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자동선(제13화)

 
 

영천군과 사가정의 걸음이 빨라졌고 사가정이 앞장을 섰으며 조선팔도를 제집 정원처럼 드나들었던 사가정의 발길에 영천군은 벅차다.

“이 사람아, 좀 천천히 가시게나! 내가 숨이 차서 따라갈 수가 없네.”

“자동선을 한시라도 빨리 보시려면 더 빨리 걸어가셔야 하지요.”

“아 참! 우리가 타고 왔던 말은 어찌하였소?”

“네 나으리, 목단춘에게 맡기어 며칠 잘 먹이라 했나이다.”

“그거 참 잘했소이다. 그런데 제일청한테 안내하라 했으면 좋을 뻔 하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사내 둘이 가서 아무렴 조선제일의 미녀라 해도 설득을 못하겠는지요?”

두 사내가 얘기를 주고받으며 오는 사이에 어느새 멀리서나마 자동선의 집이 보였다.

영천군은 자동선의 집만 보아도 자동선을 본 듯 가슴이 뛰었고 이젠 영천군이 앞에 서서 뛰다시피 한다.

숨이 차서 천천히 가자던 영천군이 자동선의 집을 보니 힘이 저절로 솟는지 사가정(四佳亭·서거정)을 제치고 앞에서 총총 걸음으로 달린다.

"천천히 가시죠. 영천군 나으리...”

하지만 영천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동선의 집을 향해 젖먹이가 어미를 보고 본능적으로 달려가듯 줄달음을 쳤다.

사실 영천군은 사가정보다 힘이 좋고 허우대도 좋을 뿐만이 아니라 왕손의 후예답게 옥골선풍에 헌헌장부다.

사가정도 어디에 나가도 빠지지 않으며 풍부한 학식에 넘치는 해학과 풍류에 여자들이 한번 보면 그의 품에 안기고 싶어 안달하는 호남아다.

지금 그들이 자동선을 보려고 서로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투어 뛰듯 걷는다.

“게 누구 없느냐?”

영천군이 우렁찬 목소리로 주인을 찾았고 몇 번을 소리 높여 주인을 찾았으나 안에서는 아무 소식이 없다.

“게 아무도 없느냐?”

이번에는 사가정이 대나무로 촘촘히 만든 대문을 발길로 차면서 외쳤다.

그때서야 “게 누구기에 남의 집 대문을 발길로 차며 법석을 떠시오?”라며 열 서넛 되어 보이는 계집아이가 얼굴을 삐죽이 내밀었다.

“여기가 자동선의 집이더냐?” 영천군이 숨이 가쁘게 물었다.

“그렇소만 댁은 누구신지요?” 소녀가 당돌하게 대꾸를 하였다.

“우리는 한양에서 온 영천군과 사가정인데 자동선을 보러 왔느니라.”

“아-예, 그런데 자동선 아씨께선 지금 집에 안계십니다. 오늘은 그냥 돌아가셨다 다시 오셔야합니다.

우리 아씨께선 예약을 하지 않으시면 만나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지금 아씨께선 산책중이십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기다리면 아니 되겠느냐?”

“그것은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아씨가 안 계실 땐 절대로 남자를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시게 하십니다.

어서 돌아가셔서 내일 오시면 소녀가 아씨한테 말씀드려 놓겠습니다.” 말을 마친 소녀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두 사내는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별수 없이 다시 제일청 집으로 갔으며 다시 술판이 대낮부터 벌어졌고 대취했던 두 사내는 새벽녘에 깨어났다.

그들은 집 뒤 실개천으로 가 세수를 하고 목이 타서 실컷 물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떠날 채비를 하였으며 그때다.

“벌써 떠나시려고요? 그렇게는 아니 되옵니다. 이 제일청에 와서 술국을 안 드시고 가시는 손님은 없습니다.

소첩이 일찌감치 술국을 끓여 놨으니 시원하게 드시고 가세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술국과 기장이 섞인 밥도 함께 차려졌다.

여섯 골이 망망한 채 산과 바다가 가려/ 올라가기 어려운 곳이라고 들었더니/

이제사 와 보니 뜬소문은 잘못이라/ 티끌세상과 몇 걸음 사이 밖에 아니네

고려시인 최집균(崔執均)의 무제(無題)다.

두 사내는 다시 자동선 집에 닿았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내가 동시에 ‘게 누구 없느냐?“라고 집주인을 찾았다.

두 사내가 네댓 번을 부르자 선녀로 보이는 여자가 나타났고 바로 자동선이다.

”어서 들어오시죠. 어제 오셨던 한양에서 오신 손님이 아니신지요?

어제는 소첩이 뒷산으로 산보를 하면서 시(詩) 공부하느라 결례를 했사오니 널리 양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똑 떨어지는 말투였으며 자동선은 두 사내를 아랫목에 앉히고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소녀 자동선이라 하옵니다. 먼 한양에서 미천한 소녀를 보러 이곳까지 오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그래. 네가 진정 자동선이냐? 이 분은 효령대군 다섯 번째 아드님인 영천군이시고 나는 사가정이라 하느니라.”

“어머 소첩이 평소 존경했던 두 분을 제 집에서 뵙다니 꿈만 같사옵니다. 앵두(동기 가명)야! 술상을 어서 봐 오너라!”

앵두는 준비했던 술상을 자동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고 들어왔다.

“이 술은 소첩이 담은 자동선주(紫洞仙酒)이며 담근 지 3년차로 독하오니 천천히 조금씩 드세요!”

두 사내를 술상 맞은편에 앉히고 자동선은 술을 연거푸 따랐고 사가정은 술에 취하고 영천군은 자동선의 아름다움에 포로가 되었다.

“자동선아, 이 자하동에 숨은 얘기가 있을 듯한데 네 이름도 거기에 연유가 있는 것이 아니더냐?”

“역시 풍류객 사가정 어른이셔? 그러하옵니다. 고려 때 대학자 채홍철(蔡洪哲) 어른께서 자하동에 정자 중화당(中和堂)을 짓고

국가 원로들을 모셔 기영회(耆英會)를 열었는데 어느 날 자하선인이 나타나 원로들에게 헌수 술잔을 올리며 '자하동곡'을 부르셨다 하옵니다.”

“그래? 자동선 너는 역사에도 높은 지식을 갖고 있구나! 그 선인이 불렀다는 '자하동곡'을 불러 줄 수 있겠느냐?”

“그러하옵니다.'자하동곡'은 현재 악부(樂府)에 가사가 전해오는 것을 소녀가 잘은 못 부르나 불러 보겠나이다.”

자동선의 낭랑한 목소리에 영천군은 아랫도리가 팽창되는 것을 느꼈다.

집은 송악산 자하동에 있어서/ 안개구름이 중화당에 잇달았네!/

오늘 기영회 기쁜 모임 있다기에/ 몸소 찾아와 연수배를 올리노라

노래보다 술에 더 마음을 두는 사가정도 자동선의 노래에 가슴이 흔들렸고 두 사내는 동시에 탄복했으며 그러하면서도 서로 다른 여인을 떠올렸다.

연천군은 '자하동곡'을 부른 자동선과 열락의 장면을 생각했으며 사가정은 제일청과 주지육림의 꿈같은 과거를 회상했고 어느새 밤이 깊었다.

