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귀 5가지^^

1) 첫번째^^

대원군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리던 시절 한 선비가 찾아왔다. 

선비가 큰절을 했지만 
대원군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머쓱해진 선비는 
자신의 절을 보지 못한 줄 알고 한 번 더 절을 했다. 

그러자 대원군이 벼락같이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절을 두 번 하다니 내가 송장이냐?” 

그러자 선비가 대답했다. 

“처음 드리는 절은 
찾아 뵈었기에 드리는 절이옵고 두 번째 
드리는 절은 그만 가보겠다는 절이었사옵니다.” 

선비의 재치에 
대원군은 껄껄 웃으면서 기개가 
대단하다며 앞길을 이끌어 주었다고 한다. 

  •  



2) 두번째^^

정주영 회장이
조그만 공장을 운영할 때의 일이다.

새벽에 화재가 났다는 급한 전갈이 와서
공장으로 달려갔는데 피땀 흘려 일군
공장이 이미 흔적도 없이 타버린 후였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
정 회장이 웃으며 한 말은 좌절하고 있던
모든 사람의 가슴을 따뜻하게 적셔 주었다.

“허허, 어차피 헐고 다시 지으려 했는데 잘되었구먼. 걱정 말고 열심히 일들 하게.”


3) 세번째^^

힐러리와 클린턴이 함께
운전하고 가다 기름을 넣으러 주유소에 들렀다.

그런데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가 힐러리의 동창이었다.

이를 본 클린턴이 한마디 한다.

“당신이 저 사람과 결혼했다면
지금쯤 주유소 직원의 아내가 되어 있겠구려.”

그러자
힐러리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죠,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겠죠.”


4) 네번째^^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어떤 변화가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잠시 생각에
잠긴 아이젠하워가 이렇게 대답했다.

“있고말고..
골프 시합에서 나한테 이기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아주 많아졌단 말이야.”


5) 다섯번째^^

인도 "간디"가
영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때의 일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
식민지 인도 출신인 학생 간디를
아니꼽게 여기던 "피터스"라는 교수가 있었다.

하루는 간디가 대학 식당에서
피터스 교수 옆자리에 점심을 먹으러 앉았습니다.

피터스 교수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어요.

"이보게,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돼지와 새가 같이 식사하는 일은 없다네."

간디가 재치 있게 응답하였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교수님! 제가 다른 곳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복수심에 약이 오른 교수는
다음 시험 때에 간디를 애먹이려고 했으나..

간디가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자 간디에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길을 걷다 돈자루와 지혜가 든 자루를 발견했다네. 자네라면 어떤 자루를 택하겠나?"

간디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당연히 돈자루죠."

교수가 혀를 차면서 빈정댔다.

"쯧쯧, 만일 나라면
돈이 아니라, 지혜를 택했을 것이네."

간디가 간단히 대꾸했습니다.

"뭐, 각자
부족한 것을 택하는 것 아니겠어요."

거의 히스테리의
상태에 빠진 교수는 간디의
시험지에 '멍청이'라고 써서 돌려 주었습니다.

간디가 교수에게 말했습니다.

"교수님 제 시험지에는
점수는 없고, 교수님 서명만 있는데요."


우리는 누가 욕을 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조롱을 하면 상심하거나
낙담을 하고 그에 따라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것은 대단한
어리석음이고 성냄으로 우리를 상하게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상대의 어리석음을 연민하면 될 뿐이지
거기에 응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도
간디처럼 누군가의 비판을
흘려버릴 자유로운 영혼이 되면 좋겠습니다.

위대한 영혼은 상대의
어리석음도 인정하는 지혜에 있다고요.

행복한 주말들 보내시길^♡^

남평문씨세거지의 돌담길을 돌아서다 보니 

담장위 매실나무위에 홍매화가 폈다 

사진을 찍고 돌아서려니 한무리 여인네들이 온다 

그러더니 돌담길만 보곤 이내 발길을 돌린다

봄이 오는 길목에 빨갛게핀 예쁜 꽃도 보지 못하고 돌아서는구나 싶어 

여기 홍매화 폈어요 하니

그제서야 꽃이 피었음을 알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등 호들갑을 뜬다

"아유 ! 이뻐라 벌써 꽃이 폈네,,,"

"엄마야 벌써 꽃이 폈다 어여"

그제서야 호들갑이다

괜히 먼저 본 내가 우쭐해지는 기분이다

2021/01/30 

지금 이대로라도 좋습니다.

