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교육



자녀에 대해 주변에서 많이 듣는 이야기가 있다면
"아이가 엄마 아빠를 쏙 빼닮았네요."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는 자녀에게 본보기가 되고
자녀는 부모의 행동과 태도
심지어 표정과 말투까지 닮아갑니다.

자녀는 부모의 모습을 닮아가기 때문에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은 두렵고도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는 자녀 교육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도 본보기요, 둘째도 본보기요,
셋째도 본보기다."

자녀는 가르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산다는 평범한 진리를
말한 것입니다.

가정 교육과 마찬가지로 학교 교육도 중요합니다.
라틴어로 학교 교육을 'In loco parentis'라고 하는데
'부모 대신에'라는 의미입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또한 아이들에게
중요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이 잘 연계되고 조화를 이루어
가정에서는 스승을 존경하도록 가르치고
학교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도록 가르치면
이상적인 인성교육을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사람이기보다 따뜻한 사람으로 키워내는 것.
그것이 '최고의 교육' 아닐까요?


# 오늘의 명언
교육은 그대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씨앗들이 자라나게 해 준다.
– 칼릴 지브란 –

졸업, 끝이 아닌 새로운 출발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여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 윤석중 작사, 정순철 작곡 <졸업식 노래> 中 -


지난 2월, 우리 아이들이 졸업을 하였습니다.
과정 중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대견하게도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을, 초등학교를, 중학교를,
고등학교를, 또 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하였습니다.

그리고 생명이 움트는 3월,
새 학년 새 학기를 맞아, 아니면 사회 구성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끝'은 또 다른 '시작'입니다.
그래서 끝은 아쉽지만, 새로운 시작의
기대감으로 설렐 수 있습니다.

결국 끝과 시작은 함께 공존하는 단어입니다.
끝이 있어야 또 다른 시작이 있기에
우리는 도약할 수 있습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법



'당신의 이상을 달을 향해 발사하세요.
실수하더라도, 최소한 별들 사이에 착지할 것입니다.
높고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목표에 정확히 도달하지 못하거나,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 노력의 과정은 아주 뜻깊은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실패를 통해 차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주저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이러한 연설과 함께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노력의 원동력을 심어주는 연설가 '레스 브라운'은
미국 버려진 건물 바닥에서 쌍둥이로 태어났는데
레스는 학습장애가 있었습니다.

쌍둥이 동생은 똑똑하고 재능이 많았기에
친구들은 레스를 '멍청한 쌍둥이'라고 불렀습니다.
레스는 늘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 선생님이 레스의 삶을 바꿔놓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 수 없다는 레스를 향해
선생님은 "아니, 넌 할 수 있어!"라고 말했지만,
레스는 자신은 지적 장애가 있다면서
계속 거부했습니다.

선생님은 칠판 앞에 서 있는 레스에게 와서는
눈을 맞추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너에 대한 누군가의 의견이
결코 너의 현실이 될 필요는 없단다."

이 말을 들은 레스는 마음속에 꿈이라는
희망을 품기 시작했고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그 말을 잊지 않고 역경을 극복하고 노력해서
세계적인 동기부여 연설가가 되었습니다.





인생이라는 여정 가운데서
첫 번째 단계는 '시작'입니다.

'시작이 반이다.'
쉬운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시작하지 않으면
절대로 끝낼 수 없습니다.


# 오늘의 명언
시작하기 위해 위대해질 필요는 없지만
위대해지려면 시작부터 해야 합니다.
– 레스 브라운 –

아름다운 거리감



지구가 태양을 사랑한다고 해서
태양 쪽으로 갑자기 뛰어든다면
혹은 달이 지구가 좋다고 와락 달려와
안긴다면 어떻게 될까요?

