綠竹君子節(녹죽군자절)이요

靑松丈夫心(청송장부심)이라 /李白(이백)

 

 

 

 

綠竹君子節(녹죽군자절)이요

靑松丈夫心(청송장부심)이라

人心朝夕變(인심조석변)이요

山色古今同(산색고금동)이라

江山萬古主 (강산만고주)이며

人物百年賓 (인물백년빈)이라

世事琴三尺 (세사금삼척)인데

生涯酒一盃 (생애주일배)이라

 

푸른 대나무는 군자의 절개요

푸른 소나무는 장부의 마음이로다.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하지만

산색은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구나.

 

강산은 오래도록 만고의 주인이며

인물은 왔다가는 백년의 손님이라

세상의 모든 일이 거문고 삼척인데

인간 일생도 그저 한 잔의 술 이로다.

푸른 대나무와 푸른 소나무를 가지고

군자의 절개와 대장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대나무는 부러지기는 하지만 잘 휘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대나무의 성질과 같이 군자 역시 아무리

모진 세파를 만난다 하더라도 자기의 목숨을 버릴지언정

지조를 버리거나 절개가 꺾이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한편 소나무는 사시사철 항상 그 푸르름을 잃지 않는다.

한 겨울 눈 속에서도 푸르름을 간직한

채 모진 추위를 이겨내는 것이 소나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장부 역시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을 간직해서 모진 세파에 시달리더라도 그 마음이 변치않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 구절은 《논어(論語)》에서 공자가

“해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뒤에 시드는 것을 알 수 있다.

〔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고 하여,

시절이 좋을 때는 모두가 대장부로 자처하기 때문에

누가 진정한 대장부인지 알 수 없지만 시절이

나쁘게 된 후에는 진정한 대장부와 자신의 영달을

위하여 대장부인 체하는 사람이 구별됨을 말한 것을 연상케한다.

 

산의 모습이나 색깔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도 변치

않지만 사람의 마음은 순식간에 변해 버릴 수 있음을 한(恨)하고 있다.

군자의 마음은 산과 같아 언제나 항심(恒心)을 유지할 수 있지만

소인의 마음은 세속의 인정에 따라 이리저리 변하기 쉽다.

이와 같이 조석으로 마음이 변하는 소인은 아무런

성취를 이룰 수 없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인의예지의 마음을 확충해서 마치 만고에

변하지 않는 강산과 같이 변함없는 마음을 간직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웃으시며 명시 감상을~

▶이백(701~762) ?

태백(太白). 호 청련거사(靑蓮居士).

중국 당나라시대의 시인 이백(李白)은 두보(杜甫)와 함께

'이두(李杜)'로 병칭되는 중국 최대의 시인이다.

보가 시성(詩聖)이라 불리는 한편 이백은 시선(詩仙)이라 불린다.

이 밖에 적선인(謫仙人) 또는 벼슬이름을 따서 이한림(李翰林)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노인의 遺言이었다.》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야 한다."

지난해 미국 동부지역 여행 갔다 돌아오는 길, 필자는 한국 오는 비행기를 타려고
뉴저지의 뉴어크 공항 출국장에 줄을 서 있었다.
옆에서,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 수척한 노인이 어린 손자의 손을 꼭 잡고 거듭거듭 얘기를 하고 있다.
"엄마 아빠 말 잘 들어야 한다."
"엄마 아빠 시키는 대로 하고, 공부 열심히 해야 된다."

필자에게 노인의 그 말은, 손자에게 남기는 유언(遺言)으로 들렸다.
아들 며느리 손자 보려고 미국까지 왔던 노인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국만리의 아들과 손자를 살아생전에 또 볼 수 있을까? 또 안아볼 수 있을까?
연신 손자의 볼을 어루만지고 껴안으며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는 노인의 모습은,
살아생전 손자를 마지막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인은 출국 게이트를 들어가면서 손자에게 차마 눈을 떼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저 가족은 무엇을 이루고 얻으려 이국만리 타국까지 왔을까?
손자와 아들 가족을 두고 헤어지는 저 노인네의 마음은 어떨까?
사람이 잘산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었다.
잘 사나 못 사나 곁에서 부대껴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사람이 백 년을 살지 못하는데ᆢ

"엄마 아빠 말 잘 듣어야 한다."
그것은 노인이 손자에게 남기는 유언이었다.
손자와 아들은 그 두 달 뒤 다시는 노인을 볼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2024. 1. 17 박종판)

이런 깊은 뜻이 있는줄 알고 계셨습니까
(각설이 타령 품바/Pumbaa 이야기)

''각설이타령''을
한자(漢字)로 표기하면 "覺說理打令''입니다.