어릴 적 예기치 못한 사고로 시각장애를 입은 한 남자가 다니던 병원으로부터 기적 같은 소식을 들었습니다. 검사 결과, 수술하면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남자는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당장 수술실로 가고 싶었지만 쉽게 병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다름 아닌 아내가 마음에 걸려서였습니다.

남자는 스무 살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아내는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던 남자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고백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와 결혼해주세요. 평생 마음의 눈으로 당신을 보살피고 사랑할게요." 그러자 여자는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럴 수 없어요. 저는 어릴 때 끓는 물에 데인 화상 흉터로 가득해요."

남자는 자신 있게 다시 말했습니다. "그런 이유라면 괜찮습니다. 저는 당신의 흉터는 안 보이고 아름다운 마음씨만 느껴집니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자는 밤새 한숨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병원에 가서 수술을 포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수술을 거부하는 건가요?" 그러자 남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게 아닙니다. 저에겐 사실 화상을 입은 아내가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두 눈을 얻게 되면 아내의 흉측한 얼굴을 보게 되겠지요. 나는 아내의 얼굴이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분명 아내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수술을 포기하는 겁니다."

언제나 나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것, 상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불편함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것, 상대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존귀하게 여기는 그것이 진정한 '사랑'의 본질입니다.

 

-좋은 글 중에서-

# 오늘의 명언
사랑은 눈먼 것이 아니다. 더 적게 보는 게 아니라 더 많이 본다. 다만 더 많이 보이기 때문에, 더 적게 보려고 하는 것이다. -랍비 줄리어스 고든-

봄이 오려나 보다 

새순이 돋아 난다

새순이 돋아 난다 2021/01/30 남평문씨세거지에서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를 잊지 못해 가슴에 묻어두고 산다

미국의 유수 공대에 다니는 어느 가난한
고학생이 우아하고 총명하게 생긴 지역 유지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

여자측 집안에선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여학생을 아주 먼 친척 집에 보내 버렸다.
남자는 그녀를 찾기 위해 몇 달을 헤매 다녔다.
그러다 비가 내리는 어느 날 그녀 집 앞에서 해후를 하게 된다.

여자가 힘없이 말했다. "나 내일 결혼해."
남자는 절망하여 말없이 있다가
"그럼 내가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만
내 곁에 있어 줄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이에 말아피는 담배라서 몇 모금을 피니까
금새 다 타버렸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여자는 눈인사로 집으로 돌아갔고 둘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후에 그는 졸업하고 취직하여 세계 최초로 필터가 있는 담배를 개발하여 백만장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 여자가 병든 몸으로 빈민가에서 혼자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남자는 함박 눈이 내리는 어느 날 검정색 벤츠를 타고 그녀를 찾아가 말했다.

"나 아직도 널사랑해 나와 결혼해주겠어?"
그렇게 해주기를 바래 여자는 망설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남자는 다음 날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이다 남자가 그녀를 찾아갔을 때 깜짝
놀란 건 목을 매단 채 죽어 있는 그녀의 싸늘한 시신 뿐이었다.

유서지에는 아무 내용이 없었는데 아랫쪽 우측 하단에 조그마한 글씨로 '그동안 너무 보고 싶었어! 고마워'라고 적혀 있었다

그 후에 남자는 자기가 경영하는 담배회사의
필터 담배에 말보로 'MARL BORO'란 브랜드를 붙였다.
날개 달린듯 팔리기 시작했다.
억만 장자가 된 후에도 그녀를 잊지 못해 눈이오는 날에는 하얀 꽃을 들고 그녀의 산소를 보살 핀다.

'MARLBORO'는 'Man Always Remember Love Because Of Romance Over
(남자는 흘러간 로맨스 때문에 사랑을 기억한다)' 의 이니셜이다.

말보로 담배회사의 픽션광고다!
효과가 대단히 컸다

소비자는 지금도 말보로 회사의 애잔한 사랑의 사연을 믿고 말보로를 애연하고 있다


사랑은 아름다워라
/ 앤디월리암스

https://youtu.be/fXgrcYIv59Q

 

2021/01/30 달성군 본리리 남평 문씨세거지에 홍매화가 폈다


봄을 맞이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아침 햇살과 같아서 따뜻하기만 합니다

추위에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봄이 우리들 곁에 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입춘" !
'입춘대길 건양다경' 문구에 모든 액운들 소멸하고

겨우내 얼었던 마음들
다 녹았으면 좋겠습니다.

