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야화 황진이(제1화)

 
 

올해(1535년)로 명월(明月 : 황진이 妓名)이 스무살이 되었고 기생 된지 만5년이 되는 해다.

명월은 어느새 송도(松都·개성)를 넘어 한양의 사대부와 한량들에게까지 입에 침이 마르도록 회자 되었다.

상림춘(上林春), 관홍장(冠紅粧), 소춘풍(笑春風) 등과 명월이 당대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명실상부한 명기(名妓) 반열에 올랐다.

그 중에서도 명월이 단연 빼어난 미모와 경국지색의 아우라(Aura·고고한 분위기)에 시·서·화·노래·춤·시조 등에 뛰어났으며

고려의 맥을 잇는 거문고의 명인으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고 있다.

나라의 이름난 한량 등과 풍류를 즐기는 고관대작들도 명월과 풍류를 즐기려고 송도로 발길이 바쁘다.

하지만 명월과 만리장성을 쌓으며 화촉동방의 기회를 얻기란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보다도 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개성 유수를 통해 기회를 잡으려는 눈치 빠른 인사들도 있었다.

당시 개성 유수는 이귀령(李龜齡·1482~1542·字 미지(眉之))이다.

미지는 문정왕후(文定王后·15011565)의 외삼촌으로 여러도에 관찰사를 거쳐 사십대 초반에 개성 유수로 부임하였다.

풍류를 즐기지만 그에겐 어린 동기(童妓)가 있어 명월에게 무리한 접근은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방 토호(土豪)세력을 대하듯 서먹서먹하게 분위기를 잡았다.

그런 와중에 소세양(蘇世讓·1486~1562) 애기가 나왔다.

“내 오늘 너를 보자 한 것은 간곡한 부탁이 있어서다.”

명월은 유수의 부탁이란 말에 짐짓 놀라는 표정을 억지로 숨기며

“예, 유수대감! 무슨 말씀이신지 하명 하시지요...”라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율시(律詩”한시의 한 종류)로 명나라와 일본 사신을 영접하여 문명을 떨치시고 특히 대명외교에 성과를 올려 임금의 총애를 받으시는 분이셔...

송설체(松雪體)에 뛰어났으며 효자에다 풍류에도 남달라 화담(花潭:서경덕 호) 스승을 뵈러온다고 했으나 실은 명월의 화려한 소문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내려오셨어...“

유수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양곡(陽谷:소세양 호)을 치켜세웠고 목이 타는지 자작으로 술을 따라 단숨에 마신 후

“너도 한 잔 하려무나.”라고 말한 후 스스로 따라 술잔을 건넸다.

“아니옵니다. 소녀는 괜찮으니 나머지 말씀을 다 하시지요!” 도도한 태도다.

개성 유수관아(官衙)에서 이토록 허리하나 굽히지 않고 제 말을 다하는 기생을 처음 본 유수는 적이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소문대로구나... 참으로 네가 곱구나! 하늘에서 잠시 휴가 내려온 선녀(仙女) 같구나!

내 팔도를 돌아 풍류를 즐겼으나 너 같이 재색(才色)이 뛰어난 여인은 처음 봤느니라!

역시 한양은 물론 중국의 사신들까지 송도를 꼭 들르려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유수는 입술이 마르는지 다시 술을 한 잔 더 마셨고 말과는 반대로 유수의 독사 눈초리가 명월의 아래위를 통째로 삼킬 듯 훑었다.

하지만 명월은 그런 정도의 시선엔 미동도 하지 않았으며 어서 본론이나 말하란 눈치다.

“사실은 양곡대감께서 명월 너에게 한양 선비들과 내기를 하셨데...

너와 30일을 지내는데 단 하루라도 더 있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약속을 했다는 거야! 어떻게 하려느냐?”

겨우 말을 마친 유수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고 명월을 보자 욕심이 생겼을게다.

양곡을 소개하다 보니 본인이 먼저 잠자리에 들고 싶은 음심이 발동하여 아랫도리가 팽팽하여 졌을 것이다.

명월은 사내들의 표정을 보고 몸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를 어미가 젖먹이의 동태를 보듯 들여다보고 있다.

지금 유수의 옥경(玉莖)이 팽창되어 침을 흘리고 있으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양곡 대감께서 언제 오신다는 것인가요?”

바다속 같은 침묵이 찰나적이지만 견디기 어려워 명월이 말을 꺼냈다.

“벌써 이곳에 와 계시지. 지금 당장 뵐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시죠! 그런데 이곳이 아닌 명월관에서 모시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게...”