覺說理(각설리)의
覺(각)은 ''깨달을 覺(각)''이고..

說(설)은 '말씀
說(설)'이며 理(리)는 '이치 理(리)'입니다.

이를 굳이 풀이해서 설명하면
"깨달음을 전(傳)하는 말로서 이치(理致)를
깨우쳐 알려 준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한마디로
깨치지 못한 민중(民衆)들에게..

세상 이치(理致)를
알려준다는 뜻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관한 원조(元祖)는 삼국시대(三國時代)
신라(新羅)의 원효대사(元曉大師)라고 합니다.

원효대사께서 한때
부처님의 진리를 설파(說破)하기 위해
중생(衆生)들이 알기 쉽도록 바가지를 치며..

민중,(民衆)속에 들어가 법문(法文)을
노래하며 교화(敎化)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각설이 타령은
''얼씨구''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얼씨구>는
<'얼의 씨를 구한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이 말의 의미는
''얼의 씨가 몸 안에 들어간다'' 는 뜻입니다.

“저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이 또한
''저얼의 씨도 몸안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이 말은^^

''전생(前生)에 깨달았던 영(靈)은 죽지 않고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에 다시 태어난다' 라는 뜻입니다.

“ 이놈의 자식이 이래봐도
정승판서(政丞判書)의 자제로서 ~ ”

이 생에서는
이모양 이꼴이지만 전생(前生)에는
정승판서의 아들 이었다는 전생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영(靈)은 돌고 돌아 다시 태어나는데
살아생전에 덕(德)을 쌓지 않으면 다음 생에
이 꼬락서니가 되기 쉬우니 이 사실을 잘 알아라!

따라서 각설이(覺說理)는 영(靈)의
윤회(輪廻)를 노래한 선각자(先覺者)들에 의한
민중문화(民衆文化) 운동이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흥(興)이 날때 누구나 하는 소리로..

"얼씨구 절씨구"라고 하는데
그 말의 어원(語源)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상 900여 회나 되는 외세 침략을 받았는데..

한번 전쟁을
치르고 나면 전쟁에 나간 남자들은 거의 씨가
말라버릴 정도로 남자들이 수없이 많이 죽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졸지에 과부(寡婦)가된 여자들과..

과년(過年)한 처녀들은 시집도 못가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를 간다 해도
쉽게 처녀들이 씨를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한이 맺혀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그 소리가 바로
“얼씨구 절씨구 지하자 졸씨구(卒氏求)' 였습니다.

이 말 뜻을 풀이하면 이렇답니다^^

얼씨구(蘖氏求)는
세상에서 가장 멸시 당하는
서자(庶子)의 씨라도 구해야 겠네.

절씨구(卍氏求)는
당시 사회에서 천노(賤奴)취급을 받던
절간의 중(승려)의 씨라도 받아야 겠네.

지하자 졸씨구(至下者 卒氏求)는
가장 낮은 졸병(卒兵)의 씨라도
구(求)해야 겠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이렇게 남자의 씨를
구하고자 했던 아픈 사연이 숨어 있는 내용입니다.

한자 원문을 풀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얼씨구(孼氏求)란^^

우리나라의
가족사에 서얼(庶孼)이란 말이 있습니다.
서자(庶子)와 얼자(孼子)를 합친 말입니다.

서자(庶子)는
양반의 남자가 양가나 중인의
여자를 첩으로 얻어 낳은 자식을 말하며..

얼자(孼子)란
천민의 여자로부터 얻은 자식을 말합니다.

