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린 일행들과 만나고 장백폭포로 향하게 되었다

장백폭포로 가는길은 우리네 등산로와 마찬가지로 기념품을 파는 매점과 간식거리를 파는 매점등이 있는데

우리나라 등산로 입구처럼 뜨끈한 어묵을 파는집과 같이 중국의 예볜 이곳도 마찬 가지다

장백폭포로 가는길은 나무 테크길로 계단을 만들고 또 통로도 만들어 두어 쉽게 갈수 있었는데 

데크길 밑으로 흐르는 온천수는 그 추위에도 따뜻한 미온수가 흫러내리며 온수가 증기가 되어 

눈밭을 녹이고 그러한 광경들이 이루 말로 표현 할 수없을 만큼 아름답게 내 머릿속을 강타 했다

이렇게 멋진 설경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정말 입이 벌어져 다물어 지지 않을 만큼 경치가 예쁘고

정말 나는 운빨이 하나님이 보우하사 이런 절경을 볼수 있나보다 싶었다

이 겨울에 입산하여 이런 절경을 볼수 있는사람이 얼마나 될까 수많은 사람들이 백두산 관광을 왔지만 

입산 조차 못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데

이곳에서는 백두산의 온천수로 익혔다는 계란 반숙을 가이드가 제공 했다

아마도 백두산 온천수로 익힌 삶은 달걀을 모두가 맛 볼수 있도록 여행 상품에 이런 체험을 일정에

포함 시켜 두었던것 같다.

장백폭포 관광을 마치고 다시 맨처음 출발 하였던 장백산 관광 버스 탑승장으로 돌아 갈 모양이다 

그런데 돌아 가는길은 자작나무가 많은 산길 설경을 보며  한참을 내려 가야 한다

이동시간이 한시간 30분 정도는 걸리는 것 같다 

 

백두산 관광을 하며 천지도 돌아보고 사진도 찍고 백두산의 절경에 빠져 한참 넋을 잃고 있다가

눈주변이 얼어 붙을듯 시려 빨리 실내로 들어가자 아내를 제촉하여 백두산 관광후 집결하기로 하였던 

버스 환승장 실내로 들어섰다

정말 추이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나는 마스크에 모자를 눌러쓰고 귀도 가리고 모두 가리고 장갑도 

겨울 등산 장갑을 껴서 큰 추의는 못 느꼈지만 눈과 눈주위의 노출 된 부분은 정말 시리다 할 만큼 

눈썹의 털끝이 얼어 붙을 만큼 매서운 추위를 느꼈다

요즘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지 않고 휴대폰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은데 휴대폰 촬영시

텃치를 맨손으로 하거나 아니면 텃치 장갑을 껴야 하는데  텃치 장갑을 껴을때 그 아둔 함이란 

느껴본 사람만이 알것이다 그래서 맨손으로 텃치를 하여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데 

손가락 끝이 끊어질듯 아려 옴을 느끼는 사람이 꽤나 많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게 실내로 들어가 가이드를 만나 버스를 타기전 잠시 화장실에 다녀 오는것이 어떻겠냐고 하여 

아내와 같이 화장실로 향했다.

중국의 화장실에는 휴지를 비치하여 놓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화장실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나마 최근 화장실을 개조하고 현대식으로 만들어 

다행 스럽긴 하지만 예전에는 화장실이 모두 개방되어 있어 혼자 중요한 볼일을 보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화장실은 옛날 우리네 푸세식과 비슷한 화변기가 놓여져 있는데 이곳엔 화장지를 비치 하지 않는다

그것을 이미 경험 한지라 가이드에게 휴지를 넣어 화장실로 향했다

용변을 보고 나오니 미팅을 하기로한 시간이 거의 임박하여 아내를 기다리기가 어려웠다 

화장실이 워낙이 붐비고 하여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아 먼저 만나기로한 버스 승차 대기장 매점쪽으로 향했다.

매점 쪽으로 들어서니 이미 미팅하기로 한시간 보다 1~2분이 늦어진 상태이고 매점을 꼼꼼히 살펴 보아도

만나기로한 우리 일행들은 보이질 않는다.