“두 나으리께선 밤이 깊었는데 술만 드시면 어떡하죠? 객사로 가실 채비를 하셔야지요!”

영천군은 가슴이 철렁 떨어졌다. 객사로 가라니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었기 때문이다.

두 사내는 자동선의 집에서 나와 객사로 발길을 옮겼으며 통음한 술이 번쩍 깼다.

- 14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7화)

 
 

한양 손님을 통해 진이는 남사당(男寺党)에 대해 오래전부터 정보를 모아왔다.

남색사회(男色社會)에 대한 관심이 발동하였고 진이가 이제 조선사회에서 더 이하 신분은 없는 남사당에 뛰어들 태세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리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들 가네.

민요로까지 나돌 정도로 대중적 인기가 높고 바우덕이(金巖德:1848~1870)를 지칭한다.

그런데 340년 전에 진이가 남사당에 매료되어 수년 동안을 그들과 지냈고 위의 노래는 최근의 것이며 조용했던 마을이 오랜만에 떠들썩하다.

뙤약볕 아래 논밭 일로 허리 한 번 제대로 못피던 농사꾼들이 어깨를 들썩이고 마을 처녀들은 멀리 숨어서 가슴을 조이며 놀이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대낮 같이 환하게 흔들리는 횃불아래 춤추는 그림자들, 그 위로 어지럽게 퍼지는 흥겨운 풍물놀이...

마당 한가운데에서는 남사당패들의 신나는 놀이가 한창이고 풍물놀이에 이어 버나(대접)돌리는 묘기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살판(땅재주)이 이어졌다.

그런데 구경꾼 속에서 남사당놀이를 유심히 관찰하는 진이가 눈에 띄었고, 송도에선 보기 어려운 남사당놀이를 보기 위해 한양까지 내려왔다.

조선의 상층부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샅샅이 보고 몸으로 체험하여 봤으니 이제는 최하층민인 천민의 세계도 보려함이다.

고려를 연성(軟性) 국가로 조선은 경성(硬性) 국가로 진이는 보고 있는 것이다.

지족선사와의 뜨거웠던 하룻밤도 외롭고 쓸쓸하고 사내 살 냄새가 아쉬울 때는 새록새록 그리워졌다.

사내들은 진이를 뜨악해 하며 돈을 주고 육체적 기쁨을 맛보려는 족속은 많은 화대가 부담이 되어 쉽게 품을 수 없으며

돈은 많으나 신분이 너무 낮으면 상대조차 해주지 않아 진이는 이래저래 기명(妓名·명월明月)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외로운 존재다.

지금 남사당패의 흥겨운 놀이판의 구경꾼들 속에 있으면서도 마음속엔 찬바람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다.

남사당패 놀이는 점점 열기가 더해 가고 매호씨(어릿광대)와 살판쇠(땅재주꾼)가 나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입을 쩍하고 맞추어 “안암팍이 분명하니 앞곤두부터 넘어가는데 휙휙”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손을 짚더니 한 바퀴 공중회전을 하였다.

어둠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구경꾼들이 벌린 입을 채 다물기도 전에 살판쇠는 다시 뒷걸음질을 치는가 싶더니 다시 손을 짚고 뒤로 한 바퀴 사뿐히 돌았다가

입으로 휙휙 소리를 내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두 손으로 거꾸로 서서 걷다가 금세 한손으로 거꾸로 걷기도 하였다.

마지막으로 살판쇠는 “잘하면 살판이고 못하면 죽을 판이렷다.”라 하고

신명나게 껑충껑충 위로 뛰어 몸을 틀고는 공중회전을 하려는 듯 몸을 솟구쳤고 그 밑에서 벌겋게 불을 담은 놋화로가 입을 쩍 벌리고 있다.

살판이 끝나자 보기 드문 미녀 어름사니(줄타기 재주부리는 광대)가 나와 매호씨와 줄고사를 올렸고 꽹과리, 징, 장구소리에 날라리까지 합세하였다.

줄고사가 끝나자 장삼에 고깔 쓰고 중 모양을 한 여자 어름사니는 키를 훌쩍 넘게 매단 줄 위로 오르면서 재담 한마디를 했다.

“중 하나 내려온다. 중 하나 내려온다. 저 중 거동 보소. 억단(얽었담)말도 빈말이요.”라고 맑은 목청으로 중 타령을 뽑았다.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기예로 다져진 날렵한 몸매와 횃불 조명으로 음영이 짙은 미모에 구경꾼들은 잠시 넋을 잃었다.

하지만 구경꾼 속의 진이는 고독이 휘오리가 점점 더 세어져갔다.

내가 임을 그리며 울고 지내니/ 산 접동새와 난 처지가 비슷하구나./

나에 대한 말은 진실이 아니며 거짓이라는 것을 아!/ 지는 달 새벽 별만이 아실 것이리/

넋이라도 임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아아!/ 내 죄 있다 우기던 사람이 그 누구입니까?/

나는 과도 허물도 전혀 없습니다./ 나에 대한 뭇사람들의 거짓말이여/

슬픈 일이로다. 아아!/ 임이 나를 아마 잊으셨는가./

아아, 님이여! 내 말씀 다시 들으시고 사랑해 주소서...

'정과정'에 나오는 고려가요다.

그렇게 하늘 위에 두둥실 떠 있는 진이(明月)는 몸서리 쳐지도록 외로운 것이다.

소세양·이사종·벽계수·이생, 그리고 화대를 주고 육체의 허기를 채우고 벌·나비가 꿀만 빨아먹고 훨훨 날아가듯 사내들은 모두 제 둥지로 가버렸다.

정작 진이의 뻥 뚫린 가슴을 메우려 할 때는 사내들은 옆에 있지 않았고 지금이 바로 그럴때다.

진이는 품에서 태상주를 꺼내 병 채로 마셨고 바로 이때 누군가 술병을 가로챘다.

“안주도 없이 독주를 마시면 안 되오! 저리 가서 국밥과 함께 드시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헐레벌떡 진이 곁을 떠났다가 여자 살 냄새를 그리워하고 있을 때 진이가 한양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수소문하던 때다.

화대도 없이 어떻게 육체의 허기를 채울 수 없을까 궁리를 하며 서성대고 있을 때 극적으로 진이와 해후하였고 사내 좋고 여자도 싫지 않을 상황적 분위기다.

남사당 놀이판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고 높이 있는 미녀를 더 자세히 보려고 일어선 구경꾼들을 앉히는 소리에 놀이판이 잠시 소란해졌다.

그 사이 어름사니는 장삼을 벗어던지고 전복(戰服)차림이 되어 갖은 걸음으로 재주를 부렸다.

앞으로 뒤로 걷다가 줄을 타고 앉아 화장을 하는 시늉을 하는가 하면 앞으로 가다가 뒤로 두 발로 뛰어 돌아앉기도 하였다.

어름사니가 움직일 때마다 멍석 깔린 마당에 그림자가 출렁이었다.

“여기에 이러고 있을 것이오? 밤도 깊었소이다. 어서 주막으로 갑시다!

안성엔 삼남(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의 물산이 모이는 곳이오. 국밥이 아주 맛이 좋소!”

이생은 진이의 등에 손을 얹고 독수리가 먹이를 채가 듯 주막으로 몰고 갔다.

