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법
부부나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잘 모릅니다.
얘기를 귀담아듣지 않고
'나는 다 안다'라고 생각하니
갈등이 생깁니다.
상대 마음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이해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요.
'내 마음에 든다 안 든다'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편하게 바라봐 줘야 합니다.
상대가 얘기할 때는
'아, 저랬구나', '아, 저런 마음이었구나"
그냥 그대로 듣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마음 상태를
알아차릴 수 있고
상대방의 마음도 헤아릴 수 있습니다.
행복연습
법륜스님 행복학교
 
 
 
 

· 
<행복한 고구마 / 목성균님>


내가 강릉 영림서 진부 관리소 말단 직원일 때 월급이 칠천몇 백 원이었다. 그 돈으로 어린애 둘과 아내와 내가 한 달을 빠듯하게 살았다. 어떤 때는 아내가 담배를 외상으로 사다 줄 정도였다. 새댁이 담뱃갑을 건네주면서 조심스럽게 신랑한테 하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담배는 외상 주는 게 아니래, 자기 담배 못 끊지?”

늘 퇴근이 늦었다. 잔무가 있어서 늦을 때도 있었지만 잔무가 없어서 늦는 때도 많았다. 잔무가 없으면 미뤄두었던 고스톱 화투를 쳐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 간에 숙직실에서 화투를 치는 것은 동료애를 돈독히 하는 것이지 절대로 노름은 아니다.
특히 산읍이 눈 속에 깊이 묻히는 겨울에 그랬다. 어두워져서 전등에 스위치를 넣으면 늙은 소장님은 큰 곰처럼 어정어정 소장실을 나갔다. 보나 마나 면장님 사택이거나 지서장님의 하숙집으로 마작하러 가는 것이다. 우리는 눈을 맞추고 사무실 뒤 숙직실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면 사환은 알아서 관리소 앞에 있는 ‘삼척 집’에 직원들이 숙직실에서 고스톱 화투를 친다고 이르고 퇴근을 했다.

밤이 이슥해서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고 오는 소리가 숙직실 앞에 와서 멎으면 문이 벌컥 열렸다. ‘삼척 집’ 늙은 아주머니였다. 머리에 이고 온 도토리묵과 찌개와 막걸리 주전자가 담긴 함지박을 숙직실 안에 들여놓으며 볼멘소리를 질렀다.
“색시들 기다려, 먹고 그만 집에 가-.”
마치 자기가 직원들의 장모님이라도 되는 양 성미를 부렸다. 그러면 고스톱 판은 끝났다. 직원들은 밤참과 막걸리로 배를 채우고 만족해서 “크-윽-.” 트림을 하면서 숙직실을 나섰다. 지금도 가끔 행복한 포만감을 느낄 때면 그때처럼 생리적인 소리를 일부러 내본다. 그러면 한결 행복하다.

숙직실을 나서면 흰 눈이 소복한 부피를 지으며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나의 집은 읍내 밖 진부 농고 뒤에 있는 농가의 바깥채였다. 버스정거장 앞을 지나서 논둑길을 건너가야 했다. 아내가 어두워지면 윗방에 있는 전등을 내다가 추녀 밑에 걸어 놓고 불을 밝혀놓았다. 나는 그 전등 불빛을 등댓불처럼 의지하고 어두운 논배미를 건너서 집에 가곤 했다. 그러나 그 전등은 따뜻하게 내 삶을 고무해 주는 정도지 삶의 길잡이 역할까지는 못했다. 적설에 묻힌 논배미에는 도대체 어디가 논바닥인지, 논둑인지 구분이 안 되었다. 그 불빛은 논배미의 적설 상태까지 밝혀 주진 못했다. 다만 ‘빨리 오세요.’ 하는 아내의 눈짓에 불과했다. 논둑을 더듬어 가다가 실족하면 논둑 아래 적설 속에 빠지고 말았다.

버스정거장 모퉁이에는 소아마비를 앓아서 수족을 잘 못 쓰는 아주머니가 군고구마 장사를 하고 있었다. 눈 속에 깊이 잠들어 있는 작은 산읍 모퉁이, 내가 집에 돌아오는 그 늦은 시간에는 군고구마가 팔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데 아주머니는 시린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 앞을 그냥 지나갈 수가 없어서 늘 몇 알의 고구마를 샀다. 그해 겨울 나의 하루 일과의 마지막은 그 아주머니에게 군고구마 몇 알을 사는 일로 끝나는 셈이었다. 늦은 밤 그 군고구마를 가지고 가서 깜박깜박 졸면서 신랑을 기다리던 새댁에게 불쑥 내밀면 참 좋아했다. 그 재미에 몇 알의 군고구마를 사들고 갔다.

