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플섬은 신안군의  반월도와 박지도 두개의 섬을 퍼플교를 연결하여 

퍼플섬이라 한다 

반달을 닮은 반월도 바가지의 박을 닮은 박지도 

박지도에서는 보랏빛 라벤더 꽃 축제가 한창일때 다녀 왔어요

생명의 손길 건넨 은우 양을 칭찬합니다



2024년 5월 12일 오후 9시,
포항중앙여자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김은우 양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경북 포항 형산강 연일대교 위에,
강으로 뛰어내리기 위해 다리 난간을 넘어가려 하는
한 40대 남성이 보였습니다.

은우 양은 이를 보고 지체 없이 달려가
남성분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다리를 붙잡고 112에 신고하였습니다.
경찰이 도착하기까지 남성분의 다리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제발 살아달라"고 설득한 끝에 남성분은
무사히 구조되었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은우 양의 용기 있는 선행에 감동하여
학교에 직접 방문하여 은우 양에게 칭찬 꽃다발을 선물하고,
은우 양이 속한 학급에 치킨과 피자 등의
간식을 선물했습니다.

은우 양은 당시 상황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무조건 아저씨를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던 거 같아요.
그냥 두면 저에게도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았고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 망설임 없이
바로 달려가 붙잡았습니다.
아저씨가 살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평상시 학급 반장으로서 탁월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담임 선생님을 돕고 아이들의 청소 지도나
학급 관리에 모범을 보인다고 하는 은우 양은,
연출 감독이란 장래 희망과 더불어
'거짓 없이 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당차게 말했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한 사람의 생사가 오갔던 위기의 순간에서,
멋진 영웅처럼 용기 내어 생명의 손길을 건네준
은우 양을 칭찬하고 그 아름다운 꿈 또한
힘껏 응원합니다.

사람이 다니는 보도 마져 퍼플 보랏빛이다

두 아빠와 입장



2015년 미국 오하이오주의 한 야외 결혼식에서
하얀 웨딩드레스와 함께 축복해 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버진로드(Virgin Road)에 입장하려는
한 신부가 있었습니다.

신부의 손을 잡고 함께 입장할 아버지는
비록 신부가 어린 시절 이혼하여
함께 지내지는 못했지만 서로 각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부녀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지 않고
'잠깐만요'라고 외치며 하객들 사이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한 남자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왜 여기 있습니까?
당신도 우리 딸을 위해 나만큼 애썼고,
나만큼 자격 있는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손을 내민 남자는,
딸의 어머니와 재혼하여 지금까지 소중하게
딸을 키워준 의붓아버지였습니다.

마음으로 낳아 사랑으로 키운 딸의 결혼식에
설 수 없는 비통한 마음을 애써 참고 있던
의붓아버지는 울음을 참는 표정으로
딸 옆에 섰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을 가운데 두고
두 아버지가 함께 입장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두 아빠 가운데 서서
신부 입장을 하는 신부는 더없이 든든하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함께 살아가는 가족.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매 순간을 함께하고
가까이 있기에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바로 가족입니다.


# 오늘의 명언
이 세상에 우리가 태어나 경험하는
가장 멋진 일은 가족의 사랑을 배우는 것이다.
- 조지 맥도널드 -

퍼플교가 멋지다 

바닷물이 들이 차면 더 멋질 것이지만

썰물로 물이 빠진 갯벌의 퍼플교를 보는것고 괜찮다 

얕은 바닷물속으로 헤엄치는 크다란 물고기를 보는것도 재미 있다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



1989년~1997년 공중파에서 방송한
'우정의 무대'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군부대를 찾아가 군인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특히 '그리운 어머니'라는 코너는
인기가 높았습니다.

군부대에 복무 중인 군인 중 한 명의 어머니가
아들 몰래 해당 부대를 찾아와 사회자와 인터뷰를 진행하면
군인인 아들은 목소리만 듣고 어머니를 확인하고 맞추면
어머니를 등에 업고 그 자리에서 바로 포상 휴가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면 무대 위로
장병들이 우르르 뛰어나와 너나 할 것 없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확실합니다!"라고
우겨대는 모습이 백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늘진 표정의 한 장병이
"뒤에 계신 분은 우리 어머니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장병의 어머니는 아들이 입대하기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그립고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머니'라는 말에 반응해서 그만 무대 위로
올라와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대 앞으로 나온 다른 장병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보다, 어머니를 잃은 그 장병을
더 애절하게 안아주며 위로해 주었고
그 모습을 본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고 또 주어도 더 주지 못해 늘 안타까운 사람.
자식을 위해서라면 자기 손이 다 닳아 없어져도 마다치 않을 사람.
고향 집의 아랫목처럼 언제나 그립고 따뜻한 사람.
듣기만 해도 먹먹해지는 이름, 그 이름은
'어머니'입니다.


