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800m 불모지, 행복마을만들기 콘테스트 금상 주민 90여명 모두 경관 지킴이 '화산다움' 고집
구멍가게 하나 없고 택배도 오지 않는 마을, 꼬불꼬불 7.6km에 이르는 산길을 지치도록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자연의 품 안에 있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이곳이 바로 경북 군위군 고로면에 있는 화산마을이다.
“누가 화산에 밭을 일구려 하는가. 신선의 근본은 여기서 시작되었는데. 여보게, 구름사다리를 빌려주구려. 옥정에 가을바람 불면 푸른 연꽃 따리로다.”
서애 류성룡이 화산의 자연경관에 반해 지었다는 칠언절구는 마치 선견지명과 같이 바위에 남겨져 있다. 동틀 무렵 환상적인 운무의 아침 인사는 마치 신선의 세계로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1962년, 불모지에 첫발을 내딛다
화산에 마을이 생긴 역사는 오래되지 않았다. 화산마을은 1960년대 정부의 산지개간정책에 따라 180가구가 집단 이주하면서 마을 이름도 없이 A, B, C, D 4개의 지구로 불리던 개간 촌이었다.
그 당시 불모지였던 마을에 터전을 마련한 초기 정착민들은 가난하거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노인을 지게에 지고, 아이를 등에 업고,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이틀 꼬박 산길을 걸어 도착한 마을은 길도, 전기도, 수도도 없는 척박한 불모지였다. 주민들은 아직도 캄캄한 밤 신령역에 첫발을 내디뎠던 1962년을 떠올리면 어김없이 두 눈에 눈물이 고이곤 한다.
△맨손으로 이룬 삶 터, 60년 화산마을의 역사가 되다
이틀을 꼬박 걸어야만 외부의 세상과 닿을 수 있었던 이들은 외로움이 사무칠 정도로 컸기에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이야말로 든든한 버팀목이자 ‘비빌 언덕’이었다. 마을의 유일한 우물에서 물을 길을 때면 일렬로 줄을 서 누구도 정하지 않은 불문율로 공평하게 한 바가지씩 떠갔다는 이야기는 정착민들 사이가 가족 그 이상의 연결고리를 가진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지난날 배고픔을 기억하며 현재에도 매일 점심, 저녁을 마을 공동급식으로 해결한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배고픔으로 인한 소외를 막기 위함이며, 함께하는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이렇게 긴 세월 서로를 의지하며 오직 협동과 단결의 의지로 삽 하나, 괭이 하나, 톱 하나 그야말로 맨손으로 일궈온 삶의 터전은 화산마을 60년의 산 역사가 되었다.
△눈물의 삶 터, 그 자체가 원석이 되다
마을주민들은 유난히 길에 대한 애착이 깊다. 7.6㎞의 꼬불꼬불한 산길은 그 당시 주민의 힘으로 개척한 세상과 마을을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지금까지도 주민들은 이 길을 소중히 관리한다. 구역을 나눠 제초작업을 직접 하고, 겨우내 제설작업 역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억척스럽게 조성한 고랭지채소밭은 마을의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 오랜 세월 생계를 이어주던 눈물로 얼룩진 삶 터는 점차 드넓은 자연 속에 녹아들어 그야말로 전국 유일 화산마을만이 지닌 아름다운 경관이 되었다.
△경관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달래는 치유제
화산마을은 경관 이외에도 특이한 점이 있다. 지금껏 마을에 치매 환자가 없다는 점이다. 사람이 가장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700고지에 마을 인가가 분포해 있다는 점과 사람의 오감을 자극하는 깨끗한 바람, 마음을 달래주는 풍광은 경관을 뛰어넘어 사람의 마음을 치유해주는 천연치료제가 된다는 것이 주민들의 믿음이다. 무엇보다 마을에 넘쳐나는 주민들의 청량한 웃음이 이를 증명해주는 듯하다.
