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원이라는 제목의 설치 미술 작품인데 점심 식사를 하기위해 들린 대흥사 입구 전주 식당에서 식사후 촬영을 하였다

전주 식당에서는 버섯 전골을 먹었는데 조미료가 가미 되지 않은 전주 식당 만의 비법으로 만든 버섯 전골이라고 한다

전주 식당은 김치로 요리 경진대회에서 수상을 하였다고 하는데 무슨 요리 경진 대회였는지 어떤 상을 받았는지는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으나

주인장의 자부심이 대단하여 버섯 전골과 김치를 함께 싸서 먹으면 맛있다고 한다

서빙을 하는 주인장은 약간 늙으스레 한데 전라도 사투리가 아주 구수하여 막말을 하는것 같은데도 그 어감이 참 옆집 아저씨가 이야기 하는듯 정감이 간다

그만 줄듯 그만 줄듯 이젠 안 준다면서도 반찬을 내오며 입담을 과시하는 인심 좋은 아저씨다

이날 점심은 버섯전골을 떠 먹고 난후 남은 국물고 건더기로 고추장과 나물을 넣어 참기름 두르고 밥을 볶아 먹었는데 볶을수 있도록 반찬을 후하게 내 주어

맛있게 들 먹었다

◆ 금당천 계곡이 흐르는 식당가 계곡 앞에 세워둔 대흥사 안내 간판들을 촬영하여 보았다




▲ 주차장에서 2Km쯤 이런 길을 걸어 올라야 대흥사로 들어 갈수 있다

왼쪽엔 동백숲이 오른쪽에 맑은 물이 흐르는 금당천 계곡이다

▲ 동백숲

▲ 금당천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 두륜산 금당천 계곡


▲ 대흥사로 들어가는 입구엔 많은 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 맨 꼭대기엔 이런 겨우 살이들이 참 많이 기생 하여 산다.

일반인들이 겨우살이들을 채취하여 약재로 팔고 하겠지만 이곳은 도립 공원이고 관리 구역이라서 그런지 겨우살이를 채취하지 못하는가 보다 싶으다



▲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

▲ 금귀대장 (장승)과 두륜산 정상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 두륜산 대흥사 일주문을 뒤에서 본 모습이다(대흥사를 구경하고 하산길 일주문을 통과 하려면 볼수 있는 일주문의 모습이라고 할까)

▲ 대흥사 입구 부도전의 담장인데 그 곡선이 참 멋져 보인다 그래서 찰칵 셔터를 눌러 본다


▲ 대흥사 일주문을 지나면 길 옆으로 수많은 부도와 비가 서있는 부도전이 나온다.

그 숫자를 보더라도 해남 대흥사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큰 사찰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고 이곳의 수많은 부도 중에는 보물로 지정된 '서산대사 부도'도 있다.


▲ 반야교 밑을 흐르는 금당 계곡 이다

▲ 나무에 버섯이 폈다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때문인지 나무 줄기가 기형 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 대흥사 입구 해탈문


주차장에서 절까지 숲길이 이어지는데 그 길이가 약 2km에 달한다.

녹음이 푸르른 동백나무, 아름드리 편백나무, 삼나무가 가득해 건강한 공기를 마시며 천천히 걷기 좋다. 

남도 바닷가 가까이 서있는 두륜산은 봄이 오는듯 동백나무의 꽃망울이 매달려있고

또 매화꽃이 피고 양지 바른 쪽에 이름 몰르 야생화가 조그맣게 피기 시작 했다

금당천 계곡에도 겨우내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서 제법 굵은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숲길이 끝나고 절 입구에 들어서기 바로 직전엔 영화 서편제, 장군의 아들 등을 촬영한 100년 역사의 전통이 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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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수가 떨어져 물방울을 튀기며 부서지는 모습을 담아 보려고 시도를 해 보았는데

셔터속도가 더 빨라야 할것 같아 이번 사진은 별루 인것 같애...

사진 좀 잘 찍는 방법 없을까? 이렇게 실수하고 왜 그런지를 알게 되면 금방 일취월장 할것 같은데

내가 둔한 건지 고집이 세서 그런건지 통 늘지 않으니 사진에 대한 열정도 자꾸 반감 되...

언제쯤 나는 멋진 사진을 담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늘 푼수가 없는 것 같애 ....


미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서 749년(경덕왕 8) 의조()가 창건하였다. 사적비에 따르면, 749년 8월 한 척의 석선()이 사자포 앞바다에 나타났는데, 의조가 제자 100여 명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해변으로 나갔더니 배가 육지에 닿았다.

