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17화)

 
 

지리산에서 금강산으로 오는 사이에 겨울이 훌쩍 지났다.

이사종과 삼년이나 한양에 살았으나 자유의 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엔 가보지 못해 이번엔 관심있는 곳을 둘러보려 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장악원(掌樂院:현 국립국악원)이다.

소세양과 계약결혼을 했을 때 자기 소실로 들어와 장악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하여 이론은 더 배워 후세에 남기면 어떠냐고 제의했을 때가 떠올라서다.

이제 진이는 기생이 아니고 떳떳한 자유인이지만 한량들은 진이가 여전히 기생으로 알고 돈으로 사려한다.

진이는 그것이 싫고 남자의 여자가 아닌 여자의 남자들을 만들려는 것이며 그러려면 그들을 뛰어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고 억불숭유의 조선에선 엄격한 신분제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이 뚜렷하다.

사(士) 다음에 농(農)이 있음도 눈여겨 볼 대목이며 사대부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면 대부분 고향과 시골로 내려간다.

그것은 다음 과거에 나올 생각에서고 장사 등 직업을 가지면 아예 과거볼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내로 태어났으면 등과(登科)하여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금의환향하여 사대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을 게다.

그런 사대부의 나라에서 진이는 여자의 남자를 찾았고 소세양·이사종·지족선사·이생 등을 품었으나 화담 서경덕은 끝가지 노력했으나 스승으로 삼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양의 풍류객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고 한양기생들에게선 더 이상 새로운 사랑과 풍류를 찾을 수 없어 색향 송도의 명월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진이는 화대를 받고 몸을 내주는 것이 싫었으며 자유를 찾아 아버지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나 사내들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

불을 본 부나비 같이 달려드는 사내들을 피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자유의 몸으로 돌려 놓으려 했던 것이다.

기생이 아름답고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기생은 기생이고 시기(詩妓)·악기(樂妓)·의기(義妓)·무기(舞妓) 등이 그 이름이다.

진이는 그것이 싫었고 기명(妓名)인 명월(明月)이 있으나 그녀는 진이(眞伊)를 고집하였다.

명월이라 부르는 손님은 받지 않았고 진이를 상징하는 명월관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며 이제 명월관은 있어도 명월은 없고 진이만 남았다.

묘향산의 보현사를 시작으로 두류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거쳐 한양을 들러 고향 송도에 왔다.

이제 여자의 남자를 데리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려 하며 1만2천봉 골짜기 사찰을 찾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다.

진이는 첫걸음으로 유점사(楡岾寺)를 찾았으며 주지스님을 찾아 정성껏 시주를 하고 어머니 현학금에 대한 기도부터 올렸다.

두류산의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온 진이는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왔고 금강산은 두류산에 비해 정감이 가는 동네 산이다.

대웅전 뒤에 자그마한 방을 배려 받아 그들은 짐을 풀었고 짐이래야 거문고와 타고 온 말이 전부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곯아 떨어졌고 오뉴월 엿가락처럼 녹초된 상태에도 이생의 손은 진이의 사타구니를 찾았다.

주지스님은 진이도 사내로 보고 한방에 넣었으며 송도에서 진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라 주지스님은 사내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생의 손이 사타구니로 오면서 진이는 어느새 그곳에 뜬금없이 달콤한 꿀이 나오면서 꿈속으로 빠져들었고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이생의 손이 그곳에서 재미를 보는 사이에 진이는 어릴 때의 송도로 돌아갔다.

버드나무 부드러운 바람을 훑고 보슬비 꽃다운 들에 날리는 동교(東郊)와 비단처럼 밭이랑 펼쳐있고

맛좋은 막걸리에 취한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의 서교(西郊)에서 깔깔대며 어머니와 뛰어놀았던 시절로 빠져들었다.

진이는 팔도유람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사대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내색을 할 수 없었으나 속으론 쾌재를 불렀곷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린 상열지사(相悅之詞)의 애틋했었던 순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들 절간에 송화 꽃은 떨어지고/ 비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떠나려 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水) 두 사람을 아꼈으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총교송객'(靑郊送客)이다.

남녀가 만났다 헤어짐에 어찌 석남(石男)·(石女)가 될 수 있을까? 진이가 제아무리 여중호걸(女中豪傑)이라 하여도 가녀린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어느새 진이도 이십 고개를 넘어 삼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호의호식하며 허리 밑으로 사대부와 한량들을 줄을 세웠던 나날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랑을 하면 정이 들고 뜨거운 살을 섞으면 욕심이 생겨 헤어지기 싫은 것이 남녀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진이를 거쳐간 사내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치 많으나 그중에서도 소세양과 이사종이 특히 이따금씩 몸서리쳐지도록 간절하다.

한양이 남성적 도시라면 송도는 여성적 도시며 진이는 송도에서 소세양과 삼십여 일을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사종과는 육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송도와 한양을 오가며 사랑의 싹을 키워 꽃피웠다.

지금 삼남(三南·충정·전라·경상) 지방을 휘돌아 다시 송도에 오니 흘러간 애틋한 세월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밤새 이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몸은 오히려 가뿐해졌고 처음엔 못이기는 척하다가

차츰 몸이 달아오르자 여러 사내를 통하여 터득한 사랑의 기술이 저절로 나왔다.

이생의 물건이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따라 움직여 호흡을 맞춰 주었다.

이생은 의아해 하면서도 모르는척하며 처음으로 진이에게서 흡족한 욕정을 채웠다.

진이는 동창이 밝자 아침도 거른 채 산행에 나섰다.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힘이 다시 솟아났다.

- 18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6화)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 진이와 이생은 다정한 부부모양 두 손을 꼭 잡고 천왕봉(天王峯)에 올랐다.

곱게 물든 단풍에 천지사방이 불속처럼 뜨겁게 아름답고 진이는 천왕봉에 오르자 태양을 향해 삼배하며 역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어머니가 진이를 황진사에게 맡기고 송도를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풍문을 들었을 뿐 그 후 종적을 몰라 늘 염두에 두고 극락왕생을 기도하였다.

엄수(嚴守) 거문고 스승한테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타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어언 십 수 년이 지났다.

예성강에 장님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식에 비만 오면 거문고를 타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풍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어머니 현학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확신이 선지 오래다.

아침 해가 불끈 솟은 태양을 보고 어머니를 위해 극락왕생을 빌은 진이의 전신에 맥이 풀렸다.

