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개 다 가지면 행복하니??
- 이 글은 1억원씩 내고 그냥~ 읽어 보아도 아깝지 않아요! -

국민학교 다닐 때 아이들이 어찌나 많은 지 한 반에 보통 70명이 넘었다. 10반을 넘었으니 쉬는 시간에 운동장을
내려다보면 거짓말 안 보태고 새카맣게 보였다.

몇 학년 때인가 기억이 안 나는데 내 짝은 몹시 마르고 까무잡잡한 여자 아이였다.
짝은 도시락을 한 번도 가져오지 않았고 옥수수빵을 받아 먹었다.

그런데 그 빵도 다 먹지 않고 남겨서 가방에 넣는 것을 여러번 보았다.
연필이니 공책도 없을 때가 많았고 그림 도구는 아예 준비를 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 것을 많이 썼는데 정말 아껴서 잘 쓰려고 하는 것이 보여 반 쯤 쓴 크레용셋트와 도화지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그 애가 빵을 받아서 자리에 앉는데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내 도시락과 바꾸어 먹자고 했다.
그래도 되느냐고 하면서
짝은 너무나 맛있게 도시락을 비웠고 나는 옥수수빵을 잘 먹었다.

내가 짝에게 앞으로 종종 바꾸어 먹자고 했더니 그 애는 그렇게 좋아했다.
나는 그 시절만 해도 빵순이었고 옥수수 빵은 밥보다 훨씬 맛있었다.

아버지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저 미소를 지으며 밥을 많이 담아 가라고 할 뿐이었다.
다음 날도 바꾸어 먹었는데 그 애는 반 정도 먹고 남겨서 새까만 빈 도시락에 모두 담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고 집에 와서 아버지에게 또 미주알고주알 다 말했다.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짝이 어디 사느냐고 물었으나 나는 몰랐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되고 어느 날 아버지가 하굣길에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짝과 함께 나오던 길이었는데 아버지는 그 애 집에 가자고 했다.

짝은 무서워 하면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하며 울음을 터트렸다. 쌀밥과 빵을 바꾸어 먹은 일을 들켜 혼을 내는 것으로 생각하고 울음이 터졌다고 후일 그 애가 내게 말했다.

아버지는 무릎을 구부리고 앉으며 그 아이를
안아 주었고 우리는 함께 짝의 집까지 걸어 갔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고갈산 밑의 동네는 온통 루핑지붕 집이었고 생전 처음 가 보는 이상한 세계였다.

나는 못 들어가고 아버지만 들어 갔는데 한참 있다 나온 아버지의 손을 잡고 동네를 벗어날 때 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먼저 입을 연 아버지는
짝에게 잘해주라고 했다.
"니 나이 때의 아이라 한창 먹을 때인데 도시락을 반 남겨서 집에 가져 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지. 아버지의 그 이유가 궁금 했었어.

밥을 가져가서 저녁으로 먹는다면 그렇게 굶기는 부모는 못 쓰는 사람들인 것이야.
그런데 네 짝은 그 밥을 가져가서 물을 넣고 끓여 아픈 아버지께 죽을 끓여 드린 거야. 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어머니가 장사해서 겨우 먹고 사는데 아버지 끓여 줄 쌀 한 줌이 없는 것이야.

쌔까만 보리밥만 해먹으니 아픈 사람이 먹지를 못하는데 쌀밥 죽을 먹고 많이 원기를 채렸다고 하는구나. 심청이 못지 않은 아이야."

아버지가 짝의 집에
무엇을 해주었는지 나는 다 모른다.
짝의 어머니가 시장의 난전 한 곳에서 고정적인 장사를 하게 되었고
쌀가마니가 왔다고 그 애가 내게 울면서 말해서 알았다.

아버지는 그 애가 심청이 같은 효녀이기에 작은 도움을 주었다고만 했고
나도 그렇게만 알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알면 시끄러워지고 싸움이 나기 때문에
그런 일은 말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언제나 말하지만 우리집은 부자가 아니었고 때론 아버지의 자선은 지나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장사해서 남 다 퍼준다고
엄마가 대들면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두 개 다 가지면 행복하니?
곳간에 많이 쌓아 두면 더 행복하냐?
쪼끔만 나누어 주면 신간이 편한데 그것이 더 좋지 않니?"

