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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양심(良心)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시골에 농막 주변으로
인도 블럭을 깔아야 할 일이 생겨
지인의 소개로 재고 처리하는 블럭을
구입하게 되었다.

농막까지 진입로가 곡선으로 연결되어
5톤이상의 화물차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침 입고(入庫)하는 토요일은
친구들과 모임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라
블럭업체 담당자에게
4.5톤이나 5톤 단축 차량 섭외를 부탁하며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

담당자는 여러 번 반복해서 한 말이
짜증이 났는지,
“사장님! 했던 말 또 하지 마시고 믿고 맡기세요”

지난해도 2.5톤 차량으로
블럭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25톤 차량에 블럭을 보내와서
애를 태운 기억이 있지만
이렇게 반복해서 주의를 시켰으면
문제없이 잘해줄 것이라 믿고
블럭값과 화물비를 선지불하였다.

지게차 비용 15만 원을 아끼기 위해
미루어 온 굴착기 작업을
그날에 맞추어 하역을 굴착기 사장님에게
부탁하고 별도로 하역에 필요한
크레인 바를 구입하여 현장에 두고 왔다.

토요일 새벽 6시 20분에
오랜만에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길에 올랐다.
즐거운 여행도 잠시,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굴착기 사장님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화물차가 9.5톤이 왔다”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굴착기 사장님께
사정(事情)해서 수습(收拾)을 부탁했다.
마음 같아서는 즐거운 여행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현실이 그러한가?
즐거운 여행길을 망치고 싶지도 않고
동행한 Wife, 그리고 친구와 그 부인들에게
누(累)가 될까 봐 혼자 싹일 수밖에

다음 날 일요일 새벽에
현장에 달려갔더니
굴착기 사장님이 홀로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전화를 걸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추가된 금액을 물어보니
지게차 비용과 지게차 하역에 따른
추가 인건비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았다.

월요일 출근시간대에
“무슨 좋은 일이라 출근 시간에 전화할까”
망설이다 정오가 다 된 시간에 전화했더니
담당자는 아무 대꾸를 못 한다.

“그렇게 믿어 달라고 해놓고
이런 결과를 만들었으면 책임을 질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대표에게 전화를 해 보란다.

자기가 대표에게 보고해야 할 몫을
사과 한마디 안 하고
내게 미루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대표에게 전화했다.

블럭업체 대표에게 전화했더니
대표는 기다린 듯이 사과 한마디 없이
“반품처리 해 드릴 테니 다시 보내세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회답(回答)이다.
선지불하고 어렵게 하역한 물건을
되돌려 보내라면
지게차 비용과 화물비가
또다시 추가될 것을 뻔히 알고
하는 말이 아닌가?

뜨내기손님에다가 다시 안 봐도 될 사람에게
짧은 시간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이런 행동을 했을 것 같은 사람인데
내가 이런 사람하고 무슨 긴말하랴?

세상 살면서
믿음과 양심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아!
믿음과 양심(良心)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학교가 끝나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향해
숨이 멎을 정도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고 3 학생이라 공부하느라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렇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달리는 것으로
풀곤 했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전력 질주하여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얼굴에 안경이 끼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고,
평소에도 안경이 없으면 버스 번호판이 안 보여
가까이 있어야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소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안경 쓴 여학생이 있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오빠가 눈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
30번 버스가 오는지 봐줄 수 있겠니?"

잠시 내 눈치를 살피며 생각하던 여학생은
"예"라고 대답했고,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몇 번 버스를 타는지도 물었습니다.

여학생은 "180번이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5분 정도 지나자, 내 눈앞에서
여러 대의 버스가 지나갔습니다.
그중에 한 대는 여학생이 타려고 했던
180번 버스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타야 할 버스임에도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나서야 여학생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30번 버스 오는데요."

"고마워, 예쁜 학생"

짧은 인사와 함께 30번 버스에 올라타
맨 뒤로 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그 여학생이 연이어 온 다른 버스에 탑승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학생이지만,
그 마음에 내 삶의 자세도 조금 바뀐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자신의 시간을 조금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작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작게나마 크고 작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면
당신은 도와줄 수 있나요?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피할 건가요?

그 어떤 선택도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면
반드시 나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보상 중 하나이다.
– 에머슨 –

교만과 겸손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자신의 학식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장원급제할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던 중,
선비는 노를 젓는 뱃사공에게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이보게 사공, 논어를 읽어 보았는가?"

