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뛰어난 木手(목수)가 길을 가다 큰 상수리 나무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쳤다. 그 상수리 나무는 數千(수천)마리의 소를 가릴 程度(정도)로 컸고 굵기는 백아름이나 되었다. 배를 만들어도 數十(수십) 척을 만들 수 있을 程度(정도)였다. 木手(목수)의 首弟子(수제자)가 의아해서 물었다. "이처럼 훌륭한 材木(재목)을 보고도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가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墨子(묵자)는 답했다. "그 나무는 쓸모가 없다. 배를 만들면 가라앉고 널을 짜면 곧 썩으며, 門(문)을 만들면 진이 흐르고 기둥을 만들면 좀이 생긴다. 그래서 아무 所用(소용)도 없는 나무라 저토록 長壽(장수)할 수 있는거야"
결국 그 큰 상수리 나무는 人間(인간)에게 쓸모없음을 쓸모로 삼아서 天壽(천수)를 누린 것이다.
人間(인간)에게 쓸모있는 能力(능력)들을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武勇(무용)으로 안에 감추어 두는것, 그것이 진정 마음을 비우는 것이고 天壽(천수)를 다하는 것이다.
그릇은 內部(내부)가 비어 있기 때문에 飮食(음식)을 담아쓸 수 있고, 房(방)은 璧(벽)으로 둘러쳐진 中央(중앙)이 비어 있음으로 해서 起居(기거) 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걸음을 걸을 때도 우리가 밟지 않는 곳에도 땅이 있기 때문에 安心(안심)하고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밟고 지나갈 자리에만 땅이 있다고 한다면 어지럽고 두려워 한 걸음도 떼어놓지 못할 것이다. 모든 것에는 定作(정작) 쓰이는 것보다 쓰이지 않는 것이 있어 진정 쓰임을 다하는 것이 많다.
그래서 정말 마음을 비운다면 그릇처럼 텅 비어 있어야 한다. 행여 自身(자신)이 그릇을 만드는 흙이라도, 굽는 불이라도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完全(완전)히 마음을 비워야만 쓰임이 있고 自身(자신)도 天壽(천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