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26화)

 
 

집으로 내려온 진이는 계절이 바뀐 어느 여름날 다시 지족암으로 발길을 재촉하였으며 직성이 풀리지 않아 어젯밤을 꼬박 뜬 눈으로 샜다.

“중놈 주제에 내가 제자로 들어가겠다는데 거절을 해?”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졌다.

“천천히 가자! 나는 너의 발걸음을 따라 갈 수가 없구나.”

사실 진이도 숨이 턱까지 치밀어 올라왔지만 지난봄에 지족선사에 당한 모욕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은 더 관능적으로 춤을 추려하고 마침 연못엔 연꽃이 절정이며 연꽃이 만발한 연못에 진이가 풍덩 빠졌다.

고혹적 춤을 한바탕 추면 지족선사도 물에 빠진 중생을 그냥 하산하라 매몰찬 말을 못할 것을 노린 계략이다.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 했듯이 진이는 기어코 지족선사를 자신의 품으로 오도록 하는 꿈을 접지 않는다.

진이에게 포기는 없으며 그녀가 사대부집 딸에서 서녀의 신분으로 바뀐 충격에 장님이 된 역경을 거치면서 사내들에 대한 분노로 기생의 길을 택했으며

그같은 생각은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기 위한 일종의 복수이기도 하고 모녀는 똑같이 장님이 되었다.

어머니 현학금은 끝내 세상을 다시 보지 못했으나 진이는 기적적으로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는 이승을 다시 볼 수 있는 광명을 찾았다.

지금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자유인으로 선언한 이후 숱한 역경 속에서도 남성위주 사회에 도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금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는 것도 그 전략의 하나이고 승무는 독무(獨舞)로 고혹적인 동시에 예술성도 높다.

그 춤을 지금 진이가 추며 춤을 추는 주인공의 역량에 따라 춤의 예술성과 내용이 달라진다.

진이의 승무에선 그녀의 삶과 예술의 세계가 농축되어 나온다.

붉은 가사에 장삼을 걸치고 백옥 같은 고깔에 버선코가 유난히 돋보이는 차림으로 염불·도드리·타령·굿거리·자진머리 등의 장단 변화에 따라 일곱 마당의 춤이다.

신음하듯 움틀 거리는 초장의 춤사위에서부터 열반의 경지까지 범속을 벗어날 수 있다는 법열(法悅)이

불변의 진리와 더불어 표상된다는 말미의 춤사위에 이르기까지 뿌리고 제치고 엎은 장삼의 춤사위가 혼화(渾和)로

소쇄(瀟灑:기운이 맑고 깨끗함)속에 신비로움과 정교로움의 조화의 극치야말로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 매력이라고 하겠다.

진이가 결국 이겼으며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버티다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도로 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정복자인 진이의 가슴이 뻥 뚫어진 느낌을 받으며 당나라 시인 맹호연의 '만산담에서'를 번개처럼 떠올렸고 갑자기 자신이 미워졌다.

30년이나 벽면하며 극락왕생을 꿈꾸었을 한 사내의 영혼을 울린데 대한 자책감과 옹졸함에 울고 싶어졌다.

낚시 드리우고 넓은 바위에 앉으니/ 물 맑아 한가롭기 그지없다./

고기들은 연못가 나무 아래로 모이고/ 원숭이는 섬에 자란 등나무를 타고 논다./

그 옛날 여인의 허리의 옥을 풀어 주었다는 얘기가/ 바로 이 산에서 전해졌던가./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달빛 타고 노래하며 노 저어온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목표가 있고 어떤 삶의 목표를 이루는 순간 인간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운다.

목표가 없는 삶은 망각의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진이가 지족선사의 30년 벽면 수행을 하룻밤에 도로 아미타불로 만들어 놓고 당나라 시인 맹호연 시를 떠올린 것은 의외다.

30년 벽면 수행의 지족선사를 뜨거운 하룻밤의 운우지정으로 접수했으면 통쾌하여 춤을 추며 콧노래를 불렀을 터인데 진이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맹호연은 화가이며 시불(詩佛)로 불리는 왕유와도 친교가 두터운 도연명을 존경하는 전원주의 시인이다.

그런데 유독 진이가 맹호연의 시를 떠올렸음은 좀 더 지조를 갖고 버텼으면

자신이 뜨겁고 향기로운 가슴으로 품기를 포기 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은 아닌지 보여지는 시다.

지족암에서 진이와 화촉동방의 뜨거운 밤을 보낸 지족선사는 그후 종적을 감추었다.

조계(曹溪)에 부끄러웠을 것이고 스스로도 맑은 정신으론 대명천지 하늘 아래 고개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한낱 기생으로 인해 30년 벽면 수행이 물거품이 되었으니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세상 사람들을 맨송맨송한 정신으로 대할 수 있으면 그 또한 제 정신이 아닌 수도승이었을 터다.

아무튼 성리학 나라 조선의 사대부 사회에서 진이의 명성은 하늘을 찌른다.

양곡 소세양·종실의 후예 벽계수 등 내로라하는 남정네들은 그녀의 품에 들어오면 힘을 못 쓰는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 명월(진이 妓名)의 신비고 세상 사람들이 겪어보지도 않고 알고 있다면 그것은 신비가 아니다.

명월의 신비는 겪어본 사람도 품을 떠나면 다시 그 신비함에 아리송해 하는 것이 바로 명월의 신비함이다.

진이는 지족암에서 하산 한 후 오늘로 열흘째 몸져누웠다.

“이 미음이라도 먹어야 하느니라.”

옥섬이모의 간곡함이고 옥섬이모는 어머니 현학금의 분신이나 다름없으며 옥섬의 말엔 어머니가 딸의 건강을 염려하는 정서가 고스란히 담겼다.

“알았어요. 거기 놓고 나가 보세요.”

진이의 눈엔 지금도 지족선사가 자신의 음부에 들어와 천둥번개를 맞듯이 놀라움과 기쁨을 동시에 표시했던 얼굴 표정이 생생하다.

맹수가 사냥하여 먹이를 한입 크게 물은 그런 표정이었고 그 표정이 놀라움과 경이로운 감흥이 함께 섞인 울음의 분위기였다.

진이는 그 표정이 가여웠고 지족선사의 “이 작은 절이 움직인다 하여 세상이 달라지겠소이까?”의 말이 새삼 귓가에 생생하다.

다시 진이는 맹호연의 '국화담 주인을 찾아가서 만나지 못하고...'를 떠올렸다.

국화담에 다다르니/ 마을 서편으로 해 이미 저물었네./

주인은 높은 곳에 오르러 떠났고/ 닭과 개만 남아서 집을 지킨다.

진이가 지족선사를 처음 지족암으로 찾아 갔을 때 위의 시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이는 옥섬이모의 애정 어린 간곡함에 그날 오후 흰죽 한 그릇을 먹은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진이는 언제 자리에 누워 있었느냐는 듯이 그녀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어디에 쓰려는지 거문고 연습에 밤낮이 없다.