군고구마를 사서 잠바 앞섶에 넣으면 온몸이 따뜻했다. 논둑에서 떨어져 눈 속에 빠져도 춥지 않았다. 따뜻한 고구마를 품어서 그런지 눈 속이 아늑했다. 넘어진 자리에서 쉬어간다는 말처럼 나는 눈 속에 빠져서 잠시 동안 그대로 있었다. 고구마의 온기도 따뜻하고, 논배미 건너 내 셋집 추녀 밑에 걸린 분홍색 백열등 불빛도 따뜻하고, 내 마음도 따뜻했다.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밤이 늦었다. 차라리 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은 푹한데 눈이 오고 난 뒤 갠 날 밤은 숨을 못 쉴 지경으로 냉기가 혹독했다. 산맥들도 칼날처럼 등성이를 세우고, 별들도 쳐다보기 민망할 정도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그날은 고스톱 화투를 해서 돈도 좀 땄다. 숙직실을 나서자 볼이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가웠다. 잠바 속에다 자라목처럼 얼굴을 묻고 종종걸음을 쳤다. 고구마도 몇 알 더 사고 아주머니에게 개평을 몇 푼 줄 생각에 즐거운 마음으로 버스정거장 모퉁이까지 왔다. 그런데 아주머니 대신 웬 어린 소년이 서 있는 것이었다.

“너 누구냐?”
“영림서 아저씨이에요?”
“그래-.”
“일찍 좀 다니세요.”
처음 보는 녀석이 볼이 부어 가지고 감정적으로 그러는 것이었다.
“임마. 내가 일찍 다니든 늦게 다니든 네가 무슨 참견이야-.”
“아저씨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감기 걸렸으니까 그렇죠.”
그 녀석이 군고구마 장수 아주머니 아들인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늘 그래요. 영림서 아저씨 퇴근이 늦어서 늦었다고요.”

그때 내 나이 서른한 살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내가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에게 고구마 몇 알을 사는 것은 내 행복을 위한 것이지 그 아주머니 장사시켜 주기 위한 것은 아니다.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품고 발간 전등 불빛을 지향해서 눈 쌓인 논배미를 건너가면서 나는 늘 행복했다. 먼바다에 나갔다가 포구의 등댓불을 지향하고 돌아오는 작은 만선 어부의 마음이 그럴까. 그 행복감은 따뜻한 고구마 봉지를 가슴에 안음으로써 비롯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 아니었다.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준 것이다.
소년은 물어보지도 않고 내가 늘 사 가지고 가는 그 몇 알의 고구마를 가슴에 안겨주고, 군고구마 화로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휭하니 거리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졌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군 고구마값 받는 것도 잊어버리고 갔다.
그 소년은 어머니가 일러준 대로 내가 사 가지고 갈 그 몇 알의 고구마 온기를 혹한 속에 몇 시간 동안 떨고 서서 지켰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저의 어머니의 친절이 얼마나 가당찮은 것인가를 발견하고 화가 났을 것이다.

다행히 그 아주머니는 바로 감기를 털고 고구마 장사를 했다. 나는 고스톱 화투를 치면서 아주머니를 거리 모퉁이에 세워 놓지는 않았다. 일찍 그 아주머니 앞을 지나갔다. 일찍 집에 들어가는 것이 늦은 밤에 군고구마를 안고 들어가서 조는 아내를 기쁘게 해주는 것만치 재미는 없었지만 아주머니가 고생할 생각을 하면 도리가 없었다.
장중한 태백산맥에 둘러싸인 작은 산읍의 겨울밤, 칠천몇백 원짜리 말단 공무원을 행복하게 해준 아주머니의 행복한 고구마가 먹고 싶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김녕김씨 충의공파 파조 백촌 김문기님의 영정이 봉안되어 진 장소

