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강쥐랑 산책로를 따라 걷다 세천 파출소 네거리를 지나

메가젠임플란트 사거리를 거쳐 다시 우리 아파트로 돌아 오는길에

 

휴대폰으로 찍어 본 사진들

제일 마지막 사진이 금회영각입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김녕김씨 충의공파 파조 백촌 김문기님의 영정이 봉안되어 진 장소

금회영각 입니다

사육신이라고 하면 잘 아실겁니다

조선시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가 15세에 숙부인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단종.

바로 그 비운의 임금 단종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섯 신하가 사육신이라고 하는데

사육신은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6명을 가리킵니다.

조선 중기 이후 충절(忠節)을 상징하는 사육신과

그리고 1970년대 후반 갑자기 ‘사칠신(死七臣)’이라는 말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요

이 논쟁의 중심인물이 파조 ‘백촌 김문기’ 입니다.

다음은 파조 백촌 김문기 조상님의 이력입니다.

본관은 김녕(金寧). 초명은 효기(孝起), 자는 여공(汝恭), 호는 백촌(白村). 증조할아버지는 사헌부 대사헌을 지낸 김광저(金光儲)이고, 할아버지는 호조 판서를 지낸 김순(金順)이다. 아버지는 호분시위사 좌령 사직(虎賁侍衛司左領司直)을 지낸 김관(金觀)이고, 어머니는 옥천 육씨(沃川陸氏)이다. 부인은 이조 판서를 지낸 김효정(金孝貞)의 딸 정경부인(貞敬夫人) 선산 김씨(善山金氏)이다.

육신사 : 달성군 묘리에는 육신사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이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곳이죠 멀지 않으니 한번 가보세요

그곳에 가면 태고정과 도곡재 충효당을 만날수 있고

충효당에는 새로 생긴 분위 좋은 카페가 있어요

그리고 머지 않은 곳에 달성 삼가헌이 있으니 나드리 삼아 한번 가 보시면 좋아요

위의 지도에 빨간 줄과 같은 경로로 걸어 보았다

빨간 동그라미 표시 부분이 아래 사진을 촬영한 경로이다.

섬유협동조합 앞에 서있는데 남녀 노인네 네 분 이서 길을 묻는다 신명여고를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옛 기억을 더듬어 여행 중이라 했다 아마 여고 시절에 신명여고를 다니셨나 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지로 나갔나 보다 했더니 지금 사시는 곳은 외국에 거주하시고

수십 년 전 기억을 떠올려 옛 교정을 보고 싶어 여행을 다니러 왔다고 한다.

신명여고와 계산성당 그리고 삼일운동길을 안내해 드리고 나는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초로의 노인네 분이 추억여행을 다니나 보다...

신명여고에서 내려다보던 옛 구암서원은 아래 골목길에서 보면 어떻게 다를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고

신명여고 언덕에서 내려다보던 마을 전경과 골목길은 사뭇 다를 것 같아 골목길을 가기로 하였다

그렇게 골목길을 걷다 큰길로 나와 계산성당의 이인성나무를 쳐다보고 계산성당을 바라보다

삼일운동길로 올라 청라 언덕 곳곳을 누비며 걸어 다니다 서문시장에서 다시 달성 토성마을로 향했다.

오늘 사진은 서성로 옛 백화점 무영당에서 부터 청라 언덕까지의 사진을 소개하려 한다

일전에 이야기 한 최초 민족 자본으로 만들어진 백화점 무영당이다.

한때 철거할 위기에 놓였지만 지금은 청년 예술 작가들의 예술 문화 공간으로 탈 바꿈 하였다

이곳은 덕영치과의원이다 정말 건물이 많이 낧았다

이 건물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건물들이 이런 처지에 놓여 있다

근처 신광타월이란 커다란 상점이 있어서인가 스크린 인쇄를 하는 인쇄 기판들이 놓여 있다

예전 대구 섬유삼업이 활발하게 돌아갈 때는 이런 스크린 인쇄뿐 아니라 나염이나 하여 스크린에 커다란 무늬를 새겨

염료를 묻혀 쓱쓱 문지르면 작은 스크린의 틈새로 염료가 묻어나며 꽃무늬도 만들고 체크무늬도 만들고 화려한

옷감이나 목도리 혹은 손수건으로 만들어졌는데... 옛 기억이 나서 한 장 찍어 본다

소상공인시장 진흥공단 뒷길이다 국일 생갈비와 장수단팥빵 상점사이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좁은 골목길안에 이런 카페도 있다 아마 카페이름이 몰덴 동산 카페인 것 같은데

리네아 손뜨개 한옥공방이다

옛 구암서원을 가는 길은 좁다란 골목길이다

옛 구암서원 전통문화체험관이 140m 남았다는 안내 팻말이 보인다

이런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옛 구암서원 전통문화 체험관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지금의 구암서원은 북구 연암공원(북구 산격동 가는 길목 수도산이라 불리는 곳) 옆에 위치하고 있다.