상무주암에서 방사까지 즐기며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고 올라왔으나 체력은 바닥이 났으며 밤은 깊었으나 만공산에 명월이 가득하고 춥고 배도 고프다.

상무주암에서 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허기를 메웠으나 몸이 떨리고 눈이 들어갔다.

“내려갑시다. 더 있을 수가 없네.”

진이는 이생에게 업히다시피 하여 오후 늦게 상무주암에 도착하였고 기진맥진 상태다.

진이는 몸이 아무리 무거워도 거문고는 갖고 다니며 정신이 혼미하고 육신이 녹초가 되었어도 거문고를 타면 영혼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내일 금강산을 향해 떠날 생각인데 지금 몸 상태론 불가능한 상태였고 이생이 진이를 부축하여 말에 몸을 맡긴다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녁을 먹고나니 몸은 더욱 파김치가 되었지만 이처럼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진이는 거문고에 세상 시름을 떠 넘겼다.

주지스님에게 맡기었던 거문고를 찾아 타기 시작하였고 중국 죽림칠현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다. 

깊은 밤 잠 못 이루어/ 일어나 앉아 거문고를 타려니/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치고/ 맑은 바람 옷깃에 스며드는데/

외로운 큰 기러기 들판에서 애처롭게 울고/ 둥지를 찾아드는 새 북쪽에서 우짖는다./

배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근심스런 심사에 홀로 마음만 상할 뿐이네‘

이생이 옆에서 손발이 되어 보살피나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사종과 6년간 계약결혼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조선팔도 유람길에 여자 혼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고 서로 필요한 관계인 남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생은 어느새 표정만 봐도 지금 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고 완적의 '영회시'가 진이의 거문고 음률을 타고 상무주암의 밤공기를 휘감았다.

“손님의 거문고 솜씨가 천하의 일품이네요!” 주지스님이 혀를 차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아씨가 누구인지 아시고 하는 말씀이세요?”

옆에 있던 이생이 노복(奴僕·사내종)의 모습으로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주지스님의 말에 끼어들었다.

“이 아씨가 누구신가요?”

“예 우리 아씨는 그 유명한 명월(明月) 아씨예요. 그런데 지금은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기생)가 아니에요.”

주지스님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쩐지 거문고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거문고를 타면 중국 장강(長江)에서 흑두루미가 날아온다는 현학금의 따님이신가요?”라고 말하며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머님에 비하면 이 진이는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조용히 수행하시는 주지스님께 속세의 바람을 불어넣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동창이 밝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아닙니다. 소승도 출가하기 전엔 송도의 한량이었지요! 그때 현학금의 거문고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진이는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는데 지금 주지스님이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 얘기를 하여 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나 산사(山寺)의 밤이다.

진이는 ‘잘 쉬고 갑니다. 송도에 오시면 명월관을 한번 찾아오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여명이 밝자 주지스님에게 인사는 않고 떠났다.

‘송도에서 놀았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하루 이틀 더 쉬었다 떠나려 했었으나 서둘러 금강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고 말 등에 오른 진이는 이인로의 '매화'(梅花)를 떠올렸다.

고야산(姑射山·신선이 사는 곳) 신선의 얼음 같은 살결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그린 입술에 새벽이슬 구슬을 마시네./

속된 꽃술들이 봄에 붉은 빛으로 물듦을 못마땅하게 여겨/ 요대(瑤臺·신선이 사는 달)를 향해 학을 타고 가려하네.

진이의 마음이 평정을 잃을 때는 늘 시를 떠올려 거문고 선율에 의지했었으나 말 등 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진이의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였고 진이의 노래는 절창 이사종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금강산을 향하는 말 위가 아니라면 거문고를 타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꽉 막힌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었으며 이생은 말을 천천히 몰았다.

“형님, 제 허리를 꼭 잡으세요! 길이 험해 말 등이 요동이 심합니다.” 진이는 느슨하게 잡았던 이생의 허리에 힘을 넣었고

늦가을의 새벽바람은 제법 쌀쌀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속까지 텅 비어 오한이 솔솔 몰려오고 있다.

“형님 추우시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막이 있습니다. 올라올 때 봐 두었지요!”

이따금씩 몸서리치는 진이의 몸 흔들림을 이생은 느끼고 있는 것이며 여명이 밝고 아침 해가 새벽안개를 걷었을 때 주막에 도착하였다.

산에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은 벌써 국밥을 먹고 주막을 떠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모 여기 고기도 넉넉히 넣어 국밥 두 그릇과 모주 두 잔도 주시게.”

이생이 진이를 안아 말에서 내려놓고 성큼 주막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돈이야 진이가 내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행동을 해주는 이생이 고맙고 같이 오길 참 잘 했다고 생각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며 지금도 또 그런 생각을 하였다.

밤엔 때때로 잠자리 상대가 돼주고 낮엔 충실한 노복 행세를 해주니 입안의 혀가 따로 없음이다.

국밥 한 그릇에 모주 한 잔은 산에서 내려온 그들에겐 더 이상의 성찬이 없다.

“너는 모주 한 잔 더 하려무나!”

“아닙니다. 한 잔으로 족합니다.”

남장한 진이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고 여자 아냐? 하는 표정들이며 진이와 이생은 따가운 시선을 등 뒤로 하고 주막을 총총히 나와 말 등에 올랐다.

- 17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5화)

 
 

보현사를 떠날 때 진이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다시 한 번 관음전에서 빌었고 팔도를 두루 다닐 발길이 보현사를 다시 찾을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두류산(頭流山:지리산의 별칭)으로 가려는 발길이고 두류산은 산 이름부터 진이와 예사롭지 않은 산이다.

신선들이 금강산으로 가려다 두류산이 너무 아름다워 그만 주저앉은 이들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아름답고 수려한 산에 명월리(明月里)가 있다.

진이는 어젯밤 꿈에 중국의 진(晉)나라 죽림칠현들을 만났다.

고려의 강좌칠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원조격인 죽림칠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의 사창회(詞唱會)에 초청되어 고려의 청풍(淸風)을 뽐냈던 것이다.

죽림칠현들은 말로만 듣던 명월의 등장에 신선이 나타난 듯 황홀해하며 깍듯한 칙사 대접을 해주었고 진이는 칠현 중에도 혜강(嵇康)을 좋아하였다.

고려의 강좌칠현 중에 함순을 경모했듯이 그날 이후 진이는 수장(首長)격인 혜강을 마음속에 두었다.