봄에서 여름, 여름에서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에 이를 때

그때 다시 아름다운 사람으로 행복한 미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2021/01/30 남평문씨세거지에서

 

세상이 경이로운건

박두규


푸른 버들치 떼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저 자유로움도 스스로의

맑고 투명한 속에서 왔겠지

세상을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나무나 물고기 같은 여린 목숨들이

아무런 원망도 없이

순순히 죽어가기 때문일 거야

그토록 모든 죽음은 사랑이고

그저 아랑곳없이 죽음을 맞는 것인데

우리가 일상으로

슬퍼하고 절망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염치없는 짓인가

사랑은 늘 그렇게 오는 것인데

그렇게 스스로의 맑고 투명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인데

 

 

졸업식 노래의 탄생
      (1946년 6월 6일)

해방된지 겨우 1년. 중앙청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 육군 중장이 38도선 이하의 조선 땅을 통치하던 무렵,

군정청 편수국장 직함을 갖고 있던 외솔 최현배가 한 아동문학가를 찾았다.

“여보 석동, 노래 하나 지어 주시게.” 석동이라는 아호를 가진 이 사람의 이름은 윤석중(尹石重)이었다. 

석동이라는 아호는 어느 신문에선가 그를 소개하면서 윤석동(童)이라고 잘못 쓴 걸 보고 춘원 이광수가 “석동이라는 아호가 좋네, 누가 지어 준거요?”라고 칭찬하면서 그대로 아호가 돼 버렸다고 한다.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하지 않소.  
그래서 외국 곡을 이것 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석동이 하나 지어 줘야겠소.”

윤석중은 해방 직후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 나라 좋은 나라”를 작사하여 해방된 조선의 어린이들이 목청껏 ‘새나라 우리나라’를 부르게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최현배가 보기에 일제 때 부터 동요 작사가로 이름을 날린 윤석중은 졸업식 노래를 만들 최적임자였을 것이다. 

윤석중이 누구시더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을 위해서 노래 몇 개만 흥얼거려 보겠다. 

“달 밝은 밤에 기러기들이.....”

“엄마 앞에서 짝자꿍 아빠 앞에서 짝자꿍”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그리고 어린이날만 되면 울려퍼지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이쯤되면 아아아 하면서 고개를 상하로 크게 흔드는 분이 많으실 것이다.

최현배가 졸업식 노래를 의뢰한 게 1946년 6월 5일이었다. 

최현배의 부탁을 받자마자 윤석중의 머리 속에는 시상(詩想)이 번득인 것 같다. 

원래 악상(樂想)이나 시상은 배차 시간 쫓기는 기사가 모는 버스 같아서 제때 손 들지 않으면 휙 지나가 버리는 법. 윤석중은 그날이 가기 전에 가사를 완성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 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윤석중이 또 급히 찾은 것은 작곡가 정순철이었다.

바로 <새나라의 어린이>  <엄마 앞에서 짝짜꿍>의 작곡가.

정순철 작곡가의 아드님의 회고에 따르면 정순철 또한 가사를 받고 악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것 같다. 

허겁지겁 피아노를 두들기다가 악보에 콩나물을 급하게 그려 뛰어나가던 모습을 회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성미 급한 작사가와 작곡가는 설렁탕집에서 만났다. 

“비이이잋 나는 조오올업장을 타신 언니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원래 흥에 겨운 예술가들의 얼굴 두께는 빙산처럼 두터워지는 법. 설렁탕집에서 때아닌 고성방가는 “거 조용히 합시다!”라는 지청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졸업식 노래는 그렇게 엉겁결에 탄생했다. 하지만 그 가사와 가락은 결코 엉성하지 않았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하는 1절은 교과서도 제대로 없어 선배들 것을 물려받아 공부해야 했던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요즘 시대와는 좀 맞지 않는다)

그런데 뭉클한 것은 2절이고, 사실 2절을 부를 때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그리고 또 나오는 ‘새나라’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3절은 졸업이 아닌 다짐의 합창.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
당장 편수국 전 직원들 앞에서 이 노래가 처음 불리워졌고 열화와 같은 호응을 거쳐 졸업식 노래로 공표된 것이 1946년 6월 6일이었다. 

이 노래는 역시 커다란 환영을 받으며 각급 학교에서 불리워졌다. 

