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된 우리 'WEagles' 캠페인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난 엄마를
그리워하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새엄마가 집에 왔을 때
소녀는 울어버렸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생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새엄마의 피부색이 자신과는 달랐고
대화도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새엄마는 베트남분이었습니다.

소녀는 피부색이 다른 새엄마가 부끄러워서
학교에도 친구들에게도 엄마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거짓말은 금방 들통났고
창피함을 이기지 못한 소녀는 새엄마에게
짜증과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새엄마는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오히려 고개를 숙이며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효진아. 엄마가 많이 미안해요."

세월이 지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소녀는 새엄마가 싫어서 피한 것이 아니라
'다문화 가정'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남들의 시선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른이 된 소녀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눈에도 씌워 있던 색안경을 보고
새엄마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어린 소녀의 눈에 색안경을 씌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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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인종, 나이, 성별, 피부색 등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벌어지는
차별은 없어져야 합니다.

한화 이글스(Eagles)의 위글스(WEagles) 캠페인은
이런 차별을 없애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따뜻한 하루도 위글스(WEagles) 캠페인을
함께 응원하고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야구팬은
남녀노소 차별을 두지 않으며
함께 야구를 즐기는 곳에는 피부색의 다름은
더더욱 무의미합니다.




WE(우리) + Eagles = WEagles

'우리'와 '한화 이글스'가 함께하여
탄생한 '위글스'(WEagles)!

위글스(WEagles) 캠페인은 야구를 통해 모든 사람이
화합하고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 움직입니다.

 

상처 입은 꽃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빨래터에서 얼굴에 젖살도 빠지지 않은
여자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습니다.
빨래는 아주 힘든 노동입니다.

하지만 답답한 날씨에 시원한 물가에서
친구들과 함께 평범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며
별 대단치도 않은 일에 까르륵 웃는 것이
너무나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일본인들이 여자아이들을
강제로 데려갔고, 그 이후 아이들은 다시는
환하게 웃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부산과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끌려다니며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은 소녀들의 삶을 모두 무너뜨렸고,
새하얗던 소녀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일본군에게 다시 잡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소녀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빨래터에서 친구들과 끌려간 이효순 할머니.
21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에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미치도록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그리고 2015년 5월 27일,
91세의 이효순 할머니는 마음속 한을 풀지 못한 채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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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말합니다.
'어떤 강제도 없었다. 그들은 돈 때문에
스스로 자원한 것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을 주장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을 다했다.
지금 이러는 것은 결국 돈 때문이다.'

저들은 지금도 거짓 앞에 당당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어떠한 것에도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당연한 진실을, 분명한 역사를, 당당한 사과를
그들에게 원할 뿐입니다.





꽃다운 나이에 어린 소녀는 어느덧
주름과 백발이 가득한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하갱도에서 석탄을 캐던 소년은
자식 얼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의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8월 15일 74주년 광복절입니다.
잘못된 역사는 잊히는 순간 또다시 반복됩니다.
다시는 짓밟힌 할머니와 착취당한 할아버지가
우리 역사에 등장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그 일을
역사에 남겨두어야 한다.
- 김학순 할머니 -

 

레일바이크 역이 되어 버린 하동 북천역
북천역은 새 역사가 생겨 이전 하였구요
새로 생긴 철길을 따라 열차가 다니고
예전의 구 철도와 역사는 철로를 이용하여
레일바이크를 운행하네요

 

 

2020/09/20 하동 북천역

 

1173번째 기적




1951년, 호주의 한 병원에서 14살 소년이
폐 일부를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습니다.

