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닻을 올릴 때 / 이가림

두 팔 벌려

한아름 껴안아야 할 햇덩어리가

어둠을 사르고

다시 한번 태어나는데,

어찌 어제의 사슬에 묶여

피곤한 닻을 내리고만 있으랴

이 썩어가는 욕망의 도시로부터

이 믿을 수 없는 거짓의 웃음으로부터

이 엉큼한 음모의 손아귀로부터

우리 모두 떠나자,

새날의 닻을 함께 올려

아침놀 빨갛게 이글거리는

수평선을 향해 벌거벗은

마음으로 떠나자

피투성이 삶의 시장터에서

빵 부스러기에 눈이 멀어 다투던 자여,

지금 먼 바다에서 온 싱그런 바람이

그대의 일그러진 이마를 어루만지고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그 바람은 여늬 바람이 아니라

그대의 언 가슴을 녹일

사랑의 입김이다

속임수가 속임수를 낳는 컴컴한 골목에서

사시사철 때묻은 골패짝을 뒤집던 자여,

지금 열린 문 틈새로 스며드는 빛줄기가

그대의 안개 낀 눈앞을 밝혀주고 있음을

보지 못하느냐

그 빛은 여늬 빛이 아니라

그대의 끝없는 잠을 깨울

정의의 칼날이다

큰 소리가 작은 소리를 죽이는 광장에서

목쉰 확성기로 울부짖던 자여,

지금 아우성의 벽을 뚫고 달려오는 푸른 목소리가

그대의 귓전을 울리고 있음을

듣지 못하느냐

그 목소리는 여늬 목소리가 아니라

그대의 찢겨진 상처를 덮어줄

자유의 꽃잎이다

비둘기떼처럼

수천 수만의 날갯짓으로 피어오르는 새벽

말갛게 얼굴 씻은 해를 마주하며

우리들 동시대의 배는 마침내

새로운 미지의 바다로 나아간다

그 어떤 압제의 손으로도

다시는 이 평화의 뱃머리를

거꾸로 돌릴 수 없으리라

선장은 선장의 자리에서

선장다웁게

키잡이는 키잡이의 자리에서

키잡이다웁게

갑판원은 갑판원의 자리에서

갑판원다웁게

화부는 화부의 자리에서

일하며 노래할 때

이 세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닫히기 전에 우리들의 배는

흩어진 사람들 어우러져

둥그렇게 둥그렇게 춤추는 나라

그리운 세상에 기어이 닿으리라

기어이 닿으리라

 

 

《그곳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
☆무늬만 선진국이다..

대한민국은 국민 총생산 1조 9천억 불, 국민소득 3만 1천 불에 이르러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하였다. 또한, G7 정상회의에 초청되는 등 실질적 G7 국가로 자타가 인정하는 나라다. 그런데 그 나라는 지금 여러모로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무늬만 선진국이다.

그 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나라다.

8년간 이 나라 대통령이었던 사람의 유골이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1년 넘도록 사저에 있는 짐승의 나라, 그것을 남의 일처럼 말 한마디 않으면서 밥만 먹으면 사는 것인 양, 밥만 처먹고 사는 무지렁이의 나라.

광주사태라는 내란을 선동하여 사형선고 되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그런 그가 적장에게 돈 퍼다 줘 노벨평화상을 받은 나라, 노벨평화상과 핵을 맞바꾼 나라, 국민이 적에게 피살되어 소각되어도 쉬쉬 감추고 자진 월북했다고 우기는 나라, 그러고도 반성은커녕 궤변으로 또 거짓을 告하는 짐승 같은 자들이 국정 책임자일 수 있는 나라.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부정하고 노동자 농민에 의한 사회혁명을 선동하는 집단을 민노총이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나라, 오히려 정권이 그들을 부추기는 나라, 땀 흘려 일하는 것보다 공평과 분배의 정치 논리에 길들여진 우매한 국민이 태반인 나라, 온 국민이 배급과 공짜 돈에 눈먼 나라, 걸핏하면 장관 해임 건의하여 장관이 백 명이라도 모자랄 나라, 여비서 성추행으로 자살한 nom의 장례는 나랏돈으로 성대히 치르면서 전직 대통령의 장례에는 조문조차 가지 않는 인간 같지 않은 질 낮은 인간들이 정치하는 나라.

