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아버지 직업란에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아이
초등학교 서류에 아버지 직업을 써야 할 때, 그 아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이거 뭐라고 쓰면 돼?"
엄마도 몰랐다.
남편의 직업은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한 사람밖에 없는 직업이었으니까.
# 전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직업
그 아이의 이름은 탁지웅. 아버지 이름은 탁명환이다.
사람들은 탁명환을 '사이비 헌터'라고 불렀다.
사이비 종교 단체에 직접 잠입해 취재하고 그 실체를 폭로하는 일을
직업이자 사명으로 삼은 사람.
1970년대부터 1994년 그가 죽는 날까지,
이 일을 전업으로 한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그가 유일했다.
# 신천지, JMS, 구원파, 통일교
그들이 세상에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탁명환 소장은
그들의 집회에 잠입하고, 교주를 만나고, 신도들을 인터뷰하고, 기사를 썼다.
차 트렁크에는 늘 변장 도구가 실려 있었다.
모자, 짙은 안경, 가발, 수염.
# 그리고 70여 차례의 테러.
폭탄 테러로 고막이 찢어졌다.
칼에 찔려 심장 바로 옆까지 다쳤다.
그때마다 살아남았고, 그때마다 다시 카메라와 펜을 들었다.
누군가 물었다. "두렵지 않습니까?"
그는 답했다. "나는 죽으면 순교하는 겁니다."
(영화 〈사바하〉에서 배우 이정재가 연기한
'사이비 종교 추적자 박목사'의 실제 모티브가 이 사람이다.)
# 1994년 2월 18일
탁명환은 자신의 아파트 복도에서 괴한의 칼에 찔려 숨졌다.
향년 56세.
범인은 사흘 만에 잡혔다.
대성교회 박윤식 목사의 운전기사 임홍천이었다.
검찰은 살인을 사주한 것으로 박윤식 목사를 지목했지만,
임홍천이 구속되던 날 박 목사는 미국으로 출국했다.
3년 후 귀국해 무혐의 처분을 받은 그는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사건은 조용히 묻혔다.
# 세 아들은 도망가지 않았다
아버지를 그렇게 잃었다. 눈앞에서 아버지가 피 흘리며 죽어갔다.
첫째는 신학대 교수가 됐다.
둘째는 아버지가 세운 단체를 이어받았다.
셋째는 성공회 신부가 됐다.
세 사람 모두 지금도 사이비 종교 피해자들 곁에 있다.
삼형제에게 왜 그 길을 택했냐고 물었다.
"선택한 게 아니에요.
이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어서 우리가 한 것뿐입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삶이,
사실은 가장 무거운 선택일 수 있다는 걸.
# 나는 왜 이 다큐를 만들었나
나는 다큐멘터리 PD다.
1년 전, 이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기로 했다.
취재 과정에서 방송금지가처분 소송을 당했다.
박윤식 목사의 아들과 그 교회가 제기한 소송이었다.
탁명환을 살해한 자도 소송을 걸었다.
교회가, 살인범이 나와 내 가족을 해치지 않을까 걱정한 날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탁명환 소장이 매일 어떤 심정으로 살았는지를
몸으로 이해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이 일을 붙들고 있는 걸까.
공명심인가.
명예욕인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분명하다.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않았다면 PD로서의 내 삶은 꽤 허무했을 거라는 것.
좋아하는 영화 대사가 있다.
〈헤어질 결심〉에서 박정민이 연기한 캐릭터가 연인에게 남긴 말이다.
"나 너 때문에 마음고생 꽤나 했지만,
너 아니었으면 내 인생 허무했다."
이 다큐에 대한 내 마음이 그렇다.
가처분소송 항고심에서도 이긴다면
다큐멘터리 〈사이비 헌터는〉 5월 19일에 공개된다.
탁명환이라는 사람에 대한, 그의 세 아들에 대한,
그리고 3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은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할 수 있을까?
'살아가는 이야기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우리 집 최고 VIP 손님 - 이팝 꽃 핀 교황리 (0) | 2026.05.18 |
|---|---|
| 광화문 '감사의 정원' - 이팝나무꽃 핀 교황리 (0) | 2026.05.18 |
| 트럼프가 받은 모든 것을 이렇게 남겨 주고 떠났다 - 출근길 다산면 풍경 (0) | 2026.05.18 |
|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되는 나이다. - 퇴근길 사문진에서 (0) | 2026.05.18 |
| 서류 위를 나는 #KF21, 추락하는 #F5 - 퇴근길 사문진에서 (0) | 2026.05.1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