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처럼 구겨진 신발




저는 지역아동센터 교사입니다.
우리 센터에 다니는 아이들 모두가 사랑스럽지만,
특히 찬호(가명)는 더 마음이 쓰이고,
정이 가는 아이입니다.

12살이지만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운 찬호는
청각장애인인 부모님과 2명의 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예순이 넘은 아빠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뿐만 아니라
하지 기능장애까지 있어서 일할 수 없고,
베트남인 엄마는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를 앓고 있어
일자리를 얻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래서 가정 형편이 매우 어렵습니다.
영양가 있는 음식을 고루 먹지 못하고
라면이나 분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아서
찬호는 또래보다 많이 왜소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성악가가 되고 싶다는 찬호는
언제나 밝은 미소로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대해주어서
늘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아이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찬호를 만났습니다.
신발을 구겨 신고 다니기에 저는 찬호에게 말했습니다.
"찬호야, 그렇게 신발을 구겨 신고 다니면 안 돼.
보기에도 안 좋고, 신발도 금방 닳는다고."

찬호는 알겠다고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지역아동센터에 온 찬호는
여전히 신발이 종이처럼 구겨진 채로
왔습니다.

저는 찬호를 불러 다시 타일렀습니다.
"찬호야, 선생님이 어제 한 말 잊지 않았지?
그렇게 자꾸 신발을 구겨 신고 다니면 예의에도 어긋나고,
신발도 금방 망가지니깐 다시는 신발 구겨 신고
다니면 안 돼."

그러자 찬호가 울먹이며 저에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죄송해요. 신발이 작아서 신을 수가 없어요.
신발을 구겨 신지 않으려고 했는데 발가락이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구겨서라도
신고 다녔어요..."

순간, 저는 너무나 미안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찬호를 한참이나 꼬옥 안아 주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지는 알고 있었지만,
신발을 살 수 없어 작아진 신발을 구겨 신고 다니는지는
미처 몰랐던 것입니다.

그 길로, 찬호의 손을 잡고 신발가게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찬호에게 꼭 맞는 신발을 사주었습니다.
세상 모든 걸 얻은 것처럼 행복해하는 찬호의 모습에
저도 함께 행복했던 날이었습니다.

 

부드러운 가지가 되어라




중국의 사상가이며 도가 철학의 시조인
노자(老子)가 눈이 많이 내린 이른 아침에
숲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요란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굵은 나뭇가지가
부러지며 땅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구부러짐이 없이 쌓인 눈을 지탱했지만
점차 무거워지는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부러진 것입니다.

반면 이보다 가늘고 작은 가지들은
눈이 쌓임에 따라 자연스레 휘어져
눈을 아래로 떨어뜨렸고 다시 원래대로 올라와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본 노자는 깊이 깨달았습니다.
"저 나뭇가지처럼 형태를 구부러뜨림으로써
변화하는 것이 버티고 저항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이치로구나!"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의 조류를
안전하게 항해하기 위해선 융통성 있게
발맞춰나가는 유연한 태도와 사고를
갖춰야 합니다.

그러나 이 유연한 사고를 갖기 위해서는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는 경직된 자세에서 벗어나
타인을 수용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는 언제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편견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며,
마음을 열고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바람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똑같이 항해하는 선장은
결코 항구에 들어가지 못하는 법이다.
- 헨리 조지 -

 

 

지혜로운 나이 듦




한 젊은 쥐가 있었습니다.
그 쥐는 음식을 구하는 재주가 뛰어나
많은 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늙어가며 눈도 어두워지고,
행동도 느려져 혼자 힘으로는 다닐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젊은 쥐들은 늙은 쥐를 비웃으며 수군거렸습니다.
"뭐야 이제 늙어서 아무 쓸모가 없잖아?
음식은 뭣 하러 줘! 주지 말자!"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쥐들이 사는 집주인이
세 발 달린 솥에 밥을 해서 돌로 솥뚜껑을 눌러놓고는
외출을 했습니다.

젊은 쥐들은 그 안에 들어 있는 밥이 탐났지만,
온갖 꾀를 짜내도 밥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중 한 쥐가 갑자기 어디론가 달려갔습니다.
바로 늙은 쥐에게 간 것입니다.

"어르신, 그동안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저 솥에 들어 있는 밥을 도저히 꺼낼 방법이 없습니다.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늙은 쥐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매달리는
젊은 쥐가 괘씸하기도 했지만, 오죽하면 찾아왔을까 하여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한쪽 다리 밑의 흙을 파보게.
그러면 솥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쓰러질 것이네.
그럼 그 안의 밥을 먹을 수 있을 걸세."