진이는 진이대로 이생은 또한 이생대로 국밥 한 그릇과 막걸리를 마신 후 운우지락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졌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익숙한 부부모양 말이 필요 없이 한 덩어리가 되었고 오랜만에 해우 한 연인 같이 거칠 것이 없다.

이생이 들어가면 진이가 깊이깊이 받아 물레방아 돌 듯 척척 맞아 돌아갔고 뒷산의 소쩍새도 그들의 운우지락을 응원하듯 목청껏 노래불렀다.

- 28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8화)

 
 

봄의 금강산은 그림 같고 아침을 먹지 않았어도 진이는 신이 났다.

진이는 금강산 일만 이천 봉 사찰마다 어머니 극락왕생 기도를 올릴 생각이다.

금강산의 4대 사찰(장안사·유점사·신계사·표훈사) 중에 이번엔 표훈사(表訓寺)로 가는 발길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에 머무르고 있는 보살들의 우두머리 법기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사찰이다.

진이는 이 사찰에 어머니를 모셔드리고 싶다.

금강산의 4대 사찰에 모두 어머니를 모셔 극락왕생이 되도록 본인이 생존해 있는 동안 사월초파일에 예불을 올릴 생각이다.

그리고 표훈사엔 어머니가 평소에 스시던 오동나무 거울을 징표로 모셔 4새 사찰 중에 모사(母寺)로 삼으려 마음을 굳혔다.

그리고 예불음식은 신계사에서 사서 올리려 한다.

신계사 계곡에서 연어가 잘 잡혔는데 불교에선 살생을 금하여 보운(普雲)스님이 신통력을 발휘하여 연어가 계곡에 못 올라오게 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진이는 신계사의 음식이 정갈하기로 유명하여 해마다 사월초파일이면 음식을 사서 표훈사에서 기도를 올렸다.

지금 진이는 신계사를 향해가고 있으며 이때 옆에서 거문고를 메고 묵묵히 따르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아씨, 신계사 연어 얘기는 유명한 전설이에요! 소인이 아버지와 헤어지고 팔도를 헤맬 때 이곳도 다녀갔지요.

신계사 연어가 맛도 천하제일이고 크기도 천하으뜸이라 사월만 되면 미식가들이 팔도에서 구름처럼 모여들어요!

그리고 신계사 코앞에서 한량들이 술판을 벌려 생선냄새와 기생들의 분 냄새가 골짜기를 메웠어요.”

이생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일갈하였으며 이생은 소문난 재담꾼이다.

그런데 진이 곁으로 오자 말수가 적어졌을 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경우 외엔 입을 열지 않았으며 그런 이생이 지금 입을 열었다.

“아씨 신계사 개천에 연어가 많은 건 사실이나 지금은 제철이 아니에요!

가을이 돼야 살이 통통하게 찐 연어가 팔딱팔딱 뛰어 올라오는데 그것도 옛날 얘기가 되었어요.” 아쉬운 듯 말하였다.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럼 이젠 신계사 계곡에서 연어를 볼 수 없다는 거냐?” 진이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단풍철 가을이 되면 옛날 같지는 않으나 자연현상인 연어 회귀가 없기야 하겠어요?

하지만 보운스님의 신통력에 밀려 요즘엔 예전만 못하다고 해요.”

진이는 속으로 걱정이 태산이고 생전에 생선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를 위해 연어예불이 수포로 돌아갈까 염려되었으나 그때 이생이 귀띔을 해주었다.

“아씨 그러나 방법은 있어요. 조선팔도 한량들이 가을이 되면 기생들을 끼고 구름처럼 밀려오는데 개성상인들이 그냥 보고만 있겠어요?

딴 지방에서 잡은 연어를 이곳으로 가져와 장사를 하지요. 신계사 길목 주막에 가면 언제나 연어가 있어요!”

이생의 말을 들고서야 진이는 얼굴 가득했던 수심의 구름을 거두었고 점심때가 되자 신계사 길목 주막엔 사람들이 제법 북적이었다.

그들은 주막에서 연어를 사고 신계사 절밥을 사서 표훈사로 향했고 봄꽃이 절정이다.

현학금은 특히 매화를 좋아했고 진이는 문득 퇴계 이황의 '매화'를 떠올렸다.

‘뜰 앞에 매화 나뭇가지 가득 눈꽃피니/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옥당에 홀로앉아 봄밤의 달을 보며/ 기러기 슬피울제 생각마다 산란하네.

시를 낭송하고 진이는 대불 앞에 꼬꾸라져 통곡하였으며 모녀기생의 기구한 삶을 생각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난 그들은 졸음에 빠졌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한방으로 들어갔으며 주지스님은 진이를 남자로 보고 있다.

헌칠한 이생과 여자 키론 작지 않은 진이를 보통 사내로 보았던 것이며 별로 씻지도 못한 두 남녀는 서로의 체향(體香)에 만족해하고 있다.

진이의 월경 주긴데 이생이 치근덕거리며 거절하면 삐져 말을 잘 듣지 않을까 진이는 되도록 원할 때 몸을 열어주었고 진이 자신도 싫지 않아서다.

이생은 번듯한 사대부집 아들이며 그런 사내를 종을 부리듯 부리긴 쉽지 않다.

그런데 진이는 이생을 종 부리듯 부리고 이웃들에겐 하인이라 거침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졸기(卒妓·기적에서 나온 기생)의 몸을 열어주었다고 허물이 못될 것이다.

진이는 그렇게 생각하고 이생이 원해오면 못 이기는 척 조금씩 조금씩 몸을 열어주었다.

이생과의 팔도유람이 어언 3년째고 삼년 사이에 셀 수도 없이 몸을 주었으나 허리아래만 열었지 위로는 꼭꼭 닫았으며 이생도 보채지 않고 스스로 열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지금 진이가 온몸을 열려하고 진이는 이생과 방사를 할 때 임신을 가장 경계하였다.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 때도 임신을 가장 경계하며 살을 섞었고 졸기 몸에 임신을 하면 놀림감이 되기 때문이다.

모전여전(母傳女傳) 소리 듣기가 죽기보다 싫었으며 그것도 현모양처의 모전여전이 아닌 기생의 모전여전이 아닌가!

그래서 진이는 어엿한 여자 사대부가 되는 것이 꿈이였고 비록 여자로 태어났으나 이 나라 어느 사대부 못지않은 학문의 세계를 가려는 게다.

사장(詞章)이면 사장, 경륜(經綸)이면 경륜에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겉이 여자미며 그것도 색향(色香)이란 송도의 명월(진이 名技)이 아닌가!

그래서 진이는 조선팔도를 휘돌아 경륜을 배웠고 사장과 학문의 세계는 사대부들이 봐도 쉽게 겨루려 들지 못할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이의 속내를 알아주는 사대부는 아무도 없었고 계약결혼을 하고 밤낮으로 욕심을 채운 소세양과 이사종만이 이해하여 주는 시늉을 했을 뿐이다.

사내들은 똑같고 여자를 허리 밑으로 눌러 정복대상으로 생각하는 동물적 속성이 사내들에겐 잠재해 있으며 진이는 그런 속성을 소세양에게서 똑똑히 느꼈다.

“아씨 장안사로 떠나시죠! 장안사 가려면 반나절은 족히 걸려요. 어둡기 전에 들어가야지요.”

