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나 유카타를 챙겨 입고 간단한 목용 용구를 챙겨 온천탕으로 향했다.

온천탕은 어제 남탕으로 사용했던 곳은 여탕으로 여탕으로 사용하던 곳은 남탕으로 안내 팻말이 바뀌어 있었다.

오늘도 설마 여자 관리자가 남탕을 휘젖고 다니진 않겠지

온천욕을 하고 객실로 들어가려 엘리베이트를 내리니 아마 같이 여행온 일행 인듯 한 사람이 

네게 아내가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 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조금 꾸미적 그렸는지 조금 늦었던가 보다 얼른 입실하여 짐들을 챙기고 

식당으로 내려 갔다 아직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아 로비에 잠시 기다리며 창밖의 도야호수를 감상 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입장 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의 뷔페식당과는 달리 입장을 하면 손바닥 만한 표찰을 준다

앞면은 식사중이란 알림이 씌여져 있고 뒷면은 식사완료라는 알림이 씌여 있다.

그러고 보니 뷔페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중 음식을 쟁반에 담아 오려  잠시 자리를 비웠는데 

내가 식사하던 자리가 먹다만 음식물이 남아 있는데도 자리를 치워 버려 황당 했던 느낌을 받은적이 있었는데

이런 표찰로 그런 황당한 사태를 미연네 방지하려는 호텔측의 배려인것 같았다.

음식물을 쟁반에 담아 와서 식사를 하였다.

뷔페 음식이란게 많은 음식들로 조금씩만 맛 보자 했던게 과식을 부르는 일이 비일 비재 함을 알면서도

배가 불러와 포만감을 느끼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을 조금씩 조금씩 더 먹게 되는게 현실이다.

오늘 아침도 또 포식을 하고 만다.

더 넓은 통창의 가장자리 뷰가 좋은 자리에 앉아 도야 호수를 보며 식사를 하고 그리고 후식으로 

낫도와 달콤한 케익 그리고  커피 한잔 까지 일본은 우리 음식 문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아 그렇게 가릴게 없어 좋다.

다른 나라 특히 중국으로 갔을때 음식에 풍기는 이상한 향과 맛으로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질 못하였는데

일본은 음식이 약간 달짝 지근한 맛은 있지만 우리네 입맛과 크게 다르지 않아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객실로 올라가 캐리어를 챙겨 오늘은 삿포로로 가야 한다고 했다.

얼른 짐을 챙겼다 그리고 체크아웃 하였는데 아차 뭐 빠트린것은 없지 하다 충전기를 챙기지 않았다는 생각에 

다시 객실로 뛰어 올라 갔더니 충전기는 이미 캐리어에 챙겼는지 없다

그런데 한가지 챙기지 못한 물품이 눈에 뛰어 얼른 챙겼다 썬글라스를 TV에 걸어 두었는데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스럽게 소지품을 챙기게 되어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며 로비로 뛰어가니

이미 버스가 당도 하여 우리 일행들은 버스에 탑승 중이다.

아이코 한발 늦었구나 하면서도 그리 많이 늦지 않아 버스를 무사히 탈수 있었고 버스는 다음 여행지로 출발 하였다

도야 썬팔레스 리조트 호텔 객실과 로비 사진이다 하룻밤을 묵고 떠난다

 

버스는 도야호수 주변을 돌아 돌아 사이로전망대로 향햇다. 

내가 심한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과 불면증으로 밤새 자다 깨길 수십번 수면의 질이 좋지않아

코골이 방지기도 써보고 별별 짓을 다 해보지만 타지에서 잠을 자는데 너무 불편하여 수면장애가 와서 

버스로 다음 관광지로 가는 동안 내내 잠에 취해 잠만 잤다 중간 중간 여행 가이드가 상세히 가는 코스와 관광지

그리고 일본의 생활 일본인의 좋은점 또 일본의 선진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고 또 이곳 특산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잠에 취하여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여행 가이드는 제 나름 열과 성의 를 다하여 버스타고가는 내내 설명을 하는데

제대로 새겨 들을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사이로 전망대에 도착하여 잠시 관광을 하라고 하는데 버스에 내리자마자

블랙아이스를 미쳐보지 못하여 미끄러짐 사고를 당할뻔 하였고 사이로 점망대 안에 특산품 판메 매장을 둘러 보고 

높은 사이로 전망대에서 도야 호수를 내려 다 본다. 

