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淡後濃 先淡後濃 先疎後親 先遠後近 交有積也 처음에는 淡淡하다 뒤에는 진하게 처음에는 疎遠하다 뒤에는 親하게 먼저에는 疎遠하다 뒤에는 가깝게 이것이 벗을 사귀는 道理이다.
燕巖의 馬駔傳의 一部를 열어봅니다. 송욱,조탑타와 장덕홍이 長通橋 위에서 友情에 對해 討論하는데 탄타가 말했습니다. " 아침 동냥을 다니다 布木廛에 들어갔었지, 베를 끊으러 온 者가 있었네.베를 고르더니 핥아보고 虛空의 빛에 비춰보고 하더군. 그리고는 값은 말 안하고 主人더러 먼저 불러 보라는 거야. 그러더니 둘 다 베는 까맣게 잊었는지 布木장사가 갑자기 먼 山을 보며 구름이 나온다며 흥얼대더군. 사려던 사람은 뒷짐진 채 왔다갔다 璧에 걸린 그림 구경하고 있지 뭐야. "
송욱이 또 對沓하기를, " 네가 交綿(사귐의 겉모습)을 알았구나. 그렇지만 交道( 사귐의 道理 )는 멀었어. "
이런 式의 뜬금없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흥정을 始作해야 될 판에 서로 딴전만 피웁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송욱은 交面( 사귐의 態度 )를 안 것이라 評價했던 것입니다.
둘 사이에 흥정이 붙어 去來를 이루는 것을 두 사람이 만나 友情을 맺는 것에 比見하였습니다.
그 옛날 어떤 이는 親舊와의 友情쌓기를 먹을 쓰는 法에 比喩하기도 하였습니다.
先淡後濃 畵家는 먹을 포갤줄도 알아야 된다 처음에는 묽게 나중에는 진하게 한다.
由淺入濃 비단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릴 때에도 먹色은 옅은 色에서 진한 色으로 들어가야 한다.
君子의 사귐은 淡淡하기가 물과 같고 小人의 사귐은 濃密하기가 단술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물은 淡白하여도 그 맛이 오래 두어도 變하지 아니하고 단술은 비록 진할지라도 오래되면 怨亡이 인다고 하였습니다.
只今 내 곁에 있는 親舊는 물같은 親舊인가? 단술같은 親舊인가? 나는 그 親舊에게 어떤 사람으로 서 있는가? 곰곰히 되돌아 봐야겠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하고만 건배를 하는 사장이 있었다. 항상 건배할 때는 "진달래"~~!!.외친다 (진짜 달라고 하면 줄래!~~^**^) 이때 여직원들의 화답은 연령대 별로 틀리게 나왔다. 20대 여직원 대답..: 물안개! (물론 안되지 개새끼야~~...!) 30대 여직원 대답.. : 택~시! (택도 없다 시벌노마~!!!) 40대 여직원 대답.. : 소~주! (소문 안내면 함 주지롱~^**^**~) 50대 여직원 대답..: 홍두깨! ( 홍콩 두번 보낼수 있으면 깨끗이 주께!) 60대 여직원 대답..: 물안개! 순간 ??? 회식 자리가 썰렁 자기가 무슨 20대로 착각하나봐~~~~~~ 그런데 이어지는 한마디! 순간 포복절도... (물 안나와도 개안나?~~) ㅋㅋㅋ 이때! 다짜고짜 묻지도 않았는데 70대 할머니가 나선다. 70대 할매 여직원이 사장에게.. : ...사장! 나도 물안개!!! . . . . . (물어 보지도 안냐? 개새끼야!..~
대한민국에서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가수 조용필. 그는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노래를 잘하는 가수는 많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항상 정상의 위치에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가 노래로만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신 소록도 공연. 2009년 소록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무대를 끝내고 돌아가면서 "다시 오겠습니다"라고 한 그의 말은 형식적인 인사치레로 들릴 법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켰습니다. 그것도 대충 때우기식 겉치레가 아닌,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히 준비하고 찾아간 정성 어린 방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조용필 씨가 4집 앨범 발매 당시 전 매니저인 최동규 씨가 인터뷰로 공개한 일화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4집 앨범에 '비련'이란 곡이 실렸는데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입니다. 당시 4집 발매로 더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던 때였다고 합니다.
전화는 한 시골의 요양원장에게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저희 병원에 14세 지체 장애 여자아이가 입원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어떠한 자극에도 감정의 미동도 없었는데 '비련'을 듣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의 부모님께서 돈은 얼마라도 드릴 테니 아이에게 조용필 씨가 직접 오셔서 노래 한 번 불러주시면 안 되냐며 간곡히 부탁합니다. 무리한 부탁인 줄 알지만, 노래가 안 되면 얼굴이라도 직접 보여주실 수 있는지.."
매니저인 최동규 씨의 전화 내용을 전달받은 그는 잠시도 생각 안 하고 "병원으로 출발하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날은 공연이 4개나 잡혀있던 날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조용필 씨의 출연료는 꽤 높았으며, 공연을 취소하면 위약금까지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위약금을 물어주고 시골 요양병원으로 간 것입니다.
소녀는 자신 앞에 서 있는 조용필 씨를 아무 표정 없이 바라만 봤다고 합니다.
그가 소녀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기 시작하자 소녀는 펑펑 울기 시작했고, 소녀의 부모도 지켜보던 병원 관계자들도 모두 울었다고 합니다.
조용필 씨는 소녀를 조용히 안아주고 떠나려는데 아이의 엄마가 따라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 얼마를 어디로 보내드리면 될까요?"
그러자 조용필 씨가 말했습니다. "따님이 오늘 흘린 눈물은 제가 그동안 벌었던, 또 앞으로 벌게 될 돈보다 훨씬 더 비싼 가치가 있습니다."
그가 보여준 따뜻한 행동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말 큰 감동입니다. 사람들에게 그는 최고의 정상에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팬들은 정상에서 바라본 더 높은 산이었던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려면 가장 낮은 곳부터 시작하라. - 푸블리우스 시루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