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문질환의 중요성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자가판단이나 부끄러움으로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30, 40대는 가장 왕성한 활동력을 요구받는 시기. 할 일이 많다 보니 건강을 돌볼 틈이 없어 각종 질환에 시달리기 십상이다. 특히 불규칙한 식생활, 나날이 쌓이는 스트레스는 직장인 '뒤탈'의 주범이다. 그중 직장인에게 빈번한 대장항문 질환으로는 과민성 장증후군, 변비, 치질이 있다. 치질에 대해 알아보자.
◆ 항문이 안녕하지 못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
치질을 보통 '하찮은 병'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용변을 볼 때 피가 뚝뚝 떨어져 놀랬다가도 다음에 괜찮으면 그냥 넘어간다. 별다른 통증도 없고, 대변 볼 때만 잠깐씩 피가 보였다가 금방 멈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몸에서 어떤 형태로든 출혈이 있다는 건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특히 항문의 출혈은 가벼운 치핵 증상일 수도 있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대장암의 징후일 수도 있다.
항문이 안녕하지 못할 때 나타는 증상들은 출혈 외에도 탈출, 통증, 가려움증, 점액 분비, 잔변감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증상이 나타나는 양상도 다양하다. 밤에 갑작스럽게 통증이 오기도 하고, 통증을 동반한 가려움증이 있을 수도 있고, 휴지에 묻는 정도의 출혈부터 변기에 쭉쭉 뻗어나가는 출혈이 있고, 항문 주위에 늘어진 피부가 생기기도 한다. ◆ 항문조직이 빠진 것이 치질
우리가 흔히 쓰는 치질이란 말 뜻은 모든 항문 질환을 의미한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의학적으로 치핵이라 부르는 증상을 치질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용변을 볼 때는 항문이 최대 4cm까지 벌이지지만 평상시에는 닫혀 있다. 그러면 주름이 잡히듯 항문관 내로 돌출된 곳이 있는데 이것을 항문(쿠션)조직, 소위 치핵 조직이라고 한다. 이 조직은 배변 시는 마찰력을 줄이기 위해 밑으로 하강하는데, 배변이 끝나도 항문관 내로 환원이 안 될 때 치질이라고 부른다. 치질의 주요 증상은 항문조직이 밀려나는 탈출과 함께 배변 시 출혈이다.
치질이라고 무조건 수술하는 것은 아니다. 70~80%는 약물요법, 식이요법, 좌욕 등 수술을 하지 않고도 좋아진다. 그러나 3도와 4도의 내치핵, 치루, 만성치열은 수술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요즘엔 수술 기술이 향상되어 통증도 적고 빨리 회복된다.
대장항문질환에서 자가판단이나 민간요법은 금물이다. 질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으며 비의료인에 의한 잘못된 치료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항문을 망가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아침 식후 배변, 배변 시간 3분, 청결
치질 예방을 위해서는 우선 다음 3가지를 꼭 기억해야 한다. 첫째, 먼저 아침식사를 하고 이후 꼭 용변을 보도록 한다. 아침식사는 두뇌활동뿐만 아니라, 위대장반사로 대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규칙적인 배변습관을 갖게 한다.
둘째, 배변 시간은 3분을 넘지 말아야 한다. 화장실에 신문이나 책을 들고 가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오랜 시간 화장실에 앉아 있으면 치질조직이 아래로 빠지기 쉽기 때문에 그만큼 치질에 걸리기 쉽다. 셋째, 항문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이다. 흔히 치아는 3·3·3법칙이라는 용어까지 쓰며 관리에 신경을 쓴다. 항문도 마찬가지다. 배변 후에는 비데나 좌욕, 샤워기로 세척한 후 잘 건조해주면 그만큼 항문건강에 도움이 된다.
◆ 스트레칭과 괄약근을 조여주는 케겔운동
평소에 치질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오랜 시간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직장인들은 평소 틈틈이 스트레칭을 해주는 것이 좋다. 또 항문질환 예방 및 개선을 위해서는 항문괄약근을 조인 후 복부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운동(케겔운동)을 하는 것도 좋다.
웰빙 바람으로 건강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진 것은 환영할 일이다. 건강하게 잘 먹고 여유롭게 사는 데는 한 가지를 더 첨가해야 한다. 다름 아니라 '잘 배설하는 것'이다. 아무리 잘 먹고 잘 산다 해도 뒤가 안녕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바야흐로 현대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장항문질환의 증가 추세를 보면 그런 흐름에 반하고 있는 듯하다. 분명한 것은 치질과 같이 대수롭지 않게 여긴 질환들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뒤탈' 없는 삶이야말로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이다.
