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도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친정이지 울케가 곳간의 열쇠를 허리춤에 차고 있으면 이웃보다 나을 게 없다.
울케는 “장롱 사느라 곳간에서 쌀가마를 들어냈더니 텅 비었어”라며 좁쌀 반 자루를 툇마루에 던져놓고, "잘 가” 이 한 마디뿐이다.
복순이가 터졌다.
“야 이년아, 땟거리가 없어서 초근목피로 목숨을 이어가던 거지년을 친구랍시고 우리 집안에다 들여놓았더니 나한테 하는 짓이 겨우 이거냐!”
복순이는 좁쌀 자루를 올케년에게 집어던지고 친정집을 나와버렸으며 그게 친정과 담을 쌓은 마지막 날이다.
‘죽기 살기로 공부하는 신랑이 과거에만 붙어봐라.’
복순이는 울지 않았고 잔칫집에 가서 밤늦도록 허드렛일을 하고 남은 음식을 싸와서 공부하는 남편에게 상을 차려주고,
장날엔 주막집에 불려가 눈코 뜰 새 없이 일하고 술 손님들이 남긴 너비아니, 닭 창자를 가져와서 남편에게 상을 차려줬다.
봄이 오자 복순이는 바지를 입고 망태기를 메고 산에 올랐으며 더덕을 캐고 하수오와 참나물을 뜯고 재수가 뻗친 날은 산삼도 보았다.
약재상에 어린 삼을 팔아서 산 씨암탉에 약재를 넣고 푹 고아 먹여 남편 몸보신을 시켰다.
어느 날, 눈앞에 백하수오를 봤는데 손발이 닿지 않았으며 포기하기엔 너무 아까워 큰 숨을 쉬고
절벽에 매달려서 풀도 잡고 나뭇가지도 잡으며 게걸음 하다가 그만 발이 미끄러져 움켜잡았던 풀이 뿌리째 뽑혔다.
“으아악~”
비명은 메아리쳐서 골짜기를 울리고 복순이는 몸이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정신을 잃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린 복순이는 또 한번 기절할 뻔했으며 관솔불에 괴물 형상이 비쳤다.
“누, 누구요?” 복순이가 물었다.
“나는 이집의 주인 심마니요. 절벽에서 떨어져 기절한 낭자를 업고 왔소” 하면서 괴물 형상이 복순이에게 대답했다.
복순이는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일어나 벽에 기대 앉았으며 심마니도 벽을 등지고 앉아 침묵만 흘렀다.
한참 후에 심마니는 자신의 어릴 적의 이야기를 복순이에게 모두 털어놓는 것이었다.
불타는 아궁이에 넘어져서 화상을 입고 얼굴의 반쪽이 번들거리는 괴물이 되어서 장가도 못간 노총각이 됐다는 것이다.
심마니와 복순이는 살아온 이야기로 꼬박 밤을 새우고 동창이 밝자 복순이는 제 집으로 갔으며 집에 도착하니 이게 웬일인가!
과거를 보러 한양에 갔던 신랑이 어사화를 꽂은 사모관대에 백마를 타고 집 마당에 들어섰다.
동네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는데 복순이는 감격에 북받쳐 마당에 퍼질러 앉아 대성통곡을 하였다.
복순이는 꿈인지 생신지 볼을 꼬집었고 급제한 신랑이 어사화 사모를 벗어 복순이한테 씌우고 겨드랑이를 잡아 일으켰다.
고을 사또도 오고 육방관속 유림들도 모두 모여 삼일간 동네가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였다.
복순이는 과거에 급제한 신랑을 따라서 말로만 듣던 한양을 갈 생각에 가슴이 부풀어 하루하루가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복순이는 분과 동백기름을 사다 바르며 한양에 가지고 갈 고리짝에 짐을 쌌다.
그런데 한양에 먼저 올라간 신랑에게선 보름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허구한 날을 사립문 밖에서 급제한 신랑이 보낼 하인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게 일이 됐다.
석달이 지났을 때, 복순이는 남정네 옷을 사입고 단봇짐을 멘뒤 초립을 눌러쓴 채 집을 나섰다.
날이 저물면 주막에서 자고 동이 트면 걸었으며 보름 만에 한양에 도착하여 궁궐 앞에서 신랑을 기다렸다.
퇴청하는 문이 하나가 아니란 걸 수문장에게서 듣고 이레 만에 경복궁 영추문을 나서는 신랑을 보았지만 달려가 얼싸안지 않고 미행했다.
신랑이 서촌의 골목길을 돌고 돌아 어느 아담한 기와집 대문을 두드리자 한 여인이 대문을 열고 반겼으나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복순이는 머물던 통의동 주막집으로 돌아가서 생전 처음 너비아니 안주에다 청주 한 호리병을 마시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복순아, 네 팔자는 이렇다. 운명의 강이 흐르는 대로 흘러가보자.”
복순이는 보름 만에 집에 도착해 하루를 푹 자고 산으로 올라갔으며 세 칸 너와집에 저녁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릴 때 얼굴에 화상 입은 심마니 총각이 갑자기 나타난 복순이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복순이는 심마니와 함께 감자밥 식사를 했으며 밥을 먹고 나서 복순이가 말했다.
“나 여기서 살래요. 당신과 가시버시가 돼서.”
한참 답이 없던 심마니는 삼경이 돼서야 고개를 끄덕였으며 심마니와 복순이는 찬물 한 그릇을 떠놓고 서로 맞절을 하였다.
잠시후 심마니가 복순이 옷고름을 풀고 치마와 고쟁이를 벗긴 다음 후우~ 등잔불을 껐다.
복순이가 알몸으로 반듯이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자 심마니가 복순이에게 올라갔다.
그녀는 가벼운 신음을 토해내며 심마니를 끌어안고 낙지처럼 착 달라붙어 몸을 맡겼다.
복순이는 두 팔로 심마니 목을 껴안고 두 다리를 위로 들어올려 그의 허리를 휘어감았다.
너와집 지붕이 무너질듯 요란한 폭풍이 일었고 그녀의 자지러지는 감창이 산속에 울려퍼졌다.
한바탕 요란한 폭풍이 지나가자 요분질 해대던 복순이의 허리가 활처럼 둥글게 휘어졌다.
그녀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몸을 파르르 떨면서 사지가 힘없이 축 늘어지고 결국 혼절했다.
복순이는 남편이 급제하고 새살림을 차린 이후 오랜만에 심마니와 욕정을 맘껏 불태웠다.
그녀는 심마니 품속에 안긴 채로 두 눈에 기쁨과 행복의 눈물을 흘리면서 깊이 잠들었다.
어느덧 자신을 버린 남편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심마니와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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