개성 유수가 일개의 기생에게 대하는 태도가 아닌 저명 여류문인을 대하듯 깍듯한 예우다.

명월이 유수가 내준 가마를 타고 명월관으로 와서 준비에 들어갔다.

역시 명월은 평소대로 차림새고 명월이 명월관에 도착하자 양곡도 들이 닥쳤다.

한양까지 이름이 자자한 시기(詩妓) 명월을 촌음이라도 빨리 보고 싶은 것이다.

“과연 명월이구나. 하늘에 높이 떠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명월, 그 명월을 내 앞에서 직접 보니 눈이 부시구나!”

양곡은 명월을 두 동공에 잡아 두려는 듯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양곡 대감! 소녀 앉아도 될는지요?”

양곡은 그 사이에 지필묵을 준비하여 시를 쓰고 있었다.

“너의 집인데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나는 객이 아니더냐?”

풍류의 달인 양곡은 역시 달랐다.

“내 너의 '반달'이란 詩를 쓰고 있느니라.”

누가 곤륜산 옥을 깎아 내어/ 직녀의 빗을 만들었던고

견우와 이별한 후에/ 슬픔에 겨워 벽공을 던졌다오.

송설체의 대가답게 힘이 있고 아름답게 티 하나 없는 박속같은 한지에 썼다.

“소녀도 양곡대감의 詩를 외우고 있습니다."

모랫벌에 뜬 달을 사랑하나니/ 한밤에 술잔 멈추고 앉아보네

강물은 씻은 거울처럼 밝게 비치고/ 은하수는 구름 한 점 없구나

울어대던 귀뚜라미 소리 그치고/ 아득히 들려오는 학의 울음

맑고 텅빈 기운타고 따라오는 듯한데/ 먼지 긴 속세는 멋대로 어지럽네?

명월은 거문고를 타며 양곡의 詩를 천상의 목소리로 낭송하였다.

옥골선풍(玉骨仙風)의 양곡 얼굴에 무지갯빛의 웃음이 피어났다.

“역시 명월이구나! 내 하늘에 있는 명월을 품을 수 있다니 내 인생에 절정이로다!”

양곡은 두 팔을 벌려 명월을 뜨겁게 안았다.

쌍나비 등잔의 불을 끄고 얇은 비단 속적삼도 벗고 비녀를 뽑아 머리를 풀어 화장끼 없는 얼굴 모습을 드러냈다.

창문으로 은빛 달빛이 들어와 그녀의 나신을 더욱 신비롭게 빛냈다.

명월은 양곡의 열손가락을 활짝 펴 척추와 등을 부드럽게 쓸어안았고 사내를 깊이깊이 받아들였다.

양곡은 명월의 사타구니를 덮은 소담한 체모를 쓸며 꽃(여음)을 토닥이었고 그 속엔 이미 사내를 맞을 꿀이 흐르고 있었다.

그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땐 따가운 가을햇살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뒤엉켜있는 벌거숭이를 내려 쬐고 있었다.

- 2화에서 계속 -

 
 

탐욕에서 벗어나자

 




뉴스를 보면 돈이나 외모, 지위와 명예 등에
큰 가치를 두고 현재의 삶에는 만족하지 못해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탐욕입니다.

탐욕의 끝은 더욱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환상에 빠지게 해서
우리의 삶을 비극으로 끝나게 한다는 걸
늘 명심해야 합니다.

탐욕은 마치 도미노와 같은데
간단하게 시작할 수 있지만 절대로 멈출 수 없고,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트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그럴 가능성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탐욕은 수많은 열매를 맺는 불행의 씨앗과 같습니다.
탐욕은 갈증을 낳고,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고
더 중요한 것을 놓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나친 욕심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 오늘의 명언
욕심의 반대는 욕심이 없음이 아닌,
잠시 내게 머무름에 대한 만족입니다.
– 달라이 라마 –

작은 성벽



공자는 춘추시대의 유학자이자 유교의 창시자로,
그의 사상은 중국 역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그에게도 큰 깨우침을 주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마차를 타고 외출하던 중
아이들이 길에서 성벽 쌓기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차가 가까워져도 아이들은 놀이를
계속할 뿐 도통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쌓아둔 성벽에 길이 막히자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한 아이에게
궁금해 물었습니다.

"너희들은 마차가 오고 있는데
왜 길을 비키지 않느냐?"