형수한테 보확찢이라 하고, 연예인 속여 공짜 연애질을 해도 대통령 후보가 되고 제1야당의 대표도 되는 참으로 너그러운 나라, 국회에서 나는 사회주의자라고 선언한 자가 공산 사회주의 집단을 주적으로 두고 있는 나라의 법무장관이 되는 나라, 온갖 거짓과 위조문서로 딸내미 부정 입학시키고도 정의의 사도인 양 위선 떠는 가식 덩어리인 인간이 국립대학 교수일 수 있는 나라, 위안부 할머니들 등쳐 먹고 사는 기생충으로 못난이 인형처럼 묘하게 생긴 年을 내치지 않는 똥걸레 같은 정당이 제1야당인 해괴한 나라.

적과 내통했던 수배자가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어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나라, 감옥에 한두 번은 가야만 민주투사가 되고 국회의원.장관도 되는 나라, 열심히 공부하는 것 보다 데모대의 선봉에 서는 것이 출세의 지름길인 나라.
양민 학살 등에 앞장서다 처형당한 빨치산이 지금 와서는 국가 유공자가 되는 나라, 박씨 성을 가진 그 빨갱이의 아들 외눈박이가 국가정보원장이었던 혼돈의 나라.

재난지원금이라는 현금 백만 원에 나라가 망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개.돼지라 불리는 국민이 망국적 거대 야당을 만들어 놓은 나라. 이성적 냉철함보다 감정적 열정만 가득 찬 비이성적 국민이 절반인 나라.

그럼에도 아직 망하지 않고 있는 불가사의한 나라.
그곳 참으로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2022. 12. 13 박종판)

사랑하는 사람이 영원히
내 곁에 있으리라 그리 무심히 대하진 마세요.

세월 앞에는..
무엇도 영원할 수 없기에 드릴 수 있을 때
마음도, 사랑도 흠뻑 줄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요.

다음을 기약하는
사랑은 하나마나 하는 사랑이며..

이 다음 형편이 되면
이란 핑계는 안 하니만 못하지요.

사랑하는 부모님은
세월이 모셔 가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의 말 한 마디에 지옥과 천국을 드나들지요.

사랑 나눔에 아까워 말아요^^

사랑함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함에 다시는 보지 못할 날이
오기 전에 마음을 다해 후회없는 사랑을 해요.

영원한 이별이 와도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다면
당신이 드린 사랑의 깊이 그 만큼 아픔도 적을 거예요.

세월은 기다려 주지 않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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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2024. 1. 8)
《좌파 그들의 '검찰 적대'》
☆열등감인가? 정치적 소신인가?

검찰공화국, 검찰 하나회, 신검부, 검수완박 등의 선동적 언어를 토(吐)하며, 작금에도 지속되고 있는 좌파의 검찰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짓들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좌파 저들은 검사 또는 검찰을 왜 저토록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혐오와 쟁투(爭鬪)의 대상으로 여길까?

'검찰 적대' 그것은 이제 좌파들의 이념이 되었다.
목하(目下) 상존하는 좌파들의 검찰 증오와 적대감 그것을 조금은 삐딱한 관점의 담론(談論)으로 바라본다.

2003년 3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라는 자리를 가졌다. 이날 대화에서 한 검사는 "대통령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다."며 "뇌물사건과 관련해 잘 좀 처리해 달라는 얘기였다. 그때 왜 검찰에 전화를 했냐"고 물었다. "그것이 바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하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나"라고 질문했다.