갑자기 당혹스러운 생각이 들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한 생각에 급히 서둘다 보니  시야가 더 좁아지고 

온갖 생각이 다 들기 시작 했다. 날만 빼고 하산한 건 아닌지 불안한 마음에 이곳저곳 싹 뒤지다 출구 쪽으로 나가다 보니

좁게 만든 지그재그 나무로 가이드를 쳐놓은 보행로를 거쳐 버스 승강장 까지 나가게 되었다

버스 환승하는 곳에서는 나온 순서대로 버스에 올라 타라고 성화이고 다시 되돌아 나갈수가 없었다

버스 몇대를 보내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 멀뚱멀뚱 있기도 힘든 상황이라 어쩔수 없이 버스를 탓다

버스를 타고가면 맨처음 출발하던 그 장소로 갈 수 있지 않을까하여 이동 중 카톡으로 한국에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일행과 떨어져 혼자 낙오가 되었음을 알리고 여행사로 연락하여 가이드와 연락이 닿도록 도와 달라고 전하고

나도 전화를 걸어 가이드와 통화를 시도 하였는데 통화가 되지 않는다 유심은 중국 유심으로 갈아 끼워 중국내 전화는 될것 같은데 아무리 통화 하려 전화를 하여도 전화가 불통이다 

한국유심으로 바꿔 끼워 국제통화라도 해야 하는건가 고민 하며 아이들에게 나의 위치를 알릴수 있도록 사진을 찍어

지금 내 위치를 공유 하기 시작 했다.

답답하고 이러다 영영 헤어져 지체되면 어쩌지 하다가 이왕 이렇게 된거 버스타고 내려 가자 싶어 환승 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버스를 환승 하게 되었다 

그냥 줄서서 기다리고 있으니 탑승 하라는것이다 그래서 버스를 탑승 했는데

그중 한국인 여행객들이 있고 한국인 여행객을 인솔하는가이드가 보여 가이드에게  

지금 일행들과 떨어져 혼자 길을 읽고 헤매고 있으니 가이드에게 연락을 취해 달라고 여행 일정푤르 보여 주었다

이내 여행 가이드가 통화를 시도 하였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참을 몇번이고 통화를 시도한 끝에 통화가 되었는데 일행과 떨어져 있으며 지금 향하고 있는 길이

장백폭포 버스 승강장이니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할테니 내려오면 합류 하라고 한다.

다행이다 일행들은 나를 찾지 못해 30분 지체되어 장백폭포쪽으로 내려 오고 있다고 한다.

장백폭포 가는 버스 환승장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올것이란 말에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가 대 여섯대 지나간 후 에야 일행들을 만날수 있었다.

일행들은 나를 찾느라 화장실 칸칸이 모두 두드려보고 방송도 하고 사람을 찾기위해 별별 방법을 모두 강구 하였지만

찾을수 없었다 하는데 나는 나 대로 혼자 불안에 떨어야 했던 서운함이 북받혀 오르지만 

화를 낼수 도 없는 상황이라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수 밖에

장백폭포 입구를 버스를 기다리며 보고 있노라니 눈네린 설경과 그 절경이 너무 아름다워 입이 다물어 지질 않는다.

일행과 만난 이후 여행은 순조롭게 흘러 갔지만 그렇게 허비한 시간 때문에 점심 식사 스케쥴은 1시간 늦어지고

저녁 식사 스케쥴도 늦어지게 되었다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 아우성이고 그 많은 원망을 모두 내탓으로 여겨졌겠지만

가지고 간 사탕과 간식 그리고 립밤 화장품을 여행객모두에게 하나 하나 나눠 주며 그런 원망을 피해 갈 수 있도록

한덕분인지 그다지 원망을 듣진 않았다

두만강

백두산에서본 주변 풍경

백두산 버스 정류장

백두산 천지

금수학호텔에서 자고 일어나니 머리가 무겁고 속은 미식거리고 어제 마신 술 때문에 술냄새도 나고 속이 편치 못하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먹으려고 하였지만 음식들이 낮설고 그리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다