그러니 천대받는
서얼(庶孼)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가 되는것입니다.

또 절씨구(卍氏求)란^^

절깐에서 씨를 구한다는
의미이니 중(승려)의 씨를 구한다는 뜻인데..

당시 중(승려/僧侶)는^^

사노비(私奴婢)..
백정(白丁)..
무당(巫堂)..
광대(廣大)..
상여(喪與)꾼..
기생(妓生)..

공장(工匠)과 함께
팔천(八賤)이라 하여..

천민(賤民)중에서도 최하위(最下位)
천민에 속해 있었던것이 중(승려)이였습니다.

그래서 천민에 속해 있는
중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지하자졸씨구(至下子卒氏救)는
세상에서 가장 바닥생활을 하던자로

어딘가 모자라고
신체적으로 불구(至下子)인 이들은..

전쟁터에 나가는 최하위 졸병들의
수발을 들며 허드레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병신(病身)인
졸병의 씨라도 구한다는 의미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지금까지 전해지는
일본의 "기모노 내력"과 비슷한 시대였다고 합니다.

우린 각설이 타령에
이런 가슴 아픈 의미가 숨어 있는지도 모르고..

그저 각설이 타령은
거지들이 구걸하는 모습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실로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더 나아가
술자리에서 건배를 하며 태평성대를 즐기는듯..

‘'얼씨구 절씨구 지하자 좋다’'하면서
술을 마시고 춤을추고
있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런지요?

이제라도
이런한 슬픈 역사와 각설이 타령에
숨어있는 비애(悲哀)를 가슴 깊이 새기고..

다시는 이런일이 없도록 부강한 나라
전쟁 없는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野史 이야기''에서 뽑은 글입니다^♡^

[ 탁 주 한 잔 ]

“죽은 후
천추만세까지 이름이 전해지는 것 보다는
살아생전에
탁주 한잔만 못하다”
(死後千秋萬歲之名 不如生時濁酒一杯)는 말이 있다.

사후의 세계보다
살아생전이 더 소중하다는 뜻이다.

고려의 대문호
이규보(李奎報)가
아들과 조카에게 준 시(示子姪)를 보면 노인의 애틋한
소망이 그려져 있다.

죽은 후
자손들이
철따라 무덤을 찾아와 절을 한들
죽은 자에게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세월이 흘러 백여 년이 지나
가묘(家廟, 祠堂)에서도 멀어지면 
어느 후손이 찾아와
성묘하고
돌볼 것이냐고 반문했다.


찾아오는 후손 하나 없고
무덤이 황폐화되어
초목이 무성하니

산 짐승들의 놀이터가 되어 
곰이 와서 울고
무덤 뒤에는 외뿔소가 울부짖고
있을 것이 자명하다고 했다.


산에는
고금의 무덤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지만
넋이 있는 지 없는 지 누구도 알 수 없다고
탄식하여 
사후세계를 연연하지 않았다.


이어서
자식들에게 바라는 소망을
다음과 같이 그렸다.

“조용히 앉아서 혼자 생각해 보니
(靜坐自思量)
살아생전
한 잔 술로 목을 축이는 것만
못하네
(不若生前一杯濡)


내가
아들과 조카들에게 말하노니
(我口爲向子姪噵)
이 늙은이가
너희를 괴롭힐 날 얼마나
되겠는가
(吾老何嘗溷汝久)


고기 안주 놓으려 말고
(不必繫鮮爲)
술상이나 부지런히 차려다 주렴
(但可勤置酒)”


조용히 생각해 보니
사후의 일보다
살아 있을 때의 삶이 더욱 소중함을 깨닫고

자손들에게 
한잔 술로
목이나 축이게
부지런히 술상을 차려주는 것이
효도라고 했다.


자신은 이제
서산에 지는 태양과 같은 신세인지라
자손들을 괴롭힐 날이 얼마나 되겠느냐면서,

힘들게
고기 안주 장만하려 하지 말고
나물 안주와
탁주라도 좋으니

날마다 술상을 차려 달라고 
쓸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만년의 이규보가
간절하게 바란 것은

쌀밥에
고기반찬의 진수성찬도 아니요
부귀공명도 아니며 
불로장생도 아니다.

