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4화)

 
 

양곡은 젊은 시절에 여색에 빠진 자는 남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명월이 시재(詩才)와 미모가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 친구들과 약속을 하였다.

“내가 그 여자와 30일을 동숙(同宿)하고 이별을 못하고 하루라도 더 머물면 사람이 아니다.”

양곡이 친구들과 약속을 하였으나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남아일언중천금이라 했는데 사대부의 나라에서 친구들에게 한 약속을 선비가 지키지 않았다.

그것도 천재지변이나 연로한 부모의 갑작스런 병고나 몸담고 있는 벼슬길에서 왕명도 아닌

한낱 노류장화(路柳墻花)인 기생으로 사내대장부가 친구들과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쳤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동네 청년들이 이웃집 예쁜 아가씨를 놓고 한 약속이 아니다.

당시 송도 명월의 소문이 한양에까지 퍼져 한량들의 마음이 온통 들떠 있을 때였다.

고려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 넣고 조선을 세운 신흥 사대부들은 체면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국교(國敎)로 대대로 이어오던 불교를 과감히 유교(儒敎)로 교체했다.

남녀칠세부동석과 삼종지덕(三從之德)등으로 여자는 남자보다 열등한 인격체로 규정하여

사회적 제약을 법적(종모법 從母法)으로 또는 도덕적 올가미를 씌워 놓았다.

세계사적으로도 여성의 사회활동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으나 조선은 그 정도가 특히 더 하였다.

그런 역사 속에서 잘 나가는 사대부 양곡이 일개 기생인 명월에게 빠져 ‘남아일언중천금’이란 세상에서 일탈하여 약속을 어겼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도 허리 밑에는 별수 없이 약했을 터지만 지체높은 양곡이 진이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은

허리 밑도 봄꽃처럼 피어나는 즐거움도 기쁨이지만 바다같고 만리장성같은 문화예술 세계에 탄복했을 것이다.

이웃인 일본은 사무라이의 나라로서 허리 밑이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선비의 나라 조선에선 일본과 달리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 하지 않았던가!

사실 사내들이 여자를 찾는 것은 찰나적이나 마초(macho)의 본능에 충실하려 한다.

색향(色鄕)으로 소문이 난 송도에 가려함은 허리 밑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이 강하다.

양곡도 진이와 30일이란 기간을 정하고 소위 계약 동숙(결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진이는 평소에 양곡이 생각했던 노류장화가 아니었고 계약결혼 마지막 날 시 한 수에 그의 영혼은 넋을 잃었다.

달빛어린 뜨락에 오동잎 다 지고/ 서리맞은 들국화 노랗게 피었는데

누각이 높아 하늘이 한 척 이요/ 사람이 취해 술이 천 잔이라

흐르는 물은 거문고 가락에 맞춰 서늘하고/ 매화는 피리소리에 들어 향기롭구나

내일 아침 서로 헤어지고 나면/ 그리는 정은 푸른 물결처럼 길게 뻗치리라.

양곡은 진이의 이 시를 듣고 한양의 친구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할 용기가 생겼을 것이고 진이를 알게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음이 분명하다.

소문으로 떠도는 진이를 직접 만나 뜨거운 살을 섞고 보니 저잣거리에 나도는 풍문이 얼마나 잘못 알려졌음을 알수 있었다.

노류장화나 말하는 꽃이 아닌 지식인 진이라는 것을 알게 됨에 스스로 그녀 앞에 겸손하여 졌음일 게다.

아마도 진이가 한시, 시조에 능통한 자유인으로 남자로 태어났다면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하서 김인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대학자 위치에서 경륜(經綸)을 논하며 문화예술세계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양곡은 그후 두 번 더 진이를 찾았다.

계약결혼이란 세기적 발상은 조선사회를 경천동지(驚天動地)케 했을게다.

낭만과 문화의 나라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여성해방운동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1929)보다 378년 앞섰으며

영화감독 문여송과 소설가 김이연과의 계약결혼보다는 무려 400여년이나 앞선 선구적 페미니스트였다.

