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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사진 공부방 글 펌글 입니다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바쁜 시간이 지나 요즘은 다시 조금 여유로운 시간이 되어 다시 글을 쓰게 됩니다. 앞으로 쓰게 될 내용은 10년 전에 교육용으로 만든 이름만 거창한 사진학 개론 1권의 내용으로 사진의 발명에서부터 카메라의 발달 연표, 사진의 원리 등 사진 관련 이야기들을 짧게 짧게 나누어 연재할 예정입니다.


그동안 평생 교육원과 학교, 지자체 등의 특강에서 다루었던 이야기들이기도 합니다. 생활 사진가의 페이지를 구독하시는 분께 얼마나 도움이 되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에는 사진 관련 외의 이야기는 자제하였는데 앞으로는 가끔 저의 일상 이야기도 병행하여 올리더라도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취미로 하는 사진 생활은 즐거워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며 사진 수업을 할 때마다 드리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이상 취미 생활이 아닙니다. 모두가 즐거운 사진 생활이 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 사진의 발명과 그 특성


(1) 카메라 옵스쿠라 (Camera obscura)

카메라는 사진 기술의 발견보다도 훨씬 오래전에 이루어졌다. 사진 기술은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라는 도구에 의해 얻어지는 상을 기계적, 화학적인 방법으로 고정하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최초의 카메라는 현재의 카메라와 같은 렌즈나 셔터가 없고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어두운 방으로 간단히 운반할 수 있는 형태나 구조가 아니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라틴어로 카메라는(방), 옵스쿠라(어두운), 다시 말하면 “어두운 방”을 의미하며 현대 카메라의 효시이다.

이 원리는 어두운 방의 덧문에 뚫린 둥그런 구멍을 통해서 들어온 햇빛은 방안의 덧문 맞은편 벽면 위에 거꾸로 뒤집어진 상이 생기는 것이다. 이 원리에 착안하여 카메라 옵스쿠라 수직면에 작은 구멍을 뚫어 그곳으로 빛을 통과시키면 안쪽에 이미지가 맺힌다는 원리를 응용하였다.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바늘구멍을 통해서 들어오는 광선이 상을 만든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으며, 카메라 옵스쿠라에 관한 출간 기록은 152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인 체사레 체사리아노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6세기 초기만 하여도 카메라 옵스쿠라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들어가서 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것이 아니어서 그 활용성은 적었다.

그 후 17세기 카메라 옵스쿠라 내부에 렌즈를 끼워서 이미지가 한결 뚜렷해지고 반사경을 부착하여 정립상으로 보이게 하므로 카메라 옵스쿠라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또한 운반할 수 있는 형태로 작아지므로 화가들 사이에서는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필수도구가 되었다. 카메라 옵스쿠라를 통하여 밖의 풍경, 풍속, 실내 정물 등을 스케치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용과 함께 자연을 분석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였다.

18세기 말경에는 중산층에서 초상화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화가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더욱더 간편하고 정밀한 기구가 요구되었다. 이제 카메라 옵스쿠라는 다양한 형태와 모양새를 갖추고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되었으며 질적, 양적으로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것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로 변신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2) 카메라의 발달 연표

사진의 전반적인 흐름을 이해하기 위하여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카메라의 발달에 대하여 연대순으로 정리해 본다.
(3) 1839년 이전- 시대 상황 및 의식의 발생

19세기 중반 사진이 근대 도시의 여명기에 출현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는데, 사진이란 모체가 발명되기까지는 과학적 기술상 또는 인간의 시각 의식의 변혁에 의한 것이다.
즉 발명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15세기 원근법의 확립, 광학적 원리의 해명, 렌즈와 거울의 발달, 은용액 정착법 발견, 인쇄 기술과 제지 산업의 혁명 등 여러 가지 성과가 직접 된 결과라고 볼 수 있으며 사회가 그것을 수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한편 인간의 소유욕과 대량 복제에 대한 욕구, 타자에 대한 관심, 회화적 이미지에 대한 반발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진이 발명된 프랑스에서는 농업국가에서 공업 국가로 발전되면서 사회의 중심적 역할을 대중 층이 담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요구는 19세기 근대 도시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물질적, 정신적 도구로서 경제적인 발전, 정치적, 문화적인 환경을 바탕으로 필연성에 의해 발명된 것이다.



(4) 사진의 탄생-1839년 8월 16일

프랑스의 학술원에서는 저명한 과학자이자 파리의 천문대장인 프랑수아 아라고(Francois Arage)에 의해 루이 자크 망테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발명한 다게레오 타입(Daguerreotype)에 대해 상세하게 발표 시 이날이 바로 공식적인 사진술의 발명의 날이기도 하다.

다게르(1787~1851)는 석관 인쇄공인 니에프스와 공동연구를 해왔으나 불행히도 니에프스는 1833년 7월 프로세스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1827년 여름 세계 최초로 사진 제작(Heliograph)에 성공하였다. “르 그라 집 창에서 자기 집 창고 지붕을 내려다본 풍경”은 8시간 동안 노출해 찍은 것이다. 상은 장시간 노출로 인하여 선명하지 않고 희미한 풍경이지만 인간이 최초로 만든 사진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귀중한 자료로 우리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는 사진이다.

두 사람은 비밀 보존을 위해 암호로 된 편지로 서로 자료와 정보를 교환하였으며, 금속판에 수은 공기를 쐬어 상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 원판을 염화나트륨 용액에 담가서 그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방법 등 새로운 화학적 반응을 발견했다.

다게르는 니에프스가 죽은 후 독자적인 사진술을 발명하고 “다게레오 타입”이라 명명했다. 이 기법은 거울처럼 잘 다듬은 은판 면에 요오드 증기를 쐬어 감광성이 있는 옥화은층을 만들고 감광성을 유지 시켰다. 은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은관 사진” 이라고도 불린다.

다게레오 타입은 1회 촬영으로 1장의 사진을 얻을 방법으로 현재의 네가 포지법과 전혀 다른 프로세스이기는 하나 은판 위에 얻어지는 정말한 상은 그 당시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기억을 가진 거울”이라고 불리었다.

초기의 다게레오 타입은 촬영 시간이 20~30분 정도 소요되었기 때문에 초상 사진보다는 정물 사진들이 많다. 곧 밝은 렌즈가 개발되어 노출시간이 1~2분 정도로 단축되고 사진은 점점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한순간의 현실적 광경이 1장의 정지한 상으로 장시간 반복해서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모든 물체는 시간과 함께 움직이고 있지만 사진술의 발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파괴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기록성을 들 수 있다. 현실을 재현할 수 있는 이 새로운 기술은 사진의 본질 그 자체와 그것이 만들어 내는 이미지는 기록의 도구로서 또는 창작의 수단으로서 양면성을 갖추고 인간의 사고방식의 변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니세포르 니에프스: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내려다 본 조망(1827년경 헬리오그래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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