그런데 거문고 음률이 기쁨과 환희의 소리가 아닌 처연하고 가슴이 시린 황량한 음률이었다.

- 27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5화)

 
 

초하루에 시작했던 고려미인의 화장은 보름이 되는 날에 절정을 이룬다.

벽계수와 헤어진 이후에 송도팔경을 유람하고 진이는 고려미인 화장에 열중이다.

그동안 소세양, 이사종, 이생 등과 뜨거운 살을 섞으면서 몸이 다양하게 속물화 된 것을 정화하려는 속내다.

기생의 몸은 돈이 되는 사내라면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음이나 진이는 여느 기생과는 다르다.

몸은 청루가 즐비한 청교방 거리에 있으나 영혼은 선계(仙界)에 있다.

진이가 기생이 된 것은 사내들의 성화에 못이겨 신분이 바뀌면서 출발되었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호의호식하는 어느 날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다.

하지만 본래 서녀였으니 사대부집 며느리는 당치않은 일이라며 동생에게 양보하라는 압력을 못이겨 포기하고 집을 나와 기생이 되었다.

진이가 기생이 된 사연은 또 있는데 이웃집 총각이 상사병에 걸려 죽었는데 그의 상여가 집 앞에 와 멎어 옴짝달싹 하지 않아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 속곳으로 상여를 덮어주어 상여를 떠나보냈고 영혼이지만 처녀가 총각의 여자가 되었다.

진이는 그후 더럽혀진 몸으로 기생이 되어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삶으로 갔으며 기구한 삶이다.

지금 고려여인으로 곱게 몸단장과 화장을 하는 것은 천마산 지족암서 30년 벽면 수행을 하는 생불(生佛)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품으려 하는 것이다.

동그랗고 아담한 얼굴, 자그마한 아래턱, 다소곳한 콧날과 긴 코,

약간 통통한 뺨과 작고 좁은 입, 흐리고 가느다란 실눈썹과 쌍꺼풀 없이 가는 눈에 정적인 얼굴....

지금 진이가 그렇게 화장을 하여 30년 벽면 수행하는 지족선사를 보통의 세상으로 데려오려는 속내다.

그동안 진한 화장으로 하루하루를 세상 남자들을 황홀하게 해주었으나 지족선사는 사람 자체가 다르며청정 인간이다.

진이는 청정 인간이 원할 여인이 되려고 벌써 열흘째 몸을 꾸미고 승무(僧舞)까지 익히고 있다.

진이의 승무는 환상적이며 남색치마에 흰 저고리, 흰 장갑, 흰 고깔, 붉은 가사, 양손엔 부채를 들어 마치 선녀의 학춤 같은 춤새다.

송도엔 여전히 고려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고 도성에서부터 고을고을마다 사람들의 풍습과 언행이 아직까지 억불승유 정책이 착근되지 못한 상태다.

진이가 지금 고려여인이 되어 승무를 추면서 지족선사를 뜨겁고 화려하게 품으려 하며 쉽지 않은 목표다.

이번엔 아름다운 여인의 승무가 무기며 이 전략이 통하지 않으면 청상과부로 변장하여 유혹하려한다. 두 계획이 모두 불교와 연이 닿는다.

천마산의 봄은 아름답고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엔 못 미치나 천마산도 계절마다 절경이다.

오늘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천마산 지족암으로 향하였고 지족선사를 뜨겁고 아름답게 품으려는 속내며 진이 옆엔 옥섬이모가 따랐다.

“천천히 걷자! 이 늙은이는 숨이 차서 못 걷겠다!”

“길이 멀어요. 자칫 가기도 전에 날이 저물면 어떻게 해요?” 진이의 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지족선사는 오후 늦게는 매일 지족암 연못가에서 산책을 즐긴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때 산책하는 지족선사 앞에서 승무를 추려는 생각이며 지금까지 진이가 손을 내밀어 거부한 사내는 없다.

지족선사도 그러하리라 믿고 지금 걸음을 재촉하고 있으며 산사의 오후는 짧다.

진이 일행이 지족암에 도착했을 때는 지족선사가 산책을 마치고 선방(禪房)으로 들어가려는 찰나다.

진이는 넙죽 큰절을 하고 제자로 삼아달라고 애원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하자 준비한대로 옥섬이모의 거문고에 맞춰 승무를 추기 시작하였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인 냥 하고//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접어 나빌레라.

4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그린 조지훈(趙芝薰·1920~1968)의 '승무'이다.

당시 진이가 지족선사 앞에서 추었을 '승무'는 더 고혹적 춤새일 것이다.

술에 장사 없다 하듯이 미녀를 막무가내로 손사례를 칠 사내가 있을까?

더욱이 천하일색 진이의 고혹적 유혹을 30년 벽면수행의 지족선사인들 마지막까지 석남(石男)인 냥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그런데 당나라 헌종 때 위와 같은 역사가 있으며 대 문장가 한유가 불교를 배척하는 불골표(佛骨表)를 올렸다가 지방으로 좌천되었다.

그곳(潮洲)의 영산 축융봉에 태전선사가 있는데 고명한 학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한유는 대학자답지 않게 울화가 치밀어 명기(名妓)로 이름난 홍련(紅蓮)에게 10일 내에 태전선사를 파계 시키면 큰상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소위 말하는 미인계(美人計)지만 미인계는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고 홍련의 치마폭에 태전선사가 써 보낸 시는 이러하다.

십년동안 축융봉을 내려가지 않고/ 색(色)을 관(觀)하고 공(空)을 관리하니, 색이 공일 뿐이네/

어찌 조계(曹溪)의 한 방울을/ 홍련의 한 잎새에 떨어뜨리겠는가!

이 시를 본 한유는 감탄하여 태전선사에게 불법(佛法)의 요지를 되려 배웠다는 아이러니 한 역사다.

아무튼 진이는 위의 역사를 틀림없이 떠올렸을 것이며 그녀는 사내가 자신을 가지고 주인행세 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싫어한다.

아니 저주한다고 하는 것이 맞다.

그래서 진이는 사내가 자신의 불두덩 위에서 씩씩대며 황홀경에 빠져 있어도 어머니 품에 안긴 젖먹이 정도의 재롱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해도 그녀는 자존감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는 속내다.

-26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4화)

 
 

자유인이 된 진이는 마음에 없는 사내와는 잠자리를 하지 않으며 화대로만 몸을 팔 때에는 영혼이 통곡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해 옥섬이모가 꼭 접대해야 할 한양손님이라 하여 하룻밤을 잤는데 그후 보름을 앓았고 그런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송도가 고려의 수도에서 한양이 조선의 서울이 된 이후 진이의 명성은 절대에서 상대적으로 바뀌었다.

한양엔 물 좋은 미녀들이 많고 당시 한양에서 송도 진이와 겨뤄볼 명기(名妓)는 성산월(星山月)과 관홍장(冠紅粧) 등에 불과하다.

