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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추리?
산과 들에서 흔하게 자생하는
백합과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 없이 잎이 아래쪽에서부터
서로 포개져 부채살처럼 올라오면서 양쪽으로 퍼지고, 그 사이에서
긴 꽃대가 올라와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져 꽃송이를 맺는다.

원추리는 크게 4종류다

원추리.

  •  


노랑원추리.
해질 무렵 피었다가 아침에 지는 밤에 피는 꽃이다.
꽃색이 연한 노랑색이다.


왕원추리. 꽃색이 주황색이다.


스텔라원추리(왜성원추리, 사계절원추리). 키가 작다.

꽃은 6월부터 시작해 8월까지 볼 수 있는데, 아름다운 꽃과 오랫동안
볼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관상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원추리라는 이름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중국 이름인
훤초(萱草)에서 왔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훤초’가 ‘원초’로 바뀌고 접미사 ‘리’가 붙으면서 ‘원추리’가
됐다는 것이다.
민간에서는 꽃을 말려 몸에 지니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득남초라는 별명도 있다.
이 속설은 원추리 꽃봉오리가 아기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에 생겼다고 한다
또 근심을 잊게 할 만큼 아름다운 꽃이라고 망우초(忘憂草)라고도 불렸다. 


서로에게 망우초가 되어주자.

 


나이를 먹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미국 대중문화계의 스타이자
코미디의 전설이라 불리는 조지 번스.
1996년 그의 나이 10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부인 앨런과 함께 라디오와 텔레비전
그리고 영화 등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에게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65세가 되었을 때 아직도 여드름이 있다며
나이 듦을 유쾌하게 맞섰고, 80세 고령에도 불구하고
영화 'The sunshine boys'를 통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까지 받으며
그에겐 나이는 방해물이 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남을 즐겁게 하는 일을
천직으로 삼았고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었고
인생의 보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





100세 시대를 앞둔 현대사회에서
오래 사는 것보다 잘 늙는 게 중요해졌습니다.
때문에 '잘 늙자'라는 의미의
'웰 에이징'이라는 신조어도 나타났습니다.

나이 듦을 핑계 삼는 우리 자신들의
게으름과 나약함을 벗어 버리고
이왕이면 멋지게,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장수의 첫걸음입니다.


# 오늘의 명언
당신은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만큼 늙는 것이다.
- 조지 번스 -

 

 

어린이가 존중받는 사회




오래전 영국의 한 초등학교에 항상 학생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깍듯이 인사하는 교사가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동료 교사가 말했습니다.

"자네는 어린이들에게 무슨 인사를
그렇게 예의를 갖춰서 하는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 어린이들이 나중에 커서 총리도 되고
각 분야의 지도자도 될 텐데 그렇다면 지금부터
예의를 갖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교사의 희망은 적중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자란 어린이 중에 영국의 총리가 된
윈스턴 처칠이 있었다고 합니다.





꿈을 향한 가능성의 씨앗을 심고 있는
아이들은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님도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라는 생각으로
'어린이날'을 공표하며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였습니다.


# 오늘의 명언
어린이의 배움은 외우고, 쓰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타고난 지혜와 재능을 길러서 빛내야 한다.
- 양문공 -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이다




1996년 신예순 할머니는 74세의 나이로
해발 5,800m의 아프리카 킬리만자로의 정상을 등정해
큰 이목을 끌었습니다.

남편과 사별한 뒤 몸도 마음도 허약해질 때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등산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다리도 불편하고, 관절도 좋지 않았으나
꾸준히 산을 오르면서 할머니의 몸과 마음은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등산을 통해서 인생의 이치도
알게 되었다며, 산이 곧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1992년 등정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킬리만자로를 다시 마주했을 때
두려움도 있었지만, 함께 오르는 사람들의
응원과 성원에 힘입어 극복할 자신감이
생겼다고 합니다.