이 좁고 좁은 골목 안 이곳이 아마 옛 구암서 원 문화 체험관 일 것이다

신명여고 언덕배기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다 쓰러져가는 한옥과 한옥 안에 활터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기억이 가물 가물 한다 지금은 거의 폐가나 다름없다

이곳이 계산 성당 대구의 화가 이인성이 계산 성당 안에 있는

조그만 감나무를 그려 그 나무의 이름이 이인성 나무가 되었다는 감나무는 본 사진의 성당 우측에 있다

이곳이 삼일 운동 길이다 신명여고 학생들과 계성고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만세운동을 하였다는

삼일운동길 옆 제일교회가 커다랗게 보인다

삼일운동길을 올라가다 보니 중국인들이 이곳에서 기념사진을 찍는다.

중국인들을 보니 생각난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가면 독립문이 있다

문재인대통령 시절 광복절을 맞아 이곳 독립문에서 독립을 찬양하고 광복절 행사를 하였다는데

독립문은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립한 독립문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독립문은 일제강점기를 벗어나기 위한 독립문이 아니라 청일전쟁으로 말미암아

청나라가 패전하고 우리나라에서 물러나게 됨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해방을 뜻하는

독립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다.

중국은 고려시대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막강한 힘으로 우리나라를 저희들의 속국으로 지배해 왔고

임금이 즉위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황제에게 허락을 받아야 왕으로 즉위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며

지금도 중국은 우리나라를 중국의 일부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독립문 앞에서 문재인은 독립문의 의미도 제대로 모르고 그곳에서 광복절행사를 하였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이야길 하면 정치적인 이야길 흘러들어 갈 것같고

호불호가 갈리는 이야기라 여기서 그만하려 한다

이곳은 청라 언덕 동산병원 선교원 박물관 자리이고 의료봉사를 하던 선교원이 지내던 거쳐이다

선교박물관 동산의료원 선교원들이 기거하던 집

선교원들이 이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파하다가 생을 마감한 전도사들의 묘지 은혜정원이다

선교 박물관은 과거 우리나라에 선교와 봉사의 목적으로 방문했던 목사, 선교사들이 살았던 사택으로

스윗즈 주택, 챔니스주택, 블래어주택을 만날 수 있다

요 녀석이 모델인양 청라언덕을 방문한 이들에게 애교를 떨며 기념촬영에 응 해주곤 한다

대구 사과의 시목이 된 사과나무가 심겨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교사 사택과 높다란 제일교회 건물이 보인다

독립만세를 외치던 삼일운동 길의 모습을 벽화로 그려 놓았다

서문시장 가는 길 아니 서문시장 쪽에서 청라언덕으로 올라오는 길에 그려진 벽화이다.

예전에도 수차례 방문하였던 곳인데 다시 찾아 사진도 찍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 하니 나름 좋은 시간이었다

대구시내를 이렇게 샅샅이 훑어보는 것도 남다른 의미가 있고 또 재미도 있다

혹시 나 하고 같이 시내 투어 하실 분 계실까요?

매일매일 다니던 길도 이렇게 뜯어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옛 중부 경찰서 맞은편 대구 근대화 역사관은

1932년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 대구지점으로 건립,

1954년부터 한국산업은행 대구지점으로 이용된 근대문화유산으로,

2003년 대구시유형문화재 49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건물은 일제 시대 적산식 건물로 1950년대에 건축되었고

2015년 대구 근대화 건축물로 리모델링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국 위안부 역사관인 희움이 있는곳입니다

위치는 옛 중부경찰서 맞은편 입니다.

현재 중부경찰서는 개축 리모델링 작업중 입니다.