양곡은 진이의 시·서·화의 삼절(三絶)을 넘어 춤·노래·거문고 등으로 당시 조선이 상국(上國)관계로 있는

중국 문화에도 정통하였던 그녀에게 녹아든 것은 어쩌면 사내로서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었을까?

아무튼 진이는 옥섬(진현금 의동생)으로부터 잠자리 기술도 배웠다.

“네가 싸늘하면 사내 역시 싸늘할 것이요. 네가 뜨거우면 사내도 뜨거워 질 것이고 네가 깊어지면 사내 또한 깊어질 것이다.

헛되이 움직이거나 소리를 질러서 힘을 빼지 말고 깊이 숨을 마시며 음기를 몸 전체에 고루 모아 낮은 소리로 한없이 속으로 빨아들이거라.

사내란 겉으론 천하를 움직일 듯 하지만 알고보면 연약하느니라.”라고 꽃잠(첫날밤)의 기술을 가르쳤다.

이토록 진이는 여자로서도 완벽하였으며 학자(지식인)로서까지 조선의 사대부 수준에 손색이 없었다.

화담 서경덕의 수제자 허엽과 동문수학했으나 오히려 그의 학문 수준을 훌쩍 뛰어 넘었지 않았나 싶다.

허엽의 딸 허난설헌이 역시 조선시대에 출생하여 남성사회에서 그녀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27년이란 짧은 삶을 마쳤다.

허난설헌은 사대부집 고명딸로 태어나 엄격한 사회적 제약으로 기를 펴지 못했으나 진이는 달랐고 그녀는 과감히 자유를 선택하였다.

양가집 딸에서 어느 날 갑자기 얼녀(孼女)로 전략하여 소실의 길 정도를 선택할 수 있었으나

그녀는 과감히 자유인 기생의 길로 들어섰고 억압의 비단길보다 자유의 자갈밭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녀생활 3년 만에 기적(妓籍)에서 빠져 나와 자유인이 되어 지족선사·소세양·벽계수·이생 등을 품어 진이의 세상을 만들었다.

진이의 경륜과 문화예술세계는 외숙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머니 진현금의 DNA로부터 이어받은 천부적 예능의 자질은 외숙부가 원천(源泉)이다.

외숙부는 비록 하급 악사였으나 사대부 못지않게 학문이 높았으며 그의 서재엔 만여 권의 책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그런 가족사를 진이는 고스란히 이어 받았다.

그같은 진이의 세상에 대보름달이 휘영청 뜬 분위기에 남녀칠세부동석과 삼종지덕의 사내들이 불을 본 부나비처럼 하나 둘 날아들었다.

- 5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3화)

 

양곡과 명월의 말이 나란히 걷고 있으며 풍악산(금강산의 가을 山名) 유람 길에 올랐고 잠자리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양곡은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으며 어젯밤에 명월과 서너 번의 방사로 기진맥진한 상태다.

명월도 사타구니가 얼얼해 걷기조차 힘들지만 추호도 내색이 없었고 사내에게 지기 싫어서다.

또한 그녀는 사내를 맞을 때마다 우리나라 최초 여왕 선덕여왕의 여근곡(女根谷)에서 백제군을 섬멸한 역사를 상기시켰다.

양곡이 30일 동거후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여 특히 잠자리에 신경쓰고 있다.

명월은 양곡의 30일 동거는 허풍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토하고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친구들한테 고백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개성에 온지 30일 후에 개선장군처럼 한양에 나타나 번듯한 요릿집에서 한턱내며

“나는 역시 인간이었다.”라고 일갈 하려는 배포를 무참히 꺾으려는 속내다.

가을의 금강산은 풍악산으로 불리고 늦 단풍이 붉게 타고 있으며 바람이 쌀쌀하다.

어젯밤에 태상주 술기운에 둘은 밤새는 줄 모르고 욕심껏 육체의 향락을 즐겼음이 지금은 과욕이었다는 것을 둘은 한 몸처럼 느끼고 있다.