삶의 지혜는 배움으로 익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나이가 들수록 연륜이 묻어난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그만큼 경험하고 쌓아온 삶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몸소 배운 '진짜 경험'에서 나오는
삶의 지혜는 쉽게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 오늘의 명언
행동하는 사람처럼 생각하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행동하라.
강가에서 물고기를 보고 탐내는 것보다 돌아가서
그물을 짜는 것이 옳다.
- 앙리 베르그송 -

영남대후문에서 2021/02/27

 

당신이라는 말

나호열

  •  


양산 천성산 노천암 능인 스님은

개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

스무 첩 밥상을 아낌없이 산객에게 내놓듯이

잡수세요 개에게 공손히 말씀하신다

선방에 앉아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싸우든 말든 쌍욕 앞에 들어붙은 개에게 어서 잡수세요

강진 주작산 마루턱 칠십 톤이 넘는 흔들바위는

눈곱만한 받침돌 하나 때문에 흔들릴지언정 구르지 않는다

개에게 공손히 공양을 바치는 마음과

무거운 업보를 홀로 견디고 있는

작은 돌멩이의 마음은 무엇이 다른가

그저 말없이 이름 하나를

심장에서 꺼내어 놓는 밤이다

당신

영남대 후문에서 105mm렌즈사용

조주청의 사랑방이야기 ~~~~~

'싸움의 기술'

약재상 두곳이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유가네 약재상엔 문지방이 닳을 정도 로 손님들이 드나드는 데, 맞은편 최가네 약재상엔 파리만 날린다. 최가는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려고 시동에게 가게를 맡겨놓고 주막으로 갔다. 탁배기 한사발을 마시고는 구들장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주모가 흘끔 보더니
“무슨 걱정이 있소?”


물었다. 최가는 대답도 않고 우거지상으로 벌컥벌컥 석잔이나 마시더니
“우라질 놈들이 왜 유가네 가게에만 가는 거여?”

최가를 화나게 하는 건 유가네가 가격을 후하게 쳐주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약재상이란 약초꾼들로부터 온갖 약재를 사서 이문을 남기고 한의원에게 파는 장사다. 최가는 수시로 유가가 약재를 사고파는 값을 알아내어 언제나 유가네보다 후한 가격을 쳐주는 데도 약초꾼이나 한의원 놈들은 모두 유가네로만 몰렸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주모가 혼잣말로 던지는 소리에 최가는 탁배기 잔을 들다 말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뭣이여?”

주모가 들은 체도 않자

“내가 친절하지 않아서?”

주모가 또 대답이 없자

“유가 놈이 그들에게 술대접을 더 잘해주나?”

최가의 다그침에 주모가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서며 한마디 던졌다.

“말싸움에도 기술이 있는 법이여!”

“말싸움 기술? 그게 뭐여?”

사실 약재상이란 싸움이 끊일 날이 없게 마련이다. 약초꾼들과는 약초가 덜 말랐네, 속이 썩었네, 웃자란 거네 하며 멱살잡이를 하고, 한의원과는 좋은 약초를 볼 줄 모르네, 값을 심하게 후려치네 하며 삿대질까지 하는 게 다반사다. 유가도 싸우고 최가도 싸운다. 주모는 두약재상의 싸움 행태를 들어 설명했다.

“네놈 집에 다시 오나봐라.”

약초꾼이 고함치면 유가는
“개똥이나 밟고 넘어져 코나 깨져라”
라며 싸우는데, 보름도 못 가 그들은 함께 웃으며 주막을 찾아온다. 주모가
“싸운 지 며칠 되었다고 벌써 낄낄대냐?”
며 핀잔을 주면 약초꾼은 유가에게 술을 따르며

 

“내가 미쳤지. 네 가게에 또 오게”

 

하고 웃고, 유가는

 

“개똥은 안 밟았구나. 코가 성한 걸 보니”

하며 술잔을 부딪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최가는 약초꾼과 싸울 때는

“네놈이 그렇게 악질이니 네놈 손자가 곱사등이 됐지”

하고, 한의원과 싸울 때는

“네놈이 무슨 병 고치는 의원이여? 여편네 황천 보내놓고!”

하며 상대방의 신경을 긁었다. 유가는 싸워도 화해가 되지만 최가와는 싸우고 나면 평생 원수가 됐다.

주모의 대갈일성.

