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사진공부방 글을 옮겨 왔습니다

(5) 사진의 제도화 과정

사진은 탄생 이래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인기를 얻고 현대문명을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원의 대열에 올라 사회적인 요구에 따라 폐쇄된 공간에 사진관이 자리 잡게 된다. 화가의 작업실인 아틀리에를 본떠 만든 것이다. 당시 사진관은 매우 소규모의 사업이었으나 예외적으로 런던의 클로테, 뉴욕의 브래디의 사진관, 보스턴 사진관은 수백 명의 종업원을 둘 만큼 사진관의 시전으로 휘황찬란함을 과시했다. 제작된 사진들은 세련된 기술과 직관적인 감각, 광선 등 생명력이 넘치는 사진들로 영국, 미국 등 유럽 전역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프랑스의 나다르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유명인이 된 증명이기도 했다. 문필가, 사업가, 작곡가, 언론인, 정치인, 배우 등 유명 예술가 지식인 계급을 중심으로 부유한 상류계급을 고객으로 삼았다.

1870년 유명 인사를 찍은 최초의 인물사진집 “판테온 나다르”를 출판했으며 1874년에는 인상파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었다. 또한 아돌프-외젠 디스테리 사진관은 파리에서 가장 큰 규모로 매장, 액자 공방, 촬영용 대형테라스, 휴식을 위한 공간 등을 갖추고 1854년 11월 개인전과 “명함판 사진” 특허권을 얻어냄으로써 그의 야심은 충족되었다. 명함판 사진의 열풍은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갔으며 빅토리아 여왕, 나폴레옹 3세, 링컨 대통령, 앨버트공 사진 등 유명인의 사진이 수십만 점씩 팔려나가고 사적인 기능을 넘어 “군중과 유명인” 사이의 중개 역할을 했다.

초상화가 일부 특권계층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것과는 달리 사진은 점점 대중화되고 1840~1850년대 파리에서는 초상 사진관이 100관 이상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진관이 개업 되지 않던 소도시에서는 순회하는 사진사들이 등장하여 사진관 및 암실을 겸용하는 마차를 끌고 지방 신문에 자신이 나타날 것을 선전하기도 했다.


↘ 사진가 나다르가 찍은 빅토르 위고 사진
<참고 1>
초상 사진의 거장 나다르(Nadar)는 그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사용한 예명이며, 본명은 가스파르 펠릭스 투르나숑(Gaspard-Felix Tournachon)이다.

(6) 다게레오 타입과 카로 타입

다게레오 타입과 카로 타입은 초기 사진술의 대표적인 기법으로 제작 방법과 완성된 사진에서도 차이점이 많다. 다게레오 타입은 프랑스의 다게르가 완성시키고 카로 타입은 영국의 톨벗이 1840년 완성한 사진술이다.

다게르의 사진술에 대한 공인은 그에게 명예와 경제적 성공을 가져온 결정적인 사건으로 그의 야망은 뿌리를 내렸으며 전망을 확고히 했다. 다게레오 타입의 처음 사진 제작 시간은 20~30분 정도 걸렸기 때문에 피사체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점이 촬영하는 데에 필수 조건이었다. 따라서 초기 사진들은 정물 사진이 대부분이었으며 초상사진들은 대부분 고통스러운 표정과 경직된 사진들이 대부분이다. 1843년경에는 1초에서 2분 정도로 촬영 시간이 단축되었다.

다게르가 편찬한 지침서에는 39쇄 정도 펴냈으며, 책은 6개월에 9,000부가 팔려나갔고 18개월 동안 8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사진만을 다루는 최초의 사진 전문 잡지가 1850년 11월 “더 라게리안 저널”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다게레오 타입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미국에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다게레오 타입은 선명하고 훌륭한 기법으로 전 세계적으로 12년 동안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은판의 가격이 높고 단일성 때문에 손쉽게 복제하여 생산원가를 낮출 수 없었으므로 경제적 요구에 역부족이었던 탓에 새로운 이미지 보급을 더디게 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다게르가 사진술 발명을 발표할 동 시기에 영국의 런던에서는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이 종이 “네가 포지법”의 사진술을 발표했다. 톨벗은 카메라 옵스쿠라를 통하여 그림을 그리던 중 손을 사용하지 않고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폭스 톨벗이 1844년 세계 최초로 사진집 “자연의 연필”에서 사진술 발명의 경위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종이 위에 묘출된 광경을 연필을 사용하지 않고 재현시키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순 사라져가는 영상을 영원히 종이 위에 고정하는 방법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하고 자신에게 물었다.