먹는둥 마는둥 아침을 챙겨먹고 가방을 싸서 미팅 장소로 나섰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를 이동 하였나 보다 장백산 관광이라는 건물이 보이고 이곳에서 티켓을 발권하여 

이동하는데 버스를 몇번씩 갈아 타야 백두산에 갈수 있다고 한다

금수학호텔부근의 장백산 관광버스 탑승지에서 백두산 까지는 약 두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첫날 투숙한 금수학 호텔이다

이곳에서 백두산가는 티켓을 발권하여 버스를 타고 이동 한다

이 두장의 티켓이 이곳에서 출발하여 백두산을 올라 갈수 있는 티켓인데

관문을 지날때 마다 소지품 검사를 하고 여권과 티켓을 함께 확인한다 .

큰 버스를 타고 마지막 도착한 곳에서 다시 소형 봉고차 같은 12인승 버스를 갈아 타고 백두산 까지 올라 가게 된다

백두산으로 올라 가는 길에 차창밖 풍경이 참 멋지고 자작나무와 설경이 어울어져 정말 멋지다 라는

말로는 그곳의 풍경에 대한 표현이 안된다

백두산 정상 바로아래 소형 버스주차장이다 

이곳까지 소형버스가 승객들을 실어 나르고 백두산 천지는 이곳에서 50여 미터도 안되는 것 같다

정말 하늘이 도와 이 계절에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 오른다.

이 민족의 영산이라는 백두산이 활화산이라 올해 폭발 주기설이 있는데 활화산 운동으로

폭발할 경우 영원히 보지 못할 풍경이라 생각하니 더욱 가슴이 벅차다

백두산 여행을 가게 된 것은 아내의 권유 였다 

백두산 2박3일 일정인데 199,000원이래 뭐라고 이건 가야되 항공료도 안되는 비용인데 어떻게 그 비용으로 갈 수 있겠어

그렇게 백두산에 가기로 결정 했다. 우선 신청 부터 하고 6명 이상만 되면 출발 한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연락이 왔다 여행비 입금하래 그래서 2명 여행비용으로 398,000원을 입금 했다.

여행사는 생소한 이름이다 Y tour & Golf 여행사 부산에 있단다

출발지는 김해국제공항이다. 

그럼 여행 경비로 얼마나 준비 해야 해 ? 가이드비가 인당 30달러, 그리고 무제한 삼겹살 옵션 인당30달러

그리고 전신마사지 인당30달러 그러면 옵션으로 90달러 x 2인 최소 180달러인데 또 다른 옵션 관광이 있을거야 

사실 해외여행을 다녀 보면  이런 옵션 관광으로 가이드와 관광객이 서로 불편함을 겪는 경우가 참 많다

가이드는 어떻게든 관광객의 주머니에서 한품이라도 더 나오게 하려고 애를 써는 반면 관광객은 원치 않는

옵션광광이나 쇼핑일정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게 인지 상정이다.

물론 옵션 여행 상품 중 정말 괜찮은 상품이 있다면 하고 싶은게 관광객의 마음이지만

가성비 있는 옵션 상품이 아니라면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게 사실이다.

첫날 연길공항에 내려 근처의 식당에서 온면을 먹고 된장술로 약간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버스에서 이동중 옵션상품을 이야기 한다. 필수적으로 좀 해주었으면 한다는 무제한 삼겹살 옵션과 전신 마사지 옵션을 

하겠다하고 보니 양꼬치+맥주 무제한 옵션 상품이 있는데 그것을 적극 추천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양꼬치 +맥주 무제한 옵션 상품을 인당 40불에 하기로 한다.

실제 이 여행 상품은 아침 조식은호텔에서 제공하고 점심 식사비는  여행비에 포함 되어 있지만 저녁 식사는 불포함이다

그런 까닭에 어차피 먹을 저녁이라면 양꼬치와 맥주로 식사를 같이 해야할 사항이라

부득불 옵션으로 양꼬치를 먹을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기로 정하고 백두산 여행을 하기위한 연길에서 일정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곳은 두만강 접경지역으로 강변 공원이다 

이곳에 핸즈 커피 판매점이 있다 대구의 핸즈 커피가 이곳에 진출한건 아닐테지 라는 생각을 하지만

혹시 그 핸즈 커피가 이곳에 진출해 있을지도...