등정에 성공한 뒤 신예순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회만 닿는다면 더 높은 산이라도
오를 수 있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산의 모습이
고난과 기쁨이 공존하는 인생을 닮았습니다.
그 때문에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과정이라고도 합니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포기하고 싶지만
그 구간을 극복하면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는 산처럼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늙어서 뭘 할 수 있다고....
그냥 이대로 살다가 죽으면 그만이지...

이런 나약한 생각보다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알 수는 없지만
사는 날까지는, 건강할 때까지는, 무언가를 해보며
살아가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 오늘의 명언
도전에 성공하는 비결은 단 하나,
결단코 포기하지 않는 일이다.
- 디어도어 로빈 -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지 말자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는
어느 사막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행성 B612호에 사는 어린 왕자를 만나
왕자가 살던 행성의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를
집필하기 전 소설 속 주인공과
비슷한 일화를 겪었습니다.

실제로 비행기 조종사였던 그는
어느 날 비행기를 몰고 상공을 날다
기체결함으로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했지만,
5일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됐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절대 요소들이 결핍된 사막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인지 궁금했던
기자들은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당신을 살아남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 물음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을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을 버텼습니다."





소중한 사람과 보내는 시간을 얼마나 가졌는지요?
너무 가까이에 있어 소중함을 모르고,
너무 사랑해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언제나 함께여서 영원할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지 않는가요.

지금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라고 말해보세요.

어쩌면 나의 삶의 우선순위를 깨우쳐 주는
중요한 스승이 될 수도 있고 소소한 행복을 찾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나는 늘 정원에서 일하고
또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한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언제나 꽃이다.
- 클로드 모네 -

 

 

양 떼가 강을 건너는 방법




어느 목동이 수백 마리의 양 떼를 몰고
마을 실개천 쪽으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양 떼를 안전하게 마을로 이끌기 위해서는
실개천을 지나야 했습니다.

먼저 목동이 실개천을 건너갔습니다.
하지만, 물을 싫어하는 양들은
목동이 건너가는 것을 보고도 실개천 끝자락에서
어찌할 바 모르며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이를 지켜보던 한 아이가
다가와 목동에게 물었습니다.

"이 많은 양 떼를 몰고 어떻게
건널 수 있나요?"

그러자 목동이 양 떼 무리에서
새끼 양 한 마리를 자신의 어깨에 둘러메곤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생각보다 아주 간단하단다!"

목동은 둘러맨 새끼 양 한 마리와 함께
성큼성큼 실개천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순간, 어미 양이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며
목동 뒤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신호가 되어 수백 마리의 양들이
일제히 물속으로 뛰어들어 무사히 건너가기 시작했고
한 마리의 양도 빠짐없이 건너편으로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양은 온순한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두려움도 많고 고집도 세서 제멋대로인
동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새끼에 대한 어미의 사랑과 보호 본능은
눈앞에 놓인 어떠한 장애물과 두려움도
능히 이기게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엄마 닭은 똥 묻은 달걀을 더럽다고 하지 않는단다.
가슴에 꼭 품지. 엄마란 그런 거야.
똥 묻어도 더럽지 않고, 추울까 깨질까 염려하면서
꼭 끌어안는 거란다.
- 조연경 -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

 청솔  2021. 6. 4. 17:13

 

 

논개의 본명은 주논개이고 조선시대 1574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선비였던, 부친 주달문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반가의 여식이었습니다.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숙부의 집에서 어머니와 함께 몸을 의탁해 지냈는데 어린 나이지만 용모가 출중하고, 재주와 지혜까지 뛰어났으며, 시문에도 무척 능했다고 전해집니다.

평소 이를 눈여겨 보아왔던 장수고을 어느 부호가 논개를 어엿비 여겨 민며느리로 삼고자 그에 대한 댓가로 그녀의 숙부에게 쌀 50석을 지불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논개 모녀는 이를 거부하고 모친의 고향인 경상도 땅으로 도주해 어느 지인의 가택에 숨어서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소문 해 추적한 고을 부호에게 발각되어 장수 현감에게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던 것이며 당시에, 고을 현감으로 충의공 최경회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넉넉하고도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그는 논개 모녀의 억울하고도 딱한 처지를 소문으로 들었던 터였기에 명판결 끝에 무죄 석방하였습니다.

