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인생관의 승리




영국의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헨리 포세트는
청년 시절부터 경제와 정치에 큰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명석한 두뇌로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어느 날 그에게 불의의
사고가 찾아왔습니다.

그가 25살 때 아버지와 함께 나간 사냥에서
그만 양쪽 눈을 다 잃는 총기사고를 겪게 됐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아들이 두 눈을 잃었다는 죄책감에
아버지는 매일 죄책감에 시달리며
몹시 괴로워했습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그는 속으론
우울하고 힘들었지만 애써 웃으며 말했습니다.
"양쪽 눈은 잃었지만, 머리는
남아있어서 괜찮아요."

헨리 포세트는 아버지를 사랑했기 때문에
절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곤 늘 큰소리로 웃고 떠들며 부지런히 무엇인가를 했고
일부러 기쁜 듯 활기차게 행동했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기쁜 척이었던 내면에 진짜로 기쁨이 가득 차올랐고
잊고 있던 꿈에 대한 열정도 다시 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훗날 영국에서 경제학자이자
국회의원이 되었고 체신부 장관까지 지내며
사회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는 사람을 희망으로 이끕니다.
같은 결과 앞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행복한 결과가 될 것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불행한 결과가 될 테니까요.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좋은 일을 생각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나쁜 일을 생각하면 나쁜 일이 생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온종일 생각하고 있는
바로 그것의 조합이다.
- 조셉 머피 -

홍매화가 곱다 했더니 벌 투성이다

벌이 있어야 수정이 되지

벌이 없음 세상이 망한데...

망하는 이유를 모른다고 - 이전 글을 읽어보고 와야 할것 같애

 

그런데 다람쥐가 너무 너무 똑독해 

숨겨둔 도토리를 다 찾아 낸다면...

도토리 나무가 번식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치 겠구나

작은 미물도 살아가는 이유가 있는것처럼 

우리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겠지

 

 

 

 

도토리가 주는 교훈




가을철 산에 오르다 보면 산속 다양한 동물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도토리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중 도토리를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다람쥐와 청설모인데 이들은 겨울철 식량을 저축하기 위해서
땅속 곳곳에 열매를 묻어둡니다.

하지만 다람쥐와 청설모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이 어디에 도토리를 묻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결국 묻었던 도토리 중 95%는 찾아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찾아내지 못한 도토리 중에는
겨울이 지나고, 봄철에 싹을 틔우며 튼튼한 나무로
다시 자라납니다.

이렇게 자라난 나무는 숲을 이루고
산을 만들어 또 한 해 동물들의 양식이
되어 줍니다.





만약 인생의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면 행복할까요?

오히려 잊지 못해서 괴롭거나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때론 잊지 못해서 힘들 때도 있지만
잊음으로 득이 되기도 합니다.

실패와 후회보다는
고마운 일들과 소중한 것을 기억한다면
행복으로 가득한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 오늘의 명언
기억해 내는 힘이 아닌 잊는 힘이야말로
우리들이 살면서 더 필요한 것이다.
- 쇼렘 아쉬 -

세상은 그래도 참 따뜻한 온정이 오가는가벼

 

세상은 따뜻하기에 꼭 읽어봐 주세요




사진 속에 두 남자가 있습니다.
눈이 펑펑 오는 날, 한 남자가 자신이
입고 있던 방한 점퍼를 벗어 다른 남자에게
입혀주고 주머니 속에서 뭔가를 꺼내
쥐여줍니다.

지난 1월 18일 오전 서울역 앞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점퍼를 벗어 주던 남자는 지나가는 시민이었고,
그 점퍼를 받은 남자는 노숙인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진 기자가 노숙인에게
달려가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시죠?"

그러자 노숙인은 눈물을 흘리며
기자에게 대답했습니다.

"너무 추워서 커피 한잔을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아무런 대꾸도 없이 내 어깨를 잡더니
입고 있던 외투와 장갑을 줬습니다.
정말 고맙고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 남자가 노숙인에게 건네준 건
외투와 장갑뿐만 아니라 5만 원짜리 지폐도
있었습니다.