진이는 두류산으로 들어가면서도 엊저녁의 죽림칠현과의 사창회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이는 그들의 은둔생활이 이해되었고 중국의 죽림칠현들을 꿈에서 본 이후 고려의 강좌칠현에 대해 궁금증이 더욱 폭발하였다.

죽림칠현이 현실정치에 혐오감을 느껴 출사하지 않고 술과 시로 세월을 낚듯이 고려의 강좌칠현 역시 무인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사실 진이도 기생이었던 시절 돈 뭉치를 들고 찾아와 자신을 첩으로 들어와 달라고 한 한량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돌려보냈고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다.

금지옥엽으로 커온 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오자 원래 신분인 서녀(庶女) 위치로 떨어져 사대부집 소실로 들어가라고 권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아버지 황진사와 절교를 선언하고 기생이 되었으며 진이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보현사를 떠나 두류산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진이는 절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금강산으로 가려던 신선들이 놀았던 산에서 자신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진이가 명월관을 퇴기이모 옥섬에서 임대 등으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라고 맡기고 유랑길에 오른 것도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사내들만 사람으로 대접하고 여자들은 성적 대상 정도로 취급되는 사회 풍조에 무언의 저항이다.

그래서 진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학문과 조선의 성리학, '삼국지'(三國志)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사실 진이의 학문세계는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등에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가 있다.

그래서 그녀를 거쳐간 사대부와 한량들은 한결같이 성적 상대로 찾아왔다가 떠나 갈 때는 경모의 대상으로 가슴에 묻었다.

오후 늦게 실상암(實相庵:일명 見性庵)에 도착하였고 사람도 말도 지쳤으며 그들은 주지를 찾아 찾아온 연유를 말하자 주지는 선뜻 방 하나를 내주었다.

“남자는 나와 같이 자고 진이 아씨는 그 방에서 주무세요.”

주지스님의 진이 아씨란 말에 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님에게 다그쳐 물었다.

“스님, 스님께서 어떻게 이 진이를 아시는지요?”

“아~ 예... 소승은 진이 아가씨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찰에선 합방을 금하고 있사오니 양해하시고 남자 분은 저와 하룻밤 지내시지요!

자세한 얘기는 다음 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진이는 밤새 뜬 눈으로 날을 샜으며 비몽사몽에도 강좌칠현에 대한 꿈을 꾸었고 이인로의 '산거'(山居)를 중얼거렸다.

봄은 가도 꽃은 아직 있고/ 하늘은 갰지만 골짜기는 절로 어둑하네./

소쩍새 한낮에 울고 있으니/ 비로써 깨달았노라 깊은 골에 사는 줄은...

시 암송을 마치자 때마침 새벽 종소리에 진이가 화들짝 비몽사몽에서 깨어났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뻑뻑한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

“소승 덕송(德松·가명)입니다. 진이 아가씨, 일어나셨는지요?”라고 주지스님이 아침 예불을 알렸다.

진이는 서둘러 일어났고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보현사에서 극락왕생을 위한 기도를 했는데 실상암에 와서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예불을 마친 덕송 스님은 진이를 따로 불렀다.

“아씨 차를 드시지요!”

잔잔한 미소에 호수같이 깊은 두 동공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지나갔다.

“소승을 몰라보시겠는지요? 아씨가 어릴 적 사랑채에 자주 드나들던 김구덕 입니다.”

김구덕 이란 말에 진이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아저씨, 이런 꼴로 뵙게 돼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울음을 터뜨렸으며 흡사 짐승 울음소리다.

김구덕은 진이 아버지 황진사와 죽마고우로 젊었을 때는 황진사 집에 수시로 드나들며 진이를 며느리 삼자고 까지 했던 관계다.

김구덕은 황진사와 달리 과거에 등과하여 한양 중앙무대에 진출하였으나 정암과 정치노선이 달라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가장의 종적이 묘연해 지자 집안은 물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오늘 이곳에서 진이와 극적으로 해후한 것이다.

관가에서 사방팔방으로 찾았으나 이곳까지 발길이 닿지 않았다.

“아씨 하산을 하시더라도 소승을 봤단 말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진이는 정암과 생각이 달라 부자지간의 연을 끊은 이생의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진이와 이생은 말을 실상암에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났으며 두류산은 깊고 넓다.

그들은 걷고 걸어 오후 늦게 지눌(知訥)스님이 불교계 개혁을 위한 결사체인 정혜사를 조직하여 운영해 온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도착했다.

주지스님을 찾아서 허기부터 해결하였고 주지스님은 두 남자를 법당 뒤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더 할 수 없이 안락한 곳이며 진이는 어제 밤을 뜬 눈으로 새 금방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비몽사몽에 가위에 눌린 듯 숨이 차고 아랫도리가 아파왔으며 산속의 해는 일찍 넘어가 어느새 방안은 어두웠다.

이생이 짐승이 되어서 헐떡이고 있으며 바지만 내려진 채 이생이 욕심을 채우고 있는데 잠결이지만 진이도 감흥이 올라 엉덩이를 맞추고 있었다.

- 16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4화)

 
 

밤새도록 사랑놀이를 하고서도 진이와 이생은 피곤한 기색없이 말에 올랐고 말 등엔 거문고와 점심에 먹을 간단한 음식이 실렸을 뿐이다.

어차피 얻어먹고 유람생활을 할 것을 이것 저것 가지고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묘향산을 출발하여 지리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갈 생각이며 그래도 진이의 속주머니에는 외숙부가 건넨 비상금이 있다.

진이는 자신의 몸뚱이를 여행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으며 돈이 떨어지면 이 절 저 암자를 찾아 구걸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몸을 달라면 주려는 속내도 가졌다.

그런 생각까지 하니 무서울 것이 없고 호위무사로 이생이 있으니 짐승한테 물려갈 염려도 없으니 진이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생은 이생대로 마음이 즐거웠고 아버지는 포의(布衣:벼슬 없는 선비)로 정암(靜庵:조광조 호)과 의기투합 했었으나

곤궁하여 그를 배신하여 선비로서 자격이 없다하여 15살의 이생이 이름을 버리고 팔도를 유랑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한양에서 진이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정암과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면 출사는 못했어도 높은 학문의 세계에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세월을 낚으며 팔도를 유랑했던 것이다.

이생이 진이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그토록 조선팔도 사내들이 품에 넣고 싶어 했던 명월을 매일 곁에 두고 밤잠까지 할 수 있으니 횡재 중에서도 상 횡재한 사내가 되었다.