종로 초등 학교입니다. 지금 한창 리모델 중입니다


대구 시내는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이 처럼 빈건물이 점점 많아지고

유동인구가 감소하여 개축도 하지 못하는 상태로

일본 도쿄의 도심과 같이 공동화 상태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성내2동 일본 적산식 가옥을 리모델링 하여 창의 공간 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건물 역시 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는 듯 합니다

 

북성로 좁디 좁은 골목길에는 근대 문화 마을임을 알리는 간판이 걸려 있고

대구출신의 유명 인사의 소개도 곁들여져 있습니다

 
 
 
.

이곳은 대구의 민족자본 최초의 백화점 ‘무영당’으로

건물 주인 민족자본가 이근무가 후원한

대구 출신의 민족 시인 이상화, 천재화가 이인성 등

지역의 신지식인, 예술인들이 활발하게 교류하던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온 공간입니다.

작년 이곳을 철거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많은 설왕 설래를 하였고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판단으로 대구시가 이를 매각하여

이곳을 보존하여 복합문화백화점으로 활용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이곳의 무영당의 위치는 대구시내 곽병원 뒤쪽 입니다

 

지난 일요일 휴일날 대구시 중앙공원부터 시작하여

달성 토성마을 까지 샅샅이 훑고 지나치며 대구의 모습을

살펴보았는데 대구에서 오랫동안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보지 못했던 대구의 이면을 보는듯 하여 새삼 놀라웠습니다.

 

 

🍃1️⃣ 📢🇰🇷🇺🇸미국 40년만에 공개된 광주 5,18 현황    <萬人必讀>

1980年의 光州 5.18관련 美國政府가 40년만에 기밀문서해제로 밝혀진 眞實.    

소생이 받은 동영상에서 매우 귀중한 그리고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1980년 5월18일, 光州에서 일어난 5.18폭동에 대해 당시, 서울의 美國大使館이 本國 정부에 보고한 電文 내용이 40년 만에 기밀문서를 해제하여 공개되었다.   

거기서 밝혀진 眞實이, 지금 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임이 밝혀졌다.

폭동을 누가 일으켰느냐가 핵심이다.    

폭동이 당시 軍部의  폭압적인 진압때문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었다고 밝혀졌다.    

☞Professionally, 즉 직업적 전문성있게, 당시 북한 첩자들과 김대중 추종자들이 일으켰다고 밝히고 있다.    

당시 韓軍은, 최소한의 출혈(=희생)으로, 폭동을 진압해서 진정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놀라운 것은, 光州 5.18 폭동은, 金大中 추종자와 북한간첩들에 의해, professionally 하게 선동되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시민들에 의한 자발적인 무슨 民主化 운동 같은 것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을

내포한 文書가 공개된 것이다.    

나는, 美國 政府가  절묘한 Timing을 골라, 5.18의날 直前에  공개한 저의가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5.18 진상조사 그리고 기총소사등에 관한, 光州法의 재판등을 통해 크게,

당시 軍部가 시민들의 민주화 운동을 강력 진압했다는 것을 부각시키려고 지금 노심초사 혈안이 되어있다.   

그러나, 美國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이번 기밀문서해제를 통해발표한 것이라고 본다.    

먼저, 폭동은, 김대중 추종자들과 북한간첩들에 의해 전문적으로 선동촉발한것이라고 明文 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국내언론은 이제까지 김대중 정권때부터 써먹은것,

즉 軍部의 폭압적 진압에 저항한 시민들의 民主化 운동이라는 것과는 전혀 다른 5.18의 진상과 실체를,

앞서 말한 북한첩자들과 김대중 추종자들이 선동해서 만들어 내서 촉발되었다는 사실을, 일체 보도하지 않고 있다.   

지금, 국내언론이, 5.18관련 진실보도에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단 한줄도 알리지 않고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단순히 미국정부가 40년 만에 비밀문서를 공개했다고만 짤막히 보도하는데 그치고 있다.    

크게 유감이다.

놀라운 진실이 밝혀졌는 데도 말이다.   

이제부터는, 광주 5.18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를 이유나 필요가 모두 없어졌다고 나는 본다.

김대중이 집권하자마자 자기 추종세력에게 5.18특별법을 제정, 촉구하여 국민혈세로 보상하는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5.18은 결코 민주화운동이절대 아니라고 본다.    

김대중이란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이 지금까지 나라의 재정을 파먹고 뜯어먹고 있다고 본다. 슬픈 일이다.   

지금 부터는 그것을 뜯어고쳐야 한다!

미국정부에 의해 5.18의 진실이 이제서야 밝혀진 것 그나마 다행이리고 생각한다.