그들은 장악원에서 노래와 춤 등을 배워 한양의 한량들은 물론 고고한 학자 관료인 사대부들에게도 밤엔 질펀한 향연의 대상이 되었다.

한양의 물 좋은 기녀들에게 싫증이 나면 그들은 송도에까지 원정 사랑놀이에 빠졌고 상대는 진이였다.

당시 한양은 변화와 화려함을 동시에 갖고 있었으나 세련된 멋과 아름다움의 극치 외에 송도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소위 송도삼절(서화담·박연폭포·황진이)외에 삼천리금수강산이 그것이고 한양의 한량들이 송도에 오면 진이가 누구나 먼저이다.

하지만 제일 먼저 찍는 것은 자유지만 상대를 고르는 선택권은 진이에게 있으며 몸의 당사자인 진이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이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내는 소세양과 이사종이며 그들과는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 계약결혼을 맺어서다.

그런데 지금 벽계수와는 이별의 순간이 시계소리처럼 찰칵찰칵 다가옴이 왠지 싫다.

여명이 밝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진이로서는 처음 느껴보는 마음이다.

견디다 못해 “여보! 당신 하루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라고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에게 혼잣말을 하였고 시간이 꽤 흐른 뒤다.

벽계수의 새벽물건이 벌떡 일어나있고 사내 물건을 한 두번 본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그 물건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 물건을 여자에게 넣고 욕정을 채우는 사내들이나 그 물건이 들어오면 감정이 달아오르는 여자의 심정을 진이는 번개처럼 떠올렸다.

정복감이다. 사내는 자신이 나온 자궁을 다시 정복하는 것이고 여자는 정복자를 사로잡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전쟁이다.

뺏고 뺏기는 남자와 여자의 영토전쟁에서 진이는 정복자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

소세양과 이사종, 그리고 벽계수도 진이의 사람으로 넘어왔는데 지금 그가 날이 밝으면 한양으로 떠나려 한다.

그는 한양에 가서 진이를 정복하고 왔다고 포효할 것이다.

사실은 진이가 벽계수를 포로로 만들었는데 제가 정복하고 영토까지 만들어 놓았다고 호언장담할 것이 뻔하다.

아무튼 벽계수에게 지금까지 어느 남자에게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뜨거운 연정을 느꼈다.

그래서 하루 이틀 더 있다 가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하고 싶지는 않으며 벽계수 스스로 더 있도록 유도하려는 속내다.

낭군께 권합니다./

귀 달린 금 술잔을/

가득 따르겠사오니/

사양하지 마시옵소서./

꽃피면 비바람 되 심하게 분다지요./

인생 백년이라지만/

이별 없는 날이 몇 날이나 될까요.

당나라 우무릉(于武陵)의 시다.

아니나 다를까? 신나게 육체의 허기를 채운 벽계수는 새벽 물건이 일어나자 다시 진이를 끌어당겼다.

여자는 생각하지 않고 제 욕심을 급히 채우고는 “내 몸이 안 좋아서 하루 이틀 더 쉬고 가야겠소!”

빙그레 웃으며 결론을 내렸고 진이의 생각은 상관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면 그렇지. 네 놈이 첫 결심에 떠날 놈이 아니지!’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요. 화대는 넉넉히 받았으니 더 내라고는 하지 않을게요! 그러나 조건이 있어요.

각 방을 쓰는 거예요. 당초 계약은 오늘까지니까요“

진이의 태도가 단호하였고 그러면서 고려가요 '만전춘별사'(滿殿春別詞)를 떠올렸다.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넋이라도 임과 한곳에/

남의 일로만 여겼더니/

어기던 사람 누구였던가, 누구였던가./

오리야 오리야/

어린 비오리야/

여울은 어디 두고 소에 자러 오는가./

소 곧 얼면 여울도 좋습니다. 여울도 좋습니다.

작자 미상이다.

'만전춘별사'는 정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특히 기녀들 세계에선 비록 돈을 받고 몸을 내주었으나

살을 섞고 나면 야릇하게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자신도 모르게 눈물까지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되었다.

진이도 사랑엔 약하며 화대를 받고 몸을 내어주어도 영혼까지 울리는 사내가 더러 있으며 벽계수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이 사내를 훌쩍 떠나보내면 두고두고 영혼이 통곡할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하루 이틀 더 있는 다니 천만다행이고 마음속으로 더 있기를 바랐던 것이 성사되어 가슴이 벌렁거리게 기쁘나 표정을 숨기었다.

별방을 써야 한다는 조건도 사실은 일부러 붙인 조건에 불과하고 바로 옆방인데 문지방만 넘으면 되는 방이며 분냄새까지 건너가는 거리다.

이튿날부터 진이는 겸상으로 저녁을 먹을 때까지는 다정한 잉꼬부부모양 행동하였고 거기까지였다.

잠자리는 문지방 건너 방에 차렸다.

평소 잠자리 옷차림과 달리 오늘은 남청색 치마에 미색 저고리로 트레머리를 단아하게 틀어 올리고 기초화장만 한 채 자리에 들었다.

창밖에는 보름달이 휘영청 밝다.

진이의 아랫도리엔 속곳이 없으며 벽계수가 문지방을 넘어 올 것이 뻔하여 일부러 입지 않았다.

하지만 밤이 깊고 새벽닭이 홰를 쳐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고 한양 사대부와 송도 기생의 자존심 싸움이다.

여명이 밝자 진이는 스스로 부엌에 나가 아침을 지어가지고 들어왔다.

“잘 주무셨어요?”

벽계수는 말 대신 빙그레 웃었으며 낮엔 말을 타고 병부교와 대동강을 한 바퀴 돌고 들어왔으며 말도 별로 없이 쓸쓸한 표정이다.

이튿날도 진이는 속곳을 입지 않은 채 별방에 자리를 폈으며 벽계수는 저녁을 먹을 때 태상주를 두 병이나 비웠다.

그리고는 일찌감치 코를 골며 잠들었고 새벽이 되어도 벽계수는 문지방을 넘어오지 않았다.

진이가 넘어갔고 깊은 잠에 빠진 벽계수 물건은 물푸레나무처럼 땅땅하고 튼실하게 일어나 있으며 속곳을 입지 않은 진이가 하늘이 되었다.

벽계수는 끝내 모르는 척 진이에게 몸을 맡기고 마음껏 황제가 소녀경(素女經)을 즐기듯 기쁨을 만끽하였다.

벽계수 작전에 천하의 진이가 속은 듯 속아주었고 진이는 벽계수가 한양으로 가는 길에 예성강까지 배웅하였다.

- 25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3화)

 
 

아침밥을 먹고 그들은 상원암을 향하였다.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금강산은 계절마다 산명이 바뀌면서 아름답고 수려하지만 장엄하지 못하다.

하지만 묘향산은 수려함과 장엄함을 동시에 갖추었고 진이와 벽계수는 발길을 재촉한다.

상원암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오려는 계획이며 장관인 만폭동 폭포도 구경하고 바위 위에 절묘하게 건립된 상원암에서

하룻밤의 꿈을 꾸고 정자 인호대(引虎臺)에서 장엄 수려한 묘향산의 절경을 만끽 하려는 속내다.