큰 감흥은 없었지만 이곳에서 보는 도야 호수의 전경이 안동 국학진흥원 산위에 있던 호계서원에서

안동호를 내려다 보는 그런 느낌 이랄까

그런데 이곳에 헬기장이 있다 헬기관광 체험을 한다는데 3분 탑승에 10만원도 더 넘는다는 요금 표를 보고

과연 탑승객이 있을까 했는데 헬기는 굉음을 내며 하늘로 부양하며 잠시 선회후 내린다.

헬기 관광이라니 이런 것도 있구나.

도야에서의 관광일정은 여기 까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오타루로 향했다

 

오타루는  
 투명한 운하 위로 하얀 구름이 비치는 '오타루 운하'
유리공예로 유명한 '기타이치가라스'
아기자기한 오르골이 있는 '오르골당'
북해도를 대표하는 다양한 디저트를 접할 수 있는 '오타루 디저트 거리'   

이렇게 소개 되어 있다

오타루 운하 거리로 들어서서 하차 후 오타루 운하가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항구도시 오타루 명물 '홋케구이 정식' (임연수 구이)로 점심 식사를 하였다.

식당은 운하옆에 위치하여 운하가 보이고 2층의 식당인데 임연수 구이는 딱딱하고 굳어 발라 먹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큰 부데낌 없이 잘 먹었고 조그만 솥에 놓여진 음식은 가리비 였는데 가리비 구이 한개가 들었었다

어쨌거나 이곳에서도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나 그런 것 없이 잘 먹었다 

식사후 내려와 식당안에 있는 기념품 판매 매점을 보니 이곳에는 마유(말기름) 제품 들이 많고 또 라벤다 꽃을 이용한

화장품이나 그런 종류가 꽤나 많다 그러고 보니 사이로 전망대 에서도 그러한 상품을 많이 본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큰길로 나서니 큰 싸레기 같은 우박이 얼마나 내리는지 우박을 맞으며 오타루운하로 이동

오타루 운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난후 버스를 탑승하고 오르골로 유명한 기타이치 가라스무라는 곳으로 이동 했다.

 

오타루 운하는 

 

 

오타루의 상징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단연 오타루 운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홋카이도의 거점 무역항으로 선박들이 드나들던 곳이었으나,

1986년에 운하 주위에 산책로를 정비하면서 오타루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습니다.

밤이면 이국적인 야경이 펼쳐져 그 아름다움을 더 하고 있습니다.

주위에는 창고를 개조해 만든 고급 레스토랑, 유리 공예관, 골동품 매장 등이 있습니다.

북해도가 홋가이도를 말하는지를 몰랐다
홋가이도 투어라는 대형 버스를 보고서 
그때서야 아하 북해도 = 홋가이도 이곳이 삿포로가 있는 곳
일본은 4개의 섬이 이어져 일본이란 나라가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어떤 섬들을 말하는지는 잘 모르겠고 이번에 간 곳이 
일본 본토 위 그리고 러시아로 귀환 된 사할린 섬 아래 
중간에 위치한 섬 신치토세 공항에서 입국 수속 후
 이동 후 도착한 식당 千歳東郷ビル Aiba 千歲 J-PLACE
이곳서 가마메시 정식을 먹었다 
가마메시는 신선함이 매력인 재료들로 조리한 깔끔하고 
건강한 일본식 솥밥을 이야기 하는데 닭고기와 야채를 넣은 솥밥으로

물만 더 많이 넣으면 닭죽을  연상케하는 그런 음식이다

식사 후 식당 밖을 나서니 천변에 서있는 나무가 가지만 앙상히 남아 인상 적이다.

부근의 편의점과 마트에서 먹을것과 약품을 구매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잠시 둘러 보기만 했을뿐 

시간에 쫒기어 물건을 구매할 만한 여유가 없다 잠시 대기후 버스를 탑승하고

쇼와신잔 이란곳으로 갔다 여행 코스에 대한 사전 지식을 익혀두지 못해

이곳이 어딘지 모르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움직일뿐 버스를 타고 가이드는 쉴새없이 안내를 하고 

쇼와신잔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앞으로 있을 여행 코스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도 

귀애 들어오지 않는다 밤새 차를 타고 오너라 피곤하고 잠을 자지 못해 졸음이 밀려와 듣고 있을수 도 없었다

그렇게 쇼와 신잔이란 곳에 당도했다.