“아무리 화가 치밀어도 상대방의 가장 아픈 곳은 찌르지 않는 법이여.”

최가는 하늘을 쳐다보고 한숨을 토했다.  

세상에 이런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 또 있을까요?
코로나 시대에 감염병 걸리지 않고 경제가 찌들어도  
끈질기게 살아 가는 것이 우리 민초와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척박한 환경 극복하기




척박한 환경인 사막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대표적인 식물로는 선인장이 있습니다.

사막이라는 곳은 매우 덥고,
한 달 이상 비가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물을 구하기가 정말 힘든 곳입니다.

선인장은 어떻게 사막에 적응하여 살게 됐을까요?
선인장의 가시는 본래 잎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막의 뜨거운 햇볕으로 살아가기에
잎은 너무 많은 수분을 필요로 했고,
최소한의 수분으로 살아남기 위해
잎을 작고 좁게 만들다 보니 차츰 가시로
변했다고 합니다.

딱딱하고 가느다란 가시는 수분을
거의 빼앗기지 않기 때문에 사막에서 살아가기에
안성맞춤인 형태로 변한 것입니다.

또한, 사막에서는 동물들도 물이 부족하여
식물로부터 수분을 섭취하기도 하는데
뾰족한 가시 동물의 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역할도 해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변화로 선인장은 사막이란 척박한 환경을
대표하는 식물이 된 것입니다.





주변이 열악할 수 있습니다.
출발선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능력도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뒤처진다는 자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난 안 돼, 절대 할 수 없어.'라고
오늘을 혹은 내일을 멀게는 미래를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나를 환경에 맞게 변화시키거나 발전시킬
생각을 먼저 했다면 어땠을까요?

환경이 열악하면 뭐 어때? 맞추면 되지.
출발선이 다르면 또 어때? 한 발만 빨리 뛰면 되지.
능력이 뒤처지면 어때?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되지.

주어진 환경에 맞춰 나를 바꾸고,
꾸준한 노력으로 발전해 나간다면,
누구도 견줄 수 없는 최고가 될 수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비록 환경이 어둡고 괴롭더라도
항상 마음의 눈을 넓게 뜨고 있어라.
- 명심보감 -

 

 

 

누구나 살다보면 잘못을 할수있다
그럴때 필요한게 바로 사과다
근데 진정한 사과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피해자에게 구체적으로 사과하라

두리뭉실하게 사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식의 거만한 사과는 사실상 모욕이다

둘째.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 후 사과하라

자신의 입장에서 사과해선 안된다.
광범위하게, 더 깊고 넓게 해야 한다.

셋째.
어떤 전제나 조건을 달면 안 된다.

사과문에 쓰면 안되는
대표적인 문구가 바로
 “피해자분들께서 양해해주신다면 직접 찾아뵈어 사과드리겠다” “용서를 구한다”
“미안해.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사과할게”
“실수가 있었습니다” 등이다.
이런 표현들은 사과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진짜 사과다

  •  

 

 

물도^^
바위 절벽을 만나야
아름다운 폭포가 되고..

석양도^^
구름을 만나야
붉은 노을이 곱게 빛나 보이며..

인생도^^
살아 가다 보면

때로는 좋은 일이..
때로는 슬픈 일이..
때로는 힘든 일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르막 길이 있으면
내리막 길이 있으며

장대같은
폭우가 쏟아 질 때와
보슬비 가랑비 여우비가 내릴 때도 있고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한 날이 있듯이..

인생의
참된 즐거움도 역경과 고난을 만난 뒤

비로소 뒤늦게
알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인생사인 것처럼..

사람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미래가 바뀌니

좋은 만남
좋은 선택을 하셔야 겠습니다.

병에
물을 담으면 "물병"
꽃을 담으면 "꽃병"
꿀을 담으면 "꿀병"이 됩니다.

통에
물을 담으면 "물통"
쓰레기를 담으면 "쓰레기통" 이 됩니다.

우리 사람의
"마음" 도 똑같아서

그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좋은 대접을 받을 수도 있고
천덕꾸러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 마음 속에
담겨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람 대접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만..
시기..
불평..등
좋지않은 것들을 가득 담아두면

욕심쟁이
심술꾸러기가 되는 것이고,

감사..
사랑..
겸손.. 등
좋은 것을 담아두면

남들로부터
대접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담느냐 하는 것은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오직 "나 자신" 입니다.

오늘은
마음에 무엇을 담으시겠습니까?

겸손..
감사..
사랑..
내 마음 항아리에 가득담아

내가
행복하고 남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