금회영정각 입니다

사육신이라고 하면 잘 아실겁니다
조선시대 12세의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가 15세에 숙부인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단종.
바로 그 비운의 임금 단종의 복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여섯 신하가 사육신이라고 하는데 ​
사육신은 성삼문ㆍ박팽년ㆍ하위지ㆍ이개ㆍ유성원ㆍ유응부 6명을 가리킵니다.
조선 중기 이후 충절(忠節)을 상징하는 사육신과
그리고 1970년대 후반 갑자기 ‘사칠신(死七臣)’이라는 말이 세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지요
이 논쟁의 중심인물이 파조 ‘백촌 김문기’ 입니다.
백촌 김문기님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던 금회영정각이 없어졌습니다.
어제 동네 한바퀴를 돌다 보니 금회영정각이 흔적도 없이 뜯겨져 나가고 빈터만 횡하니 남았습니다.
대구의 문화유산이라 하더니 어떻게 이렇게 흔적없이 뜯겨져 흔적조차 없을까요?
헐어내고 새로이 복원하려고 그런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렇게 우리의 문화 유산이 하나 더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맨 마지막 두장의 사진은 금회영정각이 철거된 사진 입니다.

[놀라운 숯의 비밀]
1. 과일이나 채소 쌀을 씻는 물에 숯을 넣고 10 - 20분 놓아두면 숯이 농약 성분을 빨아들인다.
2. 음식을 끓일 때 숯을 넣으면 음식물이 부서지지 않아 요리의 모양을 예쁘게 유지할 수 있다.
3. 숯은 물속의 유해 물질을 흡착 분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수 효과를 낸다. 수도물에 넣어두면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고 물 맛도 좋아진다.
4. 숯을 튀김 기름에 넣으면 기름이 잘 산화되지 않고 요리의 선도가 높아진다 .
5. 숯을 넣어 밥을 하면 좋지 않은 쌀이나 묵은 쌀이라도 햅쌀로 지은 밥처럼 밥맛이 좋다.
6. 숯을 집안 구석 구석에 놓아두면 공기정화 역할을 한다.
7. 숯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김치냄새 등의 여러가지 냄새를 없앨 수 있다.
8. 숯을 구두 속에 넣으면 퀴퀴한 발 냄새를 없애 준다.
9. 숯을 후미진 곳에 놓아두면 바퀴벌레나 개미를 퇴치하는 효과도 있다.
10. 쌀통에 숯을 넣어두면 바구미가 생기지 않는다.
11. 숯이 컴퓨터나 텔레비젼 등의 전자파를 흡수한다.
12. 화초를 심을 때 숯 가루를 뿌리면 화초가 잘 자란다. 화분 위에 뿌리거나 숯 덩어리를 올려놓아도 화초가 잘 자란다.
13. 숯을 욕조물에 넣어 체내의 유해한 화학물질이 피부에서 배출된다.아토피성 피부염과 피부미용에 좋고 신경통과 요통을 완화시킨다.
14. 숯 가루를 탄 물로 관장을 하면 체내에 쌓인 숙변을 제거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15. 간장을 띄울 때 숯을 넣으면 잡균이 생기지 않는다.
16. 숯을 바구니에 담아 잠자리 옆에 두거나 침대 밑에 두면 숙면과 피로회복 및 에너지 충전 효과가 크다. 숯 가루를 잘 싸서 베개에 넣어두는 것도 좋다.
17. 숯은 습도를 조절 가습기 역할을 해 준다. 숯은 겉 부분을 물에 씻어 말린 뒤 열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배암 7. 뱀막이 풍습 -김준호 재피방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동물상징은 그 접한 환경에 따라 선과 악, 긍정과 부정, 복과 재앙, 지혜와 교활, 죽음과 생명의 양면적 대립성을 보이고 있다.
뱀도 마찬가지였다. 긍정적 이미지만큼 부정적 이미지도 많았다. 특히
징그러운 생김새와 날름거리는 혀, 은밀한 움직임, 특히 독을 품은 독사일 경우는 부정적 이미지의 극치를 달렸다.
특히 현실에서 뱀은 ‘전갈, 거미, 두꺼비, 지네’ 등과 함께 생존을 위해 치명적인 맹독을 사용하는 특성 때문에 독사에게 물리면 죽음과 파멸이라는 재앙을 겪어야 해서 항상 경계와 혐오의 대상이었음은 숨길 수 없는 진실이었다.
특히 기독교에서 뱀은 사탄의 부하로 에덴동산의 두 남녀를 악함과 교활, 타락과 유혹, 혼돈과 파괴, 선악을 알려주는 악함의 상징으로 여겼다.
이는 중동의 자연환경과 목축문화와 관련이 깊다. 중동은 건조한 사막 기후로 먹잇감이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극한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격성도 강하고 맹독을 가진 방울뱀 계통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목축을 하며 이동하는 유목민들이나 양은 뱀에게 물려 죽을 위험을 항상 안고 살아야 했다. 중동에서는 뱀은 매우 위험한 동물로 여겨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팽배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 민속에서도 “구멍에 든 뱀”, “뱀의 굴이 석 자인지 넉 자인지 어찌 알랴”과 같이 뱀은 음흉하고 교활함으로 경계의 대상이기도 했다. 특히 독사의 경우는 대하는 자세가 구렁이와는 완전하게 달랐다.