오갈데 없는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장수현감 최경희는 자신의 관저에서 함께 기거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고 합니다.

논개가 성인이 되면서 아리따운 처자가 될 무렵에 장수현감 최경회는 자기 부인과 사별을 하고 혼자 몸이 된 외로운 처지였습니다 .

평소 아름답게 보아온 논개의 모습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현감 최경회는 넌즈시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알렸고, 논개의 승낙을 받아내자 곧바로 후부인으로 맞아들였던 것입니다.

그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장수현감 최경희는 전라도의 의병장이 되되서 의병을 모집해 훈련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훗날, 조정에서는 최경회의 공로를 인정해 경상도 병마절도사(종 2품)에 봉하고 경상도 지역의 병을 줌으로써 왜구와 맞서게 했으나, 격전지에서 그만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남편을 잃고서 비통해 하던 논개는 애국과 남편의 복수를 동시에 실현할 방법으로 왜장을 죽일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왜군의 장수들이 승전에 도취되어, 연회에서 술에 취해 있을때 논개는 자신의 눈부신 용모를 기생으로 분장하여 가파른 바위끝에 서서 왜군의 장수를 유혹했던 것입니다.

모두 겁먹고 절벽에 가까이 하기를 두려워했지만 적장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용기를 과시라도 하듯 논개에게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논개는 자기 계획대로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채 적장을 끌어안고, 진주의 남강에 뛰어들어 꽃다운 나이를 그렇게 조국에 바쳤습니다 .

학창시절에 배웠던 변영노 시인의 논개라는 시를 다시 한번 기억해 보았습니다.

논개가 기생이었다는 잘못된 기록 때문에 그녀의 존재가 안타깝게도 정사에는 오르지 못하게 되었다는 어우야담의 저자 유몽인의 지적도 있습니다.

논개는 분명히 해주 최씨인 경상도 병마절도사인 최경희의 엄연한 후부인이고 선비 주달문과 모친 밀양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반가의 여식입니다.

또한 열녀이자 뜨거운 애국충정 열사이며 여기에

그녀의 애국충열을 기린 변영노 시인의 멋진시를 함께 올려드리오니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논개 (변영노)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 높게 흔들리우리

그 석류 속 같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븕은 그 마음 흘러라

푸르른 강물은 길이 길이 푸르리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 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 옮겨온글 -

 

[출처] ♧ 논개는 기생이 아니었다|작성자 청솔

 

 

♧ 동실과 서실 마을의 물꼬싸움

 청솔  2021. 6. 1. 18:22

 

 

야트막한 둔덕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는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은 갈라져서 있었지만

거리는 두식경도 되지 않아서 마을 사람들이

마실을 가거나 두부를 사러온다.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은 둘다 조그만 마을로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로 서로 시집과 장가를

오가기 때문에, 세월이 흐르며 핏줄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히고 설켰다.

이마을 김서방네 딸이 저마을에 살고 저마을

오서방네 고모는 이마을에 살고 있고 박서방

며느리는 증고모 사돈 딸이고 우서방 이모는

저마을 사돈의 사촌누이다.

서로 틀어질레야 틀어질수 없는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 사이에 그놈의 가뭄때문에 싸움이

대판으로 붙었고, 장곡천은 이곳 용바위에서

물줄기가 둘로 갈라진다.

한줄기는 동쪽으로 흘러 동실 마을을 적시고

한줄기는 서쪽으로 흘러 서실 마을을 적시며

사시사철 물이 콸콸흘러서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의 생명줄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겨울에 눈이 오지않더니 이듬해

봄이 되어서도 비다운 비가 한번도 오지않아

모내기 철이 되자 장곡천 물줄기가 가늘어져

농민들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어느날, 장곡천에서 내려온 물이 용바위에서

똑같이 나뉘어져야 하는데 동실 마을 쪽으로

훨씬 많이 흘러가더라고 하면서 서실 마을의

박서방이 입에다 거품을 물었다.

