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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동창생끼리 만든 족구회 매주 토요일이면 모여서 족구를 한다

그리고 그 족구회에서 야유회를 간다고해서 따라 나섰다

언젠가 가본적이 있는 영덕 풍력 발전 단지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과

이어진 블루 로드 해안길 바닷길도 멋있고 바닷물이 맑고 투명하다 

바닷속이 보일만큼 가을이 깊어 행락객이 너무 많아 차는 미어 터질만큼 밀린다

그래도 즐겁다 술도 취하고 풍경에도 취하고 친구들에게 취하고

정말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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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 만에 열린 초등학교 동창생 체육대회 반가운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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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하마을 입구 마을 안내소 인데 여직원 2명이서 안내를 맏고 있네요

 봉하마을 다용도 부지입니다 주변에 추모용 꽃을 무인 판매 하고 또 봉하의 특산품인 봉하빵을 팔기도하고

봉하마을 쌀막걸리인 봉하막걸리를 팔기도하고 추모객의 더위를 익혀줄수 있는 모자나 선글라스를 팔기도 하는곳

 봉하메밀 식당 입니다

 추모 국화를 무인 판매 하는 곳입니다 뒤로 부엉이바위와 사자 바위가 보입니다

멀리 태극기가 게양된곳이 노무현 대통령의 묘지 입니다

 봉하마을 안내도 이구요

이곳이 노무현 대통령이 8살 까지 살았다던 생가 입니다

생가는 농촌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복원되었다고 합니다

원래는 다른분의 소유였습니다만 김해시에서 매입을 하려 해도 매입을 하지 못했던 곳으로

노 대통령의 친구분이 구입하여 김해시에 기증을 하였다고 합니다

 생가에서 나와 생전에 동네 주민들과 방문객을 만나 담소를 나누던곳 아닌가 싶으네요

 생강나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생가 안방도 들여다 보기도 하고요

 이곳은 헛간과 뒷간으로 쓰였던 곳 인가 봅니다

 부엉이 바위 올라 가는 길이고요 고 놈무현 대통령을 기리기 위하여 바람개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곳은 노 대통령의 묘지 인데 추모할때의 에티켓이나 내방객이 주의할 점을 ㅍ표시해둔곳입니다

 백색의 돌에는 고인에 대한 추모의 글을 하나 하나 새겨넣어 디딤돌로 만든곳입니다

이곳은 고인의 유언에 따라 봉분을 만들지 말라고 하여 고인돌처럼 돌을 받혀 두었다고 하는데

돌밑의 녹슨 철판이 유독 눈에 띄입니다 쇠를 자르고붙이고 가공하는 기계부분에 종사하는 내 직업과

관련된듯하여 더욱 눈이 갑니다

녹이 슬대로 슬고 나면 산하 피막이 생겨 녹슨 밑바탕의 본체는 녹이 슬지 않는다하고

이는 노무현정신은 영원히 남아있길 갈망한다는 문구가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을 만큼 강렬 합니다

 

 묘지 수반에 비추이는 서쪽하늘의 해너미를 사진으로 찍어보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시 사진으로 기록된 화보를 전시해둔곳인데요 고뇌하고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고

길을 걷기도하고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며 파안대소하는 모습등 전시해둔 곳입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관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추모관이 정식으로 설립되어 건물이 들어서기전

임시로 사용되는 간이 건물에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의

유품과 행적을 전시하여 둔곳이라는군요

 추모관을 들어서니 편히 않아있는 흉상이 보입니다

 

 

봉하마을로 들어오는 입구 서쪽 하늘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이 퇴임후 고향 마을에 돌아와 시골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든 노무현 대통령을 닮지 않았나요?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다용도 광장 비석입니다

 

어떡하죠 아직도 그리운데....

 

죽은자는 말이 없습니다.

무엇이 그리 답답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아무도 모를 일 입니다.

 

 

 

진영엘 다녀 왔지요

고 노무현 대통령의 49제를 지낸 봉화산 정토원가는 길목에서

김해 들녃을 보고 찍은 사진 이지요

가을 하늘이 너무 맑아 사진을 찍지 않을 수가 없네요

진영은 담감이 유명하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명성에 걸맞는 감나무 밭을 볼수가 있었지요

낮으막한 감나무(감나무는 키가 크서 수확이 어려우나 진영에 있는

단감나무는 키가 나즈막해 사람이 따기가 쉽네요)의 가지 가지 마다

단감이 주렁 주렁 매달려 익기를 기다립니다.