말이 떨어지자 진이가 발딱 일어섰다.

“갑시다!” 이생은 이미 거문고를 메고 있었으며 진이는 짐이 없으니 일어서면 떠날 채비가 되었다.

둘은 손을 잡고 다정한 부부인 냥 계곡을 따라 내려갔으며 진이와 이생의 모습이 소리꾼과 고수(鼓手)의 모습 같다.

산사의 낮은 짧아 어느새 산새들이 추녀 밑으로 날아드는 저녁이고 진이는 서슴없이 주지스님을 찾아 유숙을 청하였고 몇 년 사이에 노련한 비렁뱅이가 되었다.

저녁을 한술 얻어먹고 거문고를 벽에 세우고 목침을 베자 방이 떠날갈 듯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으며 이생은 진이가 잠들자 버릇처럼 진이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 19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7화)

 
 

지리산에서 금강산으로 오는 사이에 겨울이 훌쩍 지났다.

이사종과 삼년이나 한양에 살았으나 자유의 몸이 아니라 가고 싶은 곳엔 가보지 못해 이번엔 관심있는 곳을 둘러보려 하는 것이다.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장악원(掌樂院:현 국립국악원)이다.

소세양과 계약결혼을 했을 때 자기 소실로 들어와 장악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더 하여 이론은 더 배워 후세에 남기면 어떠냐고 제의했을 때가 떠올라서다.

이제 진이는 기생이 아니고 떳떳한 자유인이지만 한량들은 진이가 여전히 기생으로 알고 돈으로 사려한다.

진이는 그것이 싫고 남자의 여자가 아닌 여자의 남자들을 만들려는 것이며 그러려면 그들을 뛰어넘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이고 억불숭유의 조선에선 엄격한 신분제로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계급이 뚜렷하다.

사(士) 다음에 농(農)이 있음도 눈여겨 볼 대목이며 사대부들이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면 대부분 고향과 시골로 내려간다.

그것은 다음 과거에 나올 생각에서고 장사 등 직업을 가지면 아예 과거볼 자격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조선의 사내로 태어났으면 등과(登科)하여 어사화(御史花)를 꽂고 금의환향하여 사대부의 위상을 보여주고 싶을 게다.

그런 사대부의 나라에서 진이는 여자의 남자를 찾았고 소세양·이사종·지족선사·이생 등을 품었으나 화담 서경덕은 끝가지 노력했으나 스승으로 삼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양의 풍류객들은 새로운 것을 찾았고 한양기생들에게선 더 이상 새로운 사랑과 풍류를 찾을 수 없어 색향 송도의 명월에게로 발길을 돌렸다.

진이는 화대를 받고 몸을 내주는 것이 싫었으며 자유를 찾아 아버지와 결별하고 기생이 되었으나 사내들의 울타리에 갇히게 되었다.

불을 본 부나비 같이 달려드는 사내들을 피하여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를 자유의 몸으로 돌려 놓으려 했던 것이다.

기생이 아름답고 학문이 아무리 높아도 기생은 기생이고 시기(詩妓)·악기(樂妓)·의기(義妓)·무기(舞妓) 등이 그 이름이다.

진이는 그것이 싫었고 기명(妓名)인 명월(明月)이 있으나 그녀는 진이(眞伊)를 고집하였다.

명월이라 부르는 손님은 받지 않았고 진이를 상징하는 명월관으로도 족하다는 생각이며 이제 명월관은 있어도 명월은 없고 진이만 남았다.

묘향산의 보현사를 시작으로 두류산의 골짜기 골짜기를 거쳐 한양을 들러 고향 송도에 왔다.

이제 여자의 남자를 데리고 금강산 유람을 떠나려 하며 1만2천봉 골짜기 사찰을 찾아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 것이다.

진이는 첫걸음으로 유점사(楡岾寺)를 찾았으며 주지스님을 찾아 정성껏 시주를 하고 어머니 현학금에 대한 기도부터 올렸다.

두류산의 천왕봉까지 올라갔다 온 진이는 전신에 피로감이 몰려왔고 금강산은 두류산에 비해 정감이 가는 동네 산이다.

대웅전 뒤에 자그마한 방을 배려 받아 그들은 짐을 풀었고 짐이래야 거문고와 타고 온 말이 전부다.

방에 들어가자 그들은 곯아 떨어졌고 오뉴월 엿가락처럼 녹초된 상태에도 이생의 손은 진이의 사타구니를 찾았다.

주지스님은 진이도 사내로 보고 한방에 넣었으며 송도에서 진이를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몰골이 말이 아니라 주지스님은 사내로 착각했을 것이다.

이생의 손이 사타구니로 오면서 진이는 어느새 그곳에 뜬금없이 달콤한 꿀이 나오면서 꿈속으로 빠져들었고 비몽사몽 상태가 되었다.

이생의 손이 그곳에서 재미를 보는 사이에 진이는 어릴 때의 송도로 돌아갔다.

버드나무 부드러운 바람을 훑고 보슬비 꽃다운 들에 날리는 동교(東郊)와 비단처럼 밭이랑 펼쳐있고

맛좋은 막걸리에 취한 농부들의 흥겨운 노랫소리의 서교(西郊)에서 깔깔대며 어머니와 뛰어놀았던 시절로 빠져들었다.

진이는 팔도유람을 하면서 가는 곳마다 어머니의 극락왕생 기도를 빠뜨리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사대부들을 하나하나 정복해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당시엔 내색을 할 수 없었으나 속으론 쾌재를 불렀곷이제 세월의 무게에 눌린 상열지사(相悅之詞)의 애틋했었던 순간을 문득문득 떠올렸다.

들 절간에 송화 꽃은 떨어지고/ 비갠 냇가엔 버들 솜이 날리네/

타고 갈 백마에겐 재갈을 물려놓고/ 떠나려 해도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네/

모이면 헤어짐은 예나 이제나 마찬가진데/ 인간의 공명은 꿈이 아니고 무엇이랴/

청산은 남몰래 꾸짖으며 나무라기를/ 누가 소광(疏廣)과 소수(疏水) 두 사람을 아꼈으랴?

이제현(李齊賢·1287~1367)의 '총교송객'(靑郊送客)이다.

남녀가 만났다 헤어짐에 어찌 석남(石男)·(石女)가 될 수 있을까? 진이가 제아무리 여중호걸(女中豪傑)이라 하여도 가녀린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세월은 유수와 같아 어느새 진이도 이십 고개를 넘어 삼십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호의호식하며 허리 밑으로 사대부와 한량들을 줄을 세웠던 나날들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사랑을 하면 정이 들고 뜨거운 살을 섞으면 욕심이 생겨 헤어지기 싫은 것이 남녀사이의 관계일 것이다.

진이를 거쳐간 사내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치 많으나 그중에서도 소세양과 이사종이 특히 이따금씩 몸서리쳐지도록 간절하다.

한양이 남성적 도시라면 송도는 여성적 도시며 진이는 송도에서 소세양과 삼십여 일을 서로 신뢰하는 관계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그리고 이사종과는 육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을 송도와 한양을 오가며 사랑의 싹을 키워 꽃피웠다.

지금 삼남(三南·충정·전라·경상) 지방을 휘돌아 다시 송도에 오니 흘러간 애틋한 세월이 그리워지기까지 하다.