# 오늘의 명언
청춘은 퇴색되고 사랑은 시들고
우정의 나뭇잎은 떨어지기 쉽다.
그러나 어머니의 은근한 희망은 이 모든 것을
견디며 살아 나간다.
– 올리버 홈즈 –

 

퍼플섬 온통 보랏빛으로 물던 섬마을이라고 해서 꼭 가고 싶었던 섬이다

아내와 같이 할인 받아 가기로 한 섬 여행 퍼플섬이 유명해 지자 신안군의 다른 섬들도

한가지 원색을 사용하여 저마다 독특한 마을을 조성 해 보겟다고 엘로우 섬도 생겨 나고 

유사품도 생겨 났다

보랏빛 퍼플섬 섬마을 할머니의 속옷 색깔 마져 보랏빛 이라고 

이곳에 입장 하기 위해서는 보라빛 소지품을 하나씩 꼭 챙기던지 입장료를 내던지 ㅎㅎㅎ

영원한 사랑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시기에
유럽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이탈리아어가 적힌
두 통의 엽서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숨을 거둔
한 할머니의 사연입니다.

1941년 이탈리아의 장교였던 루이지는
그리스 아름다운 항구도시 파트라이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운명적인 첫사랑 안겔리키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행군하던 루이지는 안겔리키에게 길을 물었고
그녀는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루이지는 그녀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 눈치채고는
갖고 있던 전투식량과 음식들을 그녀에게 나눠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 두 남녀는 가까워졌습니다.

전쟁 중이라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이후에도
먹을 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갔고,
그렇게 서로의 말을 배우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남몰래 사랑을 키워갔습니다.

그러나 1943년 이탈리아가 연합국에 항복하면서
급하게 루이지는 고국으로 귀국해야 했습니다.
비록 적군의 장교였지만 그는 그녀에게 청혼했고
그녀도 청혼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이탈리아로 돌아간 루이지는
그녀에게 매일 편지를 썼으나 답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실은 그녀의 고모가 그들의 결혼을 막기 위하여
몰래 태워버렸던 것이었습니다.

루이지는 이를 모른 채 답장을 기다렸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실망한 그는
그녀가 변심했거나 다른 남자와 결혼했을 것으로 생각해
결국 루이지도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세월이 지나 루이지의 아내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이제는 기억에서조차 희미한 옛사랑인
안겔리키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의 노력에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루이지와 안겔리키는 반세기가 흐른 뒤에야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20대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미 사라졌지만
안겔리키가 먼저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사실 그녀는 60년 가까운 옛날의 결혼 약속을
여전히 믿으며 살던 지역을 떠나지 않고
독신으로 살아왔던 것입니다.

너무도 감격한 둘은 다시 결혼을 약속합니다.
당시 그들의 나이는 77세, 79세였습니다.
비록 예전의 젊은 모습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랑은 충분히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이 만남 이후로 루이지는 청년 시절과 같이
안겔리키에게 매일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단어가 적힌 사랑의 편지를 보내며
다시 만날 날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결혼식을 2주 남겨놓고
안겔리키는 그가 보낸 편지들을 가슴에 안고
숨을 거두기 전 이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티 아스페토콘 그란데 아모레'
(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





사랑 앞에 주렁주렁 조건을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조건을 평가합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이 남을까요?
남는다 한들 남은 것 중 어느 하나라도
진정한 사랑보다 값진 게 있을까요?


# 오늘의 명언
나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 막스 뮐러 –

부모와 조상을 정성껏 모시자

 

개를 정성껏 보살피듯이 부모님과 조상님들도 정성껏 모시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개, 운동 시킨다고 끌고 다니듯이 부모님 모시고 운동 다니시고..! 

개, 끌어안고 다니시듯이 부모님 품에 안고 다니시거나 등에 업고 다니시고, 

개, 아프다고 쌩돈 들여 살피듯이 부모님 모시고 병원엘 다니시길 바라며..! 

개, 이빨 닦아주고 귀청소 해주듯이 부모님 양치와 귀청소 해주시옵고, 

개, 똥쌌다고 똥구녕 닦아주듯이 부모님 대소변 처리해 주시옵소서.

개, 씻어야 한다고 씻겨주듯이 부모님 깨끗이 씻겨드리옵고..!

개, 미용하듯이 부모님 용모와 의복 살피시고, 

​개, 짖는 것도 이뻐 좋아하듯이 부모님 늙어 부족한 헛소리도 좋아하시고, 

개, 잠 잘자나 살피듯이 부모님 잠자리 살펴주시옵고..! 