그들은 박연폭포에서 점심을 먹고 말고삐를 돌렸으며 명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

“소녀 엊저녁에 대감께서 너무 깊이 사랑해 주셔서 더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풍악산은 다음에 구경하시고 오늘은 이만 돌아감이 어떠하실 지요?”

“그래도 되겠느냐?”

양곡은 방금 본인이 하려는 말을 명월이 대신 해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목소리는 쇳소리가 나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풍겼으며 자칫하다가는 말 등에서 떨어질 뻔 아찔한 순간까지 있었다.

하지만 박연폭포까지 와서 그냥 바람처럼 떠나갈 명월이 아니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물줄기가 골짜기를 갈 듯 뿜어내니/ 용추에 떨어지는 백 길 물소리 우렁차라./

솟아 내리는 물줄기 쏟아지는 은하수인가 싶고/ 노한듯 가로 드리운 물줄기 바로 흰 무지개일세/

소쿠라지는 물벼락 온 골짜기에 가득하고/ 물보라는 부서지는 옥인양 갠 하늘에 사무치네./

유람객이여 여산폭포가 낫다는 말은 하지마오./ 천마산의 박연폭포 우리나라의 으뜸이라오.

황진이의 '박연폭포'다.

그들은 풍악산으로 가려다 천마산의 박연폭포 늦가을 단풍에 취하여 있다가 귀가했으며 그들의 온 몸에선 늦가을 단풍향이 향수처럼 풍겨 나왔다.

명월의 특이한 선향(仙香 )과 단풍향이 어우러진 향이 양곡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달구었고 방에 들어서자 양곡은 명월을 힘껏 쓸어안았다.

양곡은 내일 한양으로 갈 몸이고 명월은 양곡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으며 뜨거운 입김엔 어젯밤 열정의 단내가 얼굴을 감쌌다.

“명월이 나하고 한양에 가지 않으련? 개성보다 한양이 명월에겐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장악원(掌樂院)에 들어가 예약연구를 더하여 이론을 만들어 놓으면 후세가 그것을 배우지 않겠느냐?”

“소녀를 소실(小室)이 되라는 말씀인가요?”

초롱초롱하면서도 가을 호수같이 평온하였고 표정이 먹이를 노리는 맹금류(猛禽類) 눈초리로 변하였다.

“그런 뜻이 아니고 개성도 좋은 고장이고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이 있어 유명한 도시이긴 하지만 조선의 중심은 역시 대궐이 있는 한양이지.

그곳에 가서 명월의 명성을 더욱 높였으면 하는 생각이지. 내 다른 뜻이 있어 한 말은 아니네!”

“뜻은 고마우시나 소녀는 개성의 몸으로 태어나 고려여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렵니다.”

명월의 진지함이 흡사 출사표를 던진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표정이다.

“내 알았느니라. 너의 미색과 학식이면 한양에 가면 이곳보다 더 뜨겁고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의향을 물어본 것 뿐이니라.”

명월은 양곡의 검은 마음을 첫마디에서 알아차렸다.

사내들은 마음에 드는 기생을 노류장화(路柳墻花) 쯤으로 보고 소실로 집에다 앉혀 놓으려는 심보를 명월은 숱한 사내들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던 것이다.

명월의 싸늘한 표정을 등 뒤로 느끼면서 양곡이 지필묵을 주섬주섬 챙겼다.

“지금 떠나시려고요?”

“가려하느니라...”

양곡답지 않은 풀죽은 목소리였고 명월은 말 등에 실린 거문고를 연두(몸종)에게 가져오라 하여 자신이 만든 곡을 타며 창을 불렀다.

낙양성 동쪽에 핀/ 복사꽃 오얏꽃/ 꽃잎이 날아가면 뒤 집에 떨어지나!/

낙양에 사는 계집애들은/ 얼굴이 시들까봐/ 떨어지는 꽃잎만 봐도/ 긴 한숨을 내 쉰다네./

금년에 핀 꽃지고 나면/ 얼굴 다시 여위리니/ 그 누가 와서 보여주리.