무려 13ℓ의 혈액을 수혈받아야 했던
대수술 끝에 살아남은 소년은 사람들의 헌혈로
생명을 구했으니 자신도 몸이 건강해지면
나중에 꼭 헌혈해서 다른 사람들을 돕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주에선 최소 18세가 돼야 헌혈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나 18세가 된 소년은
헌혈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피에 '레서스 용혈성'이라는
희소병의 항체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서스 용혈성'은 RH-의 혈액형을 가진 여성이
RH+의 혈액형을 가진 아이를 임신하면,
산모의 몸이 혈액형이 다른 태아를
외부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질환인데
태아에게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히거나
유산되게 합니다.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던 아기들을 구하기 위해
소년은 2주마다 혈장 헌혈을 해왔습니다.
그렇게 60년이 넘도록 해온 것입니다.

호주의 제임스 크리스토퍼 해리슨은
18세부터 81세가 될 때까지 무려 1,172회의
헌혈을 한 사람입니다.

해리슨의 항체로 '안티-D'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다만 이 백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꾸준히 항체가 필요했습니다.
직접 항체를 제조하는 실험이 실패했기 때문에
해리슨은 헌혈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2011년 그는 1,000회 헌혈로
월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해리슨의 헌혈로 새 생명을 얻은 아이는
240만 명에 달합니다.

'황금 팔을 가진 사나이'

사람들이 해리슨에게 붙여준 별명이었습니다.
그러나 1,173번째 혈장 헌혈이 해리슨에게는
마지막 헌혈이 되었는데 이유는 81세가 되면
호주 정부 기준에 따라 더 이상 헌혈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리슨의 피가 왜 특별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의사들은 14세 때 많은 양의 수혈을 받은 것이
원인이라고 추측할 뿐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나눈 피가 하나의 생명을 살렸고,
그로 인해 수백만 명의 아기가 건강히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 세상에 뿌린 아름다운 마음이
수백만 명의 아이들의 목숨을 살렸습니다.

그리고 해리슨과 같은 항체를
가진 사람이 속속 발견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역시 해리슨의 헌신에 감명받아,
어린 생명을 살리기 위한 헌혈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오늘, 그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희망을 품어보세요.


# 오늘의 명언
가시에 찔리지 않고서는 장미꽃을 모을 수가 없다.
– 필페이 –

꽃은 피어 에쁜데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전국의 모든 축제와 행사가 취소되어

보러와 주는이가 없으니 고히 기른 농민들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질꼬

하긴 이게 어디 농민 들 뿐이랴 소상공인 영세 업자들 하물며 대기업도 도산한느 상태인데

이일을 어쩔꼬 그래도 나는 정말 행운아인가 보다

 

2020/09/20 하동 북천

당신이 가진 땅을 나누어 주십시오




환갑을 넘긴 노인이 인도 전역을 걷고 있었습니다.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무려 8,000km라는
엄청난 거리를 걷고 또 걸었습니다.

이 노인이 이렇게 힘겨운 걸음으로
찾아간 곳은 인도 전역의 부자들이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기에도 먼 길을 걸어서 찾아간
부자에게 노인은 말했습니다.

"당신이 가진 땅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십시오."

전 인도를 걸어 다니며 토지 헌납 운동을 펼친
'비노바 바베'는 카스트 최고의 지위를 가진
브라만 계층에서 태어난 귀족이었습니다.

어려서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로부터
이타심을 배우고, 젊어서는 간디의 제자가 되어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정신을 배웠습니다.
그러한 바베는 항상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빈부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진 사람이 못 가진 사람에게
베푸는 수밖에 없다!'

그는 그렇게 무작정 부자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의도를 그들에게 설명하며
땅을 기부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바베의 제안에 응하는 부자들은
당연히 얼마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베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긴 여정을 마쳤을 때
그가 증여받은 토지는 8만 제곱킬로미터였는데,
이 크기는 스코틀랜드의 크기만 한
엄청난 땅이었습니다.

바베는 긴 여정을 마친 뒤 약속대로
받은 땅을 최하층 국민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
자신은 다시 무일푼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냈습니다.





