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에 가면 할인 카드가 많이 있다고 되어 있는데

이 카드 저 카드 내밀어 보지만 정작 할인 되는 카드는 없고

포인트 적립을 시켜주겠다는등 할인 받기가 쉽지 않다.

통신사 포인트로 할인을 받아보겠다고 내밀어도

할인이 되지 않고 창구 구매시 할인이 안되고 예매시에는 할인 적용이

될수 있다는 그런 이야길 들은 적이 있는것 같다.

그래서 요즘 젊은애들이 그런 할인은 잘 받는 듯 해서

애들에게 물어보면 영화관 홈페이지에 회원 가입 하구 어쩌꾸 저쩌구

암튼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애들과 같이 영화 관람을 하러가면

할인이 된다. 다만 2~3천원이라도 때론 팝콘이랑 콜라 콤보셋트도

그냥 받아 오기도 한다.  할인되어서 공짜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관람을 하기 위해 관람권을 구매하면

2D관람권이 11,000원씩 온돈을 다줘야 한다.

온돈 주고 영화 한편을 보고나면 다른이는 모두 할인 된 금액에 보는데

나만 온돈 주고 본것 같아 아깝고 등신 같은 짓을 했다 싶어 후회를 하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중고 거래 사이트에 올려진 영화 관람 대행 판매자에게 연락 하여

할인된 금액으로 영화 관람권을 예매하여 예매번호를 받아 보기도 한다.

하지만 믿을수 가 없어 마음 한켠엔 언제나 혹시 사기는 아닐까

찝찝한 마음으로 마음을 조리며 예매표를 발권한다.

그래 사기를 당해봐야 기껏 한장당 7~8천원인데

그까짓것으로 사람을 속이기 기야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중고 거래 판매 사이트에 영화 관람권예매 대행을 검색하면

관람권 예매해 주겠다는 이들이 참 많다.

그리고 금액도 5천원부터 8천원까지 금액도 참 다양하다.

얼마전 만해도 5~6천원 이면 구할수 있던 예매권도

이제는 6.5천원에서 8천원사이로 가격이 인상 된듯 하다.

어떻게 그렇게 할인이 가능하지?

그럼 예매대행 하여 판매하는 사람들은 얼마를 남겨 먹는것일까?

참으로 궁금 하다 그러던중 회사에 안전교육을 나온 강사가 교육중

질문에 답을 잘 맞췄다고 상품으로 내어 주는 봉투 안을보니 영화 예매권이란게 있었다.

한장 예매시 6천원을 지급하고 예매하면 볼수 있다는 예매권이다.

그 예매권을 써먹기 위해서는 영화 예매권을 발행한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하여야 하는데

공짜 할인 티켓이라 회원가입을 하였더니 그곳에는 할인 카드를 팔기도 하고 할인구매권을

대량으로 팔기도하여 아마 그런 티켓을 구매하여 할인가격으로 구매 대행 수수료를 챙기고

예매를 대행 해주는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영화 티켓 할인을 검색해보니 영화 티켓을 할인하는 방법이 수도 없이 많다

등~신 그것도 모르고 영화를 온 돈 다 주고 받으니 정말 멍청한 짓을 했다 싶다.

그래서 남들이 할인 받는 방법을 써놓은 블로그 주소를 몇개 업어와서  소개한다.

우선 홈쇼핑 다모아라는 사이트에 가면 구매대행 사이트가 있다

http://blog.naver.com/llsechsl/220908778625

이곳에 가면 영화관 예매 구매 대행을 이용할수가 있다.


그리고 다음의 웹주소로 찾아 가면 롯데시네마에서 적용되는 카드는

어떤것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블로그와 연결 된다.

http://goodneighbor.tistory.com/477


그리고 네이버에서 영화 할인카드를 치면 영화 할인 받을수 있는 카드가 어떤것이 있는지

영화관별로 어떤 카드가 할인 되는지를 볼수 있다,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sm=top_hty&fbm=1&ie=utf8&query=%EC%98%81%ED%99%94+%ED%95%A0%EC%9D%B8%EC%B9%B4%EB%93%9C


이렇게 다양하게 할인 받을수 있음에도 제돈 다 내고 영화 본 내가 바보 같단 생각과

등신 짓을 했단 자괴감이 밀려 온다

영화관에 대하여 그리고 물가를 관리하는 기관이나 공정거래 위원회 같은 국가 기관에도 따지고 싶다.