이백(李白)의 '늙음을 서러워하며'다.

명월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와 거문고에 떨어졌다.

그때 명월을 젖먹이가 어미를 바라보듯 바라본 양곡이 갑자기 지필묵이 싸인 보따리를 들고

“진이야! 나를 예성강까지 배웅을 해주면 어떠하겠느냐?”라는 말을 등 뒤로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느새 해는 지고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하늘엔 벌레 먹은 사과모양의 달이 기우뚱하게 떴다.

말 두 필이 준비되었고 양곡은 대명천지에 명월관을 나서고 싶지 않아 계획적으로 밤에 길을 나서는 것이다.

“대감! 왜 제 기명인 명월을 부르지 않으시고 본명인 진이를 부르셨습니까?”

“기명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 궁금하더냐?”

“그러하옵니다.”

“진이는 기명으로 부르는 것 보다 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려서 내 앞으로는 그리 부르기로 마음먹었느니라.

명월이란 기명은 너무 멋스럽고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워 쉽게 다다가기가 어려우니라.

하늘에 두둥실 떠 있으면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명월을 품을 수 있겠느냐?

앞으론 네 본명을 부르고 내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진이로 부르도록 입소문을 낼 것이니라.”

그 후 명월이란 기명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이 예성강에 도착하자 나룻배 한 척이 대기하고 있다.

“내 한양에 가 정무를 처리하고 곧 다시 올 것이니라.”

진이는 왼손 약지의 은가락지를 뽑아서 양곡에게 건넸다.

나룻배의 횃불이 강 건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한 진이는 밤이 이슥해서야 명월관에 도착하였다.

- 4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2화)

 
 

아침을 명월과 겸상하여 그윽하게 마친 양곡은 개성 유람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눈엔 선녀같은 명월의 모습이 앞을 가려 아름다운 개성의 가을 풍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점심때도 넘기지 못하고 허둥지둥 명월관으로 돌아왔다.

명월은 양곡이 말을 타고 명월관을 나갈 때부터 개성의 절경을 절반도 못보고 말고삐를 되돌릴 것을 생각하고 일찌감치 몸치장을 서둘렀다.

엊저녁엔 선비체면에 소극적으로 명월의 독특한 선향(仙香)이 아침안개처럼 풍기는 몸을 문만 열었을 뿐 오늘은 들소모양 덤벼들 것이 뻔해서다.

명월도 꽃잠(첫날밤)에서 사랑의 지혜를 첫 장면만 보여주었을 뿐 퇴기 옥섬 이모가 가르쳐 준 잠자리 기술을 시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유수한테 들은 '30일을 넘기면 인간이 아니다' 라는 약속을 깨도록 하려는 속내다.

명월 자신을 두고 내기를 했다는 데에 체면을 중시하는 사대부들의 콧대를 보기 좋게 꺾어주려는 심보다.

열린 창문밖의 모과나무 위로 찬란한 가을 햇빛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다.

명월은 직접 점심상을 들고 들어갔으며 양곡은 명월을 보자 피로했던 표정이 봄꽃같이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송도 팔경을 다 보시지는 못하신 것 같네요?”

명월이 무지개빛 미소를 지으며 점심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오며 던지는 말투였고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그랬느니라. 내 명월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려고 잠시 개성 저잣거리만 보고 돌아왔느니라!

네가 익제[益齊·李齊賢(1287~1369)의 호]의 '송도팔경'을 말하는 모양이구나!

풍류객이 이곳에 오면 첫째는 명월을 보러 오는 것 외엔 송도팔경인 곡령의 개인 봄, 용산의 늦가을,

자하동의 스님찾아 들에서 나그네 보내며, 웅천에서 술계, 용산의 들에서 봄을 찾아, 감포의 어옹, 서강의 배가 아니더냐?

참으로 아름답고 멋이 풍기는 시(詩)로다.”

의기양양한 표정이고 네가 시를 안다고 하지만 나를 당하지는 못할 것이란 태도다.