사공은 선비의 질문에 궁금하여 대답했습니다.
"논어라니요? 그게 무슨 책입니까?"

사공의 대답에 선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논어를 모르다니. 자네는 지금 몸만 살아있지
정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네."

그 순간, 큰바람이 불어와 물결이 계속 출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나룻배가 휘청거리자, 사공이 말했습니다.
"선비님, 혹시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배가 뒤집힐까 두려워 사색이 된 선비가 말했습니다.
"난 평생 글공부만 해서 헤엄을 칠 줄 모르네."

그 말에 사공이 선비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배가 물결에 뒤집힌다면
선비님은 정신만 살아있고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행히 배는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배 위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선비는
학문보다 인격을 더 쌓은 후 과거시험을 보겠다며
다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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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스해지는 순간,
문선희 성우가 전하는 따뜻한 감성 편지!

고된 일상에 위로와 공감이 되고,
사랑과 응원으로 힘이 되는, 달콤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따뜻한 하루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어보세요.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25일, 그 영웅 중 한 분이신
김기열 어르신께서 아흔여섯 번째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1950년 7월, 이리 농림학교 졸업을 앞둔
김기열 어르신은 갑작스레 학도병으로 징집되며
훈련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학생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전장에
나서야 했습니다.

밤이 되면 빈 학교 강당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이면 다시 행군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걸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을 이기려 애써야 했습니다.
때로는 길옆 수로에 빠진 후에야 잠에서 깰 정도로
혹독한 여정이었습니다.

평양 입성 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전세가 기울던 때에,
김기열 어르신과 그의 전우 최기호 님은
서로의 팔에 독수리 문신을 새겼는데 그 문신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네가 이 문신을 보고 내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 주고,
네가 먼저 죽으면, 내가 너를 찾아가겠노라."

전쟁이 끝난 후,
김기열 어르신은 1954년 하사로 만기 제대하며
화랑무공훈장 3개를 수여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유공자 단체에서
30년 이상 활동하며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쓰셨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대한민국의 영웅,
김기열 어르신의 생신을 맞아,
따뜻한 하루는 직접 전주에 계신 어르신을 찾아뵙고
생신상을 준비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생신상을 보며 활짝 웃으시던 김기열 어르신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내 나라 대한민국을 지켜야겠다는 생각 덕분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온 기둥입니다."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잔치 – 따뜻한하루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대한민국은
김기열 어르신과 같은 수많은 영웅의 희생 위에 존재합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따뜻한 하루는 앞으로도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잔치 – 따뜻한하루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25일, 그 영웅 중 한 분이신 김기열 어르신께서 아흔

www.onday.or.kr

 

당신은 누구를 태울 것입니까?



어느 회사의 신입사원 채용 면접에서
한 면접관이 지원자들을 당황하게 만드는
질문을 했습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
운전하는 당신의 눈앞에 버스정류장이 보입니다.
정류장에는 당장 병원에 모셔가야 할 것 같은 할머니와
당신의 죽을병을 낫게 해 준 생명의 은인인 의사,
그리고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의 여인
이렇게 세 명이 서 있습니다.
그중 한 명만 차에 태울 수 있다면,
당신은 누구를 태울 것입니까?"

그런데 다른 지원자보다 스펙에서
부족한 게 많았음에도 의외의 합격자가 나왔는데
면접에서 당당히 합격한 지원자의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생명의 은인인 의사 선생님께 차를 내어 드린 뒤,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류장에서 이상형의 여인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

다른 지원자는 비바람을 피하고자
끝까지 자동차를 고집할 때 그는 자동차를
포기했던 것입니다.





삶이란 무언가를 '바라기'와 '버리기'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잡고 있는 것과 들고 있는 것이 많으면
손과 팔이 아픕니다.
이고 있는 것과 지고 있는 것이 많으면
목과 어깨가 아픕니다.
보고 있는 것이 많으면 눈이 아프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많으면 머리가 아픕니다.
그리고 품고 있는 것이 너무 많으면
가슴이 아픕니다.

우리가 아픈 것이 많은 것은
많은 것을 바라고,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결심은
바로 '내려놓음'입니다.


# 오늘의 명언
그릇은 비어 있어야만 무엇을 담을 수가 있다.
– 노자 –

 

진실을 기록할 용기



3·1 만세운동의 역사를 전 세계에
알린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영국 출신 캐나다 선교사,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석호필)입니다.
그는 만세운동이 시작된 첫날부터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기록했습니다.