◆ 치질 예방 수칙
1. 용변은 3분 이내로 끝낸다. 2. 매일 따뜻한 물로 좌욕을 한다. 3. 항상 항문을 청결히 한다. 4. 매일 아침식사 후 배변하는 습관을 들인다. 5. 변비를 피한다. 6. 같은 자세를 계속 취하지 않는다. 7. 음주, 담배, 맵고 짠 자극성 음식 등은 가급적 피한다. 8. 치질을 초래하는 운동과 레저는 피한다. 9. 항문병 치료에 민간요법은 금물이다.
◆ 케겔운동은 어떻게 할까
1. 항문괄약근을 죄어 오므린 상태에서 배쪽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으로 위로 올린다. 2. 그 상태를 약 5초간 유지한다. 3. 이 동작을 한 번에 10회씩, 하루 5번 반복한다
농가는 소값 폭락으로 죽을 지경이라는데 소비자들은 의아하다. 대형마트나 정육점에서 판매되는 한우값은 별다른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왜일까?
일단 첫째. 올해 한우 사육마릿수는 357만7000마리로, 역대 최대치다.
둘째. 한우의 유통과정은 ‘생산자-우시장-도축장-중간도매상-도매상-유통채널-소비자’ 등 6∼8단계에 달한다. 이로 인한 유통비용은 한우가격의 50%를 차지한다. 하지만 축산물은 농산물과 달리 도축과 부위별 구분·포장 과정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도축비, 인건비 등 유통비용이 높을 수밖에 없다.
셋째. 소비자들의 취향도 문제다.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등심, 안심, 채끝살 등 구이용 제품은 가격 하락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등심의 경우 소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8% 수준에 그치기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고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 같은 이유로 한우 도소매가격 연동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소매가격 연동제란 도매가격이 떨어지면 소비자가격도 내리고, 반대로 도매가격이 오르면 소비자가격도 올리는 방안이다. 지금처럼 공급량이 늘어 소값이 떨어지면 소비자가 구매하는 소고기값도 하락하게 되는 구조다.
소를 키울까 ?
2. 솜이불 ?
목화솜으로 만든 이불이다.
목화솜 이불을 만드는 과정은 좀 복잡하다
먼저 목화를 따야 하는데 목화솜은 열매가 터지며 목화씨와 함께 나오는데 첫서리가 내리기 전인 10월쯤부터 다음 해 2월 말까지 수확할수 있다.
그 다음 일일이 손으로 솜을 하나씩 따서 일주일 동안 건조한 뒤 조면기라는 기계로 솜과 씨를 분리한다.
이어서 솜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는 타면기(打綿機)를 통해 1㎏ 무게의 사각형 솜 형태를 얻는다.
여기에 내피와 외피를 입히면 드디어 솜이불이 된다.
경남 함양군 지곡면 개평한옥마을에는 약 2500평의 넓은 목화밭이 있다. 그곳에서 목화 명인 임채장(73)씨는 40년째 이 목화밭을 가꾸며 솜이불을 만들고 있다.
40년째 한가지 일만 한다는건....
3. 수 년간 만나지 않은 지인이 청첩장을 보낸다면?
이 질문에 한 누리꾼이 답한 댓글이 화제다 '결혼식 축의금'이란 제목의 유튜브 숏츠에 달린 댓글인데 내용이 이러하다.
"연락 없다가 결혼한다고 청첩장 오면 그냥 축하한다는 문자나 보내주면 된다. 여유 되면 축의금도 보내줄 수도 있다 내 연락처를 갖고 있다는 건 그 친구와 오래전의 작은 추억이라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에는 즐거웠을 것이고 각자의 인생을 살다 보면 서로 소홀해질 수도 연락이 뜸해질 수도 있다. 서로의 공감대도 줄어서 연락하려고 한들 서로가 뻘쭘해서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 난 아주 오래전의 작은 인연이라도 수년이 흘러 경조사 연락받으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축하할 일은 축하해주고 슬퍼할 일은 같이 슬픔을 나누는 게 도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정말 돈을 목적으로 잊힌지 오래된 친구에게까지 연락을 할 정도라면 그만큼 금전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드넓은 우주의 먼지같이 작은 지구에 한국 땅에 옹기종기.... 140억년의 우주 역사 속에 고작 100년 사는데 다들 즐겁게 사시길”이라고 덧붙이며 이 댓글은 끝을 맺는다.