명월의 점심상엔 태상주(太常酒:개성의 고급술)와 안주론 잉어찜과 산채, 그리고 요기를 할 두부추탕이 놓여있다.

양곡은 배가 고팠는지 두부추탕을 맞바람에 게 눈 감추듯 선비의 체면도 아랑곳 않고 단숨에 먹어치웠다.

“천천히 드세요! 체하시면 어찌하시려고 그렇게 서두르세요! 즐거운 밤은 어찌하시려고요.”

여유가 있는 명월의 태도다.

두부추탕을 가을밤이면 양반댁 마님이 은밀히 사랑채로 나갈 때 미리 내보내는 사랑의 묘약으로 통하는 음식이다.

양곡은 그윽한 표정으로 명월을 쳐다보았고 사내가 계집을 보는 표정이 아닌 신뢰와 경의가 섞인 얼굴의 분위기다.

총명한 이마와 조는 듯 고운 눈썹, 그 아래에 눈부시게 희고 검은 두 눈은 비온 뒤 나뭇잎 위에 작은 벌레집처럼 고요하고

깊은 숲속에 핀 작은 꽃같이 향긋하며 검은 비단 모양 잔바람이 이는 연못의 파문처럼 아련하며 가녀리고 단정한 콧날은 오연하면서도 사랑스럽다.

입술은 적당한 크기로 아물게 꼭 닫혀 얌전하지만 의지가 느껴지고 갸름한 턱은 안아주고 싶도록 연약해 보이며

가늘고 긴 목은 그 곳에 파고들고 싶은 충동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뛰고 낭심이 허리 밑에서 날뛰고 있다.

명월은 고수이며 학문만 높은 것이 아니라 남자들의 성정도 독심술(讀心術)로 읽듯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

사실 양곡은 두부추탕을 허겁지겁 먹으며 독주인 태상주 몇 잔에 어느새 정신이 혼미해졌다.

하지만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여 겨우 명월을 직접 품게 되었는데 섣불리 서둘렀다 체면을 구길까 마음이 복잡하다.

명월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던 양곡이 출사표(出師表)를 던진 장수모양 비장한 표정의 긴장된 어투로

“내 실은 한양에 있는 친구들과 내기를 했느니라. 너와의 사랑을 30일을 넘기면 사람이 아니란 장담을 했느니라. 내 그 약속을 꼭 지키리라.”

양곡의 말하는 표정이 자못 진지하고 비장해 보이기까지 하다.

명월은 원앙 한 쌍이 지나가며 파문을 일으킨 연못 위의 물결 같은 미소를 지여보일 뿐 입을 떼지 않았고 가소롭다는 표정이다.

네가 내 품에 들어왔는데 어떻게 내 뜻과는 상관도 없이 네 마음대로 30일 만에 내 품을 벗어날 수 있겠느냐는 반문같은 표정으로 양곡을 쳐다봤다.

석가가 수제자 가섭을 보는 눈초리다.

태상주 한 병이 바닥을 드러냈고 명월도 태상주 두 병의 바닥이 보이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사실 명월은 고금을 통털어 우리나라 최고의 주선(酒仙)으로 선정되었다.

평생 술과 시와 자기 이상에 취해 평생을 살다가 간 수주 변영로(卞榮魯)가 2위이며 김삿갓 4위,

김시습(金時習) 5위, 임제(林悌) 6위, 임꺽정(林巨正) 8위, 원효(元曉) 10위 등이 겨우 10위권에 들었다.

명월은 15세에 기생이 되고 3년 만에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왔다.

그 후로는 자기 영혼을 찾아서 소위 페미니즘적 자유인이 되었다.

그래서 기생이면서 기명인 명월(明月)을 쓰지 않고 진이(眞伊)란 본명으로 끝까지 불리였으며 진이로 파란만장한 40평생을 살았다.

술은 역시 여자나 남자나 꽁꽁 묶어두었던 마음을 열어 놓는다.

“이제 주무시죠! 그렇게 시만 쓰고 계실 것입니까?”