여기에서 노무현의 그 유명한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라는 대답이 나왔다. 그리고 그는 헛웃음을 지었다. 민정수석으로 그 자리에 배석했던 문재인이 훗날, 눈뜨고 볼 수 없었다고 회고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검찰에 대한 나쁜 기억으로 남아, 이후 검찰 혐오의 빌미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노무현은 검찰개혁에 대한 오기는 강했지만, 국민 여론은 되려 검찰의 손을 들어줘 검찰 개혁은 용두사미가 되었고, 검찰개혁의 명분으로 파격 임명했던 여성 법무부 장관 강금실은 이내 물러났다. 노무현의 검찰개혁은 "이쯤 되면 막 하자는 거죠?"라는 역사에 남을 굴욕만 남기고 말았다. 그것은 검찰 개혁이 아니라 검찰 증오의 한풀이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 노무현을 주군으로 모시는 문재인 또한 검찰개혁을 한답시고 사회주의자 曺國을 법무장관에 앉히더니 한달짜리 장관을 만들었고 추미애, 박범계로 이어지는 개그맨에 가까운 법무부장관 앞세워 검수완박 등 검찰개혁에 집착하였지만, 결국 '조국사태'를 맞아 역사에 남을 조국이라는 전대미문의 위선자만 만들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위선자 조국으로 인해 정의는 검찰의 것이 되고 말았으나 그 조국은 추악한 개인의 위선과 범죄 행위조차 아직도 정치 보복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으니 이들의 궤변과 자가당착, 그리고 그 뻔뻔함의 불가사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결과적으로 문재인의 검찰개혁 그것은, 작동불능의 의미 없는 공수처와 검수완박이라는 떼 법으로 검찰 조직과 사법체계의 혼란만 남겼고, 추미애 박범계 라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던 기이한 두 장관의 악몽만 남기고 말았다.

국회 의석169석.
무소불위 거대야당 마적단의 두령이라 할 이재명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공화국이니 검찰 하나회니 하는 적개심으로 가득 찬 그와 그 일당의 머릿속은 온통 검찰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한 진솔한 반성 없이 그저 검찰 탓만 할 뿐이다. 그것은 검찰 개혁이 아니라 검찰에 대한 개인적 한풀이에 다름 아니다. 이재명의 검찰에 대한 과민하고 과도한 언동(言動)은 가히 병적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이들 좌파 정치인 셋은 왜 그토록 검찰개혁이라는 것에 집착하며 검찰을 그토록 적대시할까?
사시(斜視)적 관점일지 모르지만 필자는 그것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들여다 본다. 이들의 검찰개혁 그것은, 정치적 소신에서 기인할까? 검찰에 대한 개인적 열등감에서 기인할까? 라는 시선으로 들여다 보게 된다.

필자는 검찰개혁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세 사람 모두 판.검사를 거치지 못한 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세 사람 모두 공교롭게도 법조계의 민노총이라 할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출신의 한이 많은 서러운 변호사로서 검사(검찰)에게 개인적 열등감이 없지 않을 것이라 짐작한다.

노무현은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7기로 수료하여 대전지방법원 형사 합의부 판사로 잠시 있다가 돈에 더 관심이 많았던지 바로 판사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하였다.
한편 문재인은 1980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12기로 수료하여 판.검사는 아예 임용도 되지 못하고 곧바로 변호사 사무소를 열어 민주 변호사를 자칭하였다.
이재명 또한 1986년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18기로 수료하고 판.검사는 냄새도 못 맡아보고 바로 변호사가 되어 민변에 가담하여 애초부터 민주에 관심은 많았지만, 전혀 민주적이지 못한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검찰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들 세사람의 검찰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 그것은 다름아닌 그들의 태생적인 검찰에 대한 개인적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법고시를 패스했다고는 하지만 판.검사도 못하고 곧바로 변호사가 되었으니 판.검사 출신이 아닌 변호사로서 법조계 어디에 당당하게 명함이라도 내밀 수가 있었겠나? 당연히 현실적으로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켜켜이 쌓였을 것이다.
게다가 정치인이 되고 보니 대척점에 있는 국민의힘 등 보수 정당에는 홍준표를 비롯한 검사 출신 유력 정치인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검사 출신이나 검찰 조직이 눈엣가시인 것은 불 보듯 뻔한다.

작금의 검찰개혁 그것은, 검찰에 대한 태생적 피해 의식과 개인적 열등감에서 출발한 측면도 없지 않겠다 의심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으로 이어지는 좌파의 검찰개혁 그것은, 검찰에 대한 개인적 울분과 열등감과 함께 검찰에 대한 동경심이 낳은 미성숙된 정치적 소신으로 읽힌다.