쪼끔만 나누어주면 신간이 편하다...
신간이 편하다는 그 말의 뜻을 나는 요즘 알아가는 듯 하다.
두 개 가지고 있어서 행복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그 행복감이 주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두 개를 나누어 나는 한 개만 있게 되었는데
그 충만한 느낌은 두 배, 세 배가 되니 아버지가
왜 그랬는지를 이제야 알게 된다.

이북에 있는 조부모님이 집에 찾아오는 사람 그 누구도 빈 손으로 보내지 않았는데 한 번도 재산이 준 적이 없노라고 아버지는 늘 내게 말했다.

나누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준 이 유산이 내게는 무엇보다 귀한 유산이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저 습관이 되어 나눈 시간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

두 개 다 가져서 행복하니?
껄껄 웃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선명하다.

권영심(변호사)여사 글

* 남을 행복하게 하는것은 향수를 뿌리는 것 같다. 뿌릴 때는 자기에게도
몇 방울 정도는 묻기 때문이다.
'윈스턴 처칠'

* 열정은 성공의 열쇠 이지만, 나눔과 희생은 성공의 완성이다
'워런 버핏'

득도다조(得道多助)

ㅡ 孟子 ㅡ

강한 사람은
힘이 센 사람도 아니고,
지위가 높은 사람도,
엄청난 부를 소유하거나
학력이 높은 사람도
아닙니다. 
 
세상에서
가장강한 사람은
도와주는(助) 사람이
많은(多) 사람입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라도 도와주는사람이 많은 사람을 이기지는 못합니다. 
 
그 사람이 잘되기를,
쓰러지지 않기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많으면 그는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주위에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입니다.
 
맹자는 이렇게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 되기 위해서는
인심(人心)을 얻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만 도와주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득도다조(得道多助)’라고 합니다.
즉, ‘도를 얻은 사람은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
라는 뜻입니다.
 
평소에 남에게 베풀고
인간답게 살았기에 그가 잘 되기를 응원 해주는 사람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지요

여기서 ‘도(道)’란
사람의 마음입니다.
득도(得道)란 산에가서
도를 깨닫는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지도자가 ‘도’를 얻었다는 것은 민심을 얻었다는 것이고, 기업가가 도를 얻었다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평소에 주위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해 주었기에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평소에 사람의 마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 되어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과연 득도다조에 자신할수 있을까를 반성해 보면서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시작합니다.

■ "벼락부자"의 유래 ■

조실부모하고 친척집을
전전하던 순둥이는
부모가 남긴 논 서마지기 문서를 들고 외삼촌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변변치 못한 외삼촌이란 인간은
허구한 날 투전판을
쏘다니더니 금쪽같은 순둥이의 논 서마지기를 날렸습니다.

열일곱이 된 순둥이는 외삼촌 집을 나와 오씨네 머슴으로 들어갔습니다.
법 없이도 살아갈 착한 순둥이를 모진 세상은 끊임없이 등쳐먹었습니다.

죽어라고 일해 계약된 3년이 꽉 차자
오씨는 이런저런 핑계로
새경을 반으로 깎아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사또에게 고발하라고 했지만 순둥이는 관가로 가다가
발걸음을 돌려 주막집에서 술을 퍼마시고 분을 삭였습니다.

반 밖에 못 받았지만 그 새경으로
나지막한 둔덕산을
하나를 샀습니다. 골짜기에 한 칸짜리 초가집을 짓고
밤낮으로 둔덕을 일궜습니다.
“흙은 나를 속이지 않겠지...”

그는 이를 악물고 잡목을 베어내고
바위를 굴려내고
돌을 캐냈습니다. 한 뼘 한 뼘 밭이
늘어나는 게 너무나 기뻐
어떤 날은 달밤에 혼자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남은 새경이 바닥날 때쯤 한 마지기 남짓 일궈 놓은 밭에
조와 메밀을 심어 양식을 하고,

겨울이면 읍내에 가서 엽전 몇 닢에
남의 집 통시를 퍼 주고
그 똥통을 메고 와서 밭에 뿌렸습니다.