강 건너가 이북 조선인민민주공화국 북한이다

여름철이면이곳에서 보트를 타고 물놀이도 한단다. 구글 지도에서 두만강으로 검색하면 이곳에서 

보트를 타고 물놀이 하는 사진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곳에서의 사진 촬영은 금지 되어 있다고 하지만 중국공안의 눈을 피하여 종종 사진을 찍고

그런 사진들이 구글 지도에 많이 게제 되어 있다

 

이북 땅이 초라하게 보인다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빌자면 이강을 건너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여 연변으로 이주 하여 

연변에서 남한으로 오게 되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중국 지린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투먼시에 해당 하는 위치다

우리가 가곡으로 듣던 선구자의 노랫말 중

 

일송정 푸른솔은 늙어늙어 갔어도
한줄기 해란강은 천년두고 흐른다
지난날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거친꿈이 깊었나

용두레 우물가에 밤새소리 들릴때
뜻깊은 용문고에 달빛고이 비친다
이역하늘 바라보며 활을 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곳에 지친꿈이 깊었나

선구자의 노랫말에 나오는 일송정과 해란강이 있는 옌벤 조선족자치주의 거룡 우호 공원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공원의 모습을 보며 일제 치하의 동포들이 낮설고 물설은 만주 옌볜땅을 밟아 

독립운동을 하던 그 선조의 얼을 마주 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이도백화로 이동하여 금수학 호텔이 있는

중국 Jilin, Yanbian Korean Autonomous Prefecture, Antu County, 池北大街通常路36号 邮政编码: 133613 주소지로

이동하여 근처 한인 식당에서 삼겹살 무제한 옵션 상품으로 저녁식사를 대신 했다

 이 술과 함께 삼겹살을 곁들여 저녁 식사를 하고 일행중 술을 마실수 있는사람이 없어 남은 술을 들고 

호텔에 투숙하면서도 38도씩이나 되는 이 술을 모두 마시고 보니 씻지도 못하고 술이 취해서 그냥 뻗을수 밖에 없었다

중국은 비자 발급이 되어야 갈 수있는곳이기했지만 최근 중국당국에서 비자 발급없이 무비자로 입국을 허락하여

입국신고서만 제대로 작성 하면 입국이 허용된다

여행자 안내 주요사항이다

영문본과 한문으로 적힌 내용을 볼 수 있다

무슨 내용인지 생소하지만 여행객이 꼭 알아야 할 사항이지만

읽어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이드가 시키는데로 따라하면 되는 가이드 여행이니까

일단 기록하였는데 입국심사를 하면서 중국공안이 뭐라고 하는데 알아 들을수 없다

그냥 버티고 있었더니 그냥 입국 수속을 해준다.

중국땟놈들 뭐라는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서 수화물 짐을 찾고 가이드미팅을 한다 

우리 가이드는 김미란 가이드로 연변 동포다

혹시 버스를 놓칠까 번호판 사진 하나찍고 버스를 타기로 한다 연변의 날씨가 제법 춥다

처음 일정은 점심 식사다

백두산을 가기로 했다 이 추운 겨울에 그냥 여행 상품이 싸게 나와 무조건 가보기로 한다.

가기잔 추위를 이길수 잇는 옷가지며 귀와 손 얼굴들을 가릴수 있는 모자와 목도리 데신 넥 워머를 챙기고 

또 눈길을 갈수 있는 스패츠도 챙겼다

2박3일간의 여행 일정을 살펴보고 백두산으로 떠난다

먼저 쓸 돈을 달러로 환전 하고 통신 수단인 로밍을 해야 하지만 로밍 말고 유심을 싸서 끼우기로 한다.
먹을 간식도 좀 챙기고 하루 하루 날자가 다가오면서 챙길게 없느지 빠뜨린건 없는지 체크 해 가며 
가이드와 미팅 하기로한 부산 김해 국제공항 청사로 향한다
최근 에어부산 항공기가 배터리에 의해 화재가 발생 하고 난이후 부터 배터리단속이 심하다 
배터리가 든 배낭이나 가방 보따리는 기내 선반에 올릴수 없도록 하고 항시 손에 휴대할것을 권장 한다
배터리가 들지 않은 가방만 선반에 수납할 수있는데 수납할 가방에는 배터리가 들어있지 않다는
노란 리본을 부착한 가방만 선반에 실을 수 있다 
 

 
약속을 어기면 믿음이 약해진다



조선 후기 호조판서, 예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정홍순'은 청빈하고 검소한 인품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습니다.

