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잔의 자유를 보라^^

잔은 비울수록 여유가 있다
그것이 술이라도 좋고 세월이라도 좋고 정이라도 좋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고
조급함을 버리고 그리고 집착을 버리고 살아야 한다.

우리의 잔은 채울 때보다 비울 때가 더 아름답다

빈잔의 자유를 보라.

그 좁은 공간에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를 그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일이 뜻대로 되어지지 않을 때..
무언가에 자꾸만 집착이 갈 때..

삶이 허무하고 불안하여 믿음이 가지 않을 때..

빈잔을 보라^^

가슴이 뛸 때까지 보라
비우는 잔마다 채워질 것이다.

투명한 것을 담으면 투명하게 보일 것이요,
따뜻한 것을 담으면 따뜻한 잔이 될 것이다.

- '마음에 새겨두면 좋은글 139'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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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양심(良心)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시골에 농막 주변으로
인도 블럭을 깔아야 할 일이 생겨
지인의 소개로 재고 처리하는 블럭을
구입하게 되었다.

농막까지 진입로가 곡선으로 연결되어
5톤이상의 화물차가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침 입고(入庫)하는 토요일은
친구들과 모임에서 야유회를 가는 날이라
블럭업체 담당자에게
4.5톤이나 5톤 단축 차량 섭외를 부탁하며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

담당자는 여러 번 반복해서 한 말이
짜증이 났는지,
“사장님! 했던 말 또 하지 마시고 믿고 맡기세요”

지난해도 2.5톤 차량으로
블럭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25톤 차량에 블럭을 보내와서
애를 태운 기억이 있지만
이렇게 반복해서 주의를 시켰으면
문제없이 잘해줄 것이라 믿고
블럭값과 화물비를 선지불하였다.

지게차 비용 15만 원을 아끼기 위해
미루어 온 굴착기 작업을
그날에 맞추어 하역을 굴착기 사장님에게
부탁하고 별도로 하역에 필요한
크레인 바를 구입하여 현장에 두고 왔다.

토요일 새벽 6시 20분에
오랜만에 친구들과 즐거운 여행길에 올랐다.
즐거운 여행도 잠시,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굴착기 사장님에게서 급한 전화가 왔다.

“화물차가 9.5톤이 왔다”라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굴착기 사장님께
사정(事情)해서 수습(收拾)을 부탁했다.
마음 같아서는 즐거운 여행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지만
현실이 그러한가?
즐거운 여행길을 망치고 싶지도 않고
동행한 Wife, 그리고 친구와 그 부인들에게
누(累)가 될까 봐 혼자 싹일 수밖에

다음 날 일요일 새벽에
현장에 달려갔더니
굴착기 사장님이 홀로 고생한 흔적이 보인다.
전화를 걸어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추가된 금액을 물어보니
지게차 비용과 지게차 하역에 따른
추가 인건비가 고스란히 내 몫으로 남았다.

월요일 출근시간대에
“무슨 좋은 일이라 출근 시간에 전화할까”
망설이다 정오가 다 된 시간에 전화했더니
담당자는 아무 대꾸를 못 한다.

“그렇게 믿어 달라고 해놓고
이런 결과를 만들었으면 책임을 질 것이 아니냐”고
했더니 대표에게 전화를 해 보란다.

자기가 대표에게 보고해야 할 몫을
사과 한마디 안 하고
내게 미루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대표에게 전화했다.

블럭업체 대표에게 전화했더니
대표는 기다린 듯이 사과 한마디 없이
“반품처리 해 드릴 테니 다시 보내세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회답(回答)이다.
선지불하고 어렵게 하역한 물건을
되돌려 보내라면
지게차 비용과 화물비가
또다시 추가될 것을 뻔히 알고
하는 말이 아닌가?

뜨내기손님에다가 다시 안 봐도 될 사람에게
짧은 시간내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라면
오랫동안 이런 행동을 했을 것 같은 사람인데
내가 이런 사람하고 무슨 긴말하랴?

세상 살면서
믿음과 양심을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아!
믿음과 양심(良心)은 액세서리가 아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학교가 끝나고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향해
숨이 멎을 정도로 열심히 달렸습니다.
고 3 학생이라 공부하느라 받았던 스트레스를
그렇게 버스 정류장을 향해 내달리는 것으로
풀곤 했습니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전력 질주하여
버스 정류장에 다다랐을 때,
얼굴에 안경이 끼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학교는 이미 너무 멀어져 있었고,
평소에도 안경이 없으면 버스 번호판이 안 보여
가까이 있어야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소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안경 쓴 여학생이 있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저기 정말 미안한데,
오빠가 눈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러는데,
30번 버스가 오는지 봐줄 수 있겠니?"