이와 같은 그의 생각은 은염류의 감광성을 띠게 된 종이 위에 광소묘(Photogenic drawings)를 만들었으며, 음화를 양화 이미지로 만드는 카로 타입(Calotype: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이미지)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발명은 다게레오 타입의 공식적인 특허 덕분에 그의 공적은 수포가 되었지만, 사진의 발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사실상 카로 타입은 다게레오 타입에 밀려 거의 실용화 되지는 못했지만, 종이 인화 기법은 가격이 저렴하고 운반과 조작하기 쉽고 색채를 채색하는데 적절했다. 정확하고 건조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다게레오 은판사진과는 달리 종이 위에 새겨진 이미지는 화질이 떨어지지만, 한결 고운 이미지를 만들었다. 이 새로운 이미지는 예술의 풍부한 가능성과 정서적인 힘을 예증해 보였다.1850년대부터는 신속하고 비용이 저렴하며 정확하고 복제가 용이한 음-양기법이 대중화되면서 신속성, 정확성, 복재성, 경제성 등 모든 것을 충족시켜주었다.


아래의 사진은 파리의 탕플 대로(the Boulevard du Temple)를 건물 위에서 내려다보며 찍은 것으로, 많은 마차와 사람들이 오갔을 이 번화한 거리는 마치 무인의 거리처럼 텅 비어 있고, 오직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구두를 닦고 있는 두 사람만이 기록되어 있다.
↗ 파리의 풍경 사진 1838년경, 다게르(Louis J.M. Daguerre, 1789~1851)

(6-1) 카로 타입 (Calotype process)

영국의 윌리엄 헨리 폭스 톨벗(William Henry Fox Talbot 1800~1877)에 의해서 1840년 발명한 기법으로 종이에 질산은 용액을 붓을 칠하고 건조 시킨 뒤 요드 칼륨에 집어넣는다. 최상의 감광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촬영 직전에 인화지를 질산은과 갈릭산에 담갔다가 꺼내어 축축한 상태에서 두 장의 유리판에 끼워 카메라 옵스쿠라에 넣어 촬영했다.

인화지를 감광유제와 똑같은 용제를 사용하여 암실에서 현상한 다음, 브롬화 칼 륨으로 정착해 얻은 음화는 염화은지로 옮겨져 태양광으로 밀착시키면 양화를 얻게 된다. 카로 타입은 현재의 네가 포지법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1장에서 여러 장의 프린터를 가능하게 했다. 다게레오 타입은 주로 영업 사진관에서 초상 사진을 찍는 데 주로 사용되었고, 카로 타입은 자연풍경과 건축물을 찍는 데 많이 사용되었다.



(6-2) 다게레오 타입 (Daguerreotype process)

프랑스의 루이-자크-망데 다게르 (Louis-Jacqes-Mande Daguerre 1787~1851) 에 의해서 발명된 사진술은 그의 이름을 따서 다게레오 타입이라 명명했다.

다게레오 타입은 은판 또는 은메끼를 칠한 동판을 준비하고 표면을 거울처럼 잘 닦은 다음 이것을 상자에 넣어 요오드계를 도포해 감광성을 유지 시킨다. 요오드는 기화하면서 판면을 황금색으로 바꾸어 놓는데 이 원판은 제작 즉시 1시간이내에 촬영해야만 했다. 촬영을 마친 원판은 현상용 상자 속으로 넣어 상자 밑바닥에서 수은을 가열해 증기를 은판에 대면 원판 위에 양화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정착에는 처음은 천연염을 사용하다가 나중에 티오황산염으로 바뀌었고 마지막 단계에서는 물로 세척한 다음 알코올 램프로 건조함. 촬영 시간은 날씨가 양호할 경우 10~15분 걸림. 그후 다게레오 타입은 감광도와 지속적인 재료 보강에 따라 신속히 개선되었다.

※ 참고 1.
다게레오 타입은 정부에서 특허를 사서 일반에게 공개했기 때문에 노광 시간을 단축하는 기술적 진전이 빨랐다. (1839년 15분, 1840년 13분, 1841년 2~3분, 1842년 20~40초, 1844년 10초)

※ 참고 2.
네거티브: 촬영한 필름의 현상 처리가 끝났을 때 명암 또는 컬러가 실제 피사체와는 반대로 재현된 음화를 말한다.

※ 참고 3.
포지티브: 양화 상태의 사진영상을 말한다. 네거티브를 이용하여 인화한 상태의 영상이나 포지티브필름의 약어로 슬라이드 필름을 의미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