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나왔다
근대기록문화 조사원 신분증
1979년 이전 사진자료와 문서 제공해주는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로 전달할 소정의
답례품도 도착했다
친구들에게 모두 가지고 있을 졸업장
또는 임명장 상장 소풍사진 수학여행 사진등
학창시절 사진이 있거든
내게 보여줘 그런 것들이 모두 근대 기록 문화
자료로 후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거등
제공해주는 사람에게는 답례품을 전달 해 주라고
답례품과 근대기록 문화 리플렛이
국학진흥원에서 신분증과 명함과 함께 보내 왔어

아직 은퇴한건 아니고
직장생활과 근대기록문화조사원 같이 병행하는 중


탈무드 智慧名言 (지혜명언) 중에서.


⭕01 :
사람에게 하나의 입과 두 개의
귀가 있는 것은 말하기 보다
듣기를 두 배로 하라는 뜻이다.

⭕02 :
결점(缺點)이 없는 친구를
사귀려고 한다면 평생(平生)
친구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03 :
자기 아이에게
육체적 노동(肉體的 勞動)을
가르치지 않는 것은
약탈(掠奪)과 강도(强盜)를
가르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04 :
승자(勝者)는
눈을 밟아 길을 만들지만
패자(敗者)는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05 :
두 개의 화살을 갖지 마라.
두 번째 화살이 있기 때문에
첫 번째 화살에
집중(集中)하지 않게 된다...

⭕06 :
그 사람 입장(立場)에
서기 전까지 절대(絶對)
그 사람을 욕하거나
책망(責望)하지 마라...

⭕07 :
뛰어난 말(馬)에게도
채찍이 필요하다.
현인(賢人)에게도
충고(忠告)는 필요하다...

⭕08 :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마음에
보이지 않는 쪽이 더 두렵다...

⭕09 :
가능(可能)한 한
옷을 잘 입어라.
외모(外貌)는 생각보다
훨씬 중요(重要) 하다...

⭕10 :
자신보다 현명(賢明)한
사람 앞에서는 침묵(沈默) 하라...

⭕11 :
배운 것을
복습(復習)하는 것은
외우기 위함이 아니다.

몇 번이고
복습(復習) 하면 새로운
발견(發見)이 있기 때문이다...

⭕12 :
먼저 해야 할
일부터 손을 대고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은
마지막에 가서.

⭕13 :
한 닢의 동전(銅錢)이
들어있는 항아리는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지만,

동전(銅錢)이
가득 찬 항아리는 조용하다...

⭕14 :
악마(惡魔)가 바빠서
사람을 찾아다닐 수 없을 때,
술을 대신 보낸다...

⭕15 :
인간(人間)은 남의 하찮은
피부병(皮膚病)은 금방 알아차려도
자신의 죽을 병(病)은 깨닫지 못한다...


~닭도리 탕-

퇴근길이었다. 
아까부터 서너 걸음 뒤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그의 앞엔 어디선가 본듯한 얼굴, 낯 익은 모습의 초라한 행색의 한 중년 여인이 있었다. 

누구지?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잃어버린 시간 한 토막이 문득 스쳐 지나간다. 
바로 친구 형용이의 부인이다. 

그래 20여년 전 결혼식하고 서울 근처에 신접 살림 냈다며 경기도 부천역 부근의 방 둘 짜리 300만원 전세집에서 친구들 불러 집들이했던 중학 동창 조형용의 부인이었다. 

차린 건 많지 않았지만 정성이 묻어났고 우리는 그날 맥주와 소주를 벗삼아 옛 얘기하며 밤을 지새웠지. 
그리고 그게 전부였나보다. 

그 친구는 리비아의 아랍대수로 건설 공사 현장으로 떠났고, 무심한 우리들은 그 뒷 소식조차 챙겨보지 않은 채 여기까지 달려왔다.

운좋게 아직 대기업 계열사에 부장으로 있는 난 그래도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부천 집들이에 갔던 벗들도 하나 둘 명퇴다, 정리해고다, 구조조정이다 하는 두어 차례의 칼바람을 벗어날 수 없었고 요즘은 아예 모임 자체가 형상화된 셈이다.

가끔씩 생각 나 홀로 포장마차에서 비우는 소주와 벗하는 추억으로만 곱씹곤 했다. 

그런데 그녀가 왜? 
이름을 기억 못하는 내 머리에 너무 화가 났지만
"저... 혹시 형용이 부인...  아니시던가요?"란 말로 그녀에게 첫 말을 건넸다.

그녀는 어색하고 또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남편이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고 답한다. 