<2020-05-17, jgchoi作成.>     💠[충격] 미국 5·18 기밀문서공개.. "폭동은 공산당요원에 의해 기획됐다" - Click!     https://nationnews.tistory.com/m/entry/%EC%B6%A9%EA%B2%A9-%EB%AF%B8%EA%B5%AD-5%C2%B718-%EA%B8%B0%EB%B0%80%EB%AC%B8%EC%84%9C-%EA%B3%B5%EA%B0%9C%ED%8F%AD%EB%8F%99%EC%9D%80-%EA%B3%B5%EC%82%B0%EB%8B%B9-%EC%9A%94%EC%9B%90%EC%97%90-%EC%9D%98%ED%95%B4-%EA%B8%B0%ED%9A%8D%EB%90%90%EB%8B%A4   

💠5.18 유공자 명단 찾았다.    

명단보면 현역 여권수뇌들 대부분이 명단상단에. 양심에 털난자들     Click! http://me2.do/FH8J9NbR     🍃

 

2️⃣ 📢함경북도 청진에도 5.18유공자 추모비와 무덤이 있다.   

5.18 전사자 인민군 추모비

◎ 묘지 추모탑 위치 : 청진역 북방 800m, 낙타산 중턱 70m에 위치    

◈ 5-18 광주 침투 북한 특수군 534군부대 전사자 154명 명단

◈ (여군 포함)     비석에 새긴 첫 문장 : "여기에 청춘의 고귀한 심명을 당과 조국과 인민을 위해 바친 님일세"    

비명 : "사람들이여! 걸음을 멈추고 용사들의 불멸의 애국정신을 추억 하라.

피로써 조국을 지킨 인민군 영웅 렬사들의 혁명정신과 찬란한 위훈은 후손 만대에 길이 빛나리라!"   

(전부 다 사망일은 1980년 6월 19일)    

홍성표, 김석준, 한창준, 오부진, 김운선, 김응수, 김국식, 김한수, 서대석, 우준선, 조영규, 리진혁, 염종식, 유해유, 김종돈, 천수만, 유리국, 김귀옥, 서진남, 김창록, 김영석, 김수전, 김용성, 전순돌, 리계찬, 림한석, 김진우, 박원용, 황송열, 김동철, 리진섭, 강원철, 최귀한, 리창용, 손원백, 현택룡, 박경화, 김수근, 김인준, 방동환, 전성규, 남창섭, 강일권, 리봉섭, 주창동, 김인현, 윤장우, 리정부, 김은태, 최은신, 김태환, 김명규, 리동근, 김승미, 리동철, 리양수, 허명신, 염철남, 영홍식, 리정환, 최철순, 염근원, 김학준, 조기림, 리승봉,림용현, 주장실, 최진숙, 백창덕, 김두표, 허죽순, 최윤일, 김길만, 김일춘, 리신전, 김귀삼, 리손직, 박려원, 리창근, 리광주, 박경준, 김한옥, 김영학, 리인걸, 림대식, 박재준, 리학권, 염인순, 홍인준, 최리순, 염운신, 리광춘, 라하권, 리종문, 박공봉, 림종문, 노훈문, 황명환, 김두관, 임원표, 배원호, 최영도, 서용규, 김귀성, 최재복, 김원형, 김종환, 최봉준, 최규학, 김상혁, 김기남, 현원식, 김옥현, 유풍준, 김영식, 김황로, 김화룡, 리순희, 김종순, 백기준, 김길선, 김우철, 박일진, 리은지, 김종린, 김장복, 최갑진, 박두길, 리도화, 김현룡, 안경찬, 최도진, 천지춘, 김영호, 리일화, 전기천, 마진선, 홍종묵, 신안석, 김허준, 김월빈, 백순옥, 리춘식, 류길산, 김인도, 김옥린, 김동준, 김영화, 윤성화, 림영훈, 최중선, 한승택, 차준욱, 김병천, 김영옥, 김두천, 박은학, 조영학   

전사자들 158명의 명단과 332명의 인민군 영웅 열사들이 잠들고 있다고 기록되어

490명 북한군이 5.18당시 전사한 것을 증명하고있다.   

많은 측면에서 국민들이 쉽게 믿고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5.18광주사태에 북한군특수부대들이 대거 침투해서 배후교란작전을 했다는 것은

탈북자들의 말뿐이 아니라 분명하고 정확한 사실입니다.    