비 올 때마다 그는 갓 위에 덮어쓰는 갈모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 위해 늘 두 개씩
가지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당시 왕이었던 영조의 행차를 구경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데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정홍순은 급히 갈모를 쓰고 옆을 보니
젊은 선비가 갈모가 없어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젊은 선비에게 갈모를 하나 빌려주었고
가까운 골목 어귀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이윽고 서로의 집으로 가기 위해 정홍순이
갈모를 돌려받으려 하자 젊은 선비는
간곡히 요청했습니다.

"죄송하지만,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이니
갈모를 좀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꼭 돌려 드리겠습니다."

몇 번이나 간절히 부탁하는 젊은 선비의 말에
그는 자기의 집을 알려주며 갈모를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도 일주일이 지나도
젊은 선비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결국 갈모를 돌려받지 못한 채
세월이 흘렀고 정홍순은 20여 년이 지나
호조판서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 부임한 호조좌랑이 인사차 찾아왔는데
예전에 갈모를 빌렸던 젊은 선비였습니다.
정홍순은 그에게 말했습니다.

"한낱 갈모를 돌려주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작은 약속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백성과의 약속인 나라의 살림을 공정히
처리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들은 호조좌랑은 결국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다고 전해집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믿음과 신뢰를 전제로 한 약속.
그러기에 약속은 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키기 어려운 약속은 하지 않는 편이 나으며,
할 수 있는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누구나 약속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 약속을 이행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에머슨 –

 

영화 보고타 송중기 주연
#앗싸라삐야 콜롬비야
Tv시청 중 광고 방송이 몇차례 방영 되는 것을 보았다
지난 12월 말에 개봉하였는데
영화 보고타를 보려고 1월 3일에
영화 상영관의 방영관을 찾아보니
어라 몇관 되질 않는다
시간이 맞질 않아 미루다
어제 아침에 검색하여 보니
집부근의 롯데시네마 성서관에서
하루동안 상영되는 횟수가 고작 5편
흥행이 안되는 건지 배급사의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많은 돈을 들여 영화 한 편을 만들었을 텐데
그리고 TV로 광고 방송에도 엄청난 돈이 투자 되었을 텐데
흥행실적은 정말 낮은가 보다
요즘 볼만한 영화가 없다
하얼빈이 350 만명의 관중이 관람을 하였다지만
그렇게 썩 재미있게 볼만한 영화가 아니었다.
한국 영화 산업 이러다 쪽박만 차는 게 아닌지
하긴 영화산업 뿐이랴
경제가 곤두박질쳐서 반도체산업도 자동차산업도
애를 먹는 단다
특히나 철강산업과 석유화학산업도 마찬가지
경제 침체에 장기화되어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고용은 줄어들고 기업마다 긴축 정책에 구조개선 작업으로
경제가 돌지 않으니 불황도 이런 불황이 없다
소상공인들은 빚에 쪼들려 문을 닫고 빈 점포만 즐비하다
게다가 정치 상황도 좋지 않아 환률은 치솟고
이러다 IMF시절 보다 외환위기시절 보다
더 어려운 시절이 도래하여 암울한 터널속을
지나는 듯하여 매우 불안하다
이러다 영화 보고타의 그 시절 외환위기로 경제가 침체되어
외국으로 도피하듯 떠나게 되는
그 시절이 재현될지도 모를 일이다
제일 마지막 사진은 텅빈 영화관이
이 시대의 경제 상황을 대변하는 듯하여
매우 암울한 기분을 느끼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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