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13화) - 달성습지

풍류야화 황진이(제13화)

 

 

가을에 한양으로 떠났다가 가을에 송도로 돌아오니 3년 사이에 송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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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문득 이제현의 송도팔경 중 '용산추만'(龍山秋晩)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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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용산에 국화꽃 피었을 때/

술병 들고 산 중턱에 올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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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솔바람 부니 모자가 떨어지고/

붉게 물든 단풍잎 옷에 가득한 채/

술에 취해서 부축 받으며 돌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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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다 읊은 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고 늦가을의 보름달이 두둥실 떴으며 명월(明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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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의 두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졌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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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종과 계약결혼을 연장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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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관은 그동안 가꾸지 않아 정원 등에 잡풀이 우거져 집 전체가 폐가처럼 보였고 옥섬은 나이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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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이생(李生)을 불러들였고 명월관을 정리한 뒤 금강산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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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부르면 조선팔도에서 몇몇 사내를 빼고는 안 올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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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이생은 밤새 연락을 받고 이튿날 저녁 늦게 송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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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종이 천하의 소리꾼에 헌헌장부로 진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 사내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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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은 왠지 마음이 편해 긴 여행에 동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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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순수한 사대부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이라 더욱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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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세양과 이사종을 통해 사내들의 내면에 있는 여자에 대한 깊은 생각도 이젠 정립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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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들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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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도 사내들은 허리 밑으로 어느 누구든 정복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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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현학금이 연산군의 사랑놀이 대상의 여자가 되기 싫어 약을 먹고 장님이 되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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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자신도 금지옥엽 귀염을 독차지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녀(庶女) 신분이 된 충격으로 한 때 장님이 되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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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사내들이었고 어머니 현학금은 임금인 연산군이었으며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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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같은 신분이 세습되어진 자신은 기생신분이었을 때 어느 때부터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 아닌 꽃이 주인공이 되어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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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지금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던 것을 행동하려 하고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두터운 사대부 벽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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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에서 이사종과 3년을 살고 와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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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송도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고 여근곡(女根谷)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덕여왕의 기개를 되살리려는 야심도 생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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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퇴기이모 옥섬의 얘기가 천번만번 옳아 잠자리에서 입증되는 사례를 진이는 수도 없이 실천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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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천하를 쥐고 흔들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언장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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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계집 앞에서 기죽기 싫어 허언(虛言)을 했음이 날이 새면 드러나지 않는 사내는 진이는 지금껏 몇 명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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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는 여성적 도시이고 한양은 남성적 도시임을 진이는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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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의 사대부들이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함도 진이는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터득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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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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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자신의 자유영혼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산지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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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이젠 무섭지가 않은 것이고 자신이 품으면 조선팔도 어느 사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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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한양에선 미처 몰랐던 것을 송도에 와서 삼봉(정도전의 호)의 '한양찬가'가 얼마나 사내다운 시(詩)인가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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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제(이제현의 자)의 '송도팔경'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으나 '한양찬가'는 왕업(王業)의 위대함을 노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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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어느새 삼봉의 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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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지어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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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 명가(鳴珂:말굴레 장식품)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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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찬가' 중 '열서성공'(列署星珙)이고 진이는 거문고에 두 도시의 찬가를 동시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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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송도팔경' 중 '자동심승'(紫洞尋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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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옆을 돌아 냇물 건너가며/ 숲을 헤치고 봉우리 밑을 올라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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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 절을 물어보니/ 종소리 나고 연기 나는 데로 향해 가라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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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에 맺힌 이슬은 짚신을 적시고/ 송화가루는 중의 적삼에 점찍어 놓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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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앞에 앉아 세상만사 잊고 있으니/ 산새는 어서 돌아가라 재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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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를 가슴에 품은 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였고 옆에 있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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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리 슬픈 표정이요? 금방 울 듯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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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끝나자 옥섬이모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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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이 진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생 선비님을 모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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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은 벙벙한 표정이고 조선 사내치고 명월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내가 없는데 자신을 명월이 스스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꿈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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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서 한잔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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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손수 잔 하나 가득 따라 권하였고 이생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인이 하듯 진이의 말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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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주는 독한 술이고 주거니 받거니 태상주 몇 병이 삽시간에 비워졌고 해는 어느새 땅거미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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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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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잠자리에 앞장섰고 진이는 잠자리에 들면 늘 옥섬이모의 말이 떠올라 꽃잠을 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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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은 누구나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기를 바라는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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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술상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으며농익은 복숭아 빛의 한 쌍의 유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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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은 안절부절 못하였고 진이의 도발에 남성이 삽시간에 고개를 숙였고 기가 죽었으며 창문으로 아직 석양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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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이리 오세요! 나를 품으려고 허겁지겁 오신 것이 아닌가요? 자 이 진이를 마음껏 보시고 즐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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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가 홀라당 벌거숭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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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생이 누구인가! 어엿한 사대부 집 헌헌장부인데 지금 시기(詩妓) 진이 앞에서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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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늘 저녁은 이 명월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리고 팔도강산 유람 할 때는 제가 상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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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연인처럼 연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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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화에서 계속 -

[출처] 풍류야화 황진이(제13화)|작성자 청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