명월이 양곡에게 잠자리를 재촉하였고 창밖의 보름달이 창공에 두둥실 떴다.

양곡이 명월을 힐끗 쳐다 보았고 네가 웬일로 잠자리를 재촉하느냐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기쁨이 넘치는 목소리로 “그렇게 하자구나.”로 응수해 왔다.

불이 꺼지자 휘영청 밝은 달빛만이 꿈특대는 남녀의 알몸뚱이를 지켜보고 있다.

어져 내일이야 그릴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이 시가 명월이 네 시더냐?”

“그러하옵니다! 대감의 시에 비해 졸작 부끄럽습니다.”

그때 대장간의 풀무모양 뜨거운 양곡의 손이 명월의 가슴을 훑고 허리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명월의 두 다리도 견우를 맞으려 자연스럽게 벌어졌으며 허리와 엉덩이도 덩달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때 창밖 뜨락 오동나무 위에서 짝짓기를 하던 접동새가 푸드득 날아갔다.

- 3화에서 계속 -

 

풍류야화 황진이(제1화)

 
 

올해(1535년)로 명월(明月 : 황진이 妓名)이 스무살이 되었고 기생 된지 만5년이 되는 해다.

명월은 어느새 송도(松都·개성)를 넘어 한양의 사대부와 한량들에게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회자 되었다.

상림춘(上林春), 관홍장(冠紅粧), 소춘풍(笑春風) 등과 명월이 당대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명실상부한 명기(名妓) 반열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명월이 단연 빼어난 미모와 경국지색의 아우라(Aura·고고한 분위기)에 시·서·화·노래·춤·시조 등에 뛰어났으며

고려의 맥을 잇는 거문고의 명인으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나라의 이름난 한량 등과 풍류를 즐기는 고관대작들도 명월과 풍류를 즐기려고 송도로 발길이 바쁘다.

하지만 명월과 만리장성을 쌓으며 화촉동방의 기회를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개성 유수를 통해 기회를 잡으려는 눈치 빠른 인사들도 있었다.

당시 개성 유수는 이귀령(李龜齡·1482~1542·字 미지(眉之))이다.

미지는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의 외삼촌으로 여러도에 관찰사를 거쳐 사십대 초반에 개성 유수로 부임하였다.

풍류를 즐기지만 그에겐 어린 동기(童妓)가 있어 명월에게 무리한 접근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방 토호(土豪)세력을 대하듯 서먹서먹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그런 와중에 소세양(蘇世讓·1486~1562) 애기가 나왔다.

“내 오늘 너를 보자 한 것은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다.”

명월은 유수의 부탁이란 말에 짐짓 놀라는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예, 유수대감! 무슨 말씀이신지 하명 하시지요...”라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율시(律詩”한시의 한 종류)로 명나라와 일본 사신을 영접하여 문명을 떨치시고 특히 대명외교에 성과를 올려 임금의 총애를 받으시는 분이셔...

송설체(松雪體)에 뛰어났으며 효자에다 풍류에도 남달라 화담(花潭:서경덕 호) 스승을 뵈러온다고 했으나 실은 명월의 화려한 소문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내려오셨어...“

유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양곡(陽谷:소세양 호)을 치켜세웠고 목이 타는지 자작으로 술을 따라 단숨에 마신 후

“너도 한 잔 하려무나.”라고 말한 후 스스로 따라 술잔을 건넸다.

“아니옵니다. 소녀는 괜찮으니 나머지 말씀을 다 하시지요!” 도도한 태도다.

개성 유수관아(官衙)에서 이토록 허리하나 굽히지 않고 제 말을 다하는 기생을 처음 본 유수는 적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소문대로구나... 참으로 네가 곱구나! 하늘에서 잠시 휴가 내려온 선녀(仙女) 같구나!

내 팔도를 돌아 풍류를 즐겼으나 너 같이 재색(才色)이 뛰어난 여인은 처음 봤느니라!