언 땅이 녹자마자 또다시 화전을
일구기를 5년...
둔덕산은 번듯한 밭으로 변했습니다.

그해 봄, 순둥이는 콩 세 가마를
장리로 들여와
밭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콩을 심는 데만
꼬박 이레가 걸렸습니다.

콩을 다 심고 순둥이는 주막으로
내려가 얼큰하게 술을 마셨습니다.

부엌에서 일하는 열아홉 살 주모의 질녀 봉선이를 점찍어 두고
가을에 콩을 추수하면 데려다 혼례를 올리겠다고 마음먹고
주모의 귀띔도 받아냈습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부슬부슬 밤비까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천지신명님!”

순둥이는 두 팔을 벌리고 비를 맞으며
하늘을 향해 큰 절을 올렸습니다.

단비는 땅 깊숙이 스며들어
흙 속의 생명들을
일깨워주었습니다.

이튿날은 언제 비가 왔냐는 듯이
하늘은 맑았고
남풍이 불어 대지를 따뜻하게
데웠습니다.

며칠 후 노란 콩 새싹들이
올라와 떡잎을 활짝 펼쳤습니다.

콩은 쑥쑥 자라 한 여름이 오기 전에
땅을 덮었습니다.
겨울마다 똥지게로 퍼 나른 인분 거름을 먹고 콩잎은 싱싱하게 팔을 벌리고 자랐습니다.

가을이 되자 콩잎은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고 포기마다
주렁주렁 콩들이 열렸습니다.

수확할 콩을 보면서 순둥이의
입은 귀에 걸렸습니다.

순둥이는 수확할 콩을 뽑아
둔덕 위에 쌓기 시작했습니다.

달을 보며 별을 보며 콩을 뽑고
또 뽑아도 지치지
않고 힘든 줄도 몰랐습니다.

“이모가 이거 갖다주라고 합디다.”

봉선이가 노란 저고리를 차려입고
한 손엔 막걸리 호리병,
또 한 손엔 찐 고구마를 들고 왔습니다.

“봉선아. 나는 부자여. 이 콩이
마른 후 타작을
하면 스무섬은 나올 거여.”

호리병째로 벌컥벌컥 막걸리를
들이켠 순둥이는
와락 봉선이를 껴안았습니다.

입이 입에 틀어막혀 말을 못 하고
손으로 토닥토닥
순둥이 가슴을 치던 봉선이 손이

어느새 순둥이 목을 감싸
안았습니다.

순둥이의 억센 손이 봉선이의
치마를 올리고
고쟁이를 벗겨 내렸습니다.

순둥이는 웃옷을 벗어 콩더미
옆에 깔고
홀랑 벗은 알몸의 봉선이를
눕혔습니다.

달빛을 머금은 스물다섯 순둥이의
구릿빛 등짝과 엉덩이가 물결치자

어머머~

봉선이는 가쁜 숨만
몰아쉬었습니다.


아아아
아아아악~.

순둥이는 마지막 큰 숨을 토해내고
헉~ 옆으로 쓰러지며
구수한 흙냄새를 맡았습니다.

어머니의 젖냄새 같기도 하고
아버지 등짝에 업혔을
때의 땀냄새 같기도 한 흙냄새!

흙을 한 움큼 쥐고
소리쳤습니다.
“봉선아, 이건 황금이여...”

옷매무새를 고쳐 입은 봉선이는
부끄러운 듯 빈 호리병을
들고 휑하니 가버렸습니다.

바닥에 깔았던 순둥이의 옷에는
선명한 붉은 핏자국이
아직도 비린내를 뿜고 있었습니다.

순둥이가 콩을 뽑아 차곡차곡
둔덕 위에 쌓아 올린
콩더미가 집채보다 컸습니다.

가을볕에 콩은 말라갔습니다.

콩깍지가 저절로 벌어질 때쯤 되면
멍석을 대여섯 장 깔고
타작을 하려고 준비하였습니다.

그런데 순둥이가 주막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짜자짜자 짱!”

하늘을 찢고 땅을 가를 듯이
마른번개가
네댓 차례 하늘을 갈랐습니다.

“순둥이 여기 있는가. 빨리 나와 봐.”