별빛이 고운 것은 그 빛이 오래전 출발해
지금 우리 눈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가까운 지척에서 별의 표면을 본다면
그것은 한낱 울퉁불퉁하고 거친 광야 같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않으며
'아름다운 거리감'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을 통한 아름다운 거리감은
서로의 공간과 시간을 존중하면서도
마음의 연결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때로는 열정적이고 격렬할 수 있지만,
그 열정이 상대방을 무례하게 다루거나
침범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공간을 인정하면서도
그 거리를 더욱 아름답게 유지하는 것은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한 사랑입니다.





어느 한쪽이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느슨해지고,
어느 한쪽이 너무 멀리 달아나면 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은 가까이하되
아름다운 거리를 둬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너무 가깝지도 않게, 너무 멀지도 않게
– 고사성어 –

나넌 안직도 멀었구만

 

"물건도 물건같지 않은 것얼 휘두르고 댕길 때 내가 밤마동 얼매나 눈물얼 흘린 줄 아시요?

어쩌다 집이라고 들어와서는 쑤시지도 못헐 물건을 가지고 이년얼 얼매나 환장허게 맹근 줄 아시오?

첨부터 색얼 몰랐다면 모를까, 한번 알고 난깨 몸뎅이가 저 혼자 지랄발광얼 떠는 것얼 못 참겄습디다.”

“임자도 색골언 색골이구만.”

“한번만이라도, 단 한번만이라도 살방애럴 실컷 찧어보변 원도 한도 없을 것 같앴소.

헌디, 저 놈언 아새끼 잠질망정 탱탱헐 때넌 다른 년 좋은 일만 시키고,

나 잡아묵소, 허고 고개 팍 숙이고 있을 때만 내 속곳얼 내렸소.

허니, 그때마다 이년이 얼매나 환장했겄소. 하루에도 열두번씩 저 놈얼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소.”

음전네가 살집으로 강쇠 놈의 거시기 놈을 갉작거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긍깨, 멋이냐? 시방 정사령헌테 보개피럴 허는 것인가?”

“보개피도 아니요. 정말 보개피럴 헐 생각이었다면저 자구럴 내버려놓고 야반도주라도 허는 것이겄제요.

지랄났다고 똥오줌 수발에 더런 몸뎅이럴 씻겨줌서 쌩고생얼 허겄소. 아, 심 좀 팍팍 줘보씨요. 미치고 환장허겄소.”

음전네가 아랫녁을 풀쩍거리며 안달을 했다. 

“그까? 팍팍 해뿌리까?”

“아구창이 나도 존깨 심껏 해보씨요.”

“흐면, 글제, 머.”

강쇠 놈이 눈을 질끈 감고 이년아, 죽어봐라, 죽어봐라, 하고 중얼거리며 엉덩이를 깝죽거렸다.

음전네가 비릿하고 달콤한 냄새를 내뿜으며 죽겄소, 나 죽겄소, 좋소, 좋아 죽겄소, 아으아으, 하고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거나 말거나 강쇠 놈이 허리 운동만 죽어라고 해댔다.

조금이라도 빨리 음전네를 죽여놓고 정사령 놈의 눈길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냥이라도, 음전네가 반내내 허벅지를 꼬집건, 덜 식힌 몸둥이 때문에 방바닥이 닳도록 뒤척이건,

얼음물에 멱을 감건 상관하지 않고 도망을 가고 싶었지만,

그것은 안 되요, 하고 고개 빳빳이 쳐들고 있는 거시기 놈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기왕에 만나 시작한 일이니까 거시기 놈도 재미난 꼴을 보아야하는 것이었다.

놈이 제 스스로 고개는 숙이게 만들어주는 것이 주인 된 도리였다.

얼마나 살방아를 찧었을까.

음전네의 입에서 아으윽하는 비명이 쏟아져 나오더니, 몸에서 힘이 빠져벼렸다.

“그만. 그만 허씨요. 날 좀 살려주씨요.”

음전네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넌 안직도 멀었구만. 기왕에 시작했는디 끝장얼 봐뿐져야제.