그들은 묘향산 보현사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으며 하늘을 덮은 고목들로 밤같은 분위기다.

그들은 길 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으나 허기가 졌으며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주지스님을 찾았다.

진이도 남장차림이고 이생만이 진이를 여자로 알고 있을 뿐이며 주지스님은 저녁을 주고 방까지 내주었고 허기를 채우자 그들은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이생이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코에 선향(仙香)이 들어왔다.

보현사 특이의 향이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선향은 점점 더 짙게 느껴졌고 옆에서 곤히 자던 진이한테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향기였다.

이생은 처음엔 자신이 진이한테 홀려 느끼는 착각이려니 생각하기도 했으나 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선향이 자신을 구름처럼 휘어 감았다.

꿈이 아니었으며 창문으로 푸른 달빛이 들어와 진이의 얼굴에 머물러있고 신선이 누워있는 것이다.

이생인 진이를 여자로 보고 사내 역할을 하려던 욕망을 접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묘향산엔 향목·동청(冬靑) 등 향기로운 나무들이 많아 묘향산(妙香山)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생은 처음엔 그런 향기려니 생각했었는데 방안에 점점 더 향기로운 향이 짙어졌다.

진이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기로운 향취가 안개처럼 퍼졌고 진이는 어느새 이생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세상 가는 곳 마다 환락의 장소에는/ 음악소리가 호화로운 집 울리지만/

쓸쓸한 산가(山家)에선 즐길만한 것 없어/ 하늘이 새들 시켜 피리퉁소 불게 하네.

원감(園鑑)의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를 떠올리며 잠꼬대를 하였다.

명월이 이생의 품에서 꿈틀댔고 첫날의 합방은 얼떨결에 몇 번의 방사를 했으나 태상주 기운에 비몽사몽 상태라 진이의 깊은 맛을 미쳐 느껴보지도 못하였다.

이제 흡족하고 멋지게 즐길 수도 있는 순간인데 왠지 명월이 무서워졌다.

둘이 있을 때엔 형 아우로 하고 뭇사람들이 있을 때는 상전과 하인으로 하자 했는데 첫날부터 상전으로 느껴졌고 여자가 분명한데 젖먹이가 어미를 대하는 심정이다.

진이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져 오고 있었으며 진이의 두 팔이 벌어져 이생을 끌어안았다.

이생의 숨결이 가파르게 올라갔으며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진이가 쾌락의 대상이 아닌 예사롭지 않은 경계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져 무서워져서다.

진이는 더욱더 뜨거워진 몸으로 이생을 끌어당겼고 그때 진이의 입에서 시가 나왔다.

기다려도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고/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

오로지 숲 속에는 새들만 있어/ 지저귀는 소리에 술 생각이 나는구나.

이인로(李仁老)의 '천수사 벽에 쓰다'이고 진이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나 고려의 여인으로 긍지를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벤치마킹한 강좌칠현(江左七賢)을 경모(敬慕)하였다.

칠현 중에서 특히 문장에 뛰어나고 절행(節行)으로 추앙받는 함순(咸淳)을 늘 마음속에 두었으나 그가 남긴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역시 강좌칠현의 일원인 이인로의 작품을 진이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암송하였다.

지금 진이가 꿈속에서 함순을 만나고 있으면서 입에서는 이인로의 시가 나왔다.

이생은 진이를 가슴에서 떼어놓고 밖으로 나갔으며 으슥한 밤이다.

산사(山寺)의 깊은 밤은 적막하다 못해 무덤 속 같이 고요하고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으나 진이가 깼으며 이생이 옆에 없자 진이도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었소! 잠을 더 자고 일찍 길을 떠납시다.”

말을 남기고 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으며 따라 들어오란 말투다.

이생은 잠시 아버지를 떠올렸고 영웅심에 들떠 정암을 고발하고 순간적으로 들떠있던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버리고 비렁뱅이가 된 것에 대한 반추(反芻)다.

이생 아버지의 정암 모함으로 촉발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숱한 사림파 선비들이 죽거나 벼슬에서 쫓겨났다.

사대부 집안의 체면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팽개치고 팔도를 유랑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대단한 도덕군자도 아닐진대 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총총히 진이가 다시 들어간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온 이생은 마음을 굳게 먹고 진이를 뜨겁게 끌어안았으며 진이도 말없이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주었다.

명월관에서 첫 방사를 할 때보다 이생은 몸과 마음이 흡족하였다.

몸과 마음을 흡족히 나눈 그들은 산사의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총총히 발길 닿는 대로 길을 재촉하였다.

-15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3화)

 
 

가을에 한양으로 떠났다가 가을에 송도로 돌아오니 3년 사이에 송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진이는 문득 이제현의 송도팔경 중 '용산추만'(龍山秋晩)을 떠올렸다.

지난해 용산에 국화꽃 피었을 때/

술병 들고 산 중턱에 올랐네./

한줄기 솔바람 부니 모자가 떨어지고/

붉게 물든 단풍잎 옷에 가득한 채/

술에 취해서 부축 받으며 돌아왔네.

시를 다 읊은 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고 늦가을의 보름달이 두둥실 떴으며 명월(明月)이다.

진이의 두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졌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이다.

이사종과 계약결혼을 연장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명월관은 그동안 가꾸지 않아 정원 등에 잡풀이 우거져 집 전체가 폐가처럼 보였고 옥섬은 나이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다.

진이는 이생(李生)을 불러들였고 명월관을 정리한 뒤 금강산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진이가 부르면 조선팔도에서 몇몇 사내를 빼고는 안 올 사람이 없다.

한양의 이생은 밤새 연락을 받고 이튿날 저녁 늦게 송도에 도착하였다.

이사종이 천하의 소리꾼에 헌헌장부로 진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 사내였다면

이생은 왠지 마음이 편해 긴 여행에 동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순수한 사대부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이라 더욱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세양과 이사종을 통해 사내들의 내면에 있는 여자에 대한 깊은 생각도 이젠 정립되어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들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조선팔도 사내들은 허리 밑으로 어느 누구든 정복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어머니 현학금이 연산군의 사랑놀이 대상의 여자가 되기 싫어 약을 먹고 장님이 되었으며

진이 자신도 금지옥엽 귀염을 독차지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녀(庶女) 신분이 된 충격으로 한 때 장님이 되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문제는 사내들이었고 어머니 현학금은 임금인 연산군이었으며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다.