그러자 소년은 의아한 눈빛으로
공자에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마차가 성벽을 돌아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마차가 지나가기 위해 성벽을 부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때론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합니다.
이때 다양한 방법으로 이겨내고자 노력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기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도 이런 순간이 찾아왔다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쉽게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살다 보면 우리의 삶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그것을 피하고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문제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 파울로 코엘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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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친구 | [포토친구] 퇴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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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친구] 퇴근길 (daum.net)

 

[포토친구] 퇴근길

퇴근길 날이 조금 길어졌나 보네요. 지난 겨우내 퇴근길은 깜깜하게 어두워 잘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날이 조금 길어져 들녘을 볼 수가 있네요. 겨우네 동안 다끼들에는 시설 재배 시설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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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친구] 퇴근길

입력 2024. 2. 21. 19:00
 

퇴근길 날이 조금 길어졌나 보네요.

지난 겨우내 퇴근길은 깜깜하게 어두워
잘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날이 조금 길어져
들녘을 볼 수가 있네요.

겨우네 동안 다끼들에는 시설 재배 시설이
많이 늘어났네요.

최근 하우스 안에서 시설재배를 하면
재배도 쉽고 수확도 쉬우며 관리가 편하긴 한데
시설 투자비가 많이 들고 태풍과 폭설 등 자연재해 때는
피해가 극심할 수 있어 농가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시설 재배가 많이 늘어 나는 추세 인가 봅니다.

부쩍 많이 지어진 농가 시설 들을 보며 퇴근길에 한 컷 찍어 봅니다.


사진가 藝河옆지기淸雲

Copyright© 포토친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봄이 맞네
꽃이 핀걸 보니
날씨도 봄이네
근디 봄이 오니. 사는게 서글프게 생각되네
또 새봄을 맞고 또 가는 세월을. 아쉬워하고
이렇게 하루 하루 늙어간다는 생각이 드니
참 많은 봄과 여름 가을 겨울을 지냈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해 지네 ....
1등의 역사



1953년 5월 29일, 존 헌트 대령이 이끄는
영국 9차 원정대 소속 2차 정상 등반조가
8,848미터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르고 있었습니다.

359명의 셰르파(네팔의 산악 인도인)들이
10톤 이상의 장비와 식량을 운반하는 대규모 원정대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날 오전 11시 30분,
뉴질랜드 양봉가 출신 산악인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가이가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오전 11시쯤 정상 바로 밑에
먼저 도착한 것은 텐징이었습니다.
텐징은 마음만 먹으면 최초 등정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텐징은 지쳐서 뒤에 처진 힐러리가
올 때까지 정상 바로 아래서 30분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힐러리가 먼저 정상을 밟았습니다.
그 후 텐징은 딸이 준 색연필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묻었습니다.

힐러리는 처음에는 팀으로서
함께 정상에 올랐다고 말했지만,
훗날 이 사실을 밝혔습니다.

텐징은 셰르파의 역할을 벗어나지 않고
힐러리가 에베레스트를 먼저 정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던 것입니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라는
광고 문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2등이 있어야
1등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위대한 2등, 3등과 같은 사람들이
오늘도 꿋꿋이 험한 길을 뚫고 가기에
1등의 역사가 이뤄집니다.


# 오늘의 명언
명확한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장 험난한 길에서 조차도 앞으로 나아가고,
아무런 목적이 없는 사람은
가장 순탄한 길에서 조차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토머스 칼라일 –

손학규 정치인,
그는 김영삼 대통령에 이끌려
정치를 시작했다.

그가 국회의원일 때
국회 출입기자들의 예상 투표에서
차기 대통령 감으로 부동의 1위였을 만큼 역량을 평가받은 정치인이었다.

이런 그가 무슨 연유인지 주사파 종북으로 물든 좌파 정당에 발을 담그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대열에 끼어 정치를 했다.

이런 손학규 정치인이 현 시국을 향해 양심의 지성을 담은 글을 내놓았다.

이게 지성의 큰 변화인가 좌파 몰락의 징후인가!

손학규님의 증언 !!

●전두환 前대통령에 대해서 국민이 무슨 용서 운운할 게 없고
정말 그 당시는 태평성대였음에
대다수 국민들이 감사하고 있어요.

●그런데 뭘 사과합니까?
왜 사과합니까?

●광주시민이 부마사태처럼 평화적 집회와 시위를 했습니까?

●광주는 무장폭동이며 민주화운동이 절대 아닙니다!

