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딸아이가 미국으로 나간다기에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기위해 동대구 버스터미널로 가는 도중 대구 시내를 질러 동대구역으로 나가다 보니 대구 도심이 텅 비었다 오가는 차들도 이따끔 보이고 교통이야 막힘없이 쌩쌩 달릴수 있어 좋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도시 기능이 마비 되는건 아닌지 무척 우려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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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매화 만발하여 가족과 함께 꽃놀이 가고 픈데 바깥 생활을 자제해야 하는 요즘입니다. 나쁜 모든 것들이 오늘 내리는 빗물에 싹 씻겨 사라지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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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인데 방콕입니다. 꽃은 피어 오라고 하는데 갈 수가 없네요. 코로나19 소식으로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네요.
대구공업고등학교는 1925년 개교했다. 2025년이면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는 100년 전통의 대구지역 대표 고등학교다.
1927년 3월25일 대구공립공업보습학교로 문을 열었다. 제1회 졸업생인 15명의 인재를 시작으로 1980년 가장 많은 졸업생을 배출(제51회 졸업·1천480명)하며 지역 경제발전에 공헌했다.
대구공고는 현재까지 동문 6만여 명을 배출하며 수많은 인재와 걸출한 인물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산업화의 시대, 인재의 산실로
대구공고 최고 전성기는 1987년부터 1991년까지 3년이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대구공고지만 3년 연속으로 매년 졸업생 1천400명을 넘긴 적은 이때가 처음이다.
당시 한해 한 학년은 24학급으로 1천428명 정원의 초대형 학교인 셈이었다.
학급당 60명이 편성됐으니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우리나라 산업화 격동기에 얼마나 많은 인재 산실 구실을 했는지 보여주는 수치기도 하다.
이러한 양적, 질적 번성기를 뒤로한 채 공업계 고등학교 쇠퇴기에 들어서며 지금은 점차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
지난해 90회 졸업생 숫자는 398명으로, 전성기 대비 졸업생 수는 4분의 1로 줄어들었다.
◆대구공고 동문회 창립
대구공고 동문회는 1925년 개교 이래 일제 강점기, 광복, 6·25 전쟁 휴전 후인 1954년 2월14일에서야 대구공업 중·고등학교 동창회 창립총회를 개최해 창립됐다.
동문회장은 초대 동문회장인 문위경(13회) 동문 이후, 현재 박종판(50회) 제34대 동문회장까지 이어지고 있다.
대구공고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만큼 사회 각계각층에서 활약하는 동문이 많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 등 2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대통령 2명을 배출한 것은 영국의 이튼스쿨과 같은 명문 고등학교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또한 최순달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대구공고 21회 졸업생이다. 최 전 장관은 우리나라 항공우주산업의 선구자이자 널리 알려진 인공위성 박사다.
한국 세라믹 산업의 태두인 장성도(19회) 전 KIST 교수, 박수길(23회) 전 UN 대사, 노희찬(33회) 전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최진민(30회) 귀뚜라미 보일러 회장, 도승회(25회) 전 경북도 교육감, 신태용(59회)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동문이 헤아릴 수 없이 포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해 있는 대구공고 동문은 유달리 끈끈한 결속력과 소속감에 대한 단단한 유대 의식이 강한 동문으로 알려졌다.
대구공고 동문은 '땜장이' 학교 출신이라는 자부심과 자존감을 지니고 있으며, 그 자부심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업계 고등학교라는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자랑스러운 동문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기습남침으로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대구공고에 재학 중이던 학생 273명은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도 펜 대신 총을 들고 전선으로 달려 나가 참전했다. 대구지역 학도병 중 가장 많은 인원이었다.
또한 1960년 2월28일 자유당 정권의 학원탄압에 맞서 싸운 '2·28 대구 학생민주화운동'에서 대구공고 학생들을 비롯한 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은 학원 탄압의 부당성에 항거, 대구 젊은이들의 기개를 만방에 떨쳤다.
특히 대구공고 동문 김윤식(16회) 시인은 '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이라는 저항시를 발표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김현산(23회) 동문은 두류공원에 세워진 대구 학생민주화운동 기념탑을 디자인했으며, 박명철(32회·제8대 2·28공동의장)동문은 2·28민주화 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까지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수조에 물고기 몇마리 바꾼다고 수조의 환경이 달라지랴 물고기가 문제가 아니라 수조에 고인 물이 문제인걸 미래통합당에서 TK지역 현역의원 6명을 공천에서 제외 하였단다 그런다고 물갈이가 된다고 할수 있을까 민주당도 미래통합당도 지금의 정치 풍토에서는 국민이 바라는 올바른 정치가 될수 있을까 싶다 쌈박질이나하는 국회 그리고 정치판 확 갈아 엎을 묘수는 없는걸까 유권자들이 나서 심판 해야는데 지금의 정치판 공천시스템 으로선 그나물의 그밥 세상이 참 개탄 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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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달성군 남평 문씨 세거지에는 목화 씨앗을 맨 먼저 들여온 고려 시대 삼우당 문익점을 기리기 위하여 목화밭을 조성하여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