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설암의 성공 철학



청나라 말기의 최고 상인으로
상인 최초로 1품 관직인 포정사함에 제수된
호설암(胡雪岩)은 평소에 인품도 훌륭했지만,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단호하게
훈계하기로도 유명했습니다.

"다음 투자 시에는 반드시 시장을 잘 분석해
자금을 경솔하게 투입하지 마십시오."

어느 날, 한 상인이 호설암 집에 방문했는데
상인의 얼굴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상인은 최근 사업이 기울어 목돈이 급히 필요했기에
가지고 있는 자산을 아주 낮은 가격으로
호설암에게 넘기려 했던 것입니다.

호설암은 상인에게 내일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이 되자 호설암은 상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상인의 재산을 헐값이 아닌
시장 가격으로 매입하겠다고 했습니다.
너무 놀라 휘둥그레진 상인의 어깨를 두드리며
호설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잠시 당신 자산을 보관할 뿐이오.
당신이 이번 난관을 잘 넘겨서 나중에 다시 매입하시오.
다만 원가만 받기는 좀 뭣하니 아주 약간의
이자만 받도록 하겠소."

상인은 호설암에게 감사를 표하고 떠나자
호설암의 제자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아 물었습니다.

"스승님, 다른 사람들에겐 호되게 훈계하시면서
정작 자신의 수익은 왜 신경 쓰지 않으신지요.
입에 들어온 고기도 삼키지 않으시다니요."

그러자 호설암이 제자들에게 훈계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에게 이번 일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다.
한 집안을 구하는 일이었고, 친구를 사귀는 일이었으며,
상인으로서 양심에 부끄럼 없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누구라도 비 오는 날 우산이 없을 수 있는데
위급할 때 타인을 도와준 사람은 나중에 똑같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호설암은 상인으로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법의 범위를 벗어난 검은돈을 경계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이익을 탈취하지 않으려 했으며
신의와 양심을 저버리면서까지 돈을 벌려고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호설암의 성공 철학의 중심에는
돈보다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얻은 이익은 재물을 베풀어
반드시 주변 사람들에게 혜택을 돌리려 했습니다.
그는 늘 구두쇠로 살 게 되는 것을
염려했다고 합니다.


# 오늘의 명언
먼저 이름을 벌고 다음에 돈을 벌어라.
장사에서 명성은 곧 이윤이 된다.
– 호설암 –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1987년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받은 '제니퍼 브리커(Jennifer Bricker)'는
다행히도 미국 일리노이주의 평범한
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양부모는 그녀를 남들과 다르게 키우지 않았습니다.
'홀로서기'를 바란 양부모의 지원 속에
제니퍼는 보조 기구 없이 두 팔로 뛰는 방법을 배웠고
소프트볼, 농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독립심 강한 소녀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나를 특별하게 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르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이었습니다.
제니퍼는 루마니아 체조선수인 '도미니크 모치아누'의
연기에 반해 체조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하게 됩니다.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에도
가족의 전폭적인 응원을 받으며
제니퍼는 전미 청소년 체육대회 지역 예선 1위,
전국대회 4위 등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그런데 한참 뒤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니퍼'가 롤모델로 여긴 '도미니크'가
친언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체조선수였던 제니퍼의 친부는 가혹한 사람이었습니다.
언니 도미니크처럼, 동생 제니퍼도
체조선수로 키우려고 했지만
장애를 갖고 태어나자 매정하게 입양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제니퍼는 도미니크에게 편지를 썼고
막냇동생 크리스티나까지 헤어졌던 세 자매는
2008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6년, 자신의 이야기를 쓴
'모든 것이 가능하다'를 펴냈고,
이 책을 읽고 팬이 된 남성과 2019년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힘든 상황과 조건만 있을 뿐입니다.
물론 남들보다 출발점이 다르고 어려운 상황이라면
더 많은 힘을 들여야겠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결국 성공이라는
열매가 함께 할 것입니다.

위대한 일을 위해서 대단한 도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순간순간의 작은 도전들이 모여서
위대한 일을 이루어갑니다.


