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란 녀석이 요망스럽다
지나가는 여인네의. 어깨에 앉아
머리카락을 물어뜯고 비니를 쪼아된다
여인녜 또한 싫지 않은듯 에깨위에 앉은 까치를
쫒아내기 보다는 사랑 스럽단 느낌으로
연신 휴대폰으로 인증샷 인증영상을 찍는 듯한 느낌이다
하도 괴이하여 언졔 부터 그러는지 원래 키우던 새인지를
물어봐도 답이 없다
쫒아 낼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니
친숙한듯 보이기도 한다
왠통 머리카랙을 쪼아되기도 하고 비니늘 건드려보지만
여인네는 아랑곳않고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는데
공격적이라고 보기는 석연찮은 구석도 있어
한참을 지켜보니 이윽고 하늘을 날아 올라
나뭇가지에 올라 앉는다
여인네는 아무렀지 않은듯 제 갈길을 간다
히한한 장면이다

행복이란 선물



어떤 남자의 꿈에 한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꿈에 나타난 천사는 뭔가를 포장하고 있었는데
남자는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천사님!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포장하고 계십니까?"

"행복을 포장하고 있답니다.
다가올 새해를 맞아 사람들에게 나눠줄
행복입니다."

남자는 다시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포장을 단단하고
튼튼하게 하세요?"

"사람들에게 전해주려면 너무 멀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걸려서 튼튼하게 포장하고
있답니다."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그 포장지는 무엇으로
만들어졌나요?"

"이 포장지는 고난입니다.
이것을 벗기지 않으면 행복이란 선물을
받을 수 없답니다."

포장을 다 끝낸 후에 천사가 떠나려고 하자
남자는 다시 물었습니다.

"천사님! 그 고난이라는 단단하고 튼튼한
포장은 어떻게 하면 열 수가 있나요?"

"고난이란 포장을 쉽게 열 수 있는 열쇠는
바로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겁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간다면
포장은 스스로 벗겨지며 행복이란 선물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행복의 크기, 목표의 가치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더 큰 행복을 위한다면 지금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찾아가면서 감사하는 마음을
먼저 품어보세요.

그럼 어느새 행복이 눈앞에 성큼 다가와
당신 곁에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행복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

도산서원의 관람을 끝으로 한국국학진흥원으로 돌아 왔다 원래 일정은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 하기로 되어 있지만

일정이 미치지 못하여 시간적인 문제로 그냥 돌아 왓다 그리고 점심 식사후 버스를 타고 귀가 하기로 되어 있으나

나는 승용차를 가져간 덕분에 식사를 마치고 바로 귀가 할수 있었다

바로 귀가를 하기전에 다시 월영교를 가 보기로 했다 

어제 밤에 달린 그길을 다시 돌아 가는데 제법 멀다 낮에도 이렇게 먼길을 밤에 겁도 없이 혼자 가다니 

나도 미친 똘끼가 많은가 보다

멀리 축조된 안동댐 이 보인다 

월영교는 댐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위에 지어진 교량으로 월영교에 대한 전설이 내려 오는가 보다

 

'한국판 사랑과 영혼' 월영교의 전설을 아시나요 (chosun.com)

 

'한국판 사랑과 영혼' 월영교의 전설을 아시나요

한국판 사랑과 영혼 월영교의 전설을 아시나요 핫 플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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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시 안동댐 바로 밑 조정지댐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낮엔 시원한 분수가 물을 뿜고, 밤엔 코발트블루 조명이 뿜어져 나와 달빛과 어울린다. '달빛이 비친다'는 뜻의 월영교(月映橋·사진)다. 길이 387m, 폭 3.6m 규모로 2003년 개통됐다. 나무로 만든 다리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

월영교에 가면 '원이 엄마'의 애틋한 사랑을 만나게 된다. '원이 엄마'는 조선 중기 고성 이씨 문중의 며느리로, 안동에서 살던 중 남편 이응태가 1586년 31세 나이로 세상을 뜨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삼껍질 등을 꼬아 만든 신발)와 한글 편지를 관 속에 넣었다. 1998년 이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에는 함께 누워 속삭이던 일에서부터 배 속 아이를 생각하며 느끼는 서러운 감정, 꿈에서 만나 얘기 나누고 싶다는 애절한 간청까지 담겨 '한국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기도 했다. 월영교가 끝나는 지점과 이어진 곳에는 '원이 엄마 테마길'이 조성돼있다.