배에 오르니 금인()이 노를 잡고 있고, 놓여 있는 금함() 속에는 『화엄경』·『법화경』·비로자나불·문수보살·보현보살·40성중()·53선지식()·16나한의 탱화 등이 있었다.

곧 하선시켜 임시로 봉안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금인이 나타나 자신은 인도의 국왕이라며, “금강산이 일만 불()을 모실 만하다 하여 배에 싣고 갔더니, 이미 많은 사찰들이 들어서서 봉안할 곳을 찾지 못하여 되돌아가던 길에 여기가 인연토()인 줄 알고 멈추었다.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모시면 국운과 불교가 함께 흥왕하리라.” 하고는 사라졌다.

다음날 소에 경전과 불상을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다.

미황사라 한 것은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웠다 하여 미자()를 취하고, 금인의 빛깔을 상징한 황자()를 택한 것이라 한다. 이 창건설화는 <금강산 오십삼불설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1264∼1294년 사이에 중국 남송()의 학자와 관리들이 이 절에 내왕하였다고 하므로 당시 미황사가 중국에까지 알려졌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이 중건하였다.

1660년(현종 1) 성간()이 3창하였으며, 1751년(영조 27) 덕수()가 중건하여 금고각()을 짓고 대웅전·나한전을 중건하였다. 그 뒤 고승 유일(, 1720∼1799)이 주석하였고, 1858년(철종 9)에는 의현(, 1816∼1874)이 만일회()를 열었다. 1996년 만하당을 짓고 누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달마전(殿)·응진당()·명부전(殿)·세심당()·요사채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당간지주(竿)·부도군()·사적비() 등의 문화재가 있다.

이 중 미황사 응진당()이 보물 제11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598년 만선()이 신축하였으며, 1971년 주지 이하덕()이 일부 보수하였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 등의 상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보물 제947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1598년에 중건한 뒤 1754년과 1761년에도 중수되었으며, 1982년의 수리 때 묵서()가 발견되어 건물의 연혁을 알 수 있었다.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셨고, 후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법당 뒤편의 목궤에 넣어둔 괘불()은 오래된 것으로 몹시 상하였다.

이 절의 부도군은 두 곳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곳은 26기()의 부도와 설봉당()·송파()·금하()·낭암()·벽하() 등 대사비() 5기가 있다. 다른 한 곳에도 5기의 부도가 있으나 전부 도굴되어 흩어져 있다.

또한, 미황사 사적비는 1692년(숙종 18) 민암(, 1634∼1692)이 세운 것으로서 초서로 된 높이 3m의 비인데, 옥개석 위에 용을 얹어 조각하였다. 이 밖에 절 뒷산 사자봉에는 ‘토말()’이라 쓰인 비석이 있어 우리 나라 육지의 끝을 나타내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미황사 [美黃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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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가 참 예쁜 절이다는 생각을 해 본다

절 보다 미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의 산세가 너무 좋아 보인다

미황사 곳 곳을 둘러 보며 참 정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한쪽에서는 템플스테이를 하고 있고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이들중 외국인도 간혹 눈에 띄인다.

햇살이 비치면 드리워진 그림자가 아름다운 절이라는 생각도 든다

곳곳이 다니며 사진으로 담아 보지만 짧은 일정 으로 속속들이 보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그 만큼 볼거리가 많고 아름 다운 곳이 많아서 이리 라 생각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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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황사는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489m) 서쪽에, 우리나라 육지의 사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한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졌다.
불교가 한창 흥할 때는 불교의 요람이 되어 스님도 많았고 주위에 12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미황사는 조선시대 중.후기에 걸쳐 이 같은 융성을 거듭하다 100년전 주지 혼허(渾墟) 스님이 중창을위해

모금차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를 가다 배가 조난을 당한 뒤에 점차 퇴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락한지 100년이 흐른 후, 현재 미황사에 주석하고 있는 지운스님과 현공스님,

금강스님이 1989년에 주인없이 비어 있던 미황사를 찾아 흔적만 남아 있던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 달마전, 부도암 등을 복원하고 퇴락한 세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10여년 간 중창불사 원력을 세워 끊임 없이 노력한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면모가 일신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대웅보전 (보물 947호), 응진당 (보물 1183호)과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선원),

달마전(승방), 세심당(수련원), 요사체(후원), 향적전(객실), 안심료(후원), 자하루(누각), 하심당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다.
서해바다로 지는 화려한낙조와 수려한 달마산을 배경으로 한 미황사는 방문객들에게 늘 즐거운 풍경을 제공해준다.
우선 뒤편의 산자락과 잘 어울리는 위치에 알맞은 규모로 자리잡은 절터와 대웅보전의 앉음새에서 편안함이 느껴진다.
특히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거북, 게 등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으며,