검찰 또는 검사에 대한 열등감과 태생적 피해의식의 개인사적 배경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검찰개혁, 검찰적대 그것은 개인적 열등감인가 정치적 소신인가?
그것을 필자는 개인적 열등감일 것이라 확신한다.
(2024. 1. 8 박종판)

○ 힘들 때 슬플 때 기쁠 때 ○

삶이 버거울때는.. 뒤를 돌아보는 지혜를 가지세요

두려움이 앞서 망설였던 지난 시간을 생각해 보세요. 자신을 믿었잖아요,

그래서 여기까지 왔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먼저 한걸음 나아가 보는 거에요.

무엇이 앞에 있는지 모르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중요한 것은 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자신을
믿는 그 순간에 이미 두려움은 사라진다는 거잖아요.

힘들 때는.. 하늘을 보세요

같은 하늘아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오해 속에서도 따뜻하게 믿으며 바라봐 줄거에요.

오해가 사실이라도
그럴수 밖에 없었을 상황을 이해해 줄거에요.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는 그 짐을 하늘에 날려 보세요.

분명히 받아줄거에요.
항상 그래왔듯이 말없이 지켜봐 줄 거예요. .
우리 서로 믿을수 있잖아요.

슬플 때는.. 비를 맞으며 걸어보세요..

어깨 위에 내리는 빗방울처럼 모두 씻어버리세요. 하늘도 울어주잖아요.

함께 잊어버리는 거에요.
젖은 몸을 말리며 다시 웃을수 있을거에요.

외롭다 느껴질 때.. 저녁 노을을 바라 보아요

아쉬움을 남기며 가장 화려하게
지는 저 태양처럼, 아쉽지만 모두 버리는 거에요.

우리 그럴수 있잖아요.

기쁠 때는..

사람들의 행복을
조금씩 나누어 가졌다 생각이 되면 그냥 웃어주세요.

나를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맑은 웃음으로
모두에게 웃음이 묻어날 수 있도록 그냥 웃는 거예요.

세상의 중심은 자신 이쟎아요

소중한 자신을 위해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행복한 표정으로 웃어버려요.

그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쟎아요^♡^

주말이면 팔공산 아래 지인의 집으로 가서 야영을 한다.

집주인이 관리하지 못해 관리를 해주러 전원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었는데

그런 까닭에 이곳에 야영을 하며 고기도 구워 먹고 막걸리도 한잔 하고 

텐트치고 누워 자고 일어나 새벽에 잠시 풀을 뽑고 그리고 밭에서 키운 작물들을 따서 돌아 온다

저녁 고기와 술을 일찌감치 챙겨 먹고 동네 마실을 구경 했다

마을 주변이  주말 농장처럼 집주인이 주말에 와서 지내고

일상 생활은 도심에서 하고 그러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듯 하다

마을에 집은 있지만 실제 거주하지 않는것 같은 집들이 제법 있다

해 저문 농촌길을 산책삼아 걷다 발이 닿은곳이 카페 슈츠다

낮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많더니 해가 빠지자 자리가 덤성 덤성 많은 사람들이 귀가 하고

카페가 썰렁하리 만큼 빈자리가 많다

빵과 음료를 같이 파는 카페인데 실내 장식들이 제법 멋지다

나름 명소로 꽤나 알려진 모양이다

커피와 빵을 사서 나눠 먹고 오늘도 이곳 산 아래서  텐트치고 하룻밤 묵는다

씻고 자려는데 수돗가 옆에 도심에서는 볼수 없는 두꺼비가 보인다

 

💙 아침 좋은글----------

기다리는 자에게
모든 것은 돌아온다 ''


인내는
고귀한 덕이며 모든 고통의 최고 치료약이다

인내는
아무 정원에서나 자라는 꽃나무가 아니다

인내는
더 좋은 시절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지금의 고통을 견디면
그 고통은 차츰차츰 좋은 것으로 변할 것이다

기다릴 수 있는 자에게 모든 것은 돌아온다.

당장에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참을 수밖에 없듯이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견디는 수밖에 없다.

일이 힘들더라도 이를 악물어라.