밤새 이생에게 괴롭힘을 당했으나 몸은 오히려 가뿐해졌고 처음엔 못이기는 척하다가

차츰 몸이 달아오르자 여러 사내를 통하여 터득한 사랑의 기술이 저절로 나왔다.

이생의 물건이 깊숙이 들어올 때마다 엉덩이가 저절로 따라 움직여 호흡을 맞춰 주었다.

이생은 의아해 하면서도 모르는척하며 처음으로 진이에게서 흡족한 욕정을 채웠다.

진이는 동창이 밝자 아침도 거른 채 산행에 나섰다. 고향에 다시 돌아오니 힘이 다시 솟아났다.

- 18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6화)

 
 

불덩이 같은 아침 해가 불끈 솟아오를 때 진이와 이생은 다정한 부부모양 두 손을 꼭 잡고 천왕봉(天王峯)에 올랐다.

곱게 물든 단풍에 천지사방이 불속처럼 뜨겁게 아름답고 진이는 천왕봉에 오르자 태양을 향해 삼배하며 역시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빌었다.

어머니가 진이를 황진사에게 맡기고 송도를 떠나 지리산으로 들어갔다는 풍문을 들었을 뿐 그 후 종적을 몰라 늘 염두에 두고 극락왕생을 기도하였다.

엄수(嚴守) 거문고 스승한테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타며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후 어언 십 수 년이 지났다.

예성강에 장님 시신이 떠올랐다는 소식에 비만 오면 거문고를 타는 귀신이 나타난다는 풍문 등으로 미루어 보아 어머니 현학금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란 확신이 선지 오래다.

아침 해가 불끈 솟은 태양을 보고 어머니를 위해 극락왕생을 빌은 진이의 전신에 맥이 풀렸다.

상무주암에서 방사까지 즐기며 여유있게 휴식을 취하고 올라왔으나 체력은 바닥이 났으며 밤은 깊었으나 만공산에 명월이 가득하고 춥고 배도 고프다.

상무주암에서 가지고 온 주먹밥으로 허기를 메웠으나 몸이 떨리고 눈이 들어갔다.

“내려갑시다. 더 있을 수가 없네.”

진이는 이생에게 업히다시피 하여 오후 늦게 상무주암에 도착하였고 기진맥진 상태다.

진이는 몸이 아무리 무거워도 거문고는 갖고 다니며 정신이 혼미하고 육신이 녹초가 되었어도 거문고를 타면 영혼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내일 금강산을 향해 떠날 생각인데 지금 몸 상태론 불가능한 상태였고 이생이 진이를 부축하여 말에 몸을 맡긴다 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저녁을 먹고나니 몸은 더욱 파김치가 되었지만 이처럼 몸과 마음이 편치 않을 때는 진이는 거문고에 세상 시름을 떠 넘겼다.

주지스님에게 맡기었던 거문고를 찾아 타기 시작하였고 중국 죽림칠현 완적(阮籍)의 '영회시'(詠懷詩)다. 

깊은 밤 잠 못 이루어/ 일어나 앉아 거문고를 타려니/

엷은 휘장으로 밝은 달빛 비치고/ 맑은 바람 옷깃에 스며드는데/

외로운 큰 기러기 들판에서 애처롭게 울고/ 둥지를 찾아드는 새 북쪽에서 우짖는다./

배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근심스런 심사에 홀로 마음만 상할 뿐이네‘

이생이 옆에서 손발이 되어 보살피나 첫눈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사종과 6년간 계약결혼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조선팔도 유람길에 여자 혼자는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고 서로 필요한 관계인 남자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생은 어느새 표정만 봐도 지금 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렸고 완적의 '영회시'가 진이의 거문고 음률을 타고 상무주암의 밤공기를 휘감았다.

“손님의 거문고 솜씨가 천하의 일품이네요!” 주지스님이 혀를 차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우리 아씨가 누구인지 아시고 하는 말씀이세요?”

옆에 있던 이생이 노복(奴僕·사내종)의 모습으로 어깨를 으슥해 보이며 주지스님의 말에 끼어들었다.

“이 아씨가 누구신가요?”

“예 우리 아씨는 그 유명한 명월(明月) 아씨예요. 그런데 지금은 해어화(解語花·말하는 꽃·기생)가 아니에요.”

주지스님은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어쩐지 거문고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어요!

거문고를 타면 중국 장강(長江)에서 흑두루미가 날아온다는 현학금의 따님이신가요?”라고 말하며 몰라봐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닙니다. 어머님에 비하면 이 진이는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조용히 수행하시는 주지스님께 속세의 바람을 불어넣게 해서 죄송합니다. 저희들은 동창이 밝는 대로 떠나겠습니다.”

“아닙니다. 소승도 출가하기 전엔 송도의 한량이었지요! 그때 현학금의 거문고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진이는 어머니에 대해 말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는데 지금 주지스님이 생사를 모르는 어머니 얘기를 하여 지금 당장 떠나고 싶으나 산사(山寺)의 밤이다.

진이는 ‘잘 쉬고 갑니다. 송도에 오시면 명월관을 한번 찾아오세요.’라는 쪽지를 남기고 여명이 밝자 주지스님에게 인사는 않고 떠났다.

‘송도에서 놀았다’는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려서 하루 이틀 더 쉬었다 떠나려 했었으나 서둘러 금강산으로 발길을 재촉하였고 말 등에 오른 진이는 이인로의 '매화'(梅花)를 떠올렸다.

고야산(姑射山·신선이 사는 곳) 신선의 얼음 같은 살결 눈으로 옷 지어 입고/ 향그린 입술에 새벽이슬 구슬을 마시네./

속된 꽃술들이 봄에 붉은 빛으로 물듦을 못마땅하게 여겨/ 요대(瑤臺·신선이 사는 달)를 향해 학을 타고 가려하네.

진이의 마음이 평정을 잃을 때는 늘 시를 떠올려 거문고 선율에 의지했었으나 말 등 위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진이의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였고 진이의 노래는 절창 이사종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 금강산을 향하는 말 위가 아니라면 거문고를 타며 덩실덩실 춤을 추며 꽉 막힌 가슴을 쓸어내리고 싶으나 그럴 수는 없었으며 이생은 말을 천천히 몰았다.

“형님, 제 허리를 꼭 잡으세요! 길이 험해 말 등이 요동이 심합니다.” 진이는 느슨하게 잡았던 이생의 허리에 힘을 넣었고

늦가을의 새벽바람은 제법 쌀쌀하고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속까지 텅 비어 오한이 솔솔 몰려오고 있다.

“형님 추우시죠? 조금만 더 내려가면 주막이 있습니다. 올라올 때 봐 두었지요!”

이따금씩 몸서리치는 진이의 몸 흔들림을 이생은 느끼고 있는 것이며 여명이 밝고 아침 해가 새벽안개를 걷었을 때 주막에 도착하였다.

산에서 먼저 내려온 사람들은 벌써 국밥을 먹고 주막을 떠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주모 여기 고기도 넉넉히 넣어 국밥 두 그릇과 모주 두 잔도 주시게.”

이생이 진이를 안아 말에서 내려놓고 성큼 주막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돈이야 진이가 내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행동을 해주는 이생이 고맙고 같이 오길 참 잘 했다고 생각 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며 지금도 또 그런 생각을 하였다.