벽계수는 따뜻한 진이의 손에서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으며 상원암으로 가는 길은 험하다.

스님들이 이따금씩 오가는 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고 그나마 낙엽이 덮여 있어 전인미로(前人未路)상태다.

넘어지고 자빠지길 수십 여번 끝에 오후가 한참 지나서야 상원암에 도착하였고 노 주지승과 동자승 둘뿐이다.

점심을 해결하고 잠자리까지 약속받은 진이와 벽계수는 인호대를 향하였다.

인호대는 글자 그대로 호랑이가 사람을 안내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향암 마을에 사는 어느 효자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 위해 100년 된 산삼을 캐려고 산을 헤매고 있을 때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효자를 업어 인호대까지 올려다 주어 산삼을 캐서 병석의 어머니에게 효도를 했다는 전설이 있었다.

또한 용연 폭포 밑의 절벽 앞에서 상원암으로 가려던 길손이 길을 잃고 헤맬 때

역시 소만한 호랑이가 나타나 꼬리로 낙엽을 치우고 길을 안내하여 상원암까지 안내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가을해가 짧으니 빨리갔다 오라는 말을 뒤로하고 진이와 벽계수는 끌어주고 밀어주며 인호대에 올랐다.

발아래 펼쳐진 오색단풍의 바다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능하여 입을 모아 ‘야호!’ 소리만 외쳤다.

"서방님 저기 저 폭포는 산주 폭포와 용연 폭포이고 저기 저것은 천신 폭포입니다.

이곳 인호대외엔 세 폭포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즐기는 것을 인호관폭이라 하여 묘향산팔경이라 해요.

지금이 늦가을이라 단풍밖에 볼 수 없으나 봄엔 두봉화(철쭉꽃)가 장관이에요!

해가 짧아졌어요. 이제 빨리 내려가야 되요! 서둘러도 늦을 것 같아요.“

둘은 서두르다 상주암에 이르러 진이가 바위에 깔린 낙엽을 밟고 넘어져 발목을 접질렸다.

벽계수에게 업혀서 상주암에 도착했을 때는 보름달이 창공에 두둥실 떴으며 주지스님과 동자승이 나와 맞았다.

“내 뭐라 했소이까. 늦지 않게 서두르라 했지 않소!”

업혀오는 진이를 보고 호된 책망이며 방에 들어가니 동자승이 저녁상을 가져다주었다.

서둘러 저녁을 먹은 진이는 거문고를 땡겼으며 조용조용히 '창부타령'(倡夫打令)을 불렀다.

응향각 들어가서 오동향로 구경하고/ 심검당과 관음전, 동림헌과 미타전 망월주를 차례로 구경하고/

유산길 찾아가서 안심사 돌아드니/ 무수한 부도비는 도승의 유적이라/ 명월은 교교하고 청풍은 소슬이라/

녹수청산 깊은 곳에 상원암을 찾아가서/ 대해포 구경하니 정신이 쇄락하여 이층철사 휘어잡고/

인호대 올라가니 송풍은 거문고요 두견성은 노래로다./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는 못하리라.

"창부타령 63곡 중 한곡입니다.” 진이는 거문고를 벽에다 세우고 일어나 살포시 절까지 하였다.

발목을 접질려 업고 온 감사의 표시며 벽계수는 진이의 거문고에 맞춘 창부타령에 취해 주지스님의 방으로 가는 것도 잊고 잠에 빠졌다.

사내는 역시 사내고 진이가 옆에 있는데 그냥 잘 벽계수가 아니며 비몽사몽이라지만 생시같이 진이의 남자노릇을 하려 덤빈다.

진이도 피곤하지만 사내가 싫지가 않았고 진이의 몸은 사내를 밥 먹듯이 맞았던 것이 아닌가!

허리띠를 풀고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바지를 내리니비릿한 사내 물건이 뱀처럼 꿈틀대며 들어와 목이 마르면 냉차를 마셨던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진이는 2~3년 기생으로 화대(花代)를 받고 송도를 넘어 한양과 두만강 건너 중국 사신들까지 품어보았다.

조선의 수도는 서울이고 서울이 조선의 중심이지만 송도는 중국의 문물이 들어오는 관문으로 나라가 바뀌어 수도의 기능은 잃었으나 문화의 화려함은 살아있었다.

진이가 이젠 기계(妓界)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한양의 지체 높은 문객(文客)이나 중국의 묵객(墨客)들은 송도 명월의 달빛아래

하늘의 소리인 거문고 가락에 송도 명주인 태상주를 마셔 보기를 평생의 소원인 소위 버킷리스트의 하나로 꼽고 있었다.

진이는 사내들의 욕망의 온도계를 가지고 있으며 중국인들은 황하를 허풍을 떨어 강 이름을 붙였듯이 통큰 척 하지만 실제 화대는 짜다.

사신들이 대부분이지만 조선정부의 접대비는 넉넉히 화대를 주며 환대를 부탁받으나 제 돈으로 잠자리를 할 땐 되놈의 본색을 드러냈다.

잠든 사이 화대를 떼먹고 줄행랑을 친 되놈도 진이는 겪었으며 손이 크기로는 조선의 중인(中人)들이다.

북경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중인(역관)들은 떼돈을 벌었고 그들이 송도에 오면

청교방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고 거문고 소리와 교성이 거리를 메웠으며 북방민족의 독특한 대륙기질의 본색이다.

송도엔 개성상인이 있으며 고려인삼을 연경에 가서 비단과 보석으로 교환해와 떼돈을 번 백부자(白富子)가 대표적이다.

그는 남산동에 고래 등 같은 집을 짓고 왕실도 부러워하는 호화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진이한테 첩이 되어 달라는 제의를 여러번 해왔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런 제의가 있은 후론 명월관 출입도 막았고 자유인의 자격에 흠이 되는 어떤 제의도 진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혼의 자유를 위함이다. 진이도 한 사내에게 마음을 주면 일편단심 목숨을 걸었다.

지금 벽계수와 관계가 그러하며 밤마다 뜨겁게 살을 섞고 나니 봄볕처럼 따뜻한 정이 들기 시작하였다.

오늘밤이 새고 내일이 되면 벽계수는 다시 한양으로 가며 그에겐 사대부의 풍모도 있고 패기도 보였다.

이제 헤어져야 하는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싶으며 지금 벽계수는 진이의 몸뚱이에서 욕망을 만끽하고 코를 벌름거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팽창되었던 물건은 오뉴월 엿가락같이 축 늘어진 채 삐죽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으며 장관이다.

진이도 벌거숭이인 채였고 그녀는 살포시 일어나 학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사랑하는 정인을 떠나 보낼 때만 추는 춤이며 양곡 송세양과 헤어질 때 마지막 밤에 추고 이번이 두 번째다.

- 24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2화)

 
 

알록달록한 단풍으로 곱게 갈아입은 묘향산은 단아한 한복으로 차려입은 미인도(美人圖)같다.