# 오늘의 명언
나에게 두 다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는 없었다.
– 제니퍼 브리커 –

우리 어머니



오래전 시외버스 안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버스 기사가 시동을 걸고 막 출발하려던 순간,
승객 한 사람이 버스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할머니를 발견하고는 기사님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저기 할머니 한 분이 못 타셨는데요?"

버스 기사가 차량 바깥에 거울로 보니
제법 떨어진 거리에서 머리에 짐을 한가득 인 채
걸어오시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버스를 향해 최선을 다해 걸어오셨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 듯 보였습니다.

"기사님, 어서 출발합시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다릴 겁니까?"

승객은 바쁘다며 버스가 출발하길 재촉했습니다.
그때 버스 기사님의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저기 우리 어머니가 오십니다.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가시지요.

버스 기사님이 어머님이시라 하니
불평을 했던 승객들도 더 이상 그냥 가자는
재촉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창가에 앉았던 한 청년이
벌떡 일어나 버스에서 내려 할머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승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버스 밖으로
모아졌습니다.

할머니가 이고 있던 짐을 받아 든 청년은
할머니의 손을 부축하여 잰걸음으로
버스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와 청년이 버스에 오르는 순간,
승객 중 누군가가 손뼉을 쳤습니다.
그러자 버스는 승객들 모두의 박수 소리로
이어졌습니다.

사실 그 할머니는 버스 기사의 어머니도
누구의 어머니도 아니었습니다.





자식이 보낸 용돈을 모아뒀다가
보약을 지어 다시 자식에게 보냈던 당신
어머니에게도 곱던 시절이 있었고,
꿈이 있었을 텐데..

자식들은 날 때부터 어머니 나이였던 줄
착각하며 삽니다.

오늘도 부모님 얼굴에 주름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더 늦기 전에, 후회만 남기 전에
부모님께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라고
문자를 보내 주세요.


# 오늘의 명언
늙어가는 어버이를 공경하여 모시라.
젊었을 때 그대를 위해 힘줄과 뼈가 닳도록 애쓰셨느니라.
– 명심보감 –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다



조선시대 세조 때 격변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관상'에서 주인공 송강호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말이오."

영화에서 송강호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척척 맞추는 대단한 관상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관상가도 결국 가장 사랑하는
아들의 운명은 물론 자기 자신의 모습과
인생은 살펴볼 수 없었습니다.

얼굴을 보는 것은 그저 파도를 보는 것에
불과할 뿐, 바람 즉 진짜 사람의 모습과
역사의 큰 기운을 보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의 여정에 완벽한 대답은
없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에서는 다른 학문과 달리 '결과'보다
'본질'을 보려 하는 데 노력하고 열중하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스스로를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 오늘의 명언
결국 삶이란 여러분이 되고자 했던
완벽한 인격체로 거듭나는 것이다.
– 오프라 윈프리 –

코끼리 사슬 증후군



우리 삶에 족쇄가 되어 발전을 가로막는
'코끼리 사슬 증후군(Baby Elephant Syndrome)'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이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방법에서 유래되었는데
어렸을 적부터 아기 코끼리의 뒷다리를
말뚝에 묶어 놓습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아기 코끼리는
이리저리 발버둥을 쳐보고 안간힘을 쓰지만
결국 말뚝 주변을 벗어날 수 없게 되자
좌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코끼리는 스스로
말뚝 주변을 자신의 한계로 정해버려 성장한 뒤에도
사슬을 풀어놔도 말뚝 주변을 벗어나지 않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고 맙니다.

코끼리는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사슬을 끊을 수 있는 힘을 갖게 됐지만
그럴 엄두조차 내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코끼리를 옭아매는 사슬이
혹시 우리에게도 존재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를 묶어 놓는 가장 큰 원인은
환경도, 사람도 아닌 바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나는 원래 그래'와 같이 그렇게 믿어버리는
믿음 때문입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의 유일한 한계는 우리 스스로
마음으로 설정한 것들이다.
– 나폴레온 힐 –

파이팅 필리피노(Fighting Filipinos)



6.25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끝난 현장에서
한 미군 장교가 수많은 사상자를 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그러자 당시 전투에 참여했던
필리핀의 기관총 사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Those are dead reds, sir.
(전부 중공군의 잔해입니다)"

이 전투는 바로 1951년 4월 22일,
필리핀 참전군과 중공군이 경기도 연천군 율동에서
격전을 벌였던 '율동 전투'였습니다.

