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緣分)과 인연(因緣)

조선 숙종 때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인 '옥단춘전’(玉丹春傳)에 한 마을에 김진희와 이혈룡이라는 같은 또래의 아이 두 명이 있었다. 
둘은  동문수학하며 형제같이 우의가 두터워 장차 어른이 되어도 서로 돕고 살기로 언약을 하였다. 
커서 김진희는 과거에 급제해 평안 감사가 됐으나 이혈룡은 과거를 보지 못하고 
노모와 처자를 데리고 가난하게 살아가던 중에 평안 감사가 된 친구 진희를 찾아갔지만 진희가 만나 주지 않았다. 
하루는 연광정에서 평안 감사가 잔치를 한다는 말을 듣고 다시 찾아갔으나 
진희는 초라한 몰골의 혈룡을 박대하면서 사공을 시켜 대동강으로 데려가 그를 물에 빠뜨려 죽이라고 하였다. 
이때 옥단춘이라는 기생이 혈룡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공을 매수해 혈룡을 구하여 그녀의 집으로 데려가 가연(佳緣)을 맺는다. 
그리고 옥단춘은 이혈룡의 식솔들까지 함께 보살펴 준다. 
그후 이혈룡은 옥단춘의 도움을 받아서 과거에 급제하고 암행어사가 되어서 걸인 행색으로 평양에 간다. 
연광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던 김진희가 이혈룡이 다시 찾아온 것을 보고는 재차 잡아 죽이라고 하자 
어사출두를 하여 김진희의 죄를 엄하게 다스렸고 그뒤 이혈룡은 우의정에까지 오른다. 
어린 날의 맹세를 생각하며 찾아온 이혈룡을 멸시하고 죽이려 한 김진희는 겉으로는
우의를 내세우며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독점하기 위해 우정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양반층의 숨겨져 있는 추악하고 잔인한 이중적인 본래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혈룡과의 친구 간 우애를 칼로 무 자르듯 잘라버린 김진희는 말로가 매우 비참해졌다. 
이것은 상식입니다. 
연분과 인연과 우정의 맺힌 끈은 자르는 게 아니라  푸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삶에서 생긴 고리도 함부로 끊는 게 아니고 푸는 것입니다. 
일단 끊어 버리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으며 사랑도 그렇고, 우정도 그렇습니다. 
인연과 연분을 함부로 맺어도 안 되지만 일단 맺은 인연이나 연분을 절대 쉽게 끊으려 해선 더욱 안 됩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처럼 연을 함부로 맺고 또 마구 자르는 것은 무식한 자의 몰상식한 소치에 불과합니다. 
사랑과 우정 등 인연의 진정한 가치는 어떻게 끊어 내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륜에서 생긴 매듭을 어떻게 풀어 가느냐에 달려있고 여기서 군자와 소인배의 모습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대부분의 소인배는 인연과 연분을 마구 끊는 큰 실수를 저지르고는 
자신은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가 잘못했다는 독설로 상대를 공격하는 잔인성을 드러내고 맙니다. 
공자는 "군자는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가를 반성하고 소인배는 잘못을 남의 탓으로 들춰낸다."라고 했다. 
자신의 과오는 모른 채 나를 그 지경에 빠뜨린 상대방 탓을 하는 사람은 언제나 똑같은 경우에 맞닥뜨리게 돼 끝내는 허망에 빠져들고 맙니다.
사랑과 우정에 혹시라도 얽힌 매듭이 생겼다면 하나하나 지혜롭게 풀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숱한 인연과 연분 속에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잠시의 소홀로 연을 함부로 끊어버리면 양쪽 상대가 모두 비참해지고 인간성마저 추악하고 피폐해집니다. 
나이가 들수록 연분과 인연과 우정을 무 자르듯 잘라내는 '불학무식'(不學無識) 상태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연에 매듭이 생기면 더 오래 인내하면서 풀어 나가는 지혜로운 습관을 습득한 지성인만이 인생의 최종 승리자가 됩니다. 
오늘도 건강관리 잘 하시고 행복한 날들 기쁨 듬뿍  은총 충만하세요. 사랑합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배자상수(排字上壽)