●예비군 무기고 44개 탈취해서 소총 5000정, 실탄 10만 발, 수류탄과 다이나마이트 2톤을 탈취해 가지고
광주교도소 5차례 습격,

20사단 지휘부 차량 기습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했던 무장 폭도들을
정부군이 진압 안 하면 누가 합니까?

●무장폭도 反정부군에게 정부군 대통령이 왜 사과해야 하는지 국민들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통합이란 단어를 남용하는데
광주무장 봉기와 진실을, 그리고 가짜 나이롱 유공자 약 6,000명 공적을 공개해서
거짓된 잘못을 바로잡은 다음에 국민통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전두환 前 대통령의 서거에 조문 여부를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정치인들의 졸렬한 작태에 대하여
울분이 치솟는다!

◑죽음은 모든 것이 종료되고 끝나는 일이다.

그런데 전직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조문을 두고
살아있는 자들간에 왜 이렇게 잡음이 많은가 싶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매우 씁쓸하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명색이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다.

보라!
부정한 일로 수사를 받다 자살한 대통령과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수사를 받던 중 자살한 국회의원,

심지어 부하 여직원에게 추잡한 성추행을 했다가 발각되어 자살한 시장까지
세금으로 국가에서 분향소를 차려주고

국가에서 주관하여 장례를 치렀다.

그런데 전두환 대통령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말이 많은가?

이미 가족들이 조용히 가족장으로 치르겠다고 했고,
소박하게 북한이 보이는 전방고지에 백골로 남겠다고
유해를 전방에 뿌려달라고 유언까지 남긴 군인다운 말을 하지 않았는가?

국립묘지에 자리가 없다고 해도 생떼를 쓰며 묻힌 자도 있지 않는가?
인간의 삶에는 누구든지 功過가 있다.

종족 수천만을 죽인 모택동에 대해서 권력자 등소평은
“어느 지도자든지 功過가 있다.”라고 모택동의 과실을 덮었다.

중국 속담에 “원수는 3代를 두고 복수하지만, 父母喪에 조문을 하면 그 복수는 없어진다.”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역사가 권력을 쥔 자의 것이라 해도
죽음에 대해서까지 권력을 휘둘러 대는 짓은 참으로 소견머리도 좁고, 분별력도, 事理도
모르는 자들의 짓거리 같아 서글프기에 앞서
울화통이 터진다.

소위 정치한다는 자들이 어느 놈들 눈치 보고
조문을 하네, 안 하네 하며 먼지보다 더 가볍게 처신하는 졸렬한 짓거리들을 보고,
사람이 저렇게 사는 것이 제대로 된 삶인가 싶어 서글프다.

조문도 자기 소신대로 못하는 자슥들이 정치하는
자들이며 살아 있는 자들인가?
그 자들는 이미 죽은 자들이다.

보수우파를 자처하는 자들이 어찌하여 좌빨들이
내리는 평가에 따라서 움직이는가?

현실적으로 이랬던 저랬던 한 시대를 지도했던
지도자의 죽음을 두고 산 자들이
시혜를 베푸는 듯한 짓거릴 하는 것을 보면서 한심함을 느낀다.

우주에서 본 지구는 티끌에 불과하고,
티끌 속에 대한민국, 그 중에 서울 여의도,
그 중에 보수우파라 지칭하는 정치꾼 개새끼들,
그것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느낄 것이다.

전두환 하면 철권, 강권 정치로 이미지가 덧쒸워져 있지만 그건 민주팔이, 호남팔이들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다.

그 당시 자영업자들의 돈통에 돈이 흘러 넘쳤고, 기업들의 생산라인은 쉴새 없이 돌아갔다.

정치는 국회에 맡기고 전두환은 유능한 경제학자들을
불러 조언을 듣고 민생 경제에 최선을 다한 결과였다.

문재인과 그 측근들의 정치는 정치에 관한 한
전두환의 발바닥 때만큼도 안 된다.

단칸방 팔아 직원 월급 주고 한을 품고 자살한 자영업자의 죽음을 초래한 문재인의 정치와는
극과 극이다.

그 당시 '자영업' 하면 호남인들인데
그 당시 호남인들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전두환만 같아라"는 말이 돌았을 정도였다.

이러니 무능과, 폭정밖에 모르는 민주팔이들이
윤석열의 이 발언에 부들부들 떨 만하다.

거두절미 하더라도 윤석열의 발언은
조금도 흠잡을 게 없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는 민주팔이들에 비하면 역시 정정당당, 소신 있는 윤석열만이 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문재인이 임명한 검찰총장이었지만 문재인의 목에
서슬퍼런 칼을 겨눠 그들의 불법 부당함을 처단한
윤석열다운 쾌거였다.