허다가 말면 요놈이 저녁내 나럴 잠 한숨 못자게 헐 것이랑깨.”

강쇠 놈이 더욱 힘을 주어 살방아를 찧어댔고 음전네가 눈물반 콧물반으로 꺽꺽 울었다.

그러다가 숨이 컥컥 막힌가 싶더니, 고개를 한 쪽으로 떨어뜨렸다.

그러건 말건 강쇠 놈의 방아고질은 한 식경 남짓이나 계속되었다.

그래도 거시기 놈은 지칠 줄을 모르고 더욱 왕성하게 살아날 뿐이었다.

‘야이, 썩을놈아. 인자 그만 좀 허자. 오널언 왜 싸도 않고 뻣뻣허냐?’

강쇠 놈이 거시기 놈을 나무래다가 정신을 퍼뜩 차리자 다시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온 몸에 소름이 솟았다.

‘거참, 별 일이시. 저녁에 내가 왜 이런다제?’

그런 생각을 하다가 음전네를 내려다 보니, 계집이 고개를 한 쪽으로 쳐박고 죽은 듯이 가만히 있었다.

‘어? 이 여자가 숨줄얼 놓은 것이 아닌가?’

강쇠 놈이 얼른 음전네의 몸에서 내려와 콧구멍에 손가락도 대보고 가슴에 귀도 대보았다.

다행이 가느다란 숨결은 남아있었다.

‘흐참, 송장 치루는 줄 알고 십년언 감수했네.’

강쇠 놈이 한숨을 휴 내쉬고 서둘러 옷을 입었다.

바지를 입고 저고리를 걸치면서 흘끔보니, 정사령놈이 눈을 번히 뜨고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시럽소. 허나 어쩌겄소? 다 당신이 자초헌 업보인 것을.”

강쇠 놈이 중얼거리다 말고 둘둘 말린채 한 쪽에 몰려있는 이불자락을 펼쳐 음전네의 몸둥이를 가려주고 방을 나왔다.

그래도 음전네는 꼼짝을 못했으며 아니, 강쇠 놈이 방을 나가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마당으로 나오자 지리산을 불어내려 온 바람이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순간 숨이 컥 막히면서 가슴이 오그라 들었다.

‘흐, 날씨 한번 지랄겉이 춥네이.’

강쇠 놈이 중얼거릴 때 방안에서 으으으하고 내뱉는 정사령 놈의 신음이 흘러 나왔다.

다시 등골이 오싹하면서 온 몸이 으실으실 떨렸다.

‘기분 참 더럽구만이. 내가 음전네럴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는디.’

혀를 툭 차다가 침을 퉤뱉고는 걸음을 빨리했다.

‘흐흐, 박가 성님언 오랫만에 살방애 한번 잘 찧었을랑가?

괜히 주모 아짐씨의 문전만 더럽혔다고 쬐껴나지는 않았을랑가?’

 

풍류야화 자동선(최종회)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했고 영천군과 자동선의 사랑 얘기도 송도를 넘어 한양에까지 봄바람에 꽃향기 날아들 듯 장악원에도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송악산 유람 때 등산객들 눈에 띄어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크고 송도(개성)는 중국으로 사신들이 오고가는 길목이어서 항상 왕래하는 사람들이 북적였다.

발없는 말이 어느새 영천군의 본가에 영천군과 자동선의 연리지(連理枝) 얘기가 소문이 아닌 사실로 알려졌다.

안국방(안국동) 영천군댁에선 자동선이 올 것을 대비하여 사랑채 옆에 방을 더 꾸몄다.

자동선의 이름은 이곳 한양에서도 익히 알려진 이름이고 그 자동선이 영천군의 부실(副室)이 되어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묘한 분위기다.

특히 장악원 분위기에 새로운 바람이 일어날 조짐이며 한양에서 가장 확실하고 큰 손님을 잃지는 않을까 조심스런 분위기다.