다만
자식들이
“살아생전에 목이나 축이게
술상이나 부지런히 차려다 주는것뿐이었다.


이 얼마나
소박한 노인의 꿈인가?
비록
탁주일망정
떨어지지 않고
항시 마시고 
싶다는
소망이
눈물겹다.



이 시가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것은
노인들의
한과 서러움이 진하게 묻어 있고
꾸밈없는 소망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원(悲願)은
시인만의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노인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아!
요즘 세상에
어느 자식이 이 소망을 들어 줄
것인가?

사후의 효보다
생시의 효가

진정한 효이다.
 

( 옮겨 받은 글 입니다. )

🌿🌸인욕(忍辱)은 생명을 살린다🌿🌸

- 忍辱: 욕된 일을 당해도 참고, 억울해도 변명을 하지 않는다는 불교 수행법-

'백은 선사(白隱 禪師)'

일본의 선불교를 중흥시킨 백은(白隱, 1685~1768)
선사는 한 때
송음사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백은 선사가 기거하던 절 입구 마을의 두부장수집 딸이 이웃 사내와 정을 통하여 아기를 갖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안 딸의 부모는 크게 분노하여 몽둥이를 들고 심하게 추궁했다.

'감히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가지다니!' 어느 놈의 씨를 뱃속에 넣었느냐?

살기등등한 부모님의 추궁에 딸은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청년도 죽고 자신도 죽고 뱃속의 아이도 죽기 때문이다.

몽둥이로 패 죽이기 전에 사실대로 말해라, 내 그 놈을 가만 두지 않겠다.'

몹시 화가 난 처녀의 부모는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대라고
딸을 심하게 추궁하였다.

딸은 어떨 결에
윗 절의 백은 스님..
라고 대답했다.

평소 두부장수는 백은 선사를 존경했고, 이웃의 모든 사람들도 존경했다.

평소 존경했던 스님을 죽일 수는 없고. 그 존경의 마음은 사라지고 분노의 마음이 백은 스님께로 옮겨갔다.

그리고 몇 달 뒤, 딸이 사내아기를 낳자
딸의 부모는 아기를 안고 스님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당신의 잘못으로 생겨난 당신의 아들이니, 당신이 키우시오'

스님은 '좋다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아기를 안고 집집을 찾아다니며 젖을 얻어 먹였고 똥오줌을 받아주고 목욕도 시키며 정성껏 키웠습니다.

온갖 욕설과 비난을 받으며 백은 선사는 젖동냥과 음식구걸로
애지중지 아기를 잘 키웠습니다.

아기의 진짜 아버지는
대장간에서 일하는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두부장수 딸과 청년은 결혼하게 되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처녀는 마침내 부모에게 이실직고 하기로 하였다.

친부인 대장간 청년, 그리고 처녀의 부모들은 처녀를 대동하고 백은 선사에게 달려가 전후 사정을 고하고 용서를 빌며 아기를 돌려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백은 선사는 순순히 아기를 내어 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 그런가?'

백은 선사는 자신의 아이라고 인정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단 한 마디의 변명이나 꾸중도 없이 단지
'아, 그런가?'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백은 선사는 자신이 결백하였지만 구차하게 자신을 변명하거나 방어하지 않았다.

백은 선사의 인욕(忍辱)이
세 사람을 살린 것이다.

