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후소(繪事後素)

회사 후소(繪事後素)는 아무리 훌륭한 붓을 갖고 있고 그림 실력이 좋다 해도
하얀 바탕의 종이가 없으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예쁜 얼굴과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더라도 내면이 아름답지 않으면 빛이 날 수 없고,
겉으로 꾸며진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자의 아끼는 제자로서 시(詩)와 예(禮)에 통달했던 자하(子夏)가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시경(詩經)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곱게 웃는 모습에 보조개 예쁘고, 아름다운 눈동자 흑백이 분명하네. 흰 바탕에 고운 채색 더한 듯하다’
"이 시구(詩句)가 무슨 의미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회사 후소(繪事後素 : 그림 그리는 일은 하얀 바탕이 있은 후에 할 일이다)니라.”
이에 자하가 “형식을 갖추는 예(禮)가 충신(忠信)을 갖춘 뒤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가 크게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내 뜻을 정확히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자하로구나.

이제 비로소 함께 시(詩)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했습니다.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만으로는 아름다움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禮)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인(仁)의 마음,

내면의 덕성이 중요함으로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라야 의미가 있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사자성어는 실속 없는 형식에 빠져 생활에 필요한 예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 됨됨이가 선결되어야 함을 전하고 있습니다.
외모의 아름다움은 우선 시선은 끌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은

곧바로 시선을 끌지는 못하지만 진한 향기처럼 여운이 남아 오래갑니다.
내면의 아름다움, 이는 곧 우리가 추구하고 갖춰야 할 진정한 가치인 것입니다.



- 좋은 글 중에서 -

 

어른의 조건



음식은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발효가 되어 더욱 맛있어지고,
건강에도 유익한 유산균이 생기는
발효식품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도 헛되이 세월만 흘려보내
나이만 먹어가는 노인이 있는 반면에,
세월과 함께 내면에 깊이가 생긴
어른이 있습니다.

진정한 어른은 그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어떠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들의 인생을 보면서
'나도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사람이
진짜 어른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노인과 어른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노인은 허송세월을 흘려보낸 사람이지만,
어른은 나이가 들수록 성숙해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자신밖에 챙길 줄 모르지만,
어른은 넓은 아량으로 주변을 챙기고,
항상 배려합니다.

노인은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지만,
어른은 젊은 사람에게도 끊임없이
배우려고 합니다.

노인은 끝없는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지만,
어른은 자신을 비우고 나누어줍니다.

노인은 '나'와 '타인'을 늘 비교하지만,
어른은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사람입니다.

노인은 매일 거울을 보며
자신의 늙어가는 모습에 슬퍼하지만,
어른은 가득 찬 내면을 볼 줄 알며,
이에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백구과극(白駒過隙).
흰 망아지가 빨리 지나가는 순간을
문틈으로 언뜻 본다는 뜻으로,
세월과 인생이 덧없이 짧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설령 지금은 젊다고 할지라도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인생은 멀리 와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어른의 조건'을 갖추었는지
삶의 자리를 항상 돌아보아야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당신은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만큼 늙는 것이다.
- 조지 번스 -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텃밭에서 이슬이
오고가는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먼저 따서 보내주고 싶은 생각이 들고..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있는 들꽃과 마주 쳤을 때..

그 아름다움의 설렘을
친구에게 먼저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렇게 메아리가
오고가는 친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벗이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장점을 세워주고
쓴소리로 나를 키워주는 친구는 큰 재산이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좋은 친구가 가장 큰 보배다^^

물이 맑으면 달이 와서 쉬고
나무를 심으면 새가 날아와 둥지를 튼다.

사람이 하늘처럼^^

스스로 하늘 냄새를
지닌 사람은 그런 친구를 만날 것이다.


 

💙 아침 좋은글----------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하다]

자기가 힘들 땐 어디든 털어놓고 싶어 찾아오고, 막상 도와주고 나면 금세 잊어버린다.

이제 좀 살 만하다 싶으면 차갑게 돌변한다.
'감사함'이 '간사함'으로 바뀔 때 사람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만만해 보였으면』 중에서..

열대림에서 특이한 방법으로 원숭이를 잡는다.
작은 나무상자에 원숭이가 좋아하는 견과류를 넣은 뒤 위쪽에 손을 넣을 정도의 작은 구멍을 뚫어 놓고
원숭이가 견과를 움켜쥔 구멍에서 손을 빼지못하면 그때 사냥꾼들은 원숭이를 잡는다.
손에 들어온 것을 놓지 않으려는 원숭이의 습성을 이용한 사냥, 우리도 때때로 원숭이처럼 어리석음을 저지른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움켜쥔 채 손을 펴지 않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를 많이 목격하곤 한다.
감사함이 간사함으로 변하지 않고 내려놓는 평안한 하루.