사실 왕실 후손들은 할 일이 없으며 신분이 높아 그들이 할 일이 사회에는 없기 때문이고 요즘말로 백수며 그러다보니 자칫 주색(酒色)에 빠지기 쉽다.

아름답게 뻗은 뿔 때문에 가시덤불에 걸려 사자먹이가 된 사슴 우화처럼 때로는 빼어난 재능 때문에 불행해 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례는 왕족과 서열일 것이며 전자는 너무 높은 신분 때문이고 후자는 어머니의 낮은 신분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 못하는 사례며 조선시대 사회상이다.

세종의 셋째 안평대군이 양가집 재모(才貌)가 뛰어난 소녀 10명을 뽑아 시문(詩文)을 5~6년 가르치며 세월을 보낸 것도 그런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남들은 먹고 살기 어려워 동분서주 하는데 할 일이 없어 멀뚱히 있는 것도 쉽지 않은 태도다.

그래서 그들은 예술이나 종교 등에 심취하지 않으면 자칫 주색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영천군도 그 부류에 속하는 조선 최고의 신분인 왕족이다.

그림에 재주가 뛰어났으나 신분의 제약으로 행동에 자유롭지 못했음을 여자에 관심이 갔으며 젊음의 격정을 시(詩)와 미(美)로 카타르시스 시켰을 것이다.

안평대군은 시, 서, 화에 능하여 3절(三絶)로 불리었고 그의 글씨는 중국에까지 명성이 높아 황제들이 사신을 통해 얻어가려고 청까지 넣었다는 얘기까지 전해졌다.

그의 글씨는 '몽유도원도 발문'이 대표적 작품이고 그는 또한 예술에 뛰어나 제자격인 10인의 궁희(宮姬)들에게 열정을 쏟았다.

가벼운 비단으로 달을 덮은 듯/

푸른 띠로 길게 산을 두르듯/

미풍에 점점 흩어지더니/

오히려 작은 연못을 적시네.

10인 궁녀 중 옥녀(玉女)의 '무제'이고 어느 특정인을 연모하는 듯한 시다.

재색을 갖춘 젊은 여인 10명이 한 곳에 모여 시를 쓰고 뛰어난 예술 감수성이 탁월한 왕족 밑에서

같은 공간에서 생활을 했다면 그것은 예삿일이 아니고 상사별곡(相思別曲)의 천일야화도 탄생했으리라.

더욱이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양가집 딸들이 옥골선풍 헌헌장부인 안평대군과 시문학을 공부했다면 문학사에 경천동지 할 사건이다.

하지만 남녀칠세부동석 엄격한 신분사회에 그런 일이 있었고 그것이 역사다.

한편 영천군과 사가정이 송도에 내려올 때는 두 사람이었는데 한양으로 올라갈 때는 세필의 나귀에 이삿짐을 실은 부담마(負擔馬) 두 필까지 나귀만도 다섯 필로 늘어났다.

일행이 천수원을 통과하게 되자 사가정이 “영천군 나으리, 여기가 천수원이예요! 돌아오는 길에 청교월(靑郊月)에 들린다는 약속은 어쩌시렵니까?” 라고 말하자

영천군은 고개를 휙 돌리며 “에이 사람도 짓궂기도 하네...”라며 나귀엉덩이에 채찍질을 하였고 사가정은 크게 웃으며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읊었다.

청교의 버들은 가슴 아프게 푸른데/ 자하동의 안개는 마냥 흡족하구나.

자동선은 아무 말도 없이 행복에 겨운 미소만 짓고 있으며 한때는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친 명기였으나 이젠 한 사내의 여자로 충실할 것을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듯 하여 보였다.

자동선은 영천군의 부실이 되어 현모양처로 변신하여 아들딸 낳고 행복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아마도 중국사신 장녕과 김식을 통해 자동선에 대한 명성을 들은 사신들은 조선의 송도에 왔다가 그녀를 품으려는 꿈에 부풀었다 허탕을 쳤을 게다.