중국 남송(南宋)의 장치화란 사람이 지은 소원천금(笑苑千金)이라는 웃음거리 책이 있다. 
그 책에는 글자를 벌여놓아 장수(長壽)를 빈다는 배자상수(排字上壽)라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곳에 부자 영감이 살았다. 
부자 영감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었는데 셋이 제각기 장가를 들어 살림을 차리고 있었다. 
영감은 그의 생일날 아침에 세 며느리들을 불러 놓고 오늘 밤에는 생일잔치가 있을 테니, 
너희들은 그때 재미있는 일을 가지고 나에게 축배를 올려 즐겁게 하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날 밤 예정대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고 손님들이 열 간 대청이 그들먹하도록 모였다. 
이윽고 며느리들이 시아버지께 축배를 올리고 장수를 비는 헌수(獻壽)를 할 차례가 되었다. 
첫째 며느리에겐 두 명의 딸이 있었다. 
그녀는 좌우에 한 사람씩 딸의 손을 잡고 시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서 인사를 하였다. 
"아버님, 앞으로 백 년 상수하옵소서! 저는 간(姦)이란 글자로 아버님께 술을 올리옵니다." 
"음, 여자가 셋이니까 간(姦)이라 그 말이지? 과연 그렇구나! 과연 그래!" 
시아버지는 인자하게 웃으며 첫째 며느리의 재치가 넘치는 생각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둘째 며느리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녀는 그 아들을 데리고 시아버지 앞으로 나아가서 다음과 같이 축하의 인사를 올렸다. 
"아버님, 무병장수하옵소서! 저는 호(好)라는 글자로 아버님 앞에 술을 드리옵니다." 
"옳거니. 여자와 아들이니까 호(好)라 그 말이지? 됐어! 됐어!" 하고 시아버지는 기뻐했다. 
이제 마지막 셋째 며느리 차례였다. 
그런데 그녀는 시집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아직 아들도 딸도 없는지라 혼자 걸어나가서 
"아버님, 부디 만수무강하옵소서!" 하고 인사를 드리며 술잔을 올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그런데 너는 어째서 술잔을 올리려고 하지 않느냐?" 하고 물었다. 
그녀는 갑자기 치마를 훌렁 걷어올리고 벌거벗은 한쪽 다리를 의자 위에 쭉 뻗은 다음, 
손으로 자신의 두 다리가 마주 붙은 사이를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님, 저는 아직 자식이 없어서 가(可)라는 글자로 아버님께 축배를 올리옵니다." 
시아버지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과연 가(可)라는 글자가 되어 있구나. 
그런데 입구(口)가 약간 비뚤어졌구나. 아니야, 됐어! 됐어! 그만하면 훌륭한 가(可) 자라고 볼 수 있겠다." 
시아버지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였고 모여든 집안 손님들도 모두 좋아하며 한바탕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 옮겨 온 글 -

틈을 만들어 주자



고대 페르시아를 떠올릴 때
많은 이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고급 양탄자입니다.

페르시아의 장인들은 양탄자를 만들 때
한 올 한 올 손으로 만들어 가격이 비쌀 뿐만 아니라,
정교한 문양과 복잡한 기하학적 디자인,
자연을 모티브로 한 패턴이 특징이며,
중세 시대부터 왕실과 귀족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요소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뽐내는
예술과 문화의 결정체에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 흠이 있기 마련입니다.

흥미롭게도 페르시아 양탄자에서 발견되는 흠은,
혼신의 힘을 다해 양탄자를 제작하던 장인이
일부러 남긴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는 세상에는 완벽한 것이 없다고 여기는
그들의 장인 정신과 철학이 담긴
흠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를
'페르시아의 흠(Persian Flaw)'이라고
부릅니다.