필리핀은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 나라입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그늘이 드리웠던 6.25 전쟁 당시
필리핀은 미국·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먼저
우리나라를 도왔습니다.

필리핀은 6.25 전쟁 발발 이전,
과거 여러 강국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아오다가
1946년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며
필리핀 공화국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필리핀의
정치적 상황은 몹시 혼란스러웠던 상황이었지만,
민주주의 정신을 수호하기 위한 일념으로
약 7,500명이 6.25 전쟁 참전을
결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큰 전투인 율동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율동은 철원에서 서울을 연결하는 주요 도로 3번 국도 인근으로
당시 재탈환한 서울을 다시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중공군은
중공 34단 전 병력을 동원해 핵심 지역인 율동을 향하여
총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당시 율동을 사수하고 있었던 것은
필리핀 제10대대 전투단이었는데
벌 떼처럼 밀고 들어오는 4만 명의 중공군에게 맞서야 할
필리핀 군은 1,400여 명이 전부였습니다.

필리핀 군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행정병, 운전병, 취사병들도 전투에 참여해야만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필리핀 대대는 중공군의 포격으로
상위 지휘 본부와 통신까지도 두절되는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퇴로 차단의 위기에서 방어전을 펼치던
중대장 '콘라도 디 얍' 대위는
대대장으로부터 즉각 철수할 것을 지시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존자를 구출하고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한 후
철수하겠다고 보고한 뒤 역습을 감행했습니다.

그렇게 과감하게 적진을 돌파하며 고지 탈환에 성공했지만,
얍 대위는 적의 총탄에 맞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율동 전투에서 죽기 살기로 싸운 필리핀 군은
12명 전사, 38명 부상, 6명 실종인 반면에
중공군은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엄청난 대승을 거뒀습니다.





자신의 청춘을 바쳐 이 땅의 자유를 지켜주신
6.25 전쟁 참전 영웅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그 희생정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 오늘의 명언
우리들은 행복해진 순간마다 잊는다.
누군가가 우리들을 위해 피를 흘렸다는 것을.
– 프랭클린 루스벨트 –

퍼플섬엘 가고 싶었다 

가본 적이 없지만 보랏빛으로 물든 사진을 인터넷에서 참 많이 봤다

퍼플섬의 할머니들이 방송에 나와 퍼플섬 주민들의 속옷도 보라색이라 하더라는 이야길 전해 들었다

그래서 지난 4월에 진재여에 퍼플섬 여행을 예약하였건만 결국 성원이 되지 않아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퍼플섬을 꼭 가보고 싶다는 일념에 5월 26일 일요일 진재여에 퍼플섬을 예약했지만

출발 확정이 되지 못해 취소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보랏빛 퍼플섬을 꼭 가고 싶었는데 아쉬움을 달래고 있는데 그때 날아온 소식 25일은 출발 확정이 되었으니

25일로 변경 가능하다는 희소식 보자 그러면 토요일 다른 일정을 뒤로 미루어도 

꼭 퍼플섬엘 가 봐야지

 

금요일 오후 5시 분명 진재여에서 여행안내가 있을 텐데도 그때까지도 연락이 없다

조바심이 나 진재여로 전화를 했다 

같이 가는 아내에게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예약자인 내게는 안내 문자를 보내지 않은 것 같다면서 보내준 

여행 안내문

가고 싶었던 퍼플섬의 여행이라 설레었던가 출발시간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아침 6시에 출발이라는 사실만 머리에 각인되었나 보다

새벽 4시 30분에 알람을 맞춰 놓고 늦게 잠이 들었음에도 새벽 4시가 되기 전 눈을 떴다

아내는 곤히 자고 있는터라 깨우지 않고 살금살금 거실로 나가 무료한 시간을 달래 볼까 TV를 켰더니

TV소리 때문인지 TV의 밝은 빛 때문인지 이내 아내가 일어났다

조금 서둘러 나서자고 채근한 덕분에 승차 장소인 성서 홈플러스에 도착하니 5시 50분

아직 10분이 남았네 안도하며 이제나 저제나 버스가 올까 기다렸지만 버스가 오질 않는다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다시 안내 문자를 보는 순간 낙심을 했다 설레는 마음에 출발이  6시만 생각했지