누군가의 고함 소리에
뛰쳐나간 순둥이는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멀리 둔덕에 쌓아 둔
콩더미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정신없이 순둥이가 달려가고
동네 사람들이
뒤따랐지만 마른 콩더미에 붙은
불길은 아무도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채 만한 콩더미를
시뻘건 불이 삼키고 있었습니다.

새까만 숯덩이만
남은 둔덕에서
순둥이는 울부짖었습니다.

“하늘도 나를 속이고,
땅도 나를 속이는구나!”

순둥이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옆에 선 봉선이는
눈물을 펑펑 쏟아내고
동네 사람들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순둥이는 목을 매려 했지만
봉선이가 입덧을 하는 통에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검은 두건을 쓰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채 옥색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노인 한 분이 주막으로 찾아왔습니다.

“벼락 맞은 콩의 주인장 계시오?
소문을 듣고 찾아왔소이다.”

순둥이가 나가자,
범상치 않은 그 노인은 새까맣게
탄 콩 한 자루를 쓸어
담아서 데려온 사동의 등에 얹었습니다.

“준비해 온 돈이 이것뿐이니
받으시오.
벼락 맞은 콩은 자고로 진귀한
명약이요. 내 이것으로
시험해 보고 다시 오리다.”

그가 떠난 후 받은 전대를 열어 본
순둥이는
깜짝 놀랐습니다.
콩 열섬 값은 족히 넘었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자,
소문을 듣고 팔도강산의 명의들이
쉴 새 없이 찾아왔습니다.

순둥이는 새까맣게 탄 콩
가마니를 쌓아 두고
찾아오는 의원들에게 팔았습니다.

벼락 맞은 콩은
욕창· 등창· 문둥병에
특효약이었습니다.

동짓달 스무 이레!

그날따라 봄날처럼 따뜻했습니다.

왁자지껄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큰 잔치판이 벌어졌습니다.

그날은 순둥이와 배가 살짝 부른
봉선이가 혼례식을
성대하게 치르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 사건 이후 순둥이가
일 순간에 벼락 맞은 콩을
팔아 부자가 된 데서 유래해

"벼락부자"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애비는 이렇게 살았다"
- 조정래 글 -


박통의 산업 경제 폭팔로
고급 외제 차에 주말 동남아 골프 관광 여행객이 수천 명씩 떠나는 어마무시하게 풍족한
나라가 되었지만...

불과 반세기 전에는 참으로
가난했던 나라입니다.

수출 경제로 얻은 것도 많지만
잃어버린 것도 많습니다.


☆지난날 우리들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학교 가는 길 중간중간 흙길이
조금이라도 좋은 구역은

신발 닳을세라 벗어 들고
맨발로 뛰던 검정 고무신 세대.


2.책은 보자기에 싸서
어깨 가로 묶음으로 하여
달리면 필통에서 달그락
소리가 났던 몽당연필 세대.


3.영양 부실로 두상에 마른버짐
꽃을 달고 다리에도 여기저기
헐미 자국을 갖고 살아온
흉터 자국 세대.


4.춘궁기는 거반 점심을
굶어 하교 길에는...

빼기, 잔대, 개구리 뒷다리,
천방뚝 뽀삐,찔레 순, 우렁이,
메뚜기, 새박우, 뱀딸기, 송구,
고염, 개멀구, 개복숭아,
머루, 다래, 참꽃...

하늘 아래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샅샅이 뒤져서 다 먹고
다닌 허기진 세대.


5.학질, 초점, 배앓이, 껄깨이,
지랄병, 천연두, 문둥병, 천식...

궁핍으로 이런저런 병을
겪었지만 바르는 약은
된장이나 개멀구 잎사귀,

먹는 약은 금계랍, 회충약,
그리고 바르는 약은 아까징끼로,
몹쓸 고질병을 겪은 세대.


6.춘궁기에 허기져서 미처
익지 않은 보리를 낫으로
조금씩 먼저 베어서 먹었던
보릿고개의 마지막 세대.


7.반찬이 없어 찬물에
식은 보리밥 말아먹은
마지막 백비탕 세대.


8.형제가 많고 밥은 적어
가마솥 누릉지도 서로
먹으려고 했던 개걸 세대.