틈이 있어야
햇살도 스며들 수 있듯이
틈이 있어야
다른 사람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고,
이미 들어온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결국 틈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 창구와 같습니다.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굳이 틈을 가리려
애쓰지도 마세요.

그 빈틈 사이로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
내 삶을 지금보다 더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완벽함이란 더 이상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 생텍쥐페리 –

'내일'의 의미



아이들이 말을 배울 때,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내일'입니다.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내일 해줄게"라는 약속의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고스란히 믿고,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립니다.

하지만 아직 시간의 흐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내일'은 수수께끼 같은 의미입니다.

아이들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계속 질문을 합니다.

"내일이 언제야?"
"지금이 내일이야?"

하지만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찾아오는 날을 '오늘'이라고 부르니,
아이들의 생각 속에는 '내일'이
자꾸만 뒷걸음질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주 '내일'을 이야기합니다.
내일 만나자며 다음을 약속하고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고 위로하곤 합니다.

하지만 '내일'은 늘 가까이 있는 듯,
한 걸음씩 멀어져 갑니다.

가깝지만 먼 시간.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다가오다가
빠르고 조용히 물러나는 시간.
그게 바로 '내일'입니다.

그래서 '내일'보다 중요한 건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하는
'오늘'입니다.


# 오늘의 명언
내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우리가 할 일은 오늘이 좋은 날이며
오늘이 행복한 날이 되게 하는 것이다.
– 시드니 스미스 –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1761년, 프랑스 위틸호의 선장이었던 파르그는
마다가스카르 본섬에서 흑인 노예 60명을
다른 섬으로 데려가 기존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아넘길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시 해당 지역에서는 노예무역을 금지하고 있어
파르그 선장은 해상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정규 항해 노선이 아닌 북쪽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선원들은 그 경로는 돌풍 때문에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돈에 눈이 멀었던 선장은
의견을 무시하고 항해를 강행했습니다.

결국, 위틸호는 작은 섬의 암초에 난파되는데
길이 2킬로미터, 너비 800미터의 이 작은 섬은
야자나무 몇 그루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황량한 모래섬은 10월~5월까지 주기적으로
위력적인 사이클론이 불어오는 데다가
땔감으로 쓸만한 큰 나무도 없어 생존이
위태로운 곳이었습니다.

생존자들은 배의 잔해로 작은 배를 만들었습니다.
두 달 뒤, 완성된 배에 빼곡히 올라탄 프랑스 선원들은
흑인 노예들에게 구조선을 보내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그곳을 떠나 버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생존자들은 남쪽 해안에 분포된 돌을 가져와
두꺼운 벽을 쌓아 집을 만들어서
강력한 폭풍을 피했습니다.

그들은 난파선의 돛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고
난파선의 목재로는 지붕을 만들고 불을 피웠는데
이 불은 그들이 이 섬을 떠나기 전까지
꺼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식수를 구하기 위해
땅을 파서 우물을 만들었으며 탈출선을 만들기 위한
대장간도 따로 만들었습니다.

식량으로는 주로 거북이와 새, 물고기 등을
잡아먹으며 살았는데 놀랍게도 이들 사이에선
폭력이나 식인으로 인해 사망한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거나,
인간답게 살아가는 존엄을 포기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15년이 지난
1776년 코르벳함 라도팽호의 선원들에게 발견되어
섬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하게 됩니다.

60명의 흑인 노예 가운데 섬에 남은 사람은
일곱 명의 여자, 아직 젖도 떼지 못한
갓난아이뿐이었습니다.


=============================


마음이 따스해지는 순간,
문선희 성우가 전하는 따뜻한 감성 편지!

고된 일상에 위로와 공감이 되고,
사랑과 응원으로 힘이 되는, 달콤하고 따스한 이야기를
따뜻한 하루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어보세요.