월영교는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한 다리라고 한다

남편이응태가 586년 31세 나이로 세상을 뜨자 원이 엄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만든 미투리(삼껍질 등을 꼬아 만든 신발)과 애절한  한글 편지를 관 속에 넣었다고한다

이건 전설이 아니라 리얼 실제있었던 이야기며 1998년 무덤에서 발견된 편지에는 애절한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만든 원이 엄마의 애절한 사랑을 기념하기 지은 다리가 월영교라고...

 

 

아침 식사후 유교문화 박물관에 모여 관람을 마치고 1기,2기 조사원은 월영교로

3기 조사원은 도산서원을 관람 한단다

일단 유교문화 박물관을 둘러 보았다 

 

유교박물관은 

유교는 중국의 공자가 창시한 인문 중심의 학문이고 그 학문을 조선시대에서 통치이념으로 삼았다고 한다.

고대의 유교가 한국 일본 중국에 미치는 영향과 인문중심의 종교 철학에 대한 문화를 모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서 의 역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는 한국 국학진흥원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한국국학진흥원에서는 사라져 가는 유교의 정신 문화를

계승하기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며 이곳에 전시된 유교문화를 발전 계승시키기위한 노력 뿐아니라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전시체험관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인문정신연수원을 운영하기도 하여 어린 학생들과 함께 관람을 하면서

우리조상들의 삶과 인문 철학과 종교를 함께 체험할 수있는 공간이라 생각 한다.

유교문화 박물관을 관람 하고 도산서원으로

도산서원은 안동호 축조 당시 수몰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존가치를 생각하여 안동시민들의 서명과 유림들의 만류로
다행히도 수몰이 되지 않았지만 지대가 낮아 침수를 우려하여 
지반을 높이는 성토사업을 통하여 
지금의 도산서원이 유지 되었다고 한다.
도산 서원앞에 있는 크다란 나무가 4개의 나무가 심어 진듯 하지만 흙을 파고 들여다 보면 한뿌리에서 나온 줄기라고 한다. 그 만큼 많을 흙으로 수몰이 되지 않도록 땅을 돋우고 지반 자체를 높여 지금의 상태라고 한다.

퇴계이황 선생님이 공부하던 자리에 서당을 짓고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기 위해 만든곳이 도산서당이고

도산서당 옆에는 학생들이 기숙을 하던 기숙사가 있었단다.

도산서당보다는 너 좋은 명당에 자리한 기숙사는 어린 학생들이 이곳에서 수학하여

나랏일에 중용되길 비는 마음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퇴계 이황 선생이 후학을 가르키기 위해 지은 곳이 도산 서당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후학을 가르킨다기 보다는

함께 수학하기 위해 만든 곳이 도산서당으로 퇴계이황 선생님은 제자에게 반말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산서당의 현판은 퇴계 이황 선생님이 직접 쓰신 도산서당글씨를 현판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그 현판의 글씨에는 새가 두마리 있다고 한다.

새가 날개 짓하는 모습은 학습을 하기 위한 새들의 모습을 글씨체에 삽입을 하였다 하고

퇴계 이황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난 이후 그곳을 도산서원으로 만들어 후학들이

퇴계이황 선생님같이 학업을 하고 후학을 기르던 곳으로 서원으로 만들어 졌다 하며,

진도문 뒤로 광명실과 도산서원이 있는데 도산서원의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로 현판을 만들었다 한다.

광명실의 글씨는 퇴계 이황선생님이 쓰신 글자로 다른곳에 있었지만 나중에 광명실을 현판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당대의 최고 학자인 퇴계 이황선생님이 계시던 도산서원의 현판을 만들기 위해

많은 문인들에게 현판의 글씨를 부탁하였으나 모두 고사 하는 지라 임금이 한석봉에게 글씨를 부탁 하는데

처음 부터 도산서원이라 하면 애초에 글씨를 쓰지 못한다고 할 것을 염려한 나머지

한석봉을 불러 도산서원의 원자부터 불러주며 글씨를 쓰게 하였는데

원자 서자 산자를 쓰고 난 다음 그만 낙심하여 못쓴다하여 어르고 달래 집에서 도자를 쓰게 하였단다

그래서 쓰게된 현판이 한석봉선생님이 쓴 도산서원이란 글씨의 현판이 지금의 도산서원에 걸려 있다더라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된 도산서당과 도산서원 유교학문을 학습하고 공부하던 우리의 문화 유산들이 
자랑 스럽게 여겨진다.