쇼와신잔은

 



 1943년부터 2년간 화산활동에 의해 보리밭이었던 지반이 290m 급격히 상승했습니다.

쇼와시대에 만들어진 새로운 산이라하여 쇼와진산이라 불립니다.

지금도 뜨거운 화산가스를 내뿜고 있으며 가장 높은 표면 온도는 300도가 넘어서 산에 올라갈 수는 없다고 합니다.

 

이곳에 세워진 노인이 관측하는 동상이 있는데 이 분이 우체국장으로 화산 활동을 하는 지반이 상승하는 상황을

매일 매일 관측하여 일지를 작성하여 활화산의 생성을 기록으로 남겨 이분을 기념하여 동상을 세웠다고 하는데 

아직도 활화산 활동을 하는 상태이라 산에서 연기가 올라 오고 있었다.

이곳은 쇼와 진산의 휴게소 같은 곳으로 휴게소 뒤로는 쇼와진산을 높은곳에서 관찰 할 수 있도록 

케이블카가 운행되며 케이블카를 타고 산위에 올라 맞은편의 쇼와진산을 관찰 할 수 있도록 해 놓은 모양이다.

휴게소에서는 아이스크림과 민예품 공예품등 기념품을 판다

다시 버스를 타고일본에서 3번째로 큰 호수인 도야호를 따라 숙소에 도착

도야호의 주변이 약 43키로미터로 정말 넓은 호수이며 호수 뒤로 만년설이 있다는 산봉우리가

흐린 날씨 때문에 잘보이질 않는다는데 눈덮인 산을 보는 것도 행운이 따라야만 볼수 잇다고 하는데

신기하게도 흐린 날씨 임에도 그  모습을 볼수 있었다.

위 사진은 속소인 선팔레스 호텔의 내부 로비에서 본 사진으로  참좋은 여행사 상품 소개 대문에 나온 사진이다

  객실 레이크 뷰, 호수 전망 온천 등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특급 온천호텔 '도야 선팔레스 호텔'

만년설로 뒤덮인 산 봉우리가 멀리 구름에 가려져 있다 점차 모습을 들어 낸다

그러고 보면 우리 일행은 여행의 운이 많이 따르려는가 보다.

속소를 들어서니 2인 1실로 도야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8층의 객실인데 샤워룸과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고 

편히 쉴수 있는공간으로 일본식 전통복장인 유카타가 제공되며 호텔내부에서 온천욕을 하거나 호텔내부에

식사를 하러갈 때 유카타를 입으면 된다고 한다.

간혹 팬티를 입지 않고 유카타만 입고 나서 식사를 할때 나 의자에 앉을때 쩍벌로 자신의 소중이를 다른이에게 

노출 하는 경우 가 있나 보다 가이드가 그런 조심성 없는 행동을 하지 말고 팬티를 입고 다니라고 조언을 하기도 했다.

실제 온천욕을 하고 나서는데 팬티를 입지 않은 이들이 꽤나 있는 듯 하다.

실제 일본인들은 팬티를 입지 않는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요즘 비자가 면제 되어 많은 관광객이 모여 들기도 하는데

그들 중 일부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도야 선팔레스 호텔(리조트)의 전경이다

이곳에서는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제공되고 뷔페식으로 참 많은 음식들이 제공 되는데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불러 후식도 못 먹을 만큼 배를 채웠다

식사 후 온천욕을 즐기고 숙소로 올라와 가지고간 막걸리 한잔으로 하루 일과를 끝낸다.

 

온천의 욕실은 노천탕과 수중 안마를 할수있는 스파 시설과 사우나 시설이 있는데

조금 당황 스러웠던 것이 이곳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여자로 이 여자는 스스럼 없이 남탕을 돌아 다니며

목욕 용품을 챙기고 정리하고 그런 일을 한다 

벌거벗고 소중이를 덜렁이며 내놓고 다니는데 여자가 나타나 헤집고 돌아 다니니 얼마나 당황 스럽던지

하긴 나도 당황 스럽지만 그 여인네는 얼마나 민망 스러울까 ㅎㅎㅎ

그러고 보니 온천탕의 남탕과 여탕이 매일 바뀌나 보다

가이드의 말 처럼 오늘 여탕이 남탕이 되고 남탕으로 사용하던 욕실이 여탕이 된다.