그 후로 그의 명성은
일본 전체에 퍼지게 되었다..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도 :
백번 싸워 백번 승리하더라도

불여일인(不如一忍)이라 :
한 번 참는 것만 못하다.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윙크) #"♧초록이야기"

아침 조금 일찍나서 산책을 하다보니
데크길에 하얀 서리가 내렸다.
하얀서리를 밟으며 지나가니
참 미끄럽다
넘어질까 조심 조심
위태 위태 어슬픈 걸음걸이로 한발짝 씩 내 딛는다.
하얗게 서리가 내린 데크길옆 난간에도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고 찍어본다
휴대폰 카메라가 DSLR 못지 않다
렌즈를 번갈아 가며 표준렌즈 3배줌 10배줌 망원렌즈로 찍어 본다.
우리가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에는
광각렌즈와 표준렌즈 그리고 3배줌, 10배줌 망원렌즈가 달려 있다,
넓고 광활한 풍경사진을 찍을땐 광각렌즈를
일반적인 풍경 사진은 표준 렌즈를 사용하고
인물사진은 3배줌으로 그리고 좀 더 세밀하고
원거리에 있는 사진을 찍을땐 10배줌 망원렌즈를 사용해야 한다
그참 휴대폰 카메라가 장난 아니다 제법 괜찮다

어느 날은 문득^^

나만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 홀로 떨어져
암흑 속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이다.

하는 일마다 내 뜻과 달라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좌절할 때도 있을 것이다.

때때로 사는 게
막막하고 막연해지는 까닭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의 늪에 빠져 허덕일 때가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이끌리고..

비가 내리면
그 비를 맞으며 살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해맑은 봄빛처럼
살며시 다가와 내미는 손길이 간절해지는 것은..

사람은 서로 기대고
위안이 필요한 그리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 진실한 마음으로^^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고
누군가의 손길로 핏기 잃은 가슴을 위로받길 원한다면

가장 편안한
눈길로 따뜻한 위안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생을
탄탄하게 받쳐줄 너넉한 마음으로
이 길을 가는 사람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

사람은 서로 기대고 위안이 필요한 존재 입니다^♡^
 

♥사청사우(乍晴乍雨)/김시습(金時習)

잠간 개었다가 비 내리고 비 내렸다가 도로 개이니

하늘의 이치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세상 인심이야.

나를 칭찬하다 곧 도리어 나를 헐뜯으니

명예를 마다더니 도리어 명예를 구하게 되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것을 봄이 어찌 하리오

구름이 오고 구름이 가는 것을 산은 다투질 않네.

세상 사람에게 말하노니 반드시 알아두소

기쁨을 취하되 평생 누릴 곳은 없다는 것을.

乍晴還雨雨還晴, 天道猶然況世情

(사청환우우환청 천도유연황세정)

譽我便是還毁我, 逃名却自爲求名

(예아변응환훼아 도명각자위구명)

花門花謝春何管 雲去雲來山不爭

(화개화사춘하관 운거운래산부쟁)

寄語世人須記憶 取歡無處得平生

(기어세인수기억 취환무처득평생)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 이었던 매월당((梅月堂) 김시습(세종17년 1435~성종 24년 1493)이 지은 "사칭사우"를 우리말로 옮겨보면 "변덕스러운 날씨"쯤 될 것이다.

세조가 단종을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통곡하며 책을 불사르고

중이 되어 온갖 기행을 일삼으며 살아갔던 김시습이다. 어릴 적 읽었던

김시습의 위인전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화가 있는데, 김시습의 나이 5세에

이미 신동으로 널리 소문이 나 당시 임금이었던 세종의 귀에도 그 소문이 들어갈 정도였다.

세종은 김시습을 친히 궁으로 불러들여 어린 신동에게 이것저것을

묻고 그의 지혜를 살핀 뒤 크게 만족해 상으로 비단 몇 필을 내려 주었다.

세종은 어린 신동에게 상을 내려주는 대신 어른의 도움 없이 홀로 비단을

집으로 가져가도록 했는데, 진짜 시험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린 김시습은

비단을 풀어 자신의 허리에 묶고는 집까지 비단을 끌고 돌아가니 세종이

이 사실을 전해듣고 크게 경탄했다는 이야기이다.

공자께서 '나는 나면서부터 안 자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힘써 구하는 자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라고 했는데 이것은 공자가 스스로를

낮춰 겸양을 표한 것이기도 하지만 지혜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깃드는

것이란 의미에서 공부를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이다.

어쨌든 '나면서부터 아는 것(生而知之)'라면 '배워서 하는 것(學而知之)'인데

주자는 천하의 지극한 성인이라야 이처럼 나면서부터 아는 총명예지(聰明睿知)가

임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생지지질(生知之質)'이라 했다.