가뭄이 들 때 걸어놓고 기우제를 지내면 비를 내리게 한다.
괘불(보물1342호)과 대웅보전이나 웅진전 안 벽과 천장에 그려진 18세기의 벽화들,

응진전과 명부전 안에 모셔진 보살, 나한, 동자, 신장상 등 조각을 살피는 재미가 사뭇 크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긴 돌확이 있어 항시 맑은 물이 찰랑거리고, 그 앞을 가로질러 오른쪽 숲속으로 난 길을 들어서서

소나무와 동백나무 사이로 길을 따라 10분 정도 가면 부도 밭에 닿는다.
부도마다 거북, 게, 새, 연꽃, 도깨비 얼굴 등이 새겨져있어 한적한 산속에서 뜻밖에 꾸밈없는 표정들을 만날 수 있다.
절에서 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거리로 기암괴석이 들쭉 날쭉 장식하고 있어 거대한 수석을 세워 놓은 듯 수려하기 그지없다.
이곳에서 보는 다도해와 서해의 낙조는 매우 아름다우며, 절 바로 아래에는 동백나무 동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 문화재 - 대웅전(보물947호), 응진당(보물 1183호), 괘불(보물 1342호)
대웅보전은 미황사의 중심 전각이다.
한 가운데에는 석가모니불, 좌우에는 아미타불, 악사여래불이 모셔져 있다.
1598년 중창하였고, 1660년, 1754년, 1982년, 2007년에 거듭 중수하였다.
내부의 대들보와 천장은 산스크리트어 문자와 천불도로 장엄되어 있는데

그 아름다움이 인도의 아잔타 석굴 벽화, 중국 둔황막고굴의 천불벽화에 비견되어지기도 한다.
응진당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신통력이 뛰어난 16분의 아라한들을 모신 전각이다.
응진(應眞)은 참다운 존재의 실상을 환히 깨닫고 해탈에 이른 이들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인 '아라한'의 한자어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함게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 벽면에는 수묵으로 그려진 나한 벽화가 있는데 선(禪)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려한 선(線)맛으로 이름이 높다.


관련 홈페이지

미황사 http://www.mihwangsa.com






























불이 참 무섭다

저불의 온도는 몇도나 될까? 얼마나 뜨거울까?

달집을 만들어 타는 달집 주변엘 서성거리니 그 불의 화기로 온기를 느낀다

뜨거우면 거리를 두고 추우면 다가간다

달집이 활활 타오른다 가장 재미 있는게 불구경이란 이야기도 있듯

불타 오르는 달집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사진도 찍어 보고 그러다 시간이 꽤나 된듯 하여

돌아 가기 위해 발길을 돌린다.

불 주변엔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켜서 있다

어떤이는 옷을 내리고 온몸으로 열을 받기 위해 불옆을 큰대자를 하고 서 있다

이 불에서 원적외선이 나온단다 그 원적외선을 쬐여 온몸에 기를 불어 넣고자 함 이란다


어제 대보름 오전 비가 내리는 우중에도 대구 중구 포정동에 사우나탕에서 불이나

2명이 죽고 70여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있었다는데 그곳이 예날 대보백화점 자리이다

지은지 오래된 건물이라 피해가 더 컷다고 한다


달집을 태우는 이 불과 불이난 사우나의 불은 엄연히 다름에도 불을 보고 있자니 화마가 생각나고

연상하여 대구에서 부주의로 불이난 사우나탕의 불이 생각나는 건 모두 오늘의 사건이고 사고 이기 때문이리라

유익한 불 잘못 관리 하면 생명을 앗아 갈수 있는 위험한 불을 생각하며 이글 거리는 불꽃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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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 전날이면 달집태우기를 하고 쥐불 놀이를 하였는데

쥐불 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달집에 불이 붙는 것을 신호로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는데

정월 첫 번째 쥐날인 상자일()이나 음력 정월 열나흗날 또는 대보름날 저녁 농가에서 쥐불을 놓는다.

쥐불을 놓게 되면 겨울을 지낸 들쥐나 메뚜기, 해충의 번데기, 각종 병해충들이 알을 낳아 놓은 잡초나 쥐구멍,

해충 서식지를 태워 농사에 유익하다.