이런 할인을 할게 아니라 영화 관람 가격 좀 낮추라고 제돈 다 내고 보는 나 같은 등신들이

영화 관람 할인 받는 많은 사람들의 비용 까지 부담 해야 하니 자꾸 영화 관람 가격이 높아 져만 가는게 아니겠냐고









동산 병원 주차장 입니다 남문 출구쪽으로 연결 되어 있네요

동산 의료원 어린이집 입니다.

동산의료원 병동으로 연결 되어 있네요

제일교회와도 연결이 되어 있고 동산 의료원 의료 선교 박물관 이 보입니다

의료 선교 박물관 정원앞 사과나무 정원입니다 이곳 사과 나무가 대구의 상징 이였든 사과나무의 시조 랍니다.

동산 의료원 개원 100주년 기념 종탑 이 랍니다

선교사 스윛츠 주택 입니다.

선교사 스윛 츠 주택앞 대나무 숲이구요

여호와 이레의 동산이랍니다

이곳이 제일 교회 이구요


이곳이 청라 언덕 입니다

청라 언덕엔 영상 설치도 되어 있나 보네요 보지 못해 조금은 아쉽네요

삼일 운동 길 입니다. 골목투어에 나선 젊은이들의 기념 사진 촬영이 한창 입니다

현위치를 가르키는 약도 랍니다

아래 사진이 미국인 선교사 챔니스가 살았던 주택 입니다

선교사 챔니스의 주택 입니다.


선교사 챔니스 주택과 선교사 블레어 주택이 이어지는 길 입니다


작곡가 박태준 선생님의 연보 입니다

박태준 선생님이 작곡하고 이은상 선생님이시를 쓰신 동무생각 시비 입니다



아래 가 선교사 블레어가 살았던 주택 입니다

선교사 블레어가 살았던 주택 입니다


선교사 블레어 주택 옆 벤치에서 연인닝듯한 사람들이 데이트를 하고 있네요



이곳은 청라 언덕에서본 대구 서현 교회의 모습 입니다

선교사 박물관 모습 이고요

이곳은 은혜정원 입니다

선교사가 태평양을 건너 머나먼 이국땅에서배척과 박해를 무릅쓰고 혼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하고 인술을 베풀다가 삶을 마감한 선교사와 그 가족이 잠든곳이라고 합니다.

은혜정원의 모습 입니다. 이곳에 잠든 선교사가 지금도 이민족의 복음화와 번영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리라고 은혜정원 묘비에 쓰여져 있네요

이곳이 삼일 운동 길입니다


삼일운동 벽화가 그려져 있네요

은혜정원 옆에서 본 모습입니다

대구 (동산) 고등 성격 학교 영남 신학 대학교 옛터 기념비 입니다

제일교회의 모습이고요

이곳은 삼일 운동의 시발이된 계성고와 성명중고 신명여고 학생들의 배움터인 신명 여고 입니다 앞에 폴라드관이 보입니다

골목길 투어 길을 가르키는 표지판입니다

사과나무가 100년 의 역사를 가지고 있답니다 1899년 동산의료원 개원 당시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라고 하네요

대구시조 사과나무의 2세목인 사과나무로 수령이 2000년 에 70년이 되었다니까  올해 87세 라고 해야 하나?

대구 청라 언덕 길이였습니다

날이 너무 무덥네요

집에 있자니 더위 때문에 감당이 안되네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돌아와도

물속에서 있을때만 잠시 더위가 가실뿐

너무 더워 시원한 곳으로 탈출 하기로 했지요

하지만 마땅히 갈곳이 없어 서점으로 갔었지요

서점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은 듯합니다.

책도 보고 그러다 졸기도 하고 문구점에 진열된 문구들도 구경하고

더위를 식히고 왔네요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내가 사는 아파트 산책로를 걷다 사진을 찍어 보았지요

금호강에 비친 반영이 아름답네요


 

 

<!-BY_DAUM->

구암서원은 현재 경북도청 뒤 연암산 (서당골)에 조성된 연암 공원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거북이를 뜻하는 "구"龜의 발음이 "귀"도 있어

귀암서원으로 불린다

구암서원은  구계선생 서침의 덕을 기리기 위해 1665년 (현종6) 대구부민들과

유림들의 건의로 연구산 정상부(현 제일중학)에 구암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고

후에 구암서원이 되었다고 한다.