제목 2023. 2. 7 국가보훈처 답변에 따른 故 전두환 前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여부 관 련 재질의 내용
1. 귀 국가보훈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 본인이 2023년 1월 18일 국민신문고에 질의한 "전두환 전 대통령 국립묘지 안장 여부 추가 질의"(1AA-2301-0553349)에 대하여 2023년 2월 7일 귀처에서 답변한 바에 따르면, "3) 귀하께서 말씀하신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경우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현 국가장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주무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장례는 국장, 안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안장 된 것으로 확인됩니 다."라고 하였고, "4) 또한, 귀하께서 언급하신 유권해석에 대해서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관련 유권해석에 대한 의견회신(2007,법무부)에 따른 것이며ᆢ" 라 고 답변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다음 사항을 재질의 하오니 조속히 소상한 답변을 해주시길 바랍니 다.
3. 질의1.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은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현 국가장법)> 등 관련 법령 에 따라 주무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장례는 국장, 안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안장된 것으로 확인됩니다."라고 답변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은 2009년 8월 사망하였으므로 국립서울 현충원으로 안장지를 결정한 근거라고 하는 주무장관의 제청 및 국무회의 심의 또한 사망 시점인 2009년 8월에 이루어졌을 것으로 미루어, 이 시점에 이미 "특 별사면·복권으로 기왕의 전과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2007, 법무 부)라는 법무부의 유권해석이 있었고, 그 유권해석에 따르면 여전히 기왕의 전 과 사실 자체가 없어지지 않은 김대중 前 대통령에 대해서 주무장관의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한 형국입니다. 위 2007년 법무부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주무장관의 제청 및 국무회 의 심의 등을 거쳐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던 지 법률적 관련 근거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故 전두환 前 대통령 또한 故 김대중 前 대통령과 사면복권 등의 동일한 여건임에 불구하고 왜 주무장관의 제청 및 국무회의 심의를 할 수 없는지 사유 를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4. 질의2. 주무장관의 제청 및 국무회의 심의시 국장 및 안장지의 의결 요건과 관련 법률 적 기준은 어떤 것인지를 알려주십시오. 아울러 2009년 故 김대중 前 대통령 국장 당시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현 국 가장법)>에 따른 주무장관의 제청 공문 및 국무회의 심의 회의록 등 공개 가능 한 관련 문건을 알려 주시길 바랍니다.
5. 질의3. ᆢ<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법률> 관련 유권해석에 대한 의견회신(200 7,법무부)에 따른 것이며, ᆢ" 라고 답변하였는데, 2007년 법무부의 유권해석에 관한 의견회신 당시 법무부의 회신 공문의 원문 그대로를 공개하여 알려 주시거나 보내 주시길 요청드립니다.
2023. 2. 13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단산1길 55 박종판
2023-02-07 11:00:17 국가보훈처의 답변
1. 안녕하십니까? 귀하께서 국민신문고로 신청하신 민원(1AA-2301-0553349)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회신 드립니다.
2. 귀하의 민원 내용은 "故 김대중 前 대통령 또한 국립묘지 안장 배제대상임에 도 불구하고 어떤 법리적 근거와 유권해석, 안장 절차에 따라 국립묘지에 안장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유권해석의 법리적 근거와 내용, 유권해석 기관 및 해석 시기 등에 대한 내용을 알려달라"는 내용으로 이해됩니다.
3. 귀하께서 말씀하신 故 김대중 前 대통령의 경우,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 (현 국가장법)등 관련 법령에 따라 주무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 심의 등을 거쳐 장례는 국장, 안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안장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4. 또한, 귀하께서 언급하신 유권해석에 대해서는「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관련 유권해석에 대한 의견회신(2007년, 법무부)에 따른 것이며, 사 면법에 따른 사면·복권의 효력 등과 관련하여서는 우리 처에서 판단할 사항은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5. 아울러, 궁금하신 사항이나 의견이 있을 경우 국가보훈처 예우정책과 송현숙 (☏ 044-202-5583, 전자우편 : dirty@korea.kr)에게 연락주시면 성심껏 답변하 여 드리겠습니다. 끝.
법이 참 무섭다 그리고 법을 갖다 붙이는 (적용하는 )잣대가 참 이상 하다
최근 사소한 인터넷 글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여 약식명령으로 벌과금 통보를 받았다.
내 주위에 있는 여러 사람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동대표들의 부당한 처사를 항의하고
재 계약 반대 운동을 펼치며 그 과정 중 트러블로 고소를 당하고 검찰로 송치되는 사건이 있어 약식 재판을 앞두고 있다.
그렇다고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지어낸 것도 아니고 사실을 사실이라 이야기 했을 뿐인데
명예훼손이라고 약식재판을 행하여 벌과금을 맞았다
정식재판을 열도록 해야 할까 망서리고 있다 정식 재판이 열리면 오라 가라 하여 입는 손실이 적지 않을텐데
최근 곽상도의원 아들에게 제공된 50억원이 뇌물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다.