그런데 조선 역사상 이처럼 '생지지질(生知之質)'로 일컬어진 단 한 명이 바로 김시습이었다.

태어난지 8개월 만에 스스로 글을 깨우칠 만큼 천품이 탁월해 임금도

친히 관심을 기울일 정도이긴 했으나 세종이 친히 김시습을 불러 시험을 치르게 했다는

이야기는 민간의 설화가 부풀려진 듯 싶다.

세종은 민간에 널리 퍼진 김시습의 천재성에 대한 소문으로 인해 혹시라도

어린 아이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 두려워 지신사 박이창을 시켜 승정원으로

불러들여 이를 확인토록 했을 뿐이며 박이창의 보고를 받은 뒤

"내가 친히 그 아이를 불러보고 싶으나 일반 백성들이 해괴하게 여길까 두려워

그러니 그 가정에 권하여 잘 감추어 교양을 쌓도록 하고 그가 성취되기를 기다려

장치 크게 쓰리라"는 전교를 내렸다 한다.

그러나 김시습의 나이 21세 때 단종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김시습은

문을 굳게 닫아 걸고 나오지 않은지 3일만에 크게 통곡하면서 책을 불태워버리고

이후 미친 척하며 스스로 머리를 깎고 중노릇을 하며 살았다.

비록 이 시에서 김시습은 관조달통(觀照達通)한 듯한 어조로 말하고 있지만

매월당이 이후 살아온 삶의 내력을 조목조목 살펴보고 있노라면 그것을 어떤 이는

편벽이라고도 하던데 일종의 결벽증 같은 것이 있었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는 아무리 가난하여도 무엇이건 빌리지 않았고 남이 주어도 받지 않았으며

자신을 찾아오는 이에게 물어 자신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자가 있다면 아주 즐거워했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면서 그 속에는 다른 배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눈썹을 찡그렸다고 한다.

얼핏 세상사에 초연한 듯 보이지만 또한 자신이 세상에서

잊혀지는 것은 원치 않았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봉건시대의 정치체제란 왕이 곧 체제인데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세조와

그 후손이 집권하는 것은 김시습에게 있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체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에게 이 체제를 뒤집을 만한 권력이나 의지가 있었던 것 또한

아니었기에 그는 살아도 살아있지 못한 삶을 살아야 했을 것이다. 체제의 외부를 만들어 낼 수 없는 자는 그것을 상상하게 된다.

아마도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는 이와 같은 그의 상상이 빚어낸 체제의 바깥, 어디쯤이었으리라. 쓸쓸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김시습, 그의 나이 59세에 무량사에서 입적했으나 그는 죽음 뒤에도 여전히 색다른 사람이었다.

화장을 거부한 탓에 몇 해 동안 절 옆에 안치해두었는데 3년후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을 열었을 때도 생시와 다름 없는 안색이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가 죽음 이후에

부처가 되었다고 믿어 화장하였는데 이때 사리 1과가 나와 부도를 만들어 세우고

그의 풍모와 절개를 기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김시습에게 이조판서가 추증되고,

청간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나 그것이 김시습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좌로 변신하겠습니다.》
☆"합체는 언제 하나?"

변신로봇을 좋아하는 순진하고 착한 어느 운전병이 사단장의 1호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선임으로부터 기본적 교육을 받고 사단장이 탄 차를 처음 운전하는 날.

갈림길에서 좌회전을 하게 되었다.
방향전환 전 미리 알려 드려야 한다는 선임의 가르침대로 착한 운전병은 좌회전 하기 전 "좌회전하겠습니다" 한다는 것이 너무 긴장하여
"좌로 변신하겠습니다" 하였다.
그 후 우회전하기 전에도 "우로 변신하겠습니다"
또다시 "좌로 변신하겠습니다"


많은 좌.우 변신을 거듭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하였을 때 사단장이 차에서 내리면서 착한 운전병에게 물었다.
"합체는 언제 하나?"
(2023. 1. 12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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