반갑기도 했지만 무슨 급한 상황이 생겼다는 느낌에 함께 그곳에 가자고 했더니 갈 수가 없다고 한다. 

남편은 중동에서 돌아와 그럭저럭 거기서 번 돈으로 지내왔는데 3년 전 폐암 진단을 받고 수술과 항암치료를 반복하던 끝에 결국 다음주면 생을 마감할 거라는 병원의 통보를 받았다는 거다.

그러면 이승을 떠나기 전에 얼굴이라도 봐야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그녀는 내게 용건을 말한다. 
아무도 없어 나를 찾아왔노라고. 
중환자실 입원 이전까지 나온 병원비는 부천에 있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어렵게 사는 친정 아버지로부터 도움을 받아 지불했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는 거였다.

병원측은 당장 이삼일 내로 밀린 병원비 3천만원을 내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내보내겠다는 거였다. 

평생을 가족 위해 살아온 남편에게 하늘나라로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해드리고 싶다는 눈물섞인 형용의 부인의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그런데 어떻게 하지?
나라고 월급쟁이인데 뭔 대수가 있을까? 
순간, 카톡을 통해 온라인상으로 자주 대화가 되는 벗들이 떠올랐다.

일단 형용의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함께 들어갔다. 
거실에서 집사람과 옛 얘기 잠깐 시키고는 동창생의 마당발인 이시무라는 이름의 총무에게 전화를 했다.

사정이 이런데 내가 좀 여유가 있으니 1천만원 마련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러자 시무는 자기도 은행빚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정리되었고 보험 겸 저축상품 장기가입한 거 해지하면 5백만원은 모을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친구들에게 사정을 전하겠다고 했다. 
많은 동창들이 적게는 몇만원에서부터 많게는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앞서거니 뒷서거니 시무 계좌로 보냈다. 

형용은 3천만원 조금 넘게 돈이 모아지던 날 새벽 눈을 감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친구들에게 하늘에 가서라도 그 은혜 갚겠다는 말을 아내와 두 남매 앞에서 남기고. 

우린 모두 벽제 장례식장에서 그를 한 줌 재로 보냈다. 
돌아오는 길 진관사길 하늘은 잿빛이었다. 

아니, 우리 모두의 가슴은 먹빛이었다. 
차창도 울고 가로수도 울었다. 
우리 모두가 울었다.
10여년 전의 일은 그렇게 우리들 기억에서 서서히 지워져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형용의 부인은 서울 변두리에서 테이블 두 개짜리 조그마한 닭도리탕 집을 냈다. 

처음엔 모든 게 서툴렀다.
설익은 감자를 내동댕이치며 육두문자로 시비거는 주정꾼들은 그래도 나은 손님이었다.

인근에 먼저 영업 하던 큰 식당 주인 부부가 와서 괜시리 욕하며 여자 혼자 남자 꼬시려고 하느냐며 비아냥거릴 땐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 모든 걸 딛고 섰다. 
먼저 가장 신선한 채소와 가장 맛있는 고추가루를 확보했다. 
그리고 김치며 밥을 손수 정성껏 만들었다. 

육수를 만들기 위해 별도로 닭 두 마리를 따로 투자했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그녀는 다른 곳에선 도저히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닭도리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인근에 금세 소문이 퍼졌다. 
그 맛과 정성이 명성을 만들었다. 
'식객'을 쓴 허영만 선생이 찾아와서는 최고의 찬사와 함께 '조선반도 최고 닭도리탕' 이라 쓴 사인을 남겨줬다. 

그렇게 해서 "조형용 닭도리탕"은 지금 월 매출만 1천만원이 넘을 정도로 단골이 늘었고, 상표등록까지 마친 서울 최고의 맛집이 되었다. 

밴드를 통해 늘 만남을 실천해온 번개파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조형용 닭도리탕"에 모여들었다.

동창 6백명 가운데 그 집 모르는 친구는 없었다.
멀리 천안에서, 강릉에서조차 가족들? 서울 행사를 그 집에서 했다.

괴산에서 프리 랜지로 들판에 풀어놓고 키우는 토종 자연 청정 양계업을 하는 또 다른 동창이 그 소식을 접하고는 영원히 최고의 닭을 생산원가에 납품하기 시작하면서 식사 때마다 대기하는 손님 줄이 2백미터 넘게 길게 늘어설 정도였다. 