사진기자가 바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자신이 가진 걸 노숙인에게 선뜻 내어준 남자는
하얀 눈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 출처 : 한겨레 신문 -





눈이 펑펑 내리는 몹시 추운 날이었지만,
마음만큼은 한없이 따뜻해지는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각박해지는 세상이지만,
이렇듯 소외된 이웃들에게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나눠주는
숨은 영웅들 덕분에 세상의 온도는 올라가고,
여전히 살 만한 세상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나라 꼬라지가 말이 아니다

신임 법무부장관 박범계가 민정수석을 패싱하고 문통에게 직보하고 인사권을 지 맘대로 움직인다

민정수석은 취임3개월도 못되어 못하겠다고 사표를 내 던진 상태고 

나라 꼴이 이게 뭐냐

 

 

 

진중권이 페북에 올린글 입니다~

전라도 나주 땅에 "김한"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자는 처녀고 유부녀고 가리지 않고 그저 얼굴만 반반하면 
수하 잡놈들을 시켜 끌고와 겁탈을 했다. 

겁탈당한 여자들의 자살이 이어졌다. 

이 고을 사또라는 위인은 빗발치는 민원에 김한을 찾아와 그 앞에 꿇어앉아 한다는 말이 

“어르신, 제발 유부녀만은…...” 

보료에 삐딱하니 앉아 장죽을 문 김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건방진 놈, 네놈 할 일이나 하지 쓸데없이 참견이야. 썩 꺼지지 못할까."

나주 사또는 김한의 눈 밖에 나 결국 옷을 벗고 물러났다.

도대체 김한은 누구인가? 그는 연산군 애첩의 큰오빠였던 것이었다.

박눌이라는 신관 사또가 부임하러 나주 땅에 들어 섰건만 누구 하나 마중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신관 사또의 기를 꺾으려는 김한이 영접하러 나가는 자는 각오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동헌에 들어오자 이방이 보따리 하나를 들고 찾아 왔다. 

"사또 나으리,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이거라도 들고 김한 어르신께 먼저 문안을 가시지요."

박눌은 보따리를 걷어차며 고래 고함을 질렀다.
 
"여봐라, 당장 김한이란 자를 잡아 오렸다!"

천하의 김한에게 인사를 가기는 커녕 잡아오라 대갈일성하니, 앞으로 닥칠 일이 눈앞에 선해 육방 
관속이 모두 벌벌 떨고 있었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느냐!” 

다시 호통을 쳐도 고개만 숙일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놈 집 마당에 형틀이 있다지?"

사또 박눌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이방을 앞세워 김한의 집으로 가자 관속과 포졸들이 뒤따랐다. 

박눌이 김한의 안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 선 김한이 두눈을 부릅뜨고,

“네 이놈,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느냐.” 며 사또에게 고함을 쳤다. 

사또가 단숨에 뛰어올라가 김한의 멱살을 잡고 끌어내려 형틀에 묶고 형방에게 곤장을 치라 명했다. 

얼떨결에 형틀에 묶인 김한이 "이놈들아 사또놈 옷을 당장 벗기라."고 악을 써댔다.

형방이 곤장을 들고 벌벌 떨자 사또가 빼앗아 떡메 치듯이 내리치니 곤장 스무대에 김한은 똥을 싸며 뻗어 찬물을 퍼부었고 일어나지 못하드만 그대로 황천길로 가버렸다. 

김한이 신관 사또에게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나주 백성들은 밤새도록 꽹과리를 울리며 춤을 췄다. 

일은 크게 벌어졌다. 그날밤 육방이 사또 앞에 엎드리며

"사또 나으리, 변복을 하고 멀리 행적을 감추십시오. 여기 노잣돈을 마련했습니다."

박눌의 대답은 단호했다. 

이튿날 아침 나주 사또 박눌은 당당하게 연산군에게 고하고 연산군의 사약을 받을 참으로 집사만 데리고서 말을 타고 상경길에 올랐다.

애첩의 큰처남이 사또의 태장에 절명했다는 소식을 들은 연산군은 펄펄 뛰며 사헌부 관리를 나주로 보냈다. 

그들은 엿새 만에 나주에 도착해 “박눌은 빨리 나와 사약을 받으라."고 고함쳤지만 박눌은 없었다. 