개, 죽어 통곡하듯이 부모님 죽어 대성통곡하시길 바랍니다. 

모름지기, 인간의 도리를 다 하지 못함을 금수만도 못하다라고 하는데..! 

​이 옳은 도리인지를 생각했으면 합니다. 

​개? 개한테 저러지 말라? 아닙니다. 그렇게 하시되,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님과 내가 있기까지의 

조상의 공덕을 조금이라도 살피시라는 이야기입니다.


- 옮겨온 글 -

설탕같이 말을 하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이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탕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소금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바닷물에는 하얀 소금이 들어 있듯이, 우리 마음의 바다에도 소금이 들어 있습니다. 

내 안에 들어 있는 소금으로 사람들의 이야기에 맛을 내고 사람들의 이름에 맛을 내도록 합시다. 

살탕같이 흐려지는 이웃이 되지 말고, 소금같이 분명해지는 이웃이 됩시다. 

살탕같이 흔한 친구가 되지 말고, 소금같이 소중한 친구가 됩시다. 

살탕같이 맛을 잃는 사람이 되지 말고, 소금같이 맛을 얻는 사람이 되도록 합시다. 

우리는 설탕은 없어도 살 수가 있지만, 소금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심마니 총각과 복순이의 인연

 
 

 

친정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친정이지 울케가 곳간의 열쇠를 허리춤에 차고 있으면 이웃보다 나을 게 없다.

울케는 “장롱 사느라 곳간에서 쌀가마를 들어냈더니 텅 비었어”라며 좁쌀 반 자루를 툇마루에 던져놓고, "잘 가” 이 한 마디뿐이다.

복순이가 터졌다.

“야 이년아, 땟거리가 없어서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던 거지년을 친구랍시고 우리 집안에다 들여놓았더니 나한테 하는 짓이 겨우 이거냐!”

복순이는 좁쌀 자루를 올케년에게 집어던지고 친정집을 나와버렸으며 그게 친정과 담을 쌓은 마지막 날이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신랑이 과거에만 붙어봐라.’

복순이는 울지 않았고 잔칫집에 가서 밤늦도록 허드렛일을 하고 남은 음식을 싸와서 공부하는 남편에게 상을 차려주고,

장날엔 주막집에 불려가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술 손님들이 남긴 너비아니, 닭 창자를 가져와서 남편에게 상을 차려줬다.

봄이 오자 복순이는 바지를 입고 망태기를 메고 산에 올랐으며 더덕을 캐고 하수오와 참나물을 뜯고 재수가 뻗친 날은 산삼도 보았다.

약재상에 어린 삼을 팔아서 산 씨암탉에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먹여 남편 몸보신을 시켰다.

어느 날, 눈앞에 백하수오를 봤는데 손발이 닿지 않았으며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워 큰 숨을 쉬고

절벽에 매달려서 풀도 잡고 나뭇가지도 잡으며 게걸음 하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움켜잡았던 풀이 뿌리째 뽑혔다.

“으아악~”

비명은 메아리쳐서 골짜기를 울리고 복순이는 몸이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복순이는 또 한번 기절할 뻔했으며 관솔불에 괴물 형상이 비쳤다.

“누, 누구요?” 복순이가 물었다.

“나는 이집의 주인 심마니요. 절벽에서 떨어져 기절한 낭자를 업고 왔소” 하면서 괴물 형상이 복순이에게 대답했다.

복순이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일어나 벽에 기대 앉았으며 심마니도 벽을 등지고 앉아 침묵만 흘렀다.

한참 후에 심마니는 자신의 어릴 적의 이야기를 복순이에게 모두 털어놓는 것이었다.

불타는 아궁이에 넘어져서 화상을 입고 얼굴의 반쪽이 번들거리는 괴물이 되어서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 됐다는 것이다.

심마니와 복순이는 살아온 이야기로 꼬박 밤을 새우고 동창이 밝자 복순이는 제 집으로 갔으며 집에 도착하니 이게 웬일인가!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갔던 신랑이 어사화를 꽂은 사모관대에 백마를 타고 집 마당에 들어섰다.

동네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는데 복순이는 감격에 북받쳐 마당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하였다.

복순이는 꿈인지 생신지 볼을 꼬집었고 급제한 신랑이 어사화 사모를 벗어 복순이한테 씌우고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켰다.

고을 사또도 오고 육방관속 유림들도 모두 모여 삼일간 동네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였다.

복순이는 과거에 급제한 신랑을 따라서 말로만 듣던 한양을 갈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복순이는 분과 동백기름을 사다 바르며 한양에 가지고 갈 고리짝에 짐을 쌌다.

