들은 새벽 운우지락을 한바탕 즐기고 낮 동안은 밤새 뜨거운 살을 섞으며

육체의 허기를 채울 때와는 다르게 뜨악한 분위기로 있다 날이 저물자 다정한 부부모양 남사당패 놀이마당을 찾았다.

낮에는 논·밭으로 나가 일하고 해가 서산으로 고개를 숙이자 농부들은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몇 백 년은 됐을 소나무 밑에 차려진 남사당놀이는 어둠이 깔리자 횃불로 사위를 밝히고 판이 벌어졌다.

진이는 어름사니 재주에 마음이 쏠렸고 기생이 되기 전에 남사당을 알았다면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 생각하였다.

언듯언듯 횃불에 비치는 얼굴이 당차 보였고 자신보다는 어려보이지만 줄 위에서 날렵하게 자유자재로 재주를 부리는 개성 있는 연기에 매료되었다.

진이는 어름사니가 부러웠고 몇 년 전에만 이 같은 남사당놀이를 알았다면 기꺼이 입단하여

어름사니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글픈 마음이 앞섰다.

“뭘 그렇게 골돌이 생각하고 보시오? 가서 국밥으로 저녁이나 먹읍시다.”

이생이 잡아끄는 대로 국밥집에 가서 이화주(梨花酒)에 국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주막으로 온 이생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오뉴월 들소모양 진이에게 달려들었고 한바탕 제멋대로 육체의 허기를 채운 후

“나하고 아주 삽시다. 지난번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집에 갔더니 나는 할 일이 없었소이다.

나는 아버지가 싫어 집을 뛰쳐나왔는데 아버지는 나를 버리지 않고 유산을 남기셨더라고.

그 유산이 만만치 않아 우리 둘이 넉넉히 여생을 즐길 정도야! 그동안 나하고 재미있는 추억이 많았지 않소?”

의기양양한 이생의 말투였고 진이의 귀에는 이생의 말이 한마디도 들어오지 않았다.

광평의 쇠처럼 굳은 심지 일찍 알았으니/ 내 본래 잠자리 같이 할 마음 없었네./

다만 하룻밤 시 짓고 술 마시는 자리에서/ 풍월을 읊으며 꽃다운 인연을 맺고 싶을 뿐...

고려시대 기생 우돌(于咄)의 '국섬에게'이다.

진이가 이생이 자기와 평생을 같이 살자는 제의에 갑자기 우돌의 시가 떠올라 사내 손을 버러지인 냥 소스라쳐 떨쳐버렸다.

진이에게 남자는 화담밖에 보이지 않았다. 정몽주가 단심가로 고려 충신으로 영원히 남았듯이

진이가 번개처럼 포은(정몽주)의 단심가를 떠올린 것은 이승에선 화담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끝내려 하는 것이다.

포은은 이방원이 '하여가'(何如歌)로 회유했으나 끝까지 버티다 선죽교에서 포살되었다.

목숨을 건 고려 충신의 마지막 모습이었고 그리하여 포은은 역사에 영원히 역사로 살고 있으며 진이도 그렇게 하려는 의지다.

“왜 대답이 없소? 아버지에게 성(姓)은 받지 않았으나 유산을 받아 어차피 불효자로 찍혔으니 진이의 남자로 여생을 살고 싶소!”

“이생 서방님은 아직도 이 진이의 마음을 모르고 계십니까?

삼남을 비롯하여 금강산·지리산을 유람하면서 저의 온갖 것을 다 보고서도 더 보고 싶은 것이 남았습니까?

정신 차리세요! 이 진이는 어는 한 남자의 여자로 애초부터 태어난 것이 아니에요.”

진이는 이생에게 말을 퍼붓고 벌떡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입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이 총총하고 몸에선 이생의 정액이 비릿하게 풍겼다.

유람할 때 수없이 느꼈던 익숙한 향기 같은 냄새이고 몇 년 전의 일이 어젯밤 정사처럼 또렷이 떠올랐다.

갈피를 못잡아 혼란스러운 마음을 추스르려는 듯이 진이가 부리나케 남사당놀이 마당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구경꾼들의 요란한 함성과 박수에 신명나는 예쁜 어름사니는 줄 위에서 멋진 곡예를 부렸다.