형용의 아들은 가난에도 흔들리지 않고 반듯하게 자랐다. 
바르게 자식 교육에 힘써온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지금은 한국의 국가대표 기업인 현대 자동차의 전략기획실에 입사,

글로벌 마케팅 아이디어로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초석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날이다. 
형용의 아내가 내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저도 형용씨 친구분들 밴드에 정식 멤버로 가입할 수 있도록 해주실 수는 없는가요?"
물론 예쓰다.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이 예쓰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시무에게도 전했다.

시무는 고지할 것도 없이 우리 모두를 이렇게 결속시켜준 형용이 가입하는 것보다 100배 더 반가운 일이라며 그녀를 밴드로 불렀다. 

그녀는 밴드가입 인사를 이렇게 했다. 

"세상에... 저는 수어지교니 문경지교니 하는 말들은 그냥 책에서나 있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형용씨가 친구들한테 잘 한 것도 없는데 어쩌면 친구들의 사랑이 이렇게 클 수 있는지 참으로 고마웠어요. 

전 정말 기대하지도 못했어요. 
제가 그 은혜 평생 갚아나가며 살 게요.
그리고 형용씨와 제가 만들어 키운 저희 큰 녀석이 지난달 좋은 아이디어로 마케팅 실적 높였다는 공로로 회사로부터 특별 인센티브 5천만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 전액을 저도 회원이 된 이 밴드, 바로 우리 남편의 동창생 모임의 기금으로 기부하고자 합니다."

그녀는 바로 우리 모두의 우정이었고, 우리 모두의 사랑이었다. 
우리 모두는 뜨거운 물줄기가 눈가에서 흘러내리는 걸 그 밴드 글 읽으며 억제할 수 없었다.

친구의 이름으로 살아있는 그 닭도리탕집은 전 세계 어떤 식당보다도 가장 눈물깊은 사연을 안고 출발했다. 

하지만 어떤 식당도 해내지 못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럽고 편안한 벗들의 안방이 되었다. 

오늘 봄볕이 무척 따사롭다. 
이 저녁, 퇴근길이 무척이나 가볍다.  

아니 기대가 가득하다.
분명, 굳이 밴드에 고지하지 않아도 늘 600명 가운데 10여 명은 그곳에서 감자와 닭다리를 뜯으며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웃고 떠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로 말이다. 

사랑과 우정의 크기는 어느 게 더 클까? 
그 부등호의 결말을 혼자 셈해보며 회사를 나선다.
오늘은 형용의 아내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오메기떡 한 봉지를 사가야겠다.            

🐧친구라는 힘있는 우정과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감동적인 글이라 퍼왔습니다.

긍정적인 생각의 힘

 




미국 위스콘신 대학에서
우수한 문학 지망생들이 각자의 발전을 위해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중에서 한 모임은 정기적으로 모여
각자가 쓴 글에 대해서 서로 비평만 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비평과 문제점만 말하다 보니,
모임은 언제나 얼굴을 붉히는 가운데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방향을 가진 모임도 있었는데
그 모임에서는 상대에게 혹평을 말하기보다는
최대한 좋은 부분을 찾아서 격려해 주고
칭찬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시간이 지났습니다.
좋은 말로 서로 격려해 주던 모임의 학생들은
훌륭한 작가로 성공한 사람이 많았지만,
비평만 했던 모임의 학생 중에서는
뛰어난 작가가 나오지 못했습니다.





95%의 좋은 점과 5%의 좋지 않은 점을 가진
비슷한 사람이 있습니다.

95%의 좋은 점을 보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매사에 긍정적이며, 자신감 있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5%의 좋지 않은 점을 보고 사는 사람은
늘 부정적이며, 불만으로 가득하게
살아갑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5%의 부족한 점은 95%의 좋은 점으로 채우면 되고,
상대방의 부족한 5%도 내가 채워줄 수 있는데
그건 바로 칭찬의 힘입니다.


# 오늘의 명언
부정적인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꾼다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 윌리 넬슨 -

삼나무 뿌리의 지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 레드우드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크고 장엄한 나무인
레드우드(coastal redwood, 미국삼나무)가
숲을 이루면서 공원을 뒤덮고 있습니다.

이곳에 삼나무는 충분히 자라는 데 400년이 걸리고
수령이 2,000년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높이는 91m로 약 35층 건물만 하고
직경이 약 6m나 되는 거목들입니다.

거대한 몸을 지탱하려면 그 뿌리도
깊고 단단할 것 같지만 특이하게도 이 나무들의 뿌리는
1.5~1.8m밖에 되지 않습니다.

삼나무는 채 2m가 되지 않는 뿌리를
아래로 내리는 대신 옆으로 뻗어 옆에 있는
다른 나무의 뿌리를 붙잡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맞잡은 뿌리들은
서로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지표면의 습기를
최대한 많이 흡수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됩니다.