그런데 한양에 먼저 올라간 신랑에게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허구한 날을 사립문 밖에서 급제한 신랑이 보낼 하인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게 일이 됐다.

석달이 지났을 때, 복순이는 남정네 옷을 사입고 단봇짐을 멘뒤 초립을 눌러쓴 채 집을 나섰다.

날이 저물면 주막에서 자고 동이 트면 걸었으며 보름 만에 한양에 도착하여 궁궐 앞에서 신랑을 기다렸다.

퇴청하는 문이 하나가 아니란 걸 수문장에게서 듣고 이레 만에 경복궁 영추문을 나서는 신랑을 보았지만 달려가 얼싸안지 않고 미행했다.

신랑이 서촌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어느 아담한 기와집 대문을 두드리자 한 여인이 대문을 열고 반겼으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복순이는 머물던 통의동 주막집으로 돌아가서 생전 처음 너비아니 안주에다 청주 한 호리병을 마시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복순아, 네 팔자는 이렇다. 운명의 강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보자.”

복순이는 보름 만에 집에 도착해 하루를 푹 자고 산으로 올라갔으며 세 칸 너와집에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릴 때 얼굴에 화상 입은 심마니 총각이 갑자기 나타난 복순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복순이는 심마니와 함께 감자밥 식사를 했으며 밥을 먹고 나서 복순이가 말했다.

“나 여기서 살래요. 당신과 가시버시가 돼서.”

한참 답이 없던 심마니는 삼경이 돼서야 고개를 끄덕였으며 심마니와 복순이는 찬물 한 그릇을 떠놓고 서로 맞절을 하였다.

잠시후 심마니가 복순이 옷고름을 풀고 치마와 고쟁이를 벗긴 다음 후우~ 등잔불을 껐다.

복순이가 알몸으로 반듯이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자 심마니가 복순이에게 올라갔다.

그녀는 가벼운 신음을 토해내며 심마니를 끌어안고 낙지처럼 착 달라붙어 몸을 맡겼다.

​복순이는 두 팔로 심마니 목을 껴안고 두 다리를 위로 들어올려 그의 허리를 휘어감았다.

너와집 지붕이 무너질듯 요란한 폭풍이 일었고 그녀의 자지러지는 감창이 산속에 울려퍼졌다.

한바탕 요란한 폭풍이 지나가자 요분질 해대던 복순이의 허리가 활처럼 둥글게 휘어졌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파르르 떨면서 사지가 힘없이 축 늘어지고 결국 혼절했다.

​복순이는 남편이 급제하고 새살림을 차린 이후 오랜만에 심마니와 욕정을 맘껏 불태웠다.

그녀는 심마니 품속에 안긴 채로 두 눈에 기쁨과 행복의 눈물을 흘리면서 깊이 잠들었다.

어느덧 자신을 버린 남편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심마니와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다.

 
 



감나무에 까치밥

 




장편소설 '대지'로 193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의 한국 사랑은 유명합니다.
그녀는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부모님을 따라
약 40년을 중국에서 보냈음에도 평생 한국을
가슴 깊이 사랑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 '살아 있는 갈대'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에 대해서 예찬했습니다.

'한국은 고상한 민족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

또 그녀가 남긴 유서에는
'내가 가장 사랑한 나라는 미국이며,
다음으로 사랑한 나라는 한국'이라고
쓰여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가 이렇게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긴 계기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몇 번의
경험 때문이었습니다.

그중에 '까치밥'에 얽힌 일화가 있는데
그녀는 따지 않은 감이 감나무에 달린 것을 보고는
주변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저 높이 있는 감은 따기 힘들어서
그냥 남긴 건가요?"

"아닙니다. 그건 까치밥이라고 합니다.
겨울 새들을 위해 남겨 둔 거지요."

그녀는 그 사람의 말에 너무도 감동하여
탄성을 지르며 말했습니다.

"내가 한국에 와서 보고자 했던 것은
고적이나 왕릉이 아니었어요.
이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한국에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감이나 대추를 따더라도
까치밥은 겨울새들을 위해 남겨 두는 마음.
지극히 작은 생명 하나라도 소중하게 배려하는
민족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봄철이 되어 씨앗을
뿌릴 때도 셋을 뿌렸습니다.

하나는 새를 위해 하늘에,
하나는 벌레를 위해 땅에,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나에게...
그렇게 모두가 함께 나눠 먹기 위해
셋을 뿌렸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했다고 탓하지 말고
내가 달라짐으로써 세상도 함께
달라질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질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결정한다.
– 펄 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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