"동실 마을에서 물꼬를 튼거여!"

동실 마을 사람들이 서쪽의 물길을 동쪽으로

돌렸으며 옛말에 물꼬 싸움은 형제도 없으며

혈연으로 엮어졌어도, 물꼬 싸움에 물러서는

것은 곧 굶어죽는 길이었다.

늦은 밤에 동실 마을의 젊은이들이 용바위로

올라가서 물꼬를 동쪽으로 틀면 새벽에 서실

마을 젊은이들이 올라가서 아예 바위로 졸졸

내려가는 동쪽 개울을 막아버렸다.

동실패와 서실패가 서로 맞부딪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입싸움을 하다가, 급기야는

서로 주먹이 오가면서 입술이 당나발이 되고

눈팅이가 밤팅이가 되었다.

''그자식이 나한테 주먹질을 하다니..."

주먹으로 땅을 치며 분통을 터뜨리는 박서방

에게 주먹을 날린 사람은 당질이었고 서로가

멱살잡이 한 사람은 사돈지간이었으며, 결국

여자들이 모두 들고 일어났다.

여자들이 남편을 붙잡고 제발 싸우지 말라고

통사정을 해봐도, 막무가내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기에, 남정네들의 야만적인 행동에

제동을 걸고 들고 나선 것이다.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의 여자들이 용바위로

올라왔으며 양쪽 마을 여자들은 서로 붙잡고

동실과 서실이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됐느냐며

울어서 눈물바다가 되었다.

''고모야! 어쩌다 동실 서실이 이지경이 됐노!"

''동서~ 형님~"

금새 남정네들의 성토장이 되었고, 남자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였으며, 공평하게 물관리에

들어갔고 서실 마을 우씨 부인이 남정네들을

응징하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우씨부인 설명을 듣고 모두가 박수를 쳤으며

용바위는 원래 학동들이 원족을 하는 경관이

빼어난 곳이며 부인네들은 차양을 치고 솥을

걸고 밥을 하고 닭을 잡았다.

우씨 부인이 제안한 응징 방법은, 남편들에게

밥을 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밤에 잠자리를

거부하는 것이었고,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의

여자들은 모두 신바람이 났다.

낮이면 차양 아래서 물에 발담구어 낮잠자고

밤이면 달빛에 모여앉아, 얘기꽃을 피웠으며

열흘이 지나가자, 남정네들이 안달이 났으며

어느날 권서방네 아들이 올라왔다.

"엄마! 아부지가 왔어."

권서방은 농부가 아닌 보부상으로 석달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며 그날밤 권서방 마누라는

오랫만에 돌아온 권서방과 질펀하게 운우를

나누기 위해 집으로 내려갔다.

권서방의 부인이 오래간만에 씨암탉을 잡고

술상을 차려와 권서방이 얼큰해지자 술상을

물린다음 곰방대에다 불을 븥였으며 부인이

부엌에서 뒷물을 하고 들어왔다.

"임자, 그동안 옥문에 곰팡이 안 쓸었오?"

잠시 후에 권서방이 부인의 저고리 옷고름을

풀고 치마와 고쟁이까지 모두 벗기자 그녀는

반듯이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리를

벌리고 빨리 안아달라고 하였다.

"서방님~ 어서 나 안아줘요."

부인이 알몸으로 반듯이 드러누워 두다리를

벌리고 권서방이 부인에게 올라가자 그녀의

옥문주변엔 숲이 무성하게 우거졌고 옥문은

벌써 질퍽하고 헝건히 젖었다.

돌처럼 단단해진 권서방의 양물이 질퍽해진

부인의 옥문속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깊숙이

들어가자 그녀는 암고양이 울음소리와 같은

앙칼진 신음을 토하며 울부짖었다.

부인은 권서방의 허리를 힘껏 껴안고 방안을

이리저리 뒹굴었으며, 부인의 옥문 속에서는

황소가 진흙밭을 달려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옥문에서 많은 액물이 흘러내렸다.