길이 엇갈린 것이었다.

한편 서울에 도착한 박눌은 간발의 차이로 남대문이 닫힌지라, 그날 밤은 성밖 주막집에서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며 평생 데리고 다닌 집사에게 

"함께 화를 당할지 모르니 너는 이 돈을 가지고 네 고향으로 내려가거라. 날이 밝으면 나 혼자 조정으로 들어가 사약을 받으리라."

집사는 박눌에게 술 한잔을 올린 후 큰절을 하고 말없이 닭똥같은 눈물만 떨구었다. 

이튿날 아침, 간밤에 마신 술로 주막에서 아직 자고 있는데 집사가 뛰어들었다.

"나으리, 세상이 바뀌어졌습니다."

간밤에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은 폐위되어 강화도로 쫓겨나고 중종이 등극했다.

훗날, 박눌은 부제학까지 벼슬이 올라갔다. 

요즘도 이런 결기있는 목민관이 필요합니다만 이런 의인들은 온데간데 없다.

파렴치하게 수년간 자기 여비서나 건드리며 가면을  쓴 이중인격자로 자살한 자를 보고 국개의원이란 자들부터가 나서서 '맑은 분'이었다며 칭송 일성이니 
성추행한 자가 문재인좌파정권 세상에서는 '맑은 분이더냐'

참으로 한심한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파렴치한 행위하다가 죽은 자가 "미안하다"고 한마디라도 하고 자살했다면 모를까 목숨까지 끊었는지 끊겼는지 아님 살아있는지 모르지만 요즘 집권여당 잡녀놈들 중에는 정권을 잡고보니

"중이 고기 맛을 알고나니 절간에 빈대가 살아남지 않듯이..."

정권 잡은 덕에 각종 부정을 해먹으며 내로남불하는 파렴치한 이적 매국노 적폐짓들이 비일비재하다 

박눌같은 의인이 나타나서 김한같은 죽일놈년들을 응징해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는 없을까!!

- 고교연합 카톡방에 올라온 글을 가져 왔습니다.

봄이 오나 보다 

아파트를 산책하다 

매실나무가 심어진 화단을 바라보니

꽃이 피었다

 

2021/02/12 아파트 화단에서

[ 비(雨)光 이야기 ]

화투 비(비)광에서 우산을 쓴 사람은 일본
3대 서예가 중의 한 사람인 오노도후(小野道風)인데,
- 우리 나라로 말하면 한석봉이나 김정희 쯤 되겠죠-
오노도후가 젊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서예 공부를 아무리 해도 진도가 안 나가고 발전이 없어서 공연히 짜증이 났답니다.
"에라, 모르겠다. 이젠 더 못하겠다. 집어 치워야지. 내가 글을 잘 써서 뭐하나?"
화가 난 오노도후는 서예를 그만 두려고 마음 먹고, 일어나서 밖으로 바람이나 쐬러 나갔습니다.
그때가 장마철이라 밖에는 비가 뿌려댔습니다.
오노도후는 비참한 심정이었죠.
우산을 들고 한참 걸어가는데 빗물이 불어난 개울 속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발버둥을 치고 있었어요.
빗물이 불어나서 흙탕물로 변한 개울에서 떠내려 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버둥거리고 있었던 것이지요.
개울 옆에는 버드나무가 있는데 개구리는 그 버드나무에 기어 오르려고 안간 힘을 다했지만 비에 젖은 버드나무는 미끄러워서 헛탕만 치고하고 있는 겁니다.

'저 놈이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 히히...
몇 번 바둥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흙탕물에 쓸려 가겠지.'
오노도후는 쪼그리고 앉아서 구경을 했답니다.
개구리는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고...계속 미끄러지다가....
결국에는 죽을 힘을 다해 버드나무로 기어 올랐습니다.
그걸 지켜 본 오노도후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햐, 저런 미물도 저렇게 죽을 힘을 다해 나무에 기어 오르는데 내가 여기서 포기를 하면 개구리만도 못하겠구나.
참 부끄럽다!'
그 길로 다시 서당으로 돌아가 필사적으로 서예 연습에 매달려 마침내 일본 제일의 서예가가 되었답니다.