도산서원에서 본 안동호
도산서원전경
도산서원 진도문과 광명실
문앞에 사람들이 몰려 있는 네그루의 나무는 실제는 네그루가 아니라 한그루로 나무 뿌리가 같은 줄기라고 한다                                                                    네개의 가지가 흙을 성토하여 지대를 높이다 보니 네그루의 나무처럼 보이는것이라고 한다                                                                                         그만큼 수몰이 될까염려하여 성토하여 지반을 높인까닭에 이렇게 넓은 앞마당이 생겨 났다고 한다

 

어린 학생들이 머물고 기숙을 하며 공부하던 기숙사 역활을 하던 곳으로 방문이 세게로 나뉘었지만 실제 한방과도 같다
진도문과 광명실
진도문안에 도산서원 현판이 보인다 도산서원 현판이 당대의 명필 한석봉이 쓴 글씨라고 한다
도산서원 본체다
도산서당이다 도산서웡이 생겨나기전 퇴계이황선생님이 후학들과 학문을 배우고 익히고 가르키던 곳이다                                                                          이곳의 현판글씨를 퇴계이황 선생님이 직접 쓰신것이라고 한다
도산서원앞 네그루 같이 보이는 한그루의 나무

교육을 마치자 마자 승용차에 올라 타고 월영교를 찍어 달렸다 이기서 약 15km 차를 타고 나서니 칠흑같이 어둡다 

가로등도 없는 좁은 국도를 한참 달리자니 후회가 막급 하다 이런길을 15km를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초행길이라 익숙치 못한 길을 캄캄한 야밤에 혼자 달려야 하니 너무 어렵다 

한참을 달려 월영교에 들어서서 촬영장비를 꺼냈는데 아뿔싸 삼각대가 덜렁 덜렁 도무지 고정이 되지 않는다

장노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삼각대가 엉망이니 촬영 엄두가 나질 않는다

왜 이럴까 그러고 보니 태국가서 야간 촬영하고 그 이후로 제대로 꺼내 점검 한적이 없으니 장비가 말을 듣지 않으니 

감도를 높여 손으로 들고 흔들림 없이 찍자면 조리개도 최대로 개방 하고 셔터스피드도 최대한 짧게 잡아야 할판이다

이래서 사진이 되겠나 싶다 그냥 야경 구경한것으로 만족 해야 할판이다 그렇게 사진 두컷 찍고 돌아 오자니 죽을 맛이다

숙소에 도착하여 벨을 누르니 먼저 들어와 씻고 자려던 사람들이 왜이렇게 늦었냐며 

걱정의 말을하는데 들은둥 만둥 씻고 이야기를 나눈다 모두 모르는 객지의 사람들이다 

별로 관심이 없는 이야기들이다 일찍 잠을 청한다 그래도 11시가 넘었다

새벽 5시50분에 잠을 깻다 

살금 살금 나와 연수원 앞에 서니 경치가 장관이다

얼른 씻고 짐을 챙겨 나와 전망대로 나가보기로 한다

우선 어제 본 호계서원을 들러 아침 식사전 전망대를 가보고 식사후 유교문화 박물관으로 가면 될터

아침 동이트기 전 안동호에 스며든 물안개가 일품이다

식사전 얼른 전망대를 다녀 와야 겠다 하여 올라간 영지산 전망대 그곳에서본 아침 풍경은

오랫동안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을듯 하다 너무나 아름 답다.

등산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고 난뒤 다음 일정은 유교문화 박물관관람과 도산서원 관람이다

 

2023년 근대기록문화조사원 보수교육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2023년 근대기록문화조사원 보수교육

2023년 11월 23일 ~ 11월 24일과 11월 30일 ~ 12월 1일 한국국학진흥원 및 도산서원, 민속박물관 일원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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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30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수 교육수행하기 위해 출발 했다.

버스편이 있었고 탑승차량도 정해졌지만 연수 후 안동의 월영교 야경을 보고 싶다는 갈망 때문에

승용차를 이용 하기로 했다.

