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3화) - 달성습지에서

풍류야화 황진이(제3화)

 

양곡과 명월의 말이 나란히 걷고 있으며 풍악산(금강산의 가을 山名) 유람 길에 올랐고 잠자리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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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은 말 위에서 꾸벅꾸벅 졸았으며 어젯밤에 명월과 서너 번의 방사로 기진맥진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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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도 사타구니가 얼얼해 걷기조차 힘들지만 추호도 내색이 없었고 사내에게 지기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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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그녀는 사내를 맞을 때마다 우리나라 최초 여왕 선덕여왕의 여근곡(女根谷)에서 백제군을 섬멸한 역사를 상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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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이 30일 동거후 어떻게 행동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여 특히 잠자리에 신경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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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은 양곡의 30일 동거는 허풍에 불과하다는 것을 실토하고 "나는 인간이 아니다"라고 친구들한테 고백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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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에 온지 30일 후에 개선장군처럼 한양에 나타나 번듯한 요릿집에서 한턱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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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시 인간이었다.”라고 일갈 하려는 배포를 무참히 꺾으려는 속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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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금강산은 풍악산으로 불리고 늦 단풍이 붉게 타고 있으며 바람이 쌀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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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태상주 술기운에 둘은 밤새는 줄 모르고 욕심껏 육체의 향락을 즐겼음이 지금은 과욕이었다는 것을 둘은 한 몸처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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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박연폭포에서 점심을 먹고 말고삐를 돌렸으며 명월이 먼저 말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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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엊저녁에 대감께서 너무 깊이 사랑해 주셔서 더는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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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악산은 다음에 구경하시고 오늘은 이만 돌아감이 어떠하실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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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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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은 방금 본인이 하려는 말을 명월이 대신 해준 말이라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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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는 쇳소리가 나고 입에선 단내가 풀풀 풍겼으며 자칫하다가는 말 등에서 떨어질 뻔 아찔한 순간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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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박연폭포까지 와서 그냥 바람처럼 떠나갈 명월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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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물줄기가 골짜기를 갈 듯 뿜어내니/ 용추에 떨어지는 백 길 물소리 우렁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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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 내리는 물줄기 쏟아지는 은하수인가 싶고/ 노한듯 가로 드리운 물줄기 바로 흰 무지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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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쿠라지는 물벼락 온 골짜기에 가득하고/ 물보라는 부서지는 옥인양 갠 하늘에 사무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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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객이여 여산폭포가 낫다는 말은 하지마오./ 천마산의 박연폭포 우리나라의 으뜸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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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의 '박연폭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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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풍악산으로 가려다 천마산의 박연폭포 늦가을 단풍에 취하여 있다가 귀가했으며 그들의 온 몸에선 늦가을 단풍향이 향수처럼 풍겨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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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의 특이한 선향(仙香 )과 단풍향이 어우러진 향이 양곡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달구었고 방에 들어서자 양곡은 명월을 힘껏 쓸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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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은 내일 한양으로 갈 몸이고 명월은 양곡이 하는 대로 몸을 맡겼으며 뜨거운 입김엔 어젯밤 열정의 단내가 얼굴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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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 나하고 한양에 가지 않으련? 개성보다 한양이 명월에겐 더 어울릴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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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악원(掌樂院)에 들어가 예약연구를 더하여 이론을 만들어 놓으면 후세가 그것을 배우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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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소실(小室)이 되라는 말씀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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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초롱하면서도 가을 호수같이 평온하였고 표정이 먹이를 노리는 맹금류(猛禽類) 눈초리로 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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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뜻이 아니고 개성도 좋은 고장이고 천하의 명산인 금강산이 있어 유명한 도시이긴 하지만 조선의 중심은 역시 대궐이 있는 한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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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서 명월의 명성을 더욱 높였으면 하는 생각이지. 내 다른 뜻이 있어 한 말은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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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은 고마우시나 소녀는 개성의 몸으로 태어나 고려여인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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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의 진지함이 흡사 출사표를 던진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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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알았느니라. 너의 미색과 학식이면 한양에 가면 이곳보다 더 뜨겁고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네 의향을 물어본 것 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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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은 양곡의 검은 마음을 첫마디에서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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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들은 마음에 드는 기생을 노류장화(路柳墻花) 쯤으로 보고 소실로 집에다 앉혀 놓으려는 심보를 명월은 숱한 사내들의 유혹을 단호히 뿌리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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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의 싸늘한 표정을 등 뒤로 느끼면서 양곡이 지필묵을 주섬주섬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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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떠나시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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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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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답지 않은 풀죽은 목소리였고 명월은 말 등에 실린 거문고를 연두(몸종)에게 가져오라 하여 자신이 만든 곡을 타며 창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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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성 동쪽에 핀/ 복사꽃 오얏꽃/ 꽃잎이 날아가면 뒤 집에 떨어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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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에 사는 계집애들은/ 얼굴이 시들까봐/ 떨어지는 꽃잎만 봐도/ 긴 한숨을 내 쉰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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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에 핀 꽃지고 나면/ 얼굴 다시 여위리니/ 그 누가 와서 보여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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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李白)의 '늙음을 서러워하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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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와 거문고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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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명월을 젖먹이가 어미를 바라보듯 바라본 양곡이 갑자기 지필묵이 싸인 보따리를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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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야! 나를 예성강까지 배웅을 해주면 어떠하겠느냐?”라는 말을 등 뒤로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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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는 지고 금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의 하늘엔 벌레 먹은 사과모양의 달이 기우뚱하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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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두 필이 준비되었고 양곡은 대명천지에 명월관을 나서고 싶지 않아 계획적으로 밤에 길을 나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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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감! 왜 제 기명인 명월을 부르지 않으시고 본명인 진이를 부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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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으로 부르지 않는 것이 궁금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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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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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기명으로 부르는 것 보다 진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려서 내 앞으로는 그리 부르기로 마음먹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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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월이란 기명은 너무 멋스럽고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워 쉽게 다다가기가 어려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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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 두둥실 떠 있으면서 인간세상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어떻게 명월을 품을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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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론 네 본명을 부르고 내 주위의 친구들에게도 진이로 부르도록 입소문을 낼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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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명월이란 기명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고 그들이 예성강에 도착하자 나룻배 한 척이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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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한양에 가 정무를 처리하고 곧 다시 올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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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는 왼손 약지의 은가락지를 뽑아서 양곡에게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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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의 횃불이 강 건너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을 한 진이는 밤이 이슥해서야 명월관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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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화에서 계속 -

[출처] 풍류야화 황진이(제3화)|작성자 청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