이틑날 아침 온천욕을 하기위해 욕탕으로 들어서니 남탕과 여탕 팻말이 바뀌어 있다.

물론 욕실의 물은 모두 빼내고 새로운 맑은 물로 교체 된단다 참 특이하다고 생각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북해도 첫날의 여행은 이것으로 마무리 할 참이다

작은딸 혼사를 치루고
자축의 의미로 북해도 여행을 기기로
결정하고 예역을 하였지만
딸아이의 애완견 호두를 돌봐 줄이 없어
딸아이의 부탁으로 호두를 돌봐주기로 결정
계약금과 위약금을 날리고 북해도 여행을
포기 하였는데
딸 아이가 신행을 다녀온 후 여행을 가라고
그 비용은 부담하겠다고 하여
딸아이 신행간 다음 애완견 호두를 케어해 준 다음
딸 아이가 끊어준 티켓으로 북해도 여행 출발

밤 11시00분 북부 정류장에 들어서니 북부정류장의 대합실은 개방 되지 않고

불도 꺼지고 차량 탑승을 할 수 있을지 혹시 잘못된건 아닐까 가슴 졸이다

세워진 버스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잠깐 기다려 기사에게 물어보니  탑승 가능 하다 하여

버스티켓 발권하고 11시 20분에 출발 밤을 새워 차를 달려 인천공항에 들어서긴 했지만 깜깜한 오밤중 

도착시간 2시59분 인천공항 1터미널 도착

한참을 기달려 비행기 탑승권 발권하고 출국 수속 밟아 탑승장에 들어서서 희끄무레 밝아 오는 아침

공항 풍경을 핸드폰으로 담아 본다

아침 출근길 경로를 우회하여 낙동강 강변 둑길을 지나
다끼들과 은행나무 숲을 지나치며 강변 풍경과
농촌의 가을걷이 풍경을 보며 달리다
월성리에 다다르면 좌회전 해야는데
좌회전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우회전 하여 조금 내려 오면
하수 종말 처리장 입구가 나오지 곧장 지나쳐 유턴을 하여야 함에도
오늘은 이곳에서 다시 경로를 이탈하여 하수 종말 처리장 쪽으로 들어선다
하수 종말 처리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메콰스퀘이어 나무 숲을 잠시 들려 이 가을의 메콰스퀘이어 나무 숲을
사진으로 남겨 보려 잠시 걸으며 사진을 몇 장 찍어 본다
가을의 메타 숲이 참 멋지다는 생각 밖에 .... 감탄이 절로 나오네

역경 지수가 승패를 좌우한다^^

유리창을 바닥에 떨어뜨리면
깨져 버리고 진흙은 바닥에 달라붙어 버립니다.

그러나 공은
탄력 있게 튀어 올라 더 높이 날아갑니다.

마치 떨어져도 다시 튀어 오르는 공과 같이
절망과 실패를 극복해 내는 힘을 ‘회복탄력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영어 단어 중 ‘resilience’는
(충격·부상 등에서의) 회복력, 복원력, 탄력을 뜻하는데..

회복력, 복원력, 탄력
모두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힘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속 위대한 인물 중
역경과 시련이 없었던 인물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니 어쩌면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일수록
그 어떤 이들보다 괴로운 실패와 역경의 시간을 지났습니다.

산악인의 진가는
야산에서가 아니라 험한 산을 오를 때 나타납니다.

뱃사공의 진가는
잔잔할 때가 아니라 풍랑이 불어닥칠 때 나타납니다

인생의 성패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기회 역시
환난과 시련, 도전을 받을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 입니까^^

‘나는 포기를 쉽게 하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한
순간 이미 스스로가 그것을 단점이라고 인지한 것입니다.

그럼,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 보세요.

그렇게 ‘최선’을 다한 후
돌아본 모습이 진정한 ‘당신 모습’입니다.


포기하지 않는것도 실력이다
알렉스 퍼거슨 ○

행복한 주말들 보내시길^♡^

도심에서 벗어난 직장에 다니다 보니
출근 경로를 조금만 우회 하여도
이런 멋진 풍경들을 볼 수있어 얼마나 좋은지
고령 다산면 다끼들의 넓은 들에 가을 걷이 하는 모습이며
또 겨울 작물을 파종하는 모습도 보이고
빛 바래어 노럏게 물든 은행 나무 숲을 볼 수 있어
너무나 좋습니다
이런 풍경들을 볼수 있는 지금이 참 행복하게 느껴 집니다

<추도사>
■ 전두환, 피안으로 떠난 님 !