북한에는 광주사태에 참가했다가 돌아가서 공화국영웅칭호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생존해 있고

제가 살던 곳에는 광주에서 죽어 북한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영웅묘지가 있습니다.    

현재 북한 함경북도 청진시 천마산 마루에는 대남작전에 참가하였다가 사망한 전투영웅들의 묘지가 있습니다.    

공작 임무를 받고 남조선침투를 위해서 파견되었다가 공해상에서 국군의 공격을 받아서

숨진 특수부대사람들의 묘도 여러 개가 같이 있습니다.    

말이 무덤이지 사실은 북한인민들의 사상교양을 위해서 시신도 없이 유품만 넣어서만들어놓은 빈 무덤입니다.    

이글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내용이다.   

사실 무근이면 존재 할수 없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이 내용이 세상에 공론화 되지 않을까?   

나는 종북 언론 종북노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3️⃣ 📢민주화 보상    

이 者들은 전부 공산화 반역운동을 한 인간들 518명단을 공개할 시기임.  이인제페북    

민주당이 소위 '운동권특혜법'을 밀어 붙였다.

민주화운동유공자의 자녀들에게 입학과 취업시 특혜를 부여해 왔다.    

참으로 희한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모두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한 떡밥이다.   

그것이 무려 40여년. 수많은 시험에서 좌편향 인물들을 사회 곳곳에 심어왔다.   

오늘의 현상이다. 세월호 사건, 이태원 사건. 중요 시국사범 

 

[다음 메일] 이메일 계정은 2단계 인증으로 보호되어 이메일 앱에서 이런 문구가 뜨면서 알림이 계속 울린다.

이곳저곳 찾아봐도  명확한 답이 없다

제일 유사한 답을 제시 한 곳이 아래 주소이다

https://worldclassproduct.tistory.com/entry/%EB%8B%A4%EC%9D%8C%EB%A9%94%EC%9D%BC-%EC%9D%B4%EB%A9%94%EC%9D%BC-%EA%B3%84%EC%A0%95%EC%9D%80-2%EB%8B%A8%EA%B3%84-%EC%9D%B8%EC%A6%9D%EC%9C%BC%EB%A1%9C-%EB%B3%B4%ED%98%B8%EB%90%98%EC%96%B4-%EC%9D%B4%EB%A9%94%EC%9D%BC-%EC%95%B1%EC%97%90%EC%84%9C-%EA%B3%84%EC%A0%95%EC%9D%84-%EC%82%AC%EC%9A%A9%ED%95%98%EB%A0%A4%EB%A9%B4-%EC%95%B1-%EB%B9%84%EB%B0%80%EB%B2%88%ED%98%B8%EA%B0%80-%ED%95%84%EC%9A%94%ED%95%A9%EB%8B%88%EB%8B%A4-%EC%9B%B9%EC%97%90%EC%84%9C-%EC%9D%B4%EB%A9%94%EC%9D%BC-%EA%B3%84%EC%A0%95%EC%97%90-%EC%82%AC%EC%9A%A9%ED%95%A0-%EC%95%B1-%EB%B9%84%EB%B0%80%EB%B2%88%ED%98%B8%EB%A5%BC-%EC%83%9D%EC%84%B1%ED%95%A0-%EC%88%98-%EC%9E%88%EC%8A%B5%EB%8B%88%EB%8B%A4

 

[다음메일] 이메일 계정은 2단계 인증으로 보호되어 이메일 앱에서 계정을 사용하려면 앱 비밀번

필자는 갤럭시 스마트폰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이메일" 앱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해당 앱에 지메일, 네이버 메일, 다음 메일, 네이트 메일의 계정을 등록하여 잘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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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은 삼성 이메일이나 지메일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다음 메일을 설치하여 사용하는 게 좋다는 게 결론이다.

 

나는 삼성 이메일을 통합하여 사용하는데 다음 메일뿐만 아니라 지메일 네이버 메일 아웃룩 등 많은 계정을

사용하다 보니 모든 이메일 앱을 다 깔아놓고 사용하기가 힘이 들어 삼성 이메일에서 통합하여 사용하고 있는데 

2단계 보안을 걸어 두었더니 계속  이메일 계정은 2단계 인증으로 보호되어 이메일 앱에서....