묘향산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향나무와 측백나무가 많아 싱그러운 향기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향기를 내뿜어 묘향산이라 했다는 산명(山名)의 유례다.

향기가 아침 안개처럼 피어나는 묘향산으로 가는 진이는 마음이 들떠 있고 보현사에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금강산 등 팔도유람을 떠나기 전에 이곳에 들려 어머니를 모셔놓고 떠났으며 어느새 5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렀다.

묘향산엔 비운의 황태자 양녕대군의 얘기도 숨겨져 있으며 양녕은 태종의 장남이다.

왕의 기대에 어긋남이 없이 성장하여 일찌감치 왕세자로 책봉되었지만 이상하게 이때부터 말썽을 일으켰고 섹스 스캔들이다.

태종에게 무한 신뢰를 받아 다음 보위가 보장되었으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어 셋째 충녕(후에 세종)에게로 왕위가 넘어가는 비극의 씨앗이 탄생하였다.

세종하면 훈민정음이 우리에게 상기된다.

양녕이 임금이 되고 충녕이 대군으로 끝이 났다면 오늘날 우리가 세계적인 한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하였다.

아무튼 양녕은 왕세자 자리에서 내려와 주류 천하 중 묘향산에 까지 왔다.

양녕은 동생 세종의 윤허를 얻어 송도를 거쳐 묘향산 유람에 나섰고 여기서 기생 정향(丁香)을 만나게 된다.

유난히 형제간 우의가 돈독한 세종이 주색(酒色)에 익숙한 형을 배려한 것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으라 했다던가? 양녕이 정향을 떼어놓고 떠날 때 그녀 치마폭에 쓴 칠언율시(七言律詩)다.

한 번의 이별로 음성 용모 듣고 보지 못하리니/

초대(楚臺) 어느 곳에서 좋은 때를 찾을고/

곱게 단장한 얼굴 누가 보리오/

잠긴 붉은 낯을 거울만이 알리라./

밤 달이 수 놓은 베게 엿보는 것도 미운데/

새벽바람 무슨 뜻으로 비단 휘장을 걷는고//

뜰앞에 다행히도 정향(丁香)나무 서 있는데/

어찌 춘정(春情)으로 굳이 꺾지 않으리오//

이별하는 길엔 향기로운 구름 흩어지고/

헤어진 정자엔 조각달이 걸렸어라/

가련타 잠 못 이뤄 뒤척이는 밤에/

뉘 다시 그대 수심 위로해 주리...

“혹 서방님께서 지금 소첩이 노래한 이 시를 알고 계신지요?”

진이가 설마 이 시를 알고 있으랴는 음성으로 물었고 아니나 다를까 한참이나 뜸을 들인 벽계수가

“글쎄다! 처음 들어보는 시인데...”라고 미안하고 계면쩍어 하는 목소리다.

“네 서방님 그러셨군요? 이 곳 송도 기방계에선 널리 알려진 노래예요!

양녕대군께서 정향이란 기생과 사랑을 나누고 헤어지기 아쉬워 쓰신 칠언율시가 아닌지요?” 진이의 음성에 자신이 붙었다.

보현사로 가는 길이 평탄치 않았으며 길마다 낙엽이 떨어져 말발에 치이고 밟혔다.

향나무와 측백나무에서 뿜어 나오는 싱그러운 향기는 어젯밤에 벽계수한테 시달린 육신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서방님은 소첩의 어디가 좋으셔서 이곳까지 오셨나요?”

벽계수는 진이의 물음에 아무 대답이 없었고 말위에서도 능숙하게 거문고를 타며 노래까지 하는 모습에 그만 기가 죽은 듯해 보이기까지 하다.

진이 말이 끝난지 한참 만에 “나는 지금같은 상황이 생길 것을 예상하지 못했소이다.”라고 말 엉덩이에 채찍을 가해 말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그만 떠들고 갈 길이나 빨리 가자는 태도였으며 말이 달리자 자연스럽게 진이는 거문고를 메고 벽계수 등에 매미처럼 착 붙었다

산사의 저녁은 일찍 왔고 특히 늦가을 끝자락의 해는 오후가 되자 금방 저물기 시작하였다.

진이가 4~5년 전에 어머니를 모셔 주지스님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다.

“주지스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아 예 진이 보살님! 진이 보살님도 그 동안 별일 없으셨지요?”

말은 그렇게 예사롭지 않게 인사말에 대꾸하면서도 옆에 있는 벽계수에게 시선이 꽂혔고 보기 드문 헌헌장부에 옥골선풍의 사내다.

“주지스님 오늘도 하룻밤 묵고 가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관세음보살...”

“그렇게 해 드려야지요. 진이 보살님은 우리 절에 특별한 분이시니 언제 오셔도 환영이지요! 4~5년에 쓰셨던 방에 유숙하시지요.”

말은 담담하게 하면서도 진이와 벽계수를 번갈아 훑어보았고 예사롭지 않은 관계로 보는 눈치다.

“아참! 진이 보살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사찰에선 잠자리에선 남녀유별이예요!”

주지스님의 남녀유별이란 말에 힘이 들어갔다.

“예 주지스님 이 보살 진이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저희들 방에 들어가 짐을 풀고 저녁 예불에 참석하겠습니다.”

진이는 서둘러 주지스님의 걱정스런 시선을 잠재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사내들이 자신을 옆에 두고 밤을 그냥 보내는 경우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불타는 사내의 욕정을 채워주어야 하는 것이 여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진이가 갑자기 고민에 빠졌다.

주지스님은 사미승(沙彌僧)편에 저녁을 보냈고 산채나물과 우엉무침에 감자가 들어있는 보리밥이다.

하지만 점심도 거른 저녁상은 꿀맛이고 저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벽계수 표정이 예사롭지 않고 주지스님 방으로 가기 전에 번개방사를 치르자는 눈치다.

사랑을 위해 한양에서 송도까지 온 사대부의 표상인 벽계수가 진이를 찾은 것은 수준 높은 시의 세계가 아닌

향기 나는 육체에 끌렸으리라는 생각에 이르자 진이는 사내의 뜨거운 시선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저녁상을 윗목으로 밀어놓고 뜨거운 살을 떼어 놓았을 때는 보름달이 산사의 밤을 대낮같이 밝히고 있었다.

“빨리 주지스님 방으로 가세요!” 진이가 벽계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등을 떠밀었다.

벽계수는 욕정을 마음껏 못 채운 표정으로 진이를 다시 한 번 포옹하고 긴 혀를 목구멍까지 넣었다 빼고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방문이 쾅하고 닫혔으며 나가고 싶지 않은데 마지못해 나간다는 행동이다.

문밖엔 저녁상을 들고 왔던 사미승이 합장을 하고 서 있으며 숨차게 뜨거웠던 방안 풍경을 사미승은 가슴을 조이며 상상했으리라...