잠시 내 눈치를 살피며 생각하던 여학생은
"예"라고 대답했고,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몇 번 버스를 타는지도 물었습니다.

여학생은 "180번이요!"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5분 정도 지나자, 내 눈앞에서
여러 대의 버스가 지나갔습니다.
그중에 한 대는 여학생이 타려고 했던
180번 버스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타야 할 버스임에도
버스를 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0여 분이 지나서야 여학생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30번 버스 오는데요."

"고마워, 예쁜 학생"

짧은 인사와 함께 30번 버스에 올라타
맨 뒤로 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그 여학생이 연이어 온 다른 버스에 탑승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웠습니다.
비록 처음 만난 학생이지만,
그 마음에 내 삶의 자세도 조금 바뀐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해 온다면 어떻게 할까요?

자신의 시간을 조금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고
자신의 작은 노력이 들어가야 하고,
작게나마 크고 작은 희생이 따라야 한다면
당신은 도와줄 수 있나요?
아니면, 양해를 구하고 그 자리를
피할 건가요?

그 어떤 선택도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내가 도움을 주는 사람이 아닌
받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누군가를 진심으로 도우면
반드시 나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삶의 아름다운 보상 중 하나이다.
– 에머슨 –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오래전 제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동생이 중학교 2학년이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집 근처에 학교가 있어 걸어 다녔던 저와는 달리
동생은 학교가 멀어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동생은 늘 어머니가 차비를 주셨는데
어느 날 동생이 버스를 타지 않고 학교까지
걸어가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다음 날도 어김없이 동생에게 차비를 주는
어머니에게 볼멘소리로 말했습니다.

"차비 주지 마세요. 버스는 타지도 않아요.
우리 집 생활도 빠듯한데 거짓말하는 녀석한테
왜 차비를 줘요."

하지만 어머니는 먼 길을 걸어 다니는
동생이 안쓰러우셨는지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동생에게 차비를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오늘은 꼭 버스 타고 가거라!"

그 차비가 뭐라고 전 엄마한테
왜 내 얘긴 듣지도 않냐며 툴툴대기
일쑤였습니다.

며칠 후, 학교 갔다 집에 돌아와 보니
온 집안이 맛있는 고기 냄새로 가득했습니다.

주방으로 얼른 뛰어가 보니
맛있는 불고기가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집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기는 특별한 날 먹을 만큼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저녁 식사 때 고기를 크게 싸서 입에 넣으며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이에요?"

그러자 어머니께서 동생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날은 무슨 날...
네 동생이 형이랑 엄마 아빠 기운 없어 보인다고,
그동안 모은 차비로 고기를 사 왔구나!"

동생은 그 먼 길을 가족이 오순도순
고기를 먹는 모습을 즐겁게 상상하며 힘들어도
걷고 또 걸었다고 했습니다.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형이 못하면 동생이
동생이 부족하면 형이
자식에게 허물이 있으면 부모가
부모님이 연세가 들면 자식이
그렇게 서로 감싸며 평생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것.
가족은 그런 것 같습니다.


# 오늘의 명언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
– 트레이 파커 –

교만과 겸손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보러 한양에 가고 있었습니다.
선비는 자신의 학식에 대한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있어
장원급제할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느 곳에서 나룻배를 타고 큰 강을 건너던 중,
선비는 노를 젓는 뱃사공에게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이보게 사공, 논어를 읽어 보았는가?"

사공은 선비의 질문에 궁금하여 대답했습니다.
"논어라니요? 그게 무슨 책입니까?"

사공의 대답에 선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논어를 모르다니. 자네는 지금 몸만 살아있지
정신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네."

그 순간, 큰바람이 불어와 물결이 계속 출렁거렸습니다.
그리고 나룻배가 휘청거리자, 사공이 말했습니다.
"선비님, 혹시 헤엄을 칠 줄 아십니까?"

배가 뒤집힐까 두려워 사색이 된 선비가 말했습니다.
"난 평생 글공부만 해서 헤엄을 칠 줄 모르네."

그 말에 사공이 선비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면, 만약에 배가 물결에 뒤집힌다면
선비님은 정신만 살아있고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다행히 배는 무사히 강 건너편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배 위에서 큰 깨달음을 얻은 선비는
학문보다 인격을 더 쌓은 후 과거시험을 보겠다며
다시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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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스해지는 순간,
문선희 성우가 전하는 따뜻한 감성 편지!

고된 일상에 위로와 공감이 되고,
사랑과 응원으로 힘이 되는, 달콤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따뜻한 하루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어보세요.
 

 

대학 등록금



TV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가난했던 시절, 대학 등록금과 관련된 일화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준 이가 있습니다.
바로 영화배우이자 탤런트인 김기두 씨입니다.