9.1년 학교 다니면서 눈깔사탕
한 개도 못 빨아 먹고...

소풍날 사탕 하나 돌아가면서
빨았던 사탕 공동 빨 세대.


10.미군이 준 껌 하나를...

춘자가 며칠 씹고,
그 다음 말자도 며칠 씹고...

잠잘 때 벽에 붙여 놓았다가
다음날은 남동생들이
돌아가면서 씹었던...

츄잉껌 돌림빵 세대.


11.국수 한 그릇 준다면
잔치 일 돕고 모심기 일도
도와 주려던 세대.


12.친척 집에 가서도
밥 량이 모자라지만
밥 한 그릇 다 비우지 못하고
꼭 체면치레로
몇 숟가락 남긴 세대.


13.읍내 장 가서도 국밥
한 그릇 사 먹지 못하고
쫄쫄 굶고 집으로 별 헤면서
힘없이 돌아오던 세대.


14.미군 밀가루 포대로 옷
검정물 들여서 바지만 입었던
노팬티 마지막 세대.


15.참외 수박 살 돈 없어
보리쌀 혹은 감자 들고 가서
사 먹었던 마지막 낱알
물물 교환 세대.


16.석유 살 돈 없어서 소나무
관솔 불로 숙제 했던...

콧구멍 시커먼 관솔불 세대.


17.성냥을 다항이라고도
부르고 한 통 살 돈 없어서
성냥 낱알로 사서 쓰거나…

그도 돈 없으면 군불 아궁이에
밑불 무덤 만들어 사용했던
마지막 불씨 세대.


18.아침 세수는 앞개울까지
걸어 나가서 비누 없이 얼굴
씻고 이빨은 개울 고운 모래
중지에 묻혀서 딱던 마지막
모래치약 세대.


19.<섬마을 선생님> 라디오
연속극 들으려고...

동네 부잣집 머슴방에 먼저
자리잡으러 가던 라디오
공동 청취 세대.


20.추운 겨울 단백질 보충
위해서 햇불 들고 초가지붕에
잠든 참새잡이 하던 참새
단백질 세대.


21.추운 겨울 논 웅덩이가
꽁꽁 얼면 진흙 속에 잠자는
미꾸라지 잡으러 다닌 세대.


22.등하교 길은 보통 10리
20리 산길로 뛰어다니고,

마을이 멀고 해가 일찍 저물면
부모들이 호롱불 들고 산
고개길까지 마중 나와서
집으로 돌아간 세대.


23.등하교 길에 만나는 문둥병
걸인은 아이 간을 빼먹는다.

애총 무덤은 여우가 파먹는다.

상여 곳집에 피 묻은 귀신 나온다.

돌고개 마루에 늑대가 있다.

등교길 여기저기 귀신
이야기가 숨어 있어...

비록 어리지만 간 큰
아이들이 많았던 세대.


24.정월 대보름은 하루 전에
산에 올라서 달맞이 불 피울
소나무 쌓아 놓고 보름달
솟는 날은 불 피우면서,

"달 봐라!" 고함치며 소원 빌고
매곡, 괴정, 현애, 작녁골, 미질,
신양, 잘패

어느 동네 불이 가장 크고
잘 타는지 무언의 시합을
했던 마을공동 달맞이
불꽃놀이 한 세대.


25.흑세미, 붉은 당가루로
개떡 만들어도 별미로
치던 개떡 세대.


26.선보러 갈 때는 동네 아는
삼촌 양복 빌려 입고 갔던
마지막 양복 빌림 세대.


27.마을 형님 장가드는 날
새색시 보고 싶어 꼬맹이들이
색시 가마 넘어오는 돌고개까지
마중 나갔던 꽃가마 구경 세대.


28.첫날밤 새신랑이 새각시
옷 벗기는 것 구경한다고
올망졸망 문고리 잡고
들여다 보다가

신랑이 뿌리는 간장물
덮어쓰면 불 꺼진 색시 방에
청양초 불 때워 매운 연기로
신랑각시 괴롭히던
장난끼 세대.


29.브레지어 없이 젖가리개로
시집 온 세대.