이런 팝업창이 뜨면서 사용을 하지 못 하도록 만드는데 다음(카카오) 이메일에 가서 답을 찾으려니

대체 무슨 말인지 고객센터에서는 IMAP? POP3등 어쩌고저쩌고 써 놓았는데 대체 어찌하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 

간단히 따라 할 수 있도록 그림을 만들어 해결 방법을 풀어 보았다

 

[다음 메일]에서 이런 문제가 나타날 때 지금부터 아래 사진을 그대로 따라 하면 되니 잘 보시고 따라 하여

해결하시길 바란다.

이런 메시지가 나오면 이렇게 따라 하세요

 

 

카카오톡 페이지에서 맨 아래 점 세계를 눌러 주세요

 

 

더보기 화면에서 톱니 모양의 설정 버튼을 눌러 주세요 

 

 

설정 화면에서 자신의 개인 계정을 눌러 주세요

 

 

개인 계정 페이지에서 쭉 아래로 내리시면 사진에는 없지만 계속 내려 보면 2단계 인증이 보입니다

2단계 인증 단추를 눌러 주세요

 

 

 

자신의 계정이라도 또 한 번 자신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비밀 번호를 입력하라는 창이 나옵니다

이 창에 자신의 비밀 번호를 입력하여 로그인하여 주세요

 

 

그러면 2단계 인증 창이 나오는데 2단계 인증 창에서 자신의 비싱 연락 이메일을 넣어 주세요

지메일이나 다른 이메일을 주소를 입력하여야  비상시 내 비밀 번호를 잊어버리더라도 

다른 메일로 연락을 받아 자신이 사용하던 다음 메일을 복원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나면 조금 아래 앱 비밀번호에 꺽쇠 단추를 눌러 주세요

사진에는 앱 비밀번호 1개가 생성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다른 분들은 앱 비밀번호가 생성되지 않았으니 

빈칸으로 나타 날 겁니다

 

 

2단계 인증 비밀번호 생성 화면이 나옵니다 이곳에 삼성 이메일 앱을 쓸 것인지 지메일 앱을 쓸것인지 또는 아웃룩 메일을 쓸것인지 에 따라 입력을 해주세요 나는 삼성 갤럭시 S20에서 이메일을 쓸것임으로 삼성갤럭시 S20이라고 입력합니다.

그리고 생성 버튼을 꾹 눌러 주시면 잠시 뒤 비밀번호가 생성되지요 

그 비밀 번호를 복사하여 최초 다시 로그인 화면으로 돌아와 비밀번호 란에 붙여 넣기 하신 후 그리인 하면  해결됩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제대로 따라 하셨나요 그러면 이제부터는 팝업창이나 알림이 뜨지 않고 사용이 가능하실 겁니다

따라 하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세요

화성시 봉담읍에 아는 분이 있어 다녀 왔지요

수인선 수연숲길을 새벽에 걸어 산책하고 왔네요

옛 수인선 철길따라 가다보니 수인선 수영숲길이 나오고
수인선 수영숲길을 따라 걷다보니 협궤터널(화산터널)이 나옵니다
화성시와 수원시의 경계에 있는 협궤터널을 지나 수원 오목천역을 
지나 한참을 걷다 보니 옛 수인선 철길에 가로놓인 다리를 건너
양옆으로 펼쳐진 초록빛 논과들 그리고 숲길 그냥 지나칠수 없어
사진 하나 남겨 봅니다.

신문에 나온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


1.
부모가 식탁에서 자녀에게 해서는
안되는 것 5가지.

첫째.
‘먹지 않으면 키가 크지 않고,
강해지지도 않는다’
식사할 때 음식에 대한 결과를 말하면, 자녀가 음식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수 있다.

둘째.
‘음식을 다 먹지 않으면
다음부턴 주지 않겠다’
음식을 다 먹도록 가르치기 보단
만족할 때까지 먹도록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아이들은 부모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는다.
약 12세까지는 부모가 자녀의 환경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에 식탁에서 좋은 롤 모델이 돼 주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야채를 먹으면 디저트를 주겠다’
음식을 보상으로 사용해선 안된다

다섯째.
‘자신의 식성이 까다롭다는 말을 피하라’
까다롭다는 단어는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부모를 흉내 내는 자녀의 정체성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음식 남기면 복나간다"

결국 비만이 남았다


2.
우리나라 전통 고추장이 체지방 개선 효과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발효미생물산업진흥원과 원광대학교 병원 가정의학과 한아름 교수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추장의 섭취가 내장지방 함량을 감소시키고, 혈중 지질 농도를 개선시키는 효과가 있다는것이 확인했다.