- 곽광택 -

#2

[좋으면 가까워지려고 애쓴다]

멀어질까 봐 꼭 붙든다. 그렇게 가까워지면 가까운 만큼 아프게 되고, 사랑하는 만큼 상처도 입는다.
감정의 거리만큼 딱 그만큼, 기쁘고 그립고 외롭고 버거운 것이 사람과의 사이 이다. 천국까지의 거리, 그곳은 마음이었다. 적당한 거리는 얼마쯤일까.

당신과 나 사이에 최적의 거리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당신과 내 안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서로에게 천국을 보여줄지 지옥을 보여줄지 당신과 나의 마음에 달려있다. 서로의 마음에서 마음에 가 닿는 거리가 곧 천국까지의 거리란 걸..

『관계의 물리학』 중에서..

머리에서 가슴까지는 자로 잰 거리는 30센티,
우리는 이렇게 자로 재기를 좋아한다. 그 거리를 확인할 때 확신있게 이야기 한다. 머리에는 눈과 코와 입, 그리고 귀가 있다. 하지만 가슴에는 아무것도 없어 심장이 하트를 만들었다. 보이지 않기에 확신할 수 없고, 그래서 형상을 만들듯
심장을 눈으로 그리고 귀로 듣게 표현 되어진다.
새날아침 나의 심장이 예쁜 하트로 표현되어 지기를…

🎈
별빛같은 나의 사람아- 임영웅
https://youtu.be/i5IBnij5eHI

안녕하세요. 오늘은 비가 오지 않으니 후질근 하던 날씨가
다소 맑아지는 아침입니다.

최근, 우리사회는 급격히 좌경화 되어 가거나,
있는 자들을 시기 질투하고 빼앗아 먹는 공짜심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버린것 같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절부터 더 심한듯 했습니다.

거기에, 노동조합을 배경으로 탄생한 야당 정권의
문대통렁 시절 임금 상승여파로 이제 물가는
그렇게 비싸다는일본 물가를 앞질렀습니다.
이것이 고스란히 국민들의 세금으로 되돌아 오는 것을
넘어 나라가 망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다보니 70년, 80년 산업현장에서
땀흘리면서 오르지 조국 근대화는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마음으로 땀흘려, 일구워 온
한국 사회가 조금씩 무너져 가는
느낌은 저만이 아닌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더욱이, 젊은시절 한때 독일의 탄광에서,
리비아의 대수로 건설 현장에서 "땀흘리면서
근면성실하면 어디서든 잘살수 있다"는 그런 한국인의
정신을 요즘은 어디어도 느낄수가 없습니다.

특히, 저도 함께 몸담았던 경기도의 재정만 보더라도
김문수, 남경필 지사님 시절 미래의 경기도를 생각하며
재정을 아끼고 절약하여 건전 재정을 유지했던
상황이었던 것이,
이재명 지사 부터는
막 퍼주기 정책으로 재정을 엄청난 적자 재정으로
만든 장본인 (다른 범법 행위는 차치하고 라도) 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현실이 정말
가슴 아픈 아침입니다.
물론, 저희들이 그렇게 힘들게 살아왔다는 것을 젊은 세대들이
알아 달라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런 절약하는, 땀흘려 일하는 정신으로 아이들을 키웠을때
선진 한국의 미래도 보장되는 법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제 할아버지가 되어 가끔 놀이터에 가보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형제가 없이 귀하게 외동으로
키우다보니
애들이 자기만 알고, 독선적으로 커가는 애들이 많기에
정말 이 점이 개선되어야
아이들의 미래도 밝고 힌국 사회의 미래도 기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com/shorts/YEnpGW6TqLE?si=Yi1rd1IgCMuJ0IcQ
 
 

《1조 원의 책, 10조 원의 책》
☆일본인 그들은 쪽바리인가?

 


책을 안 읽는 국민과 책 읽는 국민.
우리나라와 일본 국민을 한마디로 비교할 수 있는 말이다.
학술 전문서적 등을 제외한 일반 서적의 출판 산업 규모를 보면, 우리나라는 연간 약 1조 원 내외인 반면 일본은 약 10조 원 규모라 하니 책을 읽지 않는 국민과 책 읽는 국민의 차이가 수치로 확연히 대비된다.
일본 인구가 우리나라 인구보다 많은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4~5배나 더 많이 책을 읽는 셈이다.
예전 보다는 책을 읽는 격차가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많은 차이를 보인다.