그래서 삼나무는 한 그루만 서 있는 경우보다
군집을 이루어 성장합니다.
게다가 뒤엉킨 뿌리로 함께 성장한 나무들은
폭풍이 와도 쉽게 뽑히지 않고 저항하고
서로를 지지합니다.





서로 돕는 지혜를 통해
모두가 더 높이 성장하기 위해서
'내'가 아니라 '우리'의 힘이
필요합니다.

'힘들다!, 어렵다!, 포기하고 싶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려워진 경제 사정으로
힘겨워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함께해서 굳건하게 버틴 삼나무처럼
대한민국도 함께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갈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작습니다.
함께 할 때 우리는 큰일을 할 수 있습니다.
- 헬렌 켈러 –

고든 장군의 금메달



영국의 군인, 찰스 조지 고든 장군은
영국인은 물론 당시 적군에게까지 존경받는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아편전쟁 이후 청나라에서 벌어진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여, 청나라 황제의 치하를
받기도 했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이집트와
수단의 총독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와 무슬림 사이의 우호 증진에 힘쓰고
노예제 폐지를 위해 노력하던 고든장군을,
당시 식민지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도
존경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중국과 아프리카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고든 장군을 높이기 위해
동상을 세우고 기념비를 건립하려 했지만
수락하지 않았습니다.

작위를 수여하고 포상금을 지급하겠다는
제의도 사양했지만, 결국 금으로 만든
작은 메달 하나만 받았습니다.

1885년 고든 장군이 세상을 떠난 뒤
유품을 정리하는데, 국가로부터 받은 금메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메달의 행방을 수소문을 해보았더니
10년 전 영국에 대흉년이 들었던 해에 장군은
그 메달을 녹여 팔아 굶주리는 사람들을
구제하였던 것입니다.

그 후 발견된 고든 장군의 일기장에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던
마지막 물건을 오늘 가장 소중한 국민에게
바쳤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이제는
믿지 않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청운의 꿈을 품고 힘과 권력을 갖게 된 사람이
초심을 잊고 변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관용과 배려
그리고 이해와 용서를 항상 품고 있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남들보다 나은 힘이 있다면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선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누구도 자신이 받은 것으로 인해 존경받지 않는다.
존경은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이다. ​
- 캘빈 쿨리지 –

무당개구리의 보호색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포식자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기 몸 색깔을 주변의 색과 비슷하게 만들어,
잘 보이지 않도록 몸을 숨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의 색깔과 확연히
구별되는 색상을 취하는 무당개구리의 경우
포식자 등의 적을 만나면 자신의 배를 드러내고
죽은 척을 합니다.

그렇게 드러난 배는 조금 흉측해 보일 정도로
붉은 무늬를 드러내는데 독이 있다는 것을
천적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삶을 살아가는 우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말과 행실에서도 일종의 보호색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풍조를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YES'라고
말을 하고 있을 때 'NO'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사는 방식이고, 사람의 보호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자기 자신은 스스로 보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남한테 자기를 보호해 달라고 부탁하는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
- 마야 안젤루 –

딸과 전무님의 통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11살 딸의 기발한 행동에 난감했던 아빠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박 2일로 회사 야유회에 가기로 한 날,
자녀들이 4명이라 모두 데려갈 수 없어
첫째 아이만 아빠와 함께 야유회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야유회 당일, 놀랄 일이 벌어졌습니다.
회사 전무님에게 걸려 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혹시 저희 아빠 아세요?
제가 XXX 아빠 딸인데요."

뜬금없는 아이의 전화에 전무님은 놀랐지만,
전화한 이유에 관해서 묻자
아이는 아빠가 자신은 야유회에 안 데려간다며
귀여운 투정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전무님께 말하는 아이의 부탁에
통화를 듣고 있던 직원 모두가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빠도 못 가게 해 주고
아빠도 못 가게 해 주세요."

그러자 전무님은 아빠와 함께 오라고 했고
이 한마디로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아빠에게도 꼭 둘째도 데려오라며
신신당부하며 해프닝은 마무리됐습니다.

나중에 아이가 전무님의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물어보자, 아빠가 자는 사이에
휴대전화를 열어보고 사장님, 전무님 연락처를
노트에 적어놨던 거라고 설명했습니다.

심지어 까먹을까 봐 외우기까지 했고
전무님이 안 받았다면 사장님께 하려고 했다는
아이의 해맑은 답변에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아름다운 질문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아름다운 대답을 얻는다.
- E.E. 커밍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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