그 같은 신분이 세습되어진 자신은 기생신분이었을 때 어느 때부터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 아닌 꽃이 주인공이 되어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진이는 지금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던 것을 행동하려 하고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두터운 사대부 벽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이사종과 3년을 살고 와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송도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고 여근곡(女根谷)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덕여왕의 기개를 되살리려는 야심도 생겨서다.

사실 퇴기이모 옥섬의 얘기가 천번만번 옳아 잠자리에서 입증되는 사례를 진이는 수도 없이 실천해 왔다.

겉으론 천하를 쥐고 흔들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언장담 하지만

그 말은 계집 앞에서 기죽기 싫어 허언(虛言)을 했음이 날이 새면 드러나지 않는 사내는 진이는 지금껏 몇 명 보지 못하였다.

송도는 여성적 도시이고 한양은 남성적 도시임을 진이는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함도 진이는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터득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자신의 자유영혼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산지식이 되었다.

사내가 이젠 무섭지가 않은 것이고 자신이 품으면 조선팔도 어느 사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이는 한양에선 미처 몰랐던 것을 송도에 와서 삼봉(정도전의 호)의 '한양찬가'가 얼마나 사내다운 시(詩)인가 새삼 느꼈다.

익제(이제현의 자)의 '송도팔경'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으나 '한양찬가'는 왕업(王業)의 위대함을 노래 불렀다.

진이는 어느새 삼봉의 팬이 되었다.

줄지어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 명가(鳴珂:말굴레 장식품)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한양찬가' 중 '열서성공'(列署星珙)이고 진이는 거문고에 두 도시의 찬가를 동시에 실었다.

이번엔 '송도팔경' 중 '자동심승'(紫洞尋僧)이다.

바위 옆을 돌아 냇물 건너가며/ 숲을 헤치고 봉우리 밑을 올라가네./

사람을 만나 절을 물어보니/ 종소리 나고 연기 나는 데로 향해 가라하네./

풀에 맺힌 이슬은 짚신을 적시고/ 송화가루는 중의 적삼에 점찍어 놓네./

탑 앞에 앉아 세상만사 잊고 있으니/ 산새는 어서 돌아가라 재촉하네.

거문고를 가슴에 품은 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였고 옆에 있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이요? 금방 울 듯하오!”

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끝나자 옥섬이모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이 진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생 선비님을 모시려고요.”

이생은 벙벙한 표정이고 조선 사내치고 명월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내가 없는데 자신을 명월이 스스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꿈만 같기 때문이다.

“자 어서 한잔 드세요!”

진이가 손수 잔 하나 가득 따라 권하였고 이생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인이 하듯 진이의 말에 따랐다.

태상주는 독한 술이고 주거니 받거니 태상주 몇 병이 삽시간에 비워졌고 해는 어느새 땅거미로 변했다.

“이제 그만 잡시다.”

진이가 잠자리에 앞장섰고 진이는 잠자리에 들면 늘 옥섬이모의 말이 떠올라 꽃잠을 연출하였다.

사내들은 누구나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기를 바라는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진이는 술상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으며농익은 복숭아 빛의 한 쌍의 유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생은 안절부절 못하였고 진이의 도발에 남성이 삽시간에 고개를 숙였고 기가 죽었으며 창문으로 아직 석양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이리 오세요! 나를 품으려고 허겁지겁 오신 것이 아닌가요? 자 이 진이를 마음껏 보시고 즐기세요!”

진이가 홀라당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생이 누구인가! 어엿한 사대부 집 헌헌장부인데 지금 시기(詩妓) 진이 앞에서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어서 오늘 저녁은 이 명월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리고 팔도강산 유람 할 때는 제가 상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연인처럼 연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 14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2화)

 
 

이별의 날을 세어 나가는 이사종의 마음은 촌각이 아까웠고 그는 아침저녁 잠시 진이를 볼때도 표정을 유심히 살폈으며 열흘에 한번은 나들이를 꼭 나섰다.

송도도 아름답지만 한양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육조거리와 사대문 안팎의 풍광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봄에는 성밖 북둔(성북동)으로 함께 말을 타고 복사꽃 장관 속을 거닐었고 홍인문밖 낙산아래 휘늘어진 봄버들 길도 구경시켜주었다.

“어떻소? 한양 풍광 영미가 마음에 드오?”

진이는 묵묵부답이고 진이의 몸은 한양에 와 있어도 마음은 송도에 가 있었다.

한양이 역동적이면서 마음에 조금씩 정이 붙어가면 갈수록 고향 송도가 그리워지고 종적을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몸서리 쳐지도록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착 달라붙어지는 이사종과의 하루하루도 싫지 않았다.

기생의 길로 들어선 이후 손에 물 한 방울 걸레질 한번 안 해본 자신이 지금은 부엌에도 들어가고 걸레질도 하는 보통의 아낙이 되었다.

이사종의 덕분이며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진이는 이제야 알았다.

한참 침묵이 흐르는 사이에 진이와 이사종을 태운 말은 한강 노들 녘에 다다랐다.

“이 진이는 한양에 와서 늘 삼봉의 '한양찬가' 중 '서강조박'(西江漕泊)에 관심이 높아요.

'한양찬가'는 이제현의 '송도팔경'을 연상케 하는 시(詩)지요! 그 중에서도 '제방기포'(諸坊碁布)에 매료 됐어요.

어느새 점심때가 되었네요. 진이가 점심을 간단하게 준비했어요!”

진이는 간단히 먹을 것과 송도의 명주 태상주를 꺼냈다.

“허허허, 언제 점심 준비까지 했소이까? 나는 이곳을 잠시 둘러보고 종로 피맛골에 가서 요기를 하려 했는데...”

이사종은 그윽한 표정으로 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태상주 한병을 비운 그들은 흐드러지게 늘어진 버들이 바람에 춤을 추는 분위기에 맞추어 노래를 주고받는다.

이사종은 '송도팔경'에서 '백악청운'(白嶽晴雲)을 불렀고 진이는 '한양찬가' 중에 '열서성공'(列署星拱)을 절창하였다.

피맛골에 들려 옥인동 집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때 같으면 조강지처 정씨가 도끼눈을 뜨고 불호령을 떨어뜨렸으나 이제 계약결혼 3년이 얼마 안 남아 눈을 감아 주는 분위기다.

오히려 정씨가 아쉬워하는 태도이며 진이가 시어머니에겐 대화의 상대가 되어주었고 아들에겐 선생님이 되어주어 고마운 존재가 되었었다.