전두환 대통령님!

1988년 11월 23일
당신께선 이 땅에 태어난 사명을 다 이루시고 백담사로 떠나셨습니다.

부처님의 도량에서 세속의 모든 잡념을 자비와 무욕의 하늘가 적멸(寂滅))로 올리시며 육신의 도리를 다하셨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2021년 11월 23일
당신께선 천명(天命)을 다하시고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백담사로 떠나던 날 이후 영욕의 세월 33년만에 당신은 부처의 세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이 되셨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박정희 대통령 사후(死後), 극도의 혼란과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은 당신만이 구원자였습니다. 그리고 구해내셨습니다.

무수한 환난을 딛고 당신은 대한민국이 목표하는 고지에 온몸을 던진 장쾌(壯快)한 무인(武人)이셨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당신은 바위처럼 사셨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소신(所信), 비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 그리고 역사 앞에 달빛처럼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 세속의 유혹으로부터 모든 것을 걸러낸 당신께선 보살행을 걸으신 분입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아웅산 묘역에 메아리치던 슬픔을 당신은 어찌 이겨내셨습니까!

또한 KAL기 폭파되어 비처럼 바다에 떨어지던 날의 슬픔을 당신께선 어찌 이겨내셨습니까!

전두환 대통령님!

한강은 당신의 손으로 아름다운 오늘이 되었습니다.

국민을 사랑하는 당신의 눈빛으로 국민들은 따뜻한 의료복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국민을 껴안는 당신의 가슴으로 국민들은 풍족한 연금복지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당신의 진정한 유산은 한강도 복지도 아닙니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불멸의 의지, 그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진정한 유산입니다.

그 정신, 그 뜻은 유전이 되어 우리들의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 위대한 유산, 영원할 것을 약속 드립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오늘은 당신께서 떠난 지, 3년이 되는 날입니다. 부처님을 찾아 백담사로 가신 이후 당신은 33년만에 영혼의 세계로 떠나셨고, 다시 3년 후에 우리는 당신의 기일을 맞게 되었습니다.

3은 생명의 숫자이며, 정족(鼎足)의 수입니다. 그리하여 당신은 무수한 생명을 구해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였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님!

당신의 영면하심은 우리의 바람이자 기도입니다.

저 먼 곳 구천 하늘에 부처의 꽃이 피어나기를, 우담바라 일해(日海) 바다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없는 사랑과 가없는 자비로 살아가는 우리는, 이곳 이승에서 저쪽 피안(彼岸)을 거니는 전두환 대통령님 당신을 향해 뜨거운 눈물로 두 손을 모읍니다.

▲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2024. 11. 23.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끝내 외치지 못한 울분》
☆연희동 어른 3주기 추모 참배를 다녀오다.

어제 11월 23일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맞아 서울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서거 3주기 문화추모제가 열렸습니다.
우리 동문 스물여섯 명은 연희동
사저에서 참배를 마치고 추모제가 열리는 청와대 앞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필자는, 전군구국동지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추모제에서 전두환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관련한 부당성을 알려 외치고자 원고를 준비했습니다. 이를 위해 행사 현장에서 무대 마이크를 5분 정도 할애받을 수 있을지 주최측 구국동지연합회 관계자께 신분을 밝히고, 원고를 건네주며 부탁을 드렸습니다.

결과, 오후 다섯 시 삼십 분까지 모든 행사 일정을 끝내야 하는 빠듯한 집회신고 일정상 별도의 시간을 배분할 수가 없다는 주최측의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막간 3분이래도 시간을 달라 하였지만 난색을 표하였습니다.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5분쯤의 시간은 할애 될 것이라 여겨 사전에 주최측에 요청을 하지 않아, 끝내 울분을 외치지 못한 아쉬움이 작지 않습니다.

과거를 말하는 일상적 추도사 몇 줄 읽고, 시 한 줄 낭송하고, 가곡이나 부르자고 모인 것은 아닐 터인데 왜 이렇게 결기에 찬 카랑카랑한 소리 하나 외치지 않고 무기력한 것인지 몹시 실망스러웠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현장 대응적이지 못하고 틀에 박힌 점잖은 추모집회를 할 바에야 하지 않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현장에서 들리는 카랑카랑한 소리는 전두환 대통령의 생전 육성 뿐이었습니다.
잠자는 울분을 일깨울 결기에 찬 임팩트 있는 공감의 한 방은 한 대목도 없었습니다. 현재를 말하는 일반 시민의 리얼한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든지ᆢ 행사는 너무나 점잖고 조용하였습니다.