어느새 밤은 깊어져 접동새 울음소리가 진이의 가슴에 와 머문다

- 23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1화)

 
 

벽계수의 첫날밤 욕망은 진이의 잦은 화장실 드나듦으로 끝내 불발되었지만 벽계수는 불만보다는 만족한 표정이다.

청사초롱의 불빛에 천하미색 진이의 알몸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아니고서야 즐길 수 없는 장관이 아닐까?

그러나 진이의 생각은 탈랐으며 감정이 고조되어 비몽사몽 상태에 생사를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나타나

기생의 자손은 너(진이)로 족하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어 화장실에 드나들면서 벽계수의 욕정을 냉각시켰던 것이다.

배란기엔 방사를 피하라는 경고며 여자로 엄마가 되고 싶었던 원초적 욕망을 그 뒤론 접기로 하였다.

아버지 황진사 집에서 사대부집 딸이었을 때 금지옥엽의 신분으로 고관대작집 청혼을

동생 난이한테 빼앗기고 기생의 딸로 태어나 부녀지간의 천륜을 끊고 기생이 된 사건을 되새겼다.

사내들의 욕망의 찌꺼기로 태어난 인생이 어찌 평범한 행복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란 생각에 이르자

자신의 욕망이 과유불급임을 깨닫자 소름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벽계수와 첫 방사는 결국 며칠이 지나서야 이루어졌고 배란기가 지나서였다.

진이는 새 남자를 만날 때마다 꽃잠(첫날밤)처럼 준비를 하였고 벽계수와도 그렇게 맞을 채비다.

초야권을 행사한 송모 송도유수와 같이 몸을 내줄 예정이며 화려한 기생의 몸이 아닌

선계(仙界)에서 잠시 지상으로 놀러와 이승의 남자를 맞는 선인(仙人)의 전인미로의 선녀(仙女)의 자태다.

알몸으로 거문고를 타는 모습에 벽계수의 욕정은 바람처럼 사라졌으며 너무 아름답고 황홀하여 다가갈 수가 없는 것이다.

“왜 그러고 계세요? 이리 오셔서 노래를 부르시던지 사랑을 하시던지 하세요!”

천하의 벽계수가 여자에게 주눅이 들기는 처음이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 손가/

인걸도 물과 같도다./

가고 아니 오는 것을...

진이의 '무제'(無題)다.

진이는 삼남과 금강산, 그리고 지리산 등 팔도유람을 하고 온 후 꿈결 같은 현실에 어머니 현학금과 전우치와 대화를 하게 되었다.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별한 남자와 사랑을 할 때는 어머니가 나타나 김시습과 중국의 두보로 변신, 새로운 학문세계를 말해주었다.

매월당(김시습 호)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세종이 승정원으로 불러 지신사 박이창과 대화에서 비롯되었다.

과연 소문대로 국민신동 임을 알아본 세종이 성장하여 학문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 장차 크게 등용하리란

전교를 내리고 비단 30필을 주면서 가져가게 하였더니 그 끝을 서로 이어서 끌고갔다고 하였다.

지금 진이의 눈앞에는 어머니 현학금이 나타났고 박꽃같이 흰소복 차림에 커다란 거문고를 메고 서 있다.

그럴때면 진이는 빙의(憑依) 상태가 되었고 지금이 바로 그런 분위기다.

“진이야, 벽계수는 특별한 분이시다. 천침(薦枕:윗사람과 잠자리)으로 모시면 너의 영혼에 위로가 될 것이다.”

그때마다 소녀경(素女經) 몇 구절을 말해주었다.

“네가 평소에 사대부 중 시대부인 벽계수를 사모하고 존경했었지 않았느냐?

그러니 네가 천침할 때 사정하지 않고 사랑만 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지 않겠느냐?

그런 몸놀림은 여자만이, 특히 진이 너는 충분히 할 수 있는 방줄술이지!

남자들이 여자를 찾는 것은 방사를 하고 난 후에 정신이 말끔해져 새로운 의욕이 생겨야 되는데 그런 상황은 교접할 때 여자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단다.

특히 교접 중 절정에 이를 때 왼손 두 번째 손가락과 세 번째 손가락으로 사내의 음낭과 항문사이를 세게 눌러주면 정액이 나오려다 옥경에 머무르며

그 힘이 정력이 되고 그리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정력은 더 강해진단다. 벽계수 선비와 교접할 때 꼭 그렇게 해 보렴...”

너무 생생한 어머니 목소리에 진이는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태도로 경청하였다.

벽계수는 거문고의 선율과 선녀의 알몸같은 진이의 모습에 정신마저 몽롱한 상태에서 방사도 꿈속의 천도 복숭아를 먹는 듯한 기분이다.

진이가 어머니 현학금이 시키는 대로 벽계수가 숨소리가 높아지자 왼손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사내의 음낭과 항문사이를 간질이듯이 눌러주었다.

사내는 시간이 가는 것도 잊은 듯 사랑을 마음껏 즐기다 제풀에 지쳐 진이 배위에서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벽계수는 동창으로 눈부신 햇살이 들어와 나신에 머무를 때 두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알몸상태고 진이의 음문에서 밤새 육두질을 마음껏 즐긴 거무칙칙한 옥경은 고개를 툭 떨어드렸다.

진이는 먼저 일어나 부엌으로 가 손수 잔죽을 쑤었고 진이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잔죽을 들고 벽계수에게로 다가갔다.

“엊저녁엔 즐거우셨어요?”

벽계수는 아직도 알몸인체 빙그레 웃음만 보였고 황홀했다는 눈빛이며 지금 벽계수 눈에는 전설로만 듣던 진이가 서왕모(西王母)로 보였다.

복사꽃 빛깔의 의상에 머리엔 금빛으로 장식 된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신선세계 여왕 모습이다.

엊저녁엔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거문고의 음률로 정신을 혼미하게 하더니

지금은 서왕모의 모습으로 자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진이가 사랑의 대상이라기보다 경외의 존재로 다가옴을 느꼈다.

벽계수는 잔죽을 받아 물먹듯 마셨고 저녁도 변변히 먹지 않은 채 밤새 교접으로 힘이 고갈 상태다.

벽계수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묘향산 단풍구경을 가면 어떠하오?” 라고 등뒤로 말을 던졌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현의 송도팔경의 '북산연우'(北山煙雨)를 낭송하였고 진이는 첫 음절에 알아듣고 거문고 음률을 맞추었다.

만 골짜기에 연기 빛은 움직이고/ 천 숲속에는 비 기운이 서리네./

오관산 구룡동의 동쪽에는/ 옛 병풍이 들러있는 듯하네./

바위 뿌리 나무는 짙은 청색이요/ 시냇가의 꽃은 홍색으로 난만하네./

끊어진 무지개 있을락 말락 할 적에/ 새 한 마리 날아 가물가물 사라지네.

낭송이 끝났는데도 진이의 거문고 음률은 방안에서 울림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진이의 거문고 음률은 하늘의 소리라 하더니만 그 말이 맞소이다! 내가 오길 정말 참 잘했소이다.