사진을 접하고 카페나 블로그또는 사진 자료로 월영교의 야경 사진을 참으로 많이 보아온 탓으로 

월영교의 야경 보고 싶다는 부질없는 갈망이 솟아나 승용차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실제 가보니 쉽지 않다 피곤 하기도 하고 혼자 먼길을 운전하며 가는 것도 썩 좋은 일은 아니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도산서원가는 길로 한참을 달려야 하고 시내와는 많이 떨어진 외곽지였다

도착하여 보니 벌써 버스가 도착 했다 사실 버스 출발 시간 보다 훨씬 빨리 출발 하였음에도 

버스보다 오히려 늦게 도착 한 셈이다.

인문정신연수원에 짐을 내려 놓고 5층으로 올라가 참석자 출석부에 사인하고 교제를 받아 강의장 자리를

잡아놓고 점심 식사하러 내려 갔다 

점심식사는 오랫만에 먹는 단체급식으로 맛도 있고 깔끔하다.

식사를 마치고 강의를 시작 하기전까지 약 1시간의 여유가 있어 주변을 둘러 보기로 하였다 

약간 언덕진 곳으로 올라 가니 그곳에 오래된 고 가옥이 있다 

무엇일까 궁금하여 한참을 둘러 보니 호계 서원이다

호계서원은 본디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임하리 84-3번지 , 84-4 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 안동댐축조후 수몰지역으로  경북 안동시 퇴계로 2001-36(도산면 서부리 223-21)로

현재 한국국학진흥원옆으로 이전 하게 되었단다

 

호계서원 :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안동 지방의 대표적인 서원으로 1573년(선조 6) 지방사림들이 안동부() 동북쪽 여산촌() 오로봉() 아래에 있는 백련사() 절터에 여강서원()을 세워 퇴계(退) 이황()의 위패를 봉안하고 도학을 강론하였는데, 1605년(선조 38) 대홍수로 인해 유실되자 중창하였다.

1620년(광해군 12) 이황의 큰 제자인 서애(西) 류성룡(), 학봉() 김성일()의 위패를 추가 배향하였다. 1676년(숙종 2) 사액을 받고 ‘호계’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 월곡면() 도곡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 수몰지구로 197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네이버 지식백과] 호계서원 [虎溪書院]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호계서원을 둘러 보고 다시 한국국학진흥원의 유교문화 박물관과 세계 기록유산전시체험관을 둘러 보았다.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내일 또 관람 예정에 있기 때문에 겉 모습만 보고 강의장으로 들어 갔다

강의는 우선 휴대폰으로 촬영 하는 기법을 강의 하고 그리고 이어 촬영한 기록문화를 아카이브로 만들어

전달하는 기법을 강의 하였다 

강의 내용은 사진 촬영기법은 모두 아는 내용이고 수집자료 활용법과 공유 하는 내용에 대하여서는 

내가 할게 아니라 그런지 별로 관심밖의 일이다

4시간의 교육을 마치고 저녁 식사후 이어지는 강의는 근대기록문화조사작업에 관한 내용이고 

어떤것은 자료로 가능하고 어떤 부분은 안되는지 구분을 짓는 교육이라 예전에 들었던 강의와 같은 내용

그 보다 질의 응답 시간이 제법 길다.

연초 6백여명의 조사원이 시작 하였지만 내년에 활동 할수 있는 인원은 260여명 1기 조사원은 이미 자료를 모두 제출하여

자료수집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다

강의가 8시30분이 지나 마쳤다 

숙소는 연수원 객실을 이용 1실에 6명씩 배정이다 

6명이지만 연수원 객실내 방이 3칸이라 2명씩 방에 들어가 자면 되는데 

근대기록문화 조사 사업에 예산이 많이 깍여 내년도 활동건수에 제약을 많이 받을듯 하다

이야기 할머니는 예산안이 반영이 되었다는데 내년도 활동이 어찌될런지 

강의를 마친후 월영교를 가보기로 하였다

월영교 방문 소감은 뒤에 이어 갈참이다

 

2023년 근대기록문화조사원 
2차 보수교육 안내


▣ 보수교육 일정
  가. 일    시 : 2023. 11. 30.(목) ~ 2023. 12. 1.(금)
  나. 장    소 : 안동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퇴계로 1997번지 인문정신연수원)
  다. 준 비 물 : 패찰, 필기구, 노트, 세면도구, 여분의 수건
                      (보수교육 참여시 패찰 착용 부탁드립니다.)