= 따스한 이야기를 유튜브에서 만나보세요 =

 

뇌가 힘들 땐 아파트를 한바퀴 산책하는 것도 괜찮은데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



뉴욕에 사는 한 알츠하이머 환자는
젊은 시절 즐겨 듣던 곡들로 짠 플레이리스트를 듣고서
잊었던 아들을 5년 만에 알아보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걸까요?

뇌과학자들은 빛과 소리가
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알츠하이머를 앓는 뇌에
'빛'과 '소리'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쥐를
하루 한 시간 빛에 노출했더니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아밀로이드 펩티드가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여기에 청각까지 자극해 7일 연속
하루 한 시간씩 쥐들이 정해진 소리를 듣도록 하자,
뇌에서 소리를 처리하는 영역뿐만 아니라
근처에 있는 해마에서도 알츠하이머를 일으키는
베타 아밀로이드의 양이 극적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심지어 이 쥐들은 인지력도 눈에 띄게 높아져
미로에 들어갔을 때 길을 더 잘
찾아내기까지 했습니다.

눈과 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예술 활동은
건강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병을 떨쳐내 건강을 되찾게 하고,
스트레스 상태에서 벗어나 차분하게 만들고,
슬픔에 빠졌다가도 기쁘게 하고,
나아가 인생을 활짝 꽃 피우게 하는 것입니다.

그림, 춤, 글쓰기, 건축, 연기, 공예...
예술은 그 무엇과도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다시 말해 삶에 예술을 들인다는 건,
건강하고 풍성한, '잘' 사는 인생을 가꾼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가벼운 낙서나 일기 쓰기로 스트레스 해소하기,
나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불안 가라앉히기,
일과를 마무리한 후 연극 공연이나 전시회 관람하기 등,
오늘부터 나만의 예술 루틴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공감 댓글을 남겨주신 가족님 10명을 선정하여,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블룸버그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도서,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를
선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아름다운 것에 가능한 한 많이 감탄하라.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에 충분히 감탄하지 못하고 있다.
- 반 고흐 -
우산을 쓰다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유관(柳寬)'은
높은 벼슬에 올랐지만, 청렴하기로 유명해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누구도 정승이 사는 집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울타리 없는 초가집에서 평생 베옷과 짚신으로
청렴한 삶을 살았습니다.

심지어 수레나 말을 쓰지 않고
호미를 들고 채소밭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밭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후학을 가르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배우고자 온 학생에게는 늘 평등하게 대하고
성명과 집안도 묻지 않고 제자로
받아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그에게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한 번은 장맛비가 오래 계속되어 방안까지
빗물이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책을 읽던 유관이
직접 우산을 받치며 빗물을 피했습니다.
그리곤 옆에서 걱정하는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우산도 없는 집은 이런 날
어떻게 견디겠소?"

고려의 공민왕부터 조선의 세종까지
변치 않고 늘 청렴한 유관의 검소한 모습에
왕은 물론 백성들까지 오랫동안
존경했다고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청렴하고 낮아지려는 사람보다는,
오히려 가진 것을 뽐내기 위해 그 자리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힘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보다 약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역시 돌이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 오늘의 명언
청렴은 백성을 이끄는 자의 본질적 임무요,
모든 선행의 원천이요, 모든 덕행의 근본이다.
– 다산 정약용 –

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성당에서 만났다.
그는 수녀가 되려던 나에게 삭발까지 하고 구애를 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결혼이었다.
변변한 직장이 없던 그를 우리 부모님은 완강히 반대했다.
그러나 나에게 그는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한 일인지 알려준 사람이었다.

따뜻한 봄날, 우리는 결혼했고 곧 영훈이를 낳았다.
이어 둘째 규빈이도 생겼다.
임신 3개월째, 가장 행복해야 할 때
갑자기 남편이 쓰러졌다.