소문으로만 듣던 진이의 명성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평생 한이 될 뻔 했소이다.”

벽계수는 거문고를 켜던 진이의 두 손을 꼭 잡고 놓을 줄을 몰랐으며 이때였다.

“진이 아씨! 아침이 준비되었어요!”

동기(童妓)가 문을 두드리고 소리쳤으며 그들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거실로 나왔다.

 - 22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0화)

 
 

봄의 송도가 아름답고 수줍은 소녀 모습이라면 만추의 송도는 칠보단장한 설중매 같다.

꽃과 벌 나비가 아울리듯 명월관은 진이가 없어도 옥섬이모의 장사수완이 뛰어나 한량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명월관은 송도 장안에서도 빼어난 경치를 뽐내는 자남산을 낀 자남동에 자리 잡았다.

자남산(子南山)은 남산·용수산(龍首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서편에 영웅호걸을 키운다는 젖을 머금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산명(山名)이다.

송도엔 자남산의 정기를 받아 유명인이 많다.

왕건·서경덕·정몽주·최충헌·함유일·이성계·정도전 등도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자라며 생활을 했던 인물들이다.

여자지만 황진이도 빼놓을 수 없는 여중호걸(女中豪傑)이며 진이는 뼛속까지 송도여인임을 자임하고 있다.

그녀는 이생을 떠나보내고는 며칠 동안 후원을 맴돌며 마음을 정리하더니 말을 타고 아침에 나갔다 해질 무렵에 들어오곤 하였다.

그때마다 진이는 전설적 인물 전우치(田禹治)를 떠올렸다.

지금 그가 곁에 있으면 북간도 등에 가서 활을 쏘며 말 달리기를 했으리라고 황당한 상상을 해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전우치는 서경덕과 도술경쟁을 하다 패하자 자취를 감추고 송도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소문에는 한양에 가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이때 한양에는 절조(節操) 높은 사대부로 종실의 벽계수(碧溪水·이종숙 세종 17번째 아들 영해군 손자)가 있었다.

그런데 벽계수에게 황진이 얘기가 들려왔고 벽계수는 허봉과 절친한 관계다.

또한 허봉과 이달과는 막역한 관계로 황진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아 허봉이 이달을 벽계수에게 소개하여 주었다.

이달은 삼당(三唐) 시인으로 미모·노래·기예 뿐 아니라 시(詩)에도 능한 진이의 마음을 얻을 계책을 귀띔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벽계수는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묘책을 이달에게 사사 받았다.

한편 송도에 있는 진이는 벽계수의 절조있는 사대부란 소문을 들었다.

그는 왕실의 후예로서 진이의 유혹에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을 뿐 아니라 혼을 내 쫓아 버릴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오기가 발동한 진이가 벽계수를 송도로 유인하기로 마음먹었고 남자와 여자의 소위 성(姓) 대결이다.

진이는 지인을 한양으로 보내 벽계수에게 송도의 아름다움을 속삭여 벽계수가 오도록 교사시켰다.

벽계수는 말로만 듣던 색향(色香)에 경치까지 빼어나다는 속삭임에 넘어가 송도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마침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고 진이는 벽계수가 경치가 빼어난 천수원에 와 있음을 알고

그곳 근처에 가서 자신의 시 '청산리 벽계수'를 거문고 음률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 하니 쉬여간들 어떠리

벽계수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지금까지 한양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천상의 목소리에 시 또한 자신을 비웃는 듯 한 내용에 놀라 그만 말에서 떨어졌다.

진이가 벽계수에게 다가가 왜 나를 쫓아버리지 못했느냐고 묻자 멋쩍은 듯 멍하니 명월(明月)의 밤하늘을 쳐다만 보았다.

진이는 명월관으로 벽계수를 안내하였다.

벽계수는 한양에서 벌레처럼 사대부의 체면에 먹칠을 할 그녀를 쫓아버릴 수 있다고 호언했던 말이 허언이 됐음을 깨달았다.

사랑채에 마주 앉은 벽계수와 진이 사이엔 눈치 빠른 옥섬이모에 의해 술상이 놓여졌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어요. 송도는 한양에 비해 생기가 없어요.

이 술(태상주 太常酒)이 독합니다. 오시느라 피곤하실 텐데 조금씩 마시세요!”

진이는 말과는 다르게 벽계수가 단숨에 잔을 비우자 잔 가득히 태상주를 따랐다.

말로만 듣던 진이를 앞에 앉히고 술을 마시는 벽계수는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을 못하고 있다.

그는 술상 밑으로 손을 내려 여의봉처럼 일어난 옥경(玉莖)을 힘껏 쥐어 보았다.

현실이 분명하고 밤이 이슥할 때까지 그들은 술병을 비웠으며 벽계수는 진이의 술 상대가 못되었고 진이를 당대엔 대적할 술꾼이 없다.

“술 그만 드시고 주무시죠! 오시느라 힘드셨을 텐데...”

진이가 손수 술상을 치웠고 벽계수는 진이가 따르는 술잔을 거침없이 비워 인사불성이 되었다.

진이는 다시 거문고 음률에 맞춰 서경덕의 '봄날'을 타면서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가득하다.

성곽 밖이라 속된 일 없고/ 산빛 짙은 창 안에 자니 늦게 일어나네/

봄 찾아 골짜기 시냇물가 거닐면서/ 예쁜 꽃가지를 눈에 띄는 대로 꺾어 보네’

잠결에도 거문고 소리를 들었는지 “이제 잡시다.”라고 말하면서 벽계수가 두 팔을 벌려 진이를 찾았다.

진이는 술상을 치우고 알몸이 되었으며 어차피 자기를 보러 온 벽계수는 자신을 품을 것이니 스스로 사내를 품으려는 속내다.

벽계수의 가슴은 뜨거웠고 소세양과 이사종의 가슴과는 또 다르다.

뜨겁고 따스한 가슴을 보자 딴 마음이 생겼고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며 지금 진이는 배란기다.

종실(宗室) 후예인 벽계수와 관계에서 2세가 탄생되면 얼마나 훌륭한 아이가 나올까 생각에 이르자 한시라도 빨리 사내를 맞이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비몽사몽 상태가 되면서 어머니가 나타나 생생한 생시의 모습으로 말했다.

“그것은 아니 될 생각이다! 기생 후손은 너로 족하고 진이 너는 기적에서 나와 자유로운 영혼의 여자이지만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너를 기생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무서우니라...

법적 문제보다 도덕적 굴레가 더 무서우니라.”라고 말을 하고 어머니는 사라졌다.

벽계수의 뜨거운 사타구니에서 불두덩을 지나 가슴으로 올라오면서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지는 찰나의 순간에 진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만이요! 화장실에 좀 다녀올게요.”

신윤복의 미인도에서나 볼 아름다운 나부의 뒤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벽계수는 불타는 욕정을 자제하느라 애를 쓰고 있다.

벌거숭이 진이는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상기시켰지만 여자의 마음은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고 있다.

