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큰아이는 결혼을 했다.
그런데도 한 달에 한 번쯤은 꼭 집에 온다. 꼭 무슨 철새처럼 계절 따라 오는 것도 아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당연하다는 듯이 온다.
핑계는 늘 같다.
“엄마 밥 먹고 싶어서 왔어.”
처음엔 나도 살짝 감동했다.
그래, 요즘 같은 세상에 결혼한 아들이 부모 집 찾아오는 것도 효도지 싶었다.
며느리도 직장에 다니니 제대로 된 집밥 먹기 쉽지 않을 것이다.
퇴근해서 밥하고 치우고 하면 하루가 다 가니, 우리 집 오는 날만큼은 좀 편히 먹고 쉬다 가는 것도 괜찮다 생각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아들이 온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누라 눈빛이 달라진다.
평소 냉장고에 있던 시들한 나물도 “먹을 만하다”던 사람이 갑자기 새 사람이 된다.
“시장 좀 다녀와야겠네.”
그리고는 장바구니를 들고 전투적으로 나간다.
몇 시간 뒤 돌아온 장바구니를 보면 기가 막힌다.
소고기는 기본이고, 광어회에 딸기 한 팩, 전복, 잡채 재료, 갈비찜 거리까지 들어 있다.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대통령 오는 것도 아닌데?’
냉장고 문을 여닫는 소리가 아주 비장하다.
마늘 다지는 소리는 기관총 같고, 국 끓는 냄새는 온 집안을 점령한다.
평소엔 김치찌개 하나 끓여놓고 “있는 반찬 꺼내 먹어” 하던 사람이 아니다.
나는 슬쩍 물어본다.
“오늘 뭐 특별한 날이야?”
그러면 마누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큰애 온다잖아.”
그 한마디면 끝이다.
나는 순간 우리 집 서열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1위 큰아들 2위 며느리
그리고 마지막쯤에 나.
저녁이 되면 큰놈은 현관문 열자마자 외친다.
“와~ 엄마 냄새!”
그 말 한마디에 마누라는 입꼬리가 귀까지 올라간다.나는 맨날 집에 있는데도 그런 반응 못 본 지 오래다.
식탁 위엔 반찬이 끝도 없다.
갈비찜, 불고기, 잡채, 전, 미역국까지 줄줄이 올라온다.명절인지 생일인지 헷갈릴 정도다.
나는 조심스럽게 젓가락을 뻗다가 눈치를 본다.
괜히 비싼 고기 많이 먹었다가 “아들 먹으라고 한 건데” 소리 들을까 봐서다.
그런데 더 웃긴 건 큰아들이다.
눈치가 없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아주 태연하다.
“역시 엄마 밥이 최고야.”
그 말에 마누라는 또 행복해 죽는다.
나는 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린다.
‘오늘 장 본 값이면 내가 친구들이랑 삼겹살을 몇 번을 먹는데…’
하지만 이상하게도 밉지는 않다.
아들이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며느리가 “어머니 너무 맛있어요” 하며 웃고 있으면
집안이 북적북적 살아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밥 다 먹은 뒤 돌아가는 아들 손에 마누라는 또 이것저것 싸준다.
김치 담고, 반찬 담고, 과일 담고.거의 이삿짐 수준이다.나는 그 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아니, 그냥 보내. 다 큰 애들이야.”
그러면 마누라는 꼭 같은 말을 한다.
“그래도 애들인데 어떡해.”
참 이상하다.결혼도 했고, 직장도 다니고, 자기들끼리 잘 사는데 부모 눈에는 아직도 배고플까 걱정되는 애인가 보다.
그리고 사실은 나도 안다.저렇게라도 찾아와 밥 먹고 웃고 가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고기 한 점 덜 먹는다. 우리 집 최고 VIP 손님이 또 올 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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