밤엔 때때로 잠자리 상대가 돼주고 낮엔 충실한 노복 행세를 해주니 입안의 혀가 따로 없음이다.

국밥 한 그릇에 모주 한 잔은 산에서 내려온 그들에겐 더 이상의 성찬이 없다.

“너는 모주 한 잔 더 하려무나!”

“아닙니다. 한 잔으로 족합니다.”

남장한 진이의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고 여자 아냐? 하는 표정들이며 진이와 이생은 따가운 시선을 등 뒤로 하고 주막을 총총히 나와 말 등에 올랐다.

- 17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5화)

 
 

보현사를 떠날 때 진이는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다시 한 번 관음전에서 빌었고 팔도를 두루 다닐 발길이 보현사를 다시 찾을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두류산(頭流山:지리산의 별칭)으로 가려는 발길이고 두류산은 산 이름부터 진이와 예사롭지 않은 산이다.

신선들이 금강산으로 가려다 두류산이 너무 아름다워 그만 주저앉은 이들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고 아름답고 수려한 산에 명월리(明月里)가 있다.

진이는 어젯밤 꿈에 중국의 진(晉)나라 죽림칠현들을 만났다.

고려의 강좌칠현들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원조격인 죽림칠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들의 사창회(詞唱會)에 초청되어 고려의 청풍(淸風)을 뽐냈던 것이다.

죽림칠현들은 말로만 듣던 명월의 등장에 신선이 나타난 듯 황홀해하며 깍듯한 칙사 대접을 해주었고 진이는 칠현 중에도 혜강(嵇康)을 좋아하였다.

고려의 강좌칠현 중에 함순을 경모했듯이 그날 이후 진이는 수장(首長)격인 혜강을 마음속에 두었다.

진이는 두류산으로 들어가면서도 엊저녁의 죽림칠현과의 사창회 장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진이는 그들의 은둔생활이 이해되었고 중국의 죽림칠현들을 꿈에서 본 이후 고려의 강좌칠현에 대해 궁금증이 더욱 폭발하였다.

죽림칠현이 현실정치에 혐오감을 느껴 출사하지 않고 술과 시로 세월을 낚듯이 고려의 강좌칠현 역시 무인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다.

사실 진이도 기생이었던 시절 돈 뭉치를 들고 찾아와 자신을 첩으로 들어와 달라고 한 한량들이 수도 없이 많았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하여 돌려보냈고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다.

금지옥엽으로 커온 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사대부 집에서 청혼이 들어오자 원래 신분인 서녀(庶女) 위치로 떨어져 사대부집 소실로 들어가라고 권하자

그녀는 서슴없이 아버지 황진사와 절교를 선언하고 기생이 되었으며 진이는 지금도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보현사를 떠나 두류산으로 들어가고 있는 자신의 삶을 진이는 절정의 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금강산으로 가려던 신선들이 놀았던 산에서 자신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진이가 명월관을 퇴기이모 옥섬에서 임대 등으로 호구지책을 해결하라고 맡기고 유랑길에 오른 것도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사내들만 사람으로 대접하고 여자들은 성적 대상 정도로 취급되는 사회 풍조에 무언의 저항이다.

그래서 진이는 공부도 열심히 하였고 중국의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의 학문과 조선의 성리학, '삼국지'(三國志)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사실 진이의 학문세계는 율곡 이이, 퇴계 이황,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등에도 크게 밀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 가 있다.

그래서 그녀를 거쳐간 사대부와 한량들은 한결같이 성적 상대로 찾아왔다가 떠나 갈 때는 경모의 대상으로 가슴에 묻었다.

오후 늦게 실상암(實相庵:일명 見性庵)에 도착하였고 사람도 말도 지쳤으며 그들은 주지를 찾아 찾아온 연유를 말하자 주지는 선뜻 방 하나를 내주었다.

“남자는 나와 같이 자고 진이 아씨는 그 방에서 주무세요.”

주지스님의 진이 아씨란 말에 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스님에게 다그쳐 물었다.

“스님, 스님께서 어떻게 이 진이를 아시는지요?”

“아~ 예... 소승은 진이 아가씨를 어릴 적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런 곳에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사찰에선 합방을 금하고 있사오니 양해하시고 남자 분은 저와 하룻밤 지내시지요!

자세한 얘기는 다음 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관세음보살...”

진이는 밤새 뜬 눈으로 날을 샜으며 비몽사몽에도 강좌칠현에 대한 꿈을 꾸었고 이인로의 '산거'(山居)를 중얼거렸다.

봄은 가도 꽃은 아직 있고/ 하늘은 갰지만 골짜기는 절로 어둑하네./

소쩍새 한낮에 울고 있으니/ 비로써 깨달았노라 깊은 골에 사는 줄은...

시 암송을 마치자 때마침 새벽 종소리에 진이가 화들짝 비몽사몽에서 깨어났다.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여 뻑뻑한 눈을 부비며 자리에서 뒤척이고 있을 때

“소승 덕송(德松·가명)입니다. 진이 아가씨, 일어나셨는지요?”라고 주지스님이 아침 예불을 알렸다.

진이는 서둘러 일어났고 어머니의 생사를 알 수 없어 보현사에서 극락왕생을 위한 기도를 했는데 실상암에 와서도 문득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예불을 마친 덕송 스님은 진이를 따로 불렀다.

“아씨 차를 드시지요!”

잔잔한 미소에 호수같이 깊은 두 동공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지나갔다.

“소승을 몰라보시겠는지요? 아씨가 어릴 적 사랑채에 자주 드나들던 김구덕 입니다.”

김구덕 이란 말에 진이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아저씨, 이런 꼴로 뵙게 돼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하고는 울음을 터뜨렸으며 흡사 짐승 울음소리다.

김구덕은 진이 아버지 황진사와 죽마고우로 젊었을 때는 황진사 집에 수시로 드나들며 진이를 며느리 삼자고 까지 했던 관계다.

김구덕은 황진사와 달리 과거에 등과하여 한양 중앙무대에 진출하였으나 정암과 정치노선이 달라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었다.

가장의 종적이 묘연해 지자 집안은 물론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고 그 후 몇 년이 지난 오늘 이곳에서 진이와 극적으로 해후한 것이다.

관가에서 사방팔방으로 찾았으나 이곳까지 발길이 닿지 않았다.

“아씨 하산을 하시더라도 소승을 봤단 말은 말아주세요. 부탁입니다.”

진이는 정암과 생각이 달라 부자지간의 연을 끊은 이생의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진이와 이생은 말을 실상암에 맡기고 다시 길을 떠났으며 두류산은 깊고 넓다.

그들은 걷고 걸어 오후 늦게 지눌(知訥)스님이 불교계 개혁을 위한 결사체인 정혜사를 조직하여 운영해 온 상무주암(上無住庵)에 도착했다.

주지스님을 찾아서 허기부터 해결하였고 주지스님은 두 남자를 법당 뒤에서 잠시 쉴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다.

단풍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더 할 수 없이 안락한 곳이며 진이는 어제 밤을 뜬 눈으로 새 금방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런데 비몽사몽에 가위에 눌린 듯 숨이 차고 아랫도리가 아파왔으며 산속의 해는 일찍 넘어가 어느새 방안은 어두웠다.