생각하렴^^

무언가를
잃어 버렸을 땐 생각 하렴
원래부터 내 것은 아니었다는 걸

일이
잘 안 풀릴 땐 생각 하렴
잘 되는 날도 분명히 온다는 걸

역경을
겪고 있을 땐 생각 하렴
나만 겪고 있는 고통이 아니라는 걸

삶이
힘들 땐 생각 하렴
모든 것은 지나가게 된다는 걸

절망에
빠졌을 땐 기억 하렴
하늘은 네 편이라는 것을..

이제 웃는날이 오고 있다는 것을^^

삶이 더 나아지지 않더라도
손톱만한 희망도 없다고 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삶의 기술중에서 가장 높은 기술이다.

견디는 것은 잘 살기 위해
기울이는 어떤 노력보다 진지하고 가치 있다

내가 가진 단점과 불행과
열등감은 남에게 없는 나만의 재산이다.

내가 가진
인생의 조건들로 최선의 맛을 내는 것

최고의 사람이란 결국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다^♡^
 

♡ 슬픈 이태원의 역사♡

이태원(梨泰院)은 한자가 다른 이태원(李泰院),

이태원(異胎院) 등의 다른 이름이 있었다.

지명이 세 번이나 바뀐 슬픈 이태원의

유래가 청춘 창업드라마 '이태원 클라스', ‘할로윈 참사’로 인해 새삼 떠오른다.

<2022년 10월 29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해밀톤호텔 서편 골목에서 할로윈 축제로 수많은 인파가 몰린 와중에 발

생한 압사 사고. 이 사고로 인해 159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태원은 조선 초에는 '오얏나무 李'를 써서 '李泰院',

임진왜란 이후에 '異胎院', 효종 이후에는 '梨泰院'으로 글자와 의미가 변한다.

 

조선 초기에는 ‘李泰院(이태원)’으로 한문표기가 달랐는데,

산에서 맑은 샘물이 솟아나 도성 안의 부녀자들이 빨래터로

이용하였고 소나무숲이 우거져 있었다고 한다.

 

원래 이태원은 서울을 벗어나 영남로(嶺南路)로 향하는 첫번째 원이었다.

서쪽의 홍제원. 동쪽의 보제원. 남쪽의 이태원과 인덕원은 서울 부근의

중요한 첫 번째 원이었다.

 

이태원의 역사를 살펴보면 슬픈 이 땅의 역사가 떠오른다.

슬픈 역사하면 임진왜란(1592~1598년) 선조와

병자호란 (1636년 12월 28일 ~ 1637년 2월 24일) 인조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천주교 신자이자 반전론자인 상인 출신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불교신자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부대는 경쟁적으로 진격하여 가토 기요마사 부대는 남대문으로

고니시 유키나카 부대는 동대문으로 입성한다.

(이들이 처음 통과한 문이라는 상징성을 바탕으로 조선총독부는

남대문과 동대문을 조선고적 1.2호로 지정했으며

대한민국 국보 1호와 보물 1호가 되었다.)

 

한양에 들어 온 '가등청정'은 이태원에 주둔을 한다.

'가등청정‘ 부대 왜군은 여자들을 겁탈하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의 여자들은 피난을 가버린 상황이라 그 대상은

피난을 가지 못한 여자와 이태원 황학골에 있는

운종사(雲鐘寺)의 비구니들이 주대상이었다.

 

가등청정은 여승들을 겁탈하고 운종사(雲鐘寺)까지 불살라 버린다.

가등청정은 경주 불국사에도 불을 질렀다.

가등청정의 만행은 경상도 민요 '쾌지나칭칭나네' 는

'가등청정' 이라는 설과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강강수월래' 에서도 전해오고 있다.

 

문제는 이 비구니들과 여인들이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게 된다.

절이 사라진 상태에서 비구니들의 아이들과

왜놈에게 겁탈당한 부녀자등이 애를 낳고 기를 보육원을

지어 정착케 하였는데, 당시 왜병들의 피가 많이 섞인 곳

이라 하여 이태원異胎圓(다른 민족의 태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후, 임진왜란이 끝나자 일본에 잡혀갔다

돌아온 조선여자와 왜란 중에 성폭행을 당한

여성과 그들이 낳은 아이들이 사회적 문제로 등장한다.

