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닻을 올릴 때 / 이가림♥
두 팔 벌려
한아름 껴안아야 할 햇덩어리가
어둠을 사르고
다시 한번 태어나는데,
어찌 어제의 사슬에 묶여
피곤한 닻을 내리고만 있으랴
이 썩어가는 욕망의 도시로부터
이 믿을 수 없는 거짓의 웃음으로부터
이 엉큼한 음모의 손아귀로부터
우리 모두 떠나자,
새날의 닻을 함께 올려
아침놀 빨갛게 이글거리는
수평선을 향해 벌거벗은
마음으로 떠나자
피투성이 삶의 시장터에서
빵 부스러기에 눈이 멀어 다투던 자여,
지금 먼 바다에서 온 싱그런 바람이
그대의 일그러진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그 바람은 여늬 바람이 아니라
그대의 언 가슴을 녹일
사랑의 입김이다
속임수가 속임수를 낳는 컴컴한 골목에서
사시사철 때묻은 골패짝을 뒤집던 자여,
지금 열린 문 틈새로 스며드는 빛줄기가
그대의 안개 낀 눈앞을 밝혀주고 있음을
보지 못하느냐
그 빛은 여늬 빛이 아니라
그대의 끝없는 잠을 깨울
정의의 칼날이다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죽이는 광장에서
목쉰 확성기로 울부짖던 자여,
지금 아우성의 벽을 뚫고 달려오는 푸른 목소리가
그대의 귓전을 울리고 있음을
듣지 못하느냐
그 목소리는 여늬 목소리가 아니라
그대의 찢겨진 상처를 덮어줄
자유의 꽃잎이다
비둘기떼처럼
수천 수만의 날갯짓으로 피어오르는 새벽
말갛게 얼굴 씻은 해를 마주하며
우리들 동시대의 배는 마침내
새로운 미지의 바다로 나아간다
그 어떤 압제의 손으로도
다시는 이 평화의 뱃머리를
거꾸로 돌릴 수 없으리라
선장은 선장의 자리에서
선장다웁게
키잡이는 키잡이의 자리에서
키잡이다웁게
갑판원은 갑판원의 자리에서
갑판원다웁게
화부는 화부의 자리에서
일하며 노래할 때
이 세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닫히기 전에 우리들의 배는
흩어진 사람들 어우러져
둥그렇게 둥그렇게 춤추는 나라
그리운 세상에 기어이 닿으리라
기어이 닿으리라
'살아가는 이야기 > 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느 날 그랬다면 -후산지 연꽃 (0) | 2024.07.25 |
---|---|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 하목정 베롱꽃 아직이네 (0) | 2024.07.25 |
절약의 시대는 옛말 - 가실성당 (0) | 2024.07.24 |
1조 원의 책, 10조 원의 책 - 참나리 (0) | 2024.07.24 |
말뫼의 눈물 -배롱꽃 핀 가실성당 (0) | 2024.07.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