칭찬받을 만하다. 윤석열 뒤만 졸졸 따라다니며
어깃장 놓는 구태, 퇴물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은 진짜 정치와 경제는 잘했다.

물가안정, 집값안정, 경제안정. 5.18사태도 정권 바꾸어 놓고 다시 재조명해야 한다.

5.18사태를 왜 전두환 대통령에게만 죄를 묻는지 모르겠다.
전두환의 업적에 대해 다시 정리해 봐야 한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 시기는 근세 들어 가장 살기 좋은 시대였다.

물가는 안정되었고, 경제는 성장하였으며, 사기꾼, 조폭 등 민생 범죄는 보기 어려운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렸다.

집값도 안정되어 새 집을 사면 오히려 집값이 갈수록 하락해 너도나도 전세를 선호하던 시대를 만든
장본인이 전두환이다.

집권 과정에 일어난 정난(靖難)은 수습을 잘하여 국정을 안정시켜 북괴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던 요인은 5.18폭동을 강력하게 진압한 전두환 때문에
북한이 특수군 추가 파병을 포기 했다고 탈북자들은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언젠가는 민주화 운동으로 포장된 5.18폭동의 진상을
규명해 주동자 색출과 배경을 밝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터무니없이 비밀리에 만든 5.18유공자,
국민의 혈세에 빨대 꽂고 피를 빠는 유공자 집단에 대한 정밀 조사와 지급된 세금의 환수도 고려해야 될 과제다.

전두환 대통령의 업적을 살펴보자.

1. 박 대통령 시해사건 깔끔하게 수사
2. 국보위 설치로 국난 극복
3. 삼청교육대 설치로 사회악 일소
4. 연좌제 폐지
5. 구속적부심사 부활
6. 야간통행금지 폐지
7. 칼라TV 시대 개막
8. 프로야구 개막
9. 프로축구 개막
10. 교복 자율화 시행
11. 해외여행 자율화 시행
12. 86아시안게임 유치
13. 88올림픽 유치로 국가위상 제고
14. 북괴가 제공한 수해물자 수령
15. 평화의 댐 건설
16. 최초 평화적 정권교체 실행
17. 물가안정
18. 교육혁신과 문화창달
19. 과학기술 진흥
20. 국방, 외교역량 강화
21. 영종도 신공항 건설(인천공항)
22. IT산업 육성 발전
23. 임기 단임제 시행
24. 청탁배격 운동
25. 9~12% 경제 성장율 지속
26. 동구권 외교 수립
27. 전 국민 의료보험 확대실시
28. 사교육 금지
29. 중소기업 육성
30. 부동산 안정


☞손학규씨는 진보좌파 정치인인데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쏟아진다니 놀라운 일이다.

참 통쾌 상쾌하고 진정한 明察이다.

<받은 글>

😂 나는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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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아는 벗!🌷

삶을 살아가며 벗으로 아는 사람은 많아도
마음을 아는 벗은 얼마나 되겠는가?

주봉지기천배소 酒逢知己千杯少
화불투기반구다 話不投機半句多

"막역한 친구와의 술은 천 잔도 부족 하고
말섞기 싫은 사람의 말은 반 마디도 많다"

열매를 맺지 않는 꽃은 심지 말고
의리 없는 친구는 사귀지 말라 했다

서로 술이나 음식을 함께 할 때에는
형님 동생이니 자네와 나라 하는
친구가 많으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에
도와 줄 친구는 별로 없느니라

길은 멀어도 찾아갈
벗이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기별 없이 찾아가도 가슴을
가득 채우는 정겨움으로 맞이해 주고

이런저런 속내를 밤새워 나눌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인생이 아니겠는가?

부부간이라도 살다 보면
털어 놓을 수 없는 일이 있고
피 나눈 형제라도 말 못할 형편이 있는데

함께 하는 술 한잔 만으로도
속마음이 이미 통하고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마주하면 내 심정을
아는 벗이 좋다

좋고 성공할 때
이런저런 친구가 많으나

힘들고 어려우면 등 돌리고
나 몰라라 하는 세상 인심인데

그래도 가슴 한점 툭 털어
내놓고 마주하며

세월이 모습을 변하게 할지라도
보고 싶은 얼굴이 되어

먼 길이지만 찾아갈
벗이라도 있으면 행복하지 않을까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고 사랑가득한 하루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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