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관직을 두루 거쳐 1867년 좌의정에 제수되어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피폐한 민심을 잘 수습하고 관직을 퇴관하였다.
1872년 류후조는 관직을 퇴관하여 지금의 경북 상주시 중동면 우물리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류후조가 은거하고 있는 우물리는, 한양으로 향하는 영남대로가 낙동강을 건너는 낙동 나루와 북쪽으로 십여 리 떨어져 있는 곳이다. 영남대로를 따라 오가는 선비나 관리들이 낙동 나루에서 십 리나 떨어진 류후조의 거처 우물리까지 찾아와 문안 인사를 하는 일이 잦았다.
이에 류후조는 중책에 바쁜 관리나 선비들이 시간을 허비하며 자신을 찾아오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아예 자신의 거처를 영남대로 낙동 나루 부근으로 옮겨와 살았다고 한다.
어느 날 선비 한 사람이 낙동 나루를 건너와 늙은이의 등에 업혀 강어귀를 벗어나면서 정후조 대감의 집이 어디쯤이냐고 물었다.
등에서 선비를 내려놓으며 늙은이가 말하기를 내가 정후조라고 말하였다.
그날 그 선비는 얼마나 놀랐을까.
정후조 대감은 지금도 상주지역에서는 낙동 대감으로 불리며 청렴 소탈함을 칭송하고 있다.
2022년 5월 문재인은 대통령을 퇴임하고 아방궁에 버금가는 저택을 지어 경남 양산의 평산마을이라는 시골 같지 않은 시골마을로 이사를 했다. 노무현의 무덤을 디자인한 승효상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문재인의 평산마을 서식처는 중세의 어느 감옥이거나 요즘의 하얀 교도소를 닮아 있다. 지은 죄가 많아 서식처나마 스스로를 가둘 교도소로 지었는가?
여하튼 moon은 서울에서 400 km나 떨어진 그곳 평산마을로 옮겨가 살고 있다. 경호실 직원이나 오가는 사람들의 불편쯤이야 고려사항도 아니었을 터이고, 그저 조용한 시골 시골 하더니 그곳은 이미 번잡한 장터처럼 되어 버렸다.
낙향한 낙동 대감 류후조의 흉내라도 내려는 것인지 대저택 옆 멀찍이 떨어진 곳에다 평산책방이라는 것을 지어 놓고 거기로 나와 멀리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한단다.
아방궁 같은 집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다 책방을 지은 것을 보면 크게 지은 그 집이 조금은 부끄럽긴 한 모양이다.
퇴임한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렇게 요란스럽게 지은 사저는 노무현, 문재인 말고는 보지 못했다.
퇴임 대통령의 사저가 관광지, 시장바닥이 되고 끊임없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그것이 진정 바람직한 것일까? 대통령 퇴임 후 그냥 살던 집으로 돌아가면 안 되었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ᆢ가운데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요란스럽게 새집 지어 퇴임했던 대통령이 누가 있었던가?
낙동 대감 류후조 조차도 살던 고향으로 낙향하여 은거하였다. moon이 낙동대감 흉내를 낼려면 제대로 흉내를 낼 일이었다.
평산 책방 그곳으로 나와 사람들 만나는 그 짓조차도 모두가 위선이고 가식으로 비친다.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지껄이더니 잊혀진 사람이고 싶지 않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이제 평산마을 moon의 서식지는 숫제 이놈 저놈 기념사진 찍고 노는 유원지 혹은 연극 무대쯤이 되었다.
나라를 곤경에 빠뜨린 자신의 수많은 실정을 조금이라도 반성한다면, 밖에 나다니지 말고 스스로 평산마을 그곳에 은신하여 참회의 시간을 가지라.
그곳에다 책방을 열고, 음악회를 하고, 온갖 잡놈 다 끌어들여 기념사진 찍는 연극이나 벌이면서, 조용했던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드는 그것이 노무현 정신이고 문재인의 운명인가?
건축가 승효상이 괜히 감옥처럼 집을 디자인 했겠나? 평산마을 문재인의 사저 그곳을 문재인의 감옥으로 삼았을 것이다.
그곳은 moon의 감옥이어야 한다.
(2024. 7. 24 박종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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