부인은 권서방을 껴안고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렸다가 요분질을 했으며 부인의 옥문에서

질꺽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액물로

사타구니가 온통 뒤범벅이 되었다.

부인은 옥문을 오물오물 조이면서 권서방의

양물을 잘근잘근 깨물었고 권서방의 양물이

부인의 옥문을 계속 들락거리며 자극시키자

그녀는 응덩이를 마구 들썩거렸다.

권서방은 위에서 아래로 부인을 폭풍과 같이

몰아부치고, 절구질을 계속 하였으며 부인은

밑에서 위로 감칠맛나는 요분질로 권서방의

양물을 자극하면서 흥분시켰다.

한바탕 천둥 번개와 요란한 폭풍이 지나가자

부인의 허리가 활처럼 휘어졌으며 잠시 후에

부인은 권서방을 팔베개 한채로 그의 양물을

조물락거리면서 애교를 떨었다.

잠시후에 부인이 권서방의 단단해진 양물을

그녀의 옥문속에 집어넣어 엉덩이를 돌리고

들었다 내렸다 요분질을 해댔으며 자지러진

감창과 함께 그녀의 숨이 넘어갔다.

그들은 서로가 앞치락 뒤치락 주고받으면서

짜릿하고 황홀한 운우를 마음껐 나누었으며

부인의 옥문속에서 한번 봇물이 터져나오자

그들의 운우는 다시 계속되었다.

부인의 옥문 속에서 흘러나온 액물이 그녀의

사타구니 계곡을 타고, 밑으로 흘러내렸으며

이번에는, 권서방이 여러가지 기교를 부리자

부인은 두번이나 까무라쳤다.

그들은 밤새도록 서로 앞치락 뒤치락하면서

짜릿하고 황홀한 쾌감을 느꼈으며 권서방은

부인의 사타구니에 숲많은 옥문을 세번이나

기절시켜 그녀를 즐겁게 하였다.

권서방 부부는 서로 꼭 끌어안고 잠들었으며

부인의 옥문에서 흘러나온 많은 액물이 요를

흠뻑 적셨고 부인은 새벽녘에 한번더 운우를

나누기 위해 온갖 애교를 떨었다.

부인이 권서방의 품속에 깊이 파고 들었으며

탱탱하게 부풀은, 부인의 젖망울을 쓰다듬던

권서방이 손으로 그녀의 무성한 숲을 헤치자

옥문은 벌써 흥건히 젖어 있었다.

권서방의 단단해진 양물이 부인의 옥문속을

훑으면서 깊숙이 미끌어져 들어가자 부인은

비명을 질렀으며 권서방의 계속된 절구질에

그녀는 살려달라고 애원하였다.

한바탕 천둥번개와 요란한 폭풍이 지나가자

부인의 허리가 새우등처럼 휘어지고 다리가

늘어졌으며 그녀의 사타구니는 온통 액물이

범벅되었고 요는 흥건히 젖었다.

부인은 석달동안 닫혀있던 옥문을 활짝열고

오래간만에 굶주렸던 그녀의 욕정을 마음껏

불태웠으며 실신한채 권서방의 품속에 안겨

잠들었고 용바위로 가지 않았다.

다음에는 정서방네 딸이 올라와서, 엄마에게

용이가 아프다고 하자 정서방 부인이 집으로

내려갔더니 거짓말이고, 정서방이 마누라의

고쟁이를 벗기고 옥문을 열었다.

여자들이 밤에 잠자리를 거부해도 남자들만

안달나는 것이 아니었으며 부녀회의 동맹이

흐트러지기 시작할때 우르르 쾅쾅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며 장마가 시작되었다.

장마가 시작되자 동실 마을과 서실 마을에선

집집마다, 안방에서 남자들의 절구질과 함께

여자들의 자지러지는 감창과 괘성이, 하늘을

찌르고 운우가 질펀하게 벌어졌다.

- 옮겨온글 편집 -

[출처] ♧ 동실과 서실 마을의 물꼬싸움|작성자 청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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