그들은 자동선을 중국의 4대 미녀인 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의 장점만 닮은 세기의 미녀 팬이 되었을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의 빼어난 명기에 그들은 넋을 잃었으나 자동선은 왕실의 여자가 되었으니 옛명성을 되새김질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였다.

한편 동갑내기 사가정은 심심하면 불러서 갔던 영천군이 이젠 오매불망 했었던 자동선을 품에 넣었으니 불려가지 않고 사가독서에 열중할 것을 다짐하며 시 한 수를 읊는다.

이름난 명승지는 말을 자주 멈추던 곳/ 담 무너진 나무숲엔 두견새만 우노나.

늙은이들 마주치면 저마다 묻기를/ 조선은 어느 해에 한양으로 옮겨갔소.

시인다운 세월의 표현이다.

송도는 고려의 도읍지이나 지금은 조선시대며 권력이 휩쓸고 간 옛도읍지의 산천은 옛날 그대로이나 민심은 옛날이 아니다.

사가정은 한양에 왔어도 빼어난 송도의 풍광이 눈앞에 펼쳐져 끝없는 시상(詩想)에 빠져 들었고 그는 문득 안평대군의 10인 궁희 중 금연(金蓮)이 쓴 '무제' 시를 떠올렸다.

산아래 차가운 안개 쌓여/

궁궐나무가로 비껴 날아가네/

바람 부니 저절로 움직여/

기우는 달 푸른 하늘에 가득하네

왜 갑자기 이 시를 떠올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본인의 심정이 허허로웠을 터다.

영천군은 자동선을 데리고 왔는데 자신은 사랑하는 제일청을 송도에 두고 올 수밖에 없는 신세를 잠시나마 떠올렸을 것이 아닐까? 역시 신분의 차이를 생각했을 것이 자명하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풍류야화 자동선(제24화)

 
 

예성강 저녁노을에 사가정은 넋을 잃었고 조선팔도에 그의 발길이 안 닿은 곳이 별로 없다.

그런데 요며칠 사이에 송도 매력에 빠졌고 백악(白岳)에 걸려있는 구름과 북산에 서리는 연기와 비는 한 폭의 산수화다.

또한 장단의 절벽과 박연폭포는 웅장함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 바로 그 자체며 사가정은 제일청의 곁에 그냥 이곳에 주저앉고 싶다.

작은 내 깊숙한데 버들가지 날리고/ 가랑비 맑게 개니 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네

손님이 가든 머무르든 상관하지 않고/ 술동이 하나 놓고 아름다운 대자연과 마주하네

이제현의 '청교 靑郊의 손님배웅'이다.

사실 사가정이 팔도유람을 할 때는 빛과 그림자 같이 술이 따랐고 높은 벼슬을 했음에도 형식과 명분에 얽매이지 않는 영혼의 소유자다.

그의 해학집 '태평한화골계집'엔 아래와 같은 익살이 실렸다.

‘극락이라도 삼해주(三亥酒)가 없다면 가지 않겠다.’라고 쓰여 있으며 그가 얼마나 술을 사랑하나를 적나라하게 포효하는지 딱 맞는 시(詩)라 하겠다.

사가정은 허탈하고 영천군과 자동선의 연리지 작전이 마무리 되어서며 사가정은 제일청의 집에서 밤낮없이 술이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제일청이 “사가정 나으리, 자동선의 반살미 상을 차릴 준비를 해야겠어요. 장인이 되가지고 술만 퍼마시면 어떻게 해요?”

장인 소리에 사가정이 손에 들렸던 술잔을 탕하고 술상에 놓으며 “장인이란 소리가 무슨 소리요?”라고 따져 물었다.

“나으리와 제가 만리장성을 쌓았으니 부부요! 내가 자동선의 어머니이니 사가정 나으리가 영천군 나으리의 장인이지 뭐겠어요?”