저벅저벅 이생도 진이 뒤를 따랐고 남사당놀이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보름달은 아침 해가 붉게 떠오르자 하늘의 자리를 내어주며 서쪽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넓디넓은 하늘의 자리에서 떠나기가 서러운지 붉은 태양이 아침 하늘에 불쑥 솟구치고서야 겨우 자리를 비켜주었다.

태양은 천상 사내여서인지 보름달이어도 여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하늘자리를 계속 버티지 않았다.

진이는 말로는 이생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으나 마음 한 구석엔 따뜻한 양지를 만들었다.

이생 정도면 마음을 터놓고 투정을 부리며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세양과 이사종은 넘치고 처졌으며 어쩌면 이생이 자기에게 딱 맞는 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렇게 생각하자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화담이 홀연히 나타나 학춤을 추며 힐긋힐긋 진이를 훔쳐보았다.

- 29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7화)

 
 

한양 손님을 통해 진이는 남사당(男寺党)에 대해 오래전부터 정보를 모아왔다.

남색사회(男色社會)에 대한 관심이 발동하였고 진이가 이제 조선사회에서 더 이하 신분은 없는 남사당에 뛰어들 태세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리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들 가네.

민요로까지 나돌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고 바우덕이(金巖德:1848~1870)를 지칭한다.

그런데 340년 전에 진이가 남사당에 매료되어 수년 동안을 그들과 지냈고 위의 노래는 최근의 것이며 조용했던 마을이 오랜만에 떠들썩하다.

뙤약볕 아래 논밭 일로 허리 한 번 제대로 못피던 농사꾼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마을 처녀들은 멀리 숨어서 가슴을 조이며 놀이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대낮 같이 환하게 흔들리는 횃불아래 춤추는 그림자들, 그 위로 어지럽게 퍼지는 흥겨운 풍물놀이...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남사당패들의 신나는 놀이가 한창이고 풍물놀이에 이어 버나(대접)돌리는 묘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살판(땅재주)이 이어졌다.

그런데 구경꾼 속에서 남사당놀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진이가 눈에 띄었고, 송도에선 보기 어려운 남사당놀이를 보기 위해 한양까지 내려왔다.

조선의 상층부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보고 몸으로 체험하여 봤으니 이제는 최하층민인 천민의 세계도 보려함이다.

고려를 연성(軟性) 국가로 조선은 경성(硬性) 국가로 진이는 보고 있는 것이다.

지족선사와의 뜨거웠던 하룻밤도 외롭고 쓸쓸하고 사내 살 냄새가 아쉬울 때는 새록새록 그리워졌다.

사내들은 진이를 뜨악해 하며 돈을 주고 육체적 기쁨을 맛보려는 족속은 많은 화대가 부담이 되어 쉽게 품을 수 없으며

돈은 많으나 신분이 너무 낮으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아 진이는 이래저래 기명(妓名·명월明月)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존재다.

지금 남사당패의 흥겨운 놀이판의 구경꾼들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엔 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남사당패 놀이는 점점 열기가 더해 가고 매호씨(어릿광대)와 살판쇠(땅재주꾼)가 나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입을 쩍하고 맞추어 “안암팍이 분명하니 앞곤두부터 넘어가는데 휙휙”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손을 짚더니 한 바퀴 공중회전을 하였다.

어둠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구경꾼들이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살판쇠는 다시 뒷걸음질을 치는가 싶더니 다시 손을 짚고 뒤로 한 바퀴 사뿐히 돌았다가

입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두 손으로 거꾸로 서서 걷다가 금세 한손으로 거꾸로 걷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살판쇠는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렷다.”라 하고

신명나게 껑충껑충 위로 뛰어 몸을 틀고는 공중회전을 하려는 듯 몸을 솟구쳤고 그 밑에서 벌겋게 불을 담은 놋화로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살판이 끝나자 보기 드문 미녀 어름사니(줄타기 재주부리는 광대)가 나와 매호씨와 줄고사를 올렸고 꽹과리, 징, 장구소리에 날라리까지 합세하였다.