30. 신혼살림은 변변한 옷장
하나 없이 미군 보루박스 혹은
비닐형 비키니 옷장과
사글셋방에서 시작한 마지막
사글세 단칸 신혼방 세대.


31.새신랑 매달아 놓고 발바닥
패던 초야 놀이 한 세대.


32.아버지가 장 가시거나
이웃 마실 나가시고
해 떨어져도 안 돌아오시면...

호롱불 들고 밤길 마중 갔던
마지막 호롱불 마중 세대.


33.부모님에게 말 대꾸 할 줄
모르고 어려서도 논밭에 나가
새끼머슴처럼 일하면서
늘 부모님 말씀 듣고
모시는 마지막 세대.


34.추석 성묘는 일가친척
다 함께 이 산골 저 산골 선대
산소 벌초 다니는 마지막 세대


35.부모상은 3일 밤낮을
곡을 하고, 빈소와 제사를
정성껏 모셨던 마지막 세대


36.가족을 위하여 일요일
특근도 서로 하려고 했고,

간식으로 나오는 빵을 동생들
주려고 먹지 않고 집으로
갖고 오던 공돌이 공순이 세대.


37.열악한 단칸방 연탄
난방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마지막
연탄 가스 절명 세대.


38.달랑 열차표만 들고
객지에 나와 첫날부터
잠잘 곳 못 찾아 헤매던,

출세를 위하여  무작정
대책 없이 고향 떠난 세대.


39.공부 잘하고 머리 명석해도
부모님에게 대학 보내달라고
조르지 못하고...

수출 단지 뒷골목 쪽방촌에서
방값 아끼려고 여러 명 한방에
같이 자취했던 마지막 쪽방 세대.


40.총알 쏟아지는
월남전쟁터를 쌀밥 원 없이
먹을 수 있다 하고,

살아 돌아오면 논밭 서너
마지기 살 수 있다 하여
겂없이 전쟁터로 간 세대.


41.그렇게 벌어서 아들 딸은
전부 대학 졸업시키고...

이제 쉬는가 했지만 수시로
손자 손녀 돌보미로 살아가는
마지막 국졸 세대.


42.일평생 일해서 도시에
마련한 아파트 한 채마저
자식들 위해 팔고...

다시 그 궁핍했던
고향마을로 낙향해서 다시
농사짓다가 쓰러지면...

아들 며느리의
고급 외제 차에 실려서
더 머언 요양원으로 가서...

매일 요양원 진입로
멍하니 바라보다가...

언젠가는 눈물로 세상을
떠나는 쓸쓸한 외톨이
노인은 임종하리라!

*글쓴이 : 조정래

야유 속에 한 사람의 포옹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흑인 최초로 입성한
야구선수 재키 로빈슨은 1947년 신인왕에 올랐고
세 번째 시즌에서는 MVP에 뽑히기도 했으며
데뷔 50주년이 되던 해에는 미국 프로야구 모든 팀이
그의 등 번호였던 42번을 사용할 수 없게
영구 결번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과거 엄청난 인종차별을 겪었는데
1947년 5월 14일 브루클린 다저스 선수였던 그는
신시내티 레즈 팀과 원정경기를 갖게 됩니다.

상대 투수는 그에게 몸에 맞는 공을 던졌고,
타석에서 1루에 갈 때는 상대 팀 1루수의
발길질과 폭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특히 관중들은 그에게 살해 협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고, 경기장에 나선
그를 향해 무지막지한 욕설과 야유를
계속 퍼부었습니다.

경기장은 폭동이 일어나지 않을까 할 정도로 
최악으로 치닫게 되어 경기를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때 다저스 유격수인 피 위 리즈가
자기 자리를 떠나 1루수의 재키 로빈슨의 옆에 가서
글로브를 벗고는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를 끌어안았습니다.

둘은 가볍게 웃으며 담소를 나누었고,
적대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던 경기장은
한순간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수많은 미국인이 지켜보는 앞에서
백인 피 위 리즈가 흑인 재키 로빈슨을 끌어안은
이 사건은 미국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훗날 재키 로빈슨은 이때를 회상하며
자기 어깨를 감싸준 피 위 리즈의 팔이
자신의 인생에서 희망을 줬다고
고백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은
타인에게는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작아 보인다고 해서 주저하거나
포기하면 안 됩니다.