우리가 흔히 일본 사람을 쪽바리 쪽바리 하며 얕잡아보지만, 일본 사람들의 실체적 진면목을 들여다보면 많은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뛰어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일본 사람들은 정권에서 나눠주는 공짜 돈 따위에 혹하거나 넙죽넙죽 받아먹지 않는다. 그들은, 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나눠주는 돈 백만 원에 나라가 망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망국적 거대 야당을 만드는 무지렁이가 아니다. 공평과 분배의 포플리즘 정치에 길들여져 공짜 돈에 눈먼 개.돼지 국민도 아니다.

공짜 돈 그것이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그것이 내 이웃의 주머니에서 뺏은 돈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일본인 그들은 사적 이익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우선으로 여긴다. 사적 이익을 취하고자 공적 이익을 해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긴다.
그들이 노점상 등으로 도로, 공원 등 공공시설을 무단으로 점유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국가관과 경제관념 그리고 자기 주관이 서 있다는 얘기다. 우리 국민에게 그러한 인식들이 있는가?

그런데 그것이 왜 그럴까?
그것은, 책 읽는 국민과 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 나타나는 의식 수준의 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조 원의 책 값을 지불하는 국민과 10조 원의 책 값을 지불하는 국민은 뭐가 달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책은 스스로 많은 것을 깨우치게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그렇게 많은 책을 읽는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한 해 50권 이상의 책을 구입하여 읽는다. 그 가운데 두세 권은 필사(筆寫)까지 한다. 책값으로 치면 150여만 원 내외가 될 것이다. 전체 국민으로 계산하면 75조 원 정도의 책값이 된다. 시간으로는 하루 두어 시간 정도를 책 읽는 일에 할애하니 얼마든지 업무나 일상 생활, 그리고 경제적으로 부담을 주지 않을 만큼이다.
필자의 경험으로 책 읽기는, 관념과 사고를 풍성하게 하여 정서적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주는 것은 확실한 듯하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자신을 이끌어 나갈 확고한 가치관을 세우는데 책 읽기만 한 것이 없을 것이라 여긴다. 책 속에는 세상의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인의 3대 착각이라는 것을 가끔 이야기 한다. 한국인은,
1.광주가 대구랑 비슷한 도시인 줄 안다.
2.대구가 부산과 비슷한 도시인 줄 안다.
3.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나라인 줄 안다.
모두 엄청난 착각이다. 모두 두배 또는 세배가까이 차이가 나는 것들이다.
우선 일본은, 인구가 약 1억 2,300만 명으로 세계 12위, 아시아 6위의 인구 대국으로 우리나라의 2.4배에 달한다. 국토면적 또한 일본은 38만km²로서 10만km²인 우리 남한의 3.8배에 달한다.
경제 규모 또한, 일본의 국민 총생산이 5조5천 억 달러로서 우리나라의 1조8천 억 달러보다 약 3배에 달한다. 이렇듯 한국이 일본과 비슷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이다.

그것은 단순히 수치로 더러 나는 것만으로 가늠이 되지 않는 국민성, 국가관, 사회성, 이타성, 시민정신 등의 정신적 문화적 부분에 대해 비교를 하면 더 초라해지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왜놈 왜놈 하지만, 그들은 삶에 대해 매우 진지하고 겸손하다. 또한, 타인을 배려하고 시민사회 전체를 우선하는 이타심이 몸에 배어있다.
그들의 국가관은 투철하다. 그리고 공공의 질서와 안녕을 해치는 일을 죄악으로 여겨 공권력의 존엄은 스스로 지킨다.

일본인의 국민성은 대만, 싱가폴 등과 함께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 국민성과 시민정신은 바로 책 읽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무얼 좀 알아야 무언가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며, 책 읽기가 우리에게 그 무언가를 좀 알도록 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책 읽기는 스스로를 깨우치게 하기 때문이다.

1조 원의 책값을 지불하는 국민과 10조 원의 책값을 지불하는 국민의 모습이 어떨지 곰곰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가 그들을 쪽바리라 부를 자격이 있는가?
이렇게 말하면 좌파 반일주의자들이 필자를 친일이라 몰아세우려나!
(2024. 7. 19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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