줄고사가 끝나자 장삼에 고깔 쓰고 중 모양을 한 여자 어름사니는 키를 훌쩍 넘게 매단 줄 위로 오르면서 재담 한마디를 했다.

“중 하나 내려온다. 중 하나 내려온다. 저 중 거동 보소. 억단(얽었담)말도 빈말이요.”라고 맑은 목청으로 중 타령을 뽑았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기예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와 횃불 조명으로 음영이 짙은 미모에 구경꾼들은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구경꾼 속의 진이는 고독이 휘오리가 점점 더 세어져갔다.

내가 임을 그리며 울고 지내니/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하구나./

나에 대한 말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 지는 달 새벽 별만이 아실 것이리/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아아!/ 내 죄 있다 우기던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나는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나에 대한 뭇사람들의 거짓말이여/

슬픈 일이로다. 아아!/ 임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아아, 님이여! 내 말씀 다시 들으시고 사랑해 주소서...

'정과정'에 나오는 고려가요다.

그렇게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진이(明月)는 몸서리 쳐지도록 외로운 것이다.

소세양·이사종·벽계수·이생, 그리고 화대를 주고 육체의 허기를 채우고 벌·나비가 꿀만 빨아먹고 훨훨 날아가듯 사내들은 모두 제 둥지로 가버렸다.

정작 진이의 뻥 뚫린 가슴을 메우려 할 때는 사내들은 옆에 있지 않았고 지금이 바로 그럴때다.

진이는 품에서 태상주를 꺼내 병 채로 마셨고 바로 이때 누군가 술병을 가로챘다.

“안주도 없이 독주를 마시면 안 되오! 저리 가서 국밥과 함께 드시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헐레벌떡 진이 곁을 떠났다가 여자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진이가 한양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하던 때다.

화대도 없이 어떻게 육체의 허기를 채울 수 없을까 궁리를 하며 서성대고 있을 때 극적으로 진이와 해후하였고 사내 좋고 여자도 싫지 않을 상황적 분위기다.

남사당 놀이판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고 높이 있는 미녀를 더 자세히 보려고 일어선 구경꾼들을 앉히는 소리에 놀이판이 잠시 소란해졌다.

그 사이 어름사니는 장삼을 벗어던지고 전복(戰服)차림이 되어 갖은 걸음으로 재주를 부렸다.

앞으로 뒤로 걷다가 줄을 타고 앉아 화장을 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앞으로 가다가 뒤로 두 발로 뛰어 돌아앉기도 하였다.

어름사니가 움직일 때마다 멍석 깔린 마당에 그림자가 출렁이었다.

“여기에 이러고 있을 것이오? 밤도 깊었소이다. 어서 주막으로 갑시다!

안성엔 삼남(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오. 국밥이 아주 맛이 좋소!”

이생은 진이의 등에 손을 얹고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 듯 주막으로 몰고 갔다.

진이는 진이대로 이생은 또한 이생대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를 마신 후 운우지락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익숙한 부부모양 말이 필요 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고 오랜만에 해우 한 연인 같이 거칠 것이 없다.

이생이 들어가면 진이가 깊이깊이 받아 물레방아 돌 듯 척척 맞아 돌아갔고 뒷산의 소쩍새도 그들의 운우지락을 응원하듯 목청껏 노래불렀다.

- 28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6화)

 
 

집으로 내려온 진이는 계절이 바뀐 어느 여름날 다시 지족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으며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젯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중놈 주제에 내가 제자로 들어가겠다는데 거절을 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천천히 가자! 나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사실 진이도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지난봄에 지족선사에 당한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더 관능적으로 춤을 추려하고 마침 연못엔 연꽃이 절정이며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진이가 풍덩 빠졌다.

고혹적 춤을 한바탕 추면 지족선사도 물에 빠진 중생을 그냥 하산하라 매몰찬 말을 못할 것을 노린 계략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했듯이 진이는 기어코 지족선사를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하는 꿈을 접지 않는다.