 

선조는 이들과 그 자식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포로나

귀화한 일본인들을 한 곳에 몰아서 일종의

이방인 공동체 지역으로 만든 곳이 이태원이다.

 

17세기 인조 때 병자호란에 청나라로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부르며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뜻이었는데 이후

이 말은 '화냥년'이란 욕으로 변질된다.

오갈데 없는 환향녀들이 이태원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거기다 오랑캐에 끌려갔다 돌아온 여자가 낳은 아이는

호로(胡虜오랑캐의 포로) 자식이라 하여 후에

'후레자식'이란 욕으로 부르게 된다.

 

이후, 북벌을 준비하던 효종은 이태원(異胎院) 지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이곳을 배나무가 많은 곳이라는

이름의 이태원(梨泰院)이라 고쳐 부르게 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다.

 

이태원은 우리 역사에서 오랜 기간 '이방인의 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다.

조선시대부터 용산 일대는 군사 관련 시설이 많았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군용지로 이용되면서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부가 이곳에 머문 이후 이태원은 군사지역

으로서 본격적인 정체성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임오군란을 진압하러 조선에 온 청나라 부대는

1882∼1984년 이태원에 주둔했고, 이후 일본군

조선사령부가 1910∼1945년에 주둔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근대식 마을이 본격적으로 형성되는데

광복 이후엔 미군이 이곳을 차지했다.

6.25전쟁이 끝나고 나서 이태원 상권은 사실상 미군이 주도했다.

 

1957년 미군의 외박과 외출이

허용되면서 기지촌까지 생겨났다.

1970년대 미군기지에서 나온 물품들로

상권이 형성된 이태원은 이후 미군을 위한 유흥가로

거듭나 기지촌과 미국식 클럽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정부는 이태원 미군기지 중심으로 서빙고동,

한남동, 동부 이촌동 일대에 외국인 전용주택과

아파트는 물론 고급 외국인 주택단지까지 건설한다.

 

그러자 1960년대 이후 한국에 들어온

각국의 대사관이 이태원 지역에 대거 입주했고,

그 영향으로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고급주택단지도 조성됐다.

 

이태원은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인의 유입이

늘면서 현재는 판잣집과 대저택이 공존하는 독특한 경관을 연출한다.

 

기지촌 단속으로 퇴폐업소가 사라지면서 경리단길과

더불어 한국 속의 외국으로 변화하는 '이태원'은 이방인의 느낌이 드는 아픈 역사가 있다.

이태원동 - 나무위키 - https://namu.wiki/w/%EC%9D%B4%ED%83%9C%EC%9B%90%EB%8F%99

소금을 받아오세요



어느 마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외아들을 잃은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슬픔으로 식음을 전폐하던 그녀는 장례가 끝났음에도
아들을 땅에 묻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자식을 다시 살릴 방법은 없는지
마을의 현자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아들을 떠나보낸 후로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살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라면 제 자식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발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라면 하나 있소.
그러기 위해서 소금을 가져오십시오.
단, 세상을 떠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집의 소금이어야 합니다."

여인은 아들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소금을 얻으러 첫 번째 집에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바로 소금을 얻을 수 있었지만,
물어보니 얼마 전에 그의 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다음 집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그 집주인은 부인과 사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다시 옆집, 그리고 옆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녀는 마을의 모든 집을 돌아다니면서
소금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가족 중에 세상을 떠나지 않은 사람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누구나 겪는 이별의 순간을
후회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누군가의 마지막을 겪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그리고 나의 죽음까지도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기에
누구나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꽃이 져야 열매를 맺고
열매가 썩어져야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게
자연의 일부인 것처럼 죽음도
삶의 일부입니다.

그 누구도 삶의 마지막을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후회 없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 오늘의 명언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하늘로 돌아갈 시간이 되면 최선을 다해 잘 이별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아닐까.
- 작가 송정림 -

세 황금 문



아라비아의 옛 시라고도 전해오고
'베스 데이(Beth Day)'가 1835년에 쓴 시라고도 알려진
세 황금 문(Three Golden Gates)이 있습니다.

누구나 말을 하기 전에 세 문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문, '그것은 사실인가?'
둘째 문, '그것은 필요한 이야기인가?'
셋째 문,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

이 모든 문을 통과했다면,
그 이야기를 해도 좋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의 결과가 어떨지에 대해서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위로가 됩니다.
기쁨이 됩니다.
슬픔을 나눕니다.
의지가 됩니다.
감동을 줍니다.
세상을 바꿉니다.

때론 나의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말도 아름다운 꽃처럼 그 색깔을 지니고 있다.
– E. 리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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