특히 일본 군경이 제암리에서
만세운동에 참가한 주민들을 예배당에 가둔 뒤 불태우고
총격을 가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는 그 참혹한 현장을 직접 찾아가
사진을 남겼습니다.

소아마비로 다리와 팔이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목발과 구두 밑창에 필름을 숨겨
해외로 전달하며 일본의 만행을 세상에
고발했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접하는 3·1 운동의
많은 사진은 바로 그가 찍은 것입니다.
석호필 선교사는 경성 감옥에 갇힌
세브란스 간호사 노순경을 면회하던 중,
여자 옥사 8호실에 갇힌 한 소녀를 만나 위로했는데,
그 소녀가 바로 유관순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자행되던 고문과 비인도적인 행위를
알게 된 그는 총독부를 찾아가 항의했으며,
일본 총리에게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행위를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는 단순한 기록자가 아니라 진실을 기록하는
행동가였습니다.





진실을 기록하는 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역사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석호필 선교사는 자신의 목숨을 내걸어 진실을 알렸고,
그 기록 덕분에 우리의 찬란한 역사는
기억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도 그날의 함성을 생생히
마주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부끄러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신채호 –

 

마즈(MARS)의 성공 철학



세계 1위 초콜릿 브랜드 마즈(MARS)는
스니커즈(SNICKERS), 몰티져스(Maltesers),
트윅스(Twix), 엠앤엠즈(m&m’s), 밀키웨이(Milky Way)를 만든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마즈는 주식시장에 상장하지 않은 비상장 기업으로
100년 넘게 가족 경영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 회장인 '폰 플랭클린 마즈'는 예일대 졸업식 이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비밀주의를 고수하기로 유명합니다.

이는 상품명이 곧 브랜드이자 기업명인
미국을 대표하는 경쟁사 허쉬(HERSHEY)나
프리미엄 브랜드 기라델리(GHIRARDELLI)와
굉장히 대비되는 부분입니다.

이런 마즈의 2024년 연 매출은
약 600억 달러(약 80조 원)에 달하며,
이는 세계적인 음료 브랜드인 '코카콜라'의 매출보다도
높은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초콜릿 기업이지만,
마즈 가문을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경영자의 이름보다는 브랜드로 승부하고
제품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재투자하는 경영 방침은
오랜 시간 이어 온 브랜드 문화를 지키고
개선하는 것으로 이어져 현재의 마즈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때
그리고 그것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고자 할 때,
비로소 삶의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 오늘의 명언
좋은 기업과 위대한 기업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
좋은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위대한 기업은 훌륭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 윌리엄 클레이 포드 주니어 –

 

미녀로 고승의 덕을 시험하다

우스운 이야기를 모은 중국의 소부(笑府)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이야기가 있다. 
어느 천자가 덕이 높은 도승을 찾아내어 그를 스승으로 삼아 도를 깨우쳐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누가 과연 도승인지 알기가 힘들고 얼굴 모양이나 지식과 말만으론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도승을 알아내기 위하여 묘한 꾀를 한 가지 생각해 냈으며 때는 마침 여름이었다. 
천자는 곧 칙령을 내려 오계를 굳게 지키기로 소문난 고승 십여 명을 궁중으로 초청했다. 
그리고 그들을 조용한 방으로 들게 하여 옷을 벗기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서 있게 했다. 
그러고는 각각 배꼽 밑에다 북을 하나씩 매어 달아준 다음에 궁중의 미녀 십여 명을 뽑아 
고승들이 둥글게 서 있는 안으로 들어가 나체 춤을 추기도 하고 음탕한 노래도 불러가며, 
고승들의 물건이 일어서는가 않는가를 조사하여 그걸로 그들의 도력을 시험하기로 했다. 
이윽고 미녀들이 발가벗은 알몸으로 고승들이 둥글게 서 있는 원의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미녀들의 발가벗은 알몸과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아랫도리 계곡을 보는 순간, 
고승들의 물건을 가리고 있던 북들이 흔들리며 둥둥 북을 울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런데 그중에서 오직 한 고승만이 끝까지 북소리를 울리지 않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천자는 그의 소원이 이룩된 것을 기뻐하며 그중을 스승으로 모실 생각에 
부랴부랴 의관을 갖추고 북소리를 울리지 않은 그 고승을 맞이하러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이것이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천자가 막상 그 고승 앞에 나아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의 배꼽 밑에 매달아 두었던 북이 어느 사이엔가 구멍이 뚫려 찢어진 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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