농경 시대에는 야외 활동을 하던 도중 뱀에 물리는 사고가 무척 잦았다. 그래서 항상 어디를 가던, 무엇을 하던, 조심해야 하는 것이 독사와의 조우였다.
그중에서 갈색 바탕에 얼룩무늬 반점이 있는 살모사는 치명적인 독이 있어, 머리를 들고 혀를 날름거리고 있으면 무조건 삼십육계가 상책이었다.
과거에는 가옥의 구조가 짚, 나무, 돌, 흙, 기와와 같이 자연물이 대부분이라 인간뿐만 아니라 쥐, 새들과 같이 동거하며 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독사가 평소에는 산이나 들에 살면서 개구리나 두더지를 잡아먹다가도, 이따금 쥐나 병아리 같은 먹이를 찾아 민가에 출몰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여성들과 아이들, 소와 염소, 닭들이 기겁하는 등 온 동네가 난리가 나기도 하였다. 자칫 물리면 상처 부위가 부어오르고 극심한 고통을 유발하며, 전신으로 뱀독이 퍼졌을 때는 구토, 오한, 어지럼증 등 치명적인 고통이 따랐고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미련스럽게 보이지만 돼지는 독에 대한 저항력이 있어, 독사가 물어도 꿈적도 하지 않고 도리어 독사를 먹어치우는 천적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까치 독사라도 돼지우리에는 얼씬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새해 첫 뱀 날인 상사일(上巳日)이면 한 해 동안 집안에 독사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한 여러 가지 ‘뱀 막이’ 풍속이 성행했다.
일반적으로 ‘뱀뱅이, 뱀첩’이라고 하여 '뱀 사(巳)'자를 쓴 작은 부적을 기둥에 거꾸로 붙이기도 하고, 뱀 날 새벽 들기름으로 먹을 갈아서 “靑巳 紅巳 白巳 李三晩 赤帝子蛇(청사 홍사 백사 이삼만 적제자사)”이라는 ‘뱀첩’을 써서 대들보 기둥에 거꾸로 붙이기도 했다.
적제자(赤帝子)는 길을 막고 있는 큰 뱀을 한 칼에 베었다는 한 고조 유방을 말하고,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조선 후기의 명필로, 아버지가 독사에 물려 세상을 떠나자, 독사만 보면 껍질을 벗겨 통째로 씹어 먹었다고 하여 뱀을 막는 부적이 된 인물이다.
또 뱀이 무서워하는 전설의 칼을 등장시켜 ‘발검참사(拔劍斬巳), 항우검(項羽劒), 패왕검(覇王劒)’ 등을 기둥에 써 붙여 겁박하기도 했다.
뱀이 멀리 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방무일사(四方無一巳), 사공천리거(巳公千里去), 동서남북 속거천리(東西南北 速去千里) 등의 첩을 기둥 아래나 담벼락, 우물, 축사 등에 거꾸로 붙이기도 했다.
한편 작대기에 새끼줄을 길게 묶어 뱀 줄을 만들어, 쑥, 목화, 고추 등을 매달아 불로 독한 냄새를 피우며 뱀막이를 하기도 했다.
이때 “뱀 치자, 뱀 그슬리자, 뱀 지지자”라고 고함을 지르며 뱀을 쫓아내는 시늉을 한 후, 집 밖에서 뱀줄을 불에 태우는데 이를 ‘뱀 치기, 뱀 지지기, 뱀 그슬리기’라고 한다.
“중아 중아 칼 갈아라
저놈 잡아 회 해먹자”
-강원도 삼척/ 뱀 쫓는 소리
또 민속에서는 뱀날을 털이 없는 동물 날인 무모일(無毛日)이라 하여 뱀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에 손을 대면 뱀이 들어와 화를 입는다고 하여 머리카락을 빗거나 감지 않고 몸을 사리고 근신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뱀은 독이 되거나 약이 되거나 두 가지의 이중적인 상징성은 확실했다. 을사년(乙巳年)은 크게 잘 되기는 바라지 않는데, 잘못되지나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 뱀첩이라도 붙이고 싶은 심정이다.
-손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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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誘惑)
여우가 양고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살구씨 기름의 향을 무척 좋아한답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여우를 사냥할 때 양고기를 다져가지고, 물론 그 안에 독약을 넣고...
거기에 살구씨 기름을 발라서 여우가 다니는 길목에 보기 좋게 놓아 둡니다.
그런데 여우가 왜 여우겠습니까...
딱 보고 눈치를 채는 거죠.
왜 뜬금없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고기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기름을 바른 것이 왜 내가 좋아하는 길목에 놓여 있겠는가?
딱 안다는 거죠, 미끼라는 것을...
그렇게 알면 안 걸려들어야 하는데, 상당수의 여우들이 알면서도 걸려든다는 겁니다.
먹으면 죽는 걸 아는데 처음부터 덥석 물리는 없죠.
처음엔 그냥 갑니다...
'아 저건 사람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거다.'
그런데 유혹이 너무너무 강하니까 생각을 하는 거예요.
'냄새 한 번쯤 맡는 건 괜찮겠지...' 사실 괜찮지요.
여우는 이런 생각이에요. 너무 유혹이 강하니까...