한 사람의 헌신적인 사랑이
세상을 좀 더 빨리 바꿀 수도 있습니다.
사랑은 전하고 나눌수록 더욱 커진다고 합니다.
하지만 전하지 않고 나누지 않고
자신의 손안에 꼭 쥐고만 있는 사랑은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은 자신 이외에 다른 것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렵사리 깨닫는 것이다.
- 아이리스 머독 -

큰 소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

 




인생에서 소망을 가지고 성실히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소망이란 몸속에 흐르는 피와 같아서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상대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문으로 들어가는 모든 자들은 소망을 버리라'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문에 쓰여 있는 글귀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늘 밝은 내일을 그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희망적인 소망을 품은 사람이 큰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큰 그릇에는 많은 물이 담기듯이
소망을 크게 품을수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어
값진 결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는 유일한 실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결코 무한한 소망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 마틴 루터 킹 -

동촌 강변 둑길
싸늘한 날씨
족구장에 갔다 시간이 일러
둑길을 걸으며 사진을 찍는다.
3월말 벚꽃이 그렇게도 화사 하더니
초록의 나무 잎파리는 노랗게 물들어 간다.
이 길을 마사토로 덮고 맨발로 걷는 길을 만든다고 
지역 국회의원이 마치 자기가 선심써 
얻어낸 예산안 인냥 현수막을 크게 걸어두었다
썩어빠진 정치꾼들 일좀 제대로 하고
쓸대없는 현수막 거는 헛짓거리 좀 안하면 좋겠다
정말 서민이 무얼 원 하는지 가려운곳
제대로 긁어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할 수 있다



1995년 미스 아메리카 결승전 무대에서
당시 21세로 대학생이었던 '헤더 화이트스톤'은
청각장애인으로 사상 최초로 우승자로 선발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우승을 확신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지금 이름이 호명된 사람이
자신이 맞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녀는 생후 18개월 때 감염증으로 청력을 잃었는데
이후 헬렌 켈러를 본보기로 삼고 학교 공부에
매진하던 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일반 학교에서는
또래보다 뒤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에서 학업과 발레를 병행하며 노력했습니다.
이후 잭슨빌 주립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미스 앨라배마 대회에 참가했다가
두 번 모두 2등에 그쳤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인 '화이트스톤'을
정확하게 발음하는 데 6년이나 걸렸는데,
그런 노력이라면 미스 앨라배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세 번째 도전 끝에 그녀는 미스 앨라배마에 뽑혔고,
1995년 앨라배마 대표로 미스 아메리카 대회에
출전해 우승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냐고 물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살면서 어머니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할 수 있다(Yes, I can)'는
말이었습니다."





인간의 의지는 형체도 없고 무게도 없고
물리력도 없지만 무엇보다 강력한 힘을 가졌습니다.
부정적인 의지보다 긍정적인 의지가 있다면
훗날 긍정적인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 오늘의 명언
인생은 될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대로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산다.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한다.
- 조엘 오스틴 -

옷핀의 발명



뾰족한 핀을 둥근 머리로 감싸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안전핀은 거의 모든 집의
책상 서랍이나 반짇고리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물건입니다.

세계 어디서든 흔하게 찾아볼 수 있는 이 안전핀은
1845년 월터 헌트(Walter Hunt)라는 사람이
53세에 발명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헌트는 자신이 발명한 안전핀이
이렇게까지 대박이 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 특허권을 WR GRACE라는 회사에
400달러에 팔았다고 합니다.

당시 400달러면 지금으로 따지면 1,300만 원
정도의 가치인데 지금까지 안전핀으로
벌어들인 돈과 비교하면 너무도 작은 가치입니다.
그래도 헌트는 그 일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미국 최초로 재봉틀도 발명했지만
바느질과 옷 수선으로 먹고사는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봐 재봉틀의 특허를
포기한 전력도 있다고 합니다.





소중하면서 신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들과
소중하지 않지만 빠른 결단을 요구하는 것들이
때로는 혼잡하게 엇갈려 눈앞에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소중한 것을 볼 수 있는 눈과
그것을 위해 결단하며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당신 자신의 가치를 알 때
결정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 로이 올리버 디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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