진정한 나눔은 당신이 가진
'물질'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당신이 가진 '의지'를 나누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크고 가치 있는
나눔이기도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남을 위한 인생을 살 때,
가장 감동적인 인생이 되는 것을 나는 발견하였다.
– 헬렌 켈러 –

 


핑크빛의 핑크뮬리가 피어
여인네의 마음을 핑크빛으로 물들게 하나 봅니다
핔크뮬리 밭에서 핑크뮬리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여인네들이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농촌은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지 도 모를 일 입니다.
예전이면 코스모스 축제로 온 들판에 핀꽃을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로 성시를 이룰텐데
코로나로 인해 축제가 취소된 지금은
오가는 사람들만 잠시 차에서 내려 사진 몇장 찍고
횡하니 가버리니 애써 가꾼 코스모스밭도 메밀 밭도
핑크뮬리도 보러와 주는 이가 없으니
농민들은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 갈 밖에요


2020/09/20 하동군 북천면

약속과 기다림




남극에서 운석 탐사를 하던 대원들에게
25년 만의 강력한 폭풍이 몰아쳤습니다.

그리고 8마리의 썰매견과 함께 빙판과 눈밭을
탐사하던 사람 중 한 사람이 절벽에서
굴러 떨어지는 바람에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게 됩니다.

탐사대는 서둘러 피신해야 했습니다.
탈출하는 헬리콥터에는 사람이 탈 자리도
부족했기 때문에 당연히 썰매견들을
태울 자리는 없었습니다.

사람도 겨우 빠져나가는 긴박한 상황에서
썰매견들은 당연히 방치되었습니다.
대원들은 최대한 많은 먹이를 남겨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어디 멀리 가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야 해!"
꼭 다시 돌아와서 너희를 데려갈게."

철수하던 대원들은 개들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을 먼저 탈출시킨 후 돌아와서
개들을 데려갈 예정이었지만 더욱 나빠진 기상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극한의 땅에서 생사고락을 같이했던
개들을 구하기 위해 대원들은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개들을 구출하기 위한 비용을 지불해 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대원들은 사비를 털어서라도 개들을 구하기 위해
남극으로 가려고 했지만, 폭풍을 뚫고 날아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대원들은 생각했습니다.
'엄청난 추위와 굶주림에 개들은 죽었을 거야.
거기에 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뿐이야'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은 썰매견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혼자 힘으로 비용을 마련하고
어렵게 지구 반 바퀴를 돌고 돌아서
175일 만에 남극으로 갑니다.

너무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썰매견들은 그곳에 있었습니다.
개들은 주변의 다른 짐승들을 사냥해 먹으며
여전히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멀리서 눈밭을 가르며 달려오는
개들을 끌어안고 남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2006년 상영된 영화 '에이트 빌로우'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1959년 남극기지에서
실제로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썰매견들은 자연의 거친 도전 앞에 유일한
생존의 힘은 강한 믿음이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용기 있는 사람이란 모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 코르네이유 –

하동군 북천면 코스모스 축제가 열리던 이곳 북천마을에는
코로나 때문에 코스모스 축제가 취소되고
코스모스가 피는 들판에 출입금지 테이프로 봉쇄하여
멀찌감치 자동찻길에서 코스모스핀 모습만 보고
발길을 돌릴수 밖에 없네요
관광객 유치를 위해 애써 가꿔 놓은 들판은
하얀 메밀 꽃과 핑크빛 핑크뮬리, 빨간 꽃무릇이 피어나고
코스모스가 한창 피어나기 시작 하는데
속절없이 출입금지 테이프를 봉쇄된 들판을 보며
농민들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갑니다.


2020/09/20 하동군 북천면

 

이제 숨어도 다 보인다




낮에는 밭에서 농사일에 매진하고
밤에는 문해(文解) 교실에서 글을 배우며
주경야독하는 초보 시인의 시(詩)입니다.

초등학생이 쓴 것처럼 삐뚤어진 글씨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 한글을 대하는 마음
그리고 그 시선과 마음을 표현하는 기교가
매우 뛰어나고 따뜻한 훌륭한 시입니다.