역시 한양은 물론 중국의 사신들까지 송도를 꼭 들르려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유수는 입술이 마르는지 다시 술을 한 잔 더 마셨고 말과는 반대로 유수의 독사 눈초리가 명월의 아래위를 통째로 삼킬 듯 훑었다.

하지만 명월은 그런 정도의 시선엔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어서 본론이나 말하란 눈치다.

“사실은 양곡대감께서 명월 너에게 한양 선비들과 내기를 하셨데...

너와 30일을 지내는데 단 하루라도 더 있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약속을 했다는 거야! 어떻게 하려느냐?”

겨우 말을 마친 유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고 명월을 보자 욕심이 생겼을게다.

양곡을 소개하다 보니 본인이 먼저 잠자리에 들고 싶은 음심이 발동하여 아랫도리가 팽팽하여 졌을 것이다.

명월은 사내들의 표정을 보고 몸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어미가 젖먹이의 동태를 보듯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유수의 옥경(玉莖)이 팽창되어 침을 흘리고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양곡 대감께서 언제 오신다는 것인가요?”

바다속 같은 침묵이 찰나적이지만 견디기 어려워 명월이 말을 꺼냈다.

“벌써 이곳에 와 계시지. 지금 당장 뵐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이곳이 아닌 명월관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게...”

개성 유수가 일개의 기생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닌 저명 여류문인을 대하듯 깍듯한 예우다.

명월이 유수가 내준 가마를 타고 명월관으로 와서 준비에 들어갔다.

역시 명월은 평소대로 차림새고 명월이 명월관에 도착하자 양곡도 들이 닥쳤다.

한양까지 이름이 자자한 시기(詩妓) 명월을 촌음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이다.

“과연 명월이구나. 하늘에 높이 떠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명월, 그 명월을 내 앞에서 직접 보니 눈이 부시구나!”

양곡은 명월을 두 동공에 잡아 두려는 듯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양곡 대감! 소녀 앉아도 될는지요?”

양곡은 그 사이에 지필묵을 준비하여 시를 쓰고 있었다.

“너의 집인데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나는 객이 아니더냐?”

풍류의 달인 양곡은 역시 달랐다.

“내 너의 '반달'이란 詩를 쓰고 있느니라.”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을 던졌다오.

송설체의 대가답게 힘이 있고 아름답게 티 하나 없는 박속같은 한지에 썼다.

“소녀도 양곡대감의 詩를 외우고 있습니다."

모랫벌에 뜬 달을 사랑하나니/ 한밤에 술잔 멈추고 앉아보네

강물은 씻은 거울처럼 밝게 비치고/ 은하수는 구름 한 점 없구나

울어대던 귀뚜라미 소리 그치고/ 아득히 들려오는 학의 울음

맑고 텅빈 기운타고 따라오는 듯한데/ 먼지 긴 속세는 멋대로 어지럽네?

명월은 거문고를 타며 양곡의 詩를 천상의 목소리로 낭송하였다.

옥골선풍(玉骨仙風)의 양곡 얼굴에 무지갯빛의 웃음이 피어났다.

“역시 명월이구나! 내 하늘에 있는 명월을 품을 수 있다니 내 인생에 절정이로다!”

양곡은 두 팔을 벌려 명월을 뜨겁게 안았다.

쌍나비 등잔의 불을 끄고 얇은 비단 속적삼도 벗고 비녀를 뽑아 머리를 풀어 화장끼 없는 얼굴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으로 은빛 달빛이 들어와 그녀의 나신을 더욱 신비롭게 빛냈다.

명월은 양곡의 열손가락을 활짝 펴 척추와 등을 부드럽게 쓸어안았고 사내를 깊이깊이 받아들였다.

양곡은 명월의 사타구니를 덮은 소담한 체모를 쓸며 꽃(여음)을 토닥이었고 그 속엔 이미 사내를 맞을 꿀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땐 따가운 가을햇살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뒤엉켜있는 벌거숭이를 내려 쬐고 있었다.