제일청의 표정은 웃음기도 없는 단호한 말투였고 사가정이 처음보는 그녀의 단호한 말투와 표정이다.

사가정도 제일청이 영천군과 자동선이 오후에 받을 반살미 상차리는데 오며가며 심부름으로 거들었다.

송도의 가을 날씨는 한양과 다르고 한낮엔 따가운 햇살이 아침저녁으론 제법 싸늘하며 오후가 조금 지나자 영천군과 자동선이 손을 맞잡고 제일청의 집에 도착하였다.

“어서 오시게. 영천군 사위...”

영천군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하고 며칠 전까지도 퇴기로 아랫것 취급을 했는데 자동선과 약식결혼식을 치르고 놀러가는 기분으로 왔는데 사위소리를 들으니 당황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일청과 자동선은 수양모녀 관계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던 것이며 반살미 상은 산해진미로 눈을 의심할 정도다.

“내 이런 영광스런 날이 언제고 오리라 믿고 산해진미를 항상 준비해놓고 있었다네!

내딸 자동선이 어디 보통 여자인가 중국 사신들까지 목을 매고 수청을 간청했으나 번번이 뛰어난 기지와 지혜로

그들의 체면을 지켜주면서 정조를 지켜 오늘날 영천군 나으리를 지아비로 섬기게 되었소이다.

어서 앉아서 맛있는 술과 안주가 준비됐으니 마음껏 드시게. 화촉동방은 잘 치렀겠지 자동선아?”

영천군 옆에 앉아있던 자동선이 부끄러워 농익은 가을 석류알 같이 얼굴이 붉어져 몸둘 바를 몰라한다.

“부끄러워 말거라. 여자라면 한 번은 겪는 즐거움이니라.” 제일청이 한술 더 떠 준다.

“하하하, 영천군 나으리께선 천하재색 자동선 신부의 옷을 잘 벗기셨지요? 옷 벗기는 차례야 여러 번 해 보셨을 터이니 거칠 것이 없으셨겠지요?”

사가정이 너스레를 떨어도 영천군은 묵묵부답이고만족했다는 표정으로 사가정은 읽고 있으며 자동선 만이 귓불까지 얼굴이 빨개져 고개를 들지 못하고 몸 둘 바를 몰라 한다.

사내들 앞에서 언제 어디서고 당당했던 자동선인데 지금은 영천군과 화촉동방을 치르고는 부끄러워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8년 동안 고이 간직했던 정조를 아낌없이 받치고 아쉬움과 해방감에 영혼의 자유를 찾아 새로운 안식처를 찾았다는 의미일 터다.

떠나시던 길 하염없이 보느라고/

사립도 닫지 않고

밤 깊도록 기다리고 있다가/

찬 이슬에 옷 다 젖었다오.

임 계신 양산관에는/

고운 꽃이 얼마나 피였기에/

날마다 보느라고/

돌아오실 줄 모르시나요.

양사기 풍천부사 애첩의 '님 기다리며'다.

당시 조선의 여자들은 시집가면 00댁 또는 애기씨로 불렀고 시의 주인공은 양사기의 첩이므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아 ‘첩’으로 표기 되었다.

조선 사회는 철저한 남존여비 시대이고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로 시집가면 친정에서 떨어져 나온다.

자동선도 재색과 학문이 높은 기녀신분에선 뭇사내들이 잠자리를 갈망하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흠모의 대상이었으나 영천군의 여자가 된 이상 철저한 한 남자의 여자가 되었다.

사실 한양엔 송도보다 재색을 겸한 여자들이 많으며 중국에까지 이름을 떨쳤으나 이젠 규율이 엄격한 왕실의 여자가 된 이상 과거는 깡그리 잊고 영천군의 여자로 살아가야 할 운명이 되었다.

화촉동방을 치룬 하룻밤이 그녀의 운명을 갈라놓았고 제일청의 집에서 반살미 상을 후하게 받은 새신랑 부부는 집으로 다시 돌아와 내일 한양으로 떠날 채비에 부산하다.