그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모아둔 등록금을 가족들 생활비로 사용하면서
대학교 입학을 포기해야 했었습니다.

등록금 납부 기한 당일이 되어도
어머니가 돈을 마련하지 못했으니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대학에 안 가도 성공할 수 있다며
애써 웃으며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께 돈이 마련됐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알고 보니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우시는
어머니의 사연을 들은 동료 공장 직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등록금을 마련해
준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등록금을 들고 학교로 향했지만
이미 등록금 마감 시간이 임박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정을 대학에 이야기했고,
원무과 직원들은 퇴근을 미루고
복도 불이 다 꺼지고 바깥이 어두워질 때까지
그의 어머니를 함께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다 꺼진 복도 끝에서 
어머니가 그에게 외쳤습니다.

"기두야!"

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오시는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등록금은 맨 마지막에 냈지만 
졸업은 1등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당하게 1등으로 졸업해서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주름은 나에 대한 깊은 근심과 같고,
영원한 사랑의 증거와 같습니다.
나로 애써진 마음으로 자식들에게 넉넉하게
해주지 못한 것들에 늘 미안해하고,
자식들에게 받은 그 모든 것을 고마워하시는 게
우리들의 어머니이십니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전해보세요.
'어머니 고맙습니다.그리고 사랑합니다'


# 오늘의 명언
내가 성공을 했다면,
오직 천사와 같은 어머니의 덕이다.
– A. 링컨 –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25일, 그 영웅 중 한 분이신
김기열 어르신께서 아흔여섯 번째 생신을
맞이하셨습니다.

1950년 7월, 이리 농림학교 졸업을 앞둔
김기열 어르신은 갑작스레 학도병으로 징집되며
훈련도, 군복도, 무기도 없이
학생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전장에
나서야 했습니다.

밤이 되면 빈 학교 강당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이면 다시 행군을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걸으면서도 쏟아지는 잠을 이기려 애써야 했습니다.
때로는 길옆 수로에 빠진 후에야 잠에서 깰 정도로
혹독한 여정이었습니다.

평양 입성 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전세가 기울던 때에,
김기열 어르신과 그의 전우 최기호 님은
서로의 팔에 독수리 문신을 새겼는데 그 문신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만약 내가 먼저 죽으면,
네가 이 문신을 보고 내 가족에게 소식을 전해 주고,
네가 먼저 죽으면, 내가 너를 찾아가겠노라."

전쟁이 끝난 후,
김기열 어르신은 1954년 하사로 만기 제대하며
화랑무공훈장 3개를 수여받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국가 유공자 단체에서
30년 이상 활동하며 안보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힘쓰셨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대한민국의 영웅,
김기열 어르신의 생신을 맞아,
따뜻한 하루는 직접 전주에 계신 어르신을 찾아뵙고
생신상을 준비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생신상을 보며 활짝 웃으시던 김기열 어르신은
인터뷰를 통해 우리에게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메시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전장에서 죽음을 각오할 수 있었던 건
오직 내 나라 대한민국을 지켜야겠다는 생각 덕분이었습니다.
그 정신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온 기둥입니다."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잔치 – 따뜻한하루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 대한민국은
김기열 어르신과 같은 수많은 영웅의 희생 위에 존재합니다.
자유는 결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은 많은 이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따뜻한 하루는 앞으로도 영웅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느 위대한 영웅의 생신 잔치 – 따뜻한하루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5년 3월 25일, 그 영웅 중 한 분이신 김기열 어르신께서 아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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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4고(四苦)



4가지 고통이라는 뜻의 줄임말로
빈고(貧苦), 병고(病苦), 고독고(孤獨苦),
무위고(無爲苦)가 있습니다.

4고(四苦) 가운데 무위고는
하는 일이 없어 느끼는 고통으로
하루, 이틀도 아닌 긴 시간을 할 일 없이
지내며 느끼는 '무료함'이란 감정으로
비롯된 감정입니다.

퇴직으로 인해 소득이 줄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또한 일자리가 없어지고, 소득이 줄면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됩니다.

이렇게 인간관계가 좁아지면
활동이 줄고 마음이 위축되어 외로움이 깊어져,
급기야는 몸과 마음의 병을 얻습니다.

결국 노년을 괴롭게 하는
4고의 가장 첫 시작은 '할 일 없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나요.
지금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혹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삶을 살고 있나요.

누군가에게는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는
노년에 겪는 4고를 벗어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비록 아무도 과거로 돌아가 새 출발을 할 순 없지만,
누구나 지금 시작해 새로운 끝을 만들 수 있다.
– 칼 바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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