내가 승차할 장소인 성서 홈플러스에서는 6시 30분에 버스가 도착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한심함을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버스가 도착하고 캡틴의 간략한 소개와 짧은 안내 그리고 새벽잠을 설쳤을 여행을 위하여 

가는 동안 잠을 잘 수 있도록 소등하고 다른 이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용히 해 주시고 

뒷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의자를 뒤로 젖히고 가는 것은 뒷 승객의 양해를 얻어달라고 하는

세심한 주의사항까지 일러 주었지만 뒤좌석의 커플과 옆좌석의 동성 커플이 얼마나 많은 이야길 나누는지

도무지 잠을 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동승자를 배려해 달라는 간곡한 캡틴의 부탁이 있었지만 여행의 설레임 때문인지 

어찌나 많은 이야길 나누는지 시끄러운 이야기 소리에 잠을 청 할 수가 없었다

(캡틴이 이야기 한 여행 에티켓 여기서는 아무 소용이 없네)

 

강천산 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왔더니 버스가 없다 

캡틴이 버스는 주유를 위해 주유소로 이동했다는 멘트가 있었지만

이대로 기다려야 하는지 아니면 주유소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야 하는 건지

한참을 멀뚱멀뚱 서 있다가 수습 가이드의 안내로 주유소까지 걸어가 버스를 타게 되었다

진작 걸어가 버스에 탑승하라고 일러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쪼끔 아쉬운 부분이었다

 

거의 4시간쯤 지나 신안의 천사교를 지나 퍼플섬에 도착했다

캡틴이 그렇게 열심히 알려 주었건만 막상 버스에서 내리니 어디로 가야 할지

반월도는 무엇이고 라벤더 꽃 축제가 열린다는 박지도는 어디인지 잠시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차장소와 승차장소는 어디인지 다시 되묻고 입장료를 대신한다는 보랏빛 우산을 받아 들고 

본격적인 퍼플섬 여행을 시작한다

 

여기서 잠깐!!!

퍼플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료를 내거나 보라빛 소지품을 가지고 있으면 무료로 입장 할 수있어요

퍼플섬을 갈때는 보라색 소지품을 챙겨 가세요

그래서 진재여에서 준비한 보라색 우산 그것을 들고 입장료 대신 GO GO

 

물때가 맞지 않아 썰물로 물 빠진 뻘밭이 펼쳐져 있지만 그건 상관없다 

보랏빛 퍼플교만 있는 게 아니라 섬 전체 가구의 집 지붕들도 모두 보랏빛이다

퍼플교를 지나다 보니 약간 높게 만들어진 교량이 보이는데 이곳은 배가 드나들기 위해 만든 통로이리라

섬전체 어딜 가더라도 보랏빛을 만날 수 있다 

반월도는 반달처럼 생겨 반월도라는 지명이 붙고 박지도는 박모양처럼 둥글다고 박지도라 한단다

라벤더꽃 축제가 열린다는 박지도의 섬구경은 일정이 모자라 갈 수가 없었지만 

보랏빛 충만한 퍼플섬 여행은 참으로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

단지 아쉬운 것은 멀리 신안까지 가서 신안의 또 다른 명물인 

엄태면 기동리 에 위치한 기동 삼거리 벽화나 암태도의 할머니 벽화  자은도의 할머니 벽화등

전남 신안군의 곳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진재여에서는 이왕 멀리 신안까지 가서라면 자가용 운전으로는 다소 먼 거리라 다시 가지 못할 수 있는 거리를 감안하여서라도 신안 부근의 관광명소를 개발하여 퍼플섬과 함께 신안의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여행 상품을 개발하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이런 아쉬움을 멀리하고 광주 송정역시장으로