오늘따라 휘영청 뜬 달이 대낮같이 밝고 자동선은 만감이 교차되었으며 왕손의 첩이 됐으니 더욱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범한 사내의 여자가 됐으면 지아비만 잘 섬기면 되나 왕손의 여자가 됐으니 가릴 것도 지켜야 할 예의범절도 많을 것이 뻔해 송도에서 마지막 밤은 뜬눈으로 지새웠다.

영천군도 화촉동방을 치를 때와는 다르게 술기운에 한번 즐기고는 밤새 몸을 뒤척이었다.

한양에 가서 종친들과 일어날 일들에 대해 미리 곰곰이 생각에 잠긴 듯 하고 아마도 이 밤이 영원히 밝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를 것이다.

- 최종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자동선(제23화)

 
 

동기(童妓) 자하(紫霞)가 며칠 전부터 시장을 오가며 각종 혼숫감을 사들인다.

자동선은 일가친척이 없고 수양어미 제일청과 동기 자하가 가장 가까운 관계며 자동선은 영천군과 부부가 될 것을 대비하여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

호박 관자를 받고 마음을 굳혔으며 비록 양가 부모와 친척들을 모셔 놓은 자리가 아니더라도 조촐히 결혼식을 올린 뒤 초야를 치르려는 속내다.

그렇게라도 해야 18년 동안을 고이 간직했던 정조를 아낌없이 줄 수 있어서다.

숱한 사내들이 금은보화로 회유했으나 지금껏 어렵사리 지켜온 정조를 떳떳이 바칠 수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동선은 영천군이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해올 경우를 위해서 결혼 준비를 하고 있다.

이웃집 찾아가서 서너번 부르자/ 아이가 나와서 주인 안계시다 말하네

막대 짚고 꽃 찾아가지 않았으면/ 거문고 끼고서 술꾼 찾아 가겠지.

조선전기 문인 성희(成禧)의 딸 성씨(成氏)의 '꽃 찾아가지 않았으면'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자들은 결혼을 하면 남편이 외도할까 걱정이 태산인 것 같고 오다가다 예쁜 여인이 지나가면 반사적으로 힐끗힐끗 쳐다며 동물적이다.

동물적이란 원시시대에 사냥감을 보고 달려 나가는 맹수의 본능과 같은 것이며 그 본능이 없으면 맹수는 먹이를 놓친다.

남자에게 예쁜 여인이 지나갈 때 무관심은 맹수에게 사냥의 본능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라 할 것이라 할까? 지금 이 시에서 꽃은 여자를 지칭함일 게다.

어쩌면 자동선과 숱한 사내들이 자신의 정조를 노렸으나 끝까지 지켜 이제 평생을 맡길 수 있다고 판단한 영천군에게 화촉동방을 허락하였다.

사실 기녀의 몸이야 어차피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재화(花代)가 필요하여 노류장화의 길을 택하였으니 사람을 가려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지만 더러는 자동선 같이 화대보다는 사람을 고르는 기녀도 있으며 황진이가 그러했고 지금 자동선이 대표적이다.

화대를 내는 사내가 아니고 화대를 받는 여자가 사내를 선택하는 기막힌 경우며 자동선이 18년 동안 고이 간직해 온 초야권을 영천군에게 넘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으론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은 것이고 평범한 사내가 아니여서며 임금의 조카요 효령대군의 자제가 아닌가!

그리고 자신은 노류장화로 불리는 기녀가 아니던가! 아무리 노래와 가무에 뛰어나고 학식이 높아도 기녀는 노류장화에 불과하다.

그래서 자동선은 호박관자를 받고서야 꼭꼭 잠가 두었던 정조를 아낌없이 바치려 하는 것이며 결혼식은 자신의 집에서 한다.