관련 연구논문은 국제 영양학회지 뉴트리언츠(Nutrients)에 등재됐다.



고추장 살찌는 음식인줄 알았는데...



3.
혈압은 양팔을 모두 측정해 높은 쪽의 혈압을 택해야 한다.

높은 쪽의 혈압을 택하면 낮은 쪽 혈압을 택하는 것보다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 위험 등을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양팔의 혈압을 모두 재서 높은 쪽 혈압을 택하지 않으면 고혈압이 과소진단돼 제대로 치료하지 않게 될 뿐 아니라 심혈관 질환 위험마저 과소평가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둘다 재서 높은쪽을 택해야 하는게
어디 혈압뿐이랴...



4.
타이완 이야기.

타이완은 원래 중국의 땅도 아니고 중국인이 살았던 지역도 아니다.
이 섬은 오스트로네시아계 원주민이 살았던 땅이다.
이들은 중국에서 넘어온 사람들에 쫓겨 산으로 올라갔기에 고산족(高山族)이라 불리기도 한다.
사실 타이완은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현재 50만∼100만명에 달하는 고산족이 원래 살던 땅이다.

하지만 많은 강대국들이 점령했던 땅이기도 하다.

1624년 네덜란드는 타이완에 500여 명의 군대를 파견해 제일란디아라는 기지를 구축하고 사탕수수 농장을 운영했다.

1662년 명나라 패잔병을 이끌고 정성공(鄭成功)이 타이완에 정착했다.

1683년 청나라가 대륙을 평정하고 타이완을 차지한다.
이후 청나라는 1895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뒤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타이완을 일본에 내주었다. 당시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타이완 주민은 청나라 관료 당경숭(唐景崧)을 내세워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선포하고 일본에 저항하려 했으나 13일 만에 진압되었다.

청나라에서 일제 치하로 넘어가 반세기를 보낸 타이완은 1945년 다시 중화민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중화민국정부는 1947년 타이완 민중 수만명을 학살하는 2·28사건을 일으켰으며 이후 40여 년 동안 타이완을 계엄령 아래 통치했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타이완은 수백년의 강압적 외세 지배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나라로 거듭났다.


어째 당하고 산 역사가
우리랑 비슷할꼬.....


5.
수면은 일반적으로 5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얕은 수면이다.
깜빡 조는 정도의 수면 상태다.

2단계는 그다음 얕은 단계로,
깊은 수면으로 진입하기 위한 중간 단계다

3단계는 뇌파가 느려지면서 깊은 잠에 빠지는 ‘서파(slow wave) 수면’이 시작되는 단계다.

4단계는 가장 깊은 수면 단계다.

5단계는 뇌가 활성화하고 잠꼬대를 하는 렘(REM)수면 단계다.
수면의 깊이로는 가장 얕은 단계다.

여기까지가 수면의 한 사이클이다.
보통 한 사이클에 90분 정도가 걸린다. 그리고 잠을 자는 동안 이 사이클은 반복된다.

근데 중요한 것은 90분간의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수면 깊이가 얕아진다는 점이다.
실제 그래프상으로 각 단계의 수면 깊이가 계단식으로 조금씩 얕아지는 양상을 보인다. 즉 사람은 잠든 후 첫 수면 사이클에 가장 깊은 잠을 자는 것이다. 수면 전문가들이 잠든 첫 90분을 숙면 상태로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편안한 잠을 위해서 멀리 해야하는 3가지는 빛,소리,술이다.



6.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

파블로 피카소.



돌아가신 피카소님한테
망치로 머리 한방 맞았다.



7.
[그림이 있는 오늘]

베르트 모리조

‘와이트섬의 외젠’ 1875년.

작품속의 인물은 작가의 남편이다
당시 여성은 보이는 객체이자
그려지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 화가
베르트 모리조는 달랐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남편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8.
[詩가 있는 오늘]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반칠환(1964∼ )

보도블록 틈에 핀 씀바귀꽃 한 포기가
나를 멈추게 한다

어쩌다 서울 하늘을 선회하는
제비 한두 마리가 나를 멈추게 한다

육교 아래 봄볕에 탄 까만 얼굴로
도라지를 다듬는 할머니의 옆모습이
나를 멈추게 한다

굽은 허리로 실업자 아들을 배웅하다 돌아서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나를 멈추게 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는다




9.
오늘의 날씨입니다

 

대한민국이 넓은가 보다 경기 지방에서는 물난리에 죽을 지경이고 남부지방은 특히 대구 지역은 비 가 오지 않아

메마른 가뭄때문에 죽을 지경이다.