거기다, 우리 동문회 조차도 이번에도 예외 없이 대구 내려오는 것이 무엇이 그리 바빴던지 행사 시작 삼십 분 뒤 이제 겨우 첫 번째 추도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버스를 탑승하라는 집행부의 성화에 못이겨 대구로 내려오는 버스에 올라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본질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추도의 예의도 아니었습니다. 차가 좀 밀리면 어떻습니까? 그 밤 안에야 대구 오겠지요.

1시간 20분의 행사조차 끝까지 함께 하지 못하고 달랑 삼십 분 동안 참가 흉내만 내고 조급히 빠져나와야 했던지ᆢ
바삐 헐레벌떡 버스에 올라 필자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집에 꿀 발라놨어요, 왜 이래 집에 빨리 가려고 하지요?" 뿐이었습니다.
어른 제사 모시러 갔다가 향만 피우고 잔도 아직 올리지 않았는데 돌아 나오는 기분이었습니다.
100년 전통 명문의 우리가 왜 이럴까요?

아래는 필자가, 무대에서 알려 외치고자 준비한 원고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할 사실이겠지요.
(2024. 11. 24 一測 박종판)


《전두환 대통령, 국립묘지에 안장하라.》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구에서 올라온 박종판이라는 사람입니다. 저는 지난 3년간 국가보훈처와 법제처 등의 국가기관에 전두환 전 대통령 각하의 국립묘지 안장 불가 판단의 위법성에 대한 질의와 회신을 통해 수없이 공방을 진행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전두환 대통령의 묘소에 관한 말씀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오늘, 전두환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문화추모제 추진 관계자 여러분과 이자리에 모이신 국가와 자유를 사랑하는 애국 시민여러분께 무한한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태광산업 박연차 등으로 부터 600만 달러의 뇌물수수 혐의로 2009년 4월 검찰에 소환되어 조사를 받은 후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 뒷산의 부엉이 바위에 올라 투신자살하였습니다. 600만 불의 사나이 노무현은 그렇게 자살하였습니다.
범죄 혐의를 조사 받다 비겁하게 자살한 노무현의 묘소는, 2009년 8월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국가묘지 1호'라는 유난한 이름으로 지정하여 국립묘지 이상의 수준으로 국가에서 특별 관리하여 성역화 하였습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는 기력이 매우 쇠한 상태에서 2021년 8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천리길 광주 법원에 강압으로 끌려다닌 끝에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광주법원에 끌려갔다온 나흘 뒤 8월 13일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하신 후 가료 중 2021년 11월 23일 서거 하셨습니다.

그것은 좌파정권의 치졸하고도 집요한 탄압에 의한 명백한 전직 대통령 시해(弑害)였습니다.

기력이 쇠잔한 구순의 노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천리길 광주로 재판받으러 갔던 날, 2021년 8월 9일 그날도 일부 언론과 좌파 저들은 꾀병을 부리는 쑈를 한다고 뇌까렸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구순 노인의 병세조차도 비아냥으로 일관하여 금수(禽獸)와 다름없는 짓을 일삼았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소한 지들처럼 꾀병을 부리거나 쑈 따위를 하지 않을 만큼은 사내답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침묵하였습니다. 그것은 전직 대통령 이전에 노인학대의 광란이었고 우리 국민 모두는 침묵의 동조자였습니다.