자세히 살펴 보셔요.
비광 속에는 개구리와 버드나무, 우산 쓴 오노도후가 그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12월 그림에 오노도후 이야기를 그려 놓은 것도 뜻이 깊다고 봅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겠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떠오르는 친근한 노래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작곡자는
'어빙 벌린'입니다.

네 살 때 미국에 간 그는 유년 시절을
배고픔과 멸시 속에 보냈고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어야 했습니다.

그는 음악에 관련된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는 가난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악보도 그릴 줄 몰라
악상이 떠오를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악보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수십 곡을 포함해 800여 곡의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그저 좋아서'라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요?
그저 작곡이 좋아서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온 열정을 쏟아부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실패작도 많아 누구도
그의 작품을 거들떠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다시 만들면 됐으니까요.
각고의 노력으로 만든 노래가 그의 성공작이 되었고,
차츰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 경제공황으로 무일푼 신세가 되었을 때도
그는 오히려 작곡할 시간이 늘어 잘됐다고 할 정도로
작곡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고 무엇보다
무한 긍정의 기운이 지금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노래로 전달이 돼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다시 한번 긍정의 힘이 주는 위대함을 느낍니다.
마주한 역경의 시간을 포기하지 않고
환경도 탓하지 않으며 희망을 준비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 밝아질 것입니다.

코로나19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따뜻한 하루 가족'님들도 어려운 이 시기를
긍정의 힘으로 이겨내길 바랍니다.


# 오늘의 명언
힘든 일에 부딪혔을 때
가장 현명하고 간단한 답은 웃음이다.
– 허먼 멜빌 –


돈 벌면 잘해 줄게
돈 벌면 효도 할게 
 
​성공하면 도와 줄게
성공하면 나눔 할게 
 
‘돈 벌면’ 이라며 미루고
‘성공하면’ 이라며 외면하다가.. 
 
​결국에는
돈도 못 벌고 성공도 못 하고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고..

​삶은 그렇게 쓸쓸하게 지나간다. 
 
간혹 바램대로
돈 벌고 성공을 하지만..

이제는 이미 잘해줄 사람도
도와줄 사람도 더 이상 내 곁에 없다 
 
그래서 더 돈 벌어 잘해주고
더 성공해서 나누겠다는 말보다..
 
아직 성공하지 않았을지라도^^

지금 바로
따스한 밥 한 끼를
다정히 함께 사이좋게 나누는 것..
 
비록 부족하고 소박할지라도^^

차라리
오늘 뚝배기 한 사발을
편안히 부담 없이 함께 즐기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삶이고..
사랑이고..
함께 함이고..
나눔이고..
행복인 것을^^ 
 
삶은 그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기에
할 수 있을 때 해야만 하는 것 
 
지금 이때가 지나면
그렇게 밥 사 줄 사람도 없고
그렇게 잘해 줄 사람도 이미 없고..
 
이미 때는 늦어버렸고
이미 늦었음을 아쉬워할 때는

모두가 그렇게 인생을 흘려 보내고
아쉬워 하며 ​후회해봐야 아무 소용 없는 일.

무조건
좋은 사람 옆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 ? 그리움 ? -

화려했던 젊음도
이제
흘러간 세월 속에
묻혀져 가고~

추억 속에 잠자듯
소식 없는 친구들이
가끔씩 그리워진다.

서럽게 흔들리는
그리움 너머로
보고 싶던 얼굴들도
하나 둘 멀어져가고....

지금껏
멈출수 없을것만 같이
숨막히도록 바쁘게
걸어 왔는데...

어느새 이렇게
서산까지 왔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흘러가는 세월에 휘감겨
휘몰아치는 생존의
소용돌이 속을
용하게도 빠져 나왔는데
뜨거웠던 열정도 이제
온도를 내려 본다.

삶이란 지나고 보면
이토록 빠르게 지나가는 .
한순간 인것을 ~
남은 세월에 애착이 간다.

보고싶은 얼굴들~
만나고 싶은 친구들 !!

오늘도 그리움 담으며
행복을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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