인천공항 출국장 코로나 여파인지 썰렁 하다
아직도 인천 공항에는 공중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베트남의 하늘은 언제나 파랗게 맑고 푸르다 다낭을 갔을때도 그렇고 하노이를 갔을때도 그렇다

 

빈펄랜드 입구에 도착 하였을때 경관을 보고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선착장이라니
나트랑 여행 중 가본 장소 들 판랑과 416광장 은 제외

롱 선사를 방문하고 나서보니 냐짱 관광이라는데 그리 좋지도 않고 방문할 가치가 있나 싶을 정도이다

관광지가 그리 없나 싶기도 하다

다음 방문지는 Aroma House라는 쇼핑몰이다 위치는 Newtown, Lot CX01, Thich Quang Duc Str., Phuoc Long, Ward, Khánh Hòa 65000 베트남에 위치해 있는데 이곳은 베트남 국가에서 운영되는지 냐짱 시에서 운영하는 것인지 

꽤나 넓은 장소인데 반쪽 밖에 사용을 하지 않는다 코로나 이전에는 모두 운영하였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침향과 노니 제품 그리고 농산물을 이용한 2차가공 식품들 코코아라든가 위스키 등등

에고 지겨워 이런 쇼핑몰을 끌고 다니지 않으면 안되려나 가이드 여행을 하면 정말 불편한 게 이런 쇼핑몰을 질질 끌려 다니는 것이다

쇼핑몰 구경후 마사지 샵에서 태국식 마사지를 받고 저녁식사를 하였다 

저녁식사는 한국식 불고기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다른 일행들은 전날 이곳에서 저녁 식사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저녁식사 하고난 이후 시티투어 일정인데 우리는 시티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이와 다르게 야시장 투어를 하게 되었다 시티투어랑 야시장 투어랑 뭐가 다른 게지?

Nha Trang Night Market(Trần Phú, Lộc Thọ, Nha Trang, Khánh Hòa 650000 베트남) 이곳 야시장을 돌아다니며 

손자 아원이에게 줄 옷이며 장난감을 구입했다 

야시장엔 많은 젊은이들로 붐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맨 처음 비치 해변 관광을 하였던 핑크타워 부근이 아닌가

같이 투어를 하던 경주에서온 가족들에게 이야길 하였더니 어제도 이곳에 왔다 갔었는데 까맣게 모르고 있었노라 한다

그러고 보니 시티투어라는것은 시클로(Cyclos, 삼륜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일주하는 그런 것인가 본데 30분을 이용하는데 꽤  많은 비용을달라고 한다 대략 1~2달러 정도면 탈수 있었든 것 같은데 관광객이라 바가지요금 인가?

곳곳이 시클로가 대기하여 있기도 하고 그것을 타고 다니는 이가 몇몇 있다 우리도 하노이 여행 때 이용한 적이 있었는데 

그냥 타고 시내 구경 하는것인데 별거 없다

야시장 투어중 아이스께끼라고 하나 하드도 하나 사 먹었다 밤 11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에 탑승하여 내일 귀국하는 4명의 인원을 호텔에 내려주고 우리는 공항으로 가게 되었다 공항 수속 후 새벽 2시 비행기를 타면 이번 냐짱 여행은 끝이다
공항은 한산 하다 출국 수속도 간단하다 그냥 짐을 스캔하고 신발 가지 벗어 스캔하고 몸도 탐지기를 통과하면 출국 수속은 끝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공항에 도착하니  원숭이 두창과 관련하여 설문지를 써내야 하고 세관 신고도 해야 한다

그리고 pcr검사 확인서가 있음에도 불구 하고 입국 후 삼일 내 pcr검사를 행해야 한다 

최근 감염자 급증으로 입국당일 pcr검사를 하여야 하는데 우리 같이 지방에 있는 사람은 PCR 검사가 당일 날 받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그럴 거면 공항에 PCR 선별 검사소를 운영하지 왜 선별 검사소는 다 없애고 운영 시간도 오전 오후 2시간씩 밖에 운영하지 않는 건지 그래도 우리는 이런 검역이 강화되기 전 다녀와서 정말 다행이다 싶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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