때아닌 돈벼락을 맞은 것이 당시로서는 몇 집 안되던 꽃집들이라고 한다.  
각급 학교 졸업 때마다 꽃다발 주문 홍수가 일어난 것이다. 

원래 윤석중의 의도는 “마음의 꽃다발” 이었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 윤석중 작사가와 정순철 작곡가는 한국현대사의 격랑 속에서 크나큰 상처를 입거나 아예 실종되고 말았다.

윤석중의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은 충남 서산에 살고 있었는데 새어머니 쪽이 좌익과 관련되었다고 한다. 

전쟁 와중에 벌어진 피의 학살극에 윤석중의 가족은 몰살당하고 말았다. 

윤석중이 원래 서산으로 피난오려던 것을 아버지가 “전쟁 통에는 떨어져 있어야 누구든 산다.”고 만류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천행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작곡가 정순철의 불행은 본인에게 찾아왔다. 다 피난간 학교(성신여고)를 홀로 지키다가 거의 서울이 수복되던 9월 28일경 인민군에게 납북되고 만 것이다. 이후 그의 생사는 알려지지 않는다.

해월 최시형의 외손자이자 의암 손병희의 사위였던 그의 제삿날은 그래서 수복 다음날인 9월 29일이 됐다. 

후일 막사이사이상을 받은 윤석중은 이렇게 연설한다. “정말로 국경이 없는 것은 동심인 줄 압니다.

동심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본심입니다. 인간의 양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동물이나 목성하고도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눌 수 있는 것이 곧 동심입니다.”

간악한 일제 통치를 받을 제에도, 해방의 혼란과 설렘 와중에서도, 자신의 일가족을 학살하고 절친한 작곡가의 생사를 가린 전쟁의 공포 속에서도, 가난의 무게가 전 국민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을 때에도 윤석중은 그 어둠을 밝힐 빛으로 ‘동심’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졸업식 노래>는 그 중 하나였다. 

요즘 졸업식에서는 ‘올드랭사인’을 많이 부른다고 알고 있다. 돌이켜보면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에도 “오랫 동안 사귀었던.....”을 불렀다.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

어느 철없는 문교부 당국자가 “요즘 세상에 누가 교과서를 물려 주나? 바꿔!” 한 것인지 아니면 가사가 초딩스러워서 목소리 굵어진 청소년들이 부르기엔 좀 어색해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정히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가사를 조금 바꿔서라도 우리나라만의 졸업식 노래로 가꿔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제대로 교사(校舍)하나 갖추지 못한 천막 학교에서 손을 갈퀴로 삼아 일하면서도 자식만은 학교에 보내려던 퀭한 눈의 부모 앞에서 얼키설키 만든 꽃다발을 든 졸업생들이 “잘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를
부르다가 끝내 엉엉 울고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을 젖은 목소리로 함께 하던 졸업식 풍경은 수 세대에 걸쳐 우리 나라 곳곳에서 행해진 살가운 역사의 한 페이지였는데......

윤석중과 정순철 두 사람이 설렁탕집에서 부르며 만든 노래. 흘낏 떠올려도 아련한 추억이 슬라이드처럼 흘러가는 노래 <졸업식 노래>가

 

1946년 6월 6일 우리 곁으로 왔다.

 

 

남평 문씨세거지를 찾아 갔다 봄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2021/01/30 

 

 

● 걸림없이 살줄알라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때 과감히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줄 알고
호랑이처럼 무섭고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남평 문씨세거지에 들렸더니 목화꽃이 피었다

그리고 홍매화도 피고 봄이 머지 않았나 보다

2012/01/30 남평 문씨세거지

2월에 꿈꾸는 사랑 

봄이 오면
나도 예쁜 꽃 한 송이 피우고 싶어

어울려 피는 꽃이 되어
더불어 나누는 향기이고 싶어

​용서의 꽃은
돌아선 등을 마주 보게 하고

이해의 꽃은
멀어진 가슴을 가깝게 하지

​겸손의 꽃은
다가선 걸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의 꽃은
마음을 이어주는 기쁨이 되지

​나눔의 꽃은
생각만 해도 행복한 미소

배려의 꽃은
바라만 봐도 아름다운 풍경인 걸

​사랑과 믿음의 빛으로
내가 어디에 있건

환히 나를 비추는 당신
햇살같이 고마운 당신에게

감사의 꽃도 잊어선 안 되겠지?

이채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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