결혼식에 필요한 혼수품은 자신이 틈틈이 오늘과 같은 경사스런 일이 생기면 지체없이 치르려고 준비해 놓았으며 식장은 내실이다.

영천군은 제일청의 안내로 내실로 들어섰고 자동선은 녹의홍상(綠衣紅裳)에 머리엔 족두리를 썼으며얼굴엔 연지곤지를 찍어 완연한 신부차림새다.

이때 자동선이 속삭였다.

“나으리께서 입으실 사모관대를 마련했으니 초례복(醮禮服)으로 갈아입으시고 소녀의 배례를 받아주시옵소서.”

드디어 영천군이 자동선의 초야권을 허락받는 순간이고 영천군의 화촉동방은 순간적으로 치러졌을 것이며 아마 하룻밤이 일향(一晌:짧은 순간)처럼 지나갔을 터다.

자동선은 18년을 고이 간직했던 동정(童貞)이 한순간에 무너졌으며 영천군은 30여년에 처음으로 기가 막힌 여인의 사랑을 맛보았을 것이다.

영천군과 자동선의 첫날밤이 조선의 밤을 지배하는 여인 중의 여인이 그의 품에 있음이고 밤이 짧다.

조금 전에 자동선을 품었는데 동창으로 어느새 여명이 들어오고 조금 있자 사가정의 인기척이 났다.

봄밤이 짧아 해 뜬 후에 일어나니/ 천자는 그때부터 늦잠만 자더라

사가정은 짜증섞인 어조로 백락천의 '장한가'(長恨歌) 중에서 일부를 소리쳐 낭송하였다.

그리고 “제일청이 새신랑 부부를 위해서 반살미상(갓 결혼한 신랑신부 초대상)을 차려준다니 어서 준비하시고 갑시다.”라고 외쳤다.

사가정이 월하빙인으로 영천군과 자동선이 맺어져 화촉동방을 치렀는데 그도 남자로 은근한 질투로 속이 많이 상했을 것이다.

한양을 넘어 명나라에까지 소문이 그 이름이 자자하여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꼭 찾아와 수청 들기를 간청으로 안되면 위협까지 했으나

끝까지 지킨 정조를 영천군한테 바쳤으니 사내로서 질투를 넘어 부러움의 대상이었을 터다.

사실 영천군과 사가정의 풍류와 멋을 즐김은 조선팔도에서 둘째가라면 손을 절레절레 흔들면서 사양을 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사가정은 언제 어디서나 영천군이 먼저고 학식이나 재능으로만 보면 사가정이 영천군 보다 한발 앞설 것이나 사가정은 언제나 뒷전에 섰다.

지금 화촉동방에서 꿀맛같은 사랑의 미봉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영천군과 자동선의 소원성취가 이뤄진 것도 사가정의 희생에서 꽃피어진 경사다.

영천군도 그림에는 능하지만 대인관계에선 사가정이 스승격이며 더욱이 영천군은 왕손으로 한양에선 거칠 것이 없다.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로 왕손이 아니더라도 사내가 예쁜 여인이 지나가면 힐끗힐끗 쳐다보듯 여인들도 영천군을 도둑시선으로 훔쳐볼 사내다.

영천군은 좀처럼 신혼방에서 나오지 않았으며 자동선의 체취에 취해버렸고 자동선의 몸에선 야릇한 향기가 피어났다.

밤새 방사를 거듭해도 피곤하지 않았으며 하면 할수록 힘이 솟고 더욱 짙은 향기가 피어올랐다.

동창이 밝자 자동선은 일어나 꿀물부터 대령하였고 흡족한 표정이며 영천군도 자동선이 살포시 일어날 때 깨어있었다.

그러나 잠든 척하며 자동선의 행동을 살폈고 자동선도 밤새 시달렸으니 피곤할 것이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하품을 하는 순간 영천군의 손이 끌어당겼고 그들은 밤샘도 부족한 듯 다시 뜨겁게 한 몸이 되었다.

- 24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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