어느새 그들은 날카롭게 물어뜯는 적에서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로 발전하였고 진이의 헌신적 노력이 만들어 낸 가족적 분위기다.

“형님, 제가 송도에 가더라도 형님의 따뜻한 사랑은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진이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밥상을 정씨한테서 받고는 두 눈에서 눈물을 와락 쏟아냈고 더욱이 이사종과 겸상차림이었다.

계약결혼 만기는 이제 보름 앞으로 다가왔고 떠날 때까지 잠자리를 매일 허락한다는 조강지처 정씨 말에 이사종은 밥을 먹다말고 벌떡 일어나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다.

“진이 내 그동안 독하게 대한 것 양해해 주시게! 자네도 내 처지가 돼보면 여자마음 알걸세.”

정씨는 정말 아쉽고 미안했다는 표정이며 무거운 침묵이 잠시 흐른 뒤 정씨는 주섬주섬 밥상을 정리해 들고 나갔다.

3년 사이에 조강지처와 소실은 언니동생이 되었고 떠날 날이 다가오자 진이는 주위를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잠자리도 매일밤 양해를 받았으나 되도록 피했고 마음은 보이지 않으나 몸은 행동이 보여 떠날 때일수록 아름답게 정리하고 싶어서다.

이사종은 매일밤 운우지락을 하려 했으나 진이는 매정하게 거절하였고 한양의 마지막 밤에 최후의 몸을 활짝 열어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달이 휘영청 밝은 보름밤이고 그날만은 진이가 아닌 명월(明月)이 되어 철저한 이사종의 여자가 되었다.

송도로 갈 날짜가 내일이고 진이는 오랜만에 거문고를 꺼냈으며 그동안 첩살이를 하면서 거문고를 탈 만큼 여유있는 생활이 아니었다.

아무리 너그러운 조강지처라도 첩이 예뻐보일 여인은 이 세상엔 없으며 씨앗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오랜만에 거문고를 꺼내 타면서 '한양찬가' 중 '북교목마'(北郊牧馬)를 불렀다.

숫돌같이 평평한 북녘들 바라보니/ 봄 오자 풀 무성하고 물맛도 좋아/

만마가 구름처럼 모여 뛰놀고/ 목자는 마음대로/ 여기저기 서성이네.

진이의 노래에 이사종이 곧바로 이었고 '송도팔경' 중 '청교송객'(靑郊送客)이다.

들 절간에 송화꽃은 떨어지고/ 비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떠나려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受) 두 사람을 아꼈으랴!

노래를 마친 이사종은 진이를 덥석 안았고 진이도 기다렸다는 듯이 거문고를 팽개치듯 옆으로 제쳐놓고 이사종의 품에 안겼다.

이 밤이 밝으면 진이는 이사종의 여자가 아니고 사내는 성급히 달려들었으며 여자도 그런 사내가 싫지 않았다.

오늘밤은 영원히 밝지 않기를 그들은 마음속으로 기원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한 몸이 되었다.

이사종이 진이의 두 다리를 벌려서 밀고 들어왔으며 뜨거운 신음소리를 내는 진이의 두 눈엔 알 수 없는 눈물이 쉼없이 흘러나왔다.

거대한 파도에 배가 흔들리듯 이사종은 진이의 몸에서 신명나게 연자방아를 찧는다.

뜨거운 살이 교합되자 이사종이 몸을 틀어 진이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묻으려 한다.

“아니 됩니다. 더렵혀진 몸입니다.”

진이는 몸을 돌려 등을 보였다.

“아니요. 내가 당신을 깨끗이 씻어 주리다. 이 시간 이후 당신은 옥황상제께서 이승으로 잠시 휴가를 보낸 선인(仙人)이 되는 겁니다.”

이사종은 돌아누운 진이를 다시 돌려서 정성껏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화냥년(환향년)들이 세검정에서 몸을 씻듯 깨끗이 정화시켰다.

이사종은 금방 코를 골며 잠들었고 알몸이며 반듯한 이마와 깊이 그늘져 감긴 눈과 오뚝한 콧날에 꼭 다문 입과 턱...

진이는 밤이 새도록 초롱초롱하게 눈을 뜨고 이사종의 모습을 가슴속에 담았다.

먼동이 트면 말을 타고 송도로 갈 준비가 되었고 이사종도 이제 자신의 삶에서 지워버리려는 것이다.

- 13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1화)

 
 

한양은 송도와 달랐으며 송도는 색향(色香)으로만 떠들썩하게 알려졌지 실속은 없어보였고 진이는 번개처럼 시상(詩想)이 떠올랐다.

옛절은 쓸쓸히 어구 곁에 있고/ 해질 무렵 교목에 사람들 시름겹도다./

연기와 놀은 쓸쓸히 스님의 꿈결을 휘감고/ 세월만 첩첩이 깨어진 탑머리에 어렸다./

누런 봉황새 날아간 뒤 참새 날아들고/ 철죽꽃 핀 곳에서 소와 양을 치는데/

송도의 번화했던 날을 추억하니/ 어찌 지금처럼 봄이 가을 같을 줄 생각이나 했으랴.

'만월대를 생각하며'다.

한양은 생기가 있으며 고려를 역사의 뒷길로 밀어 붙이고 새 역사를 써가는 조선의 중추며 경복궁 앞 육조(六曹)거리는 붐볐다.

진이는 옥인동 이사종 집으로 들어온 이후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육조거리를 살폈다.

그때마다 진이는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의 '진신도팔경시'(進新都八景詩)를 떠올렸다.

그리고 진이는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29명의 부인도 동시에 상기시켰다.

경복궁의 위용과 육조거리의 질서 정연함과 활기찬 모습에 고려 초기 개성 모습이 동시에 떠올라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나에 혼란을 느꼈다.

진이는 조선에 태어났어도 고려 여인임을 자부하면서 살았는데 한양에 와서 경복궁과 육조의 거리를 걸어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고려의 여인으로 자부함은 어느 남성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려는 태도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이사종의 소실로 한양에 와 있지 않은가! 이율배반의 자신의 행동에 전율을 느끼며 서둘러 옥인동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였다.

가을 해는 짧았으며 아침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하고 육조거리를 거쳐 청계천까지 둘러보고 집에 왔을 때는 해가 뉘엿뉘엿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어딜 그렇게 매일 다니오?” 이사종의 볼멘소리다.