광주 송정역시장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

"시장골목의 바닥에는 건물 연도가 쓰여 있어서 이 숫자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건물의
완공 연도를 표시한 것으로 시장의 역사를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현대에 발맞춰 나가기 위해 리모델링을 시행하였지만 오는 고객들에게 정취를 보여주기 위해
최소화하며 간판의 디자인은 시장 같지 않은 모습으로 관광지의 면모를 잘 보여주며 가게 한 곳 한 곳마다
추억이 될 수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다. "는 여행 안내서와 같이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는 시장으로 

마침 가는 날이 장날이라 1913 송정역 맥주축제를 준비 중이다

시장 한가운데 테이블이 놓여지고 무대가 꾸며진다 오늘저녁에는 화려한 야시장이 개장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다

근대화시장으로 거듭나는 한켠 시장에는 진짜 사는 재미 득템 콘서트가 시작되려나 보다 준비에 한창이다

시장의 높은 하늘 녁엔 전깃줄처럼 생긴 여러 가닥의 전선이 설치되어 야간에 빛을 쏘아 조명이 켜지면 

전선 가닥가닥마다 빛이 반사되어 화려한 장면을 연출한단다

그리고 전라도의 미식으로 이름난 고장답게 떡갈비랑 온갖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즐비한 가게들

그중 한 음식점을 찾았는데 벽에 쓰인 낙서들이 장난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맛있는 집이면 이런 낙서들이 오래오래 간직될까?

송정시장도 돌아보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둘러보다 시간에 쫓겨
급히 송정역 앞으로 가 버스를 탑승하니 
마지막 남은 여행 일정 양림동 펭귄마을 일정이 남았다


양림동은 광주의 오래된 개화기 때 기독교 선교사들이 거주하던 동네로 
일제치하에서 구국운동의 마련했던 선교사의 노력으로 수피아여고가 설립되었고 
또 사고로 위급한 상황에서 구급차가 없어 애를 먹었던 선교사 노력으로 구급차가 운행되게 되었다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펭귄마을의 마을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가 동네 어르신들이 마를 텃밭을 오가는 모습이 뒤뚱뒤뚱 걸음걸이가 
마치 펭귄이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펭귄마을이라고 한단다
동네 곳곳이 오래된 골동품과 손때가 묻은 생활용품들이 재활용되고 예술가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 
다양하고 멋진 작품으로 볼 것이 많고  미로와 같이 생긴 골목골목마다 정감이 묻어나는 곳이다

우리가 간 그때 프리마켓 행사가 열리고 있는 장이 형성되어 구경하는 우릴 보고 어디서 왔느냐고 묻고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상인들의 모습에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던 곳이었다

오늘 일정을 차질 없이 수행해 준 캡틴과 퍼플섬 박지도 퍼플교 버스승강장 부근에서

여행객이 돌아왔는지 빠진 사람이 없는지 한분 한분 꼼꼼히 체크하여 주시던 수습 가이드님

오가는 동안 버스운전을 하여주신 우주관광 6406호 운전기사님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2차 대전 때 굶주림과 두려움에 떨면서
힘든 유년 시절을 보낸 한 여자아이가 있었습니다.
아이는 가난한 환경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성장했습니다.
특히 전쟁 중이라 먹을 것이 없어
땅에 난 풀과 튤립 뿌리, 물로 굶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그때 한 구호단체의 도움으로 음식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구호품에 의지하여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구호품으로 어려운 시절을 극복한 소녀는
훗날 세계적인 영화배우로 성장한
오드리 헵번이었습니다.

그녀가 과거 에티오피아 난민촌에 방문했을 때였습니다.
난민촌을 오가며 굶주린 아이들을 돕고 있었는데
한 아이를 만나 물었습니다.

"너는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아이는 그녀에게 대답했습니다.

"살아 있는 거요..."

그 순간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배고픔에 대해 혹독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이후 그녀의 삶은 굶주리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발 벗고 나섰습니다.





사랑은 죽어가는 생명을 살립니다.
사랑은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꽃을 피웁니다.

세상은 '나의 필요'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 모든 노력과 희생을 감당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여전히 따뜻하기만 합니다.


# 오늘의 명언
절망의 늪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많은 사람의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내가 그들을 사랑할 차례입니다.
– 오드리 헵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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