그렇게, 좌파에게 시해당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유해는 국립묘지 안장은커녕 마땅한 안식처조차 마련치 못하고, 시대의 광기에 매몰된 국민의 비굴한 침묵 속에 서거 3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사저에 머물고 계십니다.
이것이 선진국에 진입하였다고 자랑질 하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지금 현시점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뻔히 지켜보면서도 애써 외면하여 침묵하는 우리 국민은 스스로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이 거부되는 이유가, 비겁하게도 국가 보훈처라는 하급 국가기관의 유권해석 하나를 근거로 국립묘지 안장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적 합의도, 명확한 법리적 근거도 아닙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 불가 사유의 근거가 되는 보훈처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내란죄·외환죄 등의 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이 사면·복권된 경우에도 기왕의 전과 사실이 실효되는 것은 아니므로 국립묘지 안장 대상 결격 사유는 해소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전두환 전 대통령과 똑같이 내란죄로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 후 사면 복권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어떻게 버젓이 국립묘지에 들어갔습니까? 김대중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의해 사면 복권된 그것으로 대통령까지 하였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법리적으로 명확한 사면 복권이라는 사법적 면책에 대하여 이렇게 지들 멋대로 고무줄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이곳 대한민국이 도대체 법치국가가 맞습니까? 자유 우파정권을 자처하는 윤석열 정부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습니까? 공정은 무엇이며 불공정은 또 어떤 것입니까?

*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1년 1월 내란음모죄로 대법원의 사형선고 확정판결을 받고 1987년 7월 전두환 대통령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다.

*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97년 4월 내란반란죄로 대법원의 무기징역 확정판결을 받고 1997년 12월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사면 복권되었다.

두 사람의 대법원 확정판결과 사면 이력은 글자 몇 자 틀리지 않고 똑같은 상황입니다. 법률적으로 사면(赦免, amnesty)이란 판결된 선고의 효력 또는 공소권 상실, 형 집행을 면제시키는 것으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소멸시키거나, 형의 공소권을 소멸시키는 것이라고 사면법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면·복권된 경우에도 기왕의 전과 사실이 실효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다면, 김대중 또한 내란죄·외환죄 등의 형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된 사람이므로 국립묘지 안장 대상 결격 사유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두 사람이 무엇이 다른 가요?

따라서 김대중 전 대통령 또한 묘소를 파묘하여 국립묘지 밖으로 들어내던지, 아니면 전두환 전 대통령 또한 국립묘지에 안장케 하는 것이 법치 국가 대한민국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바로 서는 일입니다. 법리(法理)와 정치적 판단의 문제는 별개의 것입니다.

보훈처의 판단은, 그야말로 지들 멋대로입니다. 이래도 대한민국이 법치국가가 맞습니까? 뇌물수수 혐의로 자살한 대통령의 묘소는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국민 세금으로 성지로 조성하면서, 정권의 탄압으로 시해당한 전직 대통령의 유해는 한 뼘의 묘소마저 허락하지 않는 곳이 작금의 대한민국입니다.
전직 대통령의 국립묘지 안장마저도 정권에 따라 둘쭉날쭉하는 거지 같은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땀 흘려 벌어서 꼬박꼬박 세금 낸 것이 억울합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께서도 김대중 김영삼처럼 비집고 들어가서라도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상처받은 국민의 자존심과 국격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사면·복권된 경우에도 기왕의 전과 사실이 실효되는 것은 아니다."
이 기막힌 보훈처의 판단과 결정에 우리가 침묵으로 보고만 있어야 하겠습니까?

참으로 기가 막히고 더러운 시절입니다. 불공정과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진정 개.돼지여야 하겠습니까?
전두환 대통령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라.
(2024년 11월 23일 박종판)



(위증교사 사건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서울중앙지법에서 더블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 1심 재판이 예정되어 있는 날 입니다.
관련하여, 검찰은 同사건과 대해 이 대표에게 3년을
구형한 상태이죠.
그라고 사건의 내용을 한번 리뷰 해 봅니다.

그래서 이 사건의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이 사건은 성남지역에서 변호사로 있었던 시절이죠.
2002년도 김병량 전시장의
"분당 백궁 파크뷰 의혹"에 대하여
최철호 당시 KBS PD와 함께 취재하면서,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검사를 사칭했다"는 혐의로
벌금 150만원을 확정받았던 사건이죠.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세월이 한참 지나서,
2018년 경기도지사 지방 선거에 출마했을 때,

이재명 후보는 2018년 5월 29일, KBS토론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
"저는 검사를 사칭해서 전화한 일 없습니다.
피디가 한 것을 옆에 인터뷰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제가 도와준 걸로 누명을 썼습니다." 라고 말한 부분이
"허위 사실"이라 하여 이것이 또 재판에 넘겨졌고,
재판 과정에서 김 전 시장의 비서였던 김진성씨에게
거짓 증언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당시, 거진 증언이란,
이 재명 대표는 김씨에게
"김병량 전 시장이 최 PD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대신
김 전 시장과 KBS간에 이재명을 주범으로 몰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의 증언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국, 김진성 씨는 2019년 열린 재판에서는,
이 대표측 증인으로 출석하여 기억과 다르게 위증을 했고,
그 결과, 이 대표는 이듬해 10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는 것이 검찰이 밝힌 내용 입니다.