구암서원은 이렇게 서침에 대한 부민들과 유림의 존경의 뜻이 담겨진 서원으로

시작했으며 1718년 동산 터 좋은곳에 배산 임수로 자리 잡는다

1868년 서우너 철폐령으로 문을 닫았다가 1943년 숭현사와 강당을 중수하며

다시 열게 된다 달성 서씨대종회에서 산격동 연암산으로

95년 새로지어 옮겨 갔으며 지금은 연암산을 등지고

신천을 바라보는 산 정상부에 있다

그곳에 가면은 낮에도 대구의 풍경을 볼수 있지만 밤 야경이 끝내준다 그러네

 

 

구암서원(龜巖書院)은 귀암서원이라고도 읽는데, 대구시 중구 동산동 지역에 있던 서원이다.

1665년(조선 현종 6년)에 연구산(봉산동 현 대구제일중학교)에서 귀암사로 창건하여 그 후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718년(조선 숙종 44년)에 동산동(현 신명고등학교)으로 이건되었다. 서침(徐沈), 서거정, 서해(徐解), 서성(徐省, 1588∼1631) 등 4인의 인물을 배향하고 있어 달성 서씨의 문중서원 성격이 짙었다. 대원군 집권 후인 1868년에 훼철되었다.

1924년 유림에서 다시 세우고, 1943년 숭현사와 강당을 증수하였다.

숭현사

1943년 구암서원 내에 세워졌다. 1982년 대구지방문화재 건조물 제2호로 지정되었으며, 1995년 산격동 연암공원으로 이건되었다.

출처 : 영선 초등학교 6회 졸업생
글쓴이 : 김무수(무시꽁다리) 원글보기
메모 :

전셋방 빼 세계여행 떠난 40대 부부
[머니위크 커버]40대, 우린 이렇게 산다/권기혁·최선영 부부
머니위크|
이정흔 기자|
입력 2011.10.20 09:29
|수정 2011.10.20 09:32
|누가 봤을까? 40대 여성,서울 
[[머니위크 커버]40대, 우린 이렇게 산다/권기혁·최선영 부부]

"여보, 우리 세계여행이나 떠날까?"

어느날 남편이 그냥 가볍게 툭 던진 한마디. 그런데 일주일 후 아내는 '세계지도'를 사들고 왔다. 농담처럼 내뱉은 말은 이때부터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거창한 여행 계획이나 일정도 없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40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훌훌 털고 떠난 여행이 벌써 1년째다. 유럽, 남미 그리고 미국을 거쳐 네팔과 같은 인도 대륙까지. '긴 여행'을 거치는 동안 부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것이 변했다. < 철부지 40대 부부의 세계여행 > 이라는 블로그에 자신들의 여행일기를 기록하고 있는, 권기혁(42) 최선영(41) 부부의 이야기다.

◆ 어떤 삶이 행복한가, 여행길에 오르다

부모님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고 집안이 어려워지자, 권 씨는 부모님의 사업을 물려받아 10년 동안 이끌어 왔다. 영세사업이었지만 10배 이상 매출을 일으키는 등 안정권에 올라섰고 권씨는 동생에게 사업을 넘기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은 욕심이 생겨난 탓이었다.

그렇게 사업을 정리한 것이 2009년. 그러나 막상 사업을 그만두자 막막함은 어쩔 수 없었다. 때마침 아내 최씨 역시 재취업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둔 상태였다.

"제가 먼저 하던 사업을 정리하면서 아내 재취업을 만류했어요. 제대로 한번 놀아보고 일하자는 거였죠. 사실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아내가 여행을 좋아해서 제가 일하는 동안에도 배낭여행을 곧잘 다녀오곤 했거든요. 그게 자연스럽게 '긴 여행'으로 이어지게 된 것 같아요."

최씨는 "자녀가 없다는 게 부부 여행의 큰 이유가 됐다"고 말을 덧붙인다. 40대에 들어서자 대부분 부부의 또래들이 자녀가 삶의 목표이자 존재의 이유나 마찬가지였다. 권씨는 "12년차 부부인 우리가 자녀로 인해 남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다르게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다 '자유'를 만끽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부분 40대 지인들의 경우를 들여다보면, 벌이가 어떻건 가계수입의 30% 이상은 사교육비로 지출하고 있었다. 권씨는 이 같은 모습을 보면서 '부모들이 자신의 삶을 아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가?'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그 질문은 자연스레 새로운 인생을 앞에 둔 그의 현실과 맞물리며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행복한가?' '40대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로 이어지게 됐다. 권씨가 말을 이었다.