△화산마을만의 농촌미학! 자연치유마을로 성장
화산마을은 과거 군부대 이전, 초등학교 폐교 등 소멸위기를 겪으면서 20여 가구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후 인구가 꾸준히 늘어 최근 5년간 인구수는 41%, 귀촌은 58% 증가해 현재는 57가구 92명의 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방문객 수 역시 3배 이상 급격히 증가하는 등 놀라운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마을 일에는 정착민, 귀촌인 할 것 없이 모두 참여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정착민의 비결과 귀촌인의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그야말로 시너지효과를 나타내게 되었다.
올해에는 주민의 아이디어로 황무지로 방치되었던 마을부지 1만여㎡에 해바라기밭을 조성해 지난 7월, 주민과 출향인, 방문객이 함께하는 ‘바람 언덕 해바라기 잔치 한마당’을 개최했다.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일반적인 현재의 농촌여건에서 화산마을의 변화는 농촌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인정한 경관 마을, 농식품부가 선정한 행복 마을로
지난 8월 28일에는 농식품부가 주관하는 제6회 행복마을만들기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부문 금상을 받는 쾌거를 거뒀다.
주민들은 과거 가난하고 척박했던 마을을 일궈낸 개척민의 의지를 본받고 이를 농업유산으로 보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민들의 화합된 모습을 성과발표와 퍼포먼스로 녹여내 큰 감동과 호평을 받았으며, 지난 7월 경북도 주최 행복 마을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경관·환경 분야 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농림부 콘테스트에서 또다시 1위를 수상함에 따라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경관 마을로 우뚝 서게 되었다.
△화산주민들의 소명, ‘화산다움을 지키는 일’
화산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하는 약속이 있다. 바로 ‘우리 마을은 우리가 지키자’이다. 마을경관규약을 제정해 ‘지킴의 가치’를 실현하고, 자발적으로 화산경관 지킴이 단을 구성해 주민 스스로가 경관활동가가 되고 있다.
이종은 화산마을 이장은 “무분별한 개발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마을이 훼손되거나 파괴되지 않도록 미래를 위한 약속을 반드시 실천하고 지금의 ‘화산다움’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농촌미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강조한다.
이렇듯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화산마을이 100년 뒤에도 그 이후에도 변함없이 구름과 바람, 노을, 별빛을 품은 아름다운 마을로 고스란히 보존되길 바라본다.
해발 800m를 구불 구불 산길을 따라 7.6Km를 따라 올라 가니 산등성이에 마을이 하나 보인다.
새벽녁 어두운 산길을 올라 따라 올라 가자니 자칫 사고나 나지 않을까 조심 스럽고
와 보지 않은 낮선 길을 야밤 어두운 길을 따라 올라 가자니 두려움이 앞선다
행여 차를 몰고 잘못 들어섰다가 회차지가 없어 생고생은 하는건 아닌지 하고
네비가 알르켜 주는데로 따랄 올라는 가지만 자칫 수렁에 빠질까 겁이 난다
마을 어구 부터는 아예 차에서 내려 걸어 올라 가기로 하였다
친구가 이곳에서 주말 농장을 한다 주말 농장이 아니라 아예 농군으로 채소를 키우고 호두 농장을 개간한지 오래다
넉살 좋게 이곳에 오며는 운무를 볼수 있어 사진 찍기 좋다 하고 공갈을 치는 바람에
또 카페 동우회 회원이 바람개비 풍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올려 두어 이곳에 가면 사진 찍기 좋겠구나
꼭 한번 가봐야지 했는데 가도 가도 끝이 없이 산 꼭대기가 광활하고 넓다
고냉지 채소를 재배하는 단지여서 그 농장은 생각외로 크고 광활 하다
경북 일보에 기사가 난것과 같이 대한민국이 인정한 경관 마을, 농식품부가 선정한 행복 마을로 선정되어
마을로 들어 가는 입구에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다.
하지만 사진 찍기 좋은 마을은 아닌 듯 하다 사진 찍기 좋은 ? 장소라면 이른 새벽에 이렇게 사람이 없을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