- 2화에서 계속 -

 
 

작은 성벽



공자는 춘추시대의 유학자이자 유교의 창시자로,
그의 사상은 중국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에게도 큰 깨우침을 주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마차를 타고 외출하던 중
아이들이 길에서 성벽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차가 가까워져도 아이들은 놀이를
계속할 뿐 도통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쌓아둔 성벽에 길이 막히자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한 아이에게
궁금해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마차가 오고 있는데
왜 길을 비키지 않느냐?"

그러자 소년은 의아한 눈빛으로
공자에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마차가 성벽을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마차가 지나가기 위해 성벽을 부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때론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때 다양한 방법으로 이겨내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왔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살다 보면 우리의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피하고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 파울로 코엘료 –

😂 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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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어요3

인생은 짧습니다
이 짧은 인생을 소모하지 마세요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무엇을 할 때 나는 가장 행복한가요?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무엇을 할 때 당신은 가장 행복한가요?

나를 소모시키는 일은 하지 마세요^^

좋은 사과를 얻기 위해
사과나무 가지를 쳐내듯 인생의 좋은 과일을
얻기 위해 당신이 하는 많은 것들을 가지치기 하세요

당신을 소모시키는 필요 없는 일들을 잘라내세요
자르고 버리고 하다 보면 모든 것이 가지런해집니다

인생 그 자체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그 의미는 나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오늘은 내 기쁜 생의 첫날』 중에서

나의 책상에서
애지중지 소중하게 생각했던
물건하나를 무심히 아니 작정하고 정리를 했다

허전하고 불안하고 아쉬움 마음에 쐬주를 한잔^^

그 관심을 좋아하는
일들로 집중하니 기회가 두 배로 늘었다

아직 만족도는 이야기할 수 없지만
나의 인생이 그 물건하나에 눌려 숨쉬기조차 힘들던
시간들을 뒤로하고 깔끔한 커피한잔의 여유를 누린다

아파트 화단에 쌓인 눈이 녹으면
새순이 돋고 좋은계절 멋진나무로 거듭나겠죠



《평생에 단 한 번 있는 일》
☆무엇보다 소중한 인연의 끈이다.

날씨가 쌀쌀한 겨울철이다. 가을에는 결혼 청첩(請牒)이 줄을 잇더니 겨울이 깊어지니 노인들의 부고(訃告)가 줄을 잇는다. 계절적으로 노인들이 많이 돌아가시는 부고의 계절이다.

오랫동안 뵙고 가까이 지내온 절친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셨다.
마지막 가시는 어머님에 대한 예를 갖추고 사흘 동안 함께하며 정중히 마음을 다하였다.
어머님을 선영(先瑩)으로 모시는 날,
차를 깨끗이 세차하고 검은 리본과 꽃으로 경건하게 단장하여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님을 나의 차로 모시고 선영으로 길을 나섰다.
우리는 생전의 어머님을 함께 추억하였고, 친구는 이번에 정말 고맙다고 내게 말하였다.
고맙다는 친구에게 대답하였다.

"평생에 단 한 번 있는 일인데ᆢ."

그렇다.
우리가 일생을 사는 동안 늘 있는 일이 있고, 가끔 있는 일이 있고, 일생에 단 한 번 있는 일이 있다.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고, 밥을 먹는 일은 일상으로 늘 있는 일들일 것이고,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고, 취직을 하고, 가족이 아파서 병원을 가는 그 일들은 가끔 있는 일들이다.

그런데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단 한 번 있는 일이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일이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은 이 세상에 둘이 없고 사람의 죽음은 한 번밖에 없으니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일은 일생에 단 한 번밖에 없는 일이다.
결혼조차도 두 번 할 수 있지만, 부모님 돌아가시는 일은 단 한 번뿐이다.
곰곰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동안 오직 한번 밖에 겪지 않는 일이 그리 많지 않다.

옛말에 부모님 상을 함께 치른 아내는 칠거지악(七去之惡)을 범하여도 내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부모님 상(喪)을 함께 애도해 주는 친구, 지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생에 단 한 번 있는 일"
그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인연의 끈이다.
(2024. 1. 19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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