이에 따라,
이 재명 대표와 김진성씨는 2023.10월 각각 위증교사 및
위증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 대표는 그동안 "검찰이 기소할 때 녹취록에서
"기억을 되살려서 있는 대로 야기해 달라"
"없는 사실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등의 얘기를 했는데
"그런 내용은 다 빼고 '짜깁기' 해서
이재명을 기소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반면, 김씨는 법정에서 이대표의 요구에 따라
위증을 했다고 자백했고,
이 대표가 김씨에게 수차례 전화로 위증을 요청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죠.

또, 김진성 씨에게 수차례 전화로 위증을 요청한
내용이 담긴 녹취록을 증거로 제출하기도 했습니다만,
검찰은 이재명의 유죄를 입증할만한 자료로서는
충분치 않았던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검찰이 백현동 불법 용도변경 사건을 수사하면서 로비스트로 구속된 김인섭이라는
前 한국하우징기술 대표의 주거지 등 40여 곳을
압수수색 했는데 이 때, 김 전 대표와 공모해
인허가 대가로 거액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측근 사업가 김진성의 주거지도 압수수색에 포함됐던
것 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진성이 2018년 12월부터
이재명과 통화한 위증교사 녹음파일을 확보한 것이죠.

위증교사 사건 압수수색이 아닌,
다른 사건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이재명의 위증교사 증거 자료를 우연히 발견한 것 입니다.
이재명으로는 운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사필귀정" 이라고 해야겠죠.

김진성 씨는 영장 청구 전까지 사실관계는 인정하면서
조사에서는 "현직 도지사 요구를 차마 거부하기
어려워 위증했다"고 자백했다고 합니다.

재밋는 것은 위의 위증교사 사건에서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후보 토론회에서 자신이 검사 사청
누명을 썼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사건화가 될 수
없었던 것 이죠.

또한, 위증교사 통화내용이 녹음된 것은
김진성과 통화를 하려고 할 당시 주변에는
김진성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통화를 하게 되었고
(도정 업무상 통화는 대부분 정진상에게 하는데,, )
그 통화사실이 녹음이 된 것은
김진성도 이것을 녹음을 하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당시, 이재명의 목소리가 작아서 김진성이 볼륨 보턴을
올리려고 한것이 녹음 보턴을 잘못 눌어서 녹음이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재명이 그런 증언을 부탁한 적도 없지만,
부탁했다 쳐도 부탁을 들어주지 않아 '실패한 교사'인데,
어떻게 위증교사죄가 되나"라고 반문하며"
검찰이 재판 마지막까지 이 통화 파일을 숨겼는데,
검찰에 유리했으면 숨겼을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이재명 대표가 기소된 사건은
이 '위증교사 의혹' 사건과
지난주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의 항소심 재판을 포함하여

대장동, 백현동,위례 개발 특혜 의혹 및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
스위증교사 혐의,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 등
총 6개의 사건에 대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재판 결과야 저로서는 예단하고 싶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기관의 장 이라면,
아래 직원들이 잘못하거나 착오로 문제가 되었을 때는
기관장이 발벗고 나서서 책임지고 막아 주어야
부하 직원들은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 공직 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죠.

저도 개인적으로 파주 개발사업 진행 과정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에서
감사관이 문제를 제기 했을 때 당시 손 지사님은 보고 받고
바로 감사관에게 달려와서
내가 시킨 것이니 모든 책임은 내게 물어달라고 하며
감사관 손을 잡고 부탁하면서
그 자리에서 해결 해주는 모습이 생각 납니다.

그런데 이재명 지사는 다르더라구요,
자기가 지시 해놓고 문제로 되면 자기는 시킨적이 없다고 하니
그를 믿고 따랐던 직원들은
30년을 공직에 몸 담았던 경력직 공직자로서는
교도소로 가게 되었으니 차라리 유서를 써놓고
자살을 하는것 아닙니까.
정말로 바르게 지시하고 바르게 책임지는 정치인이야 말로
이 시대의 한국사회를 더욱 밝게 해 줄것이며
국민들에게는 더욱 사랑받는 정치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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