“육조거리와 청계천과 피맛골을 둘러보느라 늦었네요! 미안해요. 서둘러 저녁준비를 하겠어요.”

진이의 옥인동 계약결혼 3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고 그 한 달 동안 진이는 새로운 세상을 많이 배웠다.

말로만 들었던 소실생활을 자청하여 들어왔고 짐작은 했었으나 조강지처가 얼마나 당당한 자리이고 소실의 위치가 얼마나 굴욕적 자리인가를 몸소 생활해 보고 있는 것이다.

소실로 들어오란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는데 지금 진이가 이사종의 소실이 되었다는 소문이 한양에 퍼지면 세상 사람들이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며 수군댈 것이 뻔하다.

세상이치로만 보면 그것이 맞고 소세양을 비롯한 송도의 거부와 신분은 낮으나 고대광실을 가진 의원이 소실자리를 제의 했을 때에는 콧방귀 뀌었는데

무관직 정삼품에 지나지 않는 선전관의 소실자리에 들어간 천하의 진이를 비웃고 빈정댈 것이 뻔하며 한양 아낙네들의 수군대는 소리에 귀가 따갑다.

“남녀관계란 알 수 없어. 천하의 송도 진이가 한양에까지 와서 이사종의 첩이 될 때에는 뭣이 있겠지? 아마 속궁합이 기가 막히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고관대작의 소실자리도 팽개치고 고작 선전관 소실로 들어갔을 때엔 무엇이 있어도 있어...

이사종이 천하제일의 소리꾼에 허우대야 어느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지! 아마 진이가 그 허우대에 빠졌을 거야.”

빨래터의 아낙들의 얘기가 딱 맞았고 진이는 이사종의 사회적 지위나 재물에 팔려온 것이 아니라 옥골선풍에 달콤한 밤 자리도 빼 놓을 수도 없다.

화대를 받고 몸을 내줄 때에는 돈 값을 해주기 위해 인형처럼 움직여 주며 코맹맹이 소리도 적당히 내주어 사내의 기쁨을 안기는 기생이었으나

이사종과는 몸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가 아닌가! 그런 관계를 빨래터의 아낙들이 알 리가 없다.

이사종과 진이의 관계는 하늘도 땅도 모르고 오직 당사자인 둘만이 알고 있는 잠자리 비밀이며 진이의 계약결혼은 그렇게 성사되었다.

소세양과 30일의 계양결혼이 그렇게 맺어졌다 헤어졌으며 이사종과의 관계도 역시 약속된 6년 후엔 또한 그렇게 미련없이 진이는 송도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진이는 삼봉의 '한양찬가'인 '진신도팔경시'에 관심이 끌렸다.

송도엔 '송도팔경'이 있는데 그에 비교가 되어서고 특히 진이는 '도성궁원'(都城宮苑)에 마음이 끌렸다.

성은 높아 천 길의 철옹이고/ 구름은 봉래오색을 둘렀구나./

해마다 정원에는 앵화(鶯花:꾀꼬리 날고 꽃이 만발함) 가득하고/ 세세로 도성사람 놀며 즐기네.

송도와는 너무도 다른 풍광이고 그렇게 진이의 한양생활에서 첩살이는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 놀았다.

낮에는 부엌일에서 아이 가정교사 역할에 밤엔 이사종과 속궁합을 맞춰가며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육신은 고달프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달콤한 잠자리의 행복에 낮의 고단함이 묻혔다.

송도에서 진이와 한양에서의 진이는 공주와 무수리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생활이었다.

하지만 진이는 행복하며 그토록 오매불망했던 이사종을 곁에서 볼 수 있고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마음껏 품을 수 있다는 데에 욕망의 나래를 접었다.

“후회하지 않소?”

이사종은 뜨겁게 살을 섞고 나면 꼭 묻는다.

“왜 서방님은 후회 하세요?”

진이의 말이 떨어지면 그들은 다시 이합(二合)에 들어갔다.

일합(一合)으로 육체의 허기를 채우고 이합은 더 길고 느긋하게 밀고 당기며 사랑의 진수를 음미하려는 것이다.

진이는 이때마다 옥섬이모가 말해 준 잠자리 기술을 행동으로 옮겼다.

“참으로 서방님은 참 잘생기셨어요! 진이의 눈엔 천하의 남정네 중 가장 헌헌장부예요.”

진이의 손이 이사종의 뿌리를 움켜쥐었고 이합까지 즐긴 뿌리는 오뉴월 엿가락처럼 쳐졌다.

진이의 손이 닿자 번개를 맞은 듯 놀라 다시 고개를 들었고 진이는 두 팔과 두 다리를 벌리어 이사종의 등을 끌어안았다.

이사종이 입을 커다랗게 벌려 백합처럼 흰 진이의 탱탱한 젖가슴을 잘 익은 사과를 깨물 듯 깊게 물었고 진이의 몸도 해일처럼 일어나며 출렁이기 시작하였다.

이사종은 일주일에 한 번씩 진이의 방을 찾았고 조강지처 정씨의 허가를 받은 합방이며 몇 시간의 양해지 밤새 허가는 아니다.

하지만 계약결혼 3년이 부득부득 다가오자 이사종은 조강지처의 눈치는 아랑곳 않고

진이의 방에 들어오면 동창이 밝아올 때까지 송도 명월관에서 알몸뚱이로 사랑을 할 때를 연상케 하는 방사를 즐겼다.

- 12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0화)

 
 

송도팔경 구경 채비에 부산하고 한양으로 올라가기 전에 팔경을 모두 보지는 못해도 몇몇 곳은 보고 가려는 속내다.

진이는 신이 났는데 옥섬은 시무룩하고 며칠 전부터는 식사도 거를 때도 있다.

진이가 송도팔경을 구경하고 한양으로 올라가면 옥섬은 다시 퇴기신세로 돌아갈 우려 때문이다.

옥섬은 퇴기생활이 무섭고 진이가 황진사 딸로 어느 사대부집 며느리로 들어갔으면 오늘의 고대광실의 명월관에서 살기는커녕

구경도 못할 신세인데 후원을 오가며 행복을 누리는 삶이 깨질까 벌써부터 겁이 났으며 진이는 옥섬이모의 심정을 익히 알고 있다.

“이모 진이가 송도를 떠나 명월관을 없앨까 걱정하시는 것 같은데 마음 놓으세요! 명월관은 이모 생전엔 진이가 주인으로 있을 거예요.