이생이 짐승이 되어서 헐떡이고 있으며 바지만 내려진 채 이생이 욕심을 채우고 있는데 잠결이지만 진이도 감흥이 올라 엉덩이를 맞추고 있었다.

- 16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4화)

 
 

밤새도록 사랑놀이를 하고서도 진이와 이생은 피곤한 기색없이 말에 올랐고 말 등엔 거문고와 점심에 먹을 간단한 음식이 실렸을 뿐이다.

어차피 얻어먹고 유람생활을 할 것을 이것 저것 가지고 가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묘향산을 출발하여 지리산을 거쳐 금강산으로 들어갈 생각이며 그래도 진이의 속주머니에는 외숙부가 건넨 비상금이 있다.

진이는 자신의 몸뚱이를 여행의 무기로 생각하고 있으며 돈이 떨어지면 이 절 저 암자를 찾아 구걸을 하고 그것이 안 되면 몸을 달라면 주려는 속내도 가졌다.

그런 생각까지 하니 무서울 것이 없고 호위무사로 이생이 있으니 짐승한테 물려갈 염려도 없으니 진이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생은 이생대로 마음이 즐거웠고 아버지는 포의(布衣:벼슬 없는 선비)로 정암(靜庵:조광조 호)과 의기투합 했었으나

곤궁하여 그를 배신하여 선비로서 자격이 없다하여 15살의 이생이 이름을 버리고 팔도를 유랑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한양에서 진이와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아버지가 정암과 의기투합이 잘 되었다면 출사는 못했어도 높은 학문의 세계에 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가 준 이름을 버리고 세월을 낚으며 팔도를 유랑했던 것이다.

이생이 진이를 만난 것은 그야말로 호박이 덩굴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그토록 조선팔도 사내들이 품에 넣고 싶어 했던 명월을 매일 곁에 두고 밤잠까지 할 수 있으니 횡재 중에서도 상 횡재한 사내가 되었다.

그들은 묘향산 보현사에 다다랐을 때는 어느덧 땅거미가 지고 있었으며 하늘을 덮은 고목들로 밤같은 분위기다.

그들은 길 위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으나 허기가 졌으며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은 주지스님을 찾았다.

진이도 남장차림이고 이생만이 진이를 여자로 알고 있을 뿐이며 주지스님은 저녁을 주고 방까지 내주었고 허기를 채우자 그들은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이생이 문득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코에 선향(仙香)이 들어왔다.

보현사 특이의 향이려니 하고 다시 잠을 청했으나 선향은 점점 더 짙게 느껴졌고 옆에서 곤히 자던 진이한테서 꽃향기처럼 피어나는 향기였다.

이생은 처음엔 자신이 진이한테 홀려 느끼는 착각이려니 생각하기도 했으나 진이가 숨을 내쉴 때마다 선향이 자신을 구름처럼 휘어 감았다.

꿈이 아니었으며 창문으로 푸른 달빛이 들어와 진이의 얼굴에 머물러있고 신선이 누워있는 것이다.

이생인 진이를 여자로 보고 사내 역할을 하려던 욕망을 접자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묘향산엔 향목·동청(冬靑) 등 향기로운 나무들이 많아 묘향산(妙香山)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이생은 처음엔 그런 향기려니 생각했었는데 방안에 점점 더 향기로운 향이 짙어졌다.

진이가 움직일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향기로운 향취가 안개처럼 퍼졌고 진이는 어느새 이생의 품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녀의 입에선

세상 가는 곳 마다 환락의 장소에는/ 음악소리가 호화로운 집 울리지만/

쓸쓸한 산가(山家)에선 즐길만한 것 없어/ 하늘이 새들 시켜 피리퉁소 불게 하네.

원감(園鑑)의 '새벽에 일어나 새소리를 듣고'를 떠올리며 잠꼬대를 하였다.

명월이 이생의 품에서 꿈틀댔고 첫날의 합방은 얼떨결에 몇 번의 방사를 했으나 태상주 기운에 비몽사몽 상태라 진이의 깊은 맛을 미쳐 느껴보지도 못하였다.

이제 흡족하고 멋지게 즐길 수도 있는 순간인데 왠지 명월이 무서워졌다.

둘이 있을 때엔 형 아우로 하고 뭇사람들이 있을 때는 상전과 하인으로 하자 했는데 첫날부터 상전으로 느껴졌고 여자가 분명한데 젖먹이가 어미를 대하는 심정이다.

진이의 체온이 서서히 옮겨져 오고 있었으며 진이의 두 팔이 벌어져 이생을 끌어안았다.

이생의 숨결이 가파르게 올라갔으며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달아오르는데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진이가 쾌락의 대상이 아닌 예사롭지 않은 경계해야 하는 존재로 느껴져 무서워져서다.

진이는 더욱더 뜨거워진 몸으로 이생을 끌어당겼고 그때 진이의 입에서 시가 나왔다.

기다려도 기다리는 사람 오지 않고/ 스님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네./

오로지 숲 속에는 새들만 있어/ 지저귀는 소리에 술 생각이 나는구나.

이인로(李仁老)의 '천수사 벽에 쓰다'이고 진이는 조선시대에 살고 있으나 고려의 여인으로 긍지를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벤치마킹한 강좌칠현(江左七賢)을 경모(敬慕)하였다.

칠현 중에서 특히 문장에 뛰어나고 절행(節行)으로 추앙받는 함순(咸淳)을 늘 마음속에 두었으나 그가 남긴 작품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역시 강좌칠현의 일원인 이인로의 작품을 진이는 시간이 있을 때마다 암송하였다.

지금 진이가 꿈속에서 함순을 만나고 있으면서 입에서는 이인로의 시가 나왔다.

이생은 진이를 가슴에서 떼어놓고 밖으로 나갔으며 으슥한 밤이다.

산사(山寺)의 깊은 밤은 적막하다 못해 무덤 속 같이 고요하고 하늘엔 보석을 뿌려 놓은 듯이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닫았으나 진이가 깼으며 이생이 옆에 없자 진이도 밖으로 나왔다.

“밤이 깊었소! 잠을 더 자고 일찍 길을 떠납시다.”

말을 남기고 진이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으며 따라 들어오란 말투다.

이생은 잠시 아버지를 떠올렸고 영웅심에 들떠 정암을 고발하고 순간적으로 들떠있던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버리고 비렁뱅이가 된 것에 대한 반추(反芻)다.

이생 아버지의 정암 모함으로 촉발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숱한 사림파 선비들이 죽거나 벼슬에서 쫓겨났다.

사대부 집안의 체면이 아니다란 신념으로 아버지가 지어 준 이름을 팽개치고 팔도를 유랑하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대단한 도덕군자도 아닐진대 라고 하는 생각에 이르자 그는 총총히 진이가 다시 들어간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방으로 들어온 이생은 마음을 굳게 먹고 진이를 뜨겁게 끌어안았으며 진이도 말없이 사내가 하는 대로 몸을 움직여주었다.

명월관에서 첫 방사를 할 때보다 이생은 몸과 마음이 흡족하였다.

몸과 마음을 흡족히 나눈 그들은 산사의 새벽종이 울리기도 전에 총총히 발길 닿는 대로 길을 재촉하였다.

-15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3화)

 
 

가을에 한양으로 떠났다가 가을에 송도로 돌아오니 3년 사이에 송도는 많이 변해 있었다.