- 21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9화)

 
 

봄의 금강산에서 한 계절이 훌쩍 지나고 어느덧 가을이 되었다.

유점사에서 시작된 금강산 유람은 시계사와 표훈사를 거치는 동안에 장안사에서 풍악의 계절 가을을 맞았다.

졸기한 진이의 역마살이 절정에 이르렀다.

숱한 사내들의 뜨거운 가슴을 드나들었던 석녀(石女)의 태도에서 팔도유람을 통해 본래 여심(女心)을 찾았다.

봄꽃보다 아름다운 단풍이 지나가는 바람에 낙화처럼 우수수 떨어지는 어느 날이다.

장안사에서 점심을 먹고 오수를 즐기고 있을 때 이생이 저잣거리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두 주먹으로 훔쳤다.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 생겼느냐?"

진이는 이생의 처음 보는 행동에 궁금증이 폭발하였고 이생은 입을 떼지 않고 돌아앉아 통곡을 끊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니까? 내 말이 우스워?“ 앙칼진 진이의 폭언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셨데요!”

“아버지와 결별했다면서 울긴 왜 울어?”

진이는 문을 탕 닫고 밖으로 나왔으며 실컷 울라는 배려이고 이생이 진이 곁을 떠나가려 한다.

사내는 자기 성(姓)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을 진이는 이생을 보고 새삼 깨달았다.

본인도 진이란 본명과 기명을 동시에 쓰고 있으나 아버지 황씨 성의 굴레를 성(姓)을 바꾸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지금 당장 한양으로 떠나가려무나. 사내대장부가 일구이언이냐?

나도 사대부집 천재 신동에서 서녀(庶女) 신분으로 떨어져 장님기생의 딸이 되자

청천벽력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날로 황진사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니

내 몸에는 황진사의 피가 흐르고 있어 그런지 문득 떠올랐느니라.

그렇거늘 넌들 별수가 있겠느냐? 내 생각 말고 어서 떠나가려무나.”

진이는 그렇게 속 시원히 말해놓고 걱정이 태산이며 사실 혼자 무전걸식이란 어렵다.

하늘아래 의지할 때 없는 여자인줄 알면 향기와 꿀이 있는 벌 나비가 날아들 듯 비렁뱅이 사내들이 달려들기 때문이다.

비록 문전걸식하는 신세지만 사내들이라 생리현상을 어찌 할 수 없어서다.

그래서 당장 떠나가라고 소리쳤으나 막상 떠나가면 어쩌나 가슴 졸이고 있다.

“아니에요. 아씨 아버지께서 이미 돌아가셨고 소인이 아씨를 송도 명월관까지 모셔다 드리고 가렵니다.

지금 당장 간들 임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만 그 분의 피가 뜨겁게 흐르고 있어 이 이생은 그 분의 자손이 분명하니 늦게라도 찾아가

절을 하고 상청에 술 석잔을 올리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에서입니다.

소인 한양에 갔다 다시 와서 진이아씨 하인노릇을 계속하렵니다.”

말을 마친 이생이 진이를 억세게 끌어안았고 진이 속내도 같다.

훌쩍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되돌아온다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삼남(충청·전라·경상)과 지리산을 연리지 모양 붙어 다니는 동안 속 깊은 정이 들었던 것이다.

밤에는 부부 아닌 부부로서 남녀관계를 수도 없이 해오지 않았던가!

지금 당장 떠나가면 진이도 닭똥같은 눈물을 쏟지 않을지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날 밤은 더욱 뜨거워졌다.

장안사의 가을밤은 낭만적 분위기고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창문으로 신비스런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산사의 밤은 물속처럼 조용하여 고양이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고 발정 난 고양이 울음이다.

영락없는 아이 울음소리 같고 오늘따라 발정 난 고양이가 대웅전 뒷방 근처에 와서 목청을 높였다.

진이는 이생이 한양으로 가겠다는 말이 귀에 거슬려 그가 몸을 달라면 서슴없이 내어주었다.

여자로서 먼저 얘기 할 수는 없으나 눈치를 보이면 기다렸다는 듯이 순한 양이 되었다.

막상 몇 년을 부부같이 붙어 다니다 보니 계약결혼을 했었던 소세양과 이사종에게선 찾아보지 못했었던

어떤 사내다운 믿음과 멋까지 느꼈던 것이며 지금은 단 하루도 곁에 이생이 없으면 못살 것 같다.

“그래 너는 한양에 갔다가 이 진이의 곁으로 다시 오겠다는 것이냐?”

이생은 진이의 배 위에서 감정이 고조된 상태다.

여자의 자궁내로 들어온 사내는 이성을 잃은 상태라는 것을 진이는 소세양과 이사종을 겪으면서 터득하였다.

“흐흐흥... 물론이죠!”

이생의 방사(房事) 격동은 더욱 거칠어졌고 진이도 서서히 몸이 달아올랐다.

날이 새면 헤어질 남녀가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 듯 점점 더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떨어졌다 다시 결합되길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공교롭게도 발정한 고양이가 상대를 부르는 울음에 진이와 이생의 고조된 교성이 묻혀버렸고 진이는 문득 자작시 '무제'(無題)를 떠올렸다.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 모르던가/

있으랴 하드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소세양과 이사종도 떠나가지 못하게 붙들었다면 아마 그들도 진이 곁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이는 잡고 싶었으나 떠나보냈고 지금 이생한테도 똑같은 마음이다.

한양에 갔다가 금방 돌아오란 말이 혀끝까지 나왔으나 다시 삼켜버렸다.

전례없이 뜨겁고 격렬한 방사였고 진이는 거액을 받고 초야권을 주었을 때 봉선화꽃 빛깔의 선혈까지 비쳤다.

처녀성 보증이었고 지금도 그때처럼 그곳이 아리고 쓰리고 아프다.

밤이 아무리 깊어도 아침 해는 어김없이 떴으며 산사의 아침은 산새들의 노래 소리가 인기척 보다 빠르다.

장안사에도 진이는 어머니를 모셨다.

유점사·표훈사·신계사, 그리고 장안사까지 진이는 정성껏 시주를 올리고 일만 이천 봉에 모두 기도를 부탁하였다.

극락왕생 기도를 부탁할 때에는 꼭 진학금과 황진이란 이름을 밝혔다.

진이는 장안사를 떠날 때 비교적 마음이 홀가분하였으며 그리고 이생이 고마웠다.

이생이 동행하여 주지 않았으면 팔도유람은 불가능했으며 금강산의 4대 명찰에

어머니 극락왕생의 일만 이천 봉에 기도도 엄두도 못 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진이는 명월관에 도착하자 이생을 떠나보낼 준비에 들어갔으며 옷도 새로 해 입히고

일주일을 밤마다 잠자리를 해주었고 여행을 다니면서 신뢰와 속깊은 정까지 들었다.

사실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으나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 하여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로 향한다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기 성을 찾아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생은 일주일 내내 동창이 밝을 때까지 진이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도 진이가 아쉬운지 예성강을 건널 때는 강건너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드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 20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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