▣ 보수교육 유의사항
  ○ 보수교육을 이수하지 않으시면 차년도 활동 인원에서 제외됩니다.
  ○ 지정된 교육일시는 변경이 원칙적으로 불가합니다. 
  ○ 코로나19 확진자 및 관련 자가격리 대상자, 유증상자는 사전에 별도의 
     연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보수교육에 관한 교육비, 교통비 등은 지원되지 않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 근대기록문화조사사업팀
전화 054-851-0950~0954 / 이메일 silver@koreastudy.or.kr

 



 

태국 연수여행을 가기 전 여행사에서 여행자보험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따로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였다

여행자 보험은 보험료가 1만 원 내외로 그다지 큰일이 있겠어하면서도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여행자 보험을 가입했다.

그런데 파타야에서 산호섬으로 이동하던 중 선착장에서 넘어짐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당시에는 무릎이 아프고 상처가 나 그걸 수습하느라 금방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한참 후 휴대폰을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다 보니 종전과 조금 다른 형상이다

휴대폰 액정에 줄이 가고 휴대폰이 휘어져 변형이 생겼고

또 휴대폰 뒤 붙여놓았던 케이스가 들떠 있다.

어떡하지 고민하다 여행자 보험에 수리비를 청구해 보기로 하였다.

여행자 보험으로 수리비를 청구하려고 보니 최대 20만 원까지 보상이 가능하다고 하고 

사고 경위서와 목격자 진술서 (해외 가이드가 직접 진술한 내용이 있어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준비하여야 할 서류가 보험사양식의 보험금 청구서와 보험금 청구를 위한 필수 동의서

사고 경위서, 피해품 내역서, 목격자 진술서 그리고 해외 가이드 목격자 진술서와 함께 가이드의

재직 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사고 접수 이후 챙겨할 서류들은

파손품에 대한 사진과 수리내역서(영수증) 그리고 통신사 가입 확인서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해외가이드는 외국에 있는데 어떻게 목격자진술서를 받고

또 어떻게 재직증명서를 발급받아 제출 하나 걱정을 하였는데 

여행사를 통하여 사정을 이야기하고 여행사를 거쳐 요청하였더니

이내 목격자 진술서가 메신저(문자메시지)를 통해 날아왔다.

이를 제출하였는데 제일 처음 해외가이드의 목격자 진술서와

재직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해서 암담하고 외국에 있는 가이드에게 무슨 수로 

목격자 진술서를 받나 또 무슨 수로 재직증명서를 발급받나 했더니 그게 모두 가능한 일이었다.

보험사에서는 제출된 보험청구서나 목격자진술서 등 서류를 보고 판단하여 진위여부를 확인하고

그리고 청구서에 대한 심사를 한 후 적법하다면 보상금을 지원하는데 

나는 해외여행을 계약한 업체에서 가입된 여행자 보험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가입이 되어 있고 내가 별도로 가입한 보험사가 있어 

손해 배상에 대하여 각 보험사에서 2중으로 지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보험금 청구 시 다른 보험에 가입이 되어 있는지를 체크하는 항목이 있어 체크 후

두 개의 보험사에 모두 보상금을 청구하였다.

최대 20만 원까지 보상이 되므로 내가 30만 원을 청구하더라도 20만 원 한도에서

각 보험사에서 10만 원 과 또 다른 보험사에서 10만 원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였지만

예상은 빗 나갔다.

그리고 개인 부담금이 1만 원이 있다고 알고 있었는데 이 개인 부담금은

자동차 보험의 자차 손해 보험을 가입할 경우 자기 부담금 20만 원이 있어 이를 지급하여야 

손해 보상금이 나오는 것처럼 자기 부담금이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실제 보상을 받아 보니 조금 다른 부분이 있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수리비로 264,000원이 청구되어 이를 카드결제한 영수증을 보험사로 제출하였는데 

보험금은 A사에서 132,000원이 지급되었고 또 B사에서 132,000원이 지급되어 

실제 한 곳에서만 보상받았다면 20만 원밖에 보상받지 못했을 것을

모르고 B사에 여행자 가입을 신청했다가 괜히 손해 본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실제 지급된 보험금을 보고 전액 보상된 것을 알고 나서야 

모르고 다른 한 곳에 더 가입한 여행자 보험이 신의 한 수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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