진이는 문득 이제현의 송도팔경 중 '용산추만'(龍山秋晩)을 떠올렸다.

지난해 용산에 국화꽃 피었을 때/

술병 들고 산 중턱에 올랐네./

한줄기 솔바람 부니 모자가 떨어지고/

붉게 물든 단풍잎 옷에 가득한 채/

술에 취해서 부축 받으며 돌아왔네.

시를 다 읊은 진이는 하늘을 쳐다보았고 늦가을의 보름달이 두둥실 떴으며 명월(明月)이다.

진이의 두 눈에서 구슬같은 눈물이 소나기가 쏟아지듯 떨어졌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눈물이다.

이사종과 계약결혼을 연장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번개처럼 뇌리를 때렸다.

명월관은 그동안 가꾸지 않아 정원 등에 잡풀이 우거져 집 전체가 폐가처럼 보였고 옥섬은 나이 들어 거동조차 불편한 상태다.

진이는 이생(李生)을 불러들였고 명월관을 정리한 뒤 금강산 여행을 떠나려 하는 것이다.

진이가 부르면 조선팔도에서 몇몇 사내를 빼고는 안 올 사람이 없다.

한양의 이생은 밤새 연락을 받고 이튿날 저녁 늦게 송도에 도착하였다.

이사종이 천하의 소리꾼에 헌헌장부로 진이의 가슴을 들뜨게 한 사내였다면

이생은 왠지 마음이 편해 긴 여행에 동행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순수한 사대부로 자유로운 영혼의 주인공이라 더욱 진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소세양과 이사종을 통해 사내들의 내면에 있는 여자에 대한 깊은 생각도 이젠 정립되어

선입관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내들에 대한 자신감이 더욱 확고해졌다.

조선팔도 사내들은 허리 밑으로 어느 누구든 정복이 가능하다는 자신감이다.

어머니 현학금이 연산군의 사랑놀이 대상의 여자가 되기 싫어 약을 먹고 장님이 되었으며

진이 자신도 금지옥엽 귀염을 독차지하다 어느 날 갑자기 서녀(庶女) 신분이 된 충격으로 한 때 장님이 되었던 추억을 떠올렸다.

문제는 사내들이었고 어머니 현학금은 임금인 연산군이었으며 진이는 아버지 황진사다.

그 같은 신분이 세습되어진 자신은 기생신분이었을 때 어느 때부터는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이 아닌 꽃이 주인공이 되어 나비를 불러들이는 꽃이 되리라 마음먹었다.

진이는 지금 오래전부터 마음속으로 결심하였던 것을 행동하려 하고 성리학의 나라 조선의 두터운 사대부 벽을 부수려 하는 것이다.

한양에서 이사종과 3년을 살고 와서 그 마음이 더욱 굳어졌다.

역사의 그늘 속으로 사라져가는 송도의 향기를 보여주고 싶고 여근곡(女根谷)의 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선덕여왕의 기개를 되살리려는 야심도 생겨서다.

사실 퇴기이모 옥섬의 얘기가 천번만번 옳아 잠자리에서 입증되는 사례를 진이는 수도 없이 실천해 왔다.

겉으론 천하를 쥐고 흔들 듯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호언장담 하지만

그 말은 계집 앞에서 기죽기 싫어 허언(虛言)을 했음이 날이 새면 드러나지 않는 사내는 진이는 지금껏 몇 명 보지 못하였다.

송도는 여성적 도시이고 한양은 남성적 도시임을 진이는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한양의 사대부들이 평양을 색향(色香)이라 함도 진이는 한양 살이 3년 동안에 터득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하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진이는 자신의 자유영혼이 상처받지 않고 살아가는데 소세양과 이사종의 계약결혼이 산지식이 되었다.

사내가 이젠 무섭지가 않은 것이고 자신이 품으면 조선팔도 어느 사내도 어린아이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진이는 한양에선 미처 몰랐던 것을 송도에 와서 삼봉(정도전의 호)의 '한양찬가'가 얼마나 사내다운 시(詩)인가 새삼 느꼈다.

익제(이제현의 자)의 '송도팔경'은 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시화(詩化)했으나 '한양찬가'는 왕업(王業)의 위대함을 노래 불렀다.

진이는 어느새 삼봉의 팬이 되었다.

줄지어선 관청은 우뚝하게 서로 마주서서/ 마치 별이 북두칠성을 끼고 있는 듯/

새벽달에 관가는 물과 같으니/ 명가(鳴珂:말굴레 장식품)는 먼지 하나 일지 않누나.

'한양찬가' 중 '열서성공'(列署星珙)이고 진이는 거문고에 두 도시의 찬가를 동시에 실었다.

이번엔 '송도팔경' 중 '자동심승'(紫洞尋僧)이다.

바위 옆을 돌아 냇물 건너가며/ 숲을 헤치고 봉우리 밑을 올라가네./

사람을 만나 절을 물어보니/ 종소리 나고 연기 나는 데로 향해 가라하네./

풀에 맺힌 이슬은 짚신을 적시고/ 송화가루는 중의 적삼에 점찍어 놓네./

탑 앞에 앉아 세상만사 잊고 있으니/ 산새는 어서 돌아가라 재촉하네.

거문고를 가슴에 품은 진이의 두 눈엔 눈물이 가득하였고 옆에 있던 이생이 입을 열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이요? 금방 울 듯하오!”

진이의 거문고 소리가 끝나자 옥섬이모가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오시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우선 목부터 축이세요. 이 진이가 소문으로만 듣던 이생 선비님을 모시려고요.”

이생은 벙벙한 표정이고 조선 사내치고 명월을 품고 싶어 하지 않는 사내가 없는데 자신을 명월이 스스로 모시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꿈만 같기 때문이다.

“자 어서 한잔 드세요!”

진이가 손수 잔 하나 가득 따라 권하였고 이생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하인이 하듯 진이의 말에 따랐다.

태상주는 독한 술이고 주거니 받거니 태상주 몇 병이 삽시간에 비워졌고 해는 어느새 땅거미로 변했다.

“이제 그만 잡시다.”

진이가 잠자리에 앞장섰고 진이는 잠자리에 들면 늘 옥섬이모의 말이 떠올라 꽃잠을 연출하였다.

사내들은 누구나 여자는 자기가 처음이기를 바라는 심리를 알고 있어서다.

진이는 술상을 뒤로 밀어내고 스스로 옷을 벗었으며농익은 복숭아 빛의 한 쌍의 유방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생은 안절부절 못하였고 진이의 도발에 남성이 삽시간에 고개를 숙였고 기가 죽었으며 창문으로 아직 석양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어서 이리 오세요! 나를 품으려고 허겁지겁 오신 것이 아닌가요? 자 이 진이를 마음껏 보시고 즐기세요!”

진이가 홀라당 벌거숭이가 되었다.

그런데 이생이 누구인가! 어엿한 사대부 집 헌헌장부인데 지금 시기(詩妓) 진이 앞에서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어서 오늘 저녁은 이 명월을 마음껏 즐기세요! 그리고 팔도강산 유람 할 때는 제가 상전이 될 것입니다.”

그들은 동창이 밝을 때까지 내일이면 영원히 다시는 못 볼 연인처럼 연리지로 떨어지지 않았다.

- 14화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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