막상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으니, 그간의 현실적인 고민도 사라지는 듯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계여행 경험자들의 블로그를 참고했다. 전세 집을 빼 짐을 보관센터에 맡기고,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예상 외였다. 40대 초반이면 한창 일에 몰두할 나이이고, 또 중요한 성과를 낼 수 있을 때인데 '꿈꾸듯' 떠나버리는 그들 부부에 대해 황당해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걱정과 질타보다는 '부럽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처음에는 그런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저 스스로도 남들 열심히 일할 때 맘 편히 돈 쓰며 놀러 다닌다는 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대부분 우리나라 40대 가장들의 삶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신들의 삶을 억누르고 있는 현실이 반영돼 저 같은 꿈을 찾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거 아닐까."

그래서 권씨는 결심했다.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인 만큼,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을 찾아보자고.

이번엔 최씨가 남편의 말을 이어 받는다.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저소득 국가에서 행색이 볼품 없더라도 그 사람들 표정에는 해맑음이 있었어요. 한 없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이랄까. 그에 비해 한국은 충분히 행복할 조건이 됐는데 행복하지 못한 이유가 뭘까 정말 많이 생각했죠."

언젠가 부부는 길거리 좌판에서 아이들 3명을 데리고 나와 갓난아이 젖을 먹이는 엄마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저가 생필품을 팔고 나머지 두 아이들은 흙먼지를 온통 뒤집어 쓴 채 옆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도 부부의 눈에는 그들이 전혀 불행해 보이지 않았다. "혼자만의 짐작이지만, 그들은 스스로 삶을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각국에서 여행을 하며 만난 한국인들에게도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사연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게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고 권씨는 당당하게 말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는 남미 대륙 남쪽 끝 '우수아이아'라는 지역에서 살고 있는 다빈이네 어머니였다고 한다. 인터넷 백과사전에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고 나올 만큼 척박한 그곳에, 다빈이네 어머니는 유일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또 72세에 고교 국어교사를 정년 퇴직하고 남미 여행에 나선 김광수씨도 손꼽았다.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젊은이들이 주로 찾는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를 찾아다니고, 직접 파스타를 끓여 먹으며 여행을 즐기는 분이라고 했다. 시니어 세대임에도 직장생활을 하면서 꿈꿔왔던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 두 부부의 마음 속에 오래도록 남았다고 소개한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많았어요. 그러면서도 인생의 대어를 낚기 위해 작은 것에 집착하지 말고 놓아보자고 몇번이나 되새김질했죠. 이제 여행을 마무리하고 1달쯤 뒤면 한국으로 돌아가요. 지금 저에게 '그래서 대어를 낚았느냐'고 물어보면 저는 적어도 '이번 여행을 통해 대어의 모양을 알게 됐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나이에 상관없이 꿈과 목표가 있는 삶이 중요하니까요."
출처 : 영선 초등학교 6회 졸업생
글쓴이 : 김무수(무시꽁다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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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꽃 / 정춘근

 

 

언덕 과수댁 밤나무

꽃향기로 온 마을을 덮는다

봉창 달빛 아래

홀로 치마끈 풀던 밤이면

살짝 문고리 풀어놓던

청상 과부 한숨이

밤꽃 향기에 섞여 있겠지

살다 보면 눈웃음치는

남정네는 많아도

못난 서방처럼

밤꽃 냄새 풍기는

사내는 없었겠지

언덕아래 파란 대문 집

홀아비 잠 못 이루는 것은

소쩍새 때문은 아니겠지

밤꽃 향기 때문도 아니겠지

가을에는 과수댁 밤나무에

쌍 밤이 주렁주렁 열렸으면 좋겠네

서울교육청의 한 간부가 '밤꽃詩'를 내부 방송을 통해 낭송한뒤

여성이 낭송하기 좋은 작품’이라고 말했다가 성희롱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요즘 유명해진 정춘근의 '밤꽃詩'

출처 : 영선 초등학교 6회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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