더불어민주당 윤미향의원은 위안부를 위한 일이라며 많은 돈을 모금하여 횡령하고 모금된 돈을 다른곳에 유용하였슴에도
무죄판결을 받았다.단지 몇몇 사안에 대해서는 벌과금 처분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무죄와 같은 판결로 의원직을
유지 하게되었다.
법은 약자에겐 강하나 강자에겐 흐지브지 있으나 마나한 법이다.
이게 제대로 된 국가이고 국민을 위한 공정한 법 집행인지 전두환 대통령 또한 그렇다
나라를 말아먹은 김대중은 사면복권되어 국립묘지로 가면서 위대한 경제 성장과 안정된 민생을 유지하던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법의 잣대가 냉혹하다
2022년 부터 국호를 터키에서 튀르크인의 땅 을의미하는 튀르크예 로 변경되었다 그렇다면 왜? 터키 와 대한민국은 형제 국가인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터키’ 하 면 형제의 나라라는 수식어가 떠오 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불리는이유 를 알고있는 사람은 그리 많은것 같지는 않습니다.대부분의 사람은 터키가 6·25 때 미국,영국에 이어 1만4936명이라는 세번째로 많은병력 을 파병하여 미국에이어 두 번째로 많은 721명 전사에 2,147명이부상 했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많은 병력을 파견하고 또전사했을까요? 라는질문을 하면 그들은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건 궁극적인 이유가 될수없기 때문이지요.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투르크’라고부릅니다.세계 가 대한민국을 코리아(고구려또는 고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역사를 배웠다면 ‘고구려’와동시대 에 존재했던 ‘돌궐(厥)’이라는나라를 알고 있을 겁니다. 220년에수립된 ‘테오 야브구’ (Teoman Yab gu /흉노/ 匈奴) 왕국은 몽골과 함 께 중국에서 흉노(匈奴) 라 불리던 민족의 하나로,6세기 중엽부터8세 기 중엽까지 몽골고원을 중심으로 활약했지요.‘투르크’는 돌궐의다른 발음이며, 우리한민족과 같은 우랄 알타이족으로고구려전성기엔 글안 여진(숙신)과 마찬가지로상당수의 돌궐인이 고구려의 기층(基層)민중 에 속했습니다.
또한, 고구려와 돌궐은 동맹을맺어 가깝게 지냈는데, 고구려가 멸망한 후(668년)돌궐은 고구려의 유민을 많이받아들이면서 우리민족과특별 히 긴밀해졌습니다고구려가멸망하 자, 대부분의 서민은 초기엔 당(唐), 후엔 신라의 지배를 받으면 한반도 에서 살아갔습니다.또 귀족계급 등 중상류층 가운데 일부는 당에 포로 로 잡혀갔지요.
나머지 고구려 유민은 몽골,글안,돌 궐등 타민족에 섞여 살다가,682년 에 동돌궐이 올란바토르(현 몽고의 수도)에 돌궐 제 2제국을 수립할때 바로 여기에 참여합니다. 참여한유민의 숫자가 전체 돌궐 제2제국 인구의 절반인 20만명이 넘었다니 돌궐 제 2제국은 고구려의 후예라 하여도 될 판이지요.
돌궐과 고구려는 계속 우호적 이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의 터키에 자리잡은 그들은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인 들을의미하는 여전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처럼 터키가 한때는 고구려의 기층민중이었고, 고구려 멸망 후에는우리가 돌궐 제2 제국의 기층민중이었기 때문입니다. 즉,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형제의 관계였던 거지요.
6·25때 북한이 남침하자,아시아에서는 가장 먼저,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군대 (1만 4936명, 전사 721명, 부상 2147명)를 파견해 우리를 도왔던 것이지요.파병이 늦어지자, 터키의 고등학생들이 왜 형제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지 느냐 면서 데모를 벌였답니다.
6·25 참전과 올림픽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 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 팬들이 되어 열정적으 로 그들을 응원했습니다. 하이라이 트는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적이 없는 대형 터키국 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 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 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났고 터키인들은승리보다도한국인들의터키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터키의‘형제애’는더욱 굳건 해졌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 2002년 월드컵 터키전이 있던 날 한국인에게는 식사비와 호텔비를 안 받 던 나라, 월드컵때 우리가 흔든터키 국기(國旗)가 터키에 폭발적인한국 바람을 일으켜 그 후 터키 수출이 2003년 59%, 2004년 71%나 늘어났다는 KOTRA 통계가 있습니다.
이제 그 형제나라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당연히 도와주고 같이 아파해야됩니다.6.25 때에 800여명 이 생명을 바쳐 우리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듯이 우리도 최선의 선행으로 십시일반으로 조그마한 정성 즉 구호 물품 또는 구호 기금 등 도움을 주면 좋겠습니다. 그들은 피가 섞인 우리들의 형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