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緣分)과 인연(因緣)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전’(玉丹春傳)에 한 마을에 김진희와 이혈룡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을 하였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 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에 평안 감사가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가 만나 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에서 평안 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그를 물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였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혈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해 혈룡을 구하여 그녀의 집으로 데려가 가연(佳緣)을 맺는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함께 보살펴 준다.
그후 이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서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서 걸인 행색으로 평양에 간다.
연광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던 김진희가 이혈룡이 다시 찾아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두를 하여 김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렸고 그뒤 이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하고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혈룡과의 친구 간 우애를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말로가 매우 비참해졌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 게 아니고 푸는 것입니다.
일단 끊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며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습니다.
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연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자의 몰상식한 소치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고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맙니다.
공자는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라고 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뜨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같은 경우에 맞닥뜨리게 돼 끝내는 허망에 빠져들고 맙니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하나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숱한 인연과 연분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잠시의 소홀로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쪽 상대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폐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과 인연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不學無識)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연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하면서 풀어 나가는 지혜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오늘도 건강관리 잘 하시고 행복한 날들 기쁨 듬뿍 은총 충만하세요. 사랑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살아가는 이야기 > 풍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틈을 만들어 주자 -퇴근길 월성리 에서 (0) | 2025.04.29 |
---|---|
누군가의 버팀목 - 다산 2산단의 2025년 4월 (0) | 2025.04.16 |
썩지 않는 씨앗은 꽃을 피울 수 없다 -다산 2산단 점심식사 후 산책 하며 (0) | 2025.04.16 |
힘들 거든 우리 쉬어서 가자 - 퇴근길 월성리에서 (0) | 2025.04.09 |
필터 버블을 깨야, 진짜 내 인생이 열린다! - 퇴근길 월성2 (0) | 2025.04.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