태운 잡초의 재는 논밭의 거름이 되고 풀들이 잘 돋아나 논두렁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아울러 전염병을 옮기는 들쥐를 구축()하기도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쥐불놀이 (한국세시풍속사전)

달집을 태우고 난뒤 숫껑이를 이용하여 구멍이 뚫린 깡통에 넣고 빙빙 돌리면 붉은 불이 원호를 그리며

온동네를 밝히던 때가 있었다 소싯적엔 이런 놀이 들이 흥했었는데 화재의 위험때문에

이제는 쥐불 놀이는 고사 하고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불을 놓는것도 금지 사항 이다

어제 대보름 달집태우기 행사를 보고 촬영을 위해 잠시 쥐불놀이처럼 깡통에 숫껑을 넣고 돌려가며

사진 촬영을 해 보았다 어쨌거나 어릴적 소소한 기억속 풍속들이 사라져 감이 못내 아쉽다
























달집 태우기는

정월 대보름 무렵에 생솔가지나 나뭇더미를 쌓아 ‘달집’을 짓고 달이 떠오르면 불을 놓아 제액초복()을 기원하는 풍속.

지역에 따라서는 달집불·달불놀이·달끄실르기·망우리불(망울이불)·달망우리·망월·동화()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달집태우기는 한강 이남의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두루 분포하는 신앙의례이자 놀이로서

정월 대보름 달맞이 및 풍농과 긴밀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달집이란 달()과 집()의 합성어로 ‘달의 집’ 혹은 ‘달막[]’이란 뜻이다.

즉, 달집을 상징하는 원추형의 나뭇더미를 불에 태운다는 의미에서 ‘달집태우기’라 한 것이다.

그 이칭인 망우리불·달망우리는 망월()의 와음()이다.

이는 ‘달맞이’와의 상관성이 강하게 내포된 이름으로 충남 금산을 비롯한 전남·전북지방에서 널리 호칭된다.

또한 달불·달끄실르기는 달집에 불을 놓는 행위가 곧 달을 그슬리는 데 목적이 있는 까닭에 부르는 명칭이고,

동화는 마을의 질병과 잡귀를 모두 소각시키는 ‘동네불’이란 뜻으로 충남 부여·청양 등에서 주로 불린다.

이외에 경기도 일부 마을에서는 ‘해동화’란 독특한 명칭도 보이는데, 이것은 동네의 화()를 풀어버린다는 뜻의 ‘해동화()’

또는 겨우내 얼었던 것을 녹인다고 하여 ‘해동화()’라고도 한다.
정월 대보름이 임박하면 동리의 청장년들은 모두 나와 청솔가지로 화목()을 준비하여 달집을 만든다.

마을에 따라서는 풍물패들이 가가호호 걸립을 돌아 지신밟기를 해주고 달집에 사용될 땔나무와 짚단을 조금씩 거출한다.

이때 상중()이거나 출산한 집, 기타 부정한 가정은 걸립에서 제외된다.

화목이 마련되면 달이 뜨는 맞은편 산날망이나 마을 앞에 달집을 짓고 저녁이 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날이 저물면 온 동네의 사람들이 속속 달집 주변으로 모여든다.

마침내 동쪽에서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불이야! 망우리불이야! 달끄실르자!”

혹은 “아들 낳고 딸 낳고 손자 망우리여!”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불을 지른다.

그리고 신명나는 풍물소리에 한데 어우러져 달집 주위를 빙빙 돌며 액운이 없기를 축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달집태우기 (한국세시풍속사전)

어제 종일 비가 와서 달집태우기 행사를 계획 했던 많은 지자체 행정기관이 행사를 취소 하였는데

금호강 둔치의 팔현 마을 에서는 달집 태우기 행사를 많은 주민과 기관 단체 인원과 와 함께거행 하였다.

달집 태우기는 한해의 액운을 태워 날려보내고 한해 동안 풍년과 무탈 하기를 기원하는 행사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옛부터 내려오는 풍습이였다.

대보름 밤이면 달집태우고난 숫불을 이용하여 구멍 뚫은 깡통에 넣어 빙빙 돌리는 쥐불놀이도

성행 하였는데 우리 어린 시절에는 쥐불 놀이를 많이 하였지만 쥐불 놀이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 때문에

쥐불놀이를 행하지 못한다.

어제 행사 장에도 혹시나 불이 옮겨 붙지는 않을까 많은 소방 대원들과 의용소방대 소방차가 동원 되었다

어찌 되었거나 기해년 황금 돼지해 대보름을 맞아 달집태우듯 모든 액운을 담아 태워 날려 버리고

행운이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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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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