 

 

 

 

 

 

 

 

 

젖소 농장 입니다.

사육두수가 꽤나 됩니다.

그런데 그 많은 젖소를 관리하는데 사료비며 인건비며

제하고 나면 월수익이 200만원도 채 안된답니다

요즘 우유값이 250원 올랐다고 하지요

그런데 농가에는 100원도 채 오르지 않았더군요

젖소가 숫송아지를 낳게되면

그저 가져 가래도 안 가져 간답니다

수익성이 너무 맞질 않아 기를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선택하는 방법이 안락사 랍니다.

숫 송아지는 세상에 태어나자 마자 죽어야하는 그런 운명이라고 합니다.

10년도 넘게 젖소 농장을 하려고 이업계로 뛰어더는 사람이 없답니다.

곧 축산 업계와 시장은 허물어 질것이라고 합니다.

FTA여파로 농장은 운영하면 할수록 나락으로 빠져들듯 빚더미만 크져 간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죠 우유값은 뛰어 소비자는 비싸게 주고 먹지만

농장주는 우유를 버려야 한답니다.

싸게라도 내 팔수도 없는 입장이랍니다.

이야길 듣자하니 안타까움만 더 합니다

 

우리나라 전국에 아름다운 돌담길이 여러곳이 지정되어 관리 되고 있는데

그중 한곳이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위치한 옻골마을 의 돌담길이라고 한다.

대구시 동구 둔산동에 있는 옻골마을은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의 지형이 남쪽을 제외한 3면이 산으로

둘러쌓여 오목하다고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이야기와 주변 산과 들에 옻나무가 많아서 옻골이라고

불리웠다는 두가지 유래를 가지고 있다. '

옻칠'자 '시내계'자를 쓰는 '칠계'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후자가 맞을 듯 하다.

1616년(광해 8년) 조선 중기의 학자 대암 최동집이 이곳에 들어와 살면서 경주최씨의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최동집은 호는 대암이며 아버지 최계는 임란시 의병장으로 활동 하시던 분이다

최동집은 한강 정구 선생으로 부터 학문을 배웠으며 광해군 8년에 둔산 옻골에 정착한 분으로 이곳에 정착하고 부터

경주최씨의 집성촌이 되었다고 한다.

최동집은 효종이 대군으로 있을때 효종을 모시고 청나라에 인질로 가다 중도에 교체되어 돌아온 분인데

명이 망하고 숭정처사를 자처하여 부인동에서 은거하며 평생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고 주민을 교화한 분이다.

 

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제일 먼저 보게 되는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이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마을터가

주변보다 높아 금호강 지류가 훤히 보이므로 나쁜 기운이 마을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마을 앞에 숲을

조성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거의 흔적만 남아 있는듯 하다. 연못과, 나무그늘아래 꾸며진 쉼터를 지나면 본격적

으로 마을의 시작이다. 마을어귀에 들어서면 역시 350년 수령의 거대한 회화나무 두 그루가 방문객을 맞이 한다.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심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무려 12m에 이른다.

회화나무 뒤쪽으로는 옻골나무를 알리는 입간판이 서있다.

대구 도심에서 가까운 탓에 일부 주택들은 현대식으로 개축되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고택과, 옛길, 전통 양식의

돌담은 옛 양반가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둘러 보기에 손색이 없는 듯 하다.

옻골마을은 약 2.5km에 이르는 토담길과, 돌담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돌담이 지날 곳에 나무가 있으면 나무를 베기 보다는

나무밑에서 담장의 높이를 낮추는 것이 순리로 알았던 조상들의 지혜를 바라 볼 수 있다.

옻골마을 옛 담장은 흙다짐에 돌을 박은 형식인 토석담이 주류를 이루며, 마을 안길의 돌담길이 대부분 직선으로

구성되어 있어 질서 정연한 느낌을 주는 점이 특징이다.

전통가옥들과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동선을 만들어 내는 돌담길은 전형적인 반촌 분위기를 자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다채로우면서도 고즈넉한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세대를 이어가며 만들고 덧붙인 우리 민족의 미적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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