첫 번째 발병이었다.
친정 식구들은 유산을 권했다.
남편 없이 아이들을 키우며 고생할
막내딸을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다.
고집을 부려 규빈이를 낳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남편이 완쾌 판정을 받은 것이다.
왼쪽 대장을 상당 부분 잘라내고 그 힘들다는
항암 치료를 견디며 남편은 완치되었다.
남편에게 가족은 힘이었고,
버티는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암은 또다시 남편을 찾아왔다.
이미 복부 림프절까지 전이되었지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암은 급속도로 퍼져가고 있었다.
CT 촬영을 하고 병실로 돌아온 남편에게
"힘내"라고 말했지만 그를 위로할 수 없었다.

"아빠! 왜 목소리가 작아?"
"병실이라 그렇지."
"아빠?"
"응, 왜?"
"아파요?"
"아니."
"거짓말, 아프면서..."

남편이 다시 입원한 후 아이들도 뭔가를 느끼는지
부쩍 아빠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그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자꾸 우는 규빈이와
나는 약속을 해야 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





지금까지 나는 남편에게 나아질 것이라고만 말했다.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남편에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와 시동생은 어렵게 입을 떼었다.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 나는 남편을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 복도를 산책했다.
갑자기 남편이 밖으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
밖엔 너무 춥다고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갔다.
다행히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했다. ​
생각해 보니 입원 후 남편은 외출하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지상에서 만나는 마지막 바람, 햇살이었다.
남편은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은 더 늦기 전 아이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그의 마지막 인사를 찍게 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정성껏 남편을 단장해 줬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내 남편이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고마워."
"뭐가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남편은 씩 웃으며 내 얼굴을
처음 본 사람처럼 만진다.

"화장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렇게 봐도 예쁘고, 저렇게 봐도 예쁘고.
.
.
미안하다.
너에게 행복을 못 줘서 미안하고,
너에게 짐만 가득 주고 가서 미안하다.
나중에 아이들하고 너무 힘들면...
.
.
재혼해."





어느 날 남편에게 극심한 호흡 곤란이 왔다.
남편의 숨소리가 계속 거칠다. ​

"조금만 힘내. 지금까지 잘해왔잖아. 응?
애들 데리고 올 거야. 눈 떠봐. 응?"

나는 아직 남편의 손을 놓을 수가 없다.
학교에 있던 아이들을 막내 삼촌이 데려왔다.
아이들이 서럽게 운다. 늦기 전에 말해야 한다.

"아빠, 고맙습니다."
"아빠, 사랑해요."

그는 들었을까? 남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남편은 우리 곁을 떠났다.
그를 만나고 사랑하고 부부가 된 지
9년 8개월 만이었다.

남편이 떠난 후 우리의 생활은 여전하다.
아이들은 점점 슬픔을 벗고 명랑해졌다.
나는 아직 아침저녁으로 그가 보냈던 문자를 본다.
생전 그와 나누었던 평범한 메시지가
이렇게 소중한 선물이 될 줄 그때는 몰랐다.

가끔 남편이 있는 곳에 찾아간다.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그의 앞에 가면 눈물이 쏟아진다.
마음 놓고 울 수 있는 곳이다.

난 아직 그가 사무치게 그립다.
앞으로도 내내 그리울 것이다.
그러나 또 이 추억이 있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그를 떠올리면 그는 언제나 함께 있다.

바람이 불면 그가 내 머리를 쓸며 내 곁에 와 있는 듯하다.
눈을 감고 그에게 말한다.
안녕, 여보.
안녕, 영훈 아빠.


===================================


과거 'MBC 휴먼다큐' 편에 방송됐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랑 곁에 주렁주렁 조건을 달아놓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잣대로 사랑의 조건을 평가합니다.
무엇이 남을까요?
남는다 한들 남은 것 중 하나라도
진정한 사랑보다 값진 게 있을까요?

곁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라
곁에 있고 싶기 때문에..
당신이 선택한 그 사람을 다시 한번
돌아봐 주세요.


# 오늘의 명언
부부란 둘이 서로 반씩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서 전체가 되는 것이다.
– 반 고흐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