냄새를 맡으면 그 유혹을 떨쳐버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은정반대입니다.
냄새도 안 맡은 상황에서도 떨치지 못한 유혹인데,
냄새를 맡고 어떻게 떨쳐 버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우는 냄새만 맡고 그냥 간답니다.
냄새만 맡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가다말고 또 생각을 합니다.
'혀끝 한번만 대보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돌아와서 입을 대는 겁니다.
'요만큼만 먹는건 괜찮겠지? 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먹다가 치사량을 넘어서면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하면서 결국은 다 먹어버린다는 겁니다.
사람이 욕심에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도 이와 같지요.
처음부터 그렇게 얼토당토 않은 유혹의 구렁텅이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다가...'요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말려들어 가다가...
이제는 돌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단계로 가고
그러면 감각도 완전히 마비되고...
이런 경우를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표현합니다.
올라탄 이상 뛰어내리면 잡아 먹히는 것이고
끝까지 가보면 어디까지 갈지는 몰라도 '그러나 여기서 뛰어내려 죽을 수는 없다' 이렇게 되는 겁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요정도 까지는 괜찮다' 하는 그 생각을 과감히 끊어야 합니다.
'나는 괜찮겠지' 하는 생각도 위험해요. 무단횡단을 해봐도 아무일 없잖아요?
그러나 그런 습성을 가지고 있는 한, 언젠가는 당한다는 거죠.
그리고 당하면 치명적이라는 것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표현도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요정도쯤... 짧은 거리는 옷이 젖지 않겠지.
그러나 어느 정도 가다 보면 옷이 푹 젖고 그 옷은 도저히 입을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세상에는 유혹의 덫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요정도 까지는 괜찮겠지
그 생각을 피해갈수 있는 길은 자신과 싸움에서 꼭 승자가 되가지고 초기에 벗어나는 길을 찾아 유혹에서 벗어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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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은 작은 디테일에 흔들립니다.
누군가가 내 독특한 부분을 알아봐주고 진심 어린 칭찬을 건넨다면,
마음 한 켠에 따뜻한 자리가 생기죠.
단, 그 칭찬이 과하지 않고 미묘할수록 더 강렬합니다.
때론 자신에 대해 너무 빨리 드러내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약간의 미스터리를 남겨 상대방의 호기심을 끌어보세요.
연결의 시작은 비밀을 나누기보다 비밀을 상상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유대감,
예를 들어 상대의 제스처를 자연스럽게 따라하거나
대화의 속도를 맞추는 행동은 강력한 연결을 만듭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같은 리듬’을 느낄 때 안정감을 얻습니다.
무엇보다, 상대가 좋아하는 행동을 칭찬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것은 관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듭니다.
사람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이에게 끌리기 마련입니다.
가끔은 예측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흥미를 더하고,
새로운 경험을 공유하며 깊은 추억을 만들어보세요.
결국, 마음을 사로잡는 일은 함께 공명하고, 성장하며,
기억을 쌓아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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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
등 뒤에 숨어 조종하니
등을 돌리면 보이지 않을까?
등 뒤에 숨으면 감춰질까?
너는 꼭두각시,
흔들리는 실 위의 삶.
그 줄이 끊기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을 모르고,
허공을 걷는 우매한 인생아.
진실은 등 뒤에 있지 않다.
그 줄에 목숨이 걸렸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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