진이에게 포기는 없으며 그녀가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의 신분으로 바뀐 충격에 장님이 된 역경을 거치면서 사내들에 대한 분노로 기생의 길을 택했으며

그같은 생각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이기도 하고 모녀는 똑같이 장님이 되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끝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진이는 기적적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다시 볼 수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지금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자유인으로 선언한 이후 숱한 역경 속에서도 남성위주 사회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는 것도 그 전략의 하나이고 승무는 독무(獨舞)로 고혹적인 동시에 예술성도 높다.

그 춤을 지금 진이가 추며 춤을 추는 주인공의 역량에 따라 춤의 예술성과 내용이 달라진다.

진이의 승무에선 그녀의 삶과 예술의 세계가 농축되어 나온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에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머리 등의 장단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의 춤이다.

신음하듯 움틀 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까지 범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법열(法悅)이

불변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은 장삼의 춤사위가 혼화(渾和)로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속에 신비로움과 정교로움의 조화의 극치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 매력이라고 하겠다.

진이가 결국 이겼으며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버티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복자인 진이의 가슴이 뻥 뚫어진 느낌을 받으며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만산담에서'를 번개처럼 떠올렸고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30년이나 벽면하며 극락왕생을 꿈꾸었을 한 사내의 영혼을 울린데 대한 자책감과 옹졸함에 울고 싶어졌다.

낚시 드리우고 넓은 바위에 앉으니/ 물 맑아 한가롭기 그지없다./

고기들은 연못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원숭이는 섬에 자란 등나무를 타고 논다./

그 옛날 여인의 허리의 옥을 풀어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산에서 전해졌던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달빛 타고 노래하며 노 저어온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고 어떤 삶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각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이가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하룻밤에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고 당나라 시인 맹호연 시를 떠올린 것은 의외다.

30년 벽면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거운 하룻밤의 운우지정으로 접수했으면 통쾌하여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불렀을 터인데 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맹호연은 화가이며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도 친교가 두터운 도연명을 존경하는 전원주의 시인이다.

그런데 유독 진이가 맹호연의 시를 떠올렸음은 좀 더 지조를 갖고 버텼으면

자신이 뜨겁고 향기로운 가슴으로 품기를 포기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은 아닌지 보여지는 시다.

지족암에서 진이와 화촉동방의 뜨거운 밤을 보낸 지족선사는 그후 종적을 감추었다.

조계(曹溪)에 부끄러웠을 것이고 스스로도 맑은 정신으론 대명천지 하늘 아래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기생으로 인해 30년 벽면 수행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상 사람들을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대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제 정신이 아닌 수도승이었을 터다.

아무튼 성리학 나라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진이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양곡 소세양·종실의 후예 벽계수 등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그녀의 품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명월(진이 妓名)의 신비고 세상 사람들이 겪어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명월의 신비는 겪어본 사람도 품을 떠나면 다시 그 신비함에 아리송해 하는 것이 바로 명월의 신비함이다.

진이는 지족암에서 하산 한 후 오늘로 열흘째 몸져누웠다.

“이 미음이라도 먹어야 하느니라.”

옥섬이모의 간곡함이고 옥섬이모는 어머니 현학금의 분신이나 다름없으며 옥섬의 말엔 어머니가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요. 거기 놓고 나가 보세요.”

진이의 눈엔 지금도 지족선사가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천둥번개를 맞듯이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표시했던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맹수가 사냥하여 먹이를 한입 크게 물은 그런 표정이었고 그 표정이 놀라움과 경이로운 감흥이 함께 섞인 울음의 분위기였다.

진이는 그 표정이 가여웠고 지족선사의 “이 작은 절이 움직인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겠소이까?”의 말이 새삼 귓가에 생생하다.

다시 진이는 맹호연의 '국화담 주인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를 떠올렸다.

국화담에 다다르니/ 마을 서편으로 해 이미 저물었네./

주인은 높은 곳에 오르러 떠났고/ 닭과 개만 남아서 집을 지킨다.

진이가 지족선사를 처음 지족암으로 찾아 갔을 때 위의 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애정 어린 간곡함에 그날 오후 흰죽 한 그릇을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이는 언제 자리에 누워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거문고 연습에 밤낮이 없다.

그런데 거문고 음률이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아닌 처연하고 가슴이 시린 황량한 음률이었다.

- 27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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