진이가 한양에 올라가더라도 이모가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해 드리고 갈게요! 진이는 한양에서 3년만 살고 송도로 다시 옵니다!”

“진이야, 내가 이 한 몸뚱이를 걱정해서가 아니고 낭랑(朗朗)18세란 것이 있단다!

이 바닥(기생의 세상)엔 낭랑18세 때 한몫 잡아야 퇴기 때 설움을 당하지 않아. 진이 너도 어느새 낭랑18세를 넘어가고 있어.”

옥섬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와 진이 손등에 떨어졌다.

“이모 걱정 말아요! 이 진이만 믿고 지금처럼 사세요.”

옥섬을 끌어안은 진이의 두 눈에서도 비 오듯 눈물이 쏟아졌다.

옥섬을 볼 때마다 진이는 십수 년째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이때다. 팔경 구경 할 채비가 다 되었다는 손으로 신호를 보냈고 이사종은 옥섬의 눈엣가시다.

이사종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진이가 한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으리란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사종은 옥섬의 눈에 되도록 띄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으며 밥도 사랑채에서 혼자 먹고 후원에서 주로 낮 시간을 보낸다.

관아의 정무는 명월관에서 출근하여 처리해 되도록 진이와 낮 시간을 보내려 하고 관아의 아전(衙前:관아의 말단 실무자)들은 제 세상이다.

상전이 정무만 간단히 처리하고 자리를 비우니 눈치 보지 않고 잇속을 차리고 관기(官妓)까지 희롱하면서 노는 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른다.

아침을 먹는둥 시늉만 하고 이사종과 말에 올라 팔경 구경 길에 올랐으며 이사종도 옥섬의 따가운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어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서방님, 오늘은 우선 팔경을 모두 볼 수 없으니 서강풍설(西江風雪)과 장단석벽(長湍石壁)만 구경하시죠!

이 두 곳이 진이는 팔경 중 제일 마음을 사로잡아요. 팔경은 고려 대학자 이제현(李齊賢)이 '익제난고'에 최초로 나옵니다.

하지만 팔경은 중국의 북송(北宋)화가 송적(宋迪)의 소상팔경(瀟湘八景)에서 유래했고 이를 고려말 개성의 아름다운 여덟 곳에 응용한 것이지요!

한문을 중국에서 들여다 우리 것으로 만들 듯 고사성어 등 각종 문물도 중국의 것을 모방한 것들이 많아요!”

진이의 표정이 상기되기까지 하였고 소리꾼 이사종은 갑자기 진이의 진지한 표정에 엄숙한 자세를 취한다.

“진이는 특히 '서강풍설'에 매료되었어요! 제가 곡을 붙였어요.

눈은 강변가의 지붕을 덮었고/ 바람은 포구가의 돛대를 흔들어 놓네/

정자에 올라가 남창을 열고 보니/ 구름 낀 바다는 아득하기만 하네./

은실같은 생선회를 썰어 놓고/ 술 단지 기울여 한 잔 마시네./

예성강 굽어보며 한 곡 부르니/ 하두강은 애간장 끊어지는 듯 아프리라.

"이 얼마나 멋과 풍류가 있나요?”

진이의 거문고 반주에 명창 이사종의 노래가 서강풍설의 아름다움에 화룡점정 시켰다.

서강풍설을 구경한 뒤 말 채찍에 힘을 가해 장단석벽을 거쳐 그들은 서둘러 명월관으로 돌아왔다.

어젯밤에도 허리가 아프도록 욕정을 채웠으나 그 밤이 그리워졌다.

진이는 숱한 사내들의 욕정을 채워 주었으나 이사종은 자신이 좋아 계약결혼까지 한 사내이니 마음 놓고 육체의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상대다.

더욱이 송도생활 3년은 모든 것을 자신이 대고 한양의 3년은 소실(小室)의 자리로 계약을 맺었다.

이처럼 철저하게 계획된 생활을 하루하루 뜨겁게 보냈고 그토록 뜨거운 세월은 세 번의 봄과 세 번의 가을을 향하여 이미 유수같이 흐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식지 않았다.

“내일 한양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한양에 가면 3년은 송도에 올 수 없으니 장단석벽을 한 번 더 보고 떠나면 어떨까요?”

아침을 먹고 관아로 출근하려는 이사종에게 의사를 물었으며 풍덕군수는 엄연히 매일매일 정무가 있는 몸이다.

“내 관아로 가서 잠시 정무를 보고 곧 돌아오리다.”

이사종은 말에 올라 바람처럼 사라졌다.

진이는 옥섬이모가 걸렸고 명월관엔 옥섬이모 말고도 여러 식구가 있다.

진이가 한양으로 올라가면 명월관은 임금 없는 대전(大殿)같이 썰렁해져 지탱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퇴기생활을 했었던 옥섬이 더욱 노심초사한다.

“이모 걱정하지 마세요. 진이가 이모가 3년 동안 편히 사실 수 있게 모든 준비를 해 두었으니 편히 계세요!

진이가 3년 후 가을에 정확히 송도로 돌아올 거예요!

이 아름다운 송도팔경을 두고 어디로 떠나겠어요.”

진이는 또 장단석벽에 거문고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구름은 산높이 떠 있는데/ 공중에 눈썹같은 절벽 열렸네./

고기와 용은 굴 구비로 굴러가네./ 백리나 푸른빛이 감도네 그려./

달은 파리한 물속에 잠겼는데/ 꽃은 비단처럼 곱게 쌓였네./

화려한 배에서 술 마시고 풍악 치며/ 돌고 또 돌아 천 바퀴나 돌았네.’

오늘따라 진이의 노래가 옥섬의 귀엔 장송곡(葬送曲)처럼 들렸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자 이사종이 돌아왔고 점심도 거른 채였으며 진이가 겸상을 하여 대낮이지만 태상주를 곁들였다.

얼큰하게 달아오른 그들은 송도의 마지막 밤이 되기도 전에 뜨겁게 엉켰고 진이는 이사종의 움직임에 옥섬이 가르쳐 준대로 몸을 움직였다.

아직 몸은 달아오르지도 않았는데 선수를 쳤으며 숨을 몰아쉬고 콧구멍을 벌름벌름 대며 입을 벌리고 두 다리에 힘을 넣어 뻗기까지 하였다.

이사종이 의아해 하면서도 덩달아 몸을 움직여 주자 진이는 가식이 아닌 송도팔경을 보며 막연히 그리워하였던 신선세계로 빠져들었다.

- 11화에서 계속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