이 훌륭한 시보다 더 놀라운 것은
작가 정을순 씨는 80세를 넘겨서야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 할머니라는 것입니다.

단 한 개의 글자도 읽지 못했던 세월,
그 세월 끝에 글을 배우고 주변을 바라보니
한글에 둘러싸여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
감동과 기쁨이 절묘하게 표현된 이 시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서 실시한 대국민 투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





80년의 세월 동안 할머니의 마음에
무엇이 채워져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마음속에 한글 하나가 더해지자
이렇게 아름다운 깨달음으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그 어떤 아름답고
귀한 것이 들어있는지 당신 자신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팔순 넘긴 시인 할머니도 찾을 수 있었던
그것을 찾기 위해 노력해 봅시다.
노력에는 한계가 없습니다.


# 오늘의 명언
배움이란 평생 알고 있었던 것을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도리스 레싱 –

이효석님의 메밀 꽃 필 무렵이란 소설에
메밀 꽃이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하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처럼 하얀 메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소금을 뿌려 놓은 듯 반짝 입니다.

2020/09/20 하동 북천에서

 

 

아빠는 항상 피곤해




회사에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중요한 프로젝트를 연달아 맡아 성공시킨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남자는 잦은 야근과 출장으로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그동안 고생한 남자에게 황금 같은 휴가를 줬습니다.
남자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달콤한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부족한 잠도 자고, 밀린 책도 읽으며
오랜만에 푹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놀이공원에 놀러 가고 싶어 해서
마지못해 가게 되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족들과 놀이공원을
다녀온 날 밤, 파김치가 된 남자는
친구에게 문자를 남겼습니다.

'오늘은 모처럼 아들에게 아빠 역할을 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집에서 편히 쉬고 싶었는데,
몹시 피곤한 하루네'

하지만 그날 아들의 일기장에는
아빠와의 하루에 대해서 다른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우리 아빠는 항상 바쁘고 늘 피곤하다.
그런데 오늘 아빠와 놀이 공원에 다녀왔다.
오늘은 지금껏 최고로 즐거운 날이었다.
다음 주말에도 아빠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





어린 자녀의 눈에는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크고 멋진 슈퍼맨입니다.
힘도 세고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내는
아빠는 언제나 강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땅의 아버지들이 피곤합니다.
종일 회사에서 업무로 고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퇴근할 때
가족들이 알아주지 않으면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을 슈퍼맨으로 생각하는 자식이
당신이 힘들고 지친 아버지라는 것을
이해하는 날은 곧 옵니다.

그리고 당신의 손길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도 곧 올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아빠지만
당신을 영웅으로 생각하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시간을 놓치지
말아 주세요.


# 오늘의 명언
중요한 건 일정표에 적힌 우선순위가 아니라
당신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 스티븐 코비 –

 

 

파리 에펠탑




프랑스 최고의 단편소설 작가로 추앙받는
기 드 모파상은 에펠탑 안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주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프랑스 사람답게 파리의 명물인 에펠탑을
사랑해서 그랬던 것일까요?

정반대로 모파상은 에펠탑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러면 왜 굳이 싫어하는 에펠탑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자주 식사를 했을까요?
그 이유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에펠탑이 건립될 당시 시민과
예술가들의 극심한 반대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300m짜리 흉물스러운 고철 덩어리가
파리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망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프랑스 정부는 20년 후에
철거하겠다는 조건으로 겨우 에펠탑을
건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 에펠탑을 철거하려 하자
건립 때보다 더 큰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시민들이 매일 에펠탑을 보다 보니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조금 더 인내를 가지고 바라보세요.
어쩌면 어떤 것보다 더 사랑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당신에게 파리의 에펠탑 같은
존재가 되어줄지도 모릅니다.


# 오늘의 명언
모